한국의 옛집60 [함성호의 옛집 읽기]<51>‘기호예학의 단청’ 쌍청당 쌍청당 대전 대덕구 중리동은 대대로 은진 송씨(恩津 宋氏)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옛날에는 이 마을을 윗중리, 백달촌 또는 하송촌이라 불렀는데 마을 동쪽은 상송촌으로 동춘당과 고택이 있다. 은진 송씨들이 이곳에 모여 살게 된 것은 고려 때부터인데 입향조(入鄕祖)는 송명의지만 그의 손자로 쌍청당(雙淸堂)을 지은 쌍청당 송유(宋愉·1389∼1446)에 의해 가문이 번성해서 은진 송씨들은 송유를 중시조로 모시고 있다. 계족산 줄기가 북에서 남으로 흘러가면서 쇠스랑처럼 몇 개의 자락이 ‘물(勿)’자 꼴로 뻗어 북에서부터 읍내동, 송촌동, 가양동이 勿자의 한 계곡씩 차지하고 있다. 쌍청당은 송유가 낙향해서 1432년에 안채에서 조금 떨어져 지은 별당이다. 꽤 오래된 집인 만큼 나중에 지어질 이 동네 집들의 전형이.. 2012. 4. 11. [함성호의 옛집 읽기]<50>‘가장 오래된 살림집’ 맹씨행단 아산 맹씨행단(牙山孟氏杏壇:사적 제109호) 충청남도 아산시 배방읍에 있는 조선전기 맹사성 관련 주택. 사적으로 정면 4칸, 측면 3칸의 ㄷ자형 평면집. 지정면적 7,851㎡. 청백리(淸白吏) 맹사성(孟思誠,:1360 ~ 1438) 집안의 고택(故宅)이다. 중앙 2칸에 커다란 대청(大廳)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각각 두었다. 기단은 막돌허튼층쌓기의 낮은 기단으로 네모뿔대의 초석(礎石)을 놓아 네모기둥[方柱]을 세웠다. 기둥 위에는 공포(栱包)를 짜 얹었는데, 주두(柱頭)는 굽면이 비스듬하고, 첨차(檐遮)의 끝은 비스듬히 끊기고 밑면은 연화두형(蓮花頭形)에 가깝게 초각(草刻)하였다. 살미[山彌]는 앙서[仰舌]로 되었는데 이들의 모양은 조선시대 초기의 공포를 닮았다. 이런 성격들은 특히 대청의 종도리를 떠받.. 2012. 4. 11. [함성호의 옛집 읽기]<49>‘세 번째 꽃송이’ 산수정 영천 매산고택 및 산수정(永川梅山古宅─山水亭:국가민속문화재 제24호)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있는 조선후기 정재영의 10대조인 정중기 관련 주택으로이 집은 정재영의 10대조 정중기(鄭重器)가 입향하면서 짓기 시작하여 그의 아들 정일감(鄭一鑑)이 완성시켰다고 전한다. 현재 건물은 사랑채인 산수정과 안채, 사당의 세 채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앞에 3칸의 솟을대문이 따로 세워져 있다. 대문채는 3칸으로 솟을대문의 서칸에는 헛간의 마판(馬板)이 있고 동칸에는 마부 등이 대기하던 방이 있다. 대문 앞쪽으로는 담장으로부터 꺾어드는 짧은 고샅이 구성되어 있어서 대문의 노출을 어느 정도 감추고 있다. 산수정은 사랑채로서 독립된 건물인데 정침의 동쪽 사랑방에 연하여 있다. 이러한 구조는 안동·봉화·영덕 지방에서도 볼.. 2012. 4. 9. [함성호의 옛집 읽기]<48>‘두 번째 꽃송이’ 산천정 매화와 난초, 국화와 대나무는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사랑하는 식물이었다. 그러나 현실적인 중국인들은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을 가장 좋아한다. 이상주의적인 조선의 지식인들은 유난히 매화를 사랑했다. 예쁘기도 하지만 매화는 만물이 겨울의 추위 속에서 죽음을 겪고 있을 때 가장 먼저 꽃망울을 터뜨려 봄을 알린다. 조선의 선비들은 이것을 불의에 꺾이지 않는 지식인의 표상으로 보았다. 특히 매화는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그 향기가 더 맑다고 한다. 그래서 풍수지리에서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의 의미는 멀리 떨어진 매화 향기가 사방에 퍼지듯이 세상을 교화하는 성인의 출현을 예고한다는 데 있다. 이육사가 ‘광야’에서 “지금 눈 내리고/ 매화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라고 노래한 것도 같은 맥락.. 2012. 4. 6. [함성호의 옛집 읽기]<47>‘한 송이 매화’ 매산고택 매산고택(梅山古宅:국가민속문화재 제24호)]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에 풍수지리학상 좋은 터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집은 '매산 정중기'(1685∼1757) 선생이 짓기 시작하여 둘째 아들 '정일찬'이 완성하였다고 한다. 대문채·안채·사랑채·사당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문을 들어서면 전형적인 'ㅁ'자 평면을 가진 안채가 있다. 사랑채 누마루는 사랑방과 직각을 이루면서 덧붙어 있다. 대문채는 3칸 규모로 양쪽으로 긴 담장이 있고 안채 가운데로 대청을 두었다. 대청 왼쪽으로는 큰방과 부엌을 두었는데, 이와 같은 형식은 영남지방의 구성을 따르고 있는 것이다. 사랑채의 독립된 건물인 산수정은 동쪽 사랑방과 이어져 있는데 지붕을 얹은 수법이 지붕 옆면을 건물의 앞면으로 사용하여 특이한 배치를 보이고 있다. 사.. 2012. 4. 5. [함성호의 옛집 읽기]<46>‘연못 위의 집’ 하엽정 하엽정(荷葉亭) 달성군 하빈면 묘동은 사육신 중 하나인 충정공 박팽년(1417∼1456) 후손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달성 삼가헌 고택은 박씨 집성촌과는 낮은 산을 경계로 하고 있다. 삼가헌은 박팽년의 11대 손인 성수聖洙가 1769년에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기의 호를 따라 한 것에서 시작한다. 그 뒤 그의 아들 광석光錫이 1783년 이웃 묘골에서 현재 위치로 분가한 다음 1826년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별당인 하엽정(荷葉亭)은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으로 1826년 집을 지을 당시 많은 흙을 파낸 자리에 박광석의 손자 규현이 1874년에 연못으로 꾸며 연을 심고 파산서당을 앞으로 옮겨 지으면서 하엽정이라 당호를 붙였다. 삼가헌三加軒이라는 이름은 중용에서 나왔다. 중용 제 9장에.. 2012. 4. 4. [함성호의 옛집 읽기]<45>‘매곡리의 매화향기’ 향양정 향양정(向陽亭) 향양정(向陽亭)은 매산 정중기의 증손자인 정귀휴(鄭龜休·1786∼1852)가 1844년 경북 영천군 임고면 매곡리에 지은 정자이다. 정귀휴의 호 역시 향양정이다. 옛사람들은 왕왕 집을 지은 뒤 집의 이름과 자신의 호를 같이 삼곤 했다. 매산고택이 1740년경, 산수정이 1748년에 완성되었으니 향양정은 매산종택이 완성된 지 약 100년 만에 지어진 집이다. 매산고택, 산천정, 산수정의 매화가 피고 드디어 마지막 매화가 완성됨으로써 매곡리 계곡에는 매화 향기가 진동하게 된 셈이다. 고대하던 성인이 태어났는지는 성인이 아니고서는 성인을 알아볼 수 없으니, 그것은 모르는 일이다. 향양정은 다시 산수정에서 계곡을 건너면 매화의 가지 끝 산자락에 있다. 지금은 단출한 세 칸 건물이 전부지만 기록에.. 2012. 4. 3. [함성호의 옛집읽기]<44>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삼가헌 삼가헌(三可軒) 삼가헌(대구시 달성군 하빈면 묘리)은 사육신 중 한 사람인 박팽년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살아온 고택으로, 대구의 대표적 고택(古宅) 중 하나다. 조선시대 세종과 문종 때의 집현전 학자로 임금의 총애를 한 몸에 받았고, 어린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수양대군에 맞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취금헌(醉琴軒) 박팽년(朴彭年:1417~1456·39세). 그가 반역죄로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 때 그의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 성주 이씨도 관비(官婢)가 되었는데, 당시 성주 이씨는 임신 중이었다. 법률에 따라 아들이 태어나면 죽임을 당하고, 딸이 태어나면 노비(奴婢)가 될 운명이었다. 해산(解産)을 하니 아들이었다. 그 무렵 딸을 낳은 여종이 있어서 아기를 바꾸어 키움으로써 그 아이는 목숨을 보전(保全.. 2012. 4. 2. [함성호의 옛집 읽기]<43>‘조선의 콘퍼런스홀’ 달전재사 달전재사(達田齋舍: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43호) 조선시대에는 제사도 참 많이 지냈다. 계절마다 좋은 날을 잡아서 드리는 시제, 동지에 성씨의 처음인 분에게 드리는 시조제, 입춘에 여러 윗대에게 지내는 선조제, 가을에 선친에게 드리는 미제, 그리고 기일에 지내는 제사, 절기마다 드리는 속절제까지…. 그야말로 조선의 사대부들은 제사를 지내다가 볼 일 못 봤을 것 같다. 이 모든 제사를 다 재사에서 올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문중의 제사는 재사에서 관리하고 지냈다. 자연히 제주인 종손과 제사의 여러 일을 처리하고 감독하는 유사(有司)들의 관계가 재사건축에 영향을 끼쳤음은 당연하다. 종손은 문중의 상징적인 존재다. 반면에 유사들은 매번 갈리지만 실질적으로 제사를 주관하는 실무자들이다. 재사건축에서 종손의 존재.. 2012. 3. 30. 이전 1 2 3 4 5 ···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