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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한국의 옛집

[함성호의 옛집 읽기]<46>‘연못 위의 집’ 하엽정

by 범여(梵如) 2012. 4. 4.

하엽정(荷葉亭)

달성군 하빈면 묘동은 사육신 중 하나인 충정공 박팽년(1417∼1456) 후손이 모여 사는 순천 박씨 집성촌이다.
달성 삼가헌 고택은 박씨 집성촌과는 낮은 산을 경계로 하고 있다.
삼가헌은 박팽년의 11대 손인 성수聖洙가 1769년에 이곳에 초가를 짓고 자기의 호를 따라
한 것에서 시작한다.
 
그 뒤 그의 아들 광석光錫이 1783년 이웃 묘골에서 현재 위치로 분가한 다음 1826년 초가를 헐고
안채와 사랑채를 지었다. 별당인 하엽정(荷葉亭)은 연꽃잎의 정자라는 뜻으로 1826년 집을 지을
당시 많은 흙을 파낸 자리에 박광석의 손자 규현이 1874년에 연못으로 꾸며 연을 심고 파산서당을
앞으로 옮겨 지으면서 하엽정이라 당호를 붙였다.

삼가헌三加軒이라는 이름은 중용에서 나왔다.
중용 제 9장에는 子曰 天下國家可均也, 爵祿可辭也, 白刃可蹈也, 中庸不可能也
(자왈 천하국가가균야, 작록가사야, 백도가답야, 중요불가능야) 라는 문구가 있다.
이 글은 "천하와 국가는 다스릴 수 있고, 관직과 녹봉도 사양할 수 있고, 날카로운 칼날 위를
밟을 수도 있지만 중용은 불가능하다."라는 뜻이다.
 
이는 천하를 다스림은 知이고, 작록을 거부하는 것은 仁이며. 칼날을 밟을 수 있다는 것은 勇에 해당한고 한다.
즉 선비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모두 갖추었다는 것이다.

하엽정은 원래 4칸 규모의 1자형 건물이었는데 앞에 누마루를 한 칸을 늘여 붙였다고 한다.
연못은 앞쪽으로 길게 뻗은 직사각형이고 가운데 원형 섬이 있고 섬까지는 외나무다리가 있어다.
이 별당은 원래 서당으로 쓰던 곳으로 앞에는 하엽정 이라는 당호와 함께 <파산서당巴山書堂>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안채는 전면 6칸 전퇴집으로 3평주 삼량집으로 2009년 4월 화재로 소실되어 다시 지었다.
전체적으로 볼때, 조선 중기에 건축된 지방 양반가의 특징을 잘 남긴 대표적인 주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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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도 나오듯이 향기는 멀수록 맑은 법이다.

한여름의 연못에는 연꽃이 그득하고 그 향기는 이 집의 곳곳에 스몄을 것이다.

그래서 하엽정의 방 이름은 영향(迎香)이다. 향기를 맞아들이는 방이다. 연꽃은 여름 내내 피는 꽃이다.

바다에 있는 어떤 섬들은 파고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고 운해에 의해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지만,

하엽정 연못의 수미산은 한여름 연꽃이 피면 사라졌다가 연꽃이 지면 나타난다. 그만큼 무성한

연꽃들이 여름 내내 피어 있다.

하엽정의 서쪽은 낮은 산으로 그 산 하나만 넘으면 유장한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박성수의 후손들은 아마도 이 물자리를 경계해 우백호를 좀 보강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1874년 파산서당의 서쪽 끝 칸에 누마루를 내어 달고 이름을 하엽정이라고 붙였다. 원래 방의 높이 보다

한 자 이상이 높게 계획되어 연못 쪽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비로소 백호가 보강되고 연못과 집이 하나가 되었다.

네모난 연못은 땅을 상징하고 동그란 섬은 천상계를 상징한다.

그 연못에 집이 비치니 이 집은 현실계에 있으면서도 천상에 존재하는 집이다.

아직 연꽃이 피지 않을 때는 붉은 배롱나무 꽃잎이, 가을의 문지방 너머에는 단풍나무

잎들이 이 천상의 집 수면을 떠다닌다.

함성호 시인·건축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