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양정(向陽亭)
향양정(向陽亭)은 매산 정중기의 증손자인 정귀휴(鄭龜休·1786∼1852)가 1844년 경북 영천군 임고면 매곡리에 지은 정자이다.
정귀휴의 호 역시 향양정이다. 옛사람들은 왕왕 집을 지은 뒤 집의 이름과 자신의 호를 같이 삼곤 했다.
매산고택이 1740년경, 산수정이 1748년에 완성되었으니 향양정은 매산종택이 완성된 지 약 100년 만에 지어진 집이다.
매산고택, 산천정, 산수정의 매화가 피고 드디어 마지막 매화가 완성됨으로써 매곡리 계곡에는 매화 향기가 진동하게 된 셈이다.
고대하던 성인이 태어났는지는 성인이 아니고서는 성인을 알아볼 수 없으니, 그것은 모르는 일이다.
향양정은 다시 산수정에서 계곡을 건너면 매화의 가지 끝 산자락에 있다. 지금은 단출한 세 칸 건물이 전부지만 기록에 의하면
정자 곁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거기에 연꽃도 심어 놓고 물고기도 길렀다고 한다. 그리고 주변에는 여러 가지 아름다운
나무들을 섞어서 심어 놓고 완상했다고 하지만, 지금은 상상하는 것으로 옛 정취를 그려 볼 수밖에 없다.
구조는 산천정과 쌍둥이 정자라 해도 될 만큼 비슷하다. 증조할아버지 매산 정중기와 할아버지 죽비 정일찬이 매산고택과
산수정을 짓고, 아버지 정하란을 거쳐 향양정 정귀휴에 이르러 비로소 매화낙지(梅花落地)형의 풍수가 100년 만에 완성된 것이다.
매곡리 계곡을 따라서 좌우로 두 채씩 완성된 영일 정씨의 건축물들은 우리에게 풍수가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풍수는 결코 땅의 힘을 빌려서 발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땅을 만들어가는 과정에 있다.
풍수가들은 매화낙지형의 명당을 말하지만 정작 이 땅에 터를 잡은 매산은 매단혈(梅丹穴)의 불리함을 이야기했다.
그러고 나서 그가 한 일은 불리해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불리함을 주역의 논리를 빌려 극복하는 것이었다.
그 극복의 방법으로 건축이 쓰인 것은 물론이다. 집은 땅에 기대고 땅의 허함은 집이 보완한다. 물리적으로는 좁은 땅에
집이 들어서면 그 땅이 더 좁아 보일 것 같지만 건축이 땅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사실은 더 넓어 보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바깥을 경영하는 조선집의 방법이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한국의 옛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함성호의 옛집 읽기]<47>‘한 송이 매화’ 매산고택 (0) | 2012.04.05 |
---|---|
[함성호의 옛집 읽기]<46>‘연못 위의 집’ 하엽정 (0) | 2012.04.04 |
[함성호의 옛집읽기]<44>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 삼가헌 (0) | 2012.04.02 |
[함성호의 옛집 읽기]<43>‘조선의 콘퍼런스홀’ 달전재사 (0) | 2012.03.30 |
[함성호의 옛집 읽기]<42>서원건축 적용한 ‘능동재사’ (0) | 2012.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