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전재사(達田齋舍: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43호)
이 모든 제사를 다 재사에서 올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문중의 제사는 재사에서 관리하고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제사도 참 많이 지냈다. 계절마다 좋은 날을 잡아서 드리는 시제, 동지에 성씨의 처음인 분에게 드리는
시조제, 입춘에 여러 윗대에게 지내는 선조제, 가을에 선친에게 드리는 미제, 그리고 기일에 지내는 제사,
절기마다 드리는 속절제까지…. 그야말로 조선의 사대부들은 제사를 지내다가 볼 일 못 봤을 것 같다.
이 모든 제사를 다 재사에서 올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문중의 제사는 재사에서 관리하고 지냈다.
자연히 제주인 종손과 제사의 여러 일을 처리하고 감독하는 유사(有司)들의 관계가 재사건축에 영향을 끼쳤음은 당연하다.
종손은 문중의 상징적인 존재다. 반면에 유사들은 매번 갈리지만 실질적으로 제사를 주관하는 실무자들이다.
재사건축에서 종손의 존재는 누마루로 표현된다.
실무자인 유사의 존재는 대청으로 표현된다. 누마루는 제사를 끝내고 제사에 참석한 사람들이 음복하고,
끼니를 대접하기도 하는 장소로 당연히 종손이 호스트가 된다. 대청은 유사들이 모여 제사에 필요한 음식이나 절차,
그리고 다음 제사를 담당할 유사를 선정하기도 하는 장소이다. 그래서 항상 재사건축은 대청과 누마루를 중심으로 짜인다.
재사마다 이 누마루(종손)와 대청(유사)의 비중이 조금씩 다르다.
형식상으로는 그대로지만 회의의 비중이 점점 커져 종손의 상징성을 압도하는 경우도 있다.
경북 포항에 있는 달전재사(達田齋舍)가 그런 경우다. 달전재사는 독락당과 향단의 건축가 회재 이언적을 모시고 있는 재사다.
말이 그렇지 달전재사 주변에는 여강 이씨의 묘가 즐비하다. 이 묘역에서 이루어지는 크고 작은 제사는 모두 달전재사에서
이루어졌다고 보면 된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달전재사는 문중의 회의 장소로 그 기능이 변화한 듯하다.
다른 재사들과 달리 누마루가 건물의 앞에 있지 않고 뒤에 있다는 점, 그리고 다른 재사에는 앞에 나있는 출입문이
여기서는 동쪽의 누마루와 날개채 사이에 있다는 점, 종손방이 누마루와 직접 연결되지 않고 분리되어 통나무
계단으로 오르게 되어 있는 것도 이 재사가 종손의 상징성보다는 유사들의 회의를 더 중요시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것을 증명하듯이 유사방에는 대청 말고도 작은 누마루가 덧붙어 있다.
문중의 회의를 위한 전용건물, 재사건축은 조선의 콘퍼런스홀이었다.
함성호 시인·건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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