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행일시: 2026년 01월 11일
☞ 산행날씨: 맑은날씨에 바닷가의 강한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 12.7km + 들머리 1.5km / 6시간 2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수원 백씨 창효문(감치재)- 밀양박공&진주소씨 묘- 무명봉-안부
무량산-통영지맥 분기점- 묵묘- 안부- 철마산- 안부- 260m봉- 임도
안부- 301.8m봉-서재봉분기봉- 임도- 안부- 안부- 무명봉-임도안부
104.8m봉- 임도- 무명봉- 안부- 무명봉- 성산이공 가족묘- 무량고개
무명봉- 안부- NO76송전탑-헬기장-관사- 스포츠타운테니스장
교동저수지- 고성군 씨름장- 함안이씨 성재공파선영- 교사교차로
고성애육원- 고성초등학교- 서외오거리- 호수탕- 고성군청
고성공룡전통시장- 성우원룸- 남산1동경로회관- 버스정류장- 통합기준점
돌탑- 문학동산- 안부- 호국참전유공자비- 남산정- 유인김해김씨 묘
무명봉- 33번 국도
☞ 소 재 지: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 상리면 / 대가면
맥산꾼들에게 악명(?)높은 남도지방 지맥길을 잡목들이 기지개를 켜기전에 끝내려고
무진 애를 쓰지만, 이제는 잡목이 아닌 날씨가 발목을 잡으니 방법이 없구나.
이번주에 삼포(신산경표상:옥룡)지맥을 준비하면서 날씨를 검색하니
이번 일요일에 나주지역은 하루종일 눈이 내린다고 하며, 전국적으로 눈이오고
강풍이 부는 지역이 많고, 거기다가 날씨마저 한파란다...추위에 지독히도 약한 범여...
이번주에 쉴까 생각을 하다가 경남의 남쪽지역의 통영지맥이 있는 고성지역의
일요일 날씨가 맑음에다, 아침 기온이 영하5도이고, 낮에는영상 8도까지 오른다는
예보를 보고 통영지맥을 준비도 없이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走馬看山 격으로
대충 보고는 베낭을 챙긴다.

통영지맥 전체 개념도
통영지맥(統營枝脈)이란
낙남정맥의 대곡산(大谷山.545m)에서 남쪽으로 분기해서 고성반도
끝자락으로 이어진 산줄기로 고성읍내를 관통하여 고성,통영 일대에서
가장 높은 벽방산(碧芳山.651m)을 넘어 통영시가지를 감싸안고 서쪽으로
돌아가 통영시 길목마을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0.1 km인 산줄기이다.
통영지맥의 주요 산에는 무량산(542.8m), 철마산(417m), 천왕산(서재봉:193m),
곡산(96.2m), 무등(145m), 벽방산(652m), 천개산(521m), 시루봉(370m),
도덕산(340m), 발암산(277m), 제석봉(281m), 망일봉(148.3m), 여항산(174m),
장골산(179m), 천암산(257.9m) 등이 있으며, 이 산줄기의 동쪽, 서쪽 및 남쪽에는
남해 바다가 있고, 이 산줄기의 북쪽에는 밤내, 용암천, 신룡천 등이 남해 바다로
흘러간다.
호미, 땅끝, 고흥, 여수, 화원지맥 처럼 반도의 끝으로 가는 능선이라
지맥의 이름도 지역명을 따서 통영지맥(統營枝脈) 이라 칭하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도 통영지맥이라는 똑같은
지맥을 사용한다
◆ 종주에 필요한 지도
1/25000 고성. 신룡, 통영.
1/50000 통영.
영진 5만 538. 539, 563.564.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남부터미널(15:50)
요즘 사무실의 업무가 한가하다...오전에 마감을 하고, 점심 식사를 한 후
잠깐 휴식을 취한 다음에 집에서 가까운 남부터미널로 향한다

서울남부발 → 고성행 버스표

서울에서 고성까지 4시간이 훨씬 더 걸린다고하니 멀기는 멀다.
오후 4시30분 차를 타고, 고성으로 향하는데, 버스가 무주를
지나면서부터 진눈깨비가 날리면서 버스가 속도를 급격하게 줄인다.
이 진눈깨비는 산청휴게소를 지나면서부터 그치고 버스는 정상적인
속도를 내면서 고성으로 향한다

고성터미널(20:45)
터미널에 도착하여 숙소를 찾으니 주변에는 보이지 않고 터미널 신호등을
건너 5분정도 걸으니 모텔들이 보인다...어느 모텔에 들어가니 이곳의
모텔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보이고 숙박비 4만원을 주고 들어가서
잠을 청하는데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다.
.
.
.
밤새 뜬 눈으로 보내다시피 하다가 06시 넘어서 모텔을 나와 김밥집에서
김밥 한줄로 아침을 해결한 후에 택시를 타고 산행 들머리인 감치재로 향한다.
택시기사에게 감치재를 가자고 하니 정확하게 모르고 있어서 선답자의 산행기에
기록된 주소를 주니, 감치재 윗쪽에 있는 수원 백씨 창효문(彰孝門) 입구에 내려준다
택시기사 덕분에 감치재에서 올라오는 시간을 단축한 셈이다

수원 백씨 창효문(彰孝門:06:50)
창효문은 효자, 효녀, 효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전통 사당 또는
비석을 의미하는데, 주로 마을이나 고을에서 효심을 실천한 인물의
업적을 기념하고, 후세에 효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수원 백씨 창효문에서 내려다본 감치재
아침 7시가 다 되어가는데 감치재는 아직도 잠에서 깨어날 생각도
없이 게으름을 피우고 있구나... 오늘 처음 가지고 온 똑닥이 카메라가
어둠속의 감치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차량의 불빛은 흩날리고
고성 앞 바다쪽은 일출을 준비하는지 벌겋게 물들고 있다.
경남 고성군 고성읍 이당리와 상리면 부포리의 경계에 있는 감치재(甘峙)는
33번 국도(도로명 주소:상정대로)가 지나가는 고개이다.
여지도서에서는 감치산(甘峙山)으로 기록되어 있어며 '관아의 서쪽 15리에 있고
의소묘(懿昭墓)에서 둔전을 설치했으며 무량산에서 뻗어 나온다' 고 했다.
대동지지에는 '감치는 서쪽 20리에 있고, 사천현(泗川縣)으로 통한다' 고 수록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 등에 읍치에서 사천으로 향하는 서쪽 길에
표시되어 있지만, 조선팔도 지도에는 읍치 서쪽에 대치산(大峙山)과 동쪽에
감치산으로 잘못 표시하고 있다.
감티라고도 부르면 통영과 진주에서 각각 70리되는 지점으로 이곳에서 옛날
사천과 진주및 지리산의 산적과 통영과 마산, 부산등의 산적들이 서로 만나
감투싸움을 한 고개라서 유래된 곳이라는 설도 전해지는 고개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7:00)
해가 뜨기 직전이라 그런지 손가락이 빠질 정도로 춥다.
서둘러 산행 준비를 하고 오랫만에 헤드렌턴을 켜고 산행을
시작하려는데 자꾸만 아랫쪽에 있는 감치재를 제대로 보지
못한것이 눈에 아른거린다...너무 감치재에 집착하지 말자.
언젠가 사천(신산경표상:와룡)지맥길에 이 길을 다시
지나갈껀데 뭐...묘지옆 계단을 오르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묘지 옆 시멘트 계단을 따라 오르다가 계단이 끝나면서 길을 막는
칡넝쿨과 아카시아같은 잡목들이 강한 태클을 걸어오고, 숲속은
아직까지 어둠이 가실 기마가 안보이니 똑닥이 카메라로는 기록이
어려울 것 같아서 포기를 하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오름길을 오른다

잡목의 강한 태클에 개고생을 하면서 우측으로 삐져 나오니 아랫쪽에서
올라오는 뚜렸한 임도가 있는데 차량이 올라올 수 있는지 넓은 공터에
샌드위치 판넬같은 건축 폐기물이 불법으로 버려져 있다...나쁘 시키들...
이곳을 지나면서부터는 오르막길이기는 하지만 등로는 좋은 편이다.
천천히 오르다보니 날이 완전히 밝아지지는 않지만 사물이 분별할
정도라 귀찮은 헤드렌턴을 벗어버리고 오르니 밀양손공 부부묘를 만난다

밀양박공&진주소씨 묘(07:35)

밀양박공 묘지를 지나면서 무량산으로 향하는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벌써 일출이 되었는지 나뭇가지 사이로 해가 솟아 오른다

빡센 오르막길로 향하는데 선답자들이 용기를 내라고
격려를 하건만 급경사만 만나면 심장이 터질것만 같은
통증이 시작되니 정말 미칠것만 같다

그래!...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제.
세상에 이루지 못할 것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심한 고통을 이겨내며
계속되는 오르막길로 향한다

뭔 짓거리여?

참으로 힘들게 급경사를 통과했다...암릉구간을 따라서
동쪽으로 향하는데 산 아래와는 달리 강한 바람이
범여의 몸뚱아리를 괴롭힌다...추위를 피하려고 잠깐
벗었던 바람막이 자켓을 다시 꺼내 입는다

해는 중천으로 떠올랐고, 남쪽으로는 고성앞 바다가 보이기 시작한다

급경사의 길은 끝났으나 이번에는 등로를 가로막고 있는
진달래를 비롯한 잡목들이 범여의 귀싸대기를 때리면서
이지매를 가하는데 이거 너무 텃세가 심한거 아녀...

무명봉(08:30)
얼마나 느릿느릿 걸었으면 밀양손공 묘지에서 이곳까지
500m 남짓한 거리를 55분이나 걸렸으니...
그만큼 오늘은 추운 날씨 탓인지 통증이 심했다는 얘기겠지.

안부(08:32)

잡목에 갇혀버린 묘지를 치고 오르니...

무량산 정상이 나오는데 참으로 감회가 새롭다.
2010년 6월 19~20일에 낙남정맥길을 걸으면서 이곳을 지나갔고,
다시 이곳에 오리라고는 생각이나 했겠나?...그 당시는 천하에 겁없이
맥길을 휘집고 다녔는데, 지금은 이빨빠진 호랑이가 되어 버렸으니
가는 세월을 우짜면 좋겠노...

수원백씨 묘소에서 이곳 무량산까지 1.5km의 거리를 1시간 37분이나
걸렸으니 너무나 느릿느릿하게 걸었던 셈이다... 오랫만에 겪은 어둠속
길에다가 추운 날씨,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힘들었던 모양이지만 그래도
정상에 도착해서 느꼈던 진한 喜悅은 그 어디에 비할 수 있으랴...
산악회를 따라왔으면 동료산꾼들에게 민폐라서 엄청나게 스트레스를
받았을 터이지만, 나홀로 걷는 독립군이야 누구 눈치볼 일 없으니
빠르면 어떻고, 느린들 어떠랴...

무량산(無量山:544.9m:08:37~39)
경남 고성군 고성읍과 대가면 상리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지리산 영신봉에서
김해 고암나루터까지 이어지는 낙남정맥길의 최남단에 위치한 산으로 낙남
정맥의 극남점이라 불리기도 하는 산으로 정상에는 준희쌤이 설치한 산패와
와룡지맥 분기점이란 표식, 4등삼각점과 삼각점 안내판, 앙증맞은 돌탑이 있다.
예전에는 대곡산(大谷山)으로 불리웠으나 대곡산이 무량산으로 바뀐 이유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무량산(無量山)을 대곡산으로, 천왕산을 무량산으로,
철마산을 천왕산으로 각각 바꿔 놓았던 것을 2015년 경남 고성군의 산명 정비
사업을 통해, 고문헌과 고지도, 지역 주민 증언 등을 바탕으로 원래의 지명을
복원하는 절차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한 조치로, 후손에게
올바른 지명을 물려주기 위한 취지로 지명 변경에 따른 혼란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고성에서 본래 무량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따로 있었는데 지금의 천왕산보다
조금 왼쪽에 자리잡은 산(해발 545m)으로, 지리산에서 발원한 낙남정맥이
이 산을 통해 고성으로 흘러드니 고성지역 산의 뿌리에 해당하여 자연스레
고성의 진산으로 자리매김 해왔다... 일제는 이곳에 큰 계곡이 있다는 이유를
붙여 대곡산(大谷山)으로 불러왔으나, 무량산이라는 제 이름을 찾은 것이다.
또 일제에 의해 이름 붙여졌던 고성의 천황산은 서재골로, 철마산은 철마봉으로
각각 바로잡혔다고 한다.
무량(無量)이란 佛家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화엄경 등에서 거대한 수를 나타내는
접두어로 쓰이며, ‘무량대수(無量大數)’는 10⁶⁸ 에 해당하는 수를 가리킨다.
이는 ‘불가사의’(10⁶⁴)의 만 배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 큰 수”라는 뜻으로
현대에도 수학·문화 해설에서 자주 인용되며, ‘무량’은 한계가 없음을 의미하며,
‘사무량심(四無量心)’의 네 가지 마음인 자(慈) ·비(悲) ·희(喜) ·사(捨)의 ‘무량한
(끝없는) 마음’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는 중생을 향한 무한한 자비·연민·기쁨·평정의
실천을 강조하는 기본 교리를 말한다

인증샷

준.희쌤은 이곳을 와룡지맥 분기점이라는 팻말을 붙혀놨지만
오룩스맵에서는 이곳을 통영지맥 분기점이라하니 좀 헷갈린다

무량산 정상 4등삼각점( △충무401 / 1986 재설)

감치재에서 올라온 사천(신산경표상:와룡)지맥과
작별하고 낙남정맥 능선에서 통영지맥 분기점으로 향한다.
무량산 정상에 잠깐 머무는 사이에 강한 바람이
산꾼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구나...추위를 피해서
서둘러 길을 나선다

무량산에서 낙남정맥길을 따라서 100여m정도
동쪽으로 내려오니 갈림길이 나오고...

통영지맥 분기점(08:40)
우측으로 준.희쌤이 걸어둔 통영지맥 분기점 산패가
나오고 본격적인 통영지맥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분기점에서 내려서자마자...

잡목들이 등로를 가로막고 텃세를 하는데 장난이 아니다.
모자와 베낭을 잡아 당기고, 나뭇가지들은 범여의 귀싸대기를
후려치는데, 얼마나 아픈지 마치 抑何心情으로 때리는 느낌이다

묵묘(08:43)

무량산에서 급하게 내려서니 잠시후에 오를 철마산(봉)이
햇빛을 받을 채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는구나...오늘 전국에
내린 눈과 한파주의보는 이곳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듯 하다

꽃은 피어도 소리가 없고
새는 울어도 눈물이 없고
사랑은 불타도 불꽃이 없다.
장미가 좋아 꺾었더니 가시가 있고
친구가 좋아 사귀었더니 이별이 있고
세상이 좋아 태어났더니 죽음이 있구나...
좋은 사람 찾지 말고
좋은 사람이 되어 주어라.
무엇인가를 바라지 말고 먼저 베풀어라.
길은 잃어도 사람은 잃지말라.

안부(08:55)

안부에서 철마산으로 오르는 능선은 암릉구간이긴 하지만
날씨가 춥지 않았던지 등로는 얼어있지 않아서 무난하게
정상으로 향한다

그리움 하나 있네 / 정유찬
늘 그리움 있네
하늘을 봐도
나무를 봐도
울컥 솟아오르는
그리움 하나 있네
그리움으로 시를 써
바람에 부치고
남은 그리움으로
그림을 그려
하늘에 그렸네
봄, 여름 지나
가을이 가고
겨울이 와도
언젠가 내게는
아름다운 느낌으로
그리움 하나
커지고 있다네

철마산(鐵馬山:416.9m:09:06)
경남 고성군 고성읍 무량리와 대가면 연지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은 암릉으로 되어 있으며 전망은 그야말로 一望無際이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일제가 지도를 만들면서 철마봉이라 바뀐 지명을
이 지역 향토연구가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본래 산 이름인 철마산으로
바뀌었고, 2014년 4월 4일 국토지리정보원은 지명 변경 고시를 발표했다고
했는데 정작 지도에는 아직도 철마봉으로 표기되어 있는 아이러니한 산이다
또다른 기록을 보면 왜놈들이 이곳이 천왕산이라 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철마산의 지명유래는 임진왜란 때 화살의 방패로 사용하기 위해 철마(鐵馬)
수십 마리를 만들어 성 안에 세워 두었으나, 왜적이 침입해 모두 가져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이후 주민들이 다시 석마(돌로 만든 말)를 만들어 방비에
사용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철마산 정상에 올라서니 16년도 넘은 시절에 걸었던
낙남정맥 마루금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그 시절의
추억들은 지금 기억조차도 없다...소나무 뒷쪽의 우뚝솟은
봉우리가 내가 낙남정맥을 걷던 시절에는 무량산이라 불리웠는데
지금은 천왕산(天王山:582.6m)이란 옛 이름을 되찾았다고 한다.
그 뒷쪽으로는 함안의 진산이라는 여항산(艅航山:770m)이 아련히
보이고, 또 그 뒷쪽에 있어야 할 내고향 의령의 진산인 자굴산(闍堀山:897m)은
코빼기도 안보이는구나...함안지방은 물이 거꾸로 흐르기 때문에 풍수지리상으로
‘불경스러운’ 땅이라고 불렀고,‘역수의 고장’이라고 하여 무척 홀대를 받았던
산이 여항산(艅航山)이라고 하며, 6.25 동란때 격전지였던 이곳은 당시
미군들이 많이 희생돼 미군들이 이 산을 보고 ‘갓뎀’이라는 욕설을 퍼부었다고
해서 갓데미산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는 산이기도 하다

철마산 정상은 온 사방이 막힌데가 없다보니 잠시 소강상태이던
바람이 강풍으로 변해버린 느낌이다...기온은 많이 올라갔지만
바람으로 인해 춥다는 생각이라 서둘러 길을 떠난다

암릉을 끼고 내리막길로 향한다

내리막길에서 뒤돌아 본 철마산 정상의 모습

행여 홀로걷는 산꾼이 길을 잃을까봐 勞心焦思하시는 모습
늘 고맙고 감사합니다...

윗쪽으로는 모자와 베낭을 물어뜯고, 옆에는 귀싸대기를 후려치는
잡목들...통영지맥길의 잡목들 텃세가 심해도 너무 심하다

이곳은 길동아우님의 나와바리 구역인가?
자주 만난다...잘살고 있겠지?...

안부(09:25)

분기점에서부터 시작됐던 잡목들의 태클은 이곳을
지나면서부터는 나에게 미안했던지 잠시나마 소강상태를 보인다

잡목의 저항이 언제 그랬냐 하면서 오리발을 내밀고,
가늘고 키큰 소나무들한테 격하게 환영을 받으면서
260m봉으로 올라간다

260m봉(09:32)

등로에서 바라본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의 모습
연지리(蓮芝里)는 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연동(蓮洞)과
지동(芝洞)·평동(坪洞)을 병합해 ‘연지리’로 명명된 데서 비롯
되었고, 본래 ‘연동’(蓮洞)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마을에 연못이나
연못지대에 연꽃을 많이 재배하던 곳이라는 데서 비롯되었고 ‘지동’(芝洞)은
넓고 평평한 들 가운데 위치한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능선을 따라서 걷는데 지도에도 없는 임도가 보이고,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09:32)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등로는 뚜렸하나 또다시 잡목들의 거친 저항은 시작되고,
수도없이 이런길을 만났기에 그러려니 하면서 무시하고
맥길을 이어 나간다

안부(09:36)
안부를 지나 오르막이 시작되고 우측으로 휘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직진의 오르막길로 이어지는
곳으로 치고 오르는데, 또다시 잡목의 저항은 시작된다

생각보다 빡센 오르막길...망개나무(청미래)가 극성을 부린다

고맙습니다

어젯밤에 잠을 설친 탓일까?...오르막길에 다리에 쥐가
나면서 통증이 오고, 바람마저 거세게 불어대니 미치겠구먼...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봉우리에 올라서니...

억새에 묻혀버린 묘지가 있는 301.8m봉 정상에 도착한다

301.8m봉(09:48)

301.8m봉 정상 4등삼각점(△충무404 / 1986 재설)

날씨는 쾌청하고 기온은 많이 올라갔으나 바닷가 근처라서
그런지 강한 바람이 불어대니 상당히 추운 느낌이다

맥길을 걸어면서 순간 순간 거쳐 지나가는 그리움들...
고독한 독립군이 걷는 맥길은 늘 그리움이 있는 법인가?
이 또한 즐거움으로 받아들이면서 맥길을 이어 나간다

이번에는 진달래가 빽빽한 등로를 헤쳐나가니
우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고성읍내가 한 눈에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고성읍내와 벽방산과 거류산(좌측 뾰족한 산)이 보인다

우측으로 살짝 시선을 돌리니 벽방산(좌) 고성앞바다가 보이고
바로앞에는 33번 국도가 지나는 고성읍 이당리 들녘이 보인다.
고성읍 이당리의 지명유래는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이동(梨東)과
당동(堂東)의 이름을 합쳐 ‘이당리(梨堂里)’로 명명된데서 비롯되었으며,
이동(梨東)은 배나무가 많았던 마을이라 불려진 지명이며, 당동(堂東)은
마을에 사당이 있었던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현재 이당리에는 면전(棉田:면화밭)과 이곡(梨谷:배나무골) 두 마을이 있는데,
면전은 넓은 밭이 많아 예로부터 면화 재배로 유명했고, 이곡은 배나무가 많은
마을이라고 한다

서재봉(193.1m) 분기점(10:02)
봉분이 잘 안보이는 묘지가 있는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면 서재봉이라
부르는 봉우리가 있는데 컨디션도 안좋고, 발걸음이 느린 범여로서는
서재봉을 갔다 온다는 것은 焉敢生心이라 아쉽지만 입맛만 다시고
맥길에 충실하고자 내리막길로 향한다.
고성군 고성읍 무량리와 대가면 연지리에 걸쳐있는 서재봉은 구지도에는
천왕산, 카카오 지도에는 서재봉으로 불리우며, 무량산으로 불리기도 하는
산이다...이곳은 일제시대에 왜놈들이 엿장수 맘대로 지명을 바꿔버려서
산행기을 쓰면서도 상당히 헷갈리는 곳이다.
호구총서의 지명에서는 서읍내(西邑內)의 동리중에 무량리(武良里)가 있고,
1872년 지방지도에는 무량지(武良池) 위에 무량산(武良山)을 표시하였으며
소가야 때, 군사를 양성하였던 곳이라고 하여 유래된 지명이라고 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서읍 무량동(武良洞)에 무양산(無恙山)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대가면에 있는 무량산과 별개의 산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산지가
남북방향으로 연결되어 있고, 지명이 같은 소리임을 감안하면 예전부터
하나의 산으로 인식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측으로 확 꺽여져 내려서니...

이 지역의 바람이 얼마나 드센지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누더기꼴이다

등로 직진으로는 거류산이 마치 여인의 젖꼭지처럼 봉긋하게 솟아있다

동남쪽의 이당리 들녘 너머로 갈모봉산(368.3m)과 당우산(205.9m)이 보인다

안부(10:05)

우측으로 내려가는 임도를 버리고...

숲으로 들어서니 편백나무 조림지가 보이는구나

소나무의 암이라는 재선충으로 인해 生을 마감한
소나무 무덤들이 많이 보이는 등로...잡목의 저항은
현저히 줄어든 느낌이다

안부(10:10)

우측으로는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를 다시 만나는데
지도상에 표기조차 안 되어있는 임도라 편하게
임도를 따를수가 없어서 계속해서 맥길의 트랙을 따라간다

안부(10:15)

무명봉(10:20)

무명봉에서 내려서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서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니 봉우리를 휘감고
나오는 임도가 저 아래서 보이기 시작한다

임도로 내려간다

임도안부(10:22)

등로 주위에는 고사리 사촌쯤 되는 관중이라는 식물이 푸르름을
자랑하면서 등로 곳곳에 보이는데, 저 넘을 보니 곧 봄이 올것만 같다

이이쿠야 이걸 어쩌나?...아마 얼마전에 산불이 난 모양이다.
산불을 진화하기 위해 소방헬기에서 뿌린 물들이 등로에
흥건하고, 화근내가 코끝을 자극한다...주위를 살펴보니
그나마 얼마타지 않고 산불이 잡했는지 피해면적이 아주 적다

104.8m봉(10:30)

동의보감(東醫寶鑑)의 저자 허준(許浚:1539~1615) 名醫는 말했지.
좋은 약을 먹는 것보다는 좋은 음식이 낫고,
음식을 먹는 것 보다는 걷기가 더 낫다고...
* 허준(許浚:1539~1615)은 조선시대 『동의보감』·『언해태산집요』·『언해구급방』
등을 저술한 의관, 의학자로 1539년(중종 34)에 태어나 1615년(광해군 7)에 사망했다.
1571년(선조 4) 내의원이 된 후 왕세자의 천연두를 치료하여 정3품의 품계를 받았으며
임진왜란 때 선조의 피난길에 동행하여 생사를 같이했고 왕세자의 난치병을 고쳐 종1품에
올랐고, 선조가 승하하자 책임을 지고 귀양을 갔으며 풀려난 후 평범한 내의로 지내다
삶을 마쳤고, 어의(御醫)로 재직하면서 내의원 의학서적 집필을 도맡았고, 유배생활 중에
역작 『동의보감』을 완성했다.

또 다시 임도가 보인다...오늘은 마루금과 지도상에도 없는 임도가
숨바꼭질을 하듯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데 지도상에서
표기만 되었으면 임도로 가련마는 지도에 표식이 안되어 있으니
맥길을 따라갈 수 밖에 없다

임도(10:32)
임도를 가로지르려는데 임도가에 승용차 한대가 보이고
아마도 산불감시요원인지 차안에서 내 행동을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느낌을 받으면서 다시 숲속으로 들어선다

무명봉(10:34)

무명봉에서 우측의 사면길로 내려서는 길에
묘지가 보이지만 그냥 편안한 길로 내려선다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는 무량리로 휘돌아 내려가고 있다.

안부(10:37)

좌측으로 편안한 사면길을 포기하고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는 직진의 능선을 치고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 살짝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우뚝솟은 봉우리가 보이고 지도상으로 확인해보니
서재봉인 듯 하다

무명봉(10:43)

등로가 잘 보이지 않는 곳을 치고 내려서니 새로 조성된 듯한 묘지가 보인다

성산이공 가족묘(10:48)

묘지 좌측으로는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가 보이고...

묘지 우측의 잡목을 헤치면 수로를 따라서 내려가는데
수로 아랫쪽은 민가가 보이고 동네의 개쉬키들이
떼창으로 짖어대기 시작한다

수로를 가로막고 있는 잡목들...도데체 틈새가 안보이는구나

도로가 보이기 시작하고...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도로로 내려선다

혼자놀기

무량고개(武良峴:10:55)
고성군 고성읍 무량리에서 대가면 연지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2차선 도로가 지나간다
고성군 고성읍 무량리(武良里)는 본래 고성군 서읍면의 지역으로, 무량산(武良山)
또는 무량산(無量山, 해발 581m, 철마산으로도 불림) 아래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무량’이라 불렸으며, 1914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철성면(현 고성읍)에 편입되어
‘무량리’로 확정되었다... 무량산(현재지명:서제봉)은 예로부터 기우제를 지내던 곳으로,
‘무량’은 ‘끝없이 많음’ 또는 ‘한없이 내림’을 뜻하는 이름으로도 부르며, 마을은 산세와
골짜기가 구불구불한 지형에 위치해 있으며, 다양한 성씨가 모여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원래 등로는 조금 윗쪽에서 시작되야 하나 무량고개를 내려서니
강하게 불던 바람도 많이 잦아들었고 날씨도 따뜻하여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텃밭 도로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바라본 전원주택들...
이곳에서 맥길을 걸어가는데 고민이 많다...정통을 고집하자니
군부대와 마찰이 있을 것 같고, 편안한 우회도로를 따르자니
너무나 맥길을 많이 벗어나는 것 같아서 나홀로 산행이라 그리
큰 저지를 받지않을 것 같은 예감도 들고, 최대한 조심을 하면서
걸어보기로 하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니...

군 시설물이 나오는데 바짝 신경이 쓰인다

원형 철조망을 지나고...

무명봉(11:15)

우측으로 내려서니 길은 좋고 바닥에 삐삐선(통신선)들이 많이 보인다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면 여유로운 길을 내려간다.
행여 군부대의 오해를 받을까봐 군부대의 경고판과
안내판은 아예 사진에 기록도 하지않고 간다

안부(11:18)

NO76송전탑(11:20)

속에 무슨 생각을 할까
짐작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말을 잘 하지 않아도
선한 눈웃음이 정이 가는 사람
문득 생각나 차 한잔 하자고 전화하면
밥 먹을 시간까지 스스럼없이 내어주는 사람
장미처럼 화려하진 않아도
풀꽃처럼 들꽃처럼 성품이 온유한 사람
그런 편안한 사람을 찾아서 오늘도 길을 걷는다

헬기장(11:22)

헬기장을 지나 철조망을 끼고 내리막길로 향한다

신경이 쓰이는 군부대 지역을 무사히
통과하여 첫번째 관사 마당을 지나간다

관사(11:26)

군부대를 완전히 빠져나와 도로를 걷는다.
트랙상 마루금은 군부대 중앙을 통과하여
우측의 능선으로 이어져 도로와 평행선을
이루면서 걸어간다

군부대를 완전히 벗어나니 고성군 체육시설물들이 보인다

스포츠타운테니스장(11:30)

계속되는 도로길

우측의 마루금에는 전원주택지와 카페들이 맥길을
점령하고 있어서 눈팅이로만 스캔하며 걸어간다

교동저수지(11:32)

카페 뒷쪽으로 이어지는 트랙상의 마루금...

고성은 따뜻한 지역이라서 그런지 스포츠 선수들의
전지훈련지로 최적인 모양이다...축구하는 꼬맹이들이
참으로 많이 보인다

고성군 씨름장(11:40)

씨름장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지고...

싸름장 건물을 끼고 서쪽으로 향한다

함안이씨 성재공파(惺齋公派) 선영(11:41)
함안이씨 성재공파 묘지에서 내려오는 등로를 만나서
마루금을 복귀하지만 이곳부터 남산공원까지는 고성
읍내를 통과하기에 장애물이 많아, 큰 의미가 없는 듯 하다
뒷쪽에 보이는 건물이 경남항공고등학교이다

도로 맞은편에는 고성중학교 건물도 보이고...

조각공원을 지나면서 교사교차로에 도착한다

교사교차로(11:43)
고성읍 교사리(校社里)의 지명유래는 ‘학교(學校:교육기관)와 사찰
(寺刹:불교 종교시설)이 함께 있던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이는 마을이 교육과 종교, 문화가 함께 발전한 곳임을 시사한다.
고성읍은 삼한시대 고자미동국, 소가야의 도읍지 등 오랜 역사를 가진 지역으로,
교사리 지명의 유래는 공식 기록과 구전, 지명 어원 등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해석된다

지금부터 본격적인 고성읍내 도로투어에 나선다

가던길을 뒤돌아 보니 고성중학교 너머로 아침에 올랐던
무량산이 범여에게 까칠하게 굴었던지 물끄러미 내려다
보면서 미안해 하는 모습이다

축산자재센터를 지나...

사거리가 나오고 앞에 보이는 고성문화원 너머로
거류산이 위압적으로 보이는 이곳에서 사거리를 건너...

CGV고성을 끼고 우측 골목으로 향한다

고성애육원(11:54)
도로를 따라서 걷는데 맥길이 트랙에서 조금씩 벗어나는지
오룩스맵을 안내하는 여인이 자꾸만 경고 멘트를 날린다.
고성애육원이란 건물을 끼고 우측 골목으로 향한다

고성애육원 정문을 통과한 다음에...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진다

고성초등학교(12:00)

고성초등학교를 벗어나니 서외오거리가 나온다

서외오거리(12:02)
고성군 고성읍에 있는 서외리(西外里)의 지명유래는 고성읍성(固城邑城)의
네 개 문 중 서쪽 문(西門) 바깥에 위치한 마을이라 하여 '서문밖', '서문외'라
불렸고, 이를 줄여 '서외(西外)'라 불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상평리, 송수동과 합쳐져 서외리가 되었으며, 이후 마을이
분동되어 오늘날에 이르렀으며, 기록상 마을의 형성시기는 1850년경부터 주민이
거주한 것으로 확인되며, 고성이씨, 밀양박씨, 달성배씨, 김해김씨 등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호수탕(12:05)
맥길은 전부 주택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골목길을 迷路처럼
헤매며 최대한 가까운 길을 따라보려고 애를 쓴다

CU편의점을 끼고 우측으로 향한다

다시 좌측으로 꺽어져서 가니 고성군청이 보인다

고성군청(12:10)
경남 남부 중앙에 있는 군. 옛 소가야가 자리잡았던 곳이며, 고성반도와
고성평야 및 부속도서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농어촌지역으로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지역으로 삼한시대에 변진12국 중의 고자미동국
또는 포상8국 중의 고자국으로 비정되고 있으며 삼국시대에는 6가야 중
소가야국이었으며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와의 6형제 중 막내인 말로(末露)가
세운 소가야의 옛 땅으로 757년(신라 경덕왕 16년)에 신라가 이곳을 차지한 뒤
고자군(또는 고자국)을 두었으며, 757년에는 고성군으로 고쳐 강주(진주)에 속했다.
고려에 들어 995년에 고주자사를 두었다가 1018년 현령으로 강등시켰으며
1266년 지주사로 승격되었으며, 공민왕 때 현령을 파견한 후 지속되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고성현은 현재의 통영시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지금의 고성군보다 넓은 영역을 관할했으며, 당시 남해안의 방어상 중요한
요지였음이 임진왜란을 통해서 입증되어, 1604년 거제현에 있던 삼도수군
통제영이 1617년 고성현으로 이관되었고, 1895년 지방제도 개혁으로
진주부 고성군이 되었으며, 1896년 13도제 실시로 경상남도에 소속되었다.

고성군청을 지나자마자 고성공룡전통시장이 나온다

고성공룡전통시장(12:11)

고성시장을 끼고 우측으로 향한다

시장 끄트머리에서 길은 막히고 좌측으로 향한다

성우원룸(12:17)

남산1동경로회관(12:18)

남산1동의 안내판

버스정류장(12:20)

남산공원 오르면서 뒤돌아 본 경남 고성읍내의 모습

고성 이덕노 처 밀양박씨 열녀비

직진으로 향하면 선인들의 행적비(行跡碑)가 가지런히 정비되어있고
84계단을 올라보면 한 눈에 들어오는 대한불교조계종 옥천사의 말사인
보광사를 만날 수 있고, 호국영령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충혼탑과
봉안각. 6.25 반공유적비 등이 세워져 있지만, 지맥길은 열녀비를 끼고
녹차밭이 조성되어 있는 좌측으로 올라가야 한다...불자로서 보광사를
참배하고 싶지만, 오늘은 지맥길이 주 목적이라 녹차밭쪽으로 향한다

녹차밭 사이로 조성된 나무계단을 따라서 느릿느릿 걷는다

녹차밭을 올라오니 펼쳐지는 고성남산 공원의 모습
생각보다 규모가 상당히 큰 편이다

아주 여유롭고 편하게 남산정으로 향하는 발걸음
겨울이라 그런지 산책객들은 보이지 않는다

통합기준점(統合基準點:68.8m:12:32)
국내 모든 측량의 기준이 되는 기준점들은 평면위치 기준점인 삼각점,
지적기준점 등과 높이의 기준이 되는 수준점이 이원화되어 관리되고
있어서 활용과 관리적인 측면에 있어서 GNSS 측량에 의한 디지털
정보화시대에 맞지 않는 면이 있었다.
또한 삼각점은 주요 산의 정상에 설치되어 있어서 접근이 어려워 관리는
물론 관측에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국가에서는 평면위치와 높이
기준점이 통합된 새로운 개념의 3차원 기준점을 2008년 8월부터 전 국토에
걸쳐 관리와 활용이 편리한 평지에 설치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나라 통합기준점 1번은 수원시청 정문광장에 설치하였다.
통합기준점은 3차원 위치의 기준점 역할은 물론 중력기준점, 지자기기준점,
도시기준점, 지적기준점 등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는 다기능의 국가측량기준점이다.
또한 항공사진측량을 실시할 경우 기준점에 대공표지를 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해소할 수 있는 모양과 크기로 제작하여 보다 활용성을 높였으며, 일부 고해상도
위성영상에서도 기준점으로도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통합기준점은 전국을 10km 간격의 격자를 구성하여 그 격자점 주변에 위치한
관공서, 학교 등에 설치하였으며, 기준점에는 무선주파수인식칩(RFID)를
내장하여 유비쿼터스 시대에 맞는 다양한 위치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
국가에서는 앞으로 더 많은 통합기점을 설치하여 활용성을 높일 계획이다.

남산공원에서 처음으로 사람을 만난다
여유롭게 걸어가는 여인의 뒤를 따른다.
얼마만에 느껴보는 여유로움인가...

돌탑(12:33)

문학동산(12:40)

안부(12:41)

누군가가 말했지...
당신이 모퉁이를 도는 순간, 새로운 길이나
비밀의 문이 당신을 기다릴 수 있다는 것을...

호국참전유공자비(12:43)
가는 길을 멈추고 예를 올린다...저 분들의 희생이 없었으면
과연 이 나라가 존재했을까...요즘에 저 분들의 희생을 폄혜하고
북조선을 추종하는 인간들이 지천에 깔렸으니...너무 죄송합니다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걷다보니 남산 정상에 오른다

남산(南山:108.0m:12:52~55)
경남 고성군 고성읍 수남리와 동외리, 신월리에 걸쳐있는 공원으로 고성읍
주변과 남해 바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공원으로 최정상에는 남산정
이라는 2층 팔각정이 산꾼을 반기고 남쪽으로는 고성앞 바다와 벽방산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고성읍내와 무량산, 천왕산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남산공원은 전문 육상선수들의 동계훈련장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곳이며, 정상에는
고성만 해안과 고성읍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팔각정이 세워져 있어 읍민들의 건강
증진과 휴식은 물론,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머무르고 싶게 하는 포근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남산정에서 바라본 남산공원의 모습
남산정에 오르니 아침에 지나온 무량산(옛지명:대곡산)과 철마산,
낙남정맥 산줄기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환상적이다

겨울바다에서 / 정연복
고요한
겨울바다 앞에
서 있으면
알게 되리.
저 멀리
수평선에서
바다와 하늘이
하나 되듯.
넘실대며 오는
물결도
흰 거품 되어
돌아가듯.
삶과 죽음
있음과 없음도
본디 둘이 아니라
하나인 것을.

동남쪽으로는 통영지맥 능선에 있는 통영의 진산이라
불리는 벽방산이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느낌이다.
지둘러라...시간이 되면 도착할끼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한번 북쪽을 바라다 본다
무량산에서 동쪽으로 향하는 천왕산도 범여를 반긴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왜놈들이 옛지명을 무시하고 엿장수 맘대로
바꿔놓은 산이름을 근세에 다시 산이름을 바꾸는 바람에 상당히
헷갈리는구나

남산공원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길을 나선다

남산공원에서 신월리로 내려서는 길에는 무연고 묘지가
많이 보이는데 추측건데 예전에 공동묘지였는가 보다

내리막길에서 계속해서 만나는 무연고 묘지들...
조선초기에 사육신의 한명이었던 성삼문은 죽음을 이렇게
詩로 승화시켰지...
돌아오니 서산에 해지려는데 북소리 둥둥 내 목숨 재촉하네.
황천가는 길엔 술집도 없다는데 오늘밤은 뉘 집에서 쉬어서 가리

유인김해김씨 묘(13:00)

빛바랜 선답자의 흔적을 만난다...제대로 가고 있다는 얘기다

무명묘지를 지나고 완만한 안부를 지나 오르막으로 향한다

연일정공 묘지를 지나 무명봉으로 향한다

무명봉(13:15)

33번 국도(도로명 주소:상정대로)를 보면서 水路를 따라서 내려간다

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다

33번 국도(13:25)
시간적으로는 벽방산을 충분히 넘을 수 있을것만 같은데
갑자기 산행을 멈추고 싶다...바람도 강하게 불고, 어젯밤에
잠을 설쳤더니만, 피곤하기도 하다...그래 하기 싫은 일
억지로하면 탈이 나는 법이제...나홀로 산행이 그래서 좋다.
다음에 한번 더오면 되지 뭔 꺽정이람...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도로 아래 마을로 내려가려는데
통영쪽에서 빈 택시가 오는게 아닌가...얼른 손을드니 태워준다
덕분에 편하게 고성터미널에 도착한다(택시요금(8.000원)

33번 국도에서 바라본 거류산의 모숩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거산리, 거류리, 당동리에 걸쳐있는 거류산(572m)은
거류면 중앙에 종상형으로 솟아 서쪽은 고성 평야, 북쪽은 당항만, 동쪽은
구절령(565m)과 당동만을 끼고 있으며 남으로는 통영시와 경계를 이루고
산 정상부에서 서쪽 경사면을 성내로 하여 돌로 쌓은 산성인 거류산성이 있다.
거류산성은 소가야 때 세운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성곽의 형태와 출토된 유물들을
살펴보면 신라말 또는 고려초 성곽인 것으로 보이며, 현재 유적지로서 일부 복원되었다.
『여지도서』에는 '유민산(流民山)은 관아의 동쪽 15리에 있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옛날 산이 움직이는 것을 본 어느 아낙이 놀라서 소리치자 그 자리에 멈췄다는 전설이
전하며, 걸어가던 산이라고 해서 '걸어 산', '거리산(巨吏山)'이라 부른 것에서 지명이
유래되었다고도 하며, ‘유민산’, ‘거류산’, ‘걸어산’, ‘거리산’, ‘태조산’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워지는 산이다

고성버스 터미널(13:40)

고성발 → 진주행 버스표
터미널에 도착하여 서울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려니 14:30, 15:50 버스표는
매진이 되어 버렸고, 18시 30분 막차표만 있다고 한다...그리고 이곳 고성에서
진주가는 버스는 20분마다 있고, 진주까지 시간은 40분 남짓 걸린다고 한다.
일단 진주만 가면 서울가는 버스는 많겠지하고 진주가는 버스표를 예매한 후에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버스를 기다린다

고성버스 터미널 시간표

고성에서 출발한 진주가는 버스는 고속도로 달리는 시간은 20분
정도밖에 안되나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터미널까지 향하는 시내구간의
시간이 20분정도 걸리는 듯 하다

진주시외버스 터미널(15:10)

진주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서울행 버스시간표

진주발 → 서울남부행 버스표

15시 30분에 서울가는 버스에 오른다...시간이 맞지않아 통크게 프리미엄
버스를 타고 가는 바람에 지갑이 좀 가벼운 느낌이나 그 대신에 아주
편하게 서울까지 왔으니 크게 손해보는 장사는 아닌 듯 싶다...좀 이른
시간에 서울에 도착하니 강풍에다 날씨는 춥고 서둘러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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