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행일시: 2026년 07월 05일
☞ 산행날씨: 습하고 흐린 날씨...산행도중에 내린 비로 물폭탄 맞음
오후에 맑은 날씨에 비온 이후라 地熱로 숨쉬기조차 힘듬
☞ 산행거리: 도상거리 13.2km / 7시간 42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하우고개- 70번 도로- 옥현 삼거리- 양평수목원 입구- 빌고개- 안부- 무명봉
안부- 갈림길- 무명봉- 안부- 칠보산 갈림길- 안부- 337.1m봉(더높은봉)
안부- 고길고개- 능선- 322m봉- 안부- 암봉- 안부- 357.7m봉- 331m봉
갈림길- 공터봉- 갈림길- 임도- 무명봉- 화전고개- 임도- 무명봉- 쉼터- 안부
무명봉- 무명봉- 주읍고개- 쉼터- 쉼터- 내리 갈림길- 추읍산- 헬기장
원덕역 갈림길- 무명봉- 쉼터- 쉼터봉- 책읽는 숲- 진달래동산 갈림길
315m봉- 묘지- 산림욕장 임도- 벙커봉- 안부- 무명봉- 안부- 243.7m봉
안부- 부대 철조망- 무명봉- 갈림길- 장고개
☞ 소 재 지: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 용문면 / 개군면
지난 6월에는 이런저런 사유로 脈산행을 거의하지 못했고,마지막주에는 조그만
공사를 마무리하고 하고나니 체력 저하로 산행할 엄두가 나지않아 그냥 쉬려고
생각하고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에 일어나니 마땅히 갈데가 없다.
창밖을 보니 하늘이 잔뜩 지푸리고 있으나 느낌상 하루종일 비가올 것 같지않다.
내가 걸어야 남은 지맥길은 전부 남도지역이나 경상북도 동해안 지역이라
당일 산행이 거의 힘든 뭔 거리라 포기하고 내가 지맥길의 大尾를 장식하기
위해 아껴둔 흑천(신산경표상:주읍)지맥을 짧게 걸을까 생각하고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서 지하철 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용문역(09:10)
지하철을 2번 갈아타고 용문역에 도착하니 9시가 조금 지났다.
할배라서 공짜로 이곳까지 왔는데 우리야 편해서 좋지만,
이 공짜가 미래세대에 짐이라 생각하니 맘이 편치않다.

용문시장(09:10~30)
오늘이 용문장날이란다...역앞 도로에 난전이 펼쳐져 있다.
아침을 먹지않고 왔는데 잘됐구나...이곳에서 김밥한줄과
가락국수로 아침을 해결하고 오늘 산행 들머리인 하우고개로 향한다.

하우고개(125m:09:45)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옥현리와 지평리를 잇는 하우고개는
지평역과 곡수리를 잇는 2차선의 70번 도로가 지나가 이곳은
엄청난 규모의 군부대가 있어서 정상적인 지맥길을 걸을수가
없고, 이곳이 하우고개이지만 맥꾼들은 저 아랫쪽의 옥현리쪽을
하우고개라 부른다...하우고개란 지명은 어느 자료에도 검색되지
않으나 카카오 지도 등에는 표기되어 있으며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일부 맥산꾼들의 산행기에는 구슬고개로 표기가 되어있다.
구슬고개는 등로 좌측 아래에 있는 마을이 지평면 옥현리인데
구슬 ‘옥(玉)’ , 고개 ‘현(峴)’으로 옥현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란
뜻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9:52)
지난 2월말경에 왔으니 4개월만에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다시 온 셈이다.
택시에서 내리자 하늘은 잔뜩 지푸려 있고, 최근에 자주 내린 비로인해
高溫多濕한 날씨에다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地熱로 인해 산행 시작도
전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가는데까지 가봐야지
우짜겠노

70번 도로를 가로질러 농로로 들어서는데 하우고개란 표식이 보인다
양평문화원의 자료에서 하우고개를 검색해 보니
하우개고개는 광양(고양이)에서 지평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이곳에 지평관아가
있을 때 세운 하마비가 있었다고 하며, 하오고개 밑의 마을을 일명 ‘간현’ 이라고도 함.
* 하마비(下馬碑)란?
말에서 내려 걸어감으로써 예의를 표시하라는 문구를 새겨서 궐문(闕門) · 능묘(陵廟) ·
문묘(文廟) · 서원(書院) 등의 입구에 세우는 비석을 말한다

농로를 들어서자마자...

칡넝쿨에 포로(?)가 된 휀스가 갈 길을 막는다.
‘사유지라 출입을 금지한다’ 는 팻말도 붙어있다.
이 길도 군부대로 인해 지맥길에서 한참 벗어나 있는데
또 돌아야 하니, 이렇게 되면 지맥길에 대한 의미가 없다.

넋을 잃고 뒤돌아 보니 지난 구간에 가슴 조이며 통과했던
군부대 건물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 고개를 내민 배미산이
범여를 보면서 하는 말...지맥이 뭐길래, 개고생 하요...

좌측으로 내려서니 배밭이 나오고 배밭을 빠져나오니
양평군 지평면 옥현리의 마을이 흐릿하게 보인다.

지평면 옥현리(玉峴里)의 모습
양평군 지평면에 속해있는 옥현리는 일제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서 옥구리, 송현리 등 6개 마을 합쳐서 옥현리가 되어
지평면에 통합되었으며 고려시대에는 철장이 있었다고 한다.
자연마을로는 가루메(갈음), 고양이(광양), 구석땀, 부일, 사일(사실),
삼상개, 옥구촌, 주령골(주령곡)이 있으며, 가루메는 고양이 남서쪽에
있는 마을로 갈쿠리 또는 메마른 곳 등으로 풀이하기도 하며, 한자어로는
마을 주변에서 칡넝쿨을 볼 수 있다는 의미라고 한다.
고양이는 ‘높은산에 해가 떠올라서 비친다’ 고 해서 붙혀진 지명인데 音이
변해 ‘고양이 또는 괭이로 변해 고양이’ 가 된 듯하고, 구석땀은 고양이 남쪽에
있는 마을로 구석진 마을이라고 한다...부일마을은 ‘해가 일찍 든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며, 사일은 ‘해가 일찍 진다’ 고 해서 부르는 지명이며, 삼상개는
세갈래 도랑물이 합쳐지는 곳에 있는 마을이며, 옥구촌은 옥돌같은 석회석이
생산됐던 마을이며, 주령골은 마을이 골짜기를 따라 주렁주렁한 모양으로
형성된 곳이라고 한다

배밭을 빠져나와 우측으로 향하니 조금전에 만났던 휀스가
또 다시 길을 막고 내 키보다 더 큰 잡초가 태클을 걸어대니
미칠것만 같다.

도저히 빠져나갈 길이 보이지 않아 다시 배밭으로 들어왔는데도
이곳 역시 철옹성처럼 휀스가 처져있어 문앞까지 와서 겨우 빠져 나온다.
저 뒷쪽에 보이는 능선이 족보있는 281.0m봉의 지맥길이다.

서남쪽 나뭇가지 뒷쪽으로는 지맥길에서 벗어나 있는
칠보산이 습기를 가득 머금은 채 흐릿하게 보인다

70번 도로(10:13)
20분 이상 다람쥐 쳇바퀴 돌듯 휀스 주변을 맴돌다 도로로 내려서니
북쪽으로 100m도 안되는 거리에 조금전 산행을 시작한
하우고개가 나오는데 갑자기 다리에 힘이 쭉 빠진다

70번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우측으로 농로가 보이기에...

길이 있는가 싶어서 농로를 따라서 들어가 본다

논을 지나니 이곳도 칡넝쿨에 점령당한 휀스가 길을 막는다

70번 도로를 되돌아 가기는 싫어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밭이 나오고 밭너머로 칠보산과 산 아래에 있는 가나안농군학교가 보인다

밭을 지나니 시멘트 농로가 나오고...

다시 70번 도로(10:25)
하우고개에서 처음부터 도로를 따랐으면 5분도 안 걸릴 거리를
걷지도 못할 지맥길을 고집하다가 30여분이란 시간을 허비하고
나니 맥이 풀리고 높은 습도에 막힐 지경이다

옥현 삼거리(10:28)
옥현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이정표의 대평리 방향으로 향하는데
저 멀리 칠보산이 범여가 안쓰러운 듯 물끄러미 내려다 본다
칠보산(七寶山:318m)은 양평군 지평면 옥현리에 소재한 산으로
일제강점기에 마을 주민들이 ‘철광석을 캐는 광산이 있다’ 는 뜻으로
칠보산이라고 불렀으며 산 아래는 가나안 농군학교, 양평수목원,
수곡 낚시터를 품고있는 산이다.

양평수목원 입구(10:38)

양평군 지평면 옥현리에 속해있는 부일마을은
‘해가 일찍 든다고’ 해서 붙혀진 마을 이름이라고 한다.

빌고개(10:55)
빌고개는 경기 양평군 지평면 옥현리와 용문면 화전리를 잇는
2차선 도로(부일길) 고개로 북쪽에 있는 동촌마을에는 전원주택들이
많이 보이고 고개 정상에는 전원주택지를 조성하다가 중단된 듯한
넓은 공터가 을씨년스럽게 보인다.
지도상에는 빌고개로 표기가 되어있지만 일부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동촌고개라 불리는데 화전리 동촌말 위에 있는 고개라는 뜻이며,
동촌말은 궁말 동쪽에 있는 마을로 은여우 사육목장이 있어서
여우고개하고도 불린다고 하며 숙안공주(淑安公主:1636~1698)의
묘지가 있다.
조선의 17대 국왕인 효종과 인선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둘째 딸로 현종의
누나이자 숙종의 고모로 효종과 인선왕후의 총애를 받았다...하지만 효종의 딸,
현종의 누나, 숙종의 고모라는 후광을 앞세워 횡포를 부리고, 백성들의 땅과
세금을 갈취하여 3대에 걸친 왕의 노골적인 비호에도 불구하고 탄핵과
소송이 끊이지 않았다.
또한 서인(西人)의 당색을 드러내며 정사에 간여했는데, 조카인 숙종에게
자의대왕대비(장렬왕후)의 조카인 조사석이 임명된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였고,
남인인 희빈장씨와 숭선군의 아들 동평군 등과도 반목하였다.
숙안공주와 숙명공주의 언동은 숙종의 분노를 자아냈고, 숙종은 기사환국(己巳換局) 때
숙안공주의 아들 홍치상을 처형하였으며, 이후 숙안공주는 아들을 잃은 원한을
갚기 위해 서인에게 자금을 대어주고 환국과 인현왕후의 복위를 도모하려고
시도하기도 하였다.
* 기사환국(己巳換局)이란?
1689년(숙종 15) 후궁 소의 장씨(昭儀張氏) 소생을 원자(元子)로 정호(定號)하는
문제를 계기로 서인이 축출되고 남인이 장악한 사건을 말한다

전원주택을 짓다가 부도가 났는지 분양사무소는 廢家처럼 보인다.

좌측의 절개지로 올라가니...

등로가 뚜렸하고 선답자의 흔적이 반겨주나, 습한 날씨에다
옷이 땀범벅이 돼서 그런지, 산모기를 비롯한 벌레들이
물어되는 통에 몸뚱아리는 가려워서 미치겠고, 조금전에
배밭 근처를 지나오며 할킨 자국은 쓰리고 아프다.
산다는게 苦라는걸 산이란 스승에게 배운다.

안부(11:02)

삶에서 남기지 말아야할 것과 남길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훌륭한 화가는 언제 붓을 거둘줄 알고, 훌륭한 지휘자는 어떻게
연주를 마감해야 하는 줄 알듯이 지맥길의 끝이 조금씩 보이는데
자꾸만 체력이 떨어지니 어떻게하면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야하나?...

무명봉(11:08)

안부(11:12)

칠보산으로 향하는 완만한 오르막길...
일기예보에는 흐림이라고 하던데 비가 오려는지
하늘은 갑자기 먹구름으로 뒤덮히는구나.
하기사 내가 언제 기상청의 예보를 신뢰한 적이
있었던가...지금의 심정은 시원한 비를 흠뻑 맞았으면
하는 기분이다.

암릉으로 올라서니 좌측으로 향하는 등로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갈림길(11:17)

빗방울이 한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무명봉(11:20)

안부(11:22)

칠보산 갈림길(11:25)
좌측으로 한참 떨어진 곳에 있는 칠보산은 패스하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칠보산 방향으로 가면 칠보산 아래 수곡낚시터 옆에 셋째 형님이
하고 계시는 양계장으로도 갈 수 있겠다...바쁘다는 이유로
뵌 지가 오래됐는데 늘 미안한 마음이다.

비가 쏟아지기 시작한다...그래 실컷 한번 맞아보자...

안부(11:30)

337.1m봉(더높은봉:11:42)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고 비를 맞으면서 올라서니 더높은봉이라는
코팅지가 붙어있는 337.1m봉에 도착하는데 어디보다 높다는 건지?
이 주변에 족보있는 봉우리라곤 맥길에서 벗어나 있는 칠보산(318m)
밖에 없는데...

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지고...

안부(11:47)

비는 폭우로 변하고 그래 오랫만에 제대로 한번 맞아보자
세상사는 거 별거 아닌데 말이다...시간이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똑같이 부여되는 것 아니던가.
느끼기에 따라 길고 짧은 차이가 있을지라도
즐거운 시간은 천년도 짧을 것이며, 괴로운 시간은
하루도 천년같이 느껴지는데 걱정하며 산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닐텐데...중생들은 왜이리 아둥바둥거리며 사는지?

거세게 쏟아붓던 비가 언제 그랬냐는 듯 그치고 짙은
안개가 몰려오는데, 지나가는 비였나 보다...칡넝쿨을
헤치고 내려서니...

묵은 도로를 따라서 고길고개로 내려간다.

고길고개(215m:12:05~15)
양평군 용문면 화전리와 지평면 수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
도로(도로명 주소:수곡안말길)가 지나가며 도로 남쪽인 화전리쪽으로는
전원주택들이 보이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고길고개에 내래려서니 비는 완전히 그쳤고, 구름 사이로 이글거리는
태양이 얼굴을 내민는데, 읍산으로 향하는 길이 그리 만만하지는 않겠다.
도로옆 그늘에서 이온음료와 초코파이 하나로 원기를 보충하며 잠깐 휴식을
취한후에 다시 길을 떠난다

도로를 가로질러...

농로로 올라서니 반바지님께서 붙혀둔 고길고개 표시가 보이고...

농로를 따라서 올라가니...

트럭과 가건물이 보이고 농장 쥔장인듯한 분이 이곳에는 등산로가
없다고 가지 말라고하는데 사정을 얘기하고 잠깐만 지나가자고 하니
강하게 제지하지는 않는다

농장에 오르면서 뒤돌아본 양평군 용문면 화전리의 모습
용문면에 속해있는 화전리(花田里)는 ‘꽃밭’이라는 의미로, 조선시대에
덕산군 외야면 지역에 꽃밭이 있었기에 화전이라 부르며 지명이 생겼다고 한다.

농장을 벗어나자마자 등로는 사라지고 눈 앞이 캄캄하다

잡목속에 갇혀버려 오도가도 못하고 완전히 포로가 된 느낌이다

이곳에서 한참을 버벅거린 다음에야 잡목지대를 빠져나오니
추읍산으로 향하는 뚜렸한 능선이 보이기 시작한다

능선(12:35)

능선에 올라서도 잡목의 태클이 시작되지만 조금전의
학습효과 때문에 이 정도는 식은죽 먹듯이 지나간다.

322m봉(12:45)

무명봉인 322m봉을 지나면서 등로는 뚜렸해진다

안부(13:02)

장부라도 청년기는 그리워지는 초년이나,
군자라도 노년기는 서러워지는 만년이다.
청춘 경험이 있는 노인은 청춘을 잘 알지만,
노년 경험이 없는 청년은 노년을 잘 모른다.
누구나 청년기는 반복하고 싶은 세월이나,
누구나 노년기는 거부하고 싶은 세월이다.
찬란하다 한들 젊음을 지켜낼 장사는 없고,
초라하다 한들 늙음을 막아낼 장사는 없다.
늙는다 해도 추한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되며,
늙는다 해도 험한 인생을 살아서는 안 된다.

암봉(13:04)

추읍산으로 향하는 길이라서 그런지 등로는 좋으나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된 몸뚱아리를 물어대는 산모기로
인해 가려워서 미칠것만 같다.

안부(13:08)

등로사이로 얼굴을 내미는 양평군 지평면 수곡리의 모습
양평군 지평면 수곡리(水谷里)는 예부터 ‘물골(수곡)’로 불리며, 물이 풍부한 지역이라는
의미에서 수곡(水谷)이라는 이름이 붙혀졌고 행정구역 개편 시에는 어은리, 칠성리, 신대리,
통로리, 사창리, 오포리, 오종리와 여주군 대신면 전후곡리 일부를 합쳐 수곡리로 되었으며
지평군의 옛 이름을 따서 지제면이 되었고, 2006년 12월 지제면이 지평면으로 개칭되며
지평면 수곡리로 바뀌었다.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서니 예전에 농장인 듯 가림막이
나오고 곧바로 족보있는 357.7m봉에 도착한다

357.7m봉(13:20)

맥길은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331m봉(13:21)

갈림길(13:22)

맥길은 2시방향으로 이어지고...

공터봉(13:25)
넓은 공터에 약초꾼들의 움막인 듯한 낡은 텐트가 보이고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갈림길(13:27)

산수유꽃마을 표지판이 나오니 제도권 등로가 나올 모양이다

임도(13:30)

임도를 만나서 편안한 길을 가는데 등로 우측이 맥길이다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3:32)

아무 소득도 없이 헛짓거리만 임도로 내려선다

여름단상 / 이해인
아무리 더워도 덥다고
불평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차라리 땀을 많이 흘리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일하고 사랑하고 인내하고 용서하며
해 아래 피어나는 삶의 기쁨 속에
여름을 더욱 사랑하며
내가 여름이 되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며
여름을 시작하는 삶의 기쁨

오늘은 오직 한번 뿐이요.
다시는 오지 않으리니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 아닌가?
이 몸이 늙고 병들어 떠나기 전에
오늘을 보람있게 살고싶어 걷고 또 걷는다

편안한 길을 따라서 아무런 생각없이 걷다보니
평평한 고개가 나오는데 지도상 화전고개이다

화전고개(295m:13:37)
양평군 용문면 화전리 등골마을에서 지평면 수곡리 절골로
이어지는 고개로 지명은 화전리에서 따온 듯 하다

추읍산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산수유꽃마을 안내판도 보이고...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의 흔적을 따라서 올라가니
화전리에서 올라오는 제도권 등로를 만난다

임도(13:54)

무명봉(13:58)

오랫만에 호젓한 길을 걷는다...소나기가 지나간 이후라 그런지
산길이지만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도로 인해 숨이 막힐 지경이지만
그래도 아껴둔 맥길이라 이 더운날에 걷는것에 그저 감사할 뿐이다.

쉼터(14:00)

눈앞에는 까칠한 모습으로 곧추선 추읍산이 범여를 내려다보고
있지만 등로는 좌측으로 빙빙 돌아가는 느낌이라 걸을만하다.
바램이라면 바람만 좀 불어주었으면 좋으련만...산은 그럴 의사가
전혀 없어 보인다

안부(14:05)

추읍산으로 향하는 길...고도를 조금씩 높히기 시작한다

무명봉(14:09)

제도권 등로라 길은 반질반질하지만 사람은 커녕 개미새끼도 안보인다

무명봉(14:15)

쉼터에서 내려서니 주읍고개가 나온다

주읍고개(14:18)
양평군 개군면 주읍리와 용문면 화전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의 이름을
따온 주읍리를 비롯해 주읍산 남쪽의 능선에 위치한 주읍리, 내리, 향리는 산수유의
마을로 유명하다... 양평 산수유의 근원을 만날 수 있는 개군면 주읍리(注邑里)는
조선시대에 세조가 하사한 산수유 시조목(始祖木)이 있는 마을로 수령(樹齡)이
무려 수백 년에 달하는 이 나무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지켜주는 상징이라고 하며
100년이 넘는 7,000여그루의 산수유가 피는 시절에는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0.51km 남은 지점에서 추읍산으로 향하는 오르막이 시작된다

쉼터(14:24)

조금전과는 달리 등로는 흐릿하다

쉼터(14:32~40)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이온음료로 목을 축이면서 잠깐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牛步 발걸음으로 추읍산을 향한다

까칠한 급경사로 올라서니 직진 코스가 아닌 좌측 사면으로
빙 둘러가는 편안한 길이 나오기에 오랫만한 발이 호강한다

내리 갈림길(14:56)
이정표가 나오고 좌측으로 개군면 내리(內里)로 향하는 길이고 맥길은
추읍산 방향으로 이어진다...
내리라는 지명은 '안쪽 마을'이라는 뜻이며, 내리의 산수유 나무는 조선 순조 때
좌의정을 지낸 남공철이 낙향하며 심기 시작했다는 설부터, 선비들이 가져온 묘목이
뿌리를 내렸다는 이야기까지...수백 년의 세월을 견딘 산수유가 군락을 이룬 유서 깊은
마을이다

추읍산으로 향하는 길은 높은 습도로 인해 숨이 끊어질 것만 같다

정상에 올라서니 이정표와...

돌아선 정상석과 전망대가 있는 추읍산 정상에 도착한다

추읍산(趨揖山:582.6m:15:03~15:15)
양평군 개군면 주읍리.내리와 용문면 삼성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온 사방이
다 볼수 있는 그야말로 一望無際의 산으로 정상에는 멋진 정상석과 2등삼각점,
무인산불감시탑, 등산안내도, 데크목 조망대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 주읍산(注邑山)으로 불리웠으나 1995년 고유지명인
추읍산(趨揖山)으로 변경되었다. "맑은 날 산 정상에서 일곱 고을이 내려다 보인다"고
하여 유래한 이름이라고 전한다. 유명한 지관이 마을 뒷산에 올라보니 이산이
'용문산을 뒤쫓는 형상'이므로 추읍산이라 명명했다고도 전한다.
「해동지도」 지평현 도엽에 추읍산으로, 「광여도」에는 추읍산 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서 추읍산이 신은천 동남쪽, 개군산 북쪽에서 확인된다(한국지명유래집)

이 산은 북쪽 흑천 건너 ‘용문산을 바라보고 읍(揖)하고 있는 형상’ 이라 하여 추읍산으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전해지며, 다른 이름으로는 이 산 정상에서 사위를 둘러보면 양평, 개군, 옥천,
강상, 지제, 용문, 청운 모두 7곳에 달하는 고을이 보인다고 해서 일곱 칠(七)과 고을 읍(邑) 자를
써서 칠읍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또는 일곱 고을이 양근, 지평, 여주, 이천, 양주, 광주, 장호원이라는
설도 전해진다.
옛날 추읍산 정상은 '마당재'로 불렸다 하는데, 여주에 세종대왕 능을 쓸 때의 일이다. 묘자리를
파고 보니 땅속에서 물이 솟아올랐다... 이에 지관을 잡아 가두려 하자, 지관이 말하기를
"나를 잡지 말고 칠읍산 마당재에 우물을 파도록 하시오... 그러면 마당재에서 물이 나오고
그 대신 세종대왕 능 자리의 물기가 싹 가실 것이오"라고 말했다는 설이 전해진다.
옛날에는 정상에 물이 마르지 않는 샘터가 있었으나 묘하게도 6·25 후에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는 설이 전해지며, 풍수적으로 산세가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목마른 말이 물을 먹는 모습)
으로 정상에서 사방으로 산을 에워싼 물줄기가 내려다보이는 조망이 일품이라고 한다.

인증샷

추읍산 전망데크에 서니, 온 사방이 시원하게 보이나, 아쉽다면
지독한 폭염과 높은 습도탓에 숨이 멈출것만 고통이 범여를 괴롭힌다

추읍산 정상에서 바라본 용문면의 모습
아침에 지나온 용문면 소재지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양평군의 진산인
용문산이 우람한 근육질을 자랑하고 있고 용문산 줄기를 따라서 이어지는
좌측으로는 한강기맥 능선이 유명산을 향하면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우측으로는 천사봉과 도일봉, 비솔고개로 이어지는 능선도 뚜렸하다.
10년전에 천사봉 아래에 범여가 노후에 전원생활을 꿈꾸면서 매입한 대지에
조경공사까지 끝내놓고 찾아온 病魔로 인해 아직도 미완성인 땅이 쥔장
범여를 애타게 바라보는 듯 하는데, 이제는 일이 겁이나서 점점 그 꿈이
멀어지는 느낌이다.

동쪽으로 눈을 돌리니 양평군 지평면과 청운면, 양동면이 뚜렸하게
보이고 맨 뒷쪽으로는 원주의 진산인 치악산이 遠景이라 그런지
흐릿하기만 하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양평군 개군면(介軍面)의 산그리메
경기도 양평군 남부에 있는 면으로 주읍산(583m)·개군산(238m)·파사산(230m)
등이 있으며, 남한강과 신내개울이 서쪽과 북쪽을 곡류(曲流)하며, 주곡 외에
시설채소재배가 활발하다... 특히 내리산수유마을과 주읍리산수유꽃마을 등
면 전역에서 산수유가 활발하게 재배되고 있으며, 이밖에 한우가 특산품으로 생산된다.
상자포리에는 신라시대 파사왕 때 축조된 석성지가 있고, 공세리에는 이순몽 장군의
묘가 있으며 여주시와 양평읍을 연결하는 국도가 면 중서부를 남북으로 지난다.
행정구역은 하자포리·구미리·앙덕리·석장리·공세리·불곡리·부리·자연리·내리·향리·
주읍리·계전리·상자포리 등 13개리가 있다

추읍산은 양평에서 용문방면으로 오고갈 때, 원덕역 뒷쪽의 흑천(黑川) 건너로
지붕의 용마루처럼 보이지만 이 산은 남쪽 내리나 주읍리 방면에서는 마치
임산부의 배처럼 둥그런 돔형을 이뤄 보이는 산이다.
추읍산 북쪽 삼성리 일원은 예전부터 여름철 물놀이장소로 인기 있는 곳으로 특히
산 남서쪽 내리와 남동쪽 주읍리 일원은 수령이 400~500년가량 되는 산수유(山茱萸)
나무 약 1만5,000주가 자생하고 있는 산수유마을로 유명하다.

추읍산 정상에서 잠깐 머물다가 원덕역 방향으로 내려서니...

이곳 정상을 올랐다는 기념표시석이 보이고...

쉼터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헬기장(15:17)
헬기장에서 직진의 삼성리 방향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제도권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확 꺽어져 맥길을
이어가야 하는데 독도에 아주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트랙을 확인하면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등로는 사라지고 손가락 굵기의 로프가 맥길을 안내한다

이곳에서 한번 미끄러지면서 내려서니...

안전로프가 쳐진 제도권 등로가 나오고 편하게 내려선다

원덕역 갈림길(15:26)
양평읍 원덕리(元德里) 양근군 동종면의 지역인데 융희 2년(1908)에
양평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덕암리, 원당리,
성산리 일부를 병합하여 원당과 덕암의 이름을 따서 원덕리라 하여
갈산면(양평읍)에 편입되었다고 한다.
원덕역(元德驛)은 경기도 양평군 양평역과 용문역 사이에 있는 경의중앙선의
역으로 1940년 중앙선이 원주까지 개통될 때부터 있었던 역인데, 역무원이 없는
무배치간이역으로 영업을 시작했다... 그러다가 1965년 보통역으로 승격되었다.

원덕역 임도코스로 내려서니 반가운 선답자의
흔적을 만나고 맥길은 계속해서 고도를 낮추면서 내려간다

우리는
많은 사물과 자연에
기대어 살아갑니다.
우울한 날에는
하늘에 기대고 슬픈 날에는
가로등에 기댑니다.
기쁜 날에는 나무에 기대고
부푼 날에는 별에 기댑니다.
사랑하면 꽃에 기대고
이별하면 달에 기댑니다.
우리가 기대고 사는 것이
어디 사물과 자연뿐이리요.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대어 살아갑니다.
내가 건네는 인사는
타인을 향한 것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나 아닌 타인입니다.
나를 울게하는 사람도 타인
나를 웃게하는 사람도 타인입니다.
사람이 사람에게 비스듬히
기댄다는 것은
그의 마음에
내 맘이 스며드는 일입니다.
그가 슬프면 내 마음에도
슬픔이 번지고 그가 웃으면
내 마음에도 기쁨이 퍼집니다.
서로 기대고 산다는 것
그것이 바로 인연이겠지요.
그 인연의 언덕은
어느 날은 흐리고
어느 날은 맑게 갤 겁니다.
흐리면 흐린 대로
개면 갠 대로
그에게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어 주는 것
그것이 서로 기대고 살아가는
인연의 덕목이겠지요
~ 송정림 '참 좋은 당신을 만났습니다' 中 에서

무명봉(15:37)

제도권 등로와 같이가는 지맥길...더워도 걸을만 하다

쉼터(15:40)

길을 걸으면서 오랫만에 들어보는 매미소리
시끄럽다기보다는 정겹다는 느낌이다.
홀로걷는 산길이 이래서 좋은가 보다...

등로는 반질반질하나 더워서 그런지 사람을 구경할 수가 없구나...

급경사는 거의 다 내려온 느낌이다

쉼터봉(15:46)

책읽는 숲(15:47)

진달래동산 갈림길(15:48)

진달래동산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올라서니...

나무계단이 나오고 잠시후에 무명봉인 315m봉에 오른다

315m봉(15:58)

315m봉 정상에는 만남의 숲이라는 안내판이 있고...

쉼터를 보면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세월은 쉬어가지 않는다.
다가가지 않아도 스쳐 지나가고
등을 떠밀지 않아도
성큼성큼 지나가는 세월
무엇에 그리쫒기며 사는지
왜 이리도 사는게 바쁜건지
돈을 많이 벌려는 것도
명예를 얻으려 하는것도 아닌데
세월은 참 빨리도 간다.
돌아보면 남는것도
가진것도 별로 없는데
무얼 위해 이리 정신없이 사는건지
나도 문득 바라본 하늘은
왜 저리도 눈이 부신건지
가끔 정말 가끔은
아무것도 안하고 하늘만 보고 싶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보다
어딜 향해 가느냐
지치지 않고 기분좋게 내 속도에 맞추어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수고했어, 오늘도 中에서

묘지(15:58)

산림욕장 임도(16:02)

원덕역과 개군면 내리를 잇는 산림욕장 임도를 가로질러...

절개지로 오르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벙커봉(16:04~15)

벙커봉에 올라서 이온음료로 갈증을 해소하며 10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다시 길을 나서는 길에 벙커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곳이 양평군 동원예비군 군부대인 모양이다.

안부(16:19)

무명봉(16:21)

안부(16:26)

망가진 군시설물과 땅바닥에는 삐삐선이 보이고
능선으로 올라서니 노거수와 참호가 있는 족보있는
243.7m봉 정상에 도착한다

243.7m봉(16:31)

맥길은 계속해서 남쪽으로 향한다

안부(16:33)

안부를 지나니 군시설물이 나오고 철조망이 맥길을 막는다.

부대 철조망(16:35)
몸을 한껏 낮추어 철조망 우측으로 향하는데 CCTV가 나를 포착했는지
경고방송이 나오는데, 예전 같았으면 무대포로 갔겠지만, 지금은 그럴
용기도 없고, 자신도 없다...몇년전 제천의 탄약창을 지나다가 걸려서
충북경찰청 수사관들에게 2시간동안 강도높은 조사를 받고, 집행유예를
받은 전력도 있어서 다시 되돌아 나온다

되돌아 옴(16:40)
되돌아 나오니 철조망에서 살짝 떨어진 곳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인다

좌측 윗쪽이 군부대 철조망이 보이고 비교적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좌측의 철조망 아래는 군시설물이 보이고 가슴을
졸이지 않고 맘 편하게 지맥길을 이어간다

철조망과 나란히 맥길을 걸어가는데 이 정도는 봐주겠지...

무명봉(17:15)

군부대 철조망과 무명봉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잠시후에 내려서니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17:23)

갈림길을 지나니 풀섶에 묻혀버린 어느 문중인지는 몰라도 벼슬을
하신 분들이 많은지 비석에는 한결같이 옥계석(屋蓋石:탑에서 탑신의
위에 지붕 모양으로 덮는 돌)이 얹혀있다

맨 윗쪽의 묘지에는 성균진사(成均進士)을 지냈다는 송공(宋公)과 유인
안동권씨의 묘비로 적혀있는 걸로봐서 송씨 가문의 묘지인 듯 하나 특이한
점은 본관(本貫)이 기록되어 있지않다.
* 진사(進士)란 조선시대 소과의 하나인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으로 고려 때에는
과거에 합격한 이를 '진사'라 칭하였으나 반면 조선시대에는 관직에 진출할 수 있는
문과를 별도로 두고, 생원진사시에 합격한 이를 '생원', '진사'라 하고 이들에게 문과에
응시할 자격을 주었으며, 조선 전기에는 신유학의 학풍을 따라 경학을 중시하여 진사시가
일시적으로 폐지되기도 하였다.
진사는 문과에 응시하여 관직에 나갈 수 있었고, 음관이 될 수 있는 후보군이었으며 또한
지방의 엘리트 사족으로서 지방민 교화, 여론 형성 등 사족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성균진사(成均進士)란 진사에 합격하면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며,
하급 문관으로 등용되거나 대과(문과)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이 부여하였으나, 시대가
흐름에 따라 성균관 입학보다는 진사라는 지위 자체를 얻기 위해 응시하는 경우가 많아졌으며,
조선 말기에는 문과 급제자 중 상당수가 생원·진사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진출하기도 했다고 한다

묘지를 지나니 또 다시 군부대 철조망을 만나고
우측으로 내려서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나무가지 사이로 군부대로 이어지는 도로가 보이고
우측으로 약간 돌아서 내려서니 낮익은 도로가 나오는데
이곳은 지평에서 양계장을 하시는 셋째형님댁을 가면서
수도없이 다녔던 고개가 지맥길일줄은 생각도 못했다

장고개(115m:17:35)
양평군 개군면 불곡리와 산수유로 유명한 리의 경계에 있는 삼거리 고개로
장고개의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다른 지맥길에서 만난 장고개(長峴)와
같은 뜻인 ‘긴 고개’ 란 뜻이 아닐까?... 범여의 생각 中에서
.
.
.
저녁이 가까워진 시간임에도 따가운 햇볕은 식을줄 모른다.
여기서 합수점까지 거리도 얼마남지 않았지만 162지맥의
졸업구간을 위해 아끼기로 하고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고 베낭을 정리하는데, 부리쪽에서 빈 택시 한대가
내려오고 있다...손을들어 택시를 세워놓고 베낭을 정리한
다음에 택시를 타고 양평역으로 향한다.

양평역(18:05)
양평역에 도착하여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서울가는 공짜열차(?)를 타고 경로석에 앉아서 한참을 졸다가 왕십리
역에서 내려 구룡역가는 열차를 갈아타고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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