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행일시: 2026년 09월 06일
☞ 산행날씨: 맑은날씨에 시원한 바람
☞ 산행거리: 도상거리 9.7km + 들머리 1.1km / 8시간 4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연지고개-천왕산 사슴농장- 무명봉 - 안부-통영지맥 분기점-무량산(지맥 분기점)
안부- 무명봉- 조망바위- 안부- 처사 밀양손공 부부묘- 시멘트 임도- 수원 백씨 창효문
감치재- 벙커- 209.2m봉- 222.9m봉- 안부- 안부- 폐초소- 무명봉- 안부- 374.5m봉
무명봉- 안부- 암봉- 무명봉- 안부- 무명봉- 안부- 407.4m봉- 무명봉- 남매바위?
이화공원묘원- 무명묘지- 학생경주최공부부묘- 달막동산- NO50송전탑
묵은임도- NO46송전탑- 378m봉- 안부- 안부- 무명봉- 405.1m봉- 쉼터- 안부
쉼터- 쉼터- 375m봉- 안부- 391.3m봉-보현암 약사전-약사전 일주문-주차
☞ 소 재 지: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대가면 ,상리면, 삼산면, 하일면
지난주에 울진북(신산경표상:쇠치)지맥에 갔다고 불의의 사고(?)로 허리가
너무 아파서 월요일에 출근하자마자 자주 다니는 정형외과에 가서 X-ray를
짝어봤더니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고, 근육에 약간 이상이 있다고 하여
1주일 내내 물리 치료를 받은 결과 통증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생활에
큰 불편이 없는 편까지 되었다...당분간 산행을 하지않고 몸을 추스리려고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금요일이 되자, 지난주에 개고생을 한 기억은 사라지고, 산에대한
욕망이 슬슬 몸속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그 대신에 울진지역의 맥길은 잡목들의 극성이 氣가 죽을쯤인 11월로 미루고
비교적 잡목의 저항이 덜한 남쪽지방으로 가기로 하고, 경남 고성에서 시작되는
사천(신산경표상:와룡)지맥을 생각하고, 토요일 오전에 사무실 엄무를 마감하고
집에서 가까운 남부터미널로 향한다.

사천(와룡)지맥 개념도
지리산 영신봉에서 분기한 낙남정맥의 극남점인 고성 무량산(△544.9m)에서 3개의
산줄기가 갈라지는데, 원 산줄기인 낙남정맥은 동쪽으로 향하고 그 하나는 남쪽으로
분기해서 고성반도 끝자락으로 이어진 통영지맥이고, 또다른 하나는 서쪽으로 분기해서
삼천포 노산공원으로 이어진 사천(와룡)지맥 이다.
박성태 선생이 저술한 신산경표에서 부르는 와룡지맥(臥龍枝脈)은 낙남정맥의 제일
남쪽에 있는 대곡산(大谷山 △544.9m:지금은 무량산으로 改名)에서 서쪽으로 분기해서
감치재, 수태산(秀泰山:△574.8m), 향로봉(香爐峰:△578.3m), 봉암산(蜂岩山:434.6m),
민재봉(797.8m), 와룡산(臥龍山:801.4m), 천왕봉(天王峰:628.1m), 각산(角山:408.4m)
망산(61.2m), 노산공원으로 이어진 도상거리 30.8 km인 산줄기 이다.
신산경표의 지맥 분류기준에 의하면 도상거리 30km 이상인 산줄기를 지맥이라
칭하고 있는데, 와룡지맥의 도상거리가 29.5km에 불과해서 당초 지맥으로 분류하지
않았으나, 일부 산꾼들이 지맥 끝지점을 사천시 실안동 영복원마을로 변경 하거나
374.5봉에서 북쪽의 감치재~무산이 아닌 동쪽의 고성읍 교사리 대독천으로 변경
하면서 실거리 기준 30km 이상이라 주장 하여 최고봉인 와룡산(臥龍山)의 지명을 따서
와룡지맥이라 붙였다고 하며 산줄기가 아닌 물줄기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
에서는 사천지맥이라고 부른다.
사천지맥의 주요 산줄기는
무량산(△544.9m), 수태산(△574.8m), 향로봉(△578.3m), 봉암산(434.6m), 민재봉(797.8m),
와룡산(801.4m), 천왕산(x628.1m), 망산(x61.2m), 노산(x25,4m)이고 지맥 능선에서 발원하는
북쪽의 물줄기는 상동천, 동산천이 사천강에서 합류하는 남해로 흘러들고, 죽전천, 용정천,
송지천, 백천, 송포천, 좌룡천은 독립적으로 남해에 入水한다.
반면 남쪽의 물줄기는 장지천, 수양천, 학림천, 석천, 봉현천, 삼천포천은 독립적으로
남해바다로 입수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남부터미널(15:50)
집에서 그리 멀지않은 남부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에
대합실에서 멍하니 앉아있다가 정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오른다.

서울남부발 → 고성행 버스표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버스 전용차선을 타고가는 바람에 큰 막힘없이
대전을 지나 금산인삼랜드 휴게소에서 10분정도 쉬었다가 고성으로
향하는데 해가 많이 짧아졌는지 산청을 지나면서 고속도로에는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서울을 출발한 지 3시간 40분만에 고성터미널에 도착한다.

고성터미널 버스 시간표

고성터미널(20:10)
터미널 주변에는 편의시설이나 숙박시설이 전혀없고, 터미널을 빠져나와
10분정도 걸어가야 식당과 여관들이 있다...지난 1월에 통영지맥 첫구간을
와봐서 길이 낯설지는 않다...10분정도 걸으니 사거리가 나오고, 반경 100m
이내에 김밥집이 3개나 있는데 장사가 잘되는지 24시간 장사를 한다니
나같은 산꾼은 식사 해결 하기는 참으로 좋다...공룡김밥집이란 곳에서 김밥한줄로
저녁을 해결하고 김밥집 뒷쪽에 있는 싸구려 모텔에서 자고 아침에 일어나니
밥 생각이 별로 없어서 택시를 타고, 지맥 들머리인 연지고개로 가자고 하니
택시기사가 연지고개로 가자고 모른단다...천황산 사슴농장은 아느냐고 하니
금방 알아챈다.
.
.
.

난 초행이라 사슴농장 가기 직전에 무량산 오르는 곳에
내려달라고 하니 이곳이 무량산으로 오르는 곳이라 하면서
나를 내려주고는 그냥 고성읍내로 가버린다

이곳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하면서 오룩스맵을 켜니 무량산으로
오르는 길은 이곳에서 사슴농장 방향으로 조금을 더가야 하는구나.

연지고개(06:35)
고개 지명은 공식지명이 아니고 이 시멘트 도로의 도로명 주소가
연지4길로 되어 있는데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라서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蓮芝里)는 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연동(蓮洞)과
지동(芝洞)·평동(坪洞)을 병합해 ‘연지리’로 명명된 데서 비롯 되었고, 본래
‘연동(蓮洞)’ 에서 유래했으며, 이는 마을에 연못이나 연못지대에 연꽃을 많이
재배하던 곳이라는 데서 비롯되었고 ‘지동(芝洞)’ 은 넓고 평평한 들 가운데
위치한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고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6:40)
조금전에 산행 준비를 했기 때문에 곧바로 무량산으로 향한다.

들머리에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니 아무런
의심도 없이 오르막 능선으로 올라선다

남해바다에서 솟아오른 해는 많이 올라와 버렸구나.
9월에 들어섬을 알리는가?...지난주에 비해 날씨가
조금은 선선해진 느낌이고, 오르막길에 바람도 살짝
불어주니 산행하기 좋은 날씨인 듯 하다...

천황산 사슴농장 울타리와 평행선으로 무량산으로 오르는 길...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은 아니지만 등로는 비교적 뚜렸하다.
지난주에 다친 허리에 통증이 제발할까봐 조심스럽게 길을 걷는다

사슴농장 안쪽은 비교적 관리가 잘된듯 하나
사슴은 한마리도 보이지 않고, 잠시후에 철조망은
우측으로 휘어져 가고 등로는 직진으로 이어진다

사슴농장을 벗어나면서 고도는 높아지기 시작하나 천천히 걷는다.
지난주 같았면 영원히 지맥길을 걷지 못할것 같은 불길함이 들었지만
전국의 모든 山神님들이 돌봐주셨는지, 돌아가신 부모님께서 막내가
안쓰러워 보호해 주셨는지...다시 산길을 걸을 수 있다니...

한주동안 世俗에 찌든 모든것을 걷어내기에는 산만큼
좋은곳이 더 있으랴...모든걸 털어내려고 무량산을 향해,
걷고 또 걷는다.

무명봉(07:15)

안부(07:16)

안부를 지나니 좌측으로 내리막길이 나오는데 이곳이 통영지맥 분기점인데
주위에 나무가 없으니 분기점 살짝 아래에 준.희쌤의 통영지맥 분기점 산패가
걸려있다.

통영지맥 분기점(07:18)
지난 1월 10일 통영지맥 첫구간을 걸을 때 이곳을 왔으니 정확하게
8개월만에 다시 온 셈인데,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반겨주는구나.
간사하고 자기 이익만 따지는 세속의 모리배들과는 비교가 안되니...
그래서 산은 인간들의 영원한 스승이란 이유를 알겠구나.

맥문동의 격한 환영을 받으며...

무량산 정상에 올라선다.

무량산(無量山:544.9m:07:19~22)
경남 고성군 고성읍과 대가면 상리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지리산 영신봉에서
김해 고암나루터까지 이어지는 낙남정맥길의 최남단에 위치한 산으로 낙남
정맥의 극남점이라 불리기도 하는 산으로 정상에는 준희쌤이 설치한 산패와
와룡지맥 분기점이란 표식, 4등삼각점과 삼각점 안내판, 앙증맞은 돌탑이 있다.
예전에는 대곡산(大谷山)으로 불리웠으나 대곡산이 무량산으로 바뀐 이유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에 무량산(無量山)을 대곡산으로, 천왕산을 무량산으로,
철마산을 천왕산으로 각각 바꿔 놓았던 것을 2015년 경남 고성군의 산명(山名)
정비사업을 통해, 고문헌과 고지도, 지역 주민 증언 등을 바탕으로 원래의 지명을
복원하는 절차가 이루어졌으며, 이는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한 조치로, 후손에게
올바른 지명을 물려주기 위한 취지의 지명 변경에 따른 혼란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고성에서 본래 무량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따로 있었는데 지금의 천왕산보다
조금 왼쪽에 자리잡은 산(해발 545m)으로, 지리산에서 발원한 낙남정맥이
이 산을 통해 고성으로 흘러드니 고성지역 산의 뿌리에 해당하여 자연스레
고성의 진산으로 자리매김 해왔다... 일제는 이곳에 큰 계곡이 있다는 이유를
붙여 대곡산(大谷山)으로 불러왔으나, 무량산이라는 제 이름을 찾은 것이다.
또 일제에 의해 이름 붙여졌던 고성의 천왕산은 서재골로, 철마산은 철마봉으로
각각 바로잡혔다고 한다.
무량(無量)이란 佛家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화엄경 등에서 거대한 수를 나타내는
접두어로 쓰이며, ‘무량대수(無量大數)’는 10⁶⁸ 에 해당하는 수를 가리킨다.
이는 ‘불가사의’(10⁶⁴)의 만 배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엄청 큰 수”라는 뜻으로
현대에도 수학·문화 해설에서 자주 인용되며, ‘무량’은 한계가 없음을 의미하며,
‘사무량심(四無量心)’의 네 가지 마음인 자(慈) ·비(悲) ·희(喜) ·사(捨)의 ‘무량한
(끝없는) 마음’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는 중생을 향한 무한한 자비·연민·기쁨·평정의
실천을 강조하는 기본 교리를 말한다.


무량산 정상 4등삼각점( △충무401 / 1986 재설)

이곳 무량산은 3번째다...2010년도 낙남정맥, 지난 1월에 통영지맥,
오늘은 사천(와룡)지맥...준.희쌤의 분기점 산패를 보면서 본격적인
지맥 산행에 나선다.

내 생전에 또다시 이곳을 오를수 있으려나 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명밭골 박씨네 묘지 가는 길이란 팻말을 따라서 내리막길로 향한다.

감토재로 내려가는 길...부뜰이님이 길을 안내한다.
지난 겨울에 감치재에서 올라올 때 이 길을 걸었는데
2번이나 똑같은 길이라도 느낌은 전혀 다르구나.
겨울과 여름이라는 차이 때문인가?...

안부(07:26)

무명봉(07:26)

무명봉을 내려서면서 감치재까지는 룰루랄라 내리막길이라 이런 길은
주력이 빠른 맥산꾼 못지않게 잘 갈수 있는 길이라 초반에 체력 비축을
해야지...高手들과 다른점은 그 분들은 무지막지하게 산길을 타지만,
나야 山川景槪를 즐기면서 볼것 다보고 걸으니 당연히 늦을 수 밖에...
이게 아무런 제약도 받지않고 걷는 독립군(나홀로 산행)의 特權이제.

일을 잘한다고 해서
공정한 사람은 아니다.
옳음과 그름 이 두가지를
잘 분별하는 이가 현명하다.
불교경전 法句經 中에서
요즘에 장관 한자리 해보겠다고 권력자에게 갖은 아부를
해대며 설레발이치는 자들에게 꼭 새겨들어야 할 문구같다.

조망바위(07:31)

내가 가야할 마루금 남쪽으로 뻗어진 능선에 갈모봉산(368.3m)이 보이고
그 아래로는 자란만, 그 뒷쪽에 흐릿하게 보이는 뾰족한 산인듯 하고
날씨는 맑으나 바라보이는 고성앞바다는 海霧로 모든게 흐릿하다.
갈모봉산(曷某峰山)은 조선 순조(1790~1834) 때 고성군 삼산면 삼봉리 상촌마을
배곱골에 살았던 의적 갈비에 의해 붙여진 지명으로 갈비의 관향은 남양갈(曷)씨,
이름은 춘실, 자는 기중으로 불려졌고, 의적 갈비가 의(義)를 행하기 위해 올 내렸던
산으로 먹을 것이 없고 힘들었던 시대의 애환이 서린 지명이기도 하다.
갈모는 성을 알고 이름을 몰라 갈모(曷某)가 되었다 하고, 고성군 삼산면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의(義)를 행한 고성판 홍길동, 임꺽정인 의적 갈비의
이름을 갈모봉에 새겨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었다고 전해진다.
고성읍 이당리에서는 산이 병풍처럼 서 있다고 하여 병풍 바위산으로 부르고, 삼산면
미룡리와 삼봉리에서는 갈모산 갈비봉으로 불렀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의적 갈봉(葛峰)의
묘지가 있어 갈묘봉(葛墓峰)이었다가 세월의 흐름 속에서 와전되어 갈모봉이 되었다고 한다.
갈모산 산림욕장은 70여㏊ 규모로 수령 60~70년생 편백나무와 삼나무, 소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전체 수종의 80%를 차지하는 편백나무는 40~50만 그루로 추정하며 고성읍
이당리 주민들은 1970년대 5년간 봄철마다 부역으로 점심도 거른 채 나무를 심었던 것이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내리막길 등로 주위에는 비가온 뒤라서 그런지 영지를 비롯한
여러종류의 버섯들이 많이 보인다...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꽤많은 영지버섯을 수확한다.

이곳은 지난주에 걸었던 울진지역과는 달리 잡목의
태클도 없고 비교적 등로는 뚜렸한 편이다.

이노무 쉬끼들...뫳돼지들이 등로를 완전히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다

벽돌깔때기 버섯
봄에서 여름사이 주로 불이난 곳에서 자주 보이는 버섯으로 2~5cm의 편평한
모양에서 차차 가운데가 들어간 깔때기 모양으로 되며 얇고 백색을 띠며
냄새가 강하며 표면은 황색이고 다소 미세털이 있으며 식용불가 버섯이다

안부(07:54)

급경사는 거의 다 내려온 듯 싶다...뫳돼지의 횡포로
잘 보이지 않는 맥길을 따라서 내려서니 묘지가 나온다.

처사 밀양손공 부부묘(07:57)

밀양손공 부부묘에서 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고...

지난 1월에 어둠속에 오르면서 보지 못했던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단체로 모여 홀로걷는 범여를 격하게 환영한다.

예전에 누군가가 이곳에 불법건축을 했다가 강제철거된 모양인지
수풀속에 샌드위치 판넬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다

시멘트 임도(08:11)
지맥길은 이곳에서 우측 능선으로 이어지는 숲길로 가야하나
지난 겨울에 수원 백씨 창효문에서 계단을 올라오면 엄청난
잡목의 저항을 받아서 개고생을 했는데...여름에는 오죽하랴...
그냥 좌측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인적이 드문지 나뭇잎이 어지럽게 널려있는 길에, 꽃댕강나무가
범여를 반기듯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잠시후에 수원백씨
창효문앞에 도착하는데 후손들이 이른 시간인데도 조상님들의
머리 치장(벌초)하는 기계소리가 요란한다.

꽃댕강나무(꽃말:평안함)
인동과의 낙엽성 소관목으로 댕강나무 종류를 원예종으로 개발한 것으로
부러질 듯 가는 가지에 작은 잎을 달고서 분홍빛 도는 종(鐘) 모양의 흰 꽃들이
모여 피며, 봄부터 가을까지 피는 흰색의 화사한 꽃과 함께 붉은 빛이 도는
갈색의 꽃받침도 보는 이의 즐거움을 더해준다.
개화기간이 길고 향기나는 관상수로 남부지역에서 정원이나 울타리용으로
많이 이용되며. 반상록성으로 공해에도 강해 중부이남에서는 도로변에도
많이 심는 나무이다.

수원 백씨 창효문(彰孝門:08:15)
창효문은 효자, 효녀, 효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전통 사당 또는
비석을 의미하는데, 주로 마을이나 고을에서 효심을 실천한 인물의
업적을 기념하고, 후세에 효(孝)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세워졌다고 한다.

후손들이 벌초중인 창효문 옆 계단을 만나면서 마루금에 복귀한다.

수원백씨 창효문을 지나 감치재로 향하는데 저 멀리 문수암을
품고있는 무이산(545.6m)이 멋진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난다.

감치재 가는 길에서 뒤돌아본 고성군 고성읍 이당리 이곡마을의 모습
이곡(梨谷)마을은 배나무가 많은 골짜기라 하여 뱃골이라 불렀는데
한문으로 표기하다보니 이곡마을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 도로가 남파랑길이란다

남파랑길은 대한민국 남해안 전역을 따라 이어지는 초장거리 도보길로, 동해안의
해파랑길과 연결되어 한반도 해안선을 잇는 국가 단위 트레일 체계의 핵심 축을
구성되었으며, 부산에서 시작하여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까지 이어지며,
총 연장은 약 1,400km 규모에 달한다.
남파랑길은 단순한 해안 산책로가 아니라, 남해안의 다양한 지형과 문화, 생활환경을
종합적으로 연결하는 “국가 단위 장거리 도보 네트워크”로 설계되었으며 해안선을
중심으로 하되, 일부 구간에서는 내륙 마을과 산지, 농어촌 지역을 통과하도록 구
성되어 있어, 단일한 풍경이 아니라 지역별로 매우 다양한 경관과 생활상을 경험할 수 있다.
또한 이 길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추진한 ‘코리아둘레길’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되었으며, 동해안의 해파랑길, 서해안의 서해랑길과 함께 대한민국을 하나의
순환형 도보 체계로 연결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감치재(甘峙:08:20)
경남 고성군 고성읍 이당리와 상리면 부포리의 경계에 있는 감치재(甘峙)는
33번 국도(도로명 주소:상정대로)가 지나가는 고개이다.
여지도서에서는 감치산(甘峙山)으로 기록되어 있어며 '관아의 서쪽 15리에 있고
의소묘(懿昭墓)에서 둔전을 설치했으며 무량산에서 뻗어 나온다' 고 했다.
대동지지에는 '감치는 서쪽 20리에 있고, 사천현(泗川縣)으로 통한다' 고 수록되어
있으며, 해동지도와 1872년 지방지도 등에 읍치에서 사천으로 향하는 서쪽 길에
표시되어 있지만, 조선팔도 지도에는 읍치 서쪽에 대치산(大峙山)과 동쪽에
감치산으로 잘못 표시하고 있다.
감티라고도 부르 통영과 진주에서 각각 70리되는 지점으로 이곳에서 옛날
사천과 진주및 지리산의 산적과 통영과 마산, 부산등의 산적들이 서로 만나
'감투싸움을 한 고개' 라서 유래된 곳이라는 설도 전해지는 고개이다

많은 산꾼들이 통영지맥을 걸을 때 이곳 감치재에서 들머리로
잡는 경우가 많아, 사천(신산경표상:와룡)지맥은 무량산에서
감치재 구간은 통영지맥과 겹친다 하여 이곳에서 들머리로
하지만, 나는 그게 왠지 찝찝하여 연지고개에서 이곳까지 왔다.
지도상에는 이곳을 감치재가 아니 부포사거리로 표기되어 있으며,
33번 국도(도로명 주소:상정대로)가 지나가고 있다.

고성군 상리면 부포리로 향하는 도로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이끼가 낀 시멘트도로로 올라간다

계단을 오르면서 만난 이질풀(꽃말:새색시)
쥐손이풀속 쥐손이풀과 쥐손이풀목에 속하는 속씨식물로 광지풀, 현초,
현지초라고도 하며, 원산지는 아시아이고 산과 들에 서식한다
학명인 제라늄은 그리스어로 학을 뜻하는 게라노스(Geranos)에서 유래했는데, 열매의
모양이 학의 부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한국에서는 설사병 중 하나인
이질병에 특효이기 때문에 이질풀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異名으로는 노관초, 방우아초,
방우아묘 등의 이름으로도 불린다.
줄기는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거나 기듯이 뻗으면서 자라고, 길이가 50cm에 달하며
줄기를 비롯하여 전체에 털이 많고 뿌리는 여러 개로 갈라지고, 손바닥 모양의 잎은
마주 나며, 3~5개로 갈라지며 너비가 3~7cm 정도인 잎은 앞면과 뒷면에 검은색
무늬와 털이 있다.
지름이 1~1.5cm인 연한 홍색, 홍자색, 흰색의 꽃은 8~9월에 피며, 하나의 꽃자루에
1~2개의 꽃이 달리며 꽃자루와 꽃받침에는 짧은 털과 긴 털이 같이 돋아나 있다.
다섯 개의 씨가 들어 있는 열매는 10월에 익는데, 위로 말리며 나오는 삭과로
열매 껍질이 용수철같이 말리는 힘으로 씨를 멀리 퍼뜨릴 수 있다.
이질풀의 종류로는 10여종이 있고, 둥근이질풀, 사국이질풀, 선이질풀, 참이질풀 등이
이에 속하며 기본적으로 쥐손이풀과의 식물이기 때문에 꽃의 모양도 흡사한 등 쥐손이풀과의
구분이 쉽지 않은데, 꽃잎의 무늬로 인해 두 종을 구분할 수 있다... 이질풀의 꽃잎에는 줄무늬가
다섯 개이고, 쥐손이풀의 꽃잎에는 세 개의 줄무늬가 있어 줄무늬의 개수로 두 종을 구분할 수 있다.

시멘트 계단을 올라서니 초반과는 달리 등로는
서서히 지맥길의 本色을 들어내기 시작한다.

벙커(08:25)
벙커가 나오고 시멘트 계단이 끝나고 직진으로 이어지는 인공수로가
나오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숲속으로 들어가며 맥길을 이어간다.

어려운 지맥길을 걸으면서 많은 도움(?)을 받은 비실이부부님의
시그널이 땅바닥에 누운 채 구조의 손길을 기다린다...모른채 할 수가 없구나

이럴때 은혜를 갚아야지 튼실한 나뭇가지에
매달아 놓고 다시 길을 나선다...오랜만에 착한 일한번 했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예전에 헬기장인듯 한데, 지금은 헬기장의
흔적은 온데간데 없고, 소나무와 잡풀만 무성하다

곧이어 선답자들의 흔적이 많은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군부대 시설물들이 보이는데 부대가 이전을 했는지
관리가 되지 않은채 잡풀에 묻혀있다

희미한 길을 보물찾기하듯 조심스레 걸어간다.
난생 처음 와보는 길...그리고 다시 올 일도 없는 길...
지나고나면 모든게 그리운 것 뿐인데...맥산꾼의 운명인지 모르겠다

209.2m봉(08:35)

이곳이 군부대 훈련장인가 보다...전과(?)가 있어서 갑자기 긴장이 된다.
조심스레 지나가는데 다행히 아무도 보이지 않아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완만한 오르막길.

군 시설물을 지나자말자 족보있는 222.9m봉이 나온다.

222.9m봉(08:45)
분명히 마루금인데 준.희쌤의 산패에는 '그곳에 오르고 싶은 山' 이라고
산패에 적혀있다...쌤께서는 맥길에서 벗어나 있는 산이나 봉우리에만
이 문구가 들어가는데...뭔 사연이 있겠지...

222.9m봉에서 내려서니 봉분은 사라지고 상석(床石:무덤 앞에 제물을
차리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돌로 만들어 놓은 상)이 흙속에 파묻혀
어느분의 묘지인지 알 길이 없다.

고도차가 별로없는 맥길을 걷는데 좌측으로는 로프줄이 처져있다.
갑자기 뭔가 후다닥하고 지나가는데, 처음엔 고라닌가 했는데
흑염소 2마리가 나를보고 삼십육계 줄행랑을 치는 바람에 나도 놀랬다.

군부대 휴식처인 모양이다...요즘은 사용하지 않는지
훈련병은 보지않고, 낙엽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안부(08:50~09:00)

안부에는 맥문동이 드문드문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산행 시작 2시간이 흘렀고, 지난 8월의 폭염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산길은 생각보다 덥다...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한금 마시며 생각보다 20분이란 긴 휴식을 취한다.

조금씩 고도를 높이면서 지맥길의 野性美를 느끼지만
지난 8월에 걸었던 울진지역의 맥길에 비하면 이쪽길은 양반이다

양파광대버섯
균모는 지름 3-7㎝로 반구형에서 호 빵형으로 다시 편평형으로 되며
표면은 백색 또는 담갈색으로 각추상의 작은 사마귀가 붙어 있다가
떨어지고 주변부에 고리의 파편이 매달려 있다.
살은 백색이고 주름살은 떨어진 주름살이며 백색으로 주변부는 가루 모양이며
버섯 자루는 8-14㎝×6-8.2㎜로 기부는 구상이다... 표면은 백색으로 솜모양 또는
섬유상의 작은 인편 조각으로 덮여 있으며 덮개 막은 버섯 자루의 부풀은 곳에서는
확실치 않으며, 포자는 구형 또는 유구형으로 지름 7-8.5㎛이고 전분 반응이다.
여름부터 가을에 걸쳐서 혼효림 지상에 나며 분포는 한국, 일본, 북아메리카 등에 자생한다.

집요한 사람일수록 과거를 내버리지 못하며
성실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용서하지 못한다.
그러나, 과거는 잘했건 못했건
이미 지나가 버리고, 지금 없는 것이다.
잘했으면 한번 자축하고 지워 버릴 일이요.
못했으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한번 명심하고 불에 태워 버릴 일이다.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하기에
인생의 여정에 어떠한 집착도 금기이다.
바람에 몰려가는 구름을 보고
이 지혜를 받아들여라.
곽노순님의 글

뱀껍질광대버섯
균모의 지름은 4-12cm이고 둥근 산모양에서 편평하게 되고 가운데가 약간 오목하며
표면은 회갈색이고 약간 섬유상이며 암갈색의 각추형 가루 모양의 사마귀가 있고 살은 백색이다.
주름살은 백색의 끝 붙은 또는 내린 주름살이며 자루의 길이는 3-5cm이고 굵기는 4-7mm로
근부는 부풀고 회갈색의 미세한 비늘 조각으로 덮여 있고 상부에는 얼룩 무늬가 있고 속은 차 있다.
턱받이는 회백색으로 윗면에 미세한 줄무늬 선이 있고 대주머니는 자루 기부에 4-7열로 환상의
가루 또는 솜털 모양을 이루며 포자의 크기는 8-10.5×7.5㎛이고 아미로이드 반응이다.
발생 시기는 여름에서 가을 사이에 활엽수 또는 침엽수림의 땅에 단생 또는 군생하며
독성이 아주 강한 버섯으로 식용불가이다

안부(09:18)

안부에서 망가진 철조망 문이 넘어진 곳을
올라서니 나무에 포위된 꼼짝도 못하는 폐초소가 나온다

폐초소(09:23)

폐초소 주변으로 철조망이 보이는데
아마도 군부대가 이전한 모양이다

무명봉(09:27)

등로가 희미하다가 곧바로 안부로 내려서면 길이 좋아진다.

안부(09:25)

관리되지 않은 묘지를 지나면서 족보있는 374.5m봉에 도착한다.

374.5m봉(09:35)

374.5m봉에서 내려서니 군교통호가 나오고 이곳에서
동쪽으로 이어지는 흐릿한 능선이 갈모봉산(368.3m)으로
향하는 길이나, 등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맥길은 서남쪽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무명봉에 오른다.

무명봉(09:45)

산도 衆生들이 사는 사바세계가 그리운가보다.
창문을 열고 빼꼼히 얼굴을 내밀고 마을을 내려본다.
그리울 거 하나도 없소이다...착하게 사는 民草들도 많지만
민초들이 낸 세금에 빨대를 꽂아놓고 膏血을 빨아대는
고부군수 조병갑보다 더 나쁜 넘들이 천지 삐갈이니 말이요.
* 조병갑(趙秉甲:1844~1911)은 구한말의 관리로 부패한 탐관오리로 고부민란(古阜民亂)과
동학농민혁명의 원인을 제공했다... 여러 고을의 수령을 거쳐 1892년(고종 29) 4월 고부군수로
부임 이후 갖가지 명목으로 탐욕스러운 폭정을 자행했다.
농민의 항의가 빗발치던 차에 익산군수로 이임했다가 이듬해 고부(지금의 정읍)군수로 다시 임명되자
전봉준을 지도자로 하는 동학농민항쟁이 일어났으며 농민들이 고부관아를 습격하자, 도망쳐 관찰사에게
농민항쟁을 보고했으나, 관찰사는 그의 탐학으로 민란이 일어난 것을 보고하고, 정부는 조병갑을
의금부(義禁府:조선시대 국왕의 직속 공안기구)에 압송하여 죄를 묻고 섬으로 귀양보냈다.

안부(09:50)

안부에서 올라서니 좌측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발걸음이 산꾼의 발걸음이 참으로 가볍게 해주는구나.

암봉(09:53)

고도차가 없는 편안한 길...이런 길 같으면 남은 지맥길을
무탈하게 걸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갈수록 체력저하가
심해서 9부능선 가까이온 지맥길을 마무리 있을런지...
솔직한 맘으로는 자꾸만 자신이 없어진다.

무명봉(09:57)

안부(10:00)

굴곡진 세월속에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는 저 소나무가 안쓰럽구나.
너무 서러워마소...나 역시 그대와 같이 70년을 넘게 이어온 삶을 살았소...

무명봉(10:08)

무명봉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안부(10:15)

흐릿한 등로를 따라서 살방살방 올라서니 족보있는 407.4m봉이 나온다.

407.4m봉(10:25)

긴 휴식(10:30~11:40)
407.4m봉을 지나면서 평평한 등로가 나오고 살랑살랑 불어대는 바람이
산꾼의 발걸음을 멈추게하고, 낯선 잠자리가 불편하여 어젯밤에 잠을
설친 때문일까?...졸음이 쏟아진다...에라 모르겠다...베낭을 베개삼아
땅바닥에 누워 잠을 청하고 10분만 잔다는 것이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니...이게 뭐여!...1시간 10분동안 꿈속에서
헤맸다... 그러나 몸이 엄청 개운하니 그리 밑지는 장사는 아닌듯 하다.

행장(行裝)을 꾸리고 다시 길을 나선다.

무명봉(11:45)

남매바위?(11:47)
다정한 오누이처럼 마주보고 있는 앙증맞은 바위
참으로 보기가 좋구나.

호젓한 등로로 내려서니...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망자들의 천년주택이
반원형으로 조성되어 있는 이화공원묘원으로 내려선다.

이화공원묘원(11:58)

이화공원묘원 너머로는 어제 저녁에 내가 지나왔던 33번국도(상정대로)
우측 뒷쪽으로는 사천(와룡)지맥 분기점인 무량산이 맥길을 걸어가는 범여가
미덥지 않은지 근심이 가득한 모습으로 쳐다보고 있다

망자의 보금자리 윗쪽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시멘트 도로는 좌측으로 휘어져 내려가고 맥길은 숲속으로 향한다.

숲으로 들어서자마자 뫳돼지 쉬키들이 맥길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놨다.

무명묘지(12:08)

뫳돼지 쉬키들이 난도질한 등로는 보이지 않지만
선답자들이 등불을 밝혀주니 큰 걱정없이 맥길을
이어가는데 급하게 내려서니 경주최공 부부묘가 나온다.

학생경주최공부부묘(12:16)
* 학생(學生)이란 생전에 벼슬 없이 죽은 사람의 명정(銘旌),
지방(紙榜), 신주(神主) 따위에 쓰는 존칭을 말한다.

묘지로 내서는데 차량소리들이 간간이 들리고 시야가 트이면서
팔각정이 보이고 2차선 도로(장치로)가 지나가는 달막동산으로 내려선다.

달막동산(185m:12:20~30)
경남 고성군 상리면 자은리와 삼산면 장치리를 잇는 2차선 도로(도로명 주소:장치로)가
지나가는 고개로 멋진 팔각정과 데크목 조망대, 삼산면 달막동산 표시석이 보인다.
좌측인 장치리 방향으로는 자란만으로 이어지는 九折羊腸의 도로가 이어지면 한국관광공사가
지정하는 '사진찍기 좋은 명소' 라는 팻말도 보이고 남쪽으로 펼쳐지는 자란만이 환상적이다.

팔각정에는 어떤 남정네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편한자세로 의자에
드러누어 음악에 취해있다... 나 역시 그 옆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자란만(紫蘭灣)을 바라보며 여유있는 휴식을 취한다.

데크목 조망대에서 바라본 자란만과 삼산면 장치리(長峙里) 달막마을의 모습
달막동산 아래에 있는 달막마을의 유래는 알 길이 없고, 그너머로 보이는
산성산(山城山:154.8m)이 보이는데 저기는 축조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축성기법으로 보아 조선시대 성(城)으로 추정되는 장치리성(固城長峙里城)이 있는데,
임진왜란 시 자란만(紫蘭灣)에 접근하는 왜적을 탐지하는 기능을 수행한 전초성으로
전해오고 있는 산성으로, 현재 잔존하는 석축시설은 사면에서 모두 확인되는데, 비교적
큰 장방형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4∼5매 정도를 나란히 연결하여 쌓았다.
특히 지형이 경사를 이루는 남쪽 성벽은 비교적 작은 석재를 이용하여 촘촘하게 축조하였다.

달막동산 정자에서 10분정도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편백나무 숲을 지나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돌계단이 나오고 풀섶에 묻혀버린 지맥길을 만난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지맥길은 짧게 이어지고...

달막마을에서 올라오는 넓은 임도를 만나는데 좌측에는
농장인지는 모르겠고 녹슨 철조망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NO50송전탑(12:50)

다시 맥길은 사라지고 잡풀이 점령한 길을 따라서 걷는데
지난 8월에 비해서는 양반이긴 하지만 아직도 햇살은 따갑기만 하다.

묵은임도(12:58)

달막마을에서 올라온 임도는 우측으로 휘어져 범여의 시야에서
사라지고 녹슨 철조망이 길을 터주면서 고도를 높혀간다

NO46송전탑(13:12)

뫳돼지 쉬키들이 등로를 난도질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족보에는 없는 378m봉인 무명봉에 올라선다.

378m봉(13:20)
정상에는 ㅜ자 등로가 나타나는데 우측으로는 고성군 상리면 자은리
안땀마을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이어지고, 맥길은 좌측으로
향하는데 독도에 살짝 주의해야 할 봉우리다...지도를 보면 이곳 주위의
마을 지명에는 안땀, 들땀, 새땀같은 '땀' 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은데
' 땀' 이란 마을을 가리키는 경상도 지방의 방언(方言: 표준어와는 다른,
어떤 지역이나 지방에서만 쓰이는 특유한 언어)이다

맥길 희미한 좌측으로 향하나...

이내 뚜렸한 등로를 만난다.

안부(13:23)

무명봉을 지나 큰 고도차없이 맥길을 이어간다.

'아무리 길이 많아도 종착지는 하나다' 하고 한 작가 이외수님의
말을 생각하며 걷고 또 걷다보면 牛步 발걸음인 나에게도
종착지가 나오겠지...

안부(13:37)

무명봉(13:40)

무명봉을 지나니 굉장히 큰 단풍마를 만나는데
노란색꽃의 단풍마꽃은 산행을 하면서 처음본 듯 하다.
단풍마는 단풍마(丹楓-)는 마과의 여러해살이풀로 덩굴성 초본 식물로
천산룡(穿山龍), 지용골(地龍骨) 구산약(狗山藥), 국화마라고도 불리며
중국·일본 등지에 분포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중부이남에 주로 자생한다.
산지에 자라는 덩굴성 여러해살이풀로 전체에 털이 있고 잎은 어긋나며, 5-9갈래로
가운데까지 갈라지고, 길이 6-12cm, 폭 4-10cm, 밑이 심장형이고, 잎의 가운데 갈래는
끝이 뾰족하지만 옆쪽 갈래는 둥글거나 둔하고 잎자루는 길고, 아래쪽에 돌기가 1쌍 있다.
꽃은 8-9월에 암수딴포기로 피며,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이삭꽃차례에 달리고, 연한 노란색이다.
수꽃차례는 가지가 갈라지기도 하고, 암꽃차례는 갈라지지 않으며 열매는 삭과, 도란형이고 날개가 3개 있다.
단풍마의 사포닌 성분이 기관지염 폐 질환 및 혈관질환에 탁월한 효능이 있으며 면역력을 높이며
담을 삭이고 풍습을 없애며 기침을 멈추게 해준다고 하며 뼈마디의 운동장애 통증 타박상 갑상선종
갑상선 기능항진증 숨이 차고 만성 기관지염 동맥경화 등을 예방과 개선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한방에서는 뿌리줄기를 천산룡(穿山龍)이라하며 어혈이 뭉친데 풍습과 혈을 잘돌게 하는데
경락과 기침을 멈추는데 사용하며, 꽃말은 '운명' 이다.

오후가 되면서 바람은 사라지고 나뭇가지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이 유난히 따갑게 느껴진다...모든걸 잊으려고 산에 왔는데
이것쯤은 감수해야지 하면서 걷다보니 405.1m봉 정상이 나온다.

405.1m봉(13:48)
경남 고성군 삼산면 장치리와 상리면 무선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이정표와 벤취, 누군가가 돌에다가 돌구산으로 표시해놨으며
준.희쌤의 산패가 범여를 반긴다.
돌구산 또는 통골산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누군가가 표시해 둔 돌구산의 흔적...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우측 무선저수지로 향하는
길에도 일반 등산객들의 시그널이 많이 걸려 있는데
이곳에는 등산객들을 유인할 만한 산들이 있는가 보다.

맥길은 수태산 방향으로 이어지고 우측은 무선저수지 방향이다
고성군 상리면에 속해있는 무선리(武仙里)는 무이산(武夷山) 아래에 자리잡은
마을로 마을 뒷산이 울창하고, 산골짜기에서 흐르는 산수가 맑고 풍부하여
농사짓기 좋은 마을이며, 자연마을로는 무선(武仙), 선동(仙洞)이 있는데
두 마을의 앞글자를 한자씩 따와서 무선리(武仙里)라고 한다.
삼국시대부터 명승지로 유명하며, 신라시대 때 화랑의 국선(國仙: 신라시대
화랑도(花郞徒) 중에서 국왕이 특별히 임명한 자)들이 심신을 연마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405.1m봉에서 잠시 머물다가 좌측의 벤치 아래로 내려서면서...

통나무 계단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쉼터(13:58)

안부(14:02)

인간이 길을 만들기 이전에는 모든 공간이 길이었다.
인간은 길을 만들고 자신들이 만든 길에 길들여져 있다.
그래서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길이 아니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소설가 이외수님의 글 中에서

쉼터(14:12)
이곳은 등산객이 많은지 쉼터를 많이 조성해놨구나.

오랫만에 범여의 몸뚱아리가 호강하는 느낌이다.

완만한 오르막길

쉼터(14:23)

바닷가쪽이 가까운지 션한 바람에 산행하기 더 없이
좋은 날씨이다...길은 좋고 쉼터도 많으나 사람은커녕
개미새끼 한마리도 안 보인다.

조금씩 고도를 높혀가는데 좌측으로 등로가 열리면서...

고성군 하일면 수양리의 마을 너머로는 붉은 난초섬이라 불리는
자란도가 여유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통영의 미륵산도 肉眼으로
보이건만 그림속에는 소나무에 가려져버려 보이지가 않는다

375m봉(14:28)
ㅏ자 갈림길이 나오는 봉우리가 족보에는 없는 375m봉으로
고성군 삼산면과 상리면, 하일면이 만나는 삼면 경계봉인 셈이다.
이곳부터 좌측은 삼산면에서 하일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뀌지만
우측은 감치재에서 이곳까지 계속 상리면과 같이한다.
정상에는 쉼터가 있고, 직진으로는 하일면 수양리 절골고개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맥길은 쉼터를 끼고 우측으로 향한다

호젓한 길...누구의 간섭도 없이 혼자 걸으니 참으로 좋다.

홀로있는 맥문동이 한마디 툭 내볕는다.
외롭지 않냐고...아뇨!...아주 좋습니다

안부(14:32)

안부를 지나 통나무 계단으로 올라서니...

중생들의 아픈 마음을 치료해줘야 할 약사여래부처님께서
요즘 중생들이 하는 짓거리에 心思가 뒤틀렸는지 뒤돌아
앉아 계신다.

뒷모습 / 나태주
뒷모습이 어여쁜
사람이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자기의 눈으로는 결코
확인 되지 않는 뒷모습
오로지 타인에게로만 열린
또 하나의 표정
뒷모습은
고칠 수 없다.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물소리에게도,
뒷모습이 있을까?
시드는 노루발풀꽃, 솔바람소리
찌르게기 울음소리에게도
뒷모습이 있을까?
저기 저
가문비나무 윤노리나무 사이
산길을 내려가는
야윈 슬픔의 어깨가
희고도 푸르다.

391.3m봉(14:40)
고성군 하일면 수양리 보현암 약사전이 있는
이곳이 지맥길이 통과하는 391.3m봉 정상이다

보현암 약사전(14:41~15:20)
藥師殿이란 편액이 걸려있는 보현암 약사전을 참배하러 간다.
1층에 들어서니 정면에는 문수암 주지로 있으면서 보현암을 창건하고
약사전과 약사여래대불을 조성한 휴암당 정천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복도에는 공양미와 양초를 파는 판매대가 있다...이틀후면 長兄의 기일이라
제사에 참석할 수 없어서 공양미와 양초를 사서 2층 법당으로 향한다.

2층 법당으로 향하는 길에 山神 벽화를 만난다.
지맥길에서 늘 범여를 외호해주시는 山神님께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법당으로 들어선다.

2층 법당은 약사여래불이 주불로, 우측의 문수보살, 좌측에 지장보살을
봉안한 법당이다...가지고 온 공양미와 양초를 올리고 잠시 돌아가신
큰형님의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다음에 3층으로 올라간다

보현암 약사전 금동약사여래대불(金銅藥師如來大佛)
3층에 올라서니 실내 법당이 있고 실외에는 높이 13m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금동약사여래대불이 모셔져 있는데 동양최대규모라고 한다.
약사여래에 대한 민간신앙에 따르면 어떤 병이던 그의 상을 만지거나 이름을 소리내어
부르기만 해도 효과적으로 치료된다고 하며 한국에서는 통일신라 초기부터 약사여래에
대한 신앙이 성행해 탑의 기단이나 1층 탑신에 약사여래의 권속을 조각하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거듭되는 국가적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약사여래를 본존으로 하는 기원법회가
자주 열렸으며, 오늘날에도 약사여래는 한국에서 석가모니불·아미타불·미륵불과 함께 가장 널리
신봉되는 부처님중의 한분으로 일본에서는 요즘도 천태종·진언종·선종 계통 종파들이 약사여래를
각별히 숭배하고 있으며, 약사여래는 흔히 약이 담긴 그릇을 한 손에 들고 있는 푸른 피부의 부처로
묘사되며 티베트에서는 약용 과일인 미로발란 열매를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3층 법당위에서 찍은 금동약사여래대불의 모습
이곳에서 나와 인연이 있는 모든분들에게 病이 없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三拜의 예를 올리고 3층으로 내려간다

3층으로 내려와 약사여래불을 한바퀴 빙도는데 티베트, 부탄, 네팔
불교에서만 주로 볼 수 있는 마니차가 울타리를 형성하고 있는데
집에와서 글을 쓰려고 사진을 올리는데 아쉽게도 마니차 사진이
사라져 버려 참으로 아쉽구나.

대불사 상그릴라 황금 마니차 (摩尼車, 티베트어: འཁོར་)...2019년 3월 26일 티벳가는 길에서
* 마니차(摩尼車)란
티베트 불교에서 사용하는 수행 도구로 원통형으로 되어 있고 안에는
경전을 적은 종이가 들어 있어 겉에서 마니차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경전을
읽는 것과 같다고 여겨지며, 이는 글을 읽지 못하는 신도들을 위한 것이다.
크기는 손에 쥘 수 있을 정도의 개인용에서부터 사원 등에 설치된 매우 큰 것까지
다양하며 작은 마니차는 목걸이나 염주 등과 함께 사용하기도 한다.
동티베트의 도시 샹그릴라에 있는 대불사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마니차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약사전에서 바라본 상리면내에는 면의 최고봉인 무이산(武夷山:545.6m:일명 청량산(淸凉山)
정상 암벽아래 신라 성덕여왕(聖德女王) 5년(서기 688년)에 의상조사가 창건한 문수암(文殊菴)이
있으며 문수암의 괴암 절벽사이에 새겨진 문수보현불상이 유명하며 특히 주변의 절경과
한려수도(閑麗水道)의 전망이 과히 일품으로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수암(文殊庵)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 쌍계사(雙磎寺)의 말사로, 무이산은
삼국 시대부터 해동의 명승지로서 화랑들의 수련장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하고 있는데 의상조사가 남해 보광산(普光山:지금의 錦山)으로
기도하러 가던 길에 무선리의 민가에 묵게 되었다. ..꿈속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내일 아침에
걸인을 따라서 보광산보다 무이산을 먼저 가보라고 하였다.
날이 새자, 걸인을 따라 무이산으로 가서 보니 눈앞에 수많은 섬들이 떠 있고, 남대·북대·
동대·서대는 웅장한 바가 있어 마치 오대산의 중대(中臺)를 연상하게 하였다... 이 때 한
걸인이 또 나타나서 두 걸인은 서로 손을 잡으며 바위 틈새로 사라져버렸다.
의상이 석벽 사이를 살펴보았으나, 걸인은 보이지 않고 문수보살상만이 나타나 있었다.
꿈속의 노승은 관세음보살이고 두 걸인이 문수와 보현보살임을 깨달은 의상은 이곳에
문수암을 세웠는데, 지금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의 문수상이 뚜렷이 나타나 보인다.
창건 이후 이 암자는 수도도량으로서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으나 중창 및 중건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며, 현존하는 암자는 사라호 태풍 때 건물이 붕괴된 뒤에
지은 현대식 건물이며, 이 절에서 수도한 청담선사(靑潭禪師)의 사리를 봉안하여
1973년에 세운 청담대종사 사리탑이 있다

동쪽으로 바라보니 아침에 산행을 시작한 분기점인 무량산이 아스라히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낙남정맥 능선...나뭇가지 아래로 보이는 상리면
무선리는 꼭꼭 숨어 버렸다.
경상남도 고성(固城) 지역의 옛 지명으로 문화량현(蚊火良縣)이라 불렀는데,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위치로는 고성과 사천(泗川) 사이인 현재의 고성군
상리면 무선리(武仙里)라고 하는데, 문헌상에는 신라 때 고성군의 영현이 되었다는
기록만 있을 뿐 그 뒤의 변천은 알 수 없다.
지형적으로는 남쪽에 무이산(武夷山), 북쪽에 연화산(蓮華山: 지금의 蓮花峰)이 있고
동쪽은 적석산(積石山)에서 뻗은 산줄기가 솟아 있어 서북쪽으로 상동천(上東川)을
따라 사천에 이르게 된다... 따라서 문화량은 삼면이 산지로 둘러싸인 계곡분지의
형태이므로‘넓은 들’의 뜻에 맞는 지역으로 본다.
이 지역은 해안지역에 가까우면서도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역사적으로 왜구의 침입을
별로 받지 않았으며 조선 말기까지 진주의 관할하에 있었으나 생활권은 사천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고 한다.
상리면은 면사무소 홈페이지의 연혁에 의하면 삼한시대에 성한(星韓)으로 불리었고
현재의 상리라는 지명은 고려 현종9년(1018년)에 고주(固州)가 고성현으로
격하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좌측 뾰족한 산이 통영 미륵산이고 자란도 너머로 기다랗게
뻗어있는 섬이 사량도이다... 통영시 사량며에 속하는 사량도는 약 1.5㎞의
거리를 두고 윗섬(상도)과 아랫섬(하도) 수우도의 세 개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연 20만 명의 관광객들 특히 주말이면 약 5,000명의 관광객들이 등산과 낚시를
즐기기 위해 찾아오는 섬으로 등산과 해수욕은 주로 윗섬에서 낚시꾼들은
아랫섬을 주로 찾는다
윗섬에는 육지의 산에 비해 높이나 규모는 작지만 산행코스나 암릉미에 있어서는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 지리망산(399.3m:일명사량도 지리산)이 솟아있다
지리망산(智異望山)이라는 이름은 ‘지리산이 바라보이는 산’이라는 뜻에서 유래했으며
맑은 날 정상에 오르면 지리산 천왕봉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가 지명으로 자리 잡았다.

가야할 수태산이 보이고 그 아래 보이는 건물이 보현암이다

무이산 아래에 있는 문수암, 수태산을 바라보면서 40분을 넘게
머물었던 약사전을 빠져나와 주차장으로 향한다

약사전 일주문(15:25)
현판에 해동제일약사도량(海東第一藥師道場)이란 현판이 걸려있는
약사전을 빠져나오니 주차장이 나오고, 절집에서 너무 미적거리는
바람이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학동치까지 갈 수는 있을것 같은데
서울가는 버스시간이 어찌될지 몰라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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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산행은 서울에서 참으로 먼 곳까지 와서 3시간 가까이 휴식을 취하면서
여유로운 산행을 했다...산악회를 따라다니는 맥산꾼에겐 용납(?)이
안되는 거리와 시간이지만, 볼것 다보고 즐길것 다 즐기면서 다니는
독립군 범여에겐 참으로 좋았던 산행이라 후회는 없다...다음에 한번
더오면 되지...뭔 꺽정이여...

베낭을 정리하고 고성읍내까지 어떻게 깔까 고민은 하는데
바로앞에 있는 RV차량이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기에 사정을
이야기하고 버스정류장까지 좀 태워달라고 하니, 고성읍내로
간다고 하면서 타라고 하더니 터미널까지 태워준다...복받을깁니다

고성터미널(16:20)
터미널에 도착하여 서울가는 버스표를 예매하는데 표가
18시 25분 차밖에 없다고 한다...달리 방법이 없어 표를
예매하고는 화장실에서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터미널내에 있는
분식집에서 간단하게 허기를 면한 다음에 터미널 광장으로 나와
버스를 기다리며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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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군은 본래 6가야 중 소가야(小伽倻:42?∼532)의 수도였으며, 통일신라시대에 고자군이라
불리다가 고려시대에 철성부(鐵城府)·고주·고성현으로 불렸고 조선시대에 고성현이 되었으며,
1870년(고종 7)에 부(府), 1895년(고종 32) 부제실시에 따라 진주부 고성군이 되었다.
1900년 진남군이 설치되어 도선면·광이면·광삼면이 진남군에 편입되었으며, 1906년 진주군 문선면·
남양면·영현면·영이곡면·오읍곡면·개천면이 고성군에 편입되었고 1912년 남양면이 사천군에 편입되어,
1914년 진주군으로부터 영현(永縣)·영오(永吾)·개천(介川)의 3개 면이 편입되어 14개 면이 되었으며,
1938년 고성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고성발 → 서울남부행 버스표

이곳에서 서울가는 버스는 출발지가 통영이라 그곳에서
거의 손님을 다 채우고 오기에 이곳에서 서울가는 버스를
놓치면 진주로 가야한다...운좋게 버스표를 구하여 서울가는
버스에 오르면서 짧고 편하게 1구간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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