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개 피어오르는 무릉계곡에 열두 폭 걸개그림이 걸렸다. 계절을 거꾸로 흐르는 옥계수가 용추폭포에서 실타래처럼 가는 폭포수로 쏟아지며 고요한 숲을 흔든다. 수직절벽 바위 틈에 뿌리를 내린 단풍나무에서 낙엽이 한 잎 두 잎 동심원을 그린다. 가을비에 젖어 더욱 붉은 단풍이 가늘게 흐느낀다. 저 마지막 잎새마저 떨어지는 날. 화려했던 가을의 기억은 갈색추억이 되어 숲 속을 뒹굴리라.
계곡이 얼마나 아름다워야 '무릉'이라는 이름을 얻을까?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든 무릉천을 거슬러 오르자 가을비가 마중을 나온다. 설악산 대청봉에서 시작된 오색단풍은 백두대간을 타고 준마처럼 내달려 어느새 남도 끝자락인 지리산까지 채색했다. 하지만 대청봉과 멀지않은 무릉계곡 들머리는 아직도 여름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시들어가던 나뭇잎은 오랜만에 물기를 머금어 초록색이 더욱 싱그럽다.
조선 선조 때 삼척부사를 지낸 김효원은 무릉계곡을 품은 두타산을 주유하고 "하늘 아래 산수로 이름 있는 나라는 해동조선과 같음이 없고, 해동에서도 산수로 이름 난 고을은 영동 같음이 없다. 영동에서도 명승지는 금강산이 제일이고 그 다음이 두타산이다"고 기록했다.
강원도 동해시의 무릉계곡은 김효원이 칭송한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를 흐르는 Y자 형태의 협곡. 동해안을 달리던 백두대간이 청옥산(1403m)과 두타산(1357m)을 토해내면서 그랜드캐니언처럼 깊은 협곡을 만들었다. 그 중에서도 용추폭포에서 무릉반석까지 이어지는 4㎞ 길이의 무릉계곡은 기암괴석과 폭포가 아름다워 예로부터 수많은 묵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조선시대 4대 명필로 유명한 양사언(1517∼1584)도 무릉계곡을 찾았다. 그는 용이 날고 학이 춤추듯 유려한 필체로 너럭바위에 '무릉선원 중대천석 두타동천(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신선이 노닐던 이 세상의 별천지, 물과 돌이 부둥켜서 잉태한 오묘한 대자연에서, 잠시 세속의 탐욕을 버리니 수행의 길이 열리네'라는 뜻이다. 석각은 흐르는 물에 닳고 닳아 필체의 흔적만 희미하다.
수백명이 앉을 정도로 드넓은 무릉반석에 가을이 수채화처럼 흐른다. 두타산과 청옥산에서 흘러온 단풍잎이 무릉반석을 점묘화처럼 수놓고 은쟁반을 닮은 작은 용소는 원색의 물감을 풀어놓은 듯 황홀하다. 신선이 살았다고 해도 믿어질 만큼 아름다운 무릉계곡에 시 한 수와 이름 석 자를 새기고 싶지 않은 묵객이 어디 있을까. 무릉반석을 비롯한 무릉계곡의 바위에는 수많은 시와 이름이 어지럽게 새겨져 있다.
신라 고찰인 삼화사를 지나면 두 갈래 길이 나온다. 오른쪽은 관음폭포 하늘문 문간재를 거쳐 청옥산으로 오르는 등산로이고, 왼쪽은 학소대를 거쳐 용소폭포로 가는 산책로이다. 평탄한 숲길을 걷고 단풍터널을 통과하자 오른쪽으로 깎아지른 형상의 거대한 바위가 나온다. 옛날에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다.
계곡이 깊어질수록 가을비가 굵어진다. 단풍잎에 맺힌 빗방울은 단풍 색깔을 닮는다. 붉은 단풍잎은 붉은 빗방울을 맺고, 노란 단풍은 노란 빗방울을 맺는다. 무릉계곡 좌우의 산자락에서 피어오른 운무가 솜사탕처럼 부풀어 산을 오른다. 운무 사이로 살짝살짝 모습을 드러내는 무릉계곡이 산골처녀처럼 수줍음을 탄다.
점점 짙어지는 단풍과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 오르면 거대한 장군바위가 웅장한 자태를 자랑한다. 장군바위를 마주한 철다리는 선녀탕을 가로지른다. 달밤에 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선녀탕은 칼로 두부를 자른듯 깎아지른 협곡. 행여 동화 속 나무꾼이라도 나타날까봐 선녀탕이 단풍으로 몸을 가렸다.
두타산에서 흘러내린 계곡수와 청옥산과 박달령에서 흘러내린 물이 하나로 합쳐지는 쌍폭포는 보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연출한다. 오랜 가뭄으로 수량은 줄었지만 마주보는 폭포의 위용은 여전하다. 쌍폭포를 굽어보려면 용추계곡으로 오르다 옆으로 빠져야 한다. 원근감은 덜하지만 계단처럼 생긴 폭포와 형형색색의 단풍나무 군락이 한눈에 들어온다.
용추폭포는 무릉반석과 함께 무릉계곡을 대표하는 절경. 3단폭포인 용추폭포는 바위를 파고들어 흘러내리는 모습이 절경이다. 하지만 폭포 아래에서는 3단 폭포의 위용을 감상할 수 없으므로 돌계단을 타고 5분쯤 올라가야 한다. 용추폭포가 얼마나 장관이었는지 삼척부사 유한전은 폭포 하단 절벽에 '용추(龍湫)'라는 글을 새겼다. 또 폭포 아래에는 '별유천지(別有天地)'라는 글귀도 또렷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 학자 이승휴가 은거하면서 '제왕운기'를 엮고, 영화감독 배용균이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의 촬영지로 무릉계곡을 택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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