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하고 초조합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얼굴로 열이 확 치밀어 올라 화끈거리면서
목에 덩어리가 콱콱 막히는 것 같습니다."
2남2녀를 둔 주부 박순임 씨(54)는 요즘 들어 사는 데 아무런 재미가 없고 울고만 싶다고 하소연한다.
박씨 증상은 우리나라 100명 중 4명 이상(4.2%)이 걸렸다는 화병이다.
불안한 직장생활과 반복되는 정치 공방, 여기에 무더위까지 겹치면서 비슷한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이 늘고 있다.
화병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방치하면 불면증, 우울증, 편두통, 신경성 위장병, 고혈압, 중풍, 당뇨병
등과 같은 만성질환을 부를 수 있다.
◆ 화병은 어떤 병
= 화병은 울화병, 한국민속증후군, 분노증후군 등으로 불리는 질환이다.
미국 정신의학회 정신장애 진단ㆍ통계편람에도 등재돼 있는 증후군이다.
억울한 감정을 장기간 참고 또 참으면 스트레스가 쌓여 있다가 어느 순간 불처럼 폭발하여
생기는 질환이 화병이다. 미국에서는 우울증, 심한 불안장애로 통용된다.
화(火)는 서양 의학에서 설명하는 스트레스와 밀접하게 연관이 있는 한의학적인 개념이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화는 오행(五行) 중에서 불의 성질을 가진 것으로
첫째, 양(陽)의 특성을 가져 위로 올라가려는 속성이 있고
둘째, 온몸의 진액을 손상시키며
셋째, 심장과 연관이 있고
넷째, 모든 감정과 연관을 가진다.
화병은 증상들이 다양하고 복잡하다.
화병은 기쁨, 슬픔, 화, 근심, 두려움과 같은 감정들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울체되어 생기는 것이다.
정신의학 관점에서 보면 화병은 성장기 이후 외적인 요인에 의해 감정이 불완전하게 억제되고
장기간에 걸쳐 누적되면서 발생한다
.
◆ 어떤 사람이 화병에 잘 걸리나
=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는 사람이 화병에 잘 걸리며 40ㆍ50대 주부, 직장인, 학생,
시어머니에게서 주로 발생한다.
또 스트레스에 민감하거나 화를 잘 참는 성격, 내성적이고 꼼꼼한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서 잘 발생한다.
화병은 누구나 다 겪는 것이지만 감정표출을 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라 치유되거나 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나 성격보다는 환경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최근 들어 경제난에 따른 심리불안과 생활고,
가정불화, 카드 빚 등이 주원인이 되고 있다.
화병은 전통적으로 감정을 억누르게 하는 유교문화가 주된 요인이었다.
상하 위계질서가 엄격해 억울한 감정을 터놓고 표현할 수 없는 억압적인 분위기가 화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분노, 냉소, 공격성 등에 바탕을 둔 적대감도 화병을 초래한다.
◆ 어떻게 치료하나
= 화병에 걸린 사람에게 가장 나쁜 것은 "마음을 다스려라. 네가 참아야 한다"라는 말이다.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스트레스와 연관된 질병에 걸리기 쉽다.
화병 치료법은 속에 뭉쳐 있는 화를 풀어주고 정신기능을 조절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자율신경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약물치료, 침치료, 부항치료, 향기치료, 기공치료 등을 사용한다.
약물치료로는 주로 네 종류 약을 배합해 사용한다. 열을 떨어뜨리는 청열약(淸熱藥), 기 순환을
도와주는 이기약(理氣藥), 화를 억제하고 수(水)를 도와주는 자음약(滋陰藥), 정신을 안정시키는
안신약(安神藥)을 환자 증상에 따라 적절히 배합해 치료하는 방식이다.
침치료와 부항치료는 경혈(經穴) 자극을 통해 기의 순환을 촉진하고 장부와 경락 기능에 균형을
유도해 자율신경 조절과 화를 내리게 한다.
방향성 식물을 이용한 향기치료도 있다. 방향성 재료를 오일로 만들어 가슴 주위를 마사지하거나
목욕물에 섞어 목욕을 하면 도움이 된다. 또 기공치료를 통해 제대로 순환되지 않는 기를 바로잡아
화병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 도움말=문병하 광동한방병원 부원장, 조맹제 서울대 의대 교수, 김도관 성균관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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