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정문을 통해 ‘100만 달러’가 대통령 측에 전달된 전례는 40여 년 전에도 한 번 있었다.
월남전 무렵 박정희 대통령 시절이었다.
돈을 들고 온 쪽은 당시 M16 자동소총 수출업체였던 맥도날드 더글라스 회사 중역,
돈을 받은 쪽은 박 전 대통령이었다.
데이빗 심프슨, 그가 회고한 100만 달러가 얽힌 박 대통령과의 첫 만남은 이랬다.
‘…대통령 비서관을 따라 집무실로 들어갔다.
아무리 가난한 나라이지만 그의 행색은 한 국가의 대통령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을 보는 순간 지금까지의 그의 허름한 모습이
순식간에 뇌리에서 사라짐을 느낄 수 있었다.
‘
각하! 맥도날드사에서 오신 데이빗 심프슨 씨입니다.’ 비서가 나를 소개하자 대통령은
‘손님이 오셨는데 잠깐이라도 에어컨을 트는 게 어떻겠나’고 말을 꺼냈다.
(박 대통령은 평소에도 집무실과 거실에 부채와 파리채를 두고 에어컨은 끄고 지냈다)
‘각하! 이번에 한국이 저희 M16 소총의 수입을 결정해 주신 데 대해 감사 드리고 국방에
도움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것은 저희 회사가 드리는 작은 성의…’라는 인사말과 함께 준비해온 수표가 든
봉투를 대통령 앞에 내밀었다.
‘흠, 100만 달러라. 내 봉급으로는 3代(대)를 일해도 못 만져볼 큰돈이구려.’
대통령의 얼굴에 웃음기가 돌았다. 순간 나는 그 역시 내가 (무기 구매 사례비 전달로)
만나본 다른 여러 나라의 국가 지도자들과 다를 것이 없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다시 한 번 ‘각하! 이 돈은 저희 회사에서 보이는 관례적인 성의입니다. 그러니 부디…’
그때 잠시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나에게 말했다. ‘여보시오 한 가지만 물읍시다.’ ‘네. 각하!’
‘이 돈 정말 날 주는 거요?’ ‘네. 물론입니다. 각하!’ ‘그러면 조건이 있소.’ ‘네. 말씀하십시오.’
대통령은 봉투를 다시 내 쪽으로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자, 이제 이 돈 100만 달러는 내 돈이요.
내 돈이니까 내 돈으로 당신 회사와 거래를 하고 싶소. 당장 이 돈만큼 총을 더 가져오시오.
당신이 준 100만 달러는 사실은 내 돈도 당신 돈도 아니요. 이 돈은 지금 내 형제,
내 자식들이 천리타향(독일광부)에서 그리고 멀리 월남 땅에서 피 흘리고 땀 흘려 바꾼 돈이요.
내 배 채우는 데는 안 쓸 거요.’ ‘알겠습니다. 각하! 반드시 100만 달러어치의 소총을 더 보내
드리겠습니다.’ 나는 그의 얼굴에서 한 나라의 대통령이 아닌 아버지(國父=국부)의 모습을 보았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또 한 번 청와대 정문을 통해 같은 액수인 100만 달러를 받았다는
직전 대통령 家의 가면이 속속 벗겨지면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똑같은 100만 달러를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직책의 인물 측이 받았는데
어쩌면 이렇게도 ‘감동’과 ‘치사스러움’이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일까?
똑같이 돈을 주고도 한 외국인은 애국심과 청렴, 백성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찬 지도자의 모습에
고개를 숙였고 박연차는 애국심도, 백성 사랑도 없어 보이는 지도자라 여겼을 것이기에 주저 없이 폭로했다.
‘감동이 준 존경’과 ‘경멸이 낳은 폭로’, 그 차이다.
노무현家와 박 전 대통령의 차이는 또 있다. 집안의 빚은 설사 그 빚이 아내가 따로 진 빚이라 해도
남편이 자신의 재산을 몽땅 팔아서라도 갚아 주는 것이 진정한 남자의 부부 義(의)다.
빚졌으면 봉하 저택이라도 팔면 될 것이지 되레 돈 준 사람이 딴말 한다고 시비나 걸고
외간 남자에게 빚 얻게 둔 뒤 ‘아내가 돈 받았으니 난 모른다’고 말하는 남자는 ‘참 매력 없는 남편’이다.
초급장교 시절 상관이 쌀을 보태주던 가난 속에도 일기장엔 늘 육영수 여사를 위한
詩(시)를 썼던 박정희와의 인간적 차이다. 심프슨 씨의 100만 달러 사연을 회고한 것은
핵 개발자금을 수兆(조) 원씩 퍼주고, 수백만 달러 뇌물 의혹을 받는 전직 대통령들은 무슨
도서관에다 호화로운 私邸(사저)까지 짓게 두면서,
여름날 파리채를 들고 다닌 애국자 대통령에게는 기념관 하나도 못 짓게 휘저었던
10년 좌파 세력에게 피눈물로 참회하란 뜻에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