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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역사속으로

독도는 우리 땅, 신라 장군 이사부

by 범여(梵如) 2012. 3. 6.

 

독도는 우리 땅, 신라 장군 이사부

 

 

 

2012년은 우산국 편입 1500주년


신라 지증왕이 나라를 다스린 지 13년째 되던 512년, 우산국(于山國)을 편입한 이사부(異斯夫) 장군.
내년은 신라 장군 이사부가 울릉도ㆍ독도를 아우르던 동해상의 해상왕국 우산국을 한국 역사에 최초로 편입시킨 지 1500주년이 되는 해로 요즘 한국에서는 이사부 장군의 행적을 기리는 연구가 활기를 띠고 있다.


이사부, 그는 누구인가?

우산국을 신라 땅으로 만든 장수로 그의 이름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이사부가 언제 태어나, 언제 생을 마감했는지 출생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렇지만 신라·고구려·백제의 역사적인 인물, 80여명의 이야기를 적은 《삼국사기》『열전(列傳)』을 보면 이사부의 성은 김 씨이고, 내물왕의 4대손으로 “진흥왕이 이찬 이사부에게 명하여 가야국을 습격하게 하였다”가야 정복의 선봉에 섰던 활약상이 소개돼 있다.

실제로 서기 6세기인 지증왕과 법흥왕, 진흥왕 등 3대에 걸쳐 크게 활약한 신라의 명장 이사부는 백제와 고구려가 공방을 벌이던 550년, 물고 물리는 양국의 전투를 이용해 고구려와 백제의 성을 빼앗은 지략형 장수인데, 이사부의 지혜와 용맹함이 가장 빛을 발한 시점은 512년이다.


신라장군 이사부는 어떻게 우산국을 정벌했을까?

지증왕 6년인 505년, 실직국(悉直州, 지금의 삼척)과 아슬라주(阿瑟羅州, 지금의 강릉)를 다스리는 지방 군주(軍主)로 임명된 이사부는 512년 음력 6월, 원정군을 이끌고 우산국 정벌에 나섰다.

당시 신라는 본격적으로 변방에 주를 설치하며 영역을 넓혀가던 시기로 동해 바다에 우뚝 서 있는 섬나라 우산국은 신라에게 있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요충지였다.
특히 우산국이 어떤 세력과 결합하느냐는 동해 해상권을 좌우하는 변수였다.

고구려와 왜가 손을 잡아 게 되면 신라를 압박하게 될 상황을 견제하기 위해 우산국 편입을 지상 과제로 본 이사부 장군은 힘이 아닌 지혜로 우산국을 정벌했다.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데다 지금도 높은 파도로 인해 배를 섬에 댈 수 있는 접안 확률이 40%에 불과한 울릉도와 독도.


그 지리적 특성을 요새(要塞)삼아 우산국이 좀처럼 항복하지 않자 나무로 만든 사자를 배에 싣고 가서 ‘항복하지 않으면 맹수를 풀어 멸하겠다’고 속여 협박하는 지략을 쓴 것이다.

불교 유입과 함께 불교의 수호신인 사자를 보게 된 이사부 장군은 군사 전략가로서 한반도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던 생소한 동물에 관심을 갖게 됐고 만일에 대비하는 마음으로 위엄이 서려 있는 표정의 여러 마리의 나무 사자를 싣고 우산국으로 향했는데, 그 모습에 두려움을 느낀 우산국 사람들은 즉시 항복하고 해마다 신라에 조공을 바칠 것을 약속했다.

울릉도와 독도가 우리 땅으로, 우리의 역사 속으로 들어온 순간이었다.


독도와 함께 영원히 기억될 이름

그렇게 동해안을 중심으로 세력을 강화한 신라는 한강 유역까지 진출하며 영토를 확장해 갔고 그 중심에는 이사부 장군이 있었다.


541년, 상대등(上大等)과 시중(侍中)을 겸하는 최고 관직 중 하나인 병부령(兵部令)에 임명된 이사부는 한강 유역 일대에 이어 대가야를 신라에 편입시켜 낙동강 하류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는 등 삼국통일의 기초를 세운 것이다.

그래서 충북 단양에는 549년을 전후해 신라의 영토를 크게 넓힌 그의 공적을 기록한 적성비가 세워져 있는데, 이사부 장군의 공적이 어디 삼국 통일뿐이겠는가?

우산국으로 불리던 울릉도를 신라에 편입시킴으로써 부속 도서인 독도가 대한민국의 영토라는 첫 역사적 논거를 제시한 이가 바로 이사부 장군이니 그 위업은 자랑스럽고, 더 없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