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령 땅의 어머니 산인 벽화산은 산세는 넉넉하고 여유롭지만, 조망은 인색한 편이다. 다행히 산행 중반에 확 트인 조망을 선사하는 봉우리가 나온다. 산등성이 곳곳에 진달래다. 조선시대 남명 조식이 즐겨 올랐다는 의령의 진산 자굴산이 왼쪽으로 보인다. |
![[산&산] <342> 의령 벽화산](http://news20.busan.com/content/image/2012/02/15/20120215000199_0.jpg)
사실 백두대간에서 불거진 진양기맥이 북쪽에서 담을 친 의령 땅에는 내로라하는 명산이 제법 있다.
조선의 유학자 남명 조식 선생이 하루가 멀다 하고 올랐다는 의령의 진산 자굴산이 좌장이요,
봄이면 진달래, 철쭉으로 온 산에 '불이 나는(?)' 한우산이 그 뒤를 따른다. 국사봉과 천황산 등
굵은 산들과 나란히 선 미타산도 명산에 속한다. 하여 산꾼이나 산을 조금 아는 사람들은 의령 하면
'자굴·한우·미타'를 떠올린다. 이러다 보니 벽화산을 물어보면 위치는커녕, 이름조차 생소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도 그럴 것이, 벽화산의 자리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자굴산을 지난 진양기맥이 벽화산 쪽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고 남강 쪽으로 줄행랑치는 바람에 얕은 산줄기 하나조차 대지 못했다.
이 산의 남쪽으로 낙남정맥이 산 물결을 이루지만, 남강 물줄기가 가로막았다. 정맥, 지맥, 기맥과 한
오라기의 인연도 없다 보니 태생부터 평지에 홀로 선 외로운 산이다. 인적 드문 지맥을 골라 찾는
종주 꾼들의 발길도 비껴간 산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벽화산을 '베일에 싸인 산'이라고 의문표를 단다.
하지만 의령 사람들에게 벽화산은 넉넉한 품새를 간직한 '어머니 산'이며 언제라도 오를 수 있는
아기자기한 '마을 산'이자 길과 숲이 부드러운 '인자한 산'으로 대한다.
의령군이 벽화산성을 재정비해 벽화산 알리기에 나서면서 이 산을 가본 몇몇 사람들한테서 '괜찮은' 산이라는
소문이 슬그머니 났다. 진상(?)을 알아보려는 진주, 함안 지역 산꾼들의 발길이 드문드문 이어지지만
여전히 인적이 드물어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행 코스는 단출하다. 운곡마을에서 출발해 임도를 따라 5푼 능선까지 오른다. 벽화산성을 둘러보고
349~425봉을 지나 산정에 오른다. 소나무 빽빽한 능선을 걷다 512.6봉에서 조망을 즐기고 척곡마을로
내려와 운곡마을로 다시 돌아온다. 쉬는 시간을 포함해 4시간 정도(산행 거리 9.4㎞)면 충분한 원점회귀 코스다.
몇몇 잘록이에서 다음 봉으로 가는 지점에 된비알이 있지만 그다지 사납지 않다. 가족 산행도 좋지만,
친구나 연인끼리 가도 좋은 산이다.
'동네 뒷산'에 머물고 있는 벽화산이 '의령의 명산' 대열에 합류할 날을 바라면서 운곡마을 회관에서 첫발을 내딛는다.
마을에는 중국 송대의 유학자 주자(주희)의 후손들이 20여 집쯤 산다. 몇 걸음 못 가서 척곡마을(자실)이다.
이곳에는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전략가였던 제갈량의 후손들이 10여 가구 산다.
4분 정도 걷다가 '중리로 2길' 표지판이 있는 갈림길에서 우회전해 마을길로 접어든다.
2분쯤이면 벽화산으로 연결된 임도가 나온다. 길은 산허리를 반 시계 방향으로 돌아 오른다.
굽이를 돌 때마다 벽화산의 꼭대기가 눈에 밟힌다. 15분가량 지나 임도 준공기념비를 만난다.
비에는 "마을 출신 재일교포가 '거액의 정재(淨財)'를 희사해 길을 열었다"고 적혀 있다.
비석에서 능선을 따라 10m쯤 떨어진 곳에 벽화산성 고분군 비석이 있다. 한때 능선 주변에 가야시대
고분들이 있었지만 도굴과 훼손이 심해 지금은 흔적만 겨우 남았다. 준공비에서 5분 정도 가다 보면
등산로 오른쪽에 벽화산성 동문 터와 우물터가 있다. 이곳을 지나 5분쯤 더 오르면 대숲을 지나는데,
숲이 나오면 오른쪽에 이정표가 서 있다.
벽화산성(경상남도 기념물 제64호)은 오른쪽, 산행 방향은 직진이다. 잠시 산성으로 간다.
벽화산 8~9푼 능선을 두른 약 800m의 '테뫼식' 산성이다. 삼국시대에 축성했다가 무너졌고,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망우당 곽재우 장군이 다시 쌓았다고 한다. 지난 2000년부터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산성에 서면 의령읍내가 뚜렷하고 의령천 옆에 있는 곽재우 장군을 기리는 충익사도 보인다.
안내판에 '홍의장군이 이 성에서 왜적 수천 명을 섬멸했다'고 적혀 있다.
산성에서 나와 마을 공동묘지 샛길을 만난다. 무덤 수십 개가 질서 없이 널브러져 있다.
일제 강점기 때 만들어진 공동묘지다. 의령군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전국 최초로 의병이 일어난
의령 땅의 의기와 정기를 끊으려고 일본인들이 일부러 묘지를 조성했다고 한다.
10분 정도면 묘 사잇길을 지나 349봉에 오른다.
봉우리 모양이 두루뭉술하다. 이정표의 '삼거리' 방향을 따라 5분쯤 내려서면 안부(이정표)에 닿는다.
여기서 6분 거리에 등로 바닥에 깔린 반석 지대가 나오고, 이후 425봉까지 10분을 더 간다.
등로 주변에 소나무가 빽빽하고, 바닥은 솔가리 카펫이 푸근하게 깔렸다. 한 발씩 발을 떼면 쿠션이
신발을 받치는 것처럼 보행이 편하다. 다만 솔숲에 가려 조망이 인색한 게 영 아쉽다.
425봉에서 495봉을 스쳐 정상까지 오름길이지만 숨이 찰 지경은 아니다. 약 15분 소요.
정상은 사위가 답답하다. 북쪽을 대하면 나무 사이로 자굴산이 보이지만, 여전히 갑갑하다.
'푸른빛이 난다'는 산이지만 정상의 조망은 어둑선하다.
정상에서 임도 방향으로 길은 연다. 헬기장을 지나 10분 남짓 내려가면 임도를 만난다.
이정표에서 오른쪽으로 돌아 송전탑 방향 둔덕으로 올라선다.
헷갈리기 쉬우니 산행 안내 리본을 잘 살펴야 한다.
다시 능선 길을 따라가다 10분 정도면 두 번째 헬기장에 닿는다.
여세를 몰아 5분을 더 가면 비로소 눈이 확 트이는 512.6봉에 닿는다.
지금까지 조망이 인색한 터라, 눈을 비비고 주위를 둘러본다.
북쪽으로 자굴산이 가까이에 있고, 그 능선 너머로 멀리 가야산 산줄기가 아련히 보인다.
오른쪽으로 몸을 돌리니 화왕산이 어였하다. 남쪽으론 낙남정맥의 여항산, 무학산이 우뚝하고
그 앞을 흐르는 남강과 낙동강이 실루엣을 그리며 흐른다. 하지만 서쪽의 지리산 일대 조망은 막혔다.
마을로 가는 하산 길은 산불감시초소 동쪽 끝 편에 있다.
내리막길을 따라 솔숲을 지나 15분 정도면 임도를 만난다.
임도를 곧바로 횡단해 솔숲으로 들어간다.
2분 뒤에 숲에서 나오면 감나무, 밤나무가 자라는 비탈 지형으로 내려선다.
비탈길과 만나는 갈림길에서 마을 방향으로 걷다 보면 과수원과 밭두렁 사이를 지난다.
10분을 더 가면 운곡강당 옆 솔숲에 닿는다.
강당에 잠시 들렀다. 100여 년 전 의령의 유림이 십시일반으로 만든 강당은 마을 서당이었다.
10여 년 전만 해도 벽화산 주변 마을 사람들이 여기에서 글을 배웠지만, 지금은 3월 초에 제사만 지낸다.
강당 뒤에 주자를 모신 도동사가 있다. 강당에서 마을 길로 돌아 나와 기점까지는 4분가량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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