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입멸 후 오랜 기간 불상이 조성되지 않았던 이유는
교학적 근거와 신앙적 측면의 두 가지로 파악할 수 있다.
교학적 근거를 따진다면 부처님은 입멸을 통해
육신을 버리고 아무런 형태도 남기지 않은
완전한 무여의열반에 든 존재이다.
따라서 부처님은 눈으로 볼 수 없는 존재로서
형태로 파악될 수 없기 때문에 부처님을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신앙적 측면에서 부처님은 너무나 위대한 인물이었으므로
그 형상을 보통 사람과 동일하게 나타내는 것이
스승에 대한 일종의 모독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깨달음을 얻어 무한한 덕을 간직한 성스러운 성자인 부처님을
감히 유형의 상에 한정시킨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행위라는
종교적 감성이 불상의 조성을 금기시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인해 금기시되던 불상의 조성은
대승불교의 성립과 성립과의 변화,
불자들의 간절한 신앙적 염원이 어우러져 1세기 말경부터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였다.
그러면 대승불교의 성립과 불상의 조성은 어떤 연관일 있는 것일까?
앞서 서술했다시피 부처님은 자신의 장례를 재가자들에게 맡겼다.
이후 많은 불탑이 건립되고 불탑에는 순례자들이 모여들었다.
아울러 불탑에 시주물을 보시하는 불탑공양이 성행하였는데
이 시주물은 출가자들이 관리할 수 없었다.
따라서 불탑에는 이와 같은 불물을 관리하는 비승비속의 전문가들이 생겨나
순례자들을 위해 부처님의 전생에서의 보살행을 찬탄하고
부처님의 위대성과 대자대비를 끊임없이 강조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에 의해 보살의 자각이 싹트게 되었다.
보살은 성불하기 이전의 부처님의 전생을 일컫는 말이었다.
본생담에서는 부처님이 수많은 이타행,
즉 보살행의 수행을 통해 금생에 부처님으로 이 땅에 오신 점을 강조하고 있다.
부처님의 본생담을 끊임없이 강조하던 이들은
드디어 ‘지금도 내생에 부처가 될 수행자가 끊임없는
보살행을 행하고 있다‘는 자각과 동시에
‘누구라도 보살행을 실천한다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자각은 대승사상의 원천인 이타행의 실천과
보살사상의 확대, 나아가 일체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는 가르침으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으로서의 보살과
미래불로서의 보살인 미륵보살 이외에 수많은 보살이 성립하게 되며
동시에 수많은 부처님의 존재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대승불교에서 말하는 제불보살의 개념의 원천이다.
또한 불탑 예배는 관불삼매로 인도하는 특징이 있다.
불탑을 오른쪽으로 돌며 부처님을 경배하는 것은
이미 부처님 당시에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예배하는
우요삼잡의 예로서 존재하였던 것이 불탑 예배에도 이어졌다.
순례자들은 오체투지의 예로 불탑의 요도를 오른쪽으로 돌며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불탑 앞에서 일념으로 부처님을 생각하면서
오체투지의 예배를 수없이 반복하다 보면 마음이 삼매에 들고,
그 삼매 속에서 부처님이 나타나는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관불삼매이다.
이러한 종교적 체험은 스스로 보살이라는 자각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반주삼매.해인삼매.수능엄삼매와 같은 대승의 다양한 삼매로 발전하였다.
불상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기에 관불삼매의 체험이
불상 조성의 원인이 되었으니
결국 불상은 불자의 간절한 염원과 흠모의 마음이 빚어 낸
신앙심의 정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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