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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역사속으로

세속오계를 만든 나라의 스승, 원광

by 범여(梵如) 2012. 5. 23.

 

세속오계를 만든 나라의 스승, 원광

 

 

 

원광의 가르침이 필요한 시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세상이다.


부모 자식 간의 천륜이 무너져 내리고, 생명의 존귀함을 경시하는 풍조가 만연하고, 어제까지 함께 걷던 친구가 오늘은 적이 되어있어도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연일 매스컴을 장식하는 우리사회의 얼굴을 바꾸고, 예로부터 ‘동방예의지국’이라 불렸던 본 모습을 찾고 싶다면, 이제 우리는 물질이 아닌 정신에서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효로 부모를 섬기고, 믿음으로 벗을 사귀고, 생명을 귀히 여기라’
천년 지난 현재에도 인류가 지켜야할 보편적인 가치를 담은 <원광>의 가르침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때다.

왕족의 피를 물려받은 원광
<삼국유사>에는 중국의 여러 문헌을 인용하여 원광의 생몰연대를 추정할 자료를 나열하고 있는데, 99세 혹은 84세에 사망하였다고도 하고, 99세가 되는 해를 두고도 두 가지 설이 있다. 심지어 삼국유사를 쓴 일연조차 “정관(貞觀) 연간에 나이 80여 세로 돌아가셨다”는 정확치 않은 표현으로 원광에 대한 설명을 마감하고 있다.


그나마 삼국사기에서는 진평왕 11년이었던 589년 3월, 진(陳)에 들어가 불법을 탐구하였다는 소식밖에 알려주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화랑세기>의 저자 김대문은, 이 책에 자신의 큰할아버지인 원광에 대해 자세한 출생담을 남겨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법흥왕의 부인이었던 지소태후에게는 숙명공주라는 딸이 있었는데 본디 진흥왕에게 시집을 갔던 숙명공주가 화랑도의 초대수장이었던 위화랑의 아들, 이화랑에게 마음을 주고 만다.


둘이 함께 도망 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이 아들이 바로 원광이라는 설명이다. 원광의 출가는 이런 출생의 비밀에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서쪽 유학의 길을 열다
생몰연대는 명확치 않지만, 원광이 중국으로 유학을 떠난 때는 삼국유사에 나온 진평왕 11년인 589년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으며 이때의 나이는 34세로 짐작된다.

원광이 출가한 해는 그의 나의 13세때였다고 알려지고 있다. 도교와 유교를 두루 섭렵하고, 경전과 역사서를 함께 연구했던 원광은 이미 신라에서도 그 명성이 드높았다. 허나 스스로를 우물 안 개구리라 여기며 좀 더 넓은 학문의 세계를 갈망했던 원광은 중국 유학의 길에 오른다.

이후 원광은 곳곳에서 의문을 가졌던 문제들을 물으며 그 뜻을 풀어갔다. 그러던 중, 장엄사라는 절에서 강설을 듣게 되는데, 세간의 전적(典籍:서적)들을 읽으면서 거기에 이치가 다 있다고 여겼던 원광은 불교의 종지(부처님이 모든 법을 다 아는 지혜)에 대해 듣고 마치 긴 잠에서 깨어난 듯 눈이 활짝 열렸으니, 세간의 전적들은 오히려 썩은 지푸라기처럼 여기게 되어, 갖가지 경전과 논서를 두루 탐구하였다.

푸른 하늘에 생각을 두다
중국 땅에서 해야할 일을 모두 마쳤다고 판단한 원광은 진평왕 22년(600년)에 신라로 돌아왔다.


원광이 여러 해 만에 돌아오자 노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기뻐하고, 왕이 만나보고 마치 성인을 대하듯 경건히 했다고 삼국유사는 기록한다.


원광은 신라에 대승 불교를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을 쏟았고, 여래장경사기와 대방등여래장경소를 지어 신라에 새로운 불교 지식을 전하는 한편 자신의 사상을 일반 대중에게 전파하기 위해 복잡하고 어려운 용어를 사용하기보다 평범하고 쉬운 말로 표현했다.


후학 양성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고, 시주받은 재물은 모두 절을 짓는 데 쓰도록 했다. 원광의 최후에 남은 것은 오직 가사와 바리때뿐이었다.

 

시공을 초월한 가르침, 세속오계(世俗五戒)

<사군이충, 사친이효, 교우이신, 임전무퇴, 살생유택>

단지 불교만이 아니라 뭇 사람의 사표(師表)가 될 가르침으로, 시공을 초월해 깊은 뜻을 전하는 원광의 <세속오계>는 두 화랑이 일생을 두고 경계할 금언을 청하자, 알려준 가르침이다.


원광의 ‘세속오계’는 뜻하는 바가 구체적이고, 유교와 불교의 덕목을 합치하였고, 나라의 스승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의의가 있다.


신라 불교의 특징을 만들어 정착시키고, 푸른 하늘에 뜻을 두어 길을 열었던 원광은, 시공을 초월한 깊이 있는 가르침으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참된 방향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