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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중랑(수락)지맥(終)

수락지맥 제1구간 - 무림리 고개에서 덕릉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2. 7. 2.

산행일자 : 2012. 07.01

산행날씨 : 흐린 날씨에 짙은 박무, 높은 습도로 인하여 무지 더움

 참석인원 : 나홀로 산행

 산행거리 : 도상거리 : 17.2km+어프로치 1km /  G.P.S 20.6km / 9시간 30 분 소요
산행코스 : 무림리고개-중랑(수락)지맥 분기점-임도-235m봉-21번 송전탑-용암산-
수리봉 갈림길-감시초소

                  320m봉-242.4m봉-비루고개-294m봉-301m봉-48번 송전탑-도정산(깃대봉)-도정약수-박수고개

                  161m봉-숫돌고개-사기막골 고개-250m봉-360m봉-485m봉-450m봉-기차바위 우회길-608m봉

                 수락산-620m봉-565m봉-도솔봉-374.6m봉-24번 송전탑-305m봉-51번 송전탑-덕릉고개

☞소 재 지:   경기도 의정부시 / 포천시 소흘읍 / 남양주시 별내면 /  서울 노원구

 

 

104년만의 가뭄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있는 大地에 토요일에 완전한 해소는아니지만 꽤나 많은 비가 내려서 그나마 다행이다.

기상변화로 인하여 생활패턴이 자꾸만 변해만 가는데 가장 둔감한쪽이 우리 인간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다.

지난 6월 3주에 시골에 초딩이 동창회 참석하는 바람에 팔공기맥 3구간 빠진 구간에 땜방을 하려고 계획을 했는데

남부지방에는 일요일 오전까지 비가 온다는일기예보로 인하여 포기를 한다.

사실 팔공기맥은 독립군(나홀로 산행) 산행이그리 쉽지가 않은 곳이다. 영천시 화북면에는 오지라 교통과 식사가

마땅찮고 당일 산행은 어렵기에 결국 비박을 해야하는데 침낭에다가 식사를 3끼나 해결해야 하기에엄두가 나질 않는다. 

비박이야 요즘 시골에 가면 많이 있는 팔각정이나 학교 교실의 처마밑에 자면 되지만 이젠 우중산행과 야간 산행은

자꾸만 싫어서 다음으로미루고 서울 근교의 지맥 산행을 하려고 찾아보니 가장 가까운 곳이 중랑(수락)지맥이다.

 

 새벽에 일어나 샤워를 마친 다음에 혼자 주섬주섬 도시락을 싸서 집을 나서는데안개가 자욱하다.

강남구청역에서 도봉산가는 지하철 7호선이 첫차가 05시 50분이다.도봉산에서 1호선 열차를 갈아타고

의정부역에 도착하니 시간은 벌써 7시가 다 되어간다. 

 

역에서 내려 지난번 한북정맥 구간때에 몇번 이용했던 김밥집에 들려 아침식사를하려는데

이른 새벽인데도 손님이 굉장히 많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식사를 마치고나오니 8시가 다 되어간다.

길을 건너 광릉내가는 21번 버스에 오른다.

중랑(수락)지맥 개념도 

한북정맥 죽엽산과 덕고개 사이에 위치한 축석령 부근에서 분기한 산줄기로 용암산, 깃대봉(도정산),

수락산, 불암산, 망우산, 아차산 등을 일으키고 중량천이 한강에 합수하는 곳에서 그 맥을 다하는 지맥이다.

산줄기를 사이에 두고 좌측으로는 중량천이, 우측으로는 왕숙천이 한강으로 흘러 들어 합류를 하고, 광나루

인근에서 맥이 다하는 중량천과 한강의 합수하는 곳까지는 도시화로 마루금이 사라져 의미가 없어 통상적으로

광나루역을 깃점으로 하는 도상거리 약 38km(실제 약 42km)의 산줄기이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수락산-불암산 세밀도]

 

도봉산역(06:40)

지하철 7호선을 타고 도봉산역에서 내려 1호선으로 환승을 한다.

 지하철도 버스처럼 새벽 4시반 이전에  운행을 했으면 한다.

잠시후에 열차를 타고 의정부역으로 향한다.

의정부역(07:15)

오랫만에 의정부역에 내리니 천지개벽이 된 느낌이다.

엄청나게 긴 긴 지하통로는 지저분한 느낌이지만 밖을 나오니

驛舍에 신세계 백화점이 턱하니 버티고 서 있어 위압감을 느낀다.

 

의정부(議政府)의 지명유래를 보면

조선 제3대 태종이 방번(芳蕃)과 방석(芳碩)을 살해하고 소란을 일으키자 태조는

불충불의(不忠不義)한 자와 함께 살 수 없다고 하여 함흥(成興)으로 옮겼다.

 이후 태종은 여러차례 사자(使者)를 보내어  용서를 빌었으나 태조는 사자를 감금,

살해하고 돌려보내지 않았다.

함흥(威興)의 사(使) 또는 함흥차사 라는 말이 이때부터 생겨났다

그러나 그후 태조는 화가 누그러지는 듯하면서 태종 2년(1402) 12월에 지금의

 의정부까지 돌아오게 되었다. 태종은 부왕을 맞으려고 천막을 치고 잔치를 베풀었다.

 그러나 태조는 활의 명수이기 때문에 중신 하륜(河崙)은 부왕 태조가 반드시 태종을

 해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천막에 큰 기둥을 많이 세웠다. 그 결과 태종은 순간적으로

기둥 뒤에 몸을 피하였기 때문에 다행히도 부왕의 화살을 맞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곧 잔치가 시작되자 태종은 헌수(獻壽)'의 뜻으로 친히 부왕 태조에게 잔을 올려야만 하나,

이 또한 하륜의 지략으로 하륜 자신이 잔을올렸다고 한다. 이리하여 태조는 결국 한양으로

 돌아가지 않고 지금의 의정부지방에 장기간 머물렀다고 한다.

의정부 3정승을 포함한 각 대신(大臣)들은 한양보다도 지금의 의정부로 와서
정무(政務)를 의논하고 결재를 태조에게 받았기 때문에 의정부라는 지명이 생겨났다고 전한다

 

의정부역 동부광장(08:05)

김밥집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길을 건너서 광릉내가는 21번 버스를 기다리는데

5분정도 지나니 버스가 와서 타고 20분만에 축석고개를 지나서 들머리에 도착한다. 

무림리 고개(포천시 소홀읍소재:08:30)

고개 정상에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삐노꼴레’라는 레스토랑 있고 이곳에

내려서 장비점검을 한다. 그런데 스틱하나가 사고를 친다.

조임장치를 조이는데 조임장치인 플라스틱이 툭하고 깨져 버리네...

참으로 난감하다. 습관상 스틱이 없으면 한발자국도 안 움직이는 스타일이라...

산행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새벽에 나선게 아까워서

가는데 까지 가보자 생각을 하면서 산행을 시작한다. 

삐노꼴레에서 축석고개 방향으로 가다가 좌측 철조망을 끼고 등로로 올라선다.

이곳은 한북정맥구간이라 상당히 안면이 있다... 2년전에 걸었던 길이기에

등로 능선에 올라서 좌측의 삐노꼴레, 우측에 농장 철조망을 끼고 걸어간다.

조금 지나가니 좌측으로 마을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도로가 나오고 직진을 한다.

아침이슬을 머금은 석잠풀은  수줍은 색시처럼...

중랑(수락)지맥 분기점(08:40)

들머리에서 10분만에 수락지맥 분기점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가면 한북정맥이고 좌측은 중랑(수락)지맥이다.

정맥길에는 안면이 있는 시그널이 많이 보이고 좌측 지맥길은

길이 거의 보이지 않은 정도로 인적이 드문 곳이다.

아예 길이 보이질 않고 쓰러진 잡목과 잡초로 인하여 걷기가 불편하다.

거기다가 포식자인 거미들이 쳐놓은 거미줄이 얼굴에 자꾸만 감긴다.

조금을 진행하니 낙엽속에 뚜렸한 등로가 나타나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조금을 진행하여 내림길로 들어서니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지맥 갈림길에서 10분도 걷지 않았는데 바지와 신발은 다 젖어 버렸다.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면 마을 어귀로 내려선다.

사이딩 판넬로 지은 조립식 건물이 나타나고 곧 이어 마을도로가 나온다. 

도로를 따라 우측으로 이어지는데 지맥길인지 확신이 안선다.

무림리 중말의 모습(포천시 소홀읍 소재)

포도밭을 지나고 논두렁을 지나서 산길로 접어든다.

무림리의 모습

산 아래에 전원주택의 모습

235m봉(09:15)

235m봉에 올라서니 그저 평평한 봉우리에 아무런 표시도 없다.

좌, 우로 길이 나있으나 중랑(수락)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235m봉에 올라서니 하얀 백구 한마리가 유유히 산책을 한다.

주인도 없고 혼자서 여유롭게 마을로 내려가고 있다.

235m봉에서 살짝 내리막 안부 능선을 걷는데 이곳은 간벌작업이 한창이다.

간벌작업을 하면서 산허리에는 새로운 임도가 생겨났다.

임도(09:25)

경기도 포천시 소홀읍과 의정부시 낙양동을 잇는 옛고개로 희미한

임도가  보이고 고개에는 성황터의 흔적같은 돌무덤이 있다.

지금부터는 신경을 바짝쓰인다. 이 지역부터는 국립수목원 관리지역이라

걸리면 10만원 과태료에다가 등로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해야 하기 때문에...

이 지역을 들어오지 말라는 경고문구가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만 바스락거리는 소리만 나도 나무뒤로 숨어면서

걸어가는 내 몰골이 우습기만 하다. 어떤때는 내 발자국 소리에도 놀란다.

21번과 24번 송전탑을 지나면서 본격적으로 단속구간에 접어든다.

경고판 플랑카드가 걸려있는 안부 능선에서 서서히 고도를 높혀간다.

이곳은 사람들이 다니지 않은 탓인지 각종 이름모를 새들이 합창을 한다.

그리고 꿩들이 많이 보이고 가끔은 노루가 놀라서 달아나기도 한다.

밀림처럼 빽빽한 소나무 숲을 치고 오르는데 길은 보이질 않는다.

어쩌면 내가 중랑(수락)지맥 개척자처럼 가야만 하는 곳이다.

된비알을 치고 올라가니 군부대 벙커가 보이고 개발제한구역 말뚝도 있다.

국립수목원의 빽빽한 소나무숲

안부 능선의 희미한 등로에는 이렇게 길을 막아놓았고...

안부 능선에는 ‘林이라는 표시석도 보이고...

다시 또 길이 없는 길을 만들어서 숲속을 치고 올라간다.

처음보는 개구리도 만나고...

용암산 삼각점

용암산(龍岩山:476.9m:10:05)

경기 포천시 소흘읍, 남양주시 진접읍, 별내면, 의정부의 경계로 일명 소리봉 또는 물푸레봉이라고 한다. 한북정맥의 수락지맥으로, 수리봉(536.8m)과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다. 산 이름은 산에 바위가 많고 산의 능선 모양이 용같은 모습이며 또는 속설로 용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하여 용암산으로 불리어 졌다. 골짜기에 물푸레골이 있으며, 상봉에 있는 긴 등성이를 긴등이라 하고, 그 골짜기가 긴등골짜기다.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통신시설물이 있고 오른쪽으로 계속 내려가면

광릉 국립수목원의 전망대가 있는 임도(林道)에 닿는다.

남양주 경계로는 광릉수목원이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에 광릉, 봉선사, 휘경원,

 크낙새 서식지, 밤섬유원지 등관광지가 있다 .

 

국립수목원 내에 위치하고 있어서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곳이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 이곳에서 단속요원에 걸려 신분증을 제시 당하고

벌금 딱지를 발부받고 등로에서 쫓겨난 것을 읽었기에... 조심스레 주위를

둘러봐도 빨간모자 아저씨는 보이지 않는다.  아니~~~ 이런 횡재가...

조금을 내려서니 좌측에 임도가 나타나고... 이곳에서도 나무뒤에 몸을 숨기며

빨간모자 아저씨(단속요원)의 동태를 살폈건만 보이질 않는다. 이 분들이 어제

비도오고 하니까. 집에서 쉬는 모양이다. 이걸두고 부처님의 가피의 위신력일까 ㅋㅋㅋ

편안한 숲길에 낙엽이 잔뜩쌓여 푹신한 느낌으로 걸어간다.

이곳도 제선충이 심한 모양이다. 나무에 노란 비닐을 감아놨다.

조금은 된오름을 오르니 군부대 벙커가 보이고...

안개는 거칠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등로를 빠져 나오니 갑자기 산불이 난 지역이 나타나고... 나 역시 완전히 노출되는

바람에 어디 음폐물이 없어서 숨을곳이 없어진다. 이곳에서 엎드려 저멀리를 쳐다봐도

아무도 보이질 않는다. 이젠 과감하게 걸어간다... 걸려도 할 수 없지 뭐.

산불로 인한 피해는 상당히 커 보인다. 아주 잘 생긴 소나무들의 피해가 많다.

민둥산의 등로를 걸어간다.

산 아래 남양주시 별내면 제정말 동네도 안개에 휩싸였고...

저 건너 수락산은 완전히 오리무중이다.

여기만 통과하면 끝인 모양이다.

산불감시요원 초소(10:50)

중랑(수락)지맥 산꾼들에게는 저승사자같은 존재인 빨간모자 아저씨들의

아지트에는 텅비어 있다. 이곳 의자에서 5분정도의 휴식을 취하고

좌측의 급경사로 꺽어져 내려간다.

감시초소에서 좌측의 급경사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산불난 지역을 뒤돌아보고 도정산으로 향한다.

마지막 경고문구를 지나고...

경고문이 적힌 프랑카드를 지나니 뚜렸한 등로가 나타난다.

어제의 비바람으로 인하여 나무들이 많이 뿌러졌다.

320m봉(11:05)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안부에 피어있는 망사버섯

어제 내린 비로 인하여 망사버섯이 참으로 이쁘게 피어있다.

그러나 이 놈은 아주 화려하나 독성이 강한 버섯이다.

순흥 안씨와 의성김씨의 합장묘도 지나고...

우측에 있는 묘지群에는 후손들이 묘지손질이 한창이다.

아주 잘익은... 빨갛다못해 검정색을 뛰는 산딸기를 따서 입에 넣는다.

어제 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단맛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224.2m봉(△ 성동 413 1994 재설)

비루고개 가는 길에 만난 삼각점은 등로 한가운데 있다.

비루고개(11:30)

경기도 의정부시 고산동과 남양주시 별내면의 경계 지점이기도 하다.

산 능선 부근에 자리한 마을은 '별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고개'라는 뜻에서 '별의 고개'에서 벼루개,

비루개로 전해지며 비루개마을 뒷산 봉우리가 비루개봉으로 불린다. 좌측의 별내면 쪽에 비루개 식물원이 있다.

고개에는 성황당의 흔적이 보이고 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희한하게 생긴 밤나무

294m봉 올라가는 길에는 양쪽으로 로프가 매달려 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산에서 사람을 만난다.

40대 중반의 여인 2명이 내려오면서 인사를 건내온다.

294m봉(11:40)

이곳에서 동남쪽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조금 내려서니 좌측에 꽤나 큰 고추밭이 나타난다.

나무사이로 비루개 식물원도 보이고...

검은 비닐막을 쳐놓은 밤나무단지도 나타나고...

301m봉(11:50)

이곳에 오르니 50~60대의 남.여 등산객들이 10여명이 모여서 왁자지껄이면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어디서 오느냐고 하면서 막걸리 한잔을 권한다.

마치 배고픈터라 걸쭉하게 한잔 얻어 마시고 우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연달아 48번과 47번의 송전탑을 만난다. 

이 지역 능선의 좌측에는 아주 울창한 소나무 군락지이다.

이 아래의 마을에서 올라온 듯한 등산객들이 가뭄에 콩나듯이

가끔씩 보인다. 서서히 배가 고파오기 시작한다.

友愛좋은 兄弟인지... 금술좋은 부부인지 알 수 없는  떡갈나무도 만나고...

도정산 삼각점

송전탑을 지나 편안한 안부를 따라서 꽤나 걸으니 지도상에 깃대봉으로

표시되어 있는 도정산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간식을 먹으며 10분간 휴~식

오늘 간식으론 빵하나와 커피, 우유이다.

도정산(道正山:289m:12:30)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과 의정부시 산곡동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금강산 분수령에서 운악산쪽으로 뻗어 내려온 한북정맥의 한 갈래로 수락지맥 속한다. 현재 국립지리원 지형도에는 산명이 깃대봉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일제시대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지질 조사 및 토지 측량을 할 때 정수리에 깃대를 세워 놓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통용되었던 지명이다.

 그러나 이 지명은 역사적 유래가 분명하지 않고 일제 통치시대의 잔재이므로 정통성을 위해서

 옛 지명인 도정산으로 바로 잡는 것이 옳을 것이다.

 

참으로 늦은감이 많다... 이 땅의 일제 침략기에 수탈정책으로 인해생긴 깃대봉이란  이름이 얼마나 많고 많은가.그럼 힘든 경험과 빼아픈 역사를 간직하고서도 아직까지 우리의역사의식은 정말 형편없는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영,수만 치중하고역사같은 과목은 자꾸만 빼버리는 이 나라의 교육현실... 정말 멍청하기 그지없다.주변국들은 어떤가? 일본은 끊임없이 독도를 자기땅이라고 우기지 않나.중국은 또 어떤가?만주 벌판에 있는 우리의 고구려와 발해역사를 왜곡하는데 혈안이되어있는 동북공정에 과연 관심이나 갖고 있는가?거기다가 이어도까지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할 판인데도 우린 태평하기 그지없다.국가 공무원을 선발할 때 가장 우선시 되야 할 분야가 역사과목이 아닌가 싶다.

 

 이 산은 구한말 때에 조선을 침탈하려고 밀려오는 외세를 보고 이를 물리치기 위해서는 도를 바로 세워서

 개벽된 세상을 열어야 한다고 주창한 정갑성이 여기에 은거하여 수도하며 활동하여 생긴 이름이다.

 따라서 이 산명은 난세를 구할 참다운 진리(道)를 바르게(正) 깨달은 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산의 정상 가까이에는 처사 정갑용이 은거했던 초막 집터가 있었으며

 산 아래에는 경주 이씨와 의령 남씨가 오래도록 주거해온 집성촌이 있다. 

도정산에서 간식을 겸한 10분간의 휴식을 취하고 등로를 걷으니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등로를 꺽어서 내려간다.  다시 편안길을 올라서다 내려가고를 반복하니

약수터 →0.2km라는 팻말을 따라 우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조금 내려오니 도정 약수터가 나온다.

도정 약수터(12:50)

약수터에는 물을 뜨는 사람이 꽤나 보인다. 가뭄탓인지 물은 애기오줌보다도

더 적게 나온다. 물뜨는 분에게 양해를 구하고 물 한잔을 마시는데 물맛은 좋다.

약수터 주위에는 각종 운동기구들이 즐비하지만

날씨 탓인지 운동하는 사람은 한,두명에 불과하다.

이곳은 세갈래의 길이 있는데 숫돌고개로 이어지는 길은 가장 우측이다. 

약수터를 빠져 나오니 밤나무단지가 나타나는데 우측에는 펜스가 처져있고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곳은 곧장 가나 그냥가나 금방 만나는 길이다.

잠깐 사이에 전망이 보이는데가 나타나는데 좌측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 아파트 단지가 시야에 나타난다.

 박수고개(13:05)

박수고개가 나타나고 다시 오름을 시작다.

좌측에는 철조망에다가 검은 차양막을 쳐놓은 농장을 끼고 올라간다.

그 안에 영지버섯같은 것이 보이는데 꽤나크다.

見物生心이라... 욕심이 나지만 이것도 남의것이라...

다 부질없는 짓거리다. 부처님께서 貪慾을 버리라고 했거늘.

꽤나 큰 영지버섯(?)

161m봉(13:10)

161m봉 아래에는 군용 벙커가 있고 봉우리 위에는 환기구가 있다.

그리고 바닥에는  군용 삼각점이 보인다. 이곳부터는 차량소리가 시끄럽다.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43번 국도가 지나가는 숫돌고개가 나온다.

숫돌고개 의정부 방면(13:17)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면 청학리와 의정부시 산곡동을 연결하는

43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시 경계표시인 해태상이 설치되어 있고

戰時에 탱크를 저지하는 방호벽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은 교통량이 많은 곳이지만 최근에 뚫린 서울외곽고속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예전에 비하여 상당히 교통량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숫돌고개 남양주시 방면

길을 건너서 청학리 방향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좌측에는 모텔촌이 있고 저 멀리 청학터널이 보인다.

방호벽을 지나서 우측으로 가면 수락산 유원지로 빠지면서

덕릉고개로 넘어가는 예비군 동원부대 쪽이다.

이곳도 서울과 가까워서 예전에 비하여 桑田碧海가 된 느낌이다.

수락산 유원지 램프로 빠져나와 우측의 능선으로 접어든다.

능선에 접어드니 길은 없고 이곳도 뭔 개발을 하려는지 깃발만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청학리의 모습

길은 보이고 않고 아카시아를 비롯한 잡목들이 태클을 건다.

그 와중에도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반갑기만 하다.

숫돌고개를 돌아서 철책선을 타고 내리니 10분 조금 넘게 걸려 도로로 내려선다.

舊 숫돌고개(13:30)

이곳이 오리지널 숫돌고개이다. 이곳은 의정부에서 수락산 유원지 가는 길이고

조금 지나면 예비군 훈련장과 덕릉고개, 그리고 상계동으로 가는 길이다.

도로를 올라서니 좌측에 군부대 철조망이 나타나고  군시설물이 계속 보인다.

군부대 시설물을 따라서 된오름을 시작한다. 바람한 점 없는 날씨탓에 옷에는

땀이 물 흐르듯이 계속 흘러내린다. 스틱을 사용하지 않은 탓인지 자꾸만 힘이 부친다.

176m봉(13:45)

군 시설물과 벙커를 치고 오르니 이곳도 군부데 시설물이 점령한 176m봉이 나온다.

이곳에서 조금 내려오니 군 헬기장이 나타난다.

군부대 헬기장

헬기장에서 목이 말라서 스포츠 음료를 꺼내서 마시면서

5분정도의 휴식을 취한다. 본격적인 수락산으로 접어든다.

옅은 안개속에서도 수락산이 보일듯말듯 애간장을 태운다.

헬기장에서 군부대 도로를 따라 잠깐을 내려오다가 우측으로 꺽어져

산속으로 접어든다.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수락산 입산을 환영하는 듯...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지맥길 제대로 가고 있음을 입증한다.

사기막고개(13:55)

경기도 남양주시의 별내면 청학리에 위치한 고개로 사기를 굽던 막이 있어서 '사기막'이라고 불린다.

이 마을에 '마당바위'가 있어서 '마당바위마을' 또는 한자식 이름인 '장암'이라고도 불린다.

마당처럼 넓고 평평한 바위라서 '마당바위 또는 장암'이라 불리는데, 바위의 모양이 중간은 굽었고

좌우는 넓기 때문에 빗물이 잘 빠져, 항상 사람들이 앉을 수 있다.

수락산으로 올라서니 우측에 너덜지대도 보이고...

등로상에 설치된 군용 삼각점

멋진 암릉미를 자랑하는 수락산의 암릉들

이 수락산도 어김없이 송전탑이 지나간다.

이곳부터는 등산객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다른 사람들은 하산하기 시작하는데 나는 이제 올라간다.

멋진 암릉에서 등산객이 사진을 찍어주는데 옆 사람의 베낭이

작품을 완전히 버려 버렸네그려

송전탑을 지나니...

암릉을 타고 올라가야하는 로프가 나온다. 이곳 수락산은

서울근교에 있는 산으로 북한산, 도봉산에 절대 뒤지지 않는 멋진 岩山이다.

우락부락한 근육질에 남성미를 자랑하는 멋진 수락산을 4년만에 와본다.

늦은 점심시간(14:25~40)

오늘은 도시락을 싸왔다. 내가 텃밭에서 농사지은 고추와 상추...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방울 토마토와 평소에 나한테 너무

잘해주는 울동네 쌍계한의원 최원장이 약초로 담근 술을 주는 걸

가지고와서 먹으니 약초향이 정말 기가 막힌다... 근데 조금 독하다.

15분간의 만찬을 끝내고 수락산 정상으로 향한다.

식사를 마친 다음에 수락산 정상으로 향하는데 멋진 암릉이 반갑게 맞이한다.

바위 사이에 힘겹게 살아가는 소나무.

나는 너를 이해한다... 세상사가 얼마나 힘이드는지...

의정부 민락동으로 뻗어나가는 수락산의 봉우리

렌즈로 당겨본 내원암(內院庵)

수도권 시민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고 있는 수락산에는 ‘경기도의’의 갓바위라는

별칭을 얻고 있을만큼 수많은 기도 영험담을 갖고있는 기도도량 내원암이 있다.

미륵부처님이 상주하시는 곳. 도솔천 내원궁에서 그 이름을 따온 내원암은 수락산

중턱에서 조금 더 올라간 비교적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불교 경전속의 내원궁의 묘사가 그러하듯 내원암도 사방이 시원한 곳에 자리잡고 있다.

 

내원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 말사이다.

 내원암은 비구니 도량으로 꽤나 역사가 깊은 사찰이다.

내원(內院)이란 도솔천에서 석가모니불이 입적한 후 56억 7천만년 뒤에

사바세계로 내려와 중생을 구원할 미륵불이 계시는 곳이 도솔천 내원궁이다.

 

이곳 내원암에는 실물로는 볼 수 없으나 경기도 유형문화재 197호로 지정된 괘불이 있다.

괘불은 중앙에 석가모니불과  그 아래에는 관세음보살 그리고 좌, 우에는

아난존자와 가섭존자가 그려져 있다. 법회나 큰 행사에만 내건다고 한다.

내원암은 성절이라고 불리어 오던 절로 조선 후기에 왕실의 도움으로 사세를 확장시켰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후사가 없던 정조는 대구 팔공산 파계사의 승려인 용파대사로

하여금 내원암에서 기도를 올리게 하여 후궁인 수빈 박씨에게서 순조를 얻었다고 한다.

그로 말미암아 왕실과 관련을 맺은 내원암은 이후에도 왕실의 내탕금으로 여러 당우들을

중수하는 등 불사를 이어왔다. 이러한 영험 때문인가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내원암을 찾는다.

내원암에 오르는 228개의 좁고 높은 돌계단. 성절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많은 인내가 있어야

 하지만 모두들 주저함이 없이 올라간다. 그 이유는 아마도 정상에 올라서면 부처님과

 함께 할 수 있는 희열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내원암은 《봉선사본말사지》에 신라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나와 있지만,

사찰의 면모를 온전히 갖추기 시작한 것은 조선 후기부터로 1794년(정조 18)부터

왕실의 적극적인 후원과 승려들의 노력으로 사세가 점차 번창하였다. 1

794년 조정의 지원으로 내원암 서쪽에 칠성각을 지었으며, 1796년 사성전을 건립하였고 1

825년에 지족루를 새로 지었다. 이어 1880년(고종 17)에는 조정에서 내원암의 모든 전각을 중건하였다.

 이후 1950년 한국전쟁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나 1955년부터 다시 옛 모습을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비구니 성민스님이 칠성각과 요사·대방을 신축하였으며, 1968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건립하였다.

그 후 영산각과 요사 2동이 지어졌고 미륵전을 복원하였다.

등로에서 바라본 의정부시 용현동과 민락동의 모습

우회로를 내려오니 쥐오줌만큼 흘러내리는 藥水에 목을 축이고...

수락사 서쪽 능선(큰골안부 능선)의 모습

수락산 지형은 서울 한강 이북의 여느 산과 마찬가지로 마사토로 형성되어 미끄럽다

기차바위 우회로(15:30)

608봉m(15:40)

정상에는 수락산에서 가장 높은 헬기장이 있다

헬기장에서 조금을 더 진행하니 석천동 계곡에서 올라오는 등로와 만난다.

이곳에는 뿌리까지 다 들어난 소나무가 안쓰럽게만 보인다.

이곳에서 창원 산내들 산악회  이정표지판이 보인다.

참으로 경상도 사람들의 산사랑 정말 대단해요.

그런데 이건 아니네요. 산이란 우리가 후손들에게 잠깐 빌려쓰는거지.

우리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오늘 후미대장님이 불참하셔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표지판이 불암산 입구 덕릉고개까지 계속 깔려있네요.

 

흔히들 산꾼들은 산에서는 자기 발자국도 남기지 말라고 했거늘

자기 일행이 다 지나갔으면 이정표는 후미대장이 회수하여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하는게 산악회의 도리이거늘... 이건 좀 보기가 그렇네요

의정부 장암지구와 상계동은 지금 오리무중 

수락산 정상의 태극기

산 정상에서 태극기를 만나니 가슴이 뿌듯하다.

내가 십몇년 전에 스리랑카의 조그만 도시 간달라마의 작은 호텔에서

태극기를 보고 조국의 소중함을 깨달은 적이 있었는데 요즘 모 정당에서

종북논란을 불러 일으킨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애국가를 부정하고 국기에

대한 경례도 안한다는 소식을 접한적이 있다. 도대체 국회의원이 뭐하는

자리인가 명색이 국민의 대표라자는 자가 국기와 애국가를 부정한단 말인가?

이런자가 국회의원이라니... 참으로 나라꼴 잘되어간다. 국민들을 뭘로보고...

수락산(水落山:638m:15:50)

경기도 의정부시와 남양주시 별내면 서울 노원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도봉산·북한산과 마주보고 있으며, 남쪽 능선은 덕능고개를 중심으로 불암산과 이어진다.

산세는 비교적 험하지 않으며, 중랑천의 지류가 발원한다. 기반암은 화강암이며, 암벽이

 곳곳에 드러나 있어 수림이 울창하지 않다. 동쪽 사면의 금류계곡에는 금류동(金流洞)·

은선동(隱仙洞)·옥류동(玉流洞) 폭포가 있으며, 정조 때 300일 기도를 올려 순조의

 탄생을 보게 했다는 내원암(內院庵)이 있다. 이 암자의 법당 뒤에는 고려시대 이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2m의 석조미륵입상(石造彌勒立像)이 서 있으며 선인봉과 칠성대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서쪽 사면에는 쌍암사(雙巖寺)·석림사(石林寺)가 있으며,

남쪽 사면에는 계림암(鷄林庵)과 신라 진평왕 때 원광법사가 창건한 흥국사(興國寺)가 있다.

상계동-덕능고개-흥국사-산정-내원암-수락유원지, 장수원 마을-석림사-홈통바위-산정-남쪽

능선안부-백운동 마을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있다. 계곡이 수려할 뿐만 아니라 등산로가 다양하고

 교통이 편리해 서울시민과 인근 주민들에게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

수락산 정상의 아이스케키 장수

이 양반 상술이 보통이 아니다. 등산객들의 가려운 곳을 살살

긁어주면서 호주머니 터는대는 3년전에 백두대간길에 괴산 은티마을의

주막집 여우 아지매 못지않은 실력이다. 거기다가 사진찍는 실력과

일반상식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졌다. 범여도 덕분에 맥주 한캔을 마신다.

그래도 밉지않은 만큼 장사수단이 대단하신 분이다.

수락산 정상의 군 삼각점

수락산 철모바위의 모습

뒤쪽에서  바라본 철모바위

암릉을  돌아가는 코스도 스릴이 있다.

암릉에서 외로이 피어있는 양지꽃도 이쁘고....

하강바위

코끼리 바위의 모습(16:20)

내가 오늘 지나온 수락산 주능선의 모습

암릉사이의 좁은 통로를 빠져나와서...

릿지를 하여 겨우 등로로 접어든다

멀리 도솔봉이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면서 시야에 들어온다.

치마바위(16:40)

덕릉고개 갈림길(17:00)

이곳 정상이 도솔봉인데 하산 시간이 맞질 않아서 정상에 오르지 않고

그냥 덕릉고개 방향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어차피 나같은 독립군(혼자하는 산행)

은 목적산행이지 즐기는 산행이 아니질 않는가?

다음 구간인 불암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좌측 능선으로 룰루랄라 하면서 안부 능선을 따라 내려간다.

373.6m봉 삼각점(△성동 409 1994 복구:17:20)

전망이 좋은 너럭바위도 만나고...

24번 송전탑(17:23)

이곳에서 조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우측으로 몰려있는데

그냥 뚜렸한 등로로 따라가야 한다. 25분 정도를  내려가면  56사단 펜스가 나오고

펜스를 끼고 한동안을 계속간다. 6915부대 철문이 나온다. 철문을 통과하여 덕릉고개

방향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조금가면 불암산과 당고개 표시판이 나오는데 불암쪽으로...

 6915부대 안에서는  음악이 계속 흘러나오는데 말그대로 올드팝이다.

페티페이지, 존덴버, 폴앙카, 루이 암스트롱 등이 노래인데 이건 연대장이나

사단장 수준이지... 요즘 신세대 장병들의 노래는 아닌듯 싶다.

덕릉고개 도착직전에 만난 51번 송전탑 

육군 훈련장을 뜻하는 경계석도 보이고...

동물이동통로 직전에 걸려있는 노원구청 플랑카드

동물이동통로 내려가는 계단

덕릉고개 동물이동 통로

동물이동 통로를 건너서 좌측으로 내려선다.

불암산 둘레길에서 덕릉고개 방향으로...

이곳에서 조금만 가면 성일스님이  주지로 계시는 흥국사(興國寺)가 있다.

조금 일찍 내려왔으면 흥국사에 들려서 스님에게 인사 드리고 가면 좋으련만...

지금은 옷에 땀이 너무 많이나고 지저분해서 조금은 그러하다.

늘 호방한 성격의 주지스님은 매달 한번씩 만나는 범여의 멤버이시다.

 

멤버중에는 유난히 봉선사 문중의 스님들이 많으시다.

흥국사 주지스님인 성일스님과 조계종 포교부장과 덕소의 동원정사 주지스님인

송묵스님, 그리고 봉선사 총무국장 석봉스님, 그리고 교무국장 도암스님 등등

봉선사 문중 스님들은 늘 교학적인 학승이 많으시다. 한글대장경을 완역하신 월운 큰스님처럼...

시간나면 두루두루 돌면서 맛있는거 좀 얻어 먹어야 하는데... 내가 시간이 없으니.

 흥국사는 신라 진평왕 21년(599)에 원광법사가 ‘수락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세웠는데,

그 뒤 조선 중기까지 절에 대한 내용은 전하지 않는다. 조선 선조 1년(1568) 왕이 그의

 아버지인 덕흥대원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절 안에 법당을 지었으며 ‘흥덕사’라는 현판을

 내려 절 이름을 고쳐 부르게 되었다. 인조 4년(1626)에 다시 ‘흥국사’로 고쳤으며

그 후 많은 변화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부처님의 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웅보전은 이 절의 중심 법당으로 지은 시기는 알 수가 없다.

 단지 정조 17년(1793)에 고쳐 지었고 순조 때 화재로 다시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이 건물은 공포가 연꽃봉오리, 연잎, 봉황으로 장식되어 있어 조선 후기 조각 기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또한 궁궐 건물에서나 볼 수 있는 기와들로 이루어져 조선 후기 왕가에서 특별한 관심을

 가졌던 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덕릉고개에 있는 56사단 사령부

내가 처음으로 예비군 동원훈련을 받은곳이 이곳 불암산 57사단이었는데

지금 57사단과 56사단이 통합하여  57사단이 없어졌다고 한다.

그게 벌써 33년이 지나 버렸으니... 나이만 먹고 ㅋㅋㅋ

덕릉고개(18:00)
서울 노원구 북동쪽 시계인 상계동에서 남양주시 별내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를 사이에 두고

 수락산과 불암산이 연접해 있다.

노원구 북동쪽 시계인 상계동에서 남양주시 별내면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덕릉 고개이다.

수락산과 불암산이 좌우로 연접한 이 고개를 한자로는 덕릉현(德陵峴)이라 부른다.
이 명칭은 조선 선조의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묘소인 덕릉이 고개 동쪽에 자리잡고 있는데서 유래한다.

남양주시 별내면 덕송리 산 5의 13에 위치한 묘역은 경기도 기념물 제55호로 지정되어 있다

. 덕릉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온다.

중종의 아홉째 아들 덕흥군은 아들인 선조가 왕위에 오르자 대원군으로 추존된다.

 이때부터 대원군 제도가 시작되었다. 선조는 아버지 덕흥대원군의 묘를 능으로 승격시키고

싶어 어전회의에서 신하들의 의견을 물었다.

“아버님 되시는 중종께서 왕위에 계셨고 또 임금인 아들을 두셨는데, 설사 왕위를 잇지 못하셨다

하더라도 묘소를 능으로 격상한들 예에 어긋나는 일이겠는가.”

그러나 신하들은 한결같이 불가하다며 반대했다.

조선시대 능원(陵園)제도는 제왕과 후비의 무덤을 능, 왕세자·왕세자비 및 왕의 사친(私親)의

 무덤을 원이라 일컫도록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에 선조는 정식으로 능으로 승격시키는 것을 단념하고 한 가지 방법을 꾀하였다.

 어느 날 동대문 밖 시탄상(柴炭商, 장작과 숯을 파는 장사꾼) 한 사람을 불러 일렀다.

“너는 지금부터 가게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지나가는 나무꾼과 숯장수를 불러 어디를 지나

이곳으로 왔느냐고 물어 보라. 그 장사꾼이 덕흥대원군의 묘를 지나 왔다고 하면 그대로 보내고,

만일 덕흥대원군의 능을 지나 왔다고 하면 가게 안으로 들여 밥과 술을 후히 대접하고 나무와 숯을 고가로 사들여라.”

이 명을 받은 시탄상은 하루도 빠짐없이 그대로 행하였다.

소문이 한 사람 두 사람 건너 두루 퍼지니 도성 동쪽은 물론 오강(五江, 한강·용산·마포·현호·서강 등

 주요 나루가 있던 강마을)의 시탄상들까지 일부러 동대문 쪽으로 찾아와 덕릉을 지나 왔노라 했다.

시탄상들이 너무 많이 몰려들자 이 일은 중단되었지만, 덕흥대원군의 묘소는 저절로 덕릉이라 불리게 되었다 한다.

 

덕를마을 뒤 수락산 자락에 있는 흥국사(興國寺)는 덕흥대원군의 원찰로 ‘덕절’로 불리기도 했다.

신라 진평왕때 원광법사에 의해 수락사(水落寺)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는데, 1568년 선조가

덕흥대원군의 명복을 빌기 위해 원당을 짓고 흥덕사(興德寺, 흥국사의 옛 이름)라는 편액을 하사했다고 한다.

조선 중기 이후 왕실의 원찰로 발전한 흥국사는 1790년(정조 14) 봉은사, 봉선사, 용주사, 백련사 등과

함께 오규정소(五糾正所) 가운데 한 사찰로 선정되면서 격이 한층 높아지기도 했다.

오규정소는 나라에서 임명한 관리들이 머물면서 왕실의 안녕을 비는 동시에 관할 사찰들을 관리하던 곳이다.

덕릉교장 버스 정류장(18:20)

이곳에서 당고개로 가는 버스를 타고 당고개에 도착한다

당고개역(18:40)

이곳에서 지하철을 타고 노원역서 7호선을 갈아타고 강남구청역에서

내려 호프집에서 통닭 반마리에서 생명주 500cc  3잔을 마시고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