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간 힘을 쓴다고 일이 잘 된다면 누구인들 못하랴
버릴 수 있는 데까지 버리고 쉴 수 있는 데까지 쉬고, 비울 수 있는 데까지 비워라.
가지려는 생각 쌓아두려는 욕심에는 한계가 있으니 크게 버려라.
텅 빈 마음엔 한계가 없다. 참 성품은 텅 빈 속에서 스스로 발현된다.
산은 날보고 산같이 살라 하고 물은 날보고 물같이 살라고 한다.
빈 몸으로 왔으니 빈 마음으로 살라고 한다.
집착, 욕심, 아상, 증오 따위를 버리고 빈 그릇이 되어 살라고 한다.
그러면 비었기에 무엇이든 담을 수 있다고 한다.
수행은 쉼이다.
내 마음을 이것에 매어놓고 저것에 고리를 걸어놓고 있는데 어떻게 자유로워질 수 있겠는가. 항상 노예처럼 살 수밖에 없다.
수행은 비움이다.
내가 한다, 준다, 갖는다 하는 생각, 또는 잘해야지,
잘못하면 어쩌나 하는 따위의 생각을 버리고 빈 마음으로 되는 것이 수행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쉬고 비우기는커녕, 하는 일마다 오히려 집착과 욕심을 키우며 산다.
일이 뜻대로 안 된다고 안타까워하고 잘못 될까봐 겁을 낸다.
번뇌 망상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면서 거기에 얽매어 쩔쩔매고 있다.
쉼과 비움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과 다르다.
하기는 하되, 그것도 아주 열심히 하되 과정이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말하자면 일이 되어가는 과정에선 저 물이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결과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그와 유사하다.
적어도 겁내고 두려워하고 짜증을 부리고 슬퍼하고 안타까워하지 않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쉼과 비움은 달리 말하면 놓고 맡기는 것이다.
놓고 맡길 곳이 따로 있다는 뜻이 아니라 본래의 이치가 그러하고 자연의 법칙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사람의 본성은 본래 청정하고 텅 비어 허공같이 맑다고 한다.
그러므로 놓고 맡긴다는 것은 본성에 순응하는 것을 말한다.
그저 본성이 그러함을 믿고 구태여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식의 작위를 부리지
않으면 그것이 놓음이요 맡김이요 쉼이 되고 비움이 된다.
헐떡거리는 마음을 쉬고 나를 앞세우는 욕심을 비운다면 내 마음은 본성 그대로를 닮게 된다.
빈 그릇같이 되는 것이다.
빈 그릇에 무엇이나 담을 수 있다. 그릇이 비워지면 뭔가 채워지기도 한다.
꽉 채워진 그릇에는 무엇이든 더 담을 수 없듯이 내 마음도 집착, 욕심,
아상, 증오 따위로 꽉 채워져 있으면 더 담아낼 수 없게 된다.
고로 채워지기를 바란다면 먼저 비워라.
채우고자 하는 그 마음부터 비워야 한다. 그러면 그릇에 지혜가 담기게 된다. 편안함이 찾아온다. 우리의 마음은 본래 청정하고 평화롭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쉼을 거부한다. 쉼이 곧 나의 실종인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비움을 싫어한다. 비운다는 것이 곧 나의 무능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본성이 허공처럼 텅 비고 맑아 있다면 허공같은 본성이 나를 나쁘게 할 까닭이 없다.
공은 공을 내리칠 수 없다. 공이 공을 다치게 할 수 없다.
텅 비어 있는데 무엇을 다치게 할 것인가?
애착을 버린다는 것, 욕심을 덜어내어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포기나 체념이 아니요
무기력이나 무능이 아니다.
욕심을 부리는 대로 모든 일이 잘 되고 애착을 갖는 만큼 모든 일이 성사가 된다면
누구인들 그것을 마다하겠는가. 일이 되어 가는 과정이나 결과를 보며 안달하고
안타까워 함으로써 욕심껏 잘 되어간다면 누구인들 그것을 못하겠는가.
제 틀에 맞지 않는 것을 억지로 끼워 넣었을 때 끝내는 탈이 나듯이 본성에 맞지
않는 길을 고집한다면 한 때는 잘되어 나가는 듯이 보일지라도 끝내는 일이 어긋나고 만다.
이것이 우주의 진리,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 현대불교 신문사에서 스크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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