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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9기맥 자료및 산행후기 ♣/금북(호서)기맥(終)

금북기맥 제1구간 - 백월산에서 지티고개까지

by 범여(梵如) 2012. 8. 13.

금북기맥의 개념도

 

금북기맥(錦北岐脈)이란?

 산경표에 의하면 백두대간 상에 있는 속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말티고개, 선도산, 상당산성, 좌구산, 보현산을 지나 안성 칠장산에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이 갈라지면서 한남. 금북정맥은 끝이나며 이어서 금북정맥은 칠현산

안성 서운산과 천안 태조산, 청양 백월산과 예산 덕숭산을 지난다.

산줄기는 예산 가야산에서 주춤거리다가 성왕산, 백화산, 지령산을 거쳐

태안반도에 들어 반도의 끝 안흥진에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산경표의 금북정맥은 금강과 별로 관계가 없는 오서산과 가야산을 경유한다는

논란이 있으며 따라서 금북정맥의 백월산을 내려서다 오서산을 향하지 않고

직진하여 성태산, 조공산, 월하산, 월명산, 옥녀봉, 봉림산, 오석산, 남산, 서대산

중대산을 지나 장항 앞 바다 금강하구에 끝을 맺는 또하나의 산줄기를 금북기맥이라

부르는데 이 명칭은 공식명칭이 아니고 그냥 편의상 붙인 이름이다.

 

다만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상에는 속리산 천왕봉에서 분기하여 장항 앞바다에

이르는 산줄기를 호서정맥이라 명칭하고 백월산에서 안흥진에 이르는 산줄기를

금북기맥이라 칭하고 있어 원 산경표와는 다른 주장을 하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금북기맥은 청양 백월산에서 시작해 장항 앞바다인 금강하구까지 이어지는

69.4km의 산줄기를 말한다

 

 

☞ 산행일자: 2012. 08,12

☞ 산행날씨:흐린날씨, 폭우성 소나기, 오후 한때 맑음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20km, +어프로치 3km / 10시간 20분소요

☞ 산행코스:  스므재-백월산-금북정맥갈림길-485봉-월치-448봉-성태산 천세봉

                   성주지맥분기점-만세봉-475(행여봉)-292봉-반고개-235봉-241봉

                   구루고개-300봉-조공산-405봉-마동재-357봉-306봉-320봉-362봉

                  새재고개-291.4봉-328봉-거칠고개-월하산-373봉-300봉-366봉-383봉

                  336봉-305봉-지티고개

☞ 소 재 지: 충남 청양군 화성면,남양면 / 보령시 청라면 / 부여군 은산면,내산면, 외산면

 

어제밤에 한.일간에 올림픽 축구 3.4위전을 보느라 밤을 꼴딱 지새느라 생체리듬이

깨지는 바람에 하루종일 피곤하기만 하다. 그 피로를 풀지 못하고 금북기맥 첫구간을

가기위해 베낭을 메고 대천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서 용산역으로 향한다.

참으로 조그만 나라 정말 대단한 나라이다. 특히 한.일간은 마치 전쟁이나 다름이 없다.

첫째 정신력에서 완전히 일본을 압도하는 느낌이다. 정말 어린 선수들 대단하고 장하다.

 

어제는 이 명박 대통령이 역대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했는데

일본이란 나라가 난리 굿을 치고 있다. 자기나라 땅을 자기가 가는 왠 지랄이야.

역사적으로 독도는 신라장군 이사부 이전부터 우리 땅이란건 명백한데도

자기땅이라고 우기니... 놀부 심보도 아니고. 그럼 너거들 방식대로만 하면

대마도는 우리땅이야... 이웃 잘못만나 정말 고생이다. 에이 나쁜 놈들. 

오늘구간의 산행지도

서울서 대천가는 장항선 마지막 열차(20:35)

용산역에 내려서 평소에 가던 식당에 가려고 역사광장으로 나오는데 내가 가던

식당은 철거가 되어 버렸다. 역 광장에는 또하나의 경기인 한.일간 여자배구

3.4위전 응원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다. 난 시간이 없어 역 안에 있는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에서 부대찌게 하나를 시켜 먹는데 음식맛은 영 아니다. 씁씁한 뒷맛을 남기고

나와 대합실에서 여자배구를 보는데 2-0으로 지고있는걸 보고 열차를 타러 간다.

용산역에서  20:35분 열차를 타고 잠을 청하는데 좀처럼 잠이 오질 않는다.

새벽에 축구경기를 보느라고 잠을 자지 못해 상당히 피곤하건만 눈만 말똥말똥...

23:20분에 대천역에 도착을 한다.

대천역(23:20)

대천역에서 내려 커다란 대로를 타고 20분정도 걷다가 아치형 다리를 건너니

우측에 보령시내에선 가장 깨끗하다는 ‘대천스파밸리’ 찜질방이 나온다.

대천스파밸리(23:40~05:00)

난 사실 찜질방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스타일이다. 좀 불결하다는 생각에...

근데 요즘은 호주머니가 앏은 산꾼 노릇을 하다가 보니 어쩔수 없이 잠자리를

찜질방을 택하는데 꽤나 괜찮은 느낌이다. 돈 7000원 잠자리와 2번의 사우나를

즐길 수 있으니 말이다. 아침 5시에 일어나 샤워를 마치고 찜질방을 나온다.

 

찜질방을 나와서 바로 앞에 있는 식당으로 가니 문은 열렸는데 식사가 안된단다.

그럼 이 근처에 일찍 문 여는데는 자기네 식당밖에 없다고 한다

편의점에서 아침식사

하는 수 없이 편의점에 들려서 컵라면에다 햇반하나, 그리고 김치를 사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1.8L짜리 꽁꽁얼린 생수하나와 쥬스2개를 사서

베낭에 넣고 10분정도를 걸어서 화성가는 버스를 타기위해서 구 대천역으로 간다.

구 대천역 앞에 가니  이 버스 정류소앞에 24시간 영업을 하는 식당이 있다.

에이씨!  여기와서 아침을 먹을걸... 괜히 억울한 생각이 든다.

충청도 사람들의 두리뭉실한 표현... 조금은 거시기하다.

구 대천역 버스 정류소(06:30)

이곳에서 스무재를 가기 위해서 버스를 기다린다.

정확한 시간에 버스가 이 지역 사람 4명과 함께 버스에 오르는데 비가 오기 시작한다.

이 분들은 모두 다 절에가는 모양이다. 성주산 아래 사찰입구에서 모두 내린다.

오늘이 우란분절 3재날이다. 나도 부모님 위패를 모셔논 절에 가야하는데

이렇게 산에 미쳐서 돌아다니니... 지난주 모친 제사인데 말이다.

늘 살아생전에 효도한번 못하고 돌아가신 다음에도 제대로 못 모시니...

미안한 생각만 앞선다. 내일 오후에 절에 좀 갔다와야겠다.

 

버스기사가 스무재 고개 너머에 세워주는 바람에 5분정도를 걸어 올라온다.

스무재(07:10)

충남 보령시 청라면과 청양군 화성면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이곳을 거쳐서 예산을 가려면

80리를 걸어야 했다.예전에 고개가 높고 험해서 행인을 괴롭히는 도적들이 우글거렸고

이 때문에 이 고개를 넘을때는 장정 20여명이 모여서 넘었다하여 스무재라고 부른다고 한다

 

스무재를 3번째 오는 셈이다. 지난해 12월 25일에 오고 또오니 말이다.

고개 우측에 있는 고려의마암기 기념비를 따라 포장도로로 올라간다.

오늘은 금북정맥이 아닌 금북기맥을 가는 길이기에 이곳은 어프로치 구간이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서 시온의 동산 가는 길을 따라서 간다.

빗방울이 조금씩 굵어지기 시작한다.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는데

80은 족히 되어 보이시는 할머니 한분이 이렇게 비가 오는데 산에

가면 위험하다고 가지 말라고 하신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계속 도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우의를 입고 땀에 젖으나 비맞고 젖으나 옷이 젖기는

매한가지이라... 베낭에 레인커버만 쒸우고 그냥 비를 맞으면서 간다.

포장도로가 끝나고 비포장 도로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절개지로 올라서니

지난번 금북정맥길에서 내려왔던 눈에 익은 대나무 숲이 나오는데 갑자기

우드둑 하는 소리에 깜짝 놀라서 보니 겁많은 노루 한마리가 36계 줄행랑을 친다.

다소곳이 핀 육모초가 홀로가는 산꾼을 반기고...

아련히 보이는 오서산

비오는 날 나무사이로 구름에 가려 아련히 보이는 신비스런 오서산

마치 개성의 뭇남성들 애간장을 다녹인 황진이의 치마폭처럼 보이락말락 한다.

백월산 올라가는 길은 상당히 급경사로 인하여 힘이든다.

이곳에서 반가운 시그널을 만난다. 근데 지난 겨울에 만난

돌쇠대장  ‘고산자의 후예들’의 시그널은 잡목을 제거하면서 없어져 버려 아쉽다.

돌쇠대장이 엄청 서운해 할텐데 어쩌까...

보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조금은 민망하게 보이는 나무도 있다

금북정맥, 기맥 갈림길(09:10)

이곳에서 좌측으로 300m 정도 떨어져 있는 금북기맥의 시발점인

백월산으로 향한다. 또다시 기맥 한구간을 시작하는 날이다.

짙은 안개에다 내리는 비로 인하여 처음 시작하는 기맥길이 쉽지

않음을 예고한다. 바위는 상당히 미끄럽다. 그래도 가야지...

이곳 백월산 능선에 바위들은 한결같이 시멘트에다 자갈을 버무려 놓은

레미콘처럼 한결같이 역암이다. 예전에 이곳은 바다가 융기하여 산이되었나?

백월산(09:20)

8개월만에 다시 찾은 백월산

또다른 구간을 시작하는 백월산 山王大神에게 무사산행을 기원하는

간단한 예를 올리고 10분간의 휴식을 취한다. 벌써 옷에 비에 다 젖었다.

백월산(白月山:570m)

청양군 화성면과 남양면,보령시 청라면 경계에 위치하며 금북정맥에서 가장 남쪽에 있으며,

금북기맥이 분기하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백월산(白月山) 이름은 남양에선

그 산 위로 달이 지는 것을, 청라에선 그 산 위로 달이 뜨는 것을 늘 보아 왔기

때문이라 하고, 현지에선 ‘월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또 백월산 산세가 북쪽 화성쪽으로 머리를 숙이는 모양이어서 화성면에 인물이

 많이 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백월산의 기점과 종점으로 이용되는 마을 금곡은

 '거문고 골짜기' 라는 뜻으로, 마을 지형이 거문고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며, 백금리도 '하얀 거문고' 라는 뜻이라고 한다.

 

백월산은 성주탄광에서 가까워 폐광은 되었지만 탄광 흔적이 많이 눈에 띄었다.

월산사도 때문에 물줄기가 끊기면서 절이 없어지게 되었다 한다. 월산사에서 내려오는

 개울도 맑고 좋았으며, 원점회귀산행의 기점과 종점이 되는 공터 옆에 있는 금곡저수지 물도 깨끗하다.
또한 특이한 점은 온 산의 바위가 퇴적암의 역암으로 마치 강 자갈을 시멘트와 버무려 놓은 것 같아 신기하다.

그래서 정상에도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돌이 자갈처럼 매끈한 것이 많고, 더러는 조개껍질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백월산 정상에서 15분정도 쉬면서  이것저것 챙긴다음에 다시

기맥 갈림길로 되돌아온다. 빗줄기는 자꾸만 굵어진다.

다시 기맥 갈림길(08:40)

우측으로 가면 금북정맥 길이고 직진을 하면 금북기맥길이다.

이젠 안개까지 몰려온다. 그래도 누가 대신 가주지 않은 이 길

꿋꿋히 가련다... 이 두 다리에 힘이 있는 한...

70년이 넘은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이곳도 낙동정맥길의 울진,봉화, 영양처럼 아름드리 소나무에

일제시대에 송진을 채취하기 위해 소나무에 난 칼자국이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쪽바리 쉬끼들은 사과조차 하지 않고

오히려 엄연히 우리가 실효지배하고 있는 독도까지 자기 땅이라고

우기니...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아픈 상처를 가진 저 소나무는 알겠지.

이곳 백월산에서 성태산가는 청양지역의 산에는 참으로 관리가 잘되어 있다.

곳곳에 이정목과 곳곳에 벤치와 평상들이 설치되어 있다.

세심한 배려에 정말 산꾼으로서 고맙기만 하다.

300m마다 설치한 구조목도 고맙기만 하고...

급경사에는 요소요소 계단을 설치하였다.

월치(月峙:08:55)

다리재라고도 불리기도 하는 월치는 화성군 남양면 금곡 마을과

보령시 청라면 나원리를 잇는 큰 고개다 ‘금곡저수지 1.4km, 백월산 1.2km,

성태산 1.8km' 표식이 있고, 우측의 ’월리‘ 방향으로 내려서는  등로도 보인다.

포장도로를 설치하려는지 중장비도 있고 도로에도 자갈이 깔려있다.

포크레인 방향이 있는 능선으로 올라선다.

등로로 올라서니 나무계단으로 만들어서 좋기는 하나 비때문에 상당히 미끄럽다.

등로에서 이쁘게 생긴 바위도 만나고...

나무사이로 백금저수지가 빼꼼히 보인다.

백월산에서 성태산가는 길에있는 소나무들은 상당히 크고 아름답다.

등로에는 길이보였다 안보였다 하지만 곳곳에 벤치와 평상이 설치되어 있다.

이런곳에 하루 저녁 비박하기에는 정말 안성맞춤인 곳이다.

나중에 이 지역이 고향인 청운거사 꼬셔서 반달이와 함께 비박이나 함 할까 ㅋㅋㅋ

며느리 밥풀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하면서 하도 배가고파

몰래 밥을 훔쳐 먹었다가 맞아 죽었다는 며느리 밥풀이

비에 젖어서 아련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참으로 애잔한 슬픔을 가진 꽃... 비줄기는 자꾸만 굵어진다.

역암을 감싸고 있는 줄기식물도 오늘따라 이쁘다.

제법 가파른 곳을 오른다. 숲이 너무 우거져 마루금은  어디가 어딘지 구분은 안되고

비는 계속 내리는데 짙은 안개로 시야는 꽝... 오름길에 오래전에 산불로

인해 커다란 나무들이 고사목으로 변한체 보기가 안쓰러울 지경이다.

 

자연은 내것이 아닌 후손들에게 잠깐 빌려 쓰는건데...안타깝기 그지없다

원추리와 뚝깔... 참으로 다정스럽게 보인다.

성태산 천세봉(千歲峰:626m:09:35)

충남 청양군 남양면과 부여군 외산면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금북기맥 구간의 산중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빗줄기가 자꾸 굵어지고 카메라에 물이 들어갔는지 사진이 영 엉망이다.

이곳에서 100m 떨어져 있는 만세봉으로 베낭을 벗어놓고 향한다.

이곳 성태산 천세봉의 높이는 그야말로 각각등보체이다.

정상석에는 626m이고 이정목에는 631m, 그리고 지도에는

623.7m 어느 장단에 춤을춰야 할 지 感이 오질 않는다.

정확하고 통일된 표기가 이루어졌으면 한다.

성태산 만세봉(631m)

충남 부여군 외산면에 있는 산으로 부여군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고 한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1919년 독립만세 운동 당시 이곳에서 부여 보령 청양.

3개 시군 주민들이 모여 봉화를 올리고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운동을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정상을 만세봉이라고 하고 다음 봉우리를 천세봉이라 명명 하였다.

만세봉 정상에는 벤치가 있으며 주위 조망은 전혀 없는 편이다.

다시 천세봉으로 되돌아와서 좌측으로 내려선다

성주지맥 분기점

성주지맥(聖住枝脈): 보령시 청라면 청양군 화성면 남양면의 삼면봉인

 금북정맥 백월산에서 장항 앞 바다 금강으로 벋어 내리는 금북기맥

성태산(624m)에서 가지를 쳐 문봉산(633m), △성주산(677m),

옥마산(596.9m), 봉화산(323m), △잔미산(417m), 통달산(184m)을 거처

보령시 웅천읍 서해바다에서 맥을 다하는 웅천천 서북쪽 분수령을 성주지맥이라 한다.

출처: 박성태님의 신산경표에서 발췌

성태산 천세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오니 로프를 만든 계단이 나오고...

이곳에서 헷갈리는 이정목이 나타난다.

금곡마을 2.2km가 있고 금곡마을 1.4km 가 있다. 실질적으로

시그널도 양쪽으로 다 있어서 혼란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경험상 기맥길은 금곡마을 2.2km가 맞는거 같아서

뒤도 안 돌아보고 우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조금을 내려가니 산불이 난지 얼마되지 않은듯한 지역을 지나고...

옥가실마을과 금곡마을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직진으로 이정표가 되어있는 옥가실 마을로 올라간다.

한동안 고도를 높혀서 올라가니 행여봉이 나타난다.

행여봉(475m or 492m:10:15)

충남 청양군 남양면 흥산리와 부여군 외산면 수신리에 걸쳐 있는 봉우리로

지도상에는  492m로 되어 있는데 행여봉이란 이름과 함께

475m로 표기가 되어있다. 이 지역은 모든게 오류 투성이다.

 

이 아래에 있는 수신리(水新里)는 외산면의 최북단에 위치해서 북쪽으로 해발 620m의

성태산을 경계로 보령시 청라면과 청양군 남양면과 접하고 있는 수신리는 산과 들과

계곡이 잘 조화를 이룬다 해서 유인(儒人)들이 신성지로 손꼽기도 하고 풍류객이라기보다

조용한 지역에서 안주를 바라는 사람들이 한번 정착하고는 떠나지 않았던 특이한

조건이 있는 지역이다. 조선시대 홍산현 외산면이었으나 후에 외산내면에 속했다.

전주이씨들의 정착과 함께 마을이 형성되었다 하며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상신리와

상수리 일부를 병합하여 상수와 상신의 이름을 따서 수신리라 하고 부여군 외산면에 편입하였다.
사람들이 정착하여 뿌리를 내린다는 뜻에서 신근(新根)마을이 있고 파평윤씨가 많이 사는

마을로 뒷산의 형국이 마치 신선이 춤추는 형상이라 무수(舞袖) 또는 무술이라는 마을이 있다.

70년대부터 95년까지 탄을 캐는 동명탄광이 성황을 이루었고 1944년 설립된 무술초등학교가

1999년 폐교되는 아쉬움도 남아 있다. 또한 옥가실에는 수령 4~5백년된 희귀한 소나무가 있다.

이 곳은 등로는 보이나 나무들이 웃자라서 터널같이 생겼다.

갑자기 주위가 컴컴해지면서 칡흙같은 어둠이 몰려오니 무섭기 시작한다.

천둥, 번개도 치고하여 잠깐동안 스틱을 접어서 베낭에 넣는다.

이젠 비가 아니라 폭우성 소나기가 쏟아진다. 비에 젖은 내 몰골이 우습기만 하다.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는 소나무에다 커다란 대나무에 하얀 천을 묶어서

깃발처럼 메달아 논게 몇군데 보인다. 무속인들이 하였나?

한참을 내려가니 새로 도로공사를 하려는지 자갈을 깔아논 임도가 나온다.

살짝 비가 그치면서 청양군 남양면  흥산리의 마을이 보인다.

흥산리와 옥가실 마을의 이정목

오늘의 전리품 -  도라지

비가 오는 와중에도 도라지를 좀 캤다.

그중에 몇뿌리는 10년이 훨씬 넘어보인다.

이제 빗방울이 많이 가늘어졌다. 그러나 이미 속옷까지 다 젖은 상태이다.

우측으로 부여군 외산면 옥가실 마을이 보인다.

묘지를 지나 내려오니 잡풀이 임도를 다 점령해 버렸다

밤나무 단지를 내려오니...

도로의 기능을 잃어버린 길이 나온다.  저 앞에 보이는 통신탑으로

기맥길이 이어지건만 반고개로 인하여 기맥길이 끊어져 부득이

좌, 우측으로 해서 606번 지방도를 건넌 다음에 기맥길을 이어가야만 한다.

범여는 이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내려와서 밤나무 단지를 지나 반고개로 내려온다.

반고개(半峙:10:45)

충남 청양군 남양면과 부여군 외산면을 잇는 606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이다.

이곳을 반고개라 부르게 된 연유는 조선시대에 남도지방 목포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에 이 고개가 딱 절반이라고 한다.

목포에서 이곳까지는 계속 올라와야 하고 이곳부터 한양까지는 계속 내려갔다고 한다.

예전에 이곳은 과거보러 가는 사람을을 위해 관청에서 방을 부쳐놓았던 곳이라고 한다.

아침식사가 부실했던 탓에 이곳 반고개 가든에서 이른 점심을 먹는다.

우선 수돗가에서 비에젖은 옷을 좀 씻고 몸을 좀 닦은 다음에

시원한 냉면 한그릇과 맥주 한병으로 식사를 한다.

옷이 넘 젖어서 미안한 탓에 방에 올라가지도 못하고 히프만 걸친채

식사를 마친다. 거기다가 커피로 후식까지 하고... 20분정도 휴식을 취한다.

홀로 산행을 할 땐 이런곳이 거져 고맙기만 할 뿐이다.

그만큼 베낭 무게를 줄일 수 있으니 말이다... 나홀로 산행때는...

이른 점심으로 먹은 냉면과 맥주 한병

식사를 마치고 부여쪽으로 넘어가서 좌측으로 올라 임도를 타고 밤나무 단지로 올라간다.

 

부여라 하면 한국민의 80% 이상이 백제의 수도였던 곳임을 알고 있다.

중학교 이상을 졸업한 사람이면 부여는 금강의 하류에 있는 충남의 군 소재지로 알고

있을 정도로 너무나 잘 알려진 곳이다. 우리 나라의 250여개가 넘는 시ㆍ군 중에 100여 년

이상 한 나라의 수도였던 곳은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는 정도이다. 전국의 관광객이

부여를 찾아와 낙화암을 보고, 국립부여박물관을 보고 간 사람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이처럼 잘 알려진 백제의 마지막 수도가 당나라 군대에 의하여 멸망되었다는 사실도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부여는 백제시대로부터 지금까지 한번도 명칭이 바뀌지 않은 오랜

군으로서의 역사를 또한 가지고 있다. 신라의 수도 계림은 신라가 멸망한 후 경주라는

명칭으로 바뀌었지만 부여의 명칭은 백제시대 이래 그대로 지금까지 군의 명칭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부여라는 나라는 우리 나라에서 고조선 다음으로 가장 오래 전에 세워져 40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나라이다. 결국 고구려에 통합되어 그 역사를 잃어버린 나라의 하나이다.

이 부여에서 금와왕이 동쪽으로 옮겨와 지금 길림성 연길 지방에 동부여가 되었고,

그 일부가 다시 내려와 졸본성에서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그리고 그 지배층 일부가 다시

한강 남쪽으로 내려와 백제를 건국하였고, 백제는 한강유역의 위례성에서 고구려의

팽창정책에 밀려 공주로 천도하였다. 무령왕이 중흥을 이룩하기 위하여 천도의 계획을 하였고,

 그 아들 성왕대에 수도를 부여로 옮겼다

부여는 공주와 함께 백제문화의 흔적들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곳이다. 좋은 의미에서

부여는 완성된 백제의 문화모습을 보여주면서, 한편으로는 백제 패망의 아픔도 고스란히 전해 준다.

부여에는 왕궁지와 수많은 불교유적들, 왕릉유적, 그리고 부소산과 궁남지 등 발전했던 백제문화가 밀집되어 있다.

그리하여 부여시대 백제로부터 문화의 영향을 짙게 받았던 일본인 관광객들이 자기들의

문화 원류를 보기 위해 줄을 이어 찾아든다.

포장도로를 지나 밤나무 단지에 있는 이동송신탑을 포스트로 해서 올라간다.

달맞이꽃

얼마나 님을 기다리다가 꽃이 되었을까?

밤나무 단지 임도를 올라서서 조금 올라가다가 좌측 송신탑으로 향한다

235봉 S.K이동통신 중계탑(11:25)

밤나무 단지를 지나니 키보다도 더 큰 잡풀을 헤치며 단지위를 걷는다.

밤나무 단지에 농약을 쳤는지 농약 냄새로 인하여 머리가 아플 정도이다

조금을 가니 묘지가 나타나고 다시 밤나무 단지에서 우측으로 기맥길을 이어간다

이 곳 묘지 주위에도 도라지를 보이는데 그리크지 않아보여 손도 안된다.

속옷이 젖은 상태가 사타구니와 부딪히면서 상당히 쓰리기만 하다.

묘지를 내려서니 다시 밤나무 단지가 나오고...

밤나무 단지에서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보고 우측으로 밤나무 단지를 지나간다.

밤나무 단지를 살짝 좌측으로 꺽어지니 커다란 은행나무 한그루가

밤나무 단지  위에 있다. 이곳에서 90도 좌측으로 꺽어지면 다시

밤나무 단지가 나오고 이곳에서 밤나무 단지 내리막길의 좋은 길을

버리고 좌측 숲으로 들어간다. 바짝 신경을 써야 하는 구간이다

숲으로 들어가면 길은 거의 보이지 않고 쓰러진 나무들이 태클을 건다

그래도 이 숲속에도 선답자들의 시그널도 보인다.

정말 고맙기만 하다

길도없는 숲을 겨우 헤치고 나오니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작은 반고개(11:50)

청양군 남양면 매곡리와 부여군 외산면 문신리를 잇는

조그만 고개로 농로수준의 포장도로이다.

이곳에서 도로를 건너서 등로를 이어간다.

도로를 건너 등로로 올라서니 최근에 조성한 듯한 한양조씨 부부 합장묘가 나온다.'

이곳 묘지 주변에서 씨알에 꽤나 굵은 도라지 3뿌리를 수확한다

다시 숲으로 들어서니 등로는 보이질 않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산행을 안내한다.

어디로 가란 말이냐... 길은 보이질 않는데 다시 빗방울은 굵어진다.

이젠 불알까지 다 젖어버려 더 젖을것도 없다. 실컷 내려라. 시~원하게.

한참을 올라가니 길은 보이지 않고 나무로 길은 막혀있다

이럴땐 가지말라는 소리이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우측으로 꺽어져 조금 내려오니 임도가 나타난다.

숲으로 뒤덮혀 임도역할 잊어버린 도로를 따라 계속 내려온다.

우측에는 새로 식재한 나무들이 보이고 대나무도 보인다

길이없는 길을 걷는데도 가뭄에 콩나듯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구루고개(12:20)

부여군 외산면 문신리와 청양군 남양면 매산리를 잇는 군계 역할을 하는 고개이다.

좌측으로 매산리의 마을들이 한가롭게만 보인다. 이곳에서 우측 절개지로 오르니

시원하고 넓게 뚫린 임도가 나오고 한참을 따라 임도로 올라간다.

임도를 올라가다가 조그만 재처럼 보이는 이곳이 지도상에 나오는 치앙재인가?

임도를 타고 올라가다가 꺽어지는 부분 직전에 우측 숲으로 접어든다.

그리고 오랫만에  힘들게 고도를 높이면서 땀을 쏟는다. 땀인지 빗물인지도 모르고...

등로에서 바라본 청양군 남양면 매산리 마을

힘들게 등로에 올라서서 안부에 도착하여 좌측으로 꺽어진다.

300봉(12:05)

아무런 표식도 없는 곳이 지도상에 나타난 300봉이다

능선 안부를 따라 좌측으로 계속 걸어간다.

조공산갈림길(399m: 12:15)

산 정상에는 경주김씨 묘지 1기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넓은 공터가 나온다

준.희님께서 조공산이란 표식을 붙혀놨지만 이곳은 조공산이 아니고

조공산 갈림길이다. 이곳에서 베낭을 벗어놓고 왕복 13분 정도 걸리는

조공산을 갔다온다. 가봐야 볼것도 없는 곳이지만...

조공산(402m)

아무것도 볼것 없는 그저 밋밋한 능선 안부가 조공산 정상이라니...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만 달랑 있다. 남양주 금곡님이 자기 시그널에다

조공산 402라고 적어 놓았다. 그것마저 자세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겠다.

조공산 갈림길로 되돌아와서 아침에 편의점에서산 션한 얼음물을 마신다.

비 때문인지 아직 물이 많이 남았다. 다시 우측 등로로 내려선다.

내려서 걷다가 다시 조금 치고 오르니 405봉이 나타나고 다시 내림길이

계속된다. 조금 더 내려가니 등로는 잘 보이질 않고 우측으로 벌목현장이 나온다.

다시 길이없는 길을 찾아 헤맨다. 바닥에 썩은 나무와 낙엽이 비에젖어 상당히 미끄럽다.

조그만 고개같은 곳을 지나 숲을 헤치고 나오니 비포장 도로가 나온다.

이곳이 마동재란다. 트럭정도가 거뜬히 다닐수 있는 넓은 도로이다.

마동재(13:30)

2.5톤 트럭이 다닐 정도로 넓은 비포장도로 삼거리가 마동재이다.

아마 이곳은  이 산 전체가 밤나무 단지를 이루고 있어 수확한 밤을

운송하기 위해서 생긴 도로인 모양이다. 좌측으로 마루금이 연결된다.

그러나 이 비포장 도로를 타고 가더라도 나중에 만나기에 바로위에

있는 357봉은 생략하고 그냥 비포장도로를 걷는다,   

저 아래에 화성리에 있는 화성지가 보이고 그너머 월하산이 안개에 휩싸여 있다.

이제 비는 그치고나니 땅에서 올라오는 地熱이 산꾼을 지치게 한다.

저 아래 보이는 화성리(花城里)는 백제때 대산현에 속했고 조선시대는 홍산현 외산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혁 때에 조치리(鳥峙里), 마동(馬洞), 신성리(新城里), 화암리(花岩里),

 전장리(前庄里) 일부를 병합하여 화암과 신성의 이름을 따서 화성리라 하였고, 부여군 외산면에 편입하였다.
화성리에 처음 정착한 씨족으로는 김해김씨(金海金氏)로 추정되며 절골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89호로 지정된 고려 때의 탑으로 오층석탑(五層石塔)을 개인이 절터에 복원하였고

 화엄사(花嚴寺)라는 개인 불당을 세웠다.
자연마을로는 화암, 마동, 조치 마을이 있으며 면적은 9.52㎢이고 뜸별로는 항상 일곱 가구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해서 거칠이라 부르다가 변하여 것칠, 월하산 아래 마을이 있으므로 달래산, 달하산, 월하산이라 부르고,

마동 마을은 마을중심으로 구들골, 질마재, 오양골, 통매 등으로 부르는데 옛날 지관이 이르기를

구들골의 말이 먹이를 먹는 구두이고, 오양골은 말이 잠자는 장소이고, 통배는 먹이를 나르는 통과

 같은 형태이며 질마재는 말이 먹이를 먹고 달려가는 형국이다. 즉 말과 인연이 있는 마을이라 마동,

꽃 같은 바위가 장엄하게 서있는 마을이라 화암이라 부른다.

정통 산꾼을 자처하는 범여가 마루금을 포기한다는게 우습기만 하다.

사타구니는 헐어서 쓰라리고 등산화는 물이 질컥거리고 발가락은 불어 터졌는지 아프다.

이러다가는 차 시간을 놓칠것 같아서 이 구간만이라도 도로로 걸어 시간을 줄이자

임도를 15분정도를 걸어서 오니 비포장도로 끝나는 지점에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올라선다. 다시 마루금으로 복귀를 하는 것이다.

마루금으로 복귀를 하니 어마어마하게 큰 밤나무 단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접어들어 밤나무 단지 임도를 계속 걸어간다.

저 멀리 보이는 송전탑까지 계속 걸어간다. 이곳도 밤나무에 뿌린 농약 냄새로 머리가 아프다.

밤나무 단지 위의 임도를 따라 계속 걸어간다.

 

밤나무 단지 끝나는 지점에서 우측으로 들어가면 또다시 넓은 길이 나온다.

이곳은 온 산 전체가 밤나무 단지이다. 이곳 부여군  외산면과 내산면은  

밤으로 유명한  공주 정안면 못지 않은 넓은 밤나무 단지를 형성하고 있다.

숲속으로 들어갔다가  조그만 능선을 치고올라 좌측으로 꺽어진다

밤나무 단지 포스트를 삼은 133번 송전탑이 나타난다.

송전탑을 지나서 임도로 계속 걸어간다.

편안한 임도를 따라서 걸어가다가 커다란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선다

320봉(14:15)

정상에는 준.희님의 격려 메시지가 달려있고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산토끼의 옹달샘(?)

채종림 안내판

이곳은 길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동물적인 감각으로 길을 찾아야 한다.

362봉(14:30)

능선 좌측에는 무인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90도 꺽어진다. 

362봉 좌측에 있는 무인산불감시초소

362봉 아래로 내려서니 숲이 우거졌다가 다시 큰 임도가

나오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니 다시 밤나무 단지를 만난다.

밤나무 단지를 지나니 조립식 건물이 나오고 이동통신 중계탑이 나온다.

새재고개(14:40)

대은도로라고 부르는 이 길은  부여군 은산면과 외산면을 잇는 고개이다.

 

새재는 옛날에 날아가는 새들만이 넘었다는 험한 고개로  숱한 전설과 유래를

남겼으나 이제는 주민의 뜻을모아 희망찬 새마을 정신(근면, 자조, 협동)으로

이 길이 개척되었다. 골골이 쌓였던 안개가 찬란한 아침 햇살에 말끔히 걷히면

심산유곡 구비구비 땀흘려 다듬어진 대은로 완연하다.

서쪽에 아미, 만수, 백마산 준령이 우뚝솟아 대천 바닷가로 막고 동쪽에 화려한

옛 꿈에 잠긴 부소산이 백마강에 띠를 두른 듯 석양빛에 아름답다.

 

지나는 길손이여 후손에게 전해다오

우리는 조국 근대화를 위해 이 길을 뚫었다고(비석 뒤에 있는 내용)

 

이 도로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내려선다.

우측 도로로 100여m를 내려가면 시멘트 포장도로가 나오고 이 도로를 건너 절개지로 올라선다.

절개지로 올라서니 선답자들의 반가운 시그널이 보이고

뚜렸한 등로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등로 곳곳에 이런 표식도 보이고...

129번 송전탑(15:00)

송전탑에서 좌측으로 보이지 않은 등로를 겨우 찾아서 길을 이어간다.

송전탑을 내려서니 비포장 도로가 나오고 무인홍수예방 감시탑이 나온다.

이 홍수예방 감시탑 앞의 절개지로 올라서서 밤나무 단지로 들어선다.

이곳에서 배가고파  오렌지 쥬스하나로 허기를 면하고 부지런히

걷것만 사타구니가 쓰라려서 그런지 영 산행속도가 나오지 않는다.

등로에서 바라본 부여군 내산면 마전리 마을

내 절친이 엄청나게 좋아하는 엉컹퀴꽃이 이제사 피는구나.

무릎관절에 좋다고 하여 이놈만 보기만 하는 캐는 친구가 있으니...

290.6봉(15:15)

이 봉우리는 딱 놓치기 놓은곳에 있다.

밤나무 단지를 따라가면 전혀 볼 수 없는 외진곳에 있다.

밤나무 단지 능선 좌측의 소나무숲에 가려있다. 이곳에서 내리막길을 향한다.

290.6봉 삼각점(△ 청양 452 1999 재설)

마루금 숲을 조금 지나니 한양조씨 묘지가 나오고...

가야할 월하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비는 그치고 따사로운 햇빛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바람한 점이 없는 탓인지 꽤나 덥다.

한양조씨 묘지를 지나서 비포장 임도로 기맥길을 계속 진행한다

임도길을 계속해서 가니 또다른 임도와 합류를 하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걸어간다.

임도길 끝나는 지점에 다시 밤나무 단지가 나오고 Y자 길이 나오는데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50m 정도 가다가 또다른 Y자 길에서 우측 숲으로 접어든다.

이곳부터는 벌목현장을 만난다. 그리고 시원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328봉(15:50)

봉우리 전체가 벌목을 한 탓에 정상은 허허벌판이다.

오늘 내가 지나온 성태산을 비롯해서 능선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접어들어  월하산으로 향한다.

가야할 월하산이 가까워진다.

거칠고개(16:00)

부여군 내산면 온혜리와 외산면 화성리을 연결하던 옛 고개로 고개의

역할을 잃은지가 오래된 모양이다. 사람의 흔적이라곤 전혀 없는 곳이다

화성리에 항상 일곱 가구가 마을을 형성하고 있다 해서 거칠이라 불렀는데

그 마을 위에 있는 고개를 것칠 또는 거칠고개로 불렀다고 한다.

월하산 갈림길(16:30)

오늘 산행중에 기맥길에서 살짝살짝 벗어난 산이 꽤나 많다.

만세봉과 조공산, 그리고 이곳 월하산이다. 시원한 바람때문에

땀이 마르니 약간의 한기를  느낄 정도이다. 베낭을 벗어놓고 월하산을 향한다.

월하산(月下山:422.6m:16:35)

충남 부여군의 외산면 화성리(花城里)와 내산면 온해리(溫海里) 경계에 있는 산이다.

이 산을 중심으로 안쪽은 내산면, 바깥쪽은 외산면으로 갈라져 있다. 들을 내려다보고 높이

 솟아 있어 달 아래 우뚝 솟은 산이라 해서 월하산이라고 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홍산군의 외산면에 월하산이 기록되어 있다. 한글로 '달아산'이라 쓰고 그렇게 부른다

생전에 처음보는 버섯

373봉(16:45)

383봉(17:10)

월하산 갈림길에서 5개의 400여m 봉우리를 넘어선다 마치 빨래판 구간처럼

오르락 내리락 하는데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온 몸에 진이 다 빠지는 느낌이다.

낮은 산이고 높은 산이고 산이란 어디하나 쉬운게 없는가보다.

나무의 껍질을 홀라당 벗겨놨다. 어느 쉬끼의 짓거리인지...

다시한번 마지막 구간을 치고 올랐다가  다시 내려선다.

305봉(17:25)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인 305봉에는 넓은 공터에 억새가 점령하고 있는

가운데에 삼각점과 표지판이 있다. 이곳부터는 내리막길을 간다.

묘지조성을 하느라고 중장비가 산을 마구 훼손시켜논 곳을 지나니

광산김씨 묘지가 나오고 바로 내려서니 밤나무 단지가 나타난다.

밤나무 단지 끝나는 지점에서 숲으로 가지 않고 우측으로 꺽어져야 기맥길이다.

고갈마을의 주택의 마당을 지나서 고갈마을의 따라 도로로 가고 싶은 마을이

꿀떡 같았지만 다시 좌측의 능선으로 접어든다. 이곳 능선을 따라 가면서

외산면의 택시(041-835-9191)를 콜 해놓고 등로를 걸어 날머리로 빠져나오니

편백나무 숲이 나오고 이동통신 중계기지가 보인다

지티고개(17:40)

충남 부여군 외산면 반교리와 내산면 지티리를 잇는 고개로 40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지티리는 지티마을과 괴목마을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중에 지티마을은 985년경에

인동 장씨가 이주하여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외산면의 경계인 지티고개 아래에

위치하였으므로 지티라고 부른다.

괴목마을는 1486년경 남원양씨가 개촌한 것으로 전해지며 그 후에 차씨 등이 입촌하여 마을이

융성하였으나 양 성씨의 세력다툼과 함께 임진왜란 당시 의병으로 마을의 젊은 사람들이

모두 징집되어 현재에는 이 두 성씨는 한가구도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그 후에는 창녕조씨가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으며 마을 입구에 큰 괴목나무가 있어서

마을 이름을 괴목이라고 하였는데 지금도 그때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약 500여년 된

느티나무가 부여군의 보호수로 지정받고 있다.

비가 오는 가운데 23km의 긴 거리를 끝내고 나니 홀가분한 마음이 든다.

사타구니가 쓰려오건만 지금으로서는 별도리가 없다. 세월이 약이지

호출한 택시가 기다리고 있어서 장비 정리할 시간도 없이 택시를 탄다

외산면까지 10여분만에 도착을 하고 택시비를 5000원을 주고 내린다.

외산면(外山面) 버스 정류장

부여군의 서북단에 위치한 면. 면적 55.79㎢,  면 소재지는 만수리이다.

본래 홍산군 지역으로 성주산·아미산·월명산 안쪽에 있다 하여 산내면이라 하였다.

1895년 월하산 바깥지역을 외산내면이라 하여 하신(下新)·상신(上新)·동구(洞口) 등

25개 리를 관할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내산면 일부 지역을 병합해

지금의 이름으로 부여군에 편입되었다.

차령산맥의 주맥을 이루는 지역으로 산지에 둘러싸인 지형이며, 그 사이를 웅천 상류가 흐르고 있다.

 주요 산업은 농업이지만 경지율이 15.7%로 군내에서 가장 낮다.

축산으로는 군내 유일의 소 방목지인 외산목장이 있다.

제조업으로 장항리에 갈포를 원료로 하는 벽지공장이 있다.

만수리·장항리·수신리·지선리 등 남포층 지질에서는 무연탄이 생산되어

서해화력발전소가 있는 비인 등지로 공급된다.

도로는 대천∼부여간 포장도로가 남부를 지나고 있으며, 여기서 협곡을 따라 청양으로

가는 지방도가 갈라져 있으나 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문화유적은 만수리에 무량사 극락전·석등·오층석탑·당간지주 및 김시습부도·김시습영정,

화성리에 화성리오층석탑 등이 있다.

 수리바위를 중심으로 한 만수리일대의 협곡지형은 단풍철에 특히 아름답다

외산에서 보령가는 버스표

18시 20분 버스라서 20분정도의 여유가 있다. 그래서 젖은 양말과 옷을 좀 갈아 입으려고

하는데 버스가 출발하는게 아닌가. 얼른가서 세워 차를 탄다. 시간이 중요한게 아니라

사람이 없으면 그냥 출발한다고 한다. 차에서 배가 고파서 미수가루에 물을타서 먹으니

조금은 나은 느낌이다. 젖은 옷에 베낭을 의자에 올려 놓으니 기사가 신경질을 부린다.

25분만에 보령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한다

보령시외버스 터미널(18:40)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니 서울가는 버스는 막차인 밤 9시 50분 차만 있다고 한다.

참으로 난감하다. 하는 수 없이 광천과 홍성을 거쳐서 성남을 가는 19시 20분

버스표를 끊고 화장실에 가서 머리를 감고 수건을 물을 적셔서 몸을 딲고

옷을 갈아입고나니 조금은 살것만 같다. 편의점에서 션한 캔맥주 하나 마시고

버스에 올라 깊은 잠에 빠진다. 서해안 고속도로 서해대교 부근에서 천둥번개에

비가 쏟아지는 소리에 잠을 깬다. 평택으로 접어드는데 차가 엄청 밀린다.

성남도착(22:30)

성남에 도착하니 다행히 비는 그쳤다. 야탑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개포동역에 내리니

밤 11시가 다되어 간다. 아들한테서 전화가 온다. 역시 아들밖에 없다.

우리집에 난 항상 NO 4 니까... 만약 개새끼라도 있어서면 한단계 더 밀려나겠지

집에 와서 샤워를 한 다음에 깊은 잠에 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