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젖은 빵과 인생불교
법안 스님
나에게 있어서 불교와의 인연은 아무래도 오랜 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며칠 전에도 대전에 계신 어머님이 백상선원에 들리셔서 50년이 가까워지는 시점인대도
태몽이 오히려 생생하다고 말씀하셨다.
지붕이 구멍이 나면서 하늘에서 동자승이 내려와서 안기는 태몽이었다고 하셨다.
그 태몽이 그렇고, 또한 처음 절집의 일들이 그랬다.
고등학교 때엔 내 잘난 맛에 반야심경을 사서 가지고 다니면서 좋아했다.
그 때가 1974년 봄이었다.
그 이후 철이 들무렵 인생은 철학만으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있었다.
친구의 죽음이었다. 친했던 친구의 연탄가스 죽음이었다.
그 뒤로도 폐결핵과의 젊음을 몽땅 쏟아붇는 소모전이 있었다.
병과 죽음을 절절히 느낀 것이 바로 불교에 입문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많은 친구들이 한결같이 나에게 바랐던 것들이 있었다. 세속적인 출세였다.
한껏 기대를 걸었던 친구들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그러나 그길이 내길이 아닌걸...
얼마전 백상선원 개원 전날 부산에 사는 초등학교 동창인 불자 윤거사가 전화를 해왔다.
세속적으로 출세할 것을 기대를 했었는데, 출가하였다고 아쉬워 하는 것이었다.
너무나 아쉬워하면서 한편으로는 그것을 표현한 것을 미안해 하였다.
오늘도 중학교 동창으로 출가하여 같은 길을 걷는 친구스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정말 20년이 훌쩍 넘어버린 세월동안 잊고 살다가 최근 내가 서울에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접했노라고 통화를 하였다.
그 스님친구도 마찬가지였다나보다.
절에서 고시 공부한다 소식을 접했는데 출가하여 스님이 되었느냐고 웃으면서 묻는다.
그러나, 나는 이길이 좋다. 다음 생에도 틀림없이 부처님의 출가제자로 태어날 것이다.
다만, 금생에 많은 것을 배우고, 기도하고, 노력하여 다음 생에는 지금보다 복력이 많고,
지혜가 있는 그런 출가수행자로 태어나고 싶다.
나는 폐결핵과 7년간 다투고 살았고, 친구의 죽음을 절감하면서 불교를 보는 방향도 많이 달라졌다고 생각한다.
인생불교다.
살아서 하는 불교를 원한다.
도롱룡불교도 아니고 새만금 갯뻘 불교도 아닌 인생불교다.
유한한 세월동안 다녀가는 사이에 우리가 진정으로 무엇이 행복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면서 사는 것이다.
또 하나는 인간정토이다.
죽어서 누리는 행복이 아니라, 이 사바세계에서 생로병사가 급박하게 다가오는 그 순간에도 우리가 극락을
마음에 건설하고, 그 참 의미를 자각하면서 그 생로병사로부터 얼마쯤이라도 자유롭게 사는 것을 원한다.
그것이 인간정토의 불교이다.
그 가운데 우리가 생과 사는 마음대로 못한다.
다만 병고라도 얼마쯤은 다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바로 내가하는 약사여래불에 대한 신앙이다.
약사정토신앙이다. 죽은 다음에 행복할 것을 믿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부터 행복하도록 연습하고 훈련하는 것이 약사정토불교이다.
그것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 날이 올 것이다.
오늘 하루 행복하게 살면 그것이 약사정토신앙이다.
건성으로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사람에게는 정토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아니 하나의 있어도 없어도 그만인 악세사리에 불과할 것이다.
그러나 눈물 젖은 빵을 먹으면서 밤새 인생을 고민한 이에게는 정토야 말로 유일한 구원의 창구임을 알게 된다.
그렇다.
눈물젖은 빵과 인생의 고뇌 그것이 오늘날 나에게 '정토가 전부다'란 상황을 주셨다.
나는 감사드린다.
그리고 하루에도 만나는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그 분들이 있으므로 나란 존재의 의미가 있으니까.
그대가 있음에 내가 있다.
그것이 부처님의 연기법의 한 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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