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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미주알고주알

내가 알 바 아니고...

by 범여(梵如) 2012. 12. 20.

 

 

오불관언(吾不關焉) ㅡ 내 알 바 아니다

 

옛날, 화용월태의 미모로 뭇 사내들의 애간장을 녹이며,

큰 돈을 모은 기생이 은퇴한 후,

풍류객 기둥서방에게 여생을 맡길 양으로

“내 詩에 짝을 맞춘 사람에게 몸을 의탁 하겠노라.” 한즉,

 

먼저 기생이 문제로 내놓은 詩 한 수.

吾家有一酒 大甁小甁 二十四甁 (집에 술 하나, 큰 병, 작은 병 스물네 병이라)

金氏飮許之 李氏飮許之           (김 씨도 이 씨도 마시려 하면 허락하지만)

飮之以後 醉不醉 吾不關焉       (마신 후 취하고 안 취하고는 '내 알 바 아니다.')

 

그러자 약방의 감초처럼 의원님이 대뜸 내놓은 시 한 수.

吾家有一藥 大貼小貼 二十四貼 (내 집에 약 하나, 큰 첩, 작은 첩 스물네 첩이라)

金氏病服之 李氏病服之           (김 씨 병에도, 이 씨 병에도 먹이지만)

服之以後 效不效 吾不關焉       (먹고 난 후 효험 있고 없고는 '내 알 바 아니다.')

 

다음, 심산 유곡의 스님의 시 한 수

吾家有一佛 大佛小佛 二十四佛 (내 집에 부처 하나, 큰 부처, 작은 부처 스물넷 부처라.)

金氏願禱之 李氏願禱之           (김 씨 소원도 이 씨 소원도 기도하지만)

禱之以後 福不福 吾不關焉       (기도한 후 복이 오고 안 오고는 '내 알 바 아니다.')

 

그 다음, 맨 끝으로 거지가 내놓은 시 한 수.

吾家有一瓢 大瓢小瓢 二十四瓢 (내 집에 쪽박 하나, 큰 쪽박, 작은 쪽박 스물넷 쪽박이라)

金氏宴乞之 李氏宴乞之           (김 씨 잔치에도 구걸하고 이 씨 잔치에도 구걸하지만)

乞之以後 廢不廢 吾不關焉       (구걸 후 잔치 파하고 안파하고는 '내 알 바 아니다.')

 

기생 가라사대,

"의원, 스님은 제 직분에 충실치 못했으나..

아무렴 그렇지! 거지가 얻어 먹었으면 그만이지,

잔치가 파했든 말았든 무슨 상관이랴!"

 

그리하여 거지는 기둥서방이 된 이후,

잘 먹고 잘 살았다는데,

사실은 나도 '내 알 바 아니다.'

 

끝으로, 여기에 2012. 12. 19 대선에 즈음한 유권자의 시 한 수.

 

吾家有一票 大家小家 二十四票 (내 집에 표 하나, 큰 집 작은 집 스물 네 표라)

金氏乞許之 李氏乞許之           (김 씨도 달라면 주고, 이 씨도 달라면 다 준다지만)

投票以後 當不當 吾不關焉       (투표 후에 당선되고 안 되고는 '내 알 바 아니다.')

.

.

"사진은 생긴 대로 찍히고,  도장은 새긴 대로 찍히고,

당선은 찍은 대로 뽑히나니, 찍고 나서 찍소리도 못하고

발등 찍고 후회하는..

'吾不關焉'은 천부당 만부당인 줄 아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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