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밀교
1. 밀교의 성립과 역사
‘밀교(密敎)’는 ‘비밀불교(秘密佛敎)’를 줄여 부른 말인데, 깨달음을 위한 수행도로서의 밀교를 진언승(眞言乘), 또는
진언문(眞言門)이라고도 한다. 또한 밀교를 표현하는 다른 용어로는 금강승(金剛乘), 구생승(俱生乘), 시륜승(時輪乘) 등이 있다.
서양에서는 밀교를 딴뜨릭부디즘(Tantric Buddhism), 또는 불교딴뜨라(Buddhsit Tantra) 등 으로 부르는데, 이것은
8, 9세기경 인도의 후기 밀교시대에 성립된 밀교경전을 딴뜨라(Tantra)라고 부른 데서 비롯된 것이다.
흔히 불교딴뜨라를 좌도밀교(左道密敎)라고 오해하는 학자들도 있는데, 좌도는 힌두딴뜨리즘 가운데 샤끄따파를
가리키는 것으로 불교의 범주인 밀교와 전혀 관련이 없다.
밀교는 대승불교의 성립 이후 4, 5세기경에 시작된 것으로 중국의 불공(不空)은 불교를 현교(顯敎)와 밀교로 나누고,
밀교에 대해 부처님의 삼밀(三密)과 상응하는 수행문에 의지하여 많은 겁의 난행과 고행을 하지 않고 신속히 성 불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삼밀은 부처님께서 중생에게 보이신 세 가지 비밀을 말하는 것으로 신밀(身密), 구 밀(口密), 의밀(意密)을 뜻한다.
삼밀을 간략히 설명하면 신밀은 부처님의 신체적 비밀로 부처님의 상호(相好)인 32상 80종호와 함께 보살, 수호존 등의 형태와
색깔, 장신구, 수인(手印) 등을 말한다. 구밀, 또는 어밀(語密)은 부처님의 언어적 비밀로 진언, 다라니, 종자(種字) 등을 가리킨다.
의밀, 또는 심밀(心密)은 부처님의 마음의 비밀로 곧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지혜, 또는 삼매를 말한다. 즉 밀교는 진언(眞言),
다라니(陀羅尼)를 비롯해 다양한 불ㆍ보살의 형태와 수인(手印), 그리고 만다 라(曼茶羅)와 대부분의 불교의식 등을 포함하면서
이것을 방편삼아 깨달음과 중생구제라는 불교의 근본적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불교경전의 경우 대승불교의 성립과 함께 경전의 수지, 독송을 돕기 위해 경전의 축약된 의미를 지닌 진언과 다라니가 등장하고
이에 의지한 수행이 일찍이 등장하였다. 정토(淨土)계 경전에는 불상이나 불ㆍ보살의 정토를 관하는 수행이 존재하였으며,
3, 4세기 경에는 불교경전에 많은 주와 다라니, 그리고 점성술과 제의 등이 출현, 정비되었 다. 이것은 밀교가 불교 내부에서
점차적으로 성장한 사실을 뜻하는 것으로 불교가 인도대륙의 종교환경에서 성장 하면서, 인도의 종교문화에 의지한 외형적
소재들을 수용하게 되면서 이들을 통해 인도대중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 고, 또한 중생구호라는 불교의 본래적 정신을 구현하려 노력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인도에서 성립한 밀교는 불교경전의 전래와 함께 중국에 전해졌는데, 처음에는 진언과 다라니 등의 밀교적
소재가 대승경전에 섞인 채 전해졌으나, 정비된 의궤(儀軌)에 입각해 성불을 목적으로 하는 체계화된 중기밀교 는
8, 9세기경 당 시대에 전해져 한반도를 비롯한 일본에 전해졌다. 한반도를 비롯한 중국, 일본 등의 북방 대승불 교권에서
『대일경』과 『금강정경』을 중심으로 한 밀교의 교학과 수행체계가 유행되고, 정비된 반면 인도와 티베 트에서는 딴뜨라를
중심으로 한 인도 후기밀교가 크게 유행하였다.
한반도의 경우 불교가 전래될 때 밀교가 치병과 호국 등의 방편을 보임으로써 불교를 영험한 종교로 인정받는데 기여하였다.
이러한 과정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티베트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공통된 것으로 불교의 전파에 밀교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였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2. 밀교의 중심 교리
석존의 입멸 후 불교경전에 나타난 붓다관은 부처님에 대해 역사적 인물인 석존(釋尊)에 국한하지 않고, 삼세에 걸쳐 타방정토에
무수히 존재한다고 설하였다. 또한 부처님은 인연에 따른 생멸(生滅)의 존재가 아니라 시공(時空)을 초월한 절대세계에 변함없이
머문다고 하였다. 이러한 붓다의 절대성과 영원성은 대승불교에서는 법신(法身)불로 나타나 『화엄경』의 경우 법신인 비로자나불은
시대를 초월한 절대적 존재로서 열반에 들지 않고 중생을 위해 영 원히 설법한다고 설하여 법신불이 지닌 신앙적 의미를 함께 보여주고 있다.
한편 대승불교의 보살은 보현보살(普賢菩薩)과 같이 중생구호를 위해 마지막 중생이 남을 때까지 자신은 영원히 성불치 않는다고
하여 대승정신의 구현자 로서 그 모범을 보여주고 있다.
밀교의 붓다관은 이러한 대승불교의 붓다관을 계승하면서도 한편으로 붓다와 대보살의 경계를 허물어 진언문의 수행자가
성불하여 자신이 곧 절대 법신의 붓다로서 중생구호를 위해 영원히 노력해야 한다고 설하고 있다. 밀교경전인 『대일경』에서
비로자나여래의 일체지지(一切智智)에 대해 ‘보리심이 원인이 되고, 자비심이 뿌리가 되고, 방편 을 구경으로 한다’고 정의하여
밀교의 궁극적 성불이 중생구호의 방편적 구현을 궁극적 목표로 정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밀교에는 수행의 이상적 성취자로서 금강살타(金剛薩豊)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는 지금강(持金剛)ㆍ집금강(執金剛)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고 있으며, 그 명칭이 의미하듯 절대법신의 영원성을 상징하는 금강과 보리살타의 살타가 결합된 말로서
절대법신이면서 대보살의 중생구호이념을 실현하는 실천자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밀교는 대승불교의 반야사상과 열반관 등의 사상을 계승한다. 용수의 『대지도론』에서 ‘깊은 깨달음은 세간적 현실과
열반을 다르지 않게 본다’라고 한 반야사상과 『열반경』에서 열반은 영원한 안락이며 청정한 자성임을 뜻하는
‘상락아정(常樂我淨)’의 근본 이념을 계승하였다. 따라서 교리적으로 반야의 지혜에 의해 세간과 출세간을 나누지 않고
열반과 생사가 하나라는 깨달음에 입각해, 자신은 공성에 머물면서 중생구호를 위해 현실세계에서 노력하는 성취자의
이상을 금강살타를 통해 보이고 있는 것이다.
밀교경전인 『이취경』에는 ‘수승한 지혜를 성취한 보살은 중생의 윤회 생사(生死)가 다하도록 언제나 중생을 이익되게 하며,
열반을 취하지 않는다. 반야와 방편은 반야바라밀에 의해 알 수 있는 것으로 제법과 일체의 존재는 모두 청정한 것이다.
탐욕으로 가득한 세간을 청정케 하며, 유정과 악취를 존재의 삶이 다하도록 조복시킨다. 마치 연꽃의 줄기가 진흙에 묻더라도,
그 자체는 더러워지지 않는 것처럼 모든 탐욕인 번뇌의 성품도 그와 같이 오염되지 않 으며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
큰 탐욕이 청정하기 때문에 크게 안락하고, 풍요로우며, 삼계에 자재함을 얻어 능히 견고한 이익을 성취한다’라고 하여
대승불교의 붓다관과 반야와 열반 등의 제반 사상에 근거하여 현실 세간의 살아 있 는 실천자에 대한 교리적 기반을 이룩하고 있다.
3. 밀교의 수행이념
밀교수행의 근본적인 목적이 대승적 이념의 실현에 있지만 밀교의 수행을 진언문(眞言門)으로 설정한 것과 같이 밀교는
현교와 다른 독특한 수행방편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수행자가 밀교를 구성하는 진언, 다라니와 수인, 불형(佛形) 등을
소연(所緣)으로 관(觀)하여 내면적인 심식(心識)의 변화를 통해 궁극적으로 성불에 도달하는 것이다.
소연의 대상인 여래의 불형에 대해 『대일경』에는 진언과 수인, 형상의 세 가지가 있다고 설하였다.
같은 경전의 「무상염송문(無相念誦門)」에는 ‘진언행자가 성불의 마음을 결정할 때 먼저 한마음으로 본존을 관해야 한다.
진언과 비밀한 수인을 수호함으로써 유가수행의 본존상을 짓는다. 본존의 색상과 위의(威儀)와 같이 진언행자의 마음도 그와 같다.
본지(本地)신과 상응하는 불신(佛身)에 머물러 비록 복이 적은 자라도 성불할 수 있다’라고 하였는데, 여기서 유가수행은 곧
수행자의 심식(心識)을 붓다의 의식으로 전환하려는 전식득지(轉識得智)의 수행이념에 근거한 것이다.
밀교의 유가수행은 중생의 의식변화를 통해 중생자신의 현실을 붓다의 절대적 현실로 실현하는 것으로 중생의 신어심(身語心)은
곧 붓다의 신금강ㆍ어금강ㆍ심금강으로 전환되는데, 이러한 즉신성불(卽身成佛)의 수행이념은 인도 후기밀교의 수행으로까지
전개되어 생기차제(生起次第)와 구경차제(究竟次第)의 독특한 수행체계의 사상적 기반이 된다.
후기밀교의 수행이념은 중생의 신어심의 영역을 중생의 세 가지 존재인 삼유(三有), 즉 생유(生有)와 중유(中有)와
사유(死有)를 붓다의 화신과 보신, 그리고 법신으로 구현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비밀집회딴뜨라』에는 ‘진언을 관연(觀緣)한 몸은 말과 마음에 의지하며, 마음은 안락하고 즐거워 수승한 실지 (悉地)를 성취할 것이다.
마음에 관연한 무아를 말과 몸에 대해서도 관할 것이니 평등한 공성을 삼밀에 상응하여 성 취한다. 신어의를 관연할 때
그 자성은 관연함이 없을 것이니 진언에 의해 몸을 상응함에 있어 보리도 없고 수행도 없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밀교의 수행이
어떤 생리적이거나, 외적인 변화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공사상이나 유식 사상, 여래장사상 등의 불교의 근본적 교리에
입각해 이것을 철저히 수행자의 내면세계에 반영하는 유가수행임을 잘 나타내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밀교의 교리와 수행은 대승불교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중생의 현실세계에서 얼마나 효율적으로 신속하게 실현할
수 있는가를 연구한 불교 교단의 경험과 노력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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