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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일반산행 ♣/梵如의 山行記

지리산 남부능선을 걷다... 그 둘째날에

by 범여(梵如) 2015. 8. 7.

 

 

 

아! 울 어머니 젖가슴만큼이나 포근한 지리산이여

 

☞ 산행일자: 2015년 7월 28일~30일(1무1박3일)

☞ 산행날씨: 첫날... 흐린날씨에 엄청난 습도, 둘째날... 맑은 날씨에 더움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32km  / 19시간 15분소요

☞ 참석인원: 인연이 있는 9명의 岳友들과 함께 

☞ 산행코스: 쌍계사 매표소-쌍계사-국사암갈림길-환학대-마족대-불일평전-불일폭포 휴게소-불일폭포 갈림길

                   불일암-불일폭포(왕복)-계곡-생불재-산죽길-안부-쇠통바위-송정굴-내삼신봉-삼신봉갈림길-삼신봉

                   한벗샘-헬기장-안부-의신마을갈림길-음양수-거림갈림길-세석산장(1박)-촛대봉-꽁초봉(?)-연하봉

                   일출봉-장터목산장-제석봉-통천문-천왕봉-장터목 산장(왕복)-소지봉-참샘-백무봉탐방지원센터

소 재 지: 경남 하동군 화계면, 청암면 / 산청군 시천면 / 함양군 마천면

 

어제는 피곤했던 탓인지 저녁 9시도 안되어 대피소에 들어가 깊은 잠에 빠졌다가

새벽 4시에 일어나 짐을 꾸린 다음에 어제 저녁을 해먹었던 데크목 식탁에서

부산하게 아침을 준비하여 식사를 마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설 채비를 한다 

 

산행구간 지도

내가 가지고 온 압력밥솥으로 내가 밥을 안쳤는데 난 영 불안하다...잘되야 할텐데

부지런히 아침준비를 하는 동료산꾼들

여성산꾼들은 점심에 먹을 주먹밥 만들기에 열심이다

산장에서 하늘을 바라보니 짙은 먹구름이 가득하여 애초부터 일출보기를 포기하고

느긋하게 아침밥에다 해장술을 겸하고... 까이~꺼 세상 부러울게 하나없다

주변 정리를 하고 쓰레기는 각자 베낭에다 넣고 양치질을 하고 해후소까지 들린

다음에 인증샷을 남기고... 천왕봉으로 향한다 (06:00)

아침의 세석대피소 모습

세석대피소에서 단체 인증샷

대피소를 나서면서...

이른 아침에 해발 1700m가 넘는 곳이라 그런지 날씨는 꽤나 쌀쌀하다

체온을 뺏기지 않으려고 바람막이 옷을 입은 채 촛대봉으로 향한다

세석평전(細石平田)의 모습 

잔돌이 많아 평야와 같다하여 잔돌평전이라고도 부르는 세석평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넓은 공원으로 그 주위가 12km나 된다고 하며

상,중,하 식물분포가 구분되고 상층은 초생종류인 지보초, 좁쌀풀, 산새풀 등이

군락을 이루고 중층은 철쭉이 군락을 이루는 관목지대이고 하층은 구상나무를

비롯한 상록수와 혼유림을 이루고 있다

세석갈림길(06:05)

직진으로 향하면 백무동으로 향하는 길... 우측 촛대봉으로 걸음을 옮긴다

돌계단으로 만든 등로를 따라서 걷는데 좌우에는 구상나무와 산오이풀이 즐비하다

촛대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세석평전의 모습

발끝에 부딪히는 잔돌(細石)들이 척박한 고원을 철쭉으로 일구는 '연진(蓮眞) 낭자'의

손끝으로 아려와, 돌이 되어 촛대봉에 굳어 버린 사랑을 향해 '호야(乎也)'는 아직도

세석에서 떠나질 못하는는가 보다 사랑의 힘이 이리도 무섭고 애절하단 말인가..

음양수 한잔 마시고 어느 산봉우리에 올라 어느 님을 그리워 하며 돌이 될 수 있을까..

이 슬픈 사랑의 원인제공을 한 그넘의 호랑이가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세석공원의 최고봉인 촛대봉에서 서남방향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펼쳐진

세석평전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고원으로서 그 주위가 12Km나 된다

 

細石平田... 한문으로 풀어쓰면 '작은돌 넓은들'이라는 뜻의 이곳 세석평전에

해방 후 빨치산들의 군사훈련장이 있었다고 전해지는 분단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좌.우라는 이데올르기도 다 안아 보듬어주는 어머니의 품안 같은 곳

계절마다 피는 야생화의 천국인 이곳을 다시 한번 뒤돌아 본다 

세석평전 오르는 길에 핀 동자꽃도 연진낭자의 애처로움을 하는지 참으로 아련하게 보인다

촛대봉 갈림길에서 바라본 세석산장과 영신봉의 모습

영신봉(靈神峰:1,651m)신을 맞이하는 뜻이라는 봉우리로 지리산 주능선에

있는 봉우리중에 가장 영험한 기운이 모였다해서 명명된 봉우리로 영신봉

아래에 있는 영신대에는 지리산 10대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영신봉의 남사면의 한참 아래쪽에 있는 큰세개골 상단에 영신사라는 절이 있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좌고대와 창불대, 가섭상이라는 바위가 있다.

신 동국여지승람은 영신사 좌고대에 올라 3번 절하는 사람은 성불을 이룬다고 하였다.

영신사는 없어지고 절터만 남아 있는데 세석평전 아래 음양수 아래 대성동의

큰세개골 위가 영신사 터라고 한다

세석평전 습지(06:15)

해발 1,700고지에 습지가 있다 데크목 전망대를 만들어 놨고 습지 안에는

꽃이 진 동의나물과 박새 등이 빽빽하게 군락을 이뤄 바닥이 보이질 않는다

 

촛대봉 아래에 형성된 습지는 자연이 살아있는 증거이며, 촛대봉 아래에 형성된 습지에는

수많은 수생식물과 지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이 거림골 계곡수의 始源이 되는 것 이다

동자꽃과 산당귀도 보이고...

세석평전 습지 안내판

기린초

간산꼬리풀

촛대봉을 오르기엔 그리만만한 곳은 아니다...

먼저간 동료 산꾼들이 촛대봉 정상에 서 있다

촛대봉(燭臺峰:1,703m:06:25)

음양수 전설의 주인공인 연진낭자가 낮에는 세석평전의 철쭉밭을 가꾸고,

밤에는 죄를 사하기위해 촛불을 켜놓고, 기도를 올리던 장소라하여 촛대봉이란 이름이 붙었다.

 

훗날 연진낭자가 바위로 변했는데 그 전설을 증명이나 하듯 촛대봉에는 기기묘묘한,

바위들이 삼라만상을 이루고있다.

세석평전에서 올려다 본 촛대봉은 그리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지리산 주능선

종주에서 두번째로 어려운 오르막길이고, 성삼재에서 출발할 경우 지리산

종주에서 맨 처음 만나는 1700m급 높이를 가진 봉우리이다.

촛대봉에서 바라본 영신봉과 칠선봉의 모습

이른 새벽에 짙은 먹구름이 끼여 혹 비가 오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는데

다행히 비는 올지 않을것 같다...영신봉 위로 비치는 햇살을 보니...

촛대봉에서 바라본 천왕봉의 모습은 아련하기만 하다

산오이풀(Sanguisorba hakusanesis)

오이풀은 잎을 비비면 오이향이 난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며 우리나라에서는

오이풀 종류가 5가지나 있으며 이 중에 산오이풀은 지리산과 설악산의 높은

곳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종으로 8~9월 사이에 피는 종자색 꽃은 꽃차례가

밑으로 처지며 꽃에 꿀이 많아 강한 향기를 발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촛대봉 정상에서 다시 갈림길로 내려와서 장터목 산장으로 향한다 

안부(06:40)

뒤돌아 본 촛대봉

떠나는 산꾼 범여 연진 낭자가 아쉬운 듯 바라본다

1년에 한번씩은 걸어보는 이 길... 왠지 낯설지 않게만 느껴진다

청초하게만 느껴지는 모싯대꽃

나와는 상관없소이다

로프를 타며 암릉으로 오르니...

호젓한 길을 걸으니... 전망암을 만난다

"산은 살아있다.
어떤 생명체 보다 민감하게 거창하게 풍성한 생명력과 섬세한 심미감과
마를줄 모르는 정열을 지니고 있는것이 산이다.

 

산에 봄이 오면 봄의 산이 된다기 보다 봄 그 자체가 된다.
여름이 오면 여름 그 자체가 되고,가을이 오면 가을 그 자체가 되고,
겨울이 오면 겨울 그 자체가 된다.
계절이 산을 스쳐가는것이 아니라 산이 그 의지와 정열로써
산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이산(智異山)이라고 쓰고 지리산이라고 읽는다

(이 병주의 소설 지리산에서)

산꾼의 조그만 두 발이 참으로 무섭구나

조금전 지나온 촛대봉도 멀어지고 어제 지나온 삼신봉은 보일락말락...

이번 산행을 같이한 여성 산꾼의 멋진 포즈

암봉  아니 꽁초봉(07:15)

암릉구간을 오르니 이번 산행중에 가장 조망이 잘되는 곳이다

이곳을 오늘 산행을 같이한 진주댁(닉:해미님)이 꽁초봉이란다

산꾼들이 담배를 피고 꽁초를 바위틈속에 끼워 넣어서 그렇게 부른단다

암봉에서 바라본 남쪽 청학동과 거림골의 모습

북쪽의 남원과 함양지역의 모습

오늘 동행한 여성 산꾼 4인방

60줄에 들어선 여인들이 울매나 산을 잘타고 해박하신지 난 명암도 못내민다 

엉거주춤한 자세로 인증샷 하나 남기고...

매번 지리산에 와서 느끼는 감정이지만 벅찬 감동보다는 두려움이 다가오는 산이다.

흔히들 지리산을 포근한 어머니의 품안같아 여자들의 산이라고 표현하지만

장쾌하고 위엄을 갖춘 아버지의 넓은 가슴을 가진 남자의 산이라 부르고 싶다.

골짜기마다 슬픈 역사와 동족상쟁의 아픔을 가졌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은...

지리산은 폭염속에서도 벌써 가을을 준비한다

다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연하봉을 향해서 오름길을 시작한다

지나온 촛대봉과 꽁초봉(?)의 모습

연하봉(煙霞峰:1,730m:)

연하봉(煙霞峰)의 이름은 아름다운 경치를 지극히 사랑함을 뜻하는 고사성어에서 유래된 명칭이다.

연하선경은 기괴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어 새벽 여명의 실루엣이 환상적이며 고사목이 숲을 이루고

원시림이 가득하여 연하봉 일대의 비경을 지리10경중에 제5경인 연하선경(煙霞仙京)이라 부른다

연하봉 이정표

바위 구절초

장터목 가는 길에서 뒤돌아 본 연하봉의 모습

일출봉(日出峰:07:35)

예전엔 보지 못했던 일출봉이란 이정표도 보이고...

일출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남쪽능선

흰고들빼기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글 이원규, 노래 안치환)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시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려면,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만 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예전에 없었는지 모르고 지났는지 모를 일출봉에서 내려서니 장터목산장이 보인다

장터목(07:50)

산청군 시천면 사람들과 함양군 마천면 사람들이 물물교환과 물건을

사고팔던 곳이라 장터목이라 불렀다고 한다

 

장터목에 있는  산장은 1971년 4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지리산 산장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1986년 80명, 1997년에는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확대되었으며 자연보호와 탐방객의 편의및 안전을 제공하기 위해 운용되고 있다

대피소에서 중산리방향으로 20m가량 내려가면 산희샘(장터목샘)이란 식수가 있다

막내인 주원아빠가 천왕봉을 가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장터목 대피소에서

주원아빠에게 베낭을 맡기고 스틱만 가지고 편안한 맘으로 천왕봉으로 향한다

급한 오름을 하니...제석봉 고사목지대가 시작되고...

제석봉 고사목 지대

 

한 인간의 오만과 탐욕의 댓가가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가슴아픈 상처로 남아있다

지금 지리산 남부능선은 구름바다(雲海)

제석봉 전망대에서 동료산꾼들

제석봉 전망대에서 바라본 반야봉

반야봉은 지리산 8경의 하나인 반야낙조로 유명한 봉우리로

지리산 어느곳에서나 이 산은 아기엉덩이 처럼 보이기때문에

"아기궁뎅이처 럼보이는 산이 반야봉이야"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산의 곡선미가 우아하고 여성스럽지만 이런 반야봉은 사실 남성을 상징하는 산이다

반야는 산스크리트어의 프라냐(prajna)를 음역한것으로 불교경전의반야경(般若經)에 의해 알려진 명칭이다.

 

반야의 뜻은 '절대변하지않는 완전한 지혜'를 의미하므로 지리산에서 지혜를얻는다"라는

말은 반야봉에서 유래된 것이라 추정할수있다.

전설에 따르면 천왕봉의 마고할매가 반야도사를 만나 혼례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반야는 훗날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며

서쪽으로 떠난 뒤 영영 돌아오지 않고 불도를 닦았다.

그 후 그가 도를 닦았던 산은 반야봉이라 불리면서 남성미를 상징하는산이 되었지만,

생김새가 한없이 부드러워 여성성도 가지고 있는 산으로 알려졌다.

 

지리산에는 불교와 관련된 지명이 제석봉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불교와 관련된

지명만으로 나열하면 반야봉을 제일 꼭대기에 있는 봉우리라 해석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천완봉이지만 불교적인

관점에서는 반야봉을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 말한다.

 

반야봉보다 높은 제석봉, 중봉, 하봉을 제쳐두고 반야봉을 천왕봉 다음의

제2봉으로 치는 것도 반야봉에는 불교적인 관점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석봉(帝釋峰:1,806m:08:15)

제석신이 머무는 봉우리라 하여 붙혀진 이름으로 봉우리 아래에 제석단과 향적대가 있다

불교에서 가져온 지명으로 제석천신은 도리천의 주석하는 불교의 수호신이다.

불교적 의미에서 볼때 제석(帝釋)은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의 임금을 말하므로 지리산에서 가장높은

천왕봉 밑에 제석이란 이름이 붙은것을 보면 지극히 당연한 작명인 것 같다.옛날 민간신앙으로 제석천(帝釋天)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제석단이 있었던 곳이라 해서 제석봉이라 한다.

 

 

제석봉엔 하얀 고사목들이 처연하고 봉우리 일대가 황량하다.

이 제석봉 고사목은 늙어 죽은 고사목이 아니라 인재에 의한 고사목이라고 한다.

즉 자유당 말기에 당시 농림부장관이던 사람의 삼촌이란 자가 권력을 등에 업고

제석봉에 제재소를 차려놓고 거목들을 베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여론이 악화되고 말썽이 날 것 같으니까

흔적을 없애려고 제석봉에 불을 질렀단다.

터리풀

노루오줌

범꼬리

통천문(通天門:08:20)

하늘로 통한다는 뜻을 가진 통천문... 결국 이 문이 세상과 하늘의 경계인 셈이다,

이 문을 지나 하늘의 임금이 살고 있다는 천왕봉 이라는 하늘나라가 있다면

이럴것이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스럽고 아름다운 곳임이 분명해  보인다

통천문 입구 좌측 커다란 암릉에는 ‘通天門’이라고 암각되어 있다

시인 고은님은 통천문을 신선들이 하늘에 오르는 것이 다른 산에서는 자유롭지만

지리산에서는 반드시 통천문을 통하지 않고서는 신선도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 고 했다,

신선조차도 이 관문을 거쳐야 할 정도니 우리 인간들이 천왕봉을 오르기 위해서는 마음을

가다듬지 않을수 없다는 것이다 

위에서 바라본 통천문의 모습

산오이풀

지리산은 백두대간 줄기의 남쪽 끝자락에 솟아 있으며, 주봉인 천왕봉(天王峰)은 해발 1,915m로서

남한의 육지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고, 지리산은 1967년 국립공원 제1호로 지정됐다.

산자락은 경남. 전북, 전남의 3개 도, 함양군, 산청군, 하동군, 남원시, 구례군의 5개 시,군,

15개 읍,면에 걸쳐 있으며, 영,호남 8백여 리, 320km에 광대하게 펼쳐 있어서

그 넓이가 471.8㎢이며, 여의도 면적의 52배이다.

 

 그리고 서쪽 노고단에서 동쪽 천왕봉에 이르는 주능선 상에는 반야봉, 명선봉, 칠선봉, 촛대봉,

연하봉, 제석봉, 하여 1,500m 이상의 준봉이10여개 이상 버티고 있으면서 그 안에 크고 작은

 산줄기가 사방으로 얽혀, 수많은 계곡과 고원을 만들어 하나의 거대한 산국(山國)을 형성하고 있다.

한반도의 좁은 땅덩어리에 이처럼 넓은 산국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신기할 정도이다.

 이처럼 큰 덩치에다가 토심이 깊은 육산이어서 800여종의 동 식물이 서식하고 있으며,

드넓은 품새로 인하여 아름다운 자연미를 연출하고 있다

「금강산은 빼어나되 웅장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웅장하되 빼어나지 못하고」

라는 서산대사의 비유가 있듯 지리산은 날카롭고 빼어남은 부족하나 웅장하고두리뭉실한 기운이 돋보인다.

행정구역상 경남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 山 208번지에소재한 천왕봉(1,915m)을 주봉으로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이 대표적이며,천왕봉에서 노고단을 잇는 100리 능선에는 1천 5백미터가 넘는 고봉이 10개,

1천미터가 넘는 봉우리가 20여개나 있을 정도로 높고 크다.

 

평평한 고원지대도 많이 발달해 야생화나 철쭉 등이 장관을 이루기도 한다.
해발 1915m, 지리영봉의 제1봉인 천왕봉, 아래 로 땅을 누르고 위로는 하늘을찌를듯 우뚝 솟아 찾는 이를 알도록 한다.

거대한 바위를 예로 부터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란 의미를 풀이해 천주라 불렀음인지 서쪽 암벽에 "天柱"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다

 

남명 조식선생이 일찍이 "萬古天王峰 天嗚猶不嗚"이라며 "하늘이 울어도 아니 우는 뫼" 로

지리영봉의 장엄함을 찬탄했듯 그 위용은 아직도 변함없다. 천왕봉은 반야봉과 노고단등 1백10여개의

우뚝 솟은 준 봉을 거느리고 그 아래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크고 작은 봉우리들의 호위를

받으며 그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뿐만 아니라 연하선경에 울창한 원시림과 골골 마다 용솟음 치듯 흐르는

물보라등 태고의 숨결을 발아래 숨겨둔채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방장산(지리산)의 솔잎이 푸릇푸릇 다함이 없으니

만번 죽어 마땅한 신(臣)이

이것으로 여생을 마치기를 원합니다.

 

홍의장군 곽재우가 임진왜란 때 억울한 옥살이를

한 후에 관직에 임명되었을 때 사절하면서 남긴 말 中에서

천왕봉 오르는  등로옆 암릉에는 이름을 암각해놨는데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자기 이름을 남기길 좋아하는 모양이다

천왕봉 오르는 길 좌측으로 지리산에서 2번째 높은 중봉(1,874m)이 보인다

높이는 2번째 높지만 그리 대접을 받지 못하는 느낌이다

天柱’ 와 ‘日月臺’...한문 이름 등로 쓰진 암릉을 촬영했는데 선그라스를 쓰고

찍었는데 앵글을 잘못 잡았는지 진짜 중요한 ‘天柱’라는 곳은 짤려 버렸다

서쪽 암벽에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의미의 '天柱'라는 음각 글자는

행서체(行書體)의 글씨로 새긴 일월대(日月臺)의 각자를 새긴 정태현鄭泰鉉(1858~1919)은

일주 정여창의 후손이며, 충청도 관찰사를 지낸 함양선비이고 그가 남긴 죽언집을 보면 각자를

새긴지가 100 여년전쯤으로 보인다.

천왕봉 정상에서 만난 어린애

평택에서 왔다는 꼬마 2명 참으로 대단하고 기특해 보인다

젊은 부모와 초등학생 누나 등 5명의 가족들이 올라 왔는데... 이쁜넘들

천왕봉(天王峰:1,915m:09:00)

남한에서 한라산(1,950m) 다음으로 높으며 거대한 암괴(岩塊)가 하늘을 떠받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서쪽 암벽에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의미의 '天柱'라는 음각

글자가 있고 정상에는 1982년에 경상남도가 세운 높이 1.5m의 표지석이 서 있다.

그 당시 경남도지사였던 이 규호씨와 산청 출신이며 민정당 사무총장까지 지냈던

여당의 실세였던 국회의원 권익현씨가 참석한 가운데 제막식이 열렸다고 한다

높이 1.5m의 자연석에 전면에는‘智異山 天王峰 1,915m’ 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

‘韓國人의 氣像 여기서 發源되다’라고 씌어져 있다

 

언제부터 천왕봉이라 불리웠는지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다양한 유래를 품고있다.

전자의 경우 불교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지배적이다

사찰에 들어설 경우 가장 먼저 만나는게 사천왕문인데  천왕문은 사천왕문에

유래됐다는 설인데 우리나라 명산중에 천왕봉은 이곳 이외도 여러곳이 있는데

불교성지인 지리산 천왕봉도 예외는 아닐듯 싶다

후자는 일제강점기에  우리민족의 혼을 말살시키기 위해 창씨개명을 요구하며

천왕봉을 천황봉(天皇峰)이라 부르기도 했다는데 지리산은 전자가 맞을듯 싶다

 

함양 방면으로는 칠선계곡을 이루고, 산청 방면으로는 통신골·천왕골(상봉골)을 이루어

중산리계곡으로 이어지며 암릉으로 이루어진 정상은 항상 구름에 싸여 있어 예로부터

3대에 걸쳐 선행을 쌓아야 이곳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다는 말이 전해올 정도이다 

육지에서 제일 높은 정상답게 사방이 활짝 열려 있는데 오늘의 지리산 정상은

일망무제(一望無際)인데 일망무제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채근담(菜根譚)에는 ‘높은 데 오르면 사람의 마음이 넓어진다(登高 使人心曠)’

라고 했으며, 맹자는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말하지 않았나 싶다.

지난해 1월1월 긴년 일출산행때는 인파에 밀려 인증샷도 못하고 내려갔고

그 해 8월 백두대간 남진때는 폭우성 비에 생쥐꼴을 하고 내려 갔는데 오늘은 평일인데다

오전이라 그런지 정상에는 우리 일행 이외 사람들이라고는 10여명밖에 없어서

오랜만에 천왕봉을 전세(?)내다시피하는 호사를 누린다

지리산은 예로부터 우리나라 5대 명산의 하나라 했으며, 우리나라 8경중의 하나라 했다.

그리고 예전부터 중국에서도 봉래산(금강산),영주산(한라산)과 더불어 방장산(方丈山)이라

하여 삼신산의 하나라 했으며, 진(秦) 나라 시황제(始皇帝)는 동남동녀 500명으로 하여금

해동의 삼신산에 가서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했다는데, 바로 그 삼신산의 하나가 지리산이다.

이러한 지리산이기에 예로부터 우리나라 5대 명산의 하나라 했으며, 우리나라 8경중의 하나라 했다.

 

그리고 예전부터 중국에서도 봉래산(금강산), 영주산(한라산)과 더불어 방장산(方丈山)이라

하여 삼신산의 하나라 했으며,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는 동남동녀 500명으로 하여금

해동의 삼신산에 가서 불로초를 구해 오라고 했다는데, 바로 그 삼신산의 하나가 지리산이다.

그리고 신라시대에는 5악 중의 남악(南岳)으로서 국가 수호산의 역할을 담당한 흔적이

노고단에 남아 있다.

그리하여 ‘어리석은 사람도 이 산에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 혹은 ‘지혜로운

이인(異人)이 사는 산’이란 뜻의 지리산(智異山)이란 이름이 이미 신라시대부터 있어왔다.

구절초도 꽃망울을 튀우기 시작한다

천왕봉을 내려와 장터목 산장으로 향한다

智異山

지혜(智慧)로운 이인(異人)이 많다는 걸까. 智利, 地利, 智異 등이

혼용되다가 불교의 영향으로 智異로 굳어졌다고 한다.

지리산의 이름은 큰스님을 뜻하는 방장(方丈)산, 백두산에서 흘러왔다는

두류(頭流), 또는 머물렀다는 두류(頭留)산, 이성계가 기도 드릴 때

지리산에서만 소지(燒紙)가 타오르지 않아 불복(不服, 不伏)산,

심지어는 빨치산 소굴이라고 적구(赤狗)산이라는 황당한 이름도 있었단다.

 

헌데 불교계에서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일만 권속을 거느리고 상주하는 곳이 지리산인데,

문수보살이 지혜(智慧)로써 많은 이적(異蹟)을 보인다하여 ‘智異山’이란 명칭이 생겼다고 하며,

또 다르게는, 대지문수사리보살(大智文殊師利菩薩)에서 유래됐는데, 발음으로는

지리(智利), 문자로는 지이(智異)로 쓴다는 것이다

 

- 여기서 이(異)는 문수(文殊)의 수(殊)와 같은 뜻

철계단을 내려서 안부로 섰다가 통천문 가는길에는 범꼬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다시 통천문(09:30)

꿩의다리

패랭이꽃

이정표(09:45)

앙증맞은 톨탑이 있는 곳에서 좌측으로 우회하며 오르막을 오르는데 갑자기 허기가 진다

난 베낭을 장터목 산장에 두고 왔기에 참고 가는 수 밖에 없는데 천왕봉까지 베낭을

메고온 넉살좋은 선달아우님의 베낭에서 소주 한병을 꺼내서 마시는데 이렇게 맛있는

소주맛은 세상에서 처음인 것 같다... 나와 연식이 같은 진주댁과 셋이서 소주한잔

마시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제석봉으로 향한다

원기를 보충하고 다시 제석봉으로 향한다

참 곱다

다시 제석봉(09:55)

선달아우님 고마우이

바위 구절초

제석봉 고사목은 늙어 죽은 고사목이 아니라 인재에 의한 고사목이라고 한다.

즉 자유당 말기에 당시 농림부장관이던 사람의 삼촌이란 자가 권력을 등에 업고 제석봉에 제재소를

차려놓고 거목들을 베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여론이 악화되고 말썽이 날 것 같으니까 흔적을 없애려고

제석봉에 불을 질렀단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주 능선은 25.5km에 이르며 이 산의 둘레는 320km에 달한다.

이 넓은 터에 해발 1500m가 넘는 봉우리가 20여개가 있는데 그 가운데 동쪽의 으뜸은

천왕봉 (1915m)이고 서쪽의 으뜸은 반야봉과(1732m) 노고단(1507m)이다

이 세 봉우리를 지리산의 3대 주봉이라 부른다.

 

 

최고봉인 천왕봉(1915m)에서  능선을따라 서쪽으로이동하면  제석봉(1806m),

연하봉(1730m), 촛대봉(1703m), 영신봉(1651m), 칠선봉(1576m), 덕평봉(1522m), 명선봉(1586m),

토끼봉(1534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 만복대(1433m), 고리봉(1304m), 바래봉(1165m)이

있으며 천왕봉의 동쪽에는 중봉(1875m), 하봉(1781m), 써리봉(1640m), 웅석봉(1099m)이있다.

 이 가운데 천왕봉에서 노고단사이의 산행을 종주산행이라 말하며, 동쪽 끝의 웅석봉에서 서쪽끝의

바래봉까지의 산행을 지리산 극종주 산행이라 부른다. 

지리산에는 또한 20여개의 긴 계곡들이 있다.  동쪽 천왕봉에는 칠선계곡, 한신계곡,

대원사계곡이 있으며 서쪽 반야봉에는 피아골,뱀사골, 심원계곡이있는데

어느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저마다의 매력으로 넘친다.

 

지질학적으로 볼 때 이 산은 애초에 넓은 바다로 속했으나 모래등이 퇴적된 뒤

선캄브리아기와 고생대를 거치면서 육지와 호수 바다로 번갈아 바뀌었다가, 중생대에 발생한

거대한 지각변동으로  우리나라 전지역이 육지로 솟았을 때 지리산이 가장 높이 우뚝 솟았다고 한다.

인간의 오만과 탐욕으로 인한 죄업... 인간은 자연에게 어떻게 속죄해야 할 지...

큰 산치고 자연경관이 빼어나지 않거나, 많은 일화를 담고 있지

않은 산이 있으랴마는 지리산은 다른 산과는 차원이 다르다.

산이 크다고 산국이란 말을 함부로 쓸 수 없듯이 지리산의 품새는

세상사를 보듬는 포용력이 뛰어나다.

오죽하면 어머니의 산이라 했겠으며, 지리산에 들어가면 굶어죽은 일이 없다 했겠는가.

이러하기에 지리산은 자연환경을 뛰어넘는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그러하기에 이 산국의 역사적 의미 또한 큰 것이다.

다시 장터목 산장(10:05)

장터목 산장에서 이른 점심을 먹는다(10:30)

지금 점심을 준비중

장터목 산장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백무동으로 향한다

지난해 1월1일 신년일출 산행때 내려갔으니 20개월만에 다시 걸어본다

흐드러지게 핀 동자꽃

이곳에 서면 반야봉이 멋지게 조망되는 곳인데 오늘은 그저 아쉽기만 하다

계속해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더운 날씨에 한없이 내려간다

소지봉(燒紙峰:1,312m:12:05)

소지(燒紙)는 신령에게 비는 뜻으로 종이를 불살라 공중으로 올리는 것을 소지라고 하는데

백무동은 지리산에서 신내림을 받는 무속인들이 참샘위에 소지봉에서 천지를 창조했다는

마고할미에게 소지를 올려 보낸것이 소지봉의 유래라고 한다.

또다른 유래는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이곳 지리산에서 祭를 지낼 때 아무리 소지를

올려도 높이 올라가지 않아서 지리산을 전라도에 귀속시켰다는 설도 있다

참샘(12:20)

소지봉에서 내리막길이 계속되는데 국립공원에서 토사유출을 막기위해 바닥에 돌을 깔아놔

무릎에 엄청난 충격을 준다... 산꾼을 이런곳이 가장 겁나는 곳이라 스틱을 이용해 조심스레 내려온다

15분 정도를 내려오니 목책을 막아둔 아래에 참샘이 나타나는데 물맛이 참으로 좋다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수량은 풍부하다... 시원하게 물한바가지 마시고 수통에 까지 채운다

고 넘 참 희안하게 생겼네

계속되는 내리막길 돌계단... 도가니에 불이나는 느낌이다

핑크색 산수국도 보이네

어디로 행차하시나이까?

출렁다리를 건너니 하동바위가 나오고...

하동바위(900m)의 모습

하동바위의 유래

이곳은 행정구역이 함양군 마천면인데 하동바위라 부르니 의아함이 드는데 전해오는 설화가 있다

옛날 장터목에 장이 서던날 함양원님과 하동원님이 지리산상의 장날을 둘러보기 위해 장터로 향했다

풍류를 즐겼던 두 원님은 뜻밖에 만나 장기를 한판 두었고, 하동 원님의 승리로 끝났다

내기에 진 함양원님은 수중에 내놓을만한 것이 없었던 터에 하동원님을 놀려줄 요량으로

눈앞에 우뚝 선 바위를 가져가라고 말했다. 설마 바위를 가져갈 수 있겠냐는 터였다

그런데 하동원님은 그 자리에서 고맙다면 하동사람들의 바위라는 뜻으로 그 바위 이름을

‘하동바위’로 명명해 버렸다

또다른 설은 하동군수가 지리산에 왔다가 떨어져 죽은 바위라해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하동바위를 지나니 계곡이 나오고 이곳에서 혼자 잠시 발을 담그고 휴식을 취한 다음 백무동으로 향한다 

편안길을 만나 내려서니 구름다리가 나오고 백무동 입구가 나온다

백무동 입구(13:15)

이틀동안 19시간 15분의 긴 산행...아! 피곤하다

백무동 탐방센터 입구

백무동 마고할매상

백무동 버스 주차장 우측에 지리산 천왕할매상이 있는데

이곳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 마을의 이름은 창조 신화의 여신

마고할매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지리산의 여신 마고가 반야와 결혼한 후 그의 딸 100명을 무당으로 전국에

배출하였는데 지리산에서 그 딸들이 내려왔던 통로가 이곳 백무동이였다고 한다

버스 터미널 옆에 있는 백무산장이란 곳에서 여장을 푼 뒤 샤워장에서 깔끔하게 샤워를 마치고

오랫만에 만난 岳友들과 버스 시간을 늦춰가면서 3시간 가까운 식사시간을 가지는 여유를 즐겼다

다들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백무동 버스 정류장(16:50)

식당을 나와 버스 정류장을 나서는데 산 위와는 달리 숨이 막힐정도로 폭염이다

뉴스를 보니 이곳에 폭염경보가 내려졌다고 하니 얼마나 더운지 짐작이 간다

백무동 버스 시간표

 

백무동발 동서울행 버스

백무동에서 출발하는 17:00발 버스에 올라, 마천, 인월, 함양을 거쳐 고속도로에

접어드니 긴장이 풀린 탓인지 깊은 잠에 빠지는데 얼마나 잠을 잤는지 기억이 안난다

잠에서 깨어 창밖을 바라보니 중부고속도로 호법 분기점이 보인다

참 많이도 잤구나... 잠시 후 저녁 9시가 살짝 넘은 시간에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하여 김준길 회장님이 2차 뒷풀이를 하자는 걸 사양하고 집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