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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한국의 고개

문경새재는 조선시대 영남대로(嶺南大路)

by 범여(梵如) 2015. 12. 4.

 

영남대로(嶺南大路)

 

문경새재는 옛 신라시대에 고사갈이성(高思葛伊城)이 있던 곳이라고 「문경현지(聞慶縣誌)」에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태종 14년(1414년) 조령로(鳥嶺路:새재길)를 관도(官道)로 개통시켰으며, 그 전까지는 문경 관음리에서

충주 미륵리로 넘어가는 하늘재를 통하는 길을 이용하였으나 하늘재는 한참을 돌아서 한양을 가는 길로서

새재개통 이 후 조선조의 간선교통로는 한양에 결절하는 X자형 패턴을 기본 골격으로 삼고 있었다.

 

한양에서 서북지방으로 뻗은 도로를 '서로'라 하여 의주를 종착지로 정하였으며, 동북지방으로 향하는

도로는 '북로'라 하여 종점은 함경도의 서수라 정하였다.

 

충청도 서쪽을 지나 전라도로 연결되는 길은 소위 '삼남로'라 하였는데 강진을 종점으로 하였으나

여기에서 제주까지 뱃길로 이어졌다.

 

한양에서 충청도의 동북부지방을 거쳐 경상도의 동래까지 뻗은 길은 '남로' 또는 '영남대로'이며 부산포가 종점이었다.

일본으로 연결된 영남대로는 우리문화를 일본에 전파시킨 도로이며 대일교역이 활발해 짐에 따라 상경로를

좌로, 우로, 중로, 수로 등 4로로 분산시켰고, 이 교통로의 이용은 임진왜란 당시까지 계속되었다.

 

좌로는 울산의 염포에서 한양에 이르는 교통로인데 경주, 영주, 의흥, 의성, 안동, 풍기, 죽령, 단양, 청풍,

충주, 여주, 양근 등을 경유하였으며 단양에서 한양까지는 남한강 수로를 이용하였다.

 

중로는 동래 부산포에서 상륙한 왜사들이 이용하였는데

양산, 밀양, 청도, 대구, 인동, 선산, 상주, 유곡, 조령, 음성, 이천,

광주 등을 경유하였으며 이 길은 영남대로와 대체로 일치한다.

 

우로는 웅천 내이포에서 김해, 현풍, 성주, 김천, 추풍령, 영동, 청주, 죽산, 양재 등을

경유하였는데 죽산과 한양사이는 영남대로를 이용하였다.

 

수로는 부산포를 떠나 낙동강구의 감동포로 들어서고, 소강하여 수산, 왜관 등을

경유 하여 상주 낙동에서 하선하였다.

이곳에서 충주까지는 조령로를 통과하고, 다시 충주 금천에서 승선하여

남한강 수로를 따라 북상하여 한양에 이르렀다.

 

참고자료 : 길위의 역사, 고개의 문화/문경새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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