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섬강(백운)지맥(終)

섬강(백운)지맥 제1구간 -성남주차장에서 가리파재(치악재)까지

by 범여(梵如) 2016. 11. 14.

☞ 산행일시: 2016년 11월 13일

☞ 산행날씨: 아침에 비...하루종일 흐린날씨에 짙은 안개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8.3여km + 5.8km / 6시간 53분 소요

☞ 참석인원: 인연있는 산꾼 11명과 함께

☞ 산행코스: 성남주차장-상원골-임도 주차장(1)-임도주차장(2)-남대봉 갈림길-약수터

                 상원사-영원사갈림길-갈림길-남대봉-다시 갈림길-영원사 갈림길-암봉-암봉

                 조망바위-시명봉-무명봉-1,101,3봉-안부-암릉-1,064봉-갈림길-돌탑

                 789.4봉-667.4봉-갈림길-명경사 입구-명경사-안부-550.8봉-NO60송전탑

                 가리파재(치악재)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판부면

 

요즘 나라꼴이 말이 아니다...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이 지경까지 왔단 말인가?

그런데도 백척간두의 이 나라를 구하겠다는 사람들은 보이지도 않고 목소리큰 사람만 보이니...

대한민국 꼴 참 잘되어 간다이런 나라에 연체없이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있으니...

난 정녕 바보인가?여당 인사들은 자기 보신에만 열심이고 야당의 지도자란 자들은 마치 자기들이

정권을 잡은양 연일 민중들 선동에만 열심이니... 예전의 YS나 DJ같은 큰 정치를하는 지도자들은

눈을 씻고봐도 안보이니... 이 나라가 어디로 갈런지 걱정이다너무들 꼴값떨며 김칫국 마시지마소...

그리고 침묵하는 다수의 민심도 헤아리소이 나라는 정치인만 빼놓고는 다 선진국 수준인데

저쪽의 수준은 언제쯤 업그레이드 될까

 

섬강(蟾江:백운:白雲)지맥 개념도

 

섬강(蟾江:백운지맥:白雲枝脈)은

영월지맥 남대봉에서 분기하여 시명봉 백운산을 거쳐 서진(西進)하며 섬강이 남한강에

합류하는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흥호리에서 산줄기를 마감하는 46.9 km의 산줄기다. 

남대봉은 원주시와 횡성군의 경계에 있고, 지맥은 원주시 판부면과 신림면을 가르며 출발한다.

중앙고속도로 가리파재를 넘어 올라선 △937.6 m봉에서 충북과의 도계를 접하다가 백운산을

넘고는 원주시 귀래면으로 들어간 다음, 미륵산을 지나고 부론면계를 접하다가 영동고속도로를

잠깐 건넜다가 다시 넘어와 섬강의 하구로 내려가는데 남한강과의 합수점은 부론면 흥호리 동매마을이다.

원주시가 강원도의 남서부에 위치했고, 섬강(백운)지맥이 원주시의 남서쪽 끝단으로 내려가니

섬강(백운)지맥은 강원도의 남서단으로 가는 지맥이 되겠다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섬강(蟾江)이라 부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영월지맥에서 갈라지는 섬강(백운)지맥...사실이지 몇년전에 걸었던 영월지맥으로 부르기에는 조금은

무리해 보이는 느낌이다 삼계봉에서 출발하여 횡성의 산봉우리를 두루 섭렵하고 원주의 진산인

치악산 끄트머리인 남대봉에서 우측으로 꺽어서 원주 부론면의 흥호리에서 섬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합수점에 맥을 다하는 것이 맞을듯 싶은데 왜 남대봉에서 좌측으로 방향을 바꿔서 영월로 향하는지

맥을 타 본 사람으로서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다

오늘 처음으로 나서는 섬강(백운)지맥도 어떤 분들은 치악지맥으로 부르기도 한다

8년정도 매주 맥산행을 진행하다보니 이제 맥이 조금은 보이는 느낌이나, 감히 고수들한테 부딪힐 실력은

안되나 신산경표상에 기록된 맥의 오류도 보이는 건 사실이나, 그건 내가 할 일이 아니고 난

열심히 산을 타면서 나름대로의 기록을 정리해 본다

신림 삼거리(09:30)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는 원주터미널에 들려서 다시 원주에서 제천으로 가는 버스를 갈아탄 다음에 중앙고속도로

신림I.C를 나와 신림면소재지에서 내려 치악산국립공원 성남분소가 있는 종점까지 택시를 타고 가려고 했는데

신림면 소재지에는 택시가 딱 한대뿐이라 인원이 12명인 일행에겐 택시가 3대가 필요하기에 버스를 타고 가기로

하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5분정도 있으니 종점까지 가는 23번 버스가 도착한다

치악산 국립공원 성남분소 주차장

예전에 기맥을 같이했던 산꾼들과 함께 오랫만에 맥산행에 나선다.

아침 07시 20분에 동서울터미널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원주터미널에 들렸다가

신림면소재지에서 내린 다음에 10여분 정도 기다리니 치악산 입구까지 가는 23번

원주시내버스가 오기에 버스를 타고(요금 1,300원)타고 종점까지 가서 버스에 내리니

가는 비가 그칠줄 모르고 내리나 우의를 입을 정도는 아니다

치악산 국립공원 안내도

산행을 준비하다(10:00)... 사진은 산동네님 자료 인용

상원산장 백색 철책안의 시커먼 바위에는 높은다리라고 표기를 해놨는데 유래를 보니

이곳은 윗성남 북쪽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다리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주막집이 있었다고 한다.

이 주막집은 봇짐장수나, 사냥꾼, 과객등이 쉬다가는 주막집으로 다리를 건너면

치악산의 산세가 너무 험하여 다음 마을까지 가는 길이 험하였다고 한다.

밤에는 더욱 재를 넘어갈 수 없어 오후늦게 도착한 사람들은 대가 구성되어 다음날이 되면

출발하였는데 팔도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먹고, 자고 쉬어서 산을 넘어 갔다하여 놀던 다리,

놀다가던 자리, 즉 노들다리, 노들자리가 되고 현재는 높은다리가 되었다고 한다.

이곳에서 장비를 점검하고 곧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10:05)

이곳 주차장에서 섬강(백운)지맥의 출발점인 남대봉까지는 5.8km란다

민박집 담벼락에는 철없는 개나리가 피어있다.

계곡너머로 가지 말란다...갈 일도 없소이다

2번째 이정표(10:18)

다리를 건너...

참으로 오랫만에 같이 산행을 해본다

예전에 진양, 팔공, 호미기맥을 같이 걸었던 다들 맥산행의 고수들이다

그중에서 절반정도는 아는 산꾼이고, 절반은 모르는 산꾼이다

이분들은 아직도 같이 산행을 계속하는 사이이지만 난 무박과 비맞는

산행이 싫어서 지금은 독립군(나홀로 산행)으로 활동중이다

임도 주차장(1)(10:28)

도로를 따라서 편하게 걷다보니 산행 속도가 상당히 빠른 편이다

오랫만에 계곡 물소리를 들으면서 호젓하게 상원사를 향해서 걷는다

임도 주차장(2)(10:36)

2번째 주차장까지는 차량이 올라 올수있고 이곳부터 상원골 계곡을 따라서 걸어야 한다

다리(1)(10:40)

상원골에는 조그만 폭포들이 참으로 많이 보인다

오랫만에 만난 벙글아우와 조여사님, 한학문 선배님과 산동네님

뭘 그리도 할 말이 많은지... 이야기 보따리 풀어도 풀어도 끝이없다

이정표(10:48)

이곳이 주차장과 남대봉의 정중간 지점이다

두꺼비처럼 생긴 바위(범여의 생각中에서)

2번째 다리(10:50)

3번째 다리(10:53)

4번째 다리(10:56)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지만 그리 험한 정도는 아니다

5번째 다리(11:01)

대한민국 국립공원이 다 그렇듯이 이곳도 산죽밭이 즐비하다

상원사 오름길

정수유심(靜水流深)하고 심수무성(深水無聲)이라

어떤 아이가 공장 안에서 집안대대로 내려오던  회중시계를 잊어 버렸다

아이는 사방을 뒤졌으나 찾을 수가 없자 아버지에게 사실대로 말하였다.

직원들과 함께 찾아도 도저히 찾을수가 없자 아버지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모든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전원을 끈채 조용히 기다려보자.

잠시 침묵이 흐르고 얼마되지 않아 째각째각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시계는 주위 환경이 조용해지자 구석진 바닥에서 자신의 위치를 주인에게 알리고 있었다. 

 

침묵속에 오히려 참된 가치와 위대함이 있다.

“정수유심(靜水流深)하고 심수무성(深水無聲)이라”

고요한 물이 깊이 흐르고, 깊은 물은 소리가 나지 않듯이

고요함 속에 참 진리가 있는 것이다

 

침묵은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린후에 새싹이 돋아나기를 기다리는 농부의 마음과 같다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말을 배우는데는 약 2년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기 위해서는 60년이나 걸린다고 한다

요즘 이 나라는 대통령을 탓하기 전에 유권자인 우리부터 반성해야 한다

정권은 망해도 나라는 살아야 하니까... 

남대봉 갈림길(11:29)

약수터(11:32)

약수물 한잔 마시고 상원사로 향하는데 상원사의 랜드마크인 범종각은 짙은 안개로 아무것도 안보인다

상원사 입구에서 바라본 상원사 범종각(사진 - 펌)

좌측의 일주문이 아닌 우측으로 들어서니 상원사 중수비와 보은의 종 유래비가 서 있다

비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 가람으로 들어서니 좌측으로 종무소가 보이고 맞은편엔 신검당이 있다

대웅전을 향해서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대웅전과 범종각으로 향한다 

상원사 일주문(11:40)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치악산 남대봉 아래에 있는 절인데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다고도 하고 신라말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선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산 상원사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에게 기도하여 관법(觀法)으로 창건하였다고도 한다.

고려 말에 나옹이 중창하였고, 월봉(月峯), 위학(偉學), 정암(靜巖), 해봉(海峯), 삼공(三空), 축념(竺念) 등의

선사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으며, 조선시대의 여러 왕들은 이 절에서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도하게 하였다.

6 25전쟁 때 전소되어 폐허화 되었던 것을 1968년 당시 주지 송문영법사와 의성보살에 의하여 복구되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1984년 6월 2일에 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심우당(尋牛堂),

심검당(尋劍堂), 범종각(梵鐘閣), 산신각(山神閣) 등이 있으며, 대웅전은 정면 3간(8.4m) 측면

2간(5.3m)의 겉처마 팔작(八作)지붕에 다포(多包)집이며 법당의 불상은 새로 봉안한 것이고,

석가래와 기둥 등은 모두 정연하며 두공부(枓 部)에 용두(龍頭)조각을 배치하여 주목을 끈다.

근년의 건축물로는 드물게 보이는 질서 있는 건축물이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나란히 쌍탑이 있는데, 이러한 쌍탑이 등장하는 시기는 대체적으로 삼국통일

이후로서 왕성한 국력에 의하여 전국도처에 유행하게 되었다. 이 석탑은 신라 석탑의 정형을 따른

2중기단 위에 3층옥개를 형성하였으며, 상부 상륜부는 둥글게 연꽃봉오리 모양을 새겨 일반 탑에서

보기 어려운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상원사 신검당(尋劍堂)

신검당이란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란 뜻으로 스님들의 일상생활을 하는 방으로
조사당(祖師堂) 또는 조사전(祖師殿)이라고도 부르며 선종 계열의 사찰에 주로 많이 보인다

상원사 대웅전(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18호)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지었다는 설과 신라 마지막 임금이었던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스님이 지었다는 설도 있으나 어느게 정확한지는 알 길이 없다.

고려말 나옹화상에 의해 새롭게 중창되었으나 6.25동란 때 소실되었다.

1968년에 다시 지어진 후, 1988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중창하였다.

 

현재 대웅전은 비교적 낮은 기단위에 조성되었고,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다포 양식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웅전 앞에는 도선국사가 조성하였다고

전하는 삼층석탑 2기가 있고, 서쪽에는 요사채가 위치하고 있다 

대웅전 본존불(사진 - 펌)

상원사 본존불은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여 좌측에는 보현보살, 우측에는 문수보살이 모셔져 있다.

치악산의 유래가 된 상원사 범종각

조선시대 이중환이 저술한 택리지에는 "원주의 赤岳山(현재의 치악산)은 土山이다.

그러나 그 산에 골짜기와 계곡이 맑고 동서쪽에 이름난 마을이 많다,

또한 이산에 신의 靈驗이 깃들어 있어 이 산에서 사냥꾼들이 감히 짐승을 잡지 못한다"라고 기술되어 있다

치악산 이름의 유래는 옛날에는 치악산을 단풍이 아름다워 적악산(赤岳山)이라 불렸는데
전설에 의하면 옛날 경상도 의성 땅의 한 나그네(스님)가 뱀에게 잡힌 꿩을 구해주었는데

나그네가 이 산에서 위기에 처해지자 그 꿩의 보은으로 목숨을 건졌다는 전설에서 치악산이라

불러졌다고 한다.

치악산 전설에 나오는 인물이 선비란 설과 스님이란 설도 있다.

유래를 보면 수행이 깊은 한 스님이 불법을 공부하기 위해 구룡사로 향하던 중 구렁이 한마리가

새끼를 품고 있는 꿩을 잡아 먹으려는 순간 지팡이로 구렁이를 물리쳐 꿩들을 구해 주었는데,

밤길에 길을 잃고 산속을 헤매다 여인 혼자 머물고 있는 집을 발견하고 하룻밤 묵게 되었다.

잠결에 답답한 기운을 느낀 스님이 눈을 뜨자 구렁이로 변한 그 여인이 낮에 죽였던 구렁이의

아내라고 하며 폐사가 된 상원사의 종을 세 번 울리면 죽은 남편 구렁이가 용이 되어 승천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스님은 종을 울리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면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종이 세 번 울렸다.

종소리를 듣고 구렁이는 부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더는 원한을 품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스님이 정신을 차리고 상원사로 달려가 보니 낮에 구해 주었던 꿩 어미와 새끼 두 마리가 종루 옆에 피를 흘린 채 죽어 있었다.

이 전설로 옛날 적악산(赤岳山)으로 불리던 산이 꿩의 한자말인 치(雉)자를 써서 치악산(雉岳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범종각 사면의 주련(에는 아침종송의 내용이 쓰여 있다

원차종성 변법계 (願此鐘聲遍法界)   원컨대 이 종소리 법계에 두루하여

철위유암 실개명 (鐵圍幽暗悉皆明)   철위산의 깊고 어두운 무간지옥 밝아지며

삼도이고 파도산 (三途離苦破刀山)   지옥, 아귀, 축생의 고통을 모두 여의옵고 칼산지옥 무너지며

일체중생 성정각 (一切衆生成正覺)   모든 중생 바른 깨달음 이루어지이다

상원사 대웅전과 삼층 석탑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오랫만에 찾은 상원사는 짙은 안개로 인해 작품하나 건질수가 없다 

靑山疊疊彌陀窟         청산첩첩미타굴

蒼海茫茫寂滅宮         창해망망적멸궁

物物拈來無恚碍         물물염래무가애

幾間松亭鶴頭紅         기간송정학두홍

 

첩첩한 푸른 산은 아미타불 법당이요,

망망한 푸른 바다 부처님의 적멸보궁.

물물은 오고감에 걸릴 것이 없는데.

솔밭의 학머리를 몇 번이나 보았는가!

상원사 대웅전의 주련

상원사 광배(光背)

석탑 옆에 불상 뒤를 장식하던 광배와 불상을 받치던 대좌가 남아 있다.

광배에는 부처님의 머리와 몸에서 나오는 빛을 둥근 선으로 새기고, 그 밖으로

불꽃 무늬를 화려하게 조각하였고, 그 안에는 연꽃과 당초 무늬를 새겨 놓았다.

1964년에 우측 석탑을 보수할 때에 탑신에서 관음보살좌상(?), 인왕상(?),

아미타불립상(?), 석가여래입상의 금동불 4구가 발견되었는데, 제작수법이 매우 우수하고

신라 때에 유행하던 수법과 같은 형식을 엿볼 수 있으며, 이 광배도 비슷한 시기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상원사의 명물인 백구... 아마 저 넘도 전생엔 사람이었나 보다

상원사 삼층석탑(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5호)

대웅전과 범종각 사이의 마당에는 삼층 석탑 2기와 광배가 있는데 도선국사가 조성했다는 설이 있다.

두 탑은 모두 2기의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을 쌓은 것으로 위아래 기단과 탑의 몸돌에는 모서리

기둥을 세워 놓았고 탑의 지붕돌은 탑의 몸돌에 비하여 두꺼워 물매가 급하고, 처마 아래는 1단으로

꺽은 후 비스듬하게 처리되어 있으며 추녀끝은 약간 들어 올렸다.

탑 위의 장식물로 오른쪽 탑은 보개(寶蓋: 탑 상륜의 보륜과 수연사이의 지붕모양의 장식)

보주(寶珠: 탑의 상륜부에 놓인 둥근모양의 구슬), 왼쪽 탑은 노반(露盤: 탑의 꼭대기 층에 있는

네모난 지붕모양의 장식). 복발(覆鉢: 탑의 위쪽에 주발같이 엎어 놓은 장식), 보륜(寶輪: 탑의 꼭대기에 있는 장식), 보주가 남아 있다.

두 개의 탑은 신라시대의 양식이지만 두 탑 모두 기단에 비하여 탑 몸돌의 폭이 지나치게 줄어 균형이 잡히지 않았다.

받침을 새기지 않은 지붕돌이 매우 뚜껍게 처리되고 보주가 지나치게 큰 점 등을 보아 고려시대의 탑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상원사에서 바라본 치악산

상원사를 주마간산격으로 둘러본 다음에 갈 길이 멀어 서둘러 길을 떠난다

신검당을 지나 일주문으로 향하는데 일주문 옆에는 조그만 범종이 있다.

3번을 치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성취된다고 한다... 범여의 소원은?

요즘 다들 어렵습니다... 하루빨리 시끄러운 정국이 수습되어 민초들이 아무 걱정없이

편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원하며 나를 아는 인연있는 모든 분들이 건강하였으면

좋겠고, 또하나 바램이 있다면, 이번주에 범여의 까칠한 딸래미가 시집을 가는데

부디 행복한 가정을 일궈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램이

다시 길을 나서다(11:57)

일주문을 나와 상원사를 향해 저두삼배의 예를 올리고 남대봉으로 향한다

호젓한 산줄길을 걸어가니...

영원사 갈림길(12:00)

알겠습니다

갈림길(12:00)

드디어 섬강(백운)지맥길에 들어선다... 우측으로 300m 떨어진 분기봉인 남대봉으로 향한다

남대봉 안전센터

남대봉 아래 헬기장에 도착하니 모든게 많이 바뀌어 버렸다.

2015년 5월17일 영월지맥을 할 때 지나갈 때 하고는 영 딴판이다

예전엔 남대봉 통제소란 간판도 남대봉안전센터로 새로 바뀌었다

남대봉(南大峰:1,181m:12:15)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과 신림면 그리고 횡성군 강림면의 경계를 이루는 삼면 경계봉으로 치악산의

최고봉인 비로봉(1,288m)에서 10km 떨어져 있는 봉우리로 바로 상원사가 있다...

남대란 상원골에 있는 큰 골짜기란 뜻으로큰 남대와 작은 남대가 있다...남태봉, 만경대, 망경대라고도 부른다.

원래는 망경봉이 이었는데 치악산국립공원에서는 남대봉으로 표기를 하고 있다.


남대봉은 이곳에서 2km정도 떨어져 있는데 국립지리원 발행 지형도에는시명봉으로 표기를 하고 있다...

문제는 시명봉에 대한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고, 이 지역 주민들은 시명봉을 남대봉이라 부른다

주민들은 여러 차례 시정을 요구했으나 국립지리원 지형도에 그렇게표기가 되어 있기에 정 하고 싶으면

행정소송을 하라고 한단다

그야말로 완전히 갑질을 하고 있는 셈이다

남대봉 정상 2등 삼각점(△안흥 27/1989.7 재설)

남대봉 정상에서 바라본 치악산의 산그리메

주봉우리인 비로봉(:1,288m)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매화산(:1,084m)·삼봉(:1,073m)과

남쪽으로 향로봉(:1,043m)·남대봉(:1,182m) 등 여러 봉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능선이 남북으로 뻗어 있으며, 동쪽은 경사가 완만하고 서쪽은 매우 급하다. 1973년에 강원도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큰골·영원골·입석골·범골·사다리골·상원골·신막골 등

아름다운 계곡과 입석대·세존대·신선대·구룡폭포·세렴폭포·영원폭포 등 볼거리가 많다.

이밖에 구룡사(九)·상원사()·석경사()·국향사()·보문사(

입석사() 와 같은 오래된 절이 많이 있다

남대봉 헬기장에 새로 세워진 정상석

기왕이면 남대봉 정상에다 세웠으면 좋으련만...

오랫만에 만난 인연있는 산꾼들과 인증사진 하나 남기고 지맥길의 첫 발을 내딛는다

등로에서 바라본 남대봉 정상 아래의 아들바위

저 바위를 바라보면서 득남을 기원하며 기도를 하면 아들을 낳는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다

다시 갈림길(12:30)

비에 젖은 미끄러운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영원사 갈림길(12:33)

이정표(영원사 2.3km.금대분소 4.7km↘ 상원사 0.5km ↖, 비로봉 10.5km,남대봉 0.7km↓)가있는

곳에서 출입금지 표지판이 있는 禁線을 넘어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암봉(12:40)

금선을 넘어서 등로 가운데 조금 넓은 곳에서 좀 늦은 시간에 밥상을 펼친다

오랫만에 만난 벙글아우님과 한 선배님, 떡라면을 끓여서 밥숟가락을 드는데

저 아래에서 3명이 걸어오더니만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왔다고

호통을 치고 취사 장면을 사진을 찍더니만 빨리 불을끄고, 나가라고 겁박한다

그래도 밥을 먹어야 되지 않느냐고 하니까... 식사를 하고 나가라고 하면서

반대편에도 지키고 있으니 갈 생각을 하지 말라고 한다

 

자세히보니 국공파는 아니고 치악산 원주산악구조대란 표식이 옷에 달려있다.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지맥길은 타지않고 갈 수는 없어서 가는데까지 가보기로 한다

계속되는 산죽길

암릉(13:20)

우측으로 우회하면서 걷는다

이곳은 비법정탐방로가 그런지 선답자들의 시그널은 하나도 보이질 않는다

다시 오르막길

멧돼지의 횡포

해도 해도 너무하다... 저 넘의 횡포는 단속 못하고, 50cm도 안되는 등로를 걷는

산꾼들에게는 국공파들은 왜이리도 갑질을 하는지...코 앞에 높은 암릉이 나타나는데

좌측으로 우회길이 있고, 대부분의 산꾼들은 편한 우회길을 따라간다

혹 뭐라도 하나 건질까봐 힘들게 오르다가 카메라가 떨어지는데 작동이 되질 않는다

하는 수 없어 세컨드 카메라로 기록을 한다

조망바위(13:35)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금대계곡

시명봉가는 길에 처음으로 산꾼의 흔적을 만난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영원사

영원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4교구 월정사의 말사로 원래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가가 영원산성의 수호 사찰로 창건하여 영원사(永遠寺)라고 하였다가

조선 현종 5년(1664년)에 인환(仁煥)스님이 중건하면서 영원사(嶺願寺)로 바꾸었다.

 

영원산성이 있었던 영원사는 후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임진왜란때 치열한

격전지로 꼽혔으며 임진왜란 당시 영원산성을 수호하기위해 지은 호국사찰로

이후에는 폐사가 되었던 적이 있으나 1939년에 이계호(李戒浩) 스님이 중건하였고

오랜 풍우(風雨)로  붕괴 우려가 있었던 법당을 1960년에 주지 김병준 스님이

중수, 1990년에 무이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폐허 직전에 영원사 사찰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조망바위를 올랐다가 시명봉에 오르니 조망바위를 오르지 않고 먼저간

한 선배님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참으로 오랫만에 같이 산행을 해본다

시명봉에 바라본 치악산 주능선의 모습

시명봉(1,196m:13:57)
원주시 신림면과 판부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원래 남대봉인데,

일제 때 잘못 이름 붙인 것이 지금까지 그대로 고착되었다’는 것이다.

원주민들이 시정을 원하지만 모든 공적 기록과 지도를 바꾼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시명봉의 유래는 알 길이 없고, 출처도 어딘지도 모르는 출처 불명의 지명이다

오늘 산행길에서 가장 높은 시명봉에서 인증샷

가야할 능선의 모습

무명봉(14:05)

무명봉에서 내려와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선다

좌측의 멋진 암릉구간도 만나고...

세상사는 거 참 아무것도 아닌데 인간들은 왜 이리도 아둥바둥 사는지?...
모든게 순리대로 살면 되는데...

모든게 제행무상(諸行無常)이요 제법무아(諸法無我)인데...

1,101.3봉(14:20)
정상에는 관리가 안된 묘지가 한 기가 있다.

이곳에서 뒤처진 후미를 기다리면서 과일을 나눠 먹으면서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좌측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안부(14:40)

바위길로 우회하면서 걷는데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암릉 골짜기를 오르니...

竹泉님의 시그널을 만난다

다시 암릉을 우회하면서 내려섰다가...

암릉(14:55)

다시 지맥 등로로 복귀한다

1,064봉(15:15)

오랫만에 만난 산꾼들... 짧은 구간 탓인지 다들 여유가 있어 보인다

이곳에서 또다시 베낭을 내려놓고, 과일을 나눠 먹으면서 휴식을 취한다 

이곳에서는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갈림길(15:38)

이곳에서 오늘 리딩을 맡고있는 산동네님을 비롯한 10명은 가리파재(치악재)에서

국공파들이 지킨다는 치악산 원주 산악구조대의 말을 듣고 겁을 먹었는지 지맥길을

타지않고 좌측 능선을 따라서 가겠다고 한다

그러나 나와 류주열님은 기왕 걸리면 벌금을 물기로 정상적인 지맥길로 간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멋진 암릉을 만나고...

뚜렸한 직진길이 지맥이나 암릉구간이라 가지 못하기에 좌측으로 내려선다

우측으로 암릉구간이라 우회해서 내려왔다

낙엽으로 인해 등로는 잘 보이진 않지만 생각보다 좋다

돌탑(15:50)

계속되는 멋진 암릉

암릉구간에는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산꾼을 반기고...

원주사람들은 봐주는 건가?

우측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789.4봉(16:05)

 

789.4봉을 지나면서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낙엽으로 인해 참으로 미끄럽다

667.7봉(16:12)

잣나무 군락지를 지난다

갈림길(16:17)

계속되는 잣나무군락지

맥길 능선에서 자주 만나는 여영님의 시그널...반갑습니다

잣나무 군락지를 지나니 묘지가 보이고...

묘지 2기와 이동통신탑을 만난다

우측으로는 명경사가 보인다

명경사 입구(16:30)

명경사 입구에서 만난 관우상... 특이한 사찰인 모양이다

명경사 입구에서 만난 글귀

명경사의 모습

웬 십이지상(?)

명경사(16:32)

명경사에 들어서니 모자를 쓴 남자가 물한잔 마시라고 권하는데 처음엔 국공파인줄

알고 경계심을 드러냈지만 자세히보니 국공파는 아니라 마음놓고 물한잔을 마신다

입구에는 자연치유센터라고 써놓고, 관우상과 십이상이 보이는데 전통사찰은 아닌

모양이다...전각에는 “天母宮”이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단군모와 명성왕후, 육영수

여사의 사진이 걸려있다... 여러 사람들이 쳐다보고 있어 천모궁 문을 열어 볼 수가 없다

주변을 잠깐 둘러보고 다시 명경사 입구로 다시 나와 능선으로 올라선다

다시 명경사 입구(16:40)

명경사에 들려서 이곳저곳을 둘러본 다음에 다시 입구에 나와서 지맥길에 복귀한다 

등로에서 만난 폐안테나

안부(16:43)

백두사랑산악회 시그널을 만나고 좌측의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군교통호를 따라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550.8봉(16:46)

폐산불감시초소가 있는 550.8봉에서 내려서자마자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진다

차량소리가 들리기 시작하고 혹 있을지도 모를 국공파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하며 걷는다

산꾼을 겁박하는 안내 표지판을 지나...

주위를 살펴봐도 국공파는 보이질 않고...

NO60 송전탑(15:50)

가리파재가 보이고 국공파는 아무도 없다... 재빨리 가리파재(치악재)로 내려선다

좌측으로는 통일기원비가 보이고 고개로 내려서니 초소도 없고 국공파도 없다

결론적으로 낮에 만난 구조대들이 우리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산에 다니는 넘이 거짓말하면 안되제...착한 동료 산꾼들만 바보가 된 꼴이다

간 큰 넘이 널장사(장의사)한다고 했지... 이 쾌감 정말 뭐라고 표현해야 할 지!

가리파재 (450m:16:52)

원주시 신림면과 판부면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5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신림면에서 세운 ‘가리파재’ 표석이 치악재 휴게소 옆에 서있다

가리+파 → 가리파가 되었다. '가리'는 물, 물가, 분기를 뜻하는 '갈'에서 파생된 것으로

물가 마을에 많이 붙는 지명인데 '가리'가 들어간 산 이름에는 산줄기가 갈린 목, 또는

고장을 가른 산에 주로 쓰이며 '파'는 언덕, 고개를 뜻하므로 가리파는 산줄기가 갈린

고개나 언덕, 또는 고장이 갈라지는 곳이라는 뜻이다.

아마 원주와 신림을 가르는 고개라서 가리파가 된 것으로 보인다.

치악재 휴게소 앞 도로에는 치악재라고 표기를 해놨다
류주열님과 동료들이 안 온곳을 왔다는 희열감을 느끼고 있는데

우회하며 걸어온 착한(?) 동료 산꾼들을 보면서 조금은 미안하다 

동료들을 만나고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 입은 다음에

치악재 기사식당에서 식사를 마치고 건너편에서 버스를 타고 신림면소재지로 향한다

신림면 버스 터미널(18:10)

이곳에서 30여분을 기다린 끝에 원주가는 버스를 타고 원주터미널에서 와서

서울가는 버스를 갈아타고 서울로 향하는데 버스는 이틀전에 개통한 제2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섰는데 차가 얼마나 밀리는지 원주에서 서울오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하니 밤11시가 다 되어버려 동료산꾼들과 인사도 나누지 못한채

집으로 향하는 지하철에 오른다

신림행→동서울행 버스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