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18년 05월 13일
☞ 산행날씨: 흐린 날씨에 짙은 안개
☞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21km / 9시간 15분소요
☞ 참석인원: 진권 아우와 둘이서
☞ 산행코스: 배재-이정표-역주벌 삼거리-632.4봉-NO82송전탑-571봉-안부-무명봉
옥녀봉-제천 옥녀봉(?)-안부-680봉-안부-655봉-무명봉-시루봉-안부-689봉
비지재-무명봉-702봉-671.1봉-조망봉-660봉-갈림길-강승갱이재-654봉
안부-678.5봉-갈림길-안부-626봉-615봉-645봉-안부-580봉-602.8봉
삼면경계봉-밀양박공 묘-공재고개-묘지-오청산-암봉-자작나무 군락지-632.3봉
묘지-안부-안부-484.7봉-안부-480봉-약초 재배지-다릿재 터널 위-옛 다릿재
NO51송전탑-51봉-533.5봉-갈림길-경주최씨 묘-밀양박공 묘-다릿재-묘지
태성사 입구-임도 광장-여흥 민공묘-이정표-617봉-안부-소봉-암봉-이정표
돌탑봉-천등산-팔각정-암봉-갈림길-다락재 갈림길-무명봉-안부-천등산 임도
임도사거리-524봉-534.2봉-무명봉-임도1-임도2-390봉-묵은 임도-311봉-느릅재
☞ 소 재 지: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 충북 제천시 백운면 /충주시 엄정면, 산척면
며칠 뒤에 수술 날짜를 잡아놓고 보니 은근히 걱정이 되고 맘이 착잡하다
아직까지 뭐가 뭔지도 나타나지 않은 병명을 의사들이 겁을 주는 것 같기도 하고...
하긴 시골에서 맨 몸으로 상경하여 정말 열심히 살았고, 내가 하고 싶은거 다하고 살았으니
잘 살은거 아닌가... 어차피 하고 세상에 오면 한번 가는게 생사의 이치거늘...그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토요일은 온종일 비가 내린다
연등축제가 열리는 날인데 안 갈수도 없고하여 조금 이른 시간에 참석하였다가 집행부에
양해를 구하고 집에 돌아와 멍하니 있으니 갑자기 이상한 느낌이 들어 진권아우와 산이나
가야겠다고 생각을 하고 연락하여 지난번 시작을 하다가 컨디션 난조로 중단한 제천(천등)지맥 2구간을 나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조금 이른시간이라 그런지 축제현장인 모교 대운동장은 텅비어 있고 비는 하염없이 내린다
예전에 법회에 자주 참석했던 정각원에 들렸다가 중앙광장으로 향한다
동국대 중앙광장
인증샷을 남기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조계사에 들려 참배를 하고 내가 담당해야 할 구역인 탑골공원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출석 체크를 하고 조금 있다가 집행부를 맡고있는 후배님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온다
동서울발→원주행 버스표
베낭을 최대한 가볍게 꾸린 다음에 동서울 터미널로 향한다
동서울에서 원주로 출발하는 06시 10분발 첫차를 타자마자 깊은 잠에 빠졌다가 진권아우의
전화에 잠을 깼는데어디가 어딘줄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버스는 고속도로가 아닌 여주에서
원주로 가는 국도로 가고있다.아마도 고속도로가 정체가 된 모양이다... 생각보다 조금 늦은 시간에
원주에 도착한다진권아우는 용인에서 자가용으로 원주로 오고...
원주시외버스 터미널(07:40)
원주터미널에서 진권아우를 만나 귀래면사무소로 가서 면사무소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귀래면에서 한대밖에 없는 택시를 타고 산행 들머리인 배재로 향한다
배재(拜峙:08:25)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운남리와 충북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 포장도로에
제천쪽에는 임도 바리게이트가 처져있고 둘레길 개념인 원주굽이길 제12코스 벳재넘이길이기도 한 곳으로
아름다운 힐링을 즐길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배재(拜峙)는 경순왕이 원주 미륵산 마애불을 향해 배례한 곳이라는 전설이 전하는 곳이기도 하다
뱃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지명의 유래는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敬順王)[? ~978]이
황산사(黃山寺)에서 종소리가 울리면 용화산 암벽에 조각된 미륵불에게 절을 올렸다는 지명유래담이다.
백운면 화당리에서 강원도 원주로 넘어가는 고개를 뱃재 또는 배령(拜嶺), 배치(拜峙)라고 한다.
또한 백운면 방학리에는 경순왕의 이궁지(離宮址)가 있다
경순왕은 신라 56대 왕위에 오른 지 9년만에 왕건(王建)[877~943]에게 신라 천 년 사직을 물려주고
스스로 신하의 예를 취하였다...왕건은 경순왕을 정승의 예로써 대우하고, 신라의 옛 땅을 식읍(食邑)으로 주었다.
그러나 경순왕은 각지의 명산을 찾아다니다가 방학리에 이궁(離宮)인 동경저를 짓고 머물렀다.
또한 강원도 원주 용화산 암벽에 미륵을 조각케 하고 황산사에 종을 달게 하였다.
경순왕은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황산사의 스님을 시켜 종을 치게 하였고, 원주로 넘어가는 이 고개에 있다가
종소리가 나면 미륵불을 향해서 절을 올렸는데 망국(亡國)의 왕으로 천 년 사직과 백성에게 속죄하는 절이었다
그래서 이 고개를 뱃재, 배치라고 불렀다 고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8:30)
귀래면소재지에서 그리 거리가 멀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나이드신 택시 기사분은 미터기를 꺽지도 않고
배재 정상에 도착하여 통상적으로 그렇게 요금을 받는다고 하면서 10,000원달라고 하는데 초반부터
기분이 잡치긴 하지만 어쩔수 없다...진권아우가 얼른 차비를 계산하고잠깐동안 장비를 점검한 다음에
산행을 시작하는데 어제 비가 온 탓인지 녹음이 한결 푸르르다배재 우측의 열린 바리게이트를 지나
임도 우측의 계단으로 올라선다
통나무 계단으로 올라서는데 나무가 비를 머금어 급방 옷이 젖어 버린다
진권아우가 앞장을 서면서 빗물과 거미줄을 제거하면서 가는 바람에 난 호강을 한다
분홍빛 철쭉이 화려하다...이곳은 날씨가 추운탓인지 이제사 철쭉이 피기 시작한다
배재 이정표(08:35)
이곳이 원래의 배재였던 모양이다...배재 이정표가 있다.
벤취 2개가 있는데 비에 흠뻑 젖어있다.
등로 주위에는 당단풍이 많이 보이는데 안내판까지 서 있다.
역주벌 갈림길(08:38)
역주벌은 충북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에 있는 자연마을이며 화당리에는 약수동·강승갱이, 너럭골,
대꼬지, 뱃재, 호두나무배재, 역주벌, 비디재, 주막거리, 송골, 새터말, 양지말, 꽃댕이 등이 있다.
약수동은 좋은 약수가 나서 붙인 이름으로 앉은뱅이가 약수를 마시고 병을 고쳐 걷게 되었다고 한다.
너럭골은 마을이 자리한 땅이 넓어서 붙인 이름이고, 물안이는 인근 마을에 비해 유독 물이 맑고
수량이 풍부하여 붙인 이름이다
본디 이름인 꽃당이 또는 꽃댕이를 한자로 표기하여 화당(花堂, 花塘)이라 하였다.
하지만 옛 땅이름 죽관리(竹串里)로 보아 ‘화(花)’는 꽃이 아니라 ‘고지’, ‘곶’에서 나온 말이다.
곧 지형이 곶과 같이 튀어나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이외에도 옛날 고을 원이 살아서 붙인 이름이라는
이야기도 전하는데, 이와 관련하여 향교터, 옥터, 화장터, 장터 등의 지명이 남아 있다.
물이 좋고 꽃이 많아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632.4봉(08:43)
632.4봉 삼각점(△엄정413 / 1985재설)
다시 내리막길
안부로 내려서니 녹색 철탑이 나오는데...
NO82 송전탑(08:50)
에공 아까운거...등로 주위에 두릅나물들이 많이 보이는데 식용이 불가능하게 커버렸다
푸르름이 싱그럽다...산속으로 들어서면 모든걸 잊어버릴 수 있어서 좋다.
급경사의 오르막길...꽤나 땀을 흘려야 할 만큼 수고로움이 따른다
571봉(09:00)
안부(09:03)
비에젖은 철쭉...참 곱다
암릉구간을 지나...
등산화가 푹 빠질 정도로 낙엽이 많이 쌓여있다
무명봉(09:13)
지난 4월말경에 핸드폰을 잊어버린 탓에 오늘은 스마트폰에 깔려있는 오룩스맵과 트랭글앱이 없어 전적으로
복사해온 지도와 선답자들이 달아논 시그널만 바라보고 걸어야 하는데 간간히 보이는 시그널이 더없이 반갑다
산 아래서 밀려오는 짙은 안개가 푸르른 녹음과 어울려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편안한 등로를 걷다보니 옥녀봉 정상에 도착한다
옥녀봉 정상에 도착한다
산으로님 시그널도 보이고...
옥녀봉(玉女峰:714.4m:09:15)
강원도 원주시 귀래면 운남리와 충북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 그리고 충주시 엄정면 유봉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우측으로는 갈미봉, 녹재, 소태재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원주시에서 설치한정상석이 있는데 지도상의 높이(714.4m)와 너무나 차이(778m)가 나서 신뢰가 가질 않는다.
이곳에서 우측으로는 행정구역이 강원도에서 충북으로 바뀌는데 옥녀봉을 지나면서부터 온전히 충북지역으로 들어선다
옥녀봉의 전설
옥녀봉 남서쪽 밑에 있는 엄정면 유봉리에는 풍류바위와 옥녀에 대한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옥녀봉 밑에는 노송과 기암으로 된 풍류굴을 비롯해서 경승 좋은 놀이터가 있는데 옛날
이곳 싸리재 마을에 옥녀와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날이 밝으면 질삼과 나물을 뜯는것을 유일한 생업으로 그 모녀는 서로애지 중지하면서 살았는데
어느날고개 너머에서 나물을 뜯고 있는데 어디선가 구성진 피리소리가 들려와 둘러보니 풍류바위에
앉아있는사람을 발견했다...풍류바위에 앉아있는 사람은 너무나 멋있어 보였고 이 세상에 보기
드문 미남이었기에 옥녀의 가슴은 설레었으나 부끄러움 때문에 발길을 옮길수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의 눈길은 마주쳤고 그렇게 한동안 침묵만 흐르다가 어렵게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그 청년은 하늘나라에서 온 옥황상제의 왕자였으며 천상에서 죄를 범하고 100일간을 지상의 인간세계로
유배를 왔다고 한다
그로부터 이 왕자와 옥녀는 별유천지의 별개의 사람끼리 꿈같은 나날을 보내며 세월가는 줄을 몰랐다.
그러던 어느날 왕자의 유배기간이 끝나 천상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이병을 고해왔고 옥녀는 평생을 같이
하자는 애원을 해봤으나 하늘나라의 법도는 인간사회와는 허용될 수 없다면 거절당하고 말았다.
옥녀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 싶어 눈물에 젖어 있었는데 어디선가 오색구름이 몰려들더니 구성진 피리소리만
남기고 왕자는 구름과 함께 승천하였고 지상에 홀로 남은 옥녀는 제일 높은 상봉에 매일 올라 하늘만 바라보고
왕자를 기다리다가 자신을 비관하고 영영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그 후 옥녀의 어머니도 딸의 비운을 슬퍼하며 산중을 헤메다가 어느 석굴로 들어가 질삼(길삼)으로 소일하다가
비운의 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 후 옥녀가 올라가 왕자를 부르짖던 상봉을 옥녀봉이라 하였고, 옥녀의 어머니가 들어갔던 굴은 풍류바위
옆에 있어서 풍류굴이라 불렀는데 비가 오는 날이며 굴 속에서 베짜는 소리와 함께 울음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풍류바위라 부르는 것은 이 기람절벽 한 곳에 흔들리는 바윗덩어리가 있어서 이 바위를 강한 바람이나 사람이
밀면 암벽에 부딪혀 신비로운 풍악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풍류바위라고 불리는데 촌로들의 말에 의하면 그 소리가
은은하면서도 커서 충주시내까지도 들렸다고 하는데 그 바위를 어떤 사람이 약 15년전 철장대를 가지고와서
아래로 굴리는 바람에 지금은 그 소리를 들을수가 없다고 한다
제천 옥녀봉(702m?:09:18)
원주에서 세운 옥녀봉에서 50여m를 지나니 제천시에서 세운 옥녀봉 정상석이 있는데 이곳의
고도 표기는702m라고 되어 있다... 비슷한 위치에 있는데도 고도차가 76m가 나는데 국립지리원의
표기와는 두 곳 모두 다르다
똑같은 옥녀봉을 원주와 제천이 서로 자기 것이라고 하니 지역 이기주의에 씁쓸함을 느낀다
부뜰이님 반갑슴네다
제천 옥녀봉을 지나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선다
안부(09:24)
680봉(09:28)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
안부(09:30)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 역주벌에서 충주시 엄정면 유봉리 축현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인데
좌.우측 모두 비교적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우측의 축현마을쪽은 서낭당터의 흔적이 있다.
안부 우측의 서낭당터 흔적
다시 급경사의 오르막으로 올라선 다음에 살짝 좌측으로 꺽어진다
늦둥이 철쭉꽃
655봉(09:42)
다시 내리막길
마치 빨래판 구간인 듯 한데 이름없는 봉우리를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한다
등로 좌측으로는 자작나무 군락지가 보인다
무명봉(09:45)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길
5월의 푸르름을 만끽하면서 걷다가보니 몸은 훨씬 가벼운 느낌이다
암릉구간을 지나니 시루봉이 나온다자료도 없이 걷다가보니 정상석이 있는 가짜 시루봉을 놓치는 憂를 범한다
집에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가짜 시루봉 정상에는 제천시에서 설치한 정상석이 있는데 정작 진짜
시루봉에는 정상석은 없고 백두사랑 산악회 이대장이 걸어둔 산패가 있다
시루봉(695.4m:09:55)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와 충주시 엄정면 유봉리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숲이 우거져 그저 밋밋하다
지명의 유래는 멀리서 보면 산의 지형이 시루(떡시루)를 엎어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인 지명인데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충주시 엄정면(옛 중원군)에 시루봉이라 부르는 높은 산이 있었고 옛날 시루봉 아래는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는데 여러해 동안 흉년이 들어서 인심이 각박해지고 도둑질을 일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이곳의 주민인 이시조라는 사람만은 정직하고 마음씨 좋게 열심히 일을 해서 부유하게 살고 있었지만
들끓는 도둑들 때문에 늘 불안하게 살아야 했다.
그래도 노모와 젊은 자녀들을 위해 자신을 먹을것과 입을것도 아끼면서 초근목피로 끼니를 이어가는데
그나마 먹고 사는게 고맙다는 생각에 뒷산에서 지성을 드리며 살아갔다.
이시조가 어느날 잠자리에 들었는데 백발노인이 나타나더니 나는 하늘의 사자로서 너와같은 진실한
사람을 구하려고 내려온 것이라며 내가 시키는 것을 꼭 지키라고 당부하고 그대는 모년 모월 모일에
네 가족을 데리고 네가 지성을 올리는 그 산꼭대기로 올라가 있으면 그 이유는 그때가서 알 것이라 한다
하도 기이한 꿈인지라 이시조는 눈을 번쩍뜨며 노인앞에 부복을 하려고 보니 노인은 이미 자취를 감추고
말았고 그 후 이시조는 의아하게 생각하며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면서 그 산에 대한 지성을 더해가며
살고 있었는데 드디어 그날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시조는 자기 혼자 같으면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것이 문제가 될게 없으나 노모와 어린 자녀들 때문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어서 그날밤은 한숨도 못자고 뜬눈으로 밤을 세우고 다음날 날이 밝자 다섯 식구가
집을나서 山頂으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산길로 들어서니 노모와 어린 자녀들은 걸을 수 없게되고 이시조가 업고 산을 오르자니 힘에 겨운
일이었기에 산 허리쯤 가서는 이시조와 그의 아내도 기진맥진하면서 쓰러지고 말았는데 그때 갑자기
천지가 어두워지면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들판이며 산 밑의 동네 전체가 물에 잠기기 시작한다
그때서야 천지개벽이 있는 줄을 눈치 챈 이시조는 산꼭대기를 향해서 있는 힘을 다해서 올랐고 산마루에
오르자마자 온 식구는 실신하고 말았으며 어린 자녀들은 쏟아지는 빗속에서 떨고 있을 때 온 천지는
물바다로 변해가고 있었다.
그때 시루봉 꼭대기의 20여평만이 남아 있었고 어린 자녀들은 무섭다고 소리치는 바람에 겨우 정신을
차린 이시조가 눈을 떠니 천지개벽으로 다 없어지고 자기 가족들만 살아 남은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흘러 모든 식구들이 정신을 차리게 되었고 비도 그치고 물이 빠지니 다섯 식구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 후 이곳을 멀리서 보면 시루를 엎어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시루봉이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
초반부터 계속되는 오르막 내리막길 산꾼들이 흔히들 말하는 빨래판 구간이다
안부(10:00)
안부 좌우로는 사람들이 다닌 흔적으로 보이지 않으나 등로는 비교적 뚜렸하게 보인다
689봉(10:06)
또다시 내리막길
비지재(10:08)
제천시 백운면 화당2리와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를 연결하던 옛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고갯길이
비스듬한 경사지에 위치하여 ‘비디재’라고 불리게 된 것으로 보이며, ‘비지재’로 음운이 변하여 불리기도 하였다
백운산 북쪽의 산자락에 위치한 제천시 백운면 화당2리에는 ‘비디재골’이라는 자연 부락이 형성되었다.
제천 사람들은 제천시 백운면 화당2리 비디재골에서 비디재를 통하여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로 넘어갔는데,
이곳은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에 나오는 내창장이 위치한 곳이다. 기록상 내창장은 남한강 목계의
수운과 연계한 교역의 중심지로 발전한 지역이다.
내창장은 1950년대를 전후로 명절에는 1천여 명의 장꾼이 모여들면서 이웃에 충주시 금가면, 산척면, 소태면과
원주시 귀래면, 제천시 백운면 등지에서 1만여 명의 주민들이 운집하여 성시를 이룬 곳으로 전해진다. 비디재는
1970년대부터 사용되지 않은 고갯길로 『한국지명총람』에는 역주벌에서 남쪽으로 넘어가는 고개라고 기록하였으나
실제 비디재골에서 가춘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비디재를 중심으로 시루봉 사이의 ‘가춘천’은 남쪽으로 흐르다가 추평저수지로 모인다. 그리고 비디재에서
북쪽으로 강승갱이재 사이에 계곡이 흐르는데, 이 물은 비디재골의 남쪽으로 계속으로 흐르다가 화당천으로 합류한다.
비디재는 1970년대부터 고개로서의 기능을 상실하였고, 현재는 다래 덩굴과 잡목이 무성해져서 헤집고 올라갈 수 없다
무명봉(10:15)
띠지가 걸려 있으니 지맥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 모양이다
낙엽이 푹신한 등로를 걷는데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먼지가 없어 목구멍이 아프지는 않다.
702봉(10:20)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섰다가 오르막을 오르는데 암릉구간이 나온다
암릉구간이 나오고 손가락 굵기의 로프가 설치되어 있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우회를 많이 했는데 우린 정통으로 간다
671.1봉(10:25)
진권아우님의 멋진포스
조망봉(10:27)산꾼들은 산에서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예의인데...
가야할 오청산과 천등산이 희미하게 보인다
조망봉에서 바라본 백운면 화당리의 모습
급경사의 내리막길.. 등로가 비에젖어 상당히 미끄럽다
좌측으로 꺽어졌다가...
다시 미끄러운 암릉구간의 내리막길
660봉(10:37)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갈림길(10:39)
강승갱이재(10:45)
제천시 백운면 화당리와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의 경계 지점에 있는 고개로 고개 같지도 않다
펑퍼짐한 곳에 개별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지명의 유래는 가춘리에 강승갱이 마을에서 따온듯 하다
강승갱이 마을이 속해있는 가춘리(佳春里)는 자연마을로는 가늣개, 가양, 강승갱이, 메물골, 미레골, 투숫골이 있다.
가늣개는 마을 근처에 가는 개울이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메물골은 옛날 산전에서 메밀을 가꾸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미레골은 마을이 예부터 피난처로 화를 면하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문화재로는 경종대왕 태실, 억정사 대지국사비가 있다. 특산물로는 참매자조림, 갓채, 종자벼가 있다
강승갱이재 오르막길에는 취나물이 지천으로 널려있다
이 높은곳까지 TV를 갖고와서 버리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
다시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걷다가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654봉(10:55)
안부(10:57)
암릉구간이 나오고 좌측으로 우회를 하면서 걷는다
뒤돌아 본 암릉
678.5봉 갈림길(11:06)
우측 사면으로 우회길이 있어서 그런지 대부분의 시그널이 우측으로 걸려있다
진권아우가 하는 말 ‘자기는 산악인이라 우회길을 가고 형님은 산꾼이라 정통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 젊은 것이 요령을 피우기는... 발딱 능선을 치고 오르니 3등 삼각점이 있다.
678.5봉(11:08)
678.5봉 삼각점(△306재설 / 76.6건설부)
길이 없는 것을 치고 내려와 조금전 헤어졌던 등로와 다시 만난다.
암릉 구간이 나오고...
우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간다
아직도 지맥길 다 끝내지 않으셨나?
안부(11:17)
다시 힘든 오르막길
고래 형상을 한 바위를 만나고...
암릉구간을 지나니...
화사한 병꽃이 피기 시작하고...
626봉(11:20)
615봉(11:27)
내리막길에는 등산화가 푹 빠질정도로 낙엽이 쌓여있고...
도마뱀도 보이기 시작한다
645봉(11:35)
안부(11:37)
580봉(11:39)
580봉에서 나뭇가지 사이로 바라본 삼봉산의 모습
로프를 부여잡고 암릉구간으로 올라선다
일엽초들이 많이 보이고...
능선으로 오르지 못하고 우회길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下心을 하라네요
암릉구간을 우회하여 다시 지맥길로 들어선다
602.8봉(11:47)
등로 아랫쪽으로 넓은 임도가 보이고 건너편에 잠시후에 가야할 오청산이 보인다
삼면 경계봉(595m:11:55)
충북 제천시 백운면과 충주시 엄정면, 산척면이 만나는 삼면 경계봉이다
이곳부터 우측으로는 행정구역이 엄정면과 작별하고 지맥길은 산척면으로 들어선다
삼면 경계봉에서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밀양박공 묘지가 나온다
처사밀양박공 묘지(11:57)
묘지를 지나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서니 임도가 보인다
임도로 내려서려는데 두릅이 꽤나 많이 보이길래 베낭을 내려놓고 두릅을 수확한다
공재고개(12:05)
제천시 백운면 도곡리 공재마을과 충주시 엄정면 가춘리 징개미재로 이어지는 임도가 개설되어 있다
도곡리는 박달재 근처에 위치했으며, 주로 사과와 고추를 재배하는 전형적인 농촌이다.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한산포(漢山浦), 우경, 화산, 공제를 병합하여 이루어졌다.
자연부락으로는 백호지, 공재, 한삼포, 둔장터 등이 있다.
임도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는 보이질 않고 개별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등로는 보이질 않고...시그널도 안 보이니 조금은 불안하다
조금을 더 올라서니 무한도전팀의 띠지가 보이나 제천환종주팀의 것이라 조금은 헷갈린다
묘지(12:15)
묘지를 지나 진권아우와 둘이서 점심밥상을 펼친다
오늘은 도시락을 간단하게 싸가지고 와서 15분만에 먹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이곳의 소나무는 70년도 넘은 시간의 일제시대의 아픔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나라가 힘이 없었던 시절이니 나무도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런데도 이 나라의 요즘 지도자들은 그때의 기억을 망각했는지 민초들의 안위는
안중에도 없고 자기들 밥그릇 싸움만 하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하다
벌목지대 너머로 백운산이 아련히 보인다
우리나라 가장 흔한 산 이름중에 하나인 백운산... ‘흰구름이 많은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충북~강원의 접경지대로서 백운봉 · 옥녀봉 · 구학산 등이 경계를 이루는 고산준령이다.
그 가운데서 백운산(1,078m)은 고도가 높아, 언제나 흰 구름이 산자락에 걸려 있으므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주변에는 운학(雲鶴)리가 있어 ‘흰 구름과 하늘을 나는 학’이 조화된 선경(仙境)의 땅임을 말해 주고 있다.
보우(普雨) 대사는 시에서 ‘산 위에 흰 구름이 하얗고, 산속에 물 흘러간다. 여기에 내 머물려 했더니, 나를 위해
흰 구름이 한 구간 열어 주네. 흰 구름은 마음속의 이야기 다 해주고, 때로는 비를 뿌려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라고
읊었다.
이것은 산 위에 머무는 것이 흰 구름이고, 인간에게 친구로서 가까이 느끼는 것이, 흰 구름임을 묘사한 시 구절이다.
백운산에서 시작된 물줄기는 화당(花塘)천을 이루고, 이것이 다시 원서(院西)천으로 흘러들어 충주호에 도달한다.
화당천변의 평동(平洞)은 중심 마을이며, 이곳에 자리한 각급 학교에도 백운이란 이름이 붙여지고 있다.
이곳에서 제천(堤川)으로 들어가는 국도변에 박달재가 자리하여, 새로운 지역 상징물로 떠오르고 있다.
삼봉산도 한번 당겨보고... 그러다가 올라서니 오청산이 나온다
오청산(五靑山:656.9m:12:42)
제천시 백운면 방학리와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그저 밋밋한 산으로 조망은 별로 없으며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오청산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조금을 더 진행하니...
예전에 헬기장이었던 넓은 공터에 소나무가 빽빽하다
암릉구간이 나오고 좌측으로 우회를 한다
암봉(12:48)
또 다시 우회를 하고...
안부로 내려서니 좌측 아랫쪽에 자작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오르막길에 멋진 기암을 만나고...
고도차가 별로 없어서 오랫만에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다
자작나무 조림지(13:02)
632.3봉(13:10)
묘지(13:13)
묘지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묘지에는 앙증맞은 방울꽃이 많이 보인다.
각시붗꽃도 보이고...
전나무 조림지도 보이고...
안부(13:18)
등로 좌측 아래로는 넓은 임도가 보인다
등로는 잘 보이질 않고 좌측으로 꺽어져 지맥길을 이어간다
우산나물은 다 피어버려 나물로 해먹기는 틀려 버렸다.
안부(13:28)
484.7봉(13:37)
안부(13:39)
480봉(13:42)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진다
약초 재배지(11:47)
다릿재 터널 위(13:53)
이곳 아래로 평택에서 제천으로 연결되는 고속도로 다릿재 터널이 지나는 곳이다.
이장한 묘지터를 지나고...
옛 다릿재(13:55)
오리지널 다릿재인데 지금은 민초들이 다녔던 길은 사람의 흔적이 보이질 않는다.
NO51송전탑(13:56)
송전탑에서 바라본 충주시 산척면(山尺面)의 모습
충주시 산척면은 북쪽으론 제천시 백운면 (白雲面), 서쪽은 엄정면(嚴政面), 동쪽은 제천시 봉양면(鳳陽面),
남쪽은 동량면(東良面), 남동쪽은 제천시 청풍면(淸風面)과 접하는데 면의 동부는 제천천(堤川川)이 산간계곡으로
흘러 감입하천(嵌入河川)을 이루어 유역에 평야가 적다. 서부는 영덕천(永德川)이 서류하여 남한강에 유입하기 때문에
영덕리(永德里) 일대가 면내에서 가장 넓은 평야를 이루고 있다.
이곳 중앙부에는 천등산(天登山:807m), 남쪽 동량면과의 경계지점에 인등산(人登山:667m)·부산(婦山:780m)·
천룡산(天龍山:293m)이 솟아 있으며 농산물로는 쌀·보리·잡곡을 생산하고 있으며 특용작물로는 잎담배·참깨·들깨를 많이 생산한다.
남서부지방에는 북동방향으로 충주시와 제천시 사이에 2차선 포장도로가 달리며 충북선(忠北線)은 면의 남부를 동서로 관통하고 있다.
삼탄(三灘)은 충북선 삼탄역 부근에 위치하고 있는데 제천천이 심산계곡을 굽이돌아 흘러 사행(蛇行)함으로써 이루어진 유원지로 유명하다.
멧돼지의 횡포
510봉(14:03)
빡센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533.5봉(14:15)
묘지가 나오고 좌측으로 꺽어져 내리막길로 향한다
좌측으로 꺽어져서 조금 내려가니...
묘지가 나오고...
평택임공과 연일정씨 묘지를 지난다
갈림길(14:18)
유인 경주최씨 묘(14:21)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화려한 영산홍이 만발한 묘지로 내려선다
선달밀양박공 & 경주김씨 묘(14:28)
선달(先達)이란 고려와 조선 시대 때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벼슬에 나가지 않은 사람을 부르던 말한다
후진의 반대인 선진을 뜻하는 말에서 비롯되었는데, 고려시대에는 예부시에 합격한 선배를 가리켰다.
조선시대에 와서 문과출신자는 말직이라도 대개 벼슬을 하고 벼슬을 받기 전에 죽으면 증직했으나,
무과출신자는 평생 벼슬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 선달은 무과출신자에게만 쓰는 말로 잘못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문과를 합격한 다음 친척이나 친지들에게서 오는 축하 서신에 '선달댁 입납'이라고 씌어진 것이나,
신분이 낮은 사람과 하예들이 벼슬을 받기 전의 문과출신자에게 '선달님' 또는 '선단님'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아 문과출신자에게도 썼음을 알 수 있다
묘지에서 내려서니 쉼터가 나오고 다릿재로 내려선다
다릿재(374m:14:30)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원월리와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38번 옛 국도가 지난다
다릿재는 박달재와 더불어 제천에서 충주로 통하는 관로에 위치한 대표적인 고개였다.
박달재와 천등산의 안부에 국도 38호선이 개설되어 많은 차량이 이 길을 왕래하였는데, 2007년 국도
38호선의 직선화 사업이 진행되어 다릿재 터널이 개통되면서 다릿재는 본래의 고개로서의 기능을 점차 잃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다릿재, 월현(月峴), 다락재 등으로 부르고 있으나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에는 ‘달아치(達阿峙)’라고
되어 있다.
다릿재에서 북쪽 소월리와 북동쪽 대월리의 지명에 모두 달 월(月)을 사용하고 있어 달[월(月)]과 관련된
지명이라 판단된다. 『대동여지도』에 원서면 박달치(朴達峙)에서 서쪽으로 도로를 따라 목계(牧溪)로
이어지는 고갯마루에 ‘달아치’가 있다고 기록한 것을 볼 때, ‘다다를 달(達)’과도 관련이 있을 듯하다.
한편, 다릿재 명칭은 다래나무가 많아서 또는 다락처럼 높기 때문에, ‘다락재’라고 불리게 되었다고도 하나
고갯마루의 높이가 374m에 불과하여 그렇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릿재 제천 백운면쪽의 모습
배재에서 출발하여 다릿재까지 오는 동안에 우측으로는 원주시 귀래면에서 충주시 엄정면
산척면으로 행정구역이 3번이나 바뀐다... 좌측은 계속 제천시 백운면인데 크기는 큰 모양이다
이곳은 예전에 중원군(현재의 충주시) 산척면이었으나 1980년대 제천 출신이면서 민정당
사무총장을 역임한 이춘구 국회의원이 산척면을 백운면으로 편입하면서 커졌다고 한다
백운면쪽인 아침농장 옆길로 치고 오르려고 했는데 철조망에다
커다란 개 한마리가 째려보고 있는 바람에 포기하고 산척면쪽으로 향한다
원래 산행 계획은 다릿재까지 계획을 했으나 오늘은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아서 느릅재까지 가기로 한다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면 다음 구간 수리재까지는 조금 무리일 듯 싶어 느릅재까지 가기로 하고
이곳 도로에서 삶은 계란에다가 우유를 먹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조심할께요
묘지(14:45)
묘지에는 잔디는 하나도 없고 방울꽃이 잔디를 대신하고 있다
방울꽃(꽃말:나를 잊지마세요)
묘지에서 올라서니 아침 농장 철조망이 길을 가로 막는다
잡목은 무성하고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으니 진권아우가 이런 곳으로 온다고 불평불만이다...
젊은것이 편안함만 추구하면 지맥길을 왜 다니나 100대 명산이나 다녀야지
묘지가 나오고 좌측으로 내려서니...
L.G U+ 이동통신 기지가 보인다
태성사 입구(14:58)
많은 산꾼들이 저 도로를 따라서 이곳까지 오는 모양이다
임도를 가로질러 묘지가 있는 능선으로 올라선다
移葬을 한듯한 묘지의 흔적도 보인다
수목장의 묘지도 만난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 가다보니 임도가 나온다
임도 광장(15:10)
천등산임도 노선현황판.
임도시설안내도들이 있는 이곳부터 천등산 일반 등산코스가 시작된다
천등산임도 노선현황판
천등산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시작된다
여름철이 다되어 가는 싯점에 보라색 제비꽃은 이제사 피기 시작한다
여흥민공 묘(15:12)
천등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은 시작되고...
벌깨덩굴
벌이 모여 깨가 쏟아지게 꿀을 빠는 꽃이라 붙혀진 이름으로 꽃은 서로 비슷한 것은 많아도 똑같은 것은 없는 것 같다.
우리 얼굴이 다르듯 꽃들도 다 저마다의 빛깔과 멋을가지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꽃들이 생겨났는지
신비로운데, 벌깨덩굴 꽃도 참 희한하다. 색은 보라색인데, 한쪽 부분은 하얗다.
마치 잉어가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처럼 생겼다. 그리고 붉은 점이 있고 수염 같은 털이 송송 나 있다.
벌깨덩굴은 처음에 자랄 때와 자란 뒤가 상당히 다른 모습이다. 처음에는 곧게 자라지만 꽃이 지고 종자가
결실된 뒤부터는 곧게 서는 게 아니라 다른 식물을 감기 시작한다. 덩굴식물의 본색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철 지난 후 자생지에 가면 원래의 모습은 없고 덩굴만 있어서 다른 식물로 오인하기도 한다.
벌깨는 그럼 무슨 뜻일까? 먼저 뒷글자 ‘깨’는 잎이 마치 깻잎을 닮아서 붙여졌고, 앞의 벌은 벌이 이 식물에
많이 날아와서 붙여진 것 같다. 깨 향이 많이 나는데, 벌들이 깨가 쏟아지도록 즐겁게 꿀을 먹을 수 있는 식물로 볼 수 있다.
이런 까닭에 민가에서는 양봉을 위한 밀원식물로도 활용된다.
벌깨덩굴은 산지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숲속에 약간 습기가 있는 그늘진 곳에서 잘 자란다.
길이는 15~30㎝가량이며, 줄기는 특이하게도 사각형이다. 잎은 길이가 2~5㎝, 폭은 2~3.5㎝이다.
약간 세모형이지만 하트 형태를 이룬다. 잎의 가장자리에는 둔한 톱니가 있다. 열매는 7~8월경에 달걀 모양으로 달린다.
벌깨덩굴은 꿀풀과에 속하며 주로 관상용으로 쓰이고, 어린잎은 식용으로 쓰인다. 또 민간에서는 약재로도 쓰인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북부에 분포한다
직진의 암릉구간을 피해 우측으로 오른다
암릉구간을 지나니 넓은 공터가 나오고...
뒤돌아 본 집채만한 암릉의 모습
이정표(15:35)
임도 광장에서 이곳까지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죽을 힘을 다해서 올라왔다.
천등산이 제도권 산인 모양이다...구조 안내판이 보인다
617봉(15:37)
암봉을 올라서니...
로프가 있고...
안부(15:42)
현호색
산괴불주머니
벌깨덩굴
조금 편안한 길을 걷는가 싶더니...
천등산으로 향하는 2번째 빡쎈 오르막이 시작된다
힘이 드는지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소봉(15:54)
이정표에는 소봉(小峰)이라고 해놨는데 뭔 뜻인지 모르겠다
아마도 천등산보다 조금 낮아서 붙인 모양이다...
천등산 전위봉으로 보면 될듯 하다(범여의 생각 中에서)
다시 완만한 오름길
암봉(15:56)
이정표(16:00)
2번째 구조 안내판이 나오고 오르막이라 앞서가는 진권아우와 자꾸만 거리가 멀어진다
천등산을 향하는 3번째 빡센 오르막길
하얀 제비꽃은 이제사 피기 시작하고...
천등산으로 향하는 마지막 오르막길
곤드레 나물도 간간히 보인다
돌탑봉(16:13)
돌탑봉에서 바라본 제천시 백운면과 백운산의 모습옅은 안개로 인하여 모든게 흐릿하기만 하다
천등산 정상 직전에 동봉으로 향하는 이정표가 있다
천등산(天登山:806.6m:16:15)
충청북도 충주시 산척면 송강리와 명서리에서 제천시 백운면 원월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봉우리가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이 솟아 있다 하여 천등산이라 하며, 천등산은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로 시작되는
노래 가사와 함께 유명세를 타고 있는 산으로 실제 박달재가 있는 산은 시랑산(691m)이고 천등산은 서남쪽으로
약 8㎞ 떨어진 다릿재와 연결된 산으로 천등산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일직선상에 있는 인등산과 지등산을 일컬어
삼등산이라고 하며, 삼등산은 천동, 지동, 인동이라는 세 신동이 등장하는 설화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1948년 가수 박재홍이 부른 「울고 넘는 박달재」가 인기를 끌면서 천등산의 박달재가 유명해졌다.
천등산 정상의 팔각정은 천등산에서 전망이 가장 뛰어난 곳으로, 마루를 깔고 창을 달아서 등산객들이
비나 눈을 피할 수 있으며 잣·산채·약초 등이 많이 나고, 세계무술축제 등 큰 행사 때에 성화(聖火)를
채화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정상부는 주변에 높은 산들이 없어 사방이 확 트였고 남쪽으로는 인등산과 지등산이,
그 뒤로는 계명산이 솟아 있다. 서쪽으로는 박달재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이 뱀처럼 구불구불 이어지고 그 뒤로
백운산과 구학산이 아련하게 시야에 들어오며 남동쪽으로는 청풍호가 내려다보인다.
천등산에 대한 설화에 따르면 조선 세조 때 황규라는 지사가 명당을 찾기 위해 팔도를 유람하다가
천등산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는데 잠결에 어디선가 말 달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와 잠을 깨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한 필의 갈색 준마가 백의의 신선을 태우고 골짜기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를 괴이하게 여긴 황규가 뒤따라갔더니 어떤 산 제당 앞에서 말이 멈춰 섰다.
그곳에는 신동 셋이 앉아 있었는데 백의의 신선을 보더니 크게 절을 하였다.
이에 신선은 지팡이를 들어 산봉우리를 가리키며 천상천하 사이에 만물이 생성하는 것은 음양의 섭리인데 우리의
모습도 음양의 법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느니 지금 내가 말하는 세 곳의 명산을 다스리는 것은 하늘의 뜻이요,
이곳에 사는 억조창생을 위한 것은 땅의 뜻이요, 선악을 구별하는 것은 우리의 할 일이라면서, 천동이는 천산에
올라가 양을 맞아들이고 인동이는 인산에 올라가 혈을 누르도록 명하였다.
그리고 앞으로 이 삼산의 정기가 상통되거든 천등산 밑에는 갈마음수혈(渴馬飮水穴)을 만들고 인등산 밑에는
용비등천혈(龍飛登天穴)을, 지등산 밑에는 옥녀직금혈(玉女織錦穴)을 만들라고 하였다.
그러자 세 신동은 보라색 구름을 타고 제각각 흩어지고 신선이 지팡이를 높이 들자 남과 북, 중앙에서 각각
다른 색깔의 연기가 피어올랐고, 이때 백의의 신선이 세 개의 명당을 지팡이로 가리키면서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런 장면을 보고 있던 황규가 세 곳의 명당 혈을 그려 놓았으나 세상에 발표하기 전 병으로 죽어 그 후로 지금까지
이곳의 명당 혈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한다. 세 신동 중 천동이가 올라간 산이 천등산, 인동이가 올라간 산이
인등산, 지동이가 올라간 산이 지등산이다
천등산 정상 삼각점(△301 재설 / 77.7 건설부)
천등산 정상에서 주변을 바라보는데 옅은 안개로 인해 모든게 흐리기만 하다
산행 시간도 촉박하고 진권아우는 먼저 가버리는 바람에 나도 길을 나선다
팔각정(16:20)
철쭉이 화사하게 피어있고...
등로의 낙엽은 무릎까지 파묻힌다
암봉(16:25)
갈림길(16:27)
이곳에서 독도에 상당히 신경을 써야 할 곳이다뚜렸한 직진길에는 묵은 폐헬기장이 보이는데
헬기장 직전에 좌측으로 내려선다
갈림길에서 바라본 폐헬기장
다락재 갈림길(16:28)
갈림길에서 내려오자마자 이정표가 나오고 좌측 느릅재 방향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좌측 사면길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급경사로 내려서는데 낙엽이 젖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젊은것이(진권아우) 행님을 버리고(?) 도망을 가버렸다.
계속되는 급경사
무명봉(16:40)
안부(16:42)
진권아우는 도망(?)가버리고 지도는 없고...도리깨님의 산행기는 이곳에서 우측으로 간 것 같은데...
직진의 편안한 길로 내려서니...
천등산 임도(16:47)
이곳에서 임도를 따라서 간다
임도사거리(16:50)
임도 사거리 직전에 우측으로 시멘트 도로가 보인다
이쪽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우리는 지맥길이 아닌 좌측으로 내려온 셈이다
임도 사거리 이정표
느릅재로 이어지는 임도길
우린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임도로 가면 한참을 돌아야 하기에 시간은 비슷비슷하다
능선에 올라서니 재선충 방재작업이 한창이다
524봉(16:54)
방울꽃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534.2봉(17:05)
백선
백선향기도 뛰어나고 꽃도 예쁜 백선은 우리나라 각처의 산록에서 자라는 여러해살이풀로, 반그늘 혹은
햇볕이 잘 드는 습기가 많은 곳에서 잘 자라며, 키는 60~80㎝가량이고, 잎은 깃꼴겹잎으로 타원형이다.
깃꼴겹잎이란 잎자루의 양쪽에 작은 잎이 새의 깃 모양을 이룬 복엽을 말하는데, 잎의 가장자리에는
톱니가 있고 표면에 투명한 선점이 있으며, 꽃은 5~6월에 피는데, 흰색 바탕에 엷은 홍색의 줄무늬가
들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꽃은 줄기 끝에서 달리고 꽃자루와 포에서 강한 냄새를 내는 선점이 있다.
꽃 수술 안쪽을 유심히 살펴보면 작고 검은 돌기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보이는데, 이는 다른 식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열매는 8월경에 갈색으로 된 껍질 안에 검고 광택이 나는 종자가 들어 있다.
운향과에 속하며, 자래초, 검화라고도 한다. 운향과는 보통 나무가 많은데, 전 세계에 1,300종이 자라며
우리나라에는 20종이 분포하는데 레몬이나 오렌지, 라임 등의 과수와 약료작물 등 경제적으로 가치 있는
유용식물이 많은 편이다.
백선은 꽃송이도 많고 향기도 짙어 절화식물로도 개발이 가능한 품종으로 백선이라는 이름은 ‘희고 선명하다’는 뜻이다.
백선의 뿌리껍질은 백선피라고 해서 약용으로 쓰인다. 특히 뿌리를 봉삼 또는 봉황삼으로도 부른다.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 북동부, 시베리아 동부에 분포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평택~제천간 고속도로 천등산 휴게소의 모습
오늘 산행구간의 전리품
급경사의 내리막길
무명봉(17:09)
다음구간에 가야할 인등산이 보인다
임도 1(17:12)
아우님은 임도파인지 임도로 향한다
임도를 가로질러 내려서니...
임도2(17ㅣ14)
임도를 가로질러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390봉(17:24)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 지고...
묵은 임도(17:30)
사람들의 발길이 전혀없는 묵은 임도가 나오는데 이곳 아래로 팽택~제천간 고속도로가 지나간다
아예 길은 보이지도 않는다
311봉(17:35)
우측으로 철계단이 보인다
이곳을 지나면서 엄정면 택시를 호출하니 10분정도면 느릅재에 도착한다고 한다
팽택~제천간 고속도로 천등산 휴게소가 보인다
내리막길을 좌측으로 우회하면서 내려서니 버스 정류장이 있는 느릅재가 나온다
느릅재(17:40)
충주시 산척면 영덕면과 명서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고개 좌.우에는 서대 버스정류장이 있고
중원C.C골프장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천등산(807m)과 인등산(666m) 사이의 낮은 능선를 이루는 고개로,
산척면 영덕리와 삼탄협곡으로 잘 알려진 명서리를 동서로 연결하고 있는데 충주분지 동쪽은 오청산(655)·
천등산 · 인등산 · 계명산(775m) · 남산(636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남북으로 감싸고 있다
지명의 유래는 이 고개 주위에 느릅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서 느릅재라고 불렀다고 한다
느릅재에 있는 중원C.C입구의 모습
예전에 한참 골프에 미쳐 있을 때 그린피 싼맛에 참으로 뻔질나게 다녔던 골프장이었는데
지금은 골프백이 아닌 베낭을 메고 온 천지를 헤매고 다니고 있으니 범여의 역마살도 알아줄만 하다
느릅재에서 택시를 타고 귀래면사무소로 향한다느릅재에서 택시를 타면서 귀래면까지 요금이 얼마냐고 하니까
25,000원 정도 나온다고 한다...너무 비싸다고 엄살을 부리면서 돈이 없어서걸어다니니까,
낙장불입하기로 했는데 면사무소에 도착하니 택시 요금이 31,000원이나나오는게 아닌가...
근데 넉넉하고 맘씨 좋은 기사분이 약속대로 25,000원만 받는다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고 진권아우의 차를 타고 신갈까지 와서 아우의 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소고기 불고기로 든든하게 저녁을 먹고 광역버스로 양재역으로 향한다
아우님! 복받을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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