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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안면지맥(終)

안면지맥 제1구간 - 안면대교에서 안면고등학교까지

by 범여(梵如) 2019. 1. 28.

                 낮은 산에서 下心이라는 眞理” 를 배운다

 

 ☞ 산행일시: 2019년 01월 27일

☞ 산행날씨: 맑은날씨

산행거리: 도상거리 약 18.2km/ 8시간 30분소요

☞ 참석인원: 백두사랑 산악회 일요 지맥팀과 함께

☞ 산행코스: 안면대교-무명봉-NO66 송전탑-처진골망산-76.3m봉-무명봉-묘지-2차선 도로

                  52.4m봉-임도 삼거리-농로-무명봉-78.2m봉-백사장 배수지-백사장 고개-창기중학교 입구

                 불탄개 버스정류장-64.9m봉-납작고개(성황당 고개)-갈림길-국사봉-갈림길-안부

                 77번 국도-무과나무골 버스정류장-갈림길-갈림길-63m봉-안부-시멘트 도로

                 임도 삼거리-82.6m봉-무명봉-도로-무명봉-여수해-갈림길-당산-무명봉-77번 도로

                 무명봉-무명봉-김해김공 묘-임도-진다리 버스정류장-임도-안부-68m봉-무명봉-구렁재

                 83.7봉-안부-59.3m봉-광지고개-57m봉-묘지-무명봉-무명봉-임도삼거리-장문고개

                묘지-91.5m봉-이동통신탑-신77번 국도-묘지-무명봉-느르재고개((초망소골)

                무명봉-98.1m봉-신77번 국도-해들녘 펜션-묘지-67m봉(돌탑봉)-임도 삼거리

                안면소공원-롯데수퍼-안면도서관-덕수장씨 묘-안면중앙교회-비석골

                애국지사 추모비-무명봉-비포장 도로-묘지-58.6m봉-안부-쉼터-61.6m봉-안면고교

소 재 지: 충청남도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 정당리, 승언리 

 

이번주부터 혼자서 보현지맥의 남은 구간을 마무리 하려고 했는데 한달동안 같이 다닌

모 산악회 일요지맥팀에서 후미로 같이 다니시는 조여사님께서 자꾸만 같이 가자는데 차마

거절하기가 애매하다...이곳이야 서울에서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당일로 가능하고 차량을

가져 온다고 한들 끝머리에서 들머리까지 되돌아 오기가 수월하여 이곳은 혼자해도 충분하지만

보현지은 거리도 멀거니와 의성에 가서 하룻밤을 자야하기에 봄이 오기전에 끝내려고 했는데

그 넘의 의리 때문에 어쩔수 없이 안면지맥 첫 구간을 나선다

안면지맥(安眠枝脈) 개요도

안면지맥(安眠枝脈)은 충남 태안군 안면대교에서 시작해 치진골망산(△75.8), 국사봉(△107.2m), 당산(97m),

안면읍을 지나 태안군 고남면 영목선착장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3.52 km에 달하는 섬 산줄기로

동쪽은 천수만, 서쪽은 황해가 된다.

 

안면도는 본래 곶(串)인 반도로서 육지인 남면과 연육되어 있었는데,

삼남지역의 세곡(稅穀) 조운(漕運)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조선조의 인조 때에 지금의 안면읍 창기리와 남면의 신온리 사이를 절단하므로써,

이 때부터 안면곶이 섬이 되어 안면도(安眠島)라 호칭하게 된 것이다.

 

◆ 종주에 필요한 지도 

영진1/5만 p265태안, 266태안.서산, p292태안

안면도 지도 안면(安眠)이란 글자그대로「편하게 잘 잔다」는 뜻이지만, 강희자전(康熙字典)에

 따르면 안(安)은 편안하다·고요하다·값싸다 등의 뜻이 있고, 면(眠)은 졸다·잔다·어지럽다 등의

뜻을 내포하고 있는 외에 범조수지언식(凡鳥獸之偃息)이라 했다. 그러므로 안면(安眠)이란 곧 조수가

편안히 누워 쉴 수 있다는 의미로서, 안면도가 숲으로 우거져 있는 자연 환경을 나타낸 지명으로 여겨지고 있다.

 

태안에서 약 30km정도 떨어져 있는 안면도는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큰 섬으로 태안군과 안면도를 이어주는

다리가 1970년(연장200m) 개통됨으로써 육지와 이어졌으며, 본래 안면도는 반도로서, 육지인 남면과 이어져

있었는데, 삼남지역의 세곡조운(稅穀漕運)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조선조 인조 때에 충청관찰사 김육(金堉)이

조운의 편의를 위하여 지금의 안면읍 창기리와 남면의 신온리 사이를 절단함으로서, 이때부터 안면곶이

섬이 되어 오늘의 안면도가 된 것이다.

 

안면도에는 해안선을 따라 펼쳐져 있는 14개 해수욕장(꽃지,방포,삼봉,백사장,바람아래해수욕장 등)

안면읍의 상징인 해송을 마음껏 감상하고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안면도 자연휴양림, 천연기념물

제 138호인 모감주나무군락지 등이 있다.

 

1895년(고종 32)에 태안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상, 안하 2개 면이 안면면으로

병합되었고, 1980년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3년보령군 오천면 삽시도리를 편입하였다.

1989년서산군에서 태안군이 분리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내가 탑승한 양재역에서 오늘의 들머리인 안면대교 입구까지 정확하게 2시간만에 도착한다(08:50)

안면대교에서 바라본 바다의 모습

오늘의 들머리인 안면대교 앞에는 힐링타운 해수탕, 찜질방 건물은 폐업을 했는지

휴업을 했는지는 몰라도 건물은 텅텅 비어있고 영업을 하는 것 같지는 않다.

안면대교에서 바라본 드르니항 가는 이정표

드르니항은 얼핏 듣기에는 외국의 지명처럼 보이지만 순수 우리말인 ‘들르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일제 강점기에는 신온항으로 바뀌었다가 2003년도에 이름을 되찾았다고 하며 규모가 작고 한적한 

항구이지만, 운치있는 바다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부근에 새우 양식장이 많아 새우가 주산물이며

조개, 게 등 신선한 해산물과 호박고구마가 생산되는 곳이다

 안면대교(安眠大橋)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와 남면 신온리를 잇는 다리로 길이 300m, 폭 10.5m, 접속도로 1.3㎞로 1994년

착공하여 1997년 완공되었으며 상부공은 강박스거더 공법, 하부공은 라멘식으로 시공되었다

우리나라에서 6번째로 큰 섬인 안면도와 육지를 잇는 연육교인 안면대교로 인해 서북부공업단지

서산 대산공단-태안해안국립공원-안면도관광단지-건설예정인 원산대교-보령-서천으로 이어지는

서해안산업관광도로 개발이 활발해졌다

산행을 시작하다(09:00)

 식당과 수퍼 간판을 끼고 돌아서...

민가 가운데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선다

 다들 호화준족이라서 그런지 지맥꾼 특성상 시작하자마자 쏜쌀같이 도망을 가버리는데

초반에 상당히 힘이든 범여로서는 따라갈 방법이 없다...이 이후로 산행이 끝날때까지 못봤다.

동료 산꾼들이 도망 가버리고...

 오늘도 늘상 꼬래비로 가는 조여사님과 함께 동행을 한다.

임도에서 바라본 드르니항의 모습

수레가 다닐만큼 넓은 임도길을 가다가...

임도를 버리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무명봉(09:19)

등로를 내려오는 길에 엄나무들이 많이 보이는데 초반부터 잡목이 장난이 아니다

등로가 잘보이질 않는데 홀대모 조진대님의 흔적이 산꾼을 안내한다

무명봉에서 잡목을 헤치고 내려오니 비교적 뚜렸한 등로가 보아고 다시 살짝 꺽어져 능선으로 올라선다 

등로가 없는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법광님의 시그널이 산꾼을 반긴다

 보만식계 시그널도 보인다

 소나무 터널을 지나니 송전탑을 만난다

 NO66 송전탑(09:23)

진골망산(75.8m:09:24)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4등 삼각점이 있을뿐 잡목만 무성하다

이름이 참 특이하다...사전을 찾아보니 ‘골망’이란 ‘고랑’의 충청도 방언이라고 하는데

나름대로 해석을 해보면 처져있는 골자기 산이라는 뜻인가 보다

 처진 골망산 정상에 있는 삼각점(△중온 427 / 1999복구)

바닥 삼각점에는 중온이라고 해놨고, 국립지리정보원의 안내판에는 ‘중온’이 아닌 ‘신온’라 해놨다.

처진골망산 정상의 모습

처진골망산을 내려와 우측으로 꺽어지니 뚜렸한 등로가 나온다

뚜렸한 등로를 잠시 걷다가 좌측 아래로 내려선다

 다시 능선으로 향하니...

77m봉(09:31)

NO67 송전탑이 있는 그저 밋밋한 봉우리이다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는 생각보다 상당히 難解하다

 무명봉(09:35)

낮은 산이라고 우습게 봤다가 초반부터 잡목의 저항으로 개고생을 한다

 잘 보이지 않는 등로를 찾아서 내려가니...

조금 뚜렸한 등로가 보이기 시작한다

묘지(0:44)

묘지에서 내려서니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2차선 도로(09:45)

태원군 안면읍 창기리 불무골에서 참새골로 연결되는 도로이다

 가야할 맥길 

도로를 가로질러... 

급경사의 절개지로 올라간다 

뒤돌아 본 2차선 도로의 모습 

능선으로 올라가서 우측으로 향한다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52.4m봉(09:52)

좌측 아랫쪽에 NO 68송전탑이 보인다

52.4m봉을 내려서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 우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넓은 임도를 내려서니 민가가 보이고 임도 삼거리가 나온다  

임도 삼거리( 09:57)

직진하여 비닐하우스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컨테이너 농가가 보이고 멋진 소나무 3그루가 있다 

컨테이너 농가앞의 흙염소...도망도 안가고 물끄러미 산꾼을 쳐다본다

배나무가 있는 과수원을 지난다. 

배밭을 지나니 고사리밭이 나오고... 

철조망을 넘어 농로로 올라선다  

농로(10:00) 

농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간다 

 좌측으로 살짝 꺽어진다

빛바랜 신경수 선생의 시그널 

무명봉(10:05)

안부로 내려섰다가 완만한 오르막길 

78.2m봉(10:10)

길찾기가 애매하다...잡목의 저항이 엄청나게 심하여 이리저리 헤맨다   

어디로 가라는 건지?   

겨우 길을 찾아서 내려오니 우측으로 임도가 보이는데 임도를 따르려다가 그래도 정통산꾼인데

험한 등로로 향한 다음에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백사장 배수지가 보인다

태안군 상하수도 사업소 백사장 배수지(10:18)

백사장 배수지 우측 철망 옆으로... 

겨우 길을 찾아서 백사장 배수지 끄트머리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맥길은 창기중학교 건물이 길을 가로막고 있다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농협창고 건물이 나온다

백사장 고개(10:34)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 1구에 있는 고개로 안면도를 관통하는 77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좌측 백사장항으로 넘어가는 고개에 있다고 해서 백사장 고개라고 한다

백사장항은 어항으로 넓게 펼쳐져 있는 포구 주변에는 횟집들이 바다를 둘러싸듯이

자리잡고 있으며 포구 옆으로는 백사장해수욕장이 자리잡고 있으며 해마다 9월 말 ~ 11월 초에

대하축제가 열리는데, 전국 각지에서 이곳 대하를 맛보기 위하여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온다.

가까이에 삼봉해수욕장, 꽃지해변, 안면암, 안면도 자연휴양림 등의 관광명소가 있다.

77번 도로에서 좌측의 길로 올라간다

창기중학교 입구(10:35)

안면제일침례교회와 굿모닝하우스도 보인다

불탄개(창기1리) 버스정류장(10:37)

안면읍 창기1리에 있는 마을로 옛날 이곳에 해창(海倉)이 있었던 곳인데, 창터(倉基:겨울철)에

세곡(稅穀)을 해창에 두었다가 이른 봄에 옮겨갔던 창고가 있었다하여 창기(倉基)라 하였고,

그 이후 창고에 화재가 난 뒤 불탄개(炭浦)라 하여 지금까지 지명을 이어오고 있다.

한솔식당을 지나자마자...

주택가로 올라선다

주택가를 지나 밭으로...

밭에서 뒤돌아 본 창기리(倉基里)의 모습

안면읍에 있는 창기리는 안면도의 최북단에 있으며 마을의 유래를 찾아보면 슬픈 역사를 내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고려와 조선의 중요한 요충지였음을 알 수 있는 지역명이나 남아있는

자료, 그리고 그 근거들이 있다.

 

현재 창기리는 마을부락  단위가 7구(리)까지 나뉘어져 있어 안면도에서 행정구역과 지역 면적으로는

가장 크며, 창기의 ‘창(倉)’자는 창고의 곳간을 의미하며 ‘기(基)’자 역시 ‘터 자리’를 말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해창(海倉)을 만들어 삼남지방의 국세인 조곡(租穀)을 임시로 저장했던

마을이라 창기리(倉基里)라는 지명이 유래됐다.

 

그리고 창기리 마을은 조선시대 중엽에 애환(哀歡)을 간직한 곳으로 , 원래 섬이 아닌곳에

인공으로 섬을 만들어 나룻터가 생기고 갑자기 곶(串)과 만(灣)이었던마을 목의 육지가

섬으로 뒤바뀌어 버린 역사적인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동네이다.

 

원래 안면곶(安眠串)이었는데 삼남지방의 조곡을 운반하던 조곡선들이 쌀과 곡물들이

풍랑에 유실되는 것을 안타까이 여겨, 가장 조곡선의 남파가 심했던 태안반도 안면곶을

조선 인조16년(1638년)에 안면곶을 착항하여 지금의 남면 신온리와 안면읍 창기리

북단의 판목, 불탄개 지역을 착항했다는 조선왕조신록의 근거에 의해 섬이 되었다.

 

이런 역사적인 사건과 자연 지리적인 여건으로 안면도는 17세기부터 20세기(1970년)

까지 무려 330여년간 육지와 떨어진 섬으로, 그 섬안에 살던 사람은 힘든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던 섬이었으나 1970년에 다리가 놓이면서 육지와 다시 연결된다.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오니...

가시넝쿨에 잡목,..등로는 전혀 보이질 않는다.

등로를 헤치고 올라가니...

유일하게 맨발님의 흔적만 보인다

이곳에서 우측 아래로 꺽어져야 하나 코앞에 족보가 있는 64.9m봉이 보인다

64.9m봉(10:54)

등로가 없는 곳을 헤치고 내려오니 77번 국도가 보인다

납작고개(11:00)

안면읍 창기리에서 안면읍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 윗쪽에는 국사봉이 있다.

납작고개의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고 이 지역 사람들은 이곳을 성황당 고개라 부르며

77번 태안에서 안면읍으로 이어지는 77번 국도에는 차량통행이 엄청나게 많다

우측으로 들어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국사봉 오르는 길에서 만난 격려문구...늘 감사합니다

완만한 오르막길

갈림길(10:08)

이정표(←500m 국사봉 정상↓성황당 고개 500m ↗ 500m 창기6구 회관)가 있는데

바로 아래에 납작고개라고 하는 곳이 성황당 고개인 모양이다 

그리고 창기6구 양지말로 내려가는 곳인데 양지쪽에 있는 마을이라 붙어진 지명이란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이정표를 만나는데 완전히 엉터리 이정표이다.

국사봉이 700m가 아닌 70m 전방에 있다. 

국사봉이 코앞에 보이는데 700m라니...

국사봉(峰:107.8m:11:10)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에 있는 산으로 안면지맥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2등 삼각점과

이정표는 있으나 정작 정상석이나 국사봉이라 여겨질만한 표지가 하나가 없다.

자료에 의하면『서산군지』(1926)에 "봉황산은 산맥이 백화산에서 나와서 남쪽으로 뻗어 남면의

여러 산들이 되고 착항을 경유하여 본면 창기리에 이르러 우뚝 솟아 국사봉()이 되고

두 지맥으로 나뉜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한자가 현재와 다르게 쓰여 있지만, '옛날 이 산에 국사당이 있

었던 것에서 지명이 유래하였음'을 고려하면 같은 맥락이다. 한때는 이곳에서 봉화를 올리기도 하였다고 한다.

국사봉에서 바라본 천수만(淺水灣)의 모습

충청남도 서해안 중부, 태안반도 남단에 있는 만인데 예로부터 고급어종의 산란장이자 다양한 어류의

서식지였으며 국내에서 가장 큰 철새 도래지였던 곳이며, 1980년 대규모 간척사업에 따라 방조제가

건설되었고, 방조제 준공 이후 간월호와 부남호가 조성되었다. 간척사업으로 조성된 간척지의
면적은 총 15,500ha에 달한다.

국사봉 정상 삼각점(△중온 25 / 1985복구)

이곳도 국립지리원 안내판에는 ‘중온’이 아닌 ‘신온’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국사봉을 내려서니 운동기구들이 있으나 운동을 하러 오는 사람이 없는지 사용한 흔적이 없다.

 

국사봉에서 잠시 머무르다 내려오니 운동기구가 있는 갈림길... 이곳을 지나면서 뚜렸한

직진 능선을 좌측으로 급히 꺽어져야 하는데 독도에 상당히 주의해야 할 구간이다 

가시나무가 온 몸을 휘감는다...내가 뭣이 아쉬워 이 짓거리를 하는지 나도 모르겠다 

생각보다 잡목의 저항이 훨씬 심하다

안부(11:24)

희미한 등로에 선답자들의 흔적이 왜이리도 반가운지...

천신만고 끝에 등로가 보이지 않은 길을 내려오니 차량소리가 들리고 77번 국도를 만난다. 

77번 국도(10:33)

수로를 건너 능선이 맥길이나 등로가 아예없다

능선 아랫쪽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걸어간다

계속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도로옆에 묘지가 보인다

점심식사(11:40~55)

오늘은 진권아우도 오질않고 선두들은 도망(?)갈터이고 하여 베낭을 최소한 가볍게 하기위해

점심으로 떡과 두유, 따뜻한 물로서 묘지 옆 따뜻한 곳에서 조여사님과 함께 점심을 해결한다

다시 길을 떠나는데 좌측에 이동통신탑이 보인다

무과나무골 버스 정류장(11:57)

천수만 전망쉼터 방향으로 향한다

갈림길(11:59)

갈림길 옆에 있는 안내판

해송 조림지 사이로 걸어간다

갈림길(12:03)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63m봉(12:07)

63m봉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소나무숲 사이를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그 와중에 반가운 竹泉선생의 빛바랜 시그널을 만난다.

가시 넝쿨에 갇혀서 오도가도 못하고 한참을 헤매면서 시간을 낭비한다

천신만고 끝에 내려선 능선

안부(12:11)

법광님의 반가운 흔적을 만나고...

잠시 후 뚜렸한 등로를 만난다

곧이어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선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힘들게 내려서니 빨간 지붕의 민가 한채가 보인다

시멘트 도로(12:19)

태안군 안면읍 창기리 4구에 있는 고개로 좌측으로는 무과나무골과 동양염전 방향이고 우측은 붓뚜기골 가는 길이다 

앙증맞은 강아지 쉬끼들

빨간지붕 대문앞을 지나 밭으로 올라선다

멀쩡한 옛지명을 두고 도로명 주소라... 범여는 참으로 헷갈린다

능선으로 올라선다

임도 삼거리(12:27)

등로에서 바라본 지나온 국사봉의 모습

82.6m봉(12:30)

천수만 너머로 오서산이 아련하게 보인다

82.6m봉 아래쪽에 있는 소주가공 & 영광김씨 묘지에서 우측 아래로 내려선다

묘지를 지나서자마자 잡목의 저항은 시작되고...

안면지맥... 낮은 산이라 우습게봤다가 쌍코피 터지는 중임다

그래도 소나무숲 향기는 머리를 시원하게 해주는 듯 싶다

무명봉(12:40)

소나무 사이의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 가다가...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진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아쟁이 마을과 천수만의 모습

안면지을 걸으면서 자연지명을 참으로 많이 만난다.

바닷가에는 대체적으로 곶(串)이나 진(津)을 주로 사용하는데 안면도에는 특이하게도 

 

개(불탄개, 통개, 동륙개, 젓개), 여(썩은여), 목(노루목) 등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지명들이 보이는데, 조선시대 인조때까지는 반도였다가 섬이 되면서 예전에 육지의

그대로 따르면서 생긴 현상 때문인가 보다.

능선에서 밭으로 내려선다

도로(12:45)

안군 안면읍에 있는 정당리(正堂里) 대숫골에서 천수만에 있는 동양염전으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정당리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정기리(), 창기리() 그리고 장당리()의 각각

일부를 병합하여 정당리()가 되었다. 지명은 정기리의 정()자와 장당리의 당()자가 합쳐진 것이다.

서해안 안면도의 동쪽 내륙에 있다. 경치가 매우 좋아 관광지로서 관광객이 많이 찾아든다.

자연마을에는 닥재가 있는데, 닥재는 한 전설과 관련해 정당리, 장당리, 장뗑이, 당말림, 당마을, 당재

등으로 불려왔으나 현재는 닥재라는 변형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비닐하우스 사이로 걸어간다 

밤나무 단지가 나오고...

능선으로 올라선다

무명봉(12:57)

등로 좌측 아랫쪽에 정당리 4구 이생이 마을이 보인다.

여수해(12:59)

태안군 안면읍 정당리 4구에 있는 고개로 문도감리교회 표지판이 있고 고개 아래는 여수해 마을이 있다.

지도상에는 여수해라고 표기가 되어 있는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고개 우측으로 내려가니 정상까지 300m라는 이정표가 있는데 이곳으로 올라간다

제도권 등로인지 갑자기 등로가 무쟈게 좋아진다

갈림길(13:08)

좌측으로 올라간다

당산(堂山:92.5m:13:10)

태안군 안면읍 정당리 4구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아무런 표시도 없고 이정표와 체육시설만 보인다.

이곳에서는 안면암이 그리 멀지 않은 모양이다.

지도상에는 숫자(92.5)로만 되어 있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당산이라 부르는데 예전에 당집이 있어서

당산이라 부른다고 한다...이 지역 사람의 말에 의하면 일제(日帝)때 일본 관리들이 미신을 타파한다는

명목으로 당집을 헐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당집 터에는 기왓장과 사기그릇의 조각들이 묻혀 있음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당산 정상에 있는 체육시설

안면암의 전경...사진 펌

1988년에 창건하여 오래된 사찰에서 흔하게 보던 고색창연함과는 다소 거리가 멀지만 엄연한

대한불교 조계종 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며 바다를 향한 부처님의 모습이나 언덕 위에서

사찰 전체와 바다를 조망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안면암의 탑 또한 여느 사찰에서 보던 석탑이 아닌 철탑이라는 것이 이색적인데 석지명스님이 스텐을

절단하고 용접하여 직접 제작한 안명암 7층 3쌍탑은 세상에 빛이 될 인재가 많이 솟아오르게 해달라는

발원을 담았다고 한다. 

당산에서 내려서자마자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진다

비교적 등로는 뚜렸하다

밭을 지나고...

잡목이 무성한 절개지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3:18)

77번 국도 표지판이 보이고...

또 다시 77번 국도를 만난다

77번 국도(13:22)

다시 지독한 칡넝쿨을 뚫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3:30)

간벌이 된 소나무숲을 지난다

안부에 있는 밭을 지나고...

절개지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3:35)

우측으로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족보가 있는 86m봉 가는 길이며 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진다

내리막길로 내려가니...

김해김공 묘(13:36)

임도(13:37)

좌측으로 내려가면 77번 국도를 만나는 안면읍 정당리 정터골이며, 우측으로는잔다리로

가는길의 비포장 임도이며 바로 옆에는 사슴의 일종인 엘크 사육장이 보인다

엘크 사육장의 모습

엘크라는 놈이 겁이 많은 모양이다. 사육장 옆을 돌아가는데 이리저리 날뛰면 뛰어 다닌다

엘크 사육장을 돌아서니 또다른 엘크 사육장을 나오고 사육장을 지나 내려서니 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잔다리 버스 정류장(13:44)

이곳 역시 정터골에서 잔다리로 이어지는 길인데 버스 정류장이 있다. 

정터골(正基)과 장댕이(長堂)에서 각각 한 글자를 취해 정당리라는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는 가운데

정당리에서 으뜸이 되는 장댕이는 옛날에 공무를 집행하던 공관이 있는 까닭에 장당으로 불리다가 변하여

장댕이가 되었다고 한다.

 

장댕이를 비롯한 정당리 마을 곳곳에서 출토된 돌화살촉, 반월형석도, 돌도끼, 마제석기, 갈판 등은 청동기시대

유물과 선사시대 패총, 고려시대 고분, 조선시대 백자에 이르기 까지 인류가 정착했던 것을 짐작하게 할 정도로

오랜 역사의 숨결을 안고 있는 정당1리는 인접한 창기리와 승언리와는 달리 오래전부터 내려온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 주택이 있는 곳으로 올라간다

시골치고는 멋진 주택이 있는 마당 가운데를 지난다

마당을 지나는데 쥔장인듯한 남자가 길이 없는데 다닌다고 가지 말라고 난리다

그런다고 맥산꾼이 안가는거 봤어...대꾸도 하지 않고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 올라서서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잡목과 가시덩쿨이 엄청나게 태클을 걸어댄다

이 골짜기에 노란 주택 한채가 보인다

임도(13:53)

벌목지로 올라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3:56)

68m봉(14:00)

무명봉(14:05)

좌측으로 내려서니 폔션단지가 지맥길을 가로막고 있다

펜션 마당으로 들어선다

초원펜션을 통과하여 77번 도로로 내려서니 구령재가 나온다

구렁재(14:10)

77번 국도가 지나는 곳으로 정당리와 승언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무술 버스 정류장이

보이며 지명의 유래는 전설에 의하면 구렁이가 강도를 잡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안면도 방면으로는 안면도 성당 안내판이 있고 바로 앞에는 정당리의

닥재마을이 있는데 닥재는 한 전설과 관련해 정당리, 장당리, 장뗑이, 당말림,

당마을, 당재 등으로 불려왔으나 현재는 닥재라는 변형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지맥길은 무술 버스정류장 맞은편에 있는 빨간 지붕옆 대밭으로 올라가야 하는

사유지 출입금지 팻말이 걸려있고 쥔장인듯한 남자가 째려보고 있는 바람에 돌아 나온다

비닐하우스옆 능선으로 올라간다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83.7m봉(14:24)

83.7m봉 삼각점(△중온 / 76.5 복구)

인증샷

산으로님 반가워요

안부(14:27)

다시 오르막길

59.3m봉(14:35)

다시 내리막길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을 올라섰다가 내려서니...

지독한 잡풀지대...여름철엔 산행이 불가능할 듯하다

우측으로는 태안읍으로 이어지는 77번 국도가 지나는 팔학골 마을이 보인다

안면읍 승언리에 있는 팔학골(八鶴谷)은 마을을 8개의 야산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 있으며 이곳에 많은 학들이 무리를 지어 지내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뚜렸한 등로로 내려서니...

폐가인듯한 집 한채가 나오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뒤돌아 본 폐가의 모습

밭가운데에 있는 민가옆으로 내려선다

광지고개(光地峴:14:48)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광지마을에서 안면초교 방향으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지명은 고개 좌측 아래에 있는 광지마을에서 따왔으며 햇볕이 잘든다고 하여

광지(光地)라고 하며, 고려시대에는 안면소, 광지항이 있었다고 한다

광지고개에서 좌측의 절개지 윗쪽으로 올라간다

등로에서 바라본 안면읍 승언리(承彦里)의 모습

승언리는 본래 태안군 안상면의 관할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때 창기리()와

정당리 각각의 일부를 병합, 안면면에 편입시켜 승언리()가 되었으며, 지명은 통일신라 시대에

청해진을 중심으로 해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장보고 휘하의 승언()이란 장군이 안면도를 무대로

활동했던 것을 기리기 위해 붙여졌다. 서해안의 바닷가 마을이다. 바닷가에는 밧개해수욕장이 있다.

바다에 가까워서 고도가 낮고 평평하다. 자연마을에는 팔학골, 구렁이고개, 두여가 있으며 팔학골은

 마을을 8개의 야산이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 있으며 이곳에 많은 학들이 무리를 지어 지내고 있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구렁이고개는 한 전설에 의하면 구렁이가 강도를 잡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두여는 과거에 도인들이 도를 닦던 마을이라 하여 도여라고 불렀으나 현재는 두여로 바뀌어 불리고 있다

등로에 올라서며 빛바랜 신경수 선생의 흔적을 만난다.

57m봉(14:52)

잡목을 헤치고 내려선다

밭 좌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안면초등학교가 보이는데 저곳은 승언2리로 조선조 고종의 아들인 완화군이 사용하였고

충청남도 문화재인 상여가 있는 곳이다

첨부 이미지

승언리 상여...문화재청 자료인용

충남도 문화재자료 제315호인 [승언리 상여]는 일명[완화군 상여]로 완화군은 고종 5년(1868)

윤4월 10일 귀인(貴人) 이씨의 몸에서 탄생하여 고종 13년(1876) 4월 10일 완화군(完和君)으로

봉해졌다가 고종 17년(1880) 정월 2일 세상을 떠난 고종황제의 큰아들(元子)이다.

 

이 상여는 고종황제의 큰아들인 완화군을 장례지내기 위해서 만들어진 전통적인 궁궐 상여로써,

상여꾼으로 당시 완화군의 스승이었던 김병년(안면초등학교 전신인 광명의숙 설립자)의 고향인

안면도 사람들이 차출되었으며 수원에서 흥선대원군 부친인남연군의 묘가있는 예산까지 운구하였다고 전해진다

무사히 장례를 치르자 고마움의 표시로 이 상여를 안면도 승언리 사람들에게 하사(下賜)하여 사용해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는 것으로 지난 1990년 5월 28일 민속자료 제315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조선 말기의 상여로 전통적인 형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상여의 양장틀 앞. 뒤 부분에는 청룡과 황룡을 함께

투각(透刻)하였고, 네 귀에는 귀면상(鬼面像)을 세웠으며, 특히 용마루 중간에 서 있는 '말 탄 저승사자상' 은

그 형상이 무섭거나 고자세적이 아니라 아주 마음이 착해보이고 익살스러워 상여를 전체적으로 부드럽게

이끌고 있다는 평이다.

 

이 상여는 이후 110년 동안 승언리 일대의 망자(亡者)를 유택으로운구하는 상여로 활용되다가 문화재 지정과

새로운 상여사용으로 상여각에 보존되고 있다.

뚜렸한 임도가 나오고...

묘지(14:56)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올라서는데 길이 없다

무명봉(14:58)

무명봉을 내려와서 다시 뚜렸한 등로로 내려선다

또다시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우측 능선으로 오른다

잡목을 헤치면서 나가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무명봉(15:01)

임도 삼거리(15:03)

떡 하나로 점심을 해결한 탓인지 피곤도 하고 허기가 지기에 이곳에서 조여사님과 함께

베낭에 남은 두유 하나와 밀감 2개로 허기를 면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큰길을 내려오니 안면읍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가야할 등로가 보이고...

안면읍내(邑內)의 모습

안면읍은 안면도의 4/5를 차지하고 있으며 1980년에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3년 2월 전국 행정구역

조정으로 보령시 오천면() 삽시도리()의 일부를 편입하였다

 

일제강점기 태안군에서 서산군으로 편입되었다가 1989년 다시 태안군 관할이 되었다.
동쪽은 천수만()을 끼고 홍성군·보령시에 접하고, 북쪽은 안면수도()를 사이에 두고 태안반도의

남쪽 끝인 신온리()와 마주하고 있으며, 생미역 모양의 리아스식 해안을 이룬 안면도는 간척사업이

진척되어 해안선이 많이 직선화되었다. 국사봉(:109m) 이외에는 50m 미만의 야산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구릉지대로 주변에는 황도()·두지도() 등의 유인도와 50여 개의 무인도가 있다.

주민의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며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콩·고구마 등이고, 소·돼지 등도 많이 사육한다.

임산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었으나 남벌로 입목지를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근해에서 멸치·조기·민어·가자미·

넙치·갈치·낙지 등의 어로를 하고, 김·굴·백합·새우·꼬막 등을 양식한다. 지하자원으로 대리석과 규사()가

전국에 알려져 있다.

안면도 북쪽 창기리()와 태안반도의 신온리 사이에는 안면교()가 건설됨으로써 중앙을 남북으로

관통하는 국도가 통하여 태안읍·서산시와 연결되며, 서안 일대와 그 앞바다의 도서부는 태안해안국립공원에

포함되어 경승지를 이룬다. 승언리()의 방포()해수욕장과 창기리의 삼봉()해수욕장은 피서지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로는 안면도의 모감주나무군락(천연기념물 138), 황도 붕기풍어제(:충남무형문화재 12),

서산() 안면 내파수도(:충남기념물 64), 태안 승언리 상여(輿:충남문화재자료 315),

신야리 패총(), 해남사지() 등이 있다.

내려왔던 길을 뒤돌아 보니 등로에서 약간 벗어난 이동통신탑이 있고,

언덕위에 전원주택인지 펜센인지 모를 멋진 주택들이 보인다

주택지를 내려서니 안면읍내로 들어가는 도로가 나오고 좌측에 솔밭가든이 있다.

장문고개(15:15)

안면읍 초입인 승언리에 있는 고개로 안면읍으로 들어가는 77번 도로가 지나간다

장문이란 이 지역의 형세가 장군이 칼을 차고 있는듯 하다고 하여 붙혀진 지명이다  

횡단보도를  건너 직진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맞은편에는 렉스빌 A동 빌라가 보이고...

렉스빌 A동을 지나 좌측으로 꺽어지니 묘지로 이어지는 시멘트 계단이 보인다

계단을 올라가니...

묘지(15:18)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비교적 뚜렸한 등로로 능선으로 올라서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오름길에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91.5m봉(15:27)

정상에는 벙커인듯한 웅덩이가 있고 표식없는 삼각점이 있는데 아마도 지적도근점인듯 하다

91.5m봉 정상의 모습

등로가 없는 곳으로 무조건 치고 내려온다

L.G U+ 이동통신탑(15:33)

이동통신탑에서 잡목으로 헤치며 나오니 안면읍내를 우회하는 신77번 국도가 나온다

신77번 국도(15:36)

도로를 가로 지른 다음에 철계단으로...

철계단을 올라서서...

밤나무밭을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선다

묘지(15:43)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맥길은 좌측으로 향한다

무명봉(15:45)

무명봉을 지나자마자 우측의 뚜렸한 길이 나오는데 지맥길은 좌측 내리막길로 이어지는

희미한 길인데 이곳에서 잠시 방심하다가 50여m 정도 알바를 한 다음 다시 되돌아 온다

등로가 잘 보이질 않는 곳에서 잡목을 헤치고 내려오니 좌측 아랫쪽에 조금전 헤어진 신77번 국도가 보인다

느르재고개(15:55)

일제 강점기에일본의 민간 종교인 신도사원(神道寺院)인 신사를 곳곳에 세우고 조선인들을

강제로 참배하게 하던 곳이며, 6.25때는 인민군 초소가 있었으며 초망소골이라고도 부른다. 

조여사님과 함께 잡목을 헤치고 남.여가 함께 내려오니 고개에서 골프채 아이언 하나만 들고가던 사람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는데 이상할 거 하나도 없소이다...2차선 도로인 느르재 고개에서 좌측의 능선으로 올라선다

절개지 옆을 오르는데 칡넝쿨을 비롯해 별별넘이 태클을 걸어대니 미치겠다

무명봉(16:05)

정상에는 빛바랜 죽천 선생의 시그널 하나만 달랑 보인다

비교적 등로는 뚜렸하다

무명봉 아래에 있는 쉼터

안부를 지나 우측으로 꺽어지니...

98.1m봉(16:09)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져 내려서니 등로는 아예없다.

진짜 죽을 맛이다...개고생을 하면서 내려선다

낮은 산이라 우습게 봤다가 죽을 고생을 하는데, 오늘도 산이란 스승한테서 많은 걸 배운다

 

유리하다고 교만하지 말고, 불리하다고 비굴하지 말라.

무엇을 들었다고 쉽게 행동하지 말고, 그것이 사실인지

깊이 생각하여, 이치가 명확할 때 과감하게 행동하라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임금처럼 말하며 눈은 냉정하고 불처럼 뜨거워라

태산같은 자부심을 갖고, 누운 풀처럼 자기 자신을 낮추어라.

역경을 참아 이겨내고, 형편이 잘 풀릴 때를 조심하라.

재물을 오물처럼 볼 줄도 알고, 터지는 분노를 잘 다스리라.

때로는 마음껏 풍류를 즐기고, 사슴처럼 두려워 할 줄 알고

호랑이처럼 사나워라.

이것이 지혜로운 이의 삶이니라    -잡보장경 中에서-

 

정말 힘들게 내려서니 신77번 국도가 나온다

신77번 국도(16:18)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펜션 해들녘 쪽으로 향한다

해들녘 펜션(16:20)

펜션을 지나 밭 가운데에서 우측으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묘지(16:23)

묘지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서니 넓은 임도가 나오고 돌탑봉이 보인다

67m봉(16:25)

넓은 공터에 돌탑이 보이고 누군가가 돌탑에다가 ‘望鄕塔’이라고 적어놨고 벤취 2개가 있다.

돌탑을 지나 넓은 임도를 따라서 간다

나무 계단을 따라서 내려가니...

우측으로 꽃지해수욕장과 꽃박람회장이 보인다

임도 사거리(16:30)

안면 소공원(16:32)

안면읍내 윗쪽 산위에 소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일각정(日脚亭)이란 팔각정과 안면도 청년회의소에 설치한 해맞이 축제 기념비

그리고 각종 운동기구 워킹을 할 수 있는 트랙이 아주 깨끗하게 조성되어 있다.

소공원의 운동시설들

소공원에서 바라본 지나온 98.1m봉의 모습

안면 터미널로 내려가는 이정표도 보인다

워킹장을 지나...

능선으로 오른다

갑자기 등로는 사라지고...

해송숲을 지나 천신만고 끝에 내려서니... 

밭이 나오고 도로 건너편에 롯데수퍼가 보인다

롯데수퍼(16:42)

강복순의 안면꽃게집 앞으로...

우측으로 꺽어져 프라자 호텔 안쪽으로 간다

프라자호텔 주차장 안쪽으로 들어간다

호텔 주차장을 지나 올라서니 잡풀이 무성하다

고물상옆 밭으로 내려간다...밭 가운데 도로에서 좌측으로 가니...

킹스마트가 보이고 우측 골목으로 들어선다

안면도서관(16:52)

안면도서관에서 우측으로 꺽어지니 유진빌라가 나온다.

나무 계단으로 올라서니...

덕수장씨 묘(16:54)

기독교인 묘지가 나오고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등로는 아예 없다

안면중앙교회 뒷쪽으로 내려간다

안면중앙교회(17:00)

비석골(17:01)

이곳에서 좌측으로 가서 비석골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야 하지만 길이 너무 험해 직진한다

애국지사 추모비(17:03)

이종현, 가재창, 오몽근, 김정진,염성한 선생은 1919년 3월 대한독립단 안면결사대를

조직하여 애국사상 고취와 독립자금 조달등의 항일운동을 하시다 일경에 체포되어

수년간 옥고를 치르렀다...이 다섯분의 애국지사를 추모하고그 숭고한 뜻을 후대에

영원히 전하기 위하여 1983년 8월 안면반도청년회에서 이 비를 건립하였다.(안내판의 내용)

능선에서 바라본 비석골 삼거리

무명봉(17:05)

비포장 도로(17:10)

도로를 가로질러 밭으로 올라선다

나무 다리를 지나 능선으로 올라간다

묘지(17:13)

임도가 나오고 우측에 58.6m봉이 보인다

58.6m봉(17.18)

58.6m봉의 모습

58.6m봉 삼각점(△신온 433 / 1991복구)

58.6m봉에서 되돌아 와서 내려서니 나무 계단이 나온다

나무 의자도 보이고...

안부(17:20)

안부에 있는 안내판

마지막 길은 꽃길이다

쉼터(17:24)

61.6m봉(17:26)

61.6m봉을 지나자마자 벤취와 이정표가 나오는 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직진 능선으로 오른다

다시 내리막길

밭 사이드를 지나 도로로 내려서니 오늘의 날머리인 안면고교가 나온다

안면고등학교 교정의 모습

내가 타고온 愛馬도 보이고...

안면고등학교(17:30)

참으로 힘들었던 산행이다... 낮은 산이라 얕봤다가 호되게 당한 산행이다

일찌감치 도착한 동료 산꾼들에게 너무 미안하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태안군 남면의 오리집에서 식사를 마치고 조금 늦게 귀경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