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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지명 유래

여주시 강천면과 북내면 지명유래

by 범여(梵如) 2019. 2. 18.

강천면의 지명 유래
 
강천면은 본래 강원도 원주군 관할 구역으로서 강천면이라 하여마감. 걸촌 기은, 가야, 적금, 굴암, 강천, 대둔리, 탑전, 전거론, 원심, 도성, 간매, 가정,이호의 15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고종 32년(1895) 지방 관제 개정에 의하여 여주군에 편입되고 1914년 3월1일 군면 폐합에 따라 가정리를 북내면에 넘겨주는 동시에 원주군 부론면의 칠리 일부를 병합하여 걸은, 가야, 적금, 굴암, 강천, 대둔, 부평, 도전, 가매의 10개 리로 개편 관할하게 되었다가 95년 3월1일자로 대둔리가 강원도 원주시 문막읍으로 편입되어 9개 리가 되었다.
 
제1절 간매리(看梅里)
 
ㆍ간매리(看梅里)(구전자:곽명석, 85세)- 갈매, 간매(리)본래 강원도 원구군 강천면의 지역으로서, 뚜갈봉 밑이 되므로 갈매 또는 간매라 하였는데, 고종 32년(1895)에 여주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간매리라 함.
원래간매리(看梅里)는 양지말, 음짓말, 소따배기 등 세 땀으로 이루어졌고, 모따벌, 못둥지(연못주변), 설공주 6ㆍ25이후 생겼음.
매화꽃이 많이 피는 꽃채봉에서 꺾은 꽃이 매화였기에 매화꽃을 보았다는 뜻.
※갈미= 갈뫼(언 덕산 작은 산의 뜻)=갈매
ㆍ가시나무골- 간매리에 있는 골짜기, 가시나무가 많았음.
까치나무골- 작목동(까치집이 많다)   
※가생이-가시(가장자리)
ㆍ나뭇골- 조선시대 땔나무 채취장으로 지정된 곳을 시초장(柴草場) 또는 나무골.나무터라고 하였음.
ㆍ갈매- 간매리. 간매라고도 부르며 매화를 보았다는 뜻을 지녔음.
※갈매는 갈미의 변음인데 갈뫼 그다지 크지 않은 즉, 높지않은 산능선이란 뜻이 담긴 것인데 전국 갈매, 갈뫼, 갈재, 갈고개 등의 지명이 무척 많다.
매화를 보아서 간매(看梅)라는 것은 갈매를 한자로 쓰면서 다시 한자를 풀이하는 과정에서 생긴 잘못된 지명 풀이로 보아야 할 것이다.
ㆍ고라우- 간매리에 있는 습기가 많은 논.
※고래실위- 고래위- 골아우- 고라우
ㆍ고장배기- 간매리에 있는 들, 권(權), 장(張), 백(白)씨 묘가 있어서 권장백 이라고 불렀다.
※지형이 허구리(山甲)형태로 생긴 곳을 「곶」이라고 하는데 곶이안-고지안- 고잔으로 변하여 고잔백이가 고장백이 또는 고장배기로 불리게 된다.
백이란 박혔다. 들어 있다의 뜻이고 보면 허구리(반도형)의 산이나 들이기 때문이다.
ㆍ나믄골- 간매리에 있는 들.
ㆍ남은골-건조해서 가뭄에는 농사를 짓지 못하고 남는 들판(골짜기)이라는 뜻을 지녔다함.
※남은골은 넘어가서 있는 골
ㆍ당고개- 설경주 동쪽에 있는 고개, 당집이 있었음.
ㆍ덤바위- 간매리에 있는 바위, 고라우 골짜기에 있는 바위골.
바위가 크고 많다. 일제때 신작로 건설로 파손되었음.
※덤바위란 암석 줄기나 암석층의 바위가 아니고 건천에 있는 (덧붙어 있는)바위다.
ㆍ망재-간매리에 있는 산. 달맞이를  하였던 곳으로 큰 망재, 작은 망재가 있음.(차수리 장소로 사용)
ㆍ모래봉-간매리에 있는 산. 모래가 많다함. 설경주에서 쳐다보이는 높은 봉우리, 장마 때면 많은 모래가 쓸려 내려옴.
※말은 높은 곳 위(上)등의 뜻이다. 집에서 제일 높은 곳 「용말」 산꼭대기는 「산말」이라고 한다.
이 말이 뒤에 붙는 글자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변음이 되는데 모래, 모리로 변했다가 뒤에 다시 ㄹ 이 없어지고 모, 뫼, 메, 매로 변하여 산(山)으로 변하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모래봉은 모래가 쓸려서가 아니고 높은 봉우란 뜻이다.
ㆍ북당골-간매리에 있는 골짜기, 북성골 이라고도 불리움.
불당골-불당이 있었음.
※불당이 있었으므로 불당이 북당으로 변한 것이다.
불자도 붓(筆)또는 북(北), 붉(赤), 북(鼓)등으로 변하여 뜻을 전혀 달리 변화시킨 경우가 많다.
ㆍ사당골-간매리에 있는 골짜기. 사당이 있었음.
초등학교 들어가는 골짜기- 작은 망재 아래
ㆍ설경주(설공주)-설공주(마을) 간매리에서 가장 큰 마을.
강천면 소재지로서 학교, 경찰지서, 우체국이 있음.
소나무 정자가 있었다고 하는데 원주 방향의 장꾼들이 이정자 아래에서 쉬어가면서 송정(松亭)이라 불렀다하나 뒤에 설경주라고 불리우고 있음.(원주에서 서울로 가는 통로)
ㆍ성불암- 간매리 북동쪽에 있는 절.
ㆍ성인재- 간 매리에있는 산. 간매리, 부평리 경계에 있는 산. 성연재 라고도 불리움.
※서안재= 성(城 산의뜻) +안(內)+재(山 또는 峴)(산중에 있는 산이란 뜻)
ㆍ솟대배기- 간매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 솟대가 박혀 있었음. 솟따배기     
※쇳대(철장)+백이(串)
ㆍ양짓말- 간매리 양지쪽에 있는 마을.
ㆍ열자니- 간매리에 있는 들. 면사무소 소재 골짜기(가야리로 넘어가는 골)
ㆍ용머리- 간매리에 있는 산, 지서에서 설경주로 가는 길가 불쑥 솟은 곳
※산뿌리 끝이 들린 형태
ㆍ은흥쟁이- 은행 나무가 있는 들.
ㆍ음짓말- 간매리 응달쪽에 있는 마을.
ㆍ작은 새모래- 간매리에 있는 골짜기. 모래가 많아서 건조하고 농사짓기가 어려움.
  작은 새울이라고도 함.   ※샛고래
ㆍ절골- 간매리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음, 성연재 아래
ㆍ정골- 간매리에 있는 골짜기. 중앙고속도로, 음짓말 뒤 주변
ㆍ주막거리- 간매리 서쪽에 있는 마을. 주막이 있었음.
ㆍ중매산- 간매리에  있는 산. 중산, 간매리 뒷산.
  ※중(中또는 重+매(山)+산(山)
ㆍ창내미 거리- 간매리에서 적금, 강천리 가는 거리에 있는 고개.
푸를 창(蒼) 남녘 남(南)
  ※창(創)+내미, 냄이(너머)+거리
  ※창(創)+내미, 냄이(너머, 넘어가는)+거리
ㆍ큰골- 간매리에 있는 큰 골짜기. 옥동이라 불렀음. - 소를 많이 방목하였다.
ㆍ큰보들- 간매리에 있는 들. 큰 보가 있음. 설경주 앞뜰
ㆍ팔 재봉- 간매리에 있는 산. 초등학교 뒤, 잔등.
ㆍ행치고개- 간매리에 있는 고개. 설경주에서 부평리로 가는 직선 고개.
   ※ 가파른 고개
 
제2절 걸은리(傑)隱里)
 
ㆍ걸은리(傑隱里)(구전자- 김복기, 64세)- 본래 강원도 원주군 강천면의 지역인데, 고종 32년(1895년) 여주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마감리, 걸촌, 기은리(긴골)를 병합하여 걸촌과 기은의 이름을 따서 걸은리라 함.
※거른(긴 長
ㆍ감박골- 감박산 밑에 있는 골짜기(호랑이 줄무늬를 닮았다, 나무가 많고 물이 좋다)
※감(검 黑)+박(박힌 串)
ㆍ말감산- 걸은리에 있는 산.
※말(말 首,頭)+감(감 大)= 제일 큰 산이라는 뜻에서 붙여짐)
ㆍ거루바위- 걸은리에 있는 바위, 거룻배처럼 생겼음.
ㆍ건너말- 아랫말 내 건너 쪽에 있는 들.
ㆍ걸구쟁이- 걸촌동, 귀정동, 걸은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 원씨의 정자가 있었다 함.
조선 초 고려 유신(遺臣) 원문이 난을 피해 피신 중에 정자를 짓고 안주하였는데 이 정자를 ??걸 귀정??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훗일 걸구쟁이로 불리운다.
ㆍ곱새기- 호색동, 걸구쟁이, 동남쪽에 있는 마을.
ㆍ기은골- 진골, 가는골. 긴골. 장곡동 이라고도 불리운다.
1.골이 길어서 생김.
2.신라시대의 진골이 이곳으로 쫓겨 들어와 살면서 진골로 불 리움- 긴골로 변음.
ㆍ날타리(비타리)-걸은리에 있는 산. 옛날 처녀, 총각들이 연애하던 곳이라 전해짐.
ㆍ달바골- 걸은리에 있는 골짜기. 달처럼 생긴 바위가 있음.
※달(達 山)+바(밖 外)+골= 산밖골과 같은 뜻
ㆍ대갈고개- 걸은리에 있는 고개   ※댕알(댕아리)고개와 같은 뜻
ㆍ돌떨어진골- 걸은리에 있는 골짜기. 바위가 부서져 떨어져 내림.
※돌(홀로 獨)+ 떨러진(難)
ㆍ돌팍지(재)- 걸은리에 있는 골짜기, 돌이 많음.
ㆍ독로골- 걸은리에 있는 골짜기,
ㆍ드르내골- 걸은리에 있는 계곡으로 골짜기가 높이 들려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ㆍ마감동-말개미, 조선 효종때 이완대장이 영월루에서 말을 풀어 놓았는데 지금의 마감산(馬甘山)으로 가므로 이 때부터 말개미라 불리움.
※꼭대기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말감산  참조)
ㆍ마감산- 말개미 북쪽에 있는 산, 한자로 마감산(馬甘山)이라고 쓰고 말과 관련을 시켜놓고 있으나 말과는 무관하다.
※말(말,首, 頭)+감(감 大)+미(뫼 山) (말감산 참조)
ㆍ말개미- 마감동, 걸구쟁이, 북동쪽에 있는 마을, 마감산 밑이 됨.
※말감산 참조
ㆍ매봉- 걸은리에 있는 산(이호2리와 걸은2리의 경계). 매가 날개를 펴고 앉은 형상.
 ※뫼(뫼 山)+봉(峰)
ㆍ명태골(명터골)- 걸은리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사람이 많이 살았던 곳으로 사람이 살만한 밝은 터라는 뜻을 지녔다 함.
ㆍ묘촌말- 안말 남쪽에 있는 마을. 원씨네 묘막이 있다.
ㆍ물떨어진곳- 걸은리에 있는 골짜기. 약 4m되는 폭포가 있음.
ㆍ방골-걸은리에 있는 골짜기
ㆍ배나무골- 걸은리에 있는 골짜기. 배나무가 있었음.
ㆍ버덩-걸은리에 있는 들. 버덩이 됨(야영장 지나서 평평한 곳)
ㆍ범바위- 걸은리에 있는 바위. 범처럼 생겼음.
 .범바유골- 범바우가 있는 골짜기
 .법수머리- 걸은리에 있는 들. 법수(돌장승)가 있음.
ㆍ벗논- 봇논.
ㆍ부채진골-터골(말개미) 서북쪽에 있는 마을.
ㆍ새매골- 걸은리에 있는 골짜기. 새매가 많았다 함. 매봉재 라고도 불리움.
  ※새(間)+매(뫼 山)
ㆍ새우래- 걸은리에 있는 들.
ㆍ성싼골- 걸은리에 있는 골짜기. 임진왜란 때 성을 쌓았다 함.
※성(城, 山)+싼(안은)
ㆍ아랫말- 진말 아래쪽에 있는 마을, 말개미 아래쪽에 있는 마을.
ㆍ안말- 말개미 안쪽에 있는 마을.
ㆍ앞개울- 걸구쟁이 앞에 있는 내.
ㆍ앞들-말개미 앞에 있는 들.
ㆍ양다래- 걸은리에 있는 양지바른 골짜기.
ㆍ양달말- 양다래 어귀에 있는 마을.
ㆍ요골-걸은리에 있는 들.   ※요(凹 오목한 , 쏙 들어간)
ㆍ우무골-걸은리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움막이 많이 있었다.
ㆍ우채진골- 걸은리에 있는 들. 원수리라고도 불리움.
ㆍ원구리- 걸은리에 있는 들. 원수리라고도 불리움.
ㆍ음달말- 걸구쟁이 북쪽에 있는 응달진 마을.
ㆍ응골- 걸은리에 있는 골짜기.
ㆍ작은곱새기-곱새기의 작은 마을.
ㆍ절골- 걸은리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음.
ㆍ진자골- 걸은리에 있는 골짜기.
ㆍ집너머- 안말 너머쪽에 있는 마을
ㆍ큰 개울- 앞개울 서남쪽에 있는 큰 내.
ㆍ큰골- 걸은리에 있는 골짜기.
ㆍ터골-걸은리에 있는 골짜기.
ㆍ퉁수바위- 걸은리에 있는 바위. 퉁소를 불었다 함.
ㆍ한사래- 곱새기 올라가는 걸은리에 있는 큰 들.
 ※한(一, 하나)+사래(두럭)
계단식이 아니고 평평한 들 즉, 한 배미처럼 보이는 큰 들.
 
제3절 이호리(梨湖里)
 
ㆍ이호리(梨湖里)(구전자-이홍규, 64세)-배미, 아암, 이호(리), 본래 강원도 원주군 강천면의 지역으로서 마을 앞에 배처럼 생긴 바위가 있고, 그 밑에 한강이 흐르므로 배미 또는 이암, 이호라 하였는데, 고종 32년(1895) 여주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이문동, 지문 동을 병합하여 이호리라 함.
이호리는 본래 강천리에 속하였고, 여주 관내에서 조선 시대 이호(梨湖)는 금사면 앞강의 명칭이었으므로 고전을 읽을 때 유의해야 함.
ㆍ거무낭골- 거문동(마을)배미 동남쪽에 있는 마을. 삼국 시대에 높은 벼슬을 한 분이 큰 집과 큰 대문을 짓고 살았는데 지금의 배미 앞 강에 배를 타고 한양으로 가던 뱃사람들이 큰 대문(국가경계를 짓는 대문으로 추측)을 보고 거문동(巨門洞)이라 한데서 ??거문동?? 또는 ??거문안골??로 불리움(琴雲鞍谷)
※큰 동네는 감실, 감골, 가무리(감우리), 큰 섬은 가마섬이 라는 이름이 붙었고, 감이 변하여 가마, 가매, 가미 등으로 붙고 또 검말 검실(거무실)등 다양하게 변한다.
거무낭골은 검+안골= 거문안골-거무낭골로 변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큰 안동네란 뜻이다.
ㆍ구러넢들- 이호리에 있는 들. 금당천과 남한강 본줄기가 마주치는 늪지대로서 천년묵은 이무기가 살고 있었다는 말이 전해짐.
※구러(大 큰)+넙(늪)+들= 구넙들 
(침수가 잘되거나 늪이 있는 큰들이다.)
ㆍ다리께-배미다리 옆에 있는 들.
ㆍ명경개들- 이호리에 있는 들. 강물이 넘치면 회색빛 나는 고운 흙(개흙)이 쌓여서 생긴 이름.
※명게(침수에 실리는 고운 모래 앙금)+개(浦)+들= 명게 흙으로 이루어진 물가의 들이란 말
ㆍ무장골- 이호리 목아 박물관 뒤에 있는 골짜기
※물(水)+잔(小)+골= 무잔골, 무장골
ㆍ반아들- 이호리에 있는 들.
※반하(뿌리가 콩알만한 풀: 학질에 약호가 있다) 라는 약초가 많아 자생되어 붙여진 이름.
ㆍ밤나무골-이호리에 있는 골짜기 밤나무가 있었음.
ㆍ배미- 현재 이호 1리를 통털어서 부르는 말.
※배(민둥)+미(뫼산)= 편편한 민둥산
ㆍ배미나루- 배미 앞에 있는 남한가에 나루터로서 연양리(淵陽里)의 은모래와 연결됨.
ㆍ배미다리- 배미 앞에 있는 작은 다리로 1920년 무렵에 콘크리트로 놓았음.
ㆍ분토골-허연 차돌가루가 가끔씩 나온다. 응골에서 밤나무골로 그 위에 위치함.
ㆍ새나루- 배미 서북쪽에 있는 나루터로서 연양리(淵陽里), 신진리(新津釐)와 연결됨.
ㆍ신진(新津)- 새나루, 새로 생긴 나루라고 요즈음 생긴 나루가 아니고 옛날(세종실록지라지)에 새로 생긴 나루터.
ㆍ산신골- 이호리(梨湖里)에 있는 골짜기.
ㆍ아랫말-배미의 아래쪽 마을.
ㆍ양달말-거무낭골 양지바른 곳에 있는 마을.
ㆍ응골-어인곡, 어인골이라고도 불리우는 이호리에 있는 골짜기.  어인곡(於仁谷)
※①매(山뫼)→응(鷹)  ②움→ 응
ㆍ웃말-배미의 위쪽 마을.
ㆍ음달말-거무낭골(거무안골)응달쪽에 있는 마을.
ㆍ이문안(이문동)-이문동 배미쪽에 있는 마을. 이문이 있었음.
ㆍ재재기 고개(자재기 고개)-자재기 고개라고도 불리우는 이호리에서 걸은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자작나무가 많이 났다는데서 유래된 이름.
※잔(小)+재기(峴언덕고개)+고개
ㆍ중배미-배미의 가운데 있는 들.
ㆍ하내들-이호리에 있는 들.
※한내(찬물내 寒淺)+들→하내들
 
제4절 가야리(伽倻里)
 
ㆍ가야리(伽倻里) (구전자:김복기64세)-개골, 갯골, 개곡, 가야동(리).본래 강원도 원주군 강천면의 지역으로서 남한강가가 되므로 개골, 갯골, 또는 개곡, 가야동이라 하였는데, 고종 32년(1895) 여주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오감, 점말, 봉바위, 삼문절이, 고로동을 폐합하여 가야리라 함.
※원주구역으로 있을 때 지명은 가야곡(伽倻谷)
ㆍ갯골- 가야리, 가야동, 개골, 갯골이라 불리우는 현재의 가야리를 이름.
※개(浦 물가)+골(곡(谷))
ㆍ고노골-개골 서쪽에 있는 마을, 고로동,
조선초 권(權),이(李), 정(鄭)씨 가문의 노인들이 이주해와 제일 먼저 살았다 함.
※골은, 곤(썩은 질땅)+논(畓)+골→ 노고골.
ㆍ긴등- 빈터서리 북쪽에 있는 등성이, 진등.
ㆍ돌선거리-회사거리 북쪽에 있는 들, 선돌이 있음. 장승바위.
ㆍ방아다리- 새물골 위에 있는 마을,  
※삼거리 주위
ㆍ보광터- 현재의 제일연와자리
※고려때 나라에서 어떤 사업을 할 목적으로 그 기금을 마련하여 백성에게 이자를 놓아 이자수익으로 충당하는 재단이 있었는데 그 재단을 보(寶)라고 하였고, 재단의 곡식을 두는 창고가 있던 터로 붙여진 이름.
학보(學寶), 제민보(濟民寶), 팔관보(八關寶)중에 어느 보 창고였는지는 알 수 없다.
ㆍ봉바우- 봉바위가 있는 마을, 부락앞 강변에 봉황새와 같은 바위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 바위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
ㆍ부라우 나루- 단현도선(나루) 봉바위 서쪽에 있는 나루터.
여주읍 단현리 부라우로 건너감   
※붉+여울+나루
ㆍ부수리-가야리에 있는 들.
ㆍ빈터서리-가야리에 있는 들.
ㆍ사발안수- 약수가 나오는 곳으로 사발처럼 생긴 모양에서 유래됨.
ㆍ삼문절-삼문 절이(가야2리)-권, 이, 정씨 가문의 노인들이 마을을 만들어서 유래됨.
ㆍ새물골- 긴등하고 오감사이에 있는 골짜기
ㆍ약물탕-갈갱이 약물탕, 담비, 호랑이, 등이 나오는 골짜기에 있는 약수로 옛날에 앉은뱅이가 이 물을 먹고 나왔다는 얘기가 전해짐.
ㆍ원수골-옛날에 많은 도적떼로 인하여 원망이 많았다는 것에서 유래된 이름
ㆍ양촌 -양짓말, 개골, 양지쪽에 있는 마을
ㆍ오감-오감동(마을)점말 동쪽에 있는 마을. 다섯대감이 살았다 함.
※오목(凹)+안(內)
ㆍ음짓말- 개골 음지쪽에 있는 마을, 음촌
ㆍ점말-점촌 회사거리 북쪽에 있는 마을. 옹기점이 있었음.
대원군의 박해를 피해 들어온 천주교도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옹기를 구워 생활을함.
ㆍ쪽두리 바위- 봉바위 북쪽에 있는 마을, 족두리처럼 생겼음.
흔들바위로 이괄 장수가 앉았다는 말이 전해짐.
ㆍ회사거리- 개골 북쪽에 있는 마을. 양조회사가 있었음.
일제시대에 양조장이 생긴 이후에 회사거리로 불림.
 
제5절  적금리(赤今里)
 
ㆍ적금리(赤今里) (구전자:신현각 80세)-적그미, 적금동(리). 본래 강원도 원주군 강천면의 지역으로서, 적그미 또는 적금동이라 하였는데, 고종 32년 (1895) 여주군에 편입되고,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대촌을 병합하여 적금리라 함.
ㆍ관방골- 적금리에 있는 마을로서 곤방거리. 신대촌 등으로 불리우고 옛날에 사금을 채취한 후 금을 거래했던 곳임.
ㆍ대동골- 적금리에 있는 골짜기. 땅이 질고 물이 좋아서 쌀이 좋다는 것에서 유래.
ㆍ돌박산- 산꼭대기에 돌이 박혀 있으며 3형제 바위가 있음.
인공으로 돌을 쌓은 흔적이 엿보임.(적금산성)
ㆍ세끼실- 적금리에 있는 골짜기.
ㆍ쇠재-적금리에 있는 골짜기.
ㆍ승수골- 적금리에 있는 골짜기로 물이 좋아서 농사를 잘 지을수 있는 곳임.
ㆍ신선골- 돌박산에 있는 골짜기. 신선사가 있었다 함.
ㆍ야금물- 적금리에 있는 산에서 사금을 채취하던 곳.
ㆍ여뱅이- 적금리에 있는 마을.
ㆍ지노골-적금리에 있는 골. 진흙이 많아 보습성이 뛰어나 쌀농사가 잘 된 곳이라 전해짐.
※잘논골→ 지논골→ 지노골
ㆍ지리네미- 적금리에 있는 고개로 약수터 질러가는 길이라는 것에서 유래됨.
지리 너머로 불리움.   
※지리(질어)+네미(너머)
ㆍ참샘들- 적금리에 있는 들. 찬샘이 있음. 진흙이 많아서 보습성이 뛰어난 것에 유래.
ㆍ파박골- 적금리에 있는 골짜기로서 옛날에 팥, 콩을 경작했다 전해짐.
 
제6절   굴암리(窟岩里)
 
굴암리(窟岩里) (구전자:김영태54세)- 본래 강원도 원주군 강천면의 지역으로서, 굴 바위가 있으므로 굴 바위, 굴암이라 했는데, 고종 32년(1895) 여주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적금리 일부를 병합하여 굴암리라 함.
ㆍ굴바위- 굴암리에 있는 바위. 굴이 있음.
ㆍ굴암늪- 바위늪.   ※굴(屈)+앞(前)+늪
ㆍ내나들- 음지말 동쪽의 강변을 이름.    ※내(川)+나들(浦)
ㆍ뒤시울- 법수개 너머 골짜기.
ㆍ바위늪- 굴암늪. 굴바위 앞에 있는 긴 늪.
ㆍ바위늪 구비-바위늪 북쪽에 있는 모롱이. 굽이가 졌음.
ㆍ법수개- 정창터 밑 골짜기  
※법수(法首=귀퉁이)+개(邊 가장자리)
ㆍ섬마루- 강에 연접한 부분
ㆍ앞개울- 양, 음지말 사이로 흐르는 개울
ㆍ양지말-굴바위 양지쪽에 있는 마을.
ㆍ여울부리-재라울 너머 골짜기로 음지말 동쪽임.  
※여울(灘)+부리(未 끝)
ㆍ음지말- 굴바위 음지쪽에 있는 마을.
ㆍ재라울- 뒤시울 너머 골짜기.
ㆍ정장터-진창대라고도 불리우고 전쟁터라는 말에서 와전되었다고 함.
ㆍ퇴골-내나들 위.
ㆍ흔바위 나루- 굴바위 서쪽에 있는 남한강의 나루터. 점동면 흔암리 흰바위로 건너감.
 
제7절 강천리(康川里)
 
ㆍ강천리(康川里) (구전자:윤차술74세)- 간천, 강천(리), 본래 강원도 원주군 강천면의 지역으로서 개울물이 땅속으로 스며 흘러서 늘 건천이 되므로 간천 또는 강천이라 하였는데, 고종32년(1895)에 여주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새말, 다리골, 풀무골을 병합하여 강천리라 함.
면소재로서 주재소가 있었다. 권, 최씨 양반이 살았으며 기와집이 여러채 있었다.
ㆍ감사바위-강천리에 있는바위, 조선때 강원감사가 원주감영으로 갈때 이 바위에서 쉬었다 함.
※감사(瞰射) 내려다보고 활이나 총포를 쏘는 것.
ㆍ강천-강천리, 간천, 하마지골로 불리우는 곳임.
 .강천나루- 강천에 있는 나루로서 옛날 서울 나들이 길이 되는 섬강다리 부근으로 상동앞이 됨.
ㆍ고래들-강천리 영동고속도로 아래에 있는 들.
ㆍ교동- 원래는 다리가 없었는데 영동고속도로를 확장하면서 많은 다리가 생겼다함.
다리골, 다락골이라고도 불리움.
※다리가 있어서 다릿골이 아나고 산두메란 뜻이다.
달(達=산줄기) + 이(里) + 골
ㆍ창남이 고개-세말에서 둔터골로 넘어가는 고개. 남이장군이 진을 치고 연습했다 함.
 ※남이는 넘어의 변음이다.
 . 닷둔리 고개- 교동에서 풀우골로 넘어오는 고개.
※산이 돌아 닷돈이가 되는 경우 (닷(達,山)+ 돈(廻)+이(里))
ㆍ둔터골-다리골 북쪽에 있는 마을. 남이장군이 둔을 쳤다함.
※둔, 둠, 두(屯, 杜, 斗)자들은 거의 같은 말. 이 마을에서는 쉴터(쉼터)의 뜻일 것 같다.
ㆍ본말-평촌(마을) 강천의 본마을 앞에 벌판(늪)이 있음.
ㆍ사지골(절골)-풀무골 서북쪽에 있는 골짜기. 임진왜란때 왜병이 많이 죽었다 함
(일제시대때 현석광이 있었다)
※사(寺)+재(峴 또는 山) 절산이라는 뜻.
상동-중동 동쪽에 있는 마을.
새말-상평촌(마을) 평촌 위쪽에 새로된 마을.
ㆍ쉬는터-강천리에서 부평리로 넘어가는 고개마루. 현재 삼광 레미콘에서 보이는고개임.
ㆍ염소골-강천리에 있는 골짜기. 염소를 놓아 먹였다함.
ㆍ자산(紫山)-풀무골 동쪽에 있는산.
남이장군이 말을 타고 무예를 닦았다 함. 섬강과 남한강의 합류지점 서북쪽에 위치한 산으로 섬강쪽으로는 암벽이다.  
※자+재, 성(城)
ㆍ절골-강천리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음.
ㆍ젓골-상동 북쪽에 있는 골짜기. 예전에 전씨와 원씨가 마을 다툼을 하다가 원씨가 졌다함.
※재(山 또는 峙)의 변음.
산골이거나 고개골이란 뜻이 아닌가?
ㆍ중간말-새말과 본말 중간에 있는 마을.
ㆍ중동-본말과 상동중간에 있는 마을.
ㆍ탑상골-절골 밑에 있는 골짜기. 탑이 있었음.
ㆍ풀무골-강천 동쪽에 있는 마을. 풀뭇간(대장간)이 있었다함.
ㆍ활석광산-강천 동북쪽에 있는 활석광산.
ㆍ우렁바우-물이 우렁차게 돌러간다고 붙여진 이름.
※소리의 반사를 뜻함.
 
제8절  부평리(釜坪里)
 
ㆍ부평리(釜坪里) (구전자 : 지임득 55세) - 본래 강원도 원주군 강천면의 지역인데 고종 32년(1895) 여주군에 편입되고,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운무실, 와평동, 부도, 모도막골, 당골, 성주골을 병합하여 부도와 와평의 이름을 따서 부평리라 함.
ㆍ가마밭골   ※가마=큰(大) 도는 중앙역할 등의 뜻.
가마솟(큰솟) 가마섬(큰섬) 가마산(큰산) 가마골(큰골 또는 가운데 골짜기)
ㆍ가마섬 - 부도. 모도막골 동남쪽에 있는 마을. 지형이 가마솥처럼 생겼음.
※ 모두 합쳐 막힌 골.
ㆍ구새뻘 - ※ 구(臼)+새(間)+벌(벌판)          
ㆍ능골(능돌) - 부평리에 있는 골짜기 훈련마당이라고도 함. 작은 능골, 큰 능골이 있었음.
※ 능(陵=능선)
ㆍ당골 - 왜뻘 서쪽에 있는 마을. 당집이 있었다 함.
ㆍ대추나무골
ㆍ말림골     
※ 땔나무나 채초(採草)를 근지시켰던 골
ㆍ모도막골 - 모도막동. 모여서 살기에 알맞은 곳이라는 뜻. 왜뻘 남쪽에 있는 마을.
※ 모두 막힌 골
ㆍ범골
ㆍ부처절골 - 삿갓봉 밑에 있는 골짜기. 절이 있었음.
ㆍ삿갓봉 - 입봉. 성주골 북쪽에 있는 산. 삿갓처럼 생겼음.
ㆍ상진당골 - 상지당이라고도 불리우며 가마성가는 길에서 왼쪽 비석길 따라 마을 앞 끝 집을 지나 나타나는 골짜기를 이름.
ㆍ성주동 - 성주골, 승지골이라고도 부르며 운무실 북쪽에 있는 마을로 성주봉 밑이됨.
ㆍ사기다물 - 옛날 사기공장이 있었던 곳이라 함.
ㆍ왜뿔 - 왜뿔, 와평동. 가말골 남족에 있는 마을. 기왓가마가 있었음.
  ※ 왜(獨외)+뿔(부리, 끝)
ㆍ운무실 - 운무동. 부평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구름과 안개가 많이 낌.
ㆍ웃말
ㆍ웃점
ㆍ입봉 - 삿갓봉
ㆍ진당골 - 중살인골에서 왼쪽은 마당골이고 오른쪽이 진당골인데 질러서 가는 골짜 기라는 뜻임.  ※긴등 골짜기
ㆍ정거르니  ※ 정(前앞)+거르(긴長)+리(里)
ㆍ참샘둥지 - 샘이 아주 좋다는 것에서 유래.   ※ 참샘(찬샘)+둥지(등지)
ㆍ청용부리 - 청룡(산뿌리가 솟은 곳)+부리(끝부분)
ㆍ행치   당고개    
 
제9절  도전리(道全里)
 
ㆍ도전리(道全里) (구전자 : 김한수) - 본래 강원도 원주군 강천면의 지역인데 고종 32년(1895) 여주군에 편입되고,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탑전리, 전고론리, 원심리, 도성리를 병합하여 도촌과 전거리의 이름을 따서 도전리라 함.
ㆍ가죽나무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가죽나무가 있었음.
※ 가재(邊)+나무골(柴草場)→가죽나무골.
시초장(柴草場) = 땔나무나 풀을 베는 장소로 지정된 장소.
ㆍ감투바위 - 도전리에 있는 바위. 감투처럼 생긴 바위.
ㆍ감투바위골 - 감투바위가 있는 골짜기.
ㆍ고창틀 - 상보들 서쪽에 있는 들.
※ 고(高 높은곳)+잣(小 작은)+들(坪) 고잣들→고창들 (언덕위에 있는 작은 들)
ㆍ관모산 - 원심이 동북족에 있는 산. ※관모산(冠帽山)
ㆍ귀밑들 - 도전리에 있는 들.
※ 귀(귀퉁이)+밑(下)+들 (산귀퉁이 아랫들)
ㆍ덤바골 - 덤바위가 있는 골짜기 ※덤(덧붙이)
ㆍ덤바위 - 도전리에 있는 바위. 더미로 됨.
ㆍ뒷대 - 뒷대, 됫대, 도전리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 강천면의 맨끝마을. 일명 도성동이라 함. 옛지관이 고개가 되다(힘들다)하여 됫대라 하였음.
ㆍ망구네미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 망구가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그곳을 넘는(넘어가는) 골이란 말인듯 하다.
ㆍ매봉산 - 도전리에 있는 산. ※매(뫼山)+봉(峰)+산(山)
ㆍ무두치고개 - 도전리에 있는 고개 - 운촌리로 가는 고개
※ 「두」나 「둔」은 편편하고 크다는 뜻이다. 평지가 한곳도 없는 고개란 뜻으로 무둔치(無屯峙 또는 毋屯峙)라고도 한다.
ㆍ병풍바위 - 도전리에 있는 바위. 병풍처럼 생겼음.
ㆍ병풍바위골 - 병풍바위가 있는 골짜기.
ㆍ보금산 고개 - 전거론 남서쪽 보금산에 있는 고개.(운촌리쪽 고개)
ㆍ분투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분토골이라고도 함. 분토가 남.
ㆍ산수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전주이씨의 산소가 있음.
ㆍ새말 - 원심이 옆에 새로된 마을.
ㆍ새텃말 - 전거론 남서쪽에 새로된 마을.
 .새텃말 폭포-새터말 뒤에 있는 폭포로 높이 5m 놀이터 됨
ㆍ샛담 - 원심이와 전거론 새에 있는 마을.
ㆍ서낭뎅이 - 도전리에 있는 들. 서낭당이 있었음.
ㆍ서러지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강원도, 경기도 경계가 있는 골짜기.
ㆍ아랫말 - 전거론의 아래쪽 마을.
ㆍ업드네미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ㆍ옻나무 다불- 아랫말 남쪽에 있는 마을. 옻나무가 있었음.
  (옻나무가 심어진 다물)
※ 다불-다물-무더기라는 뜻.  (돌무더기=돌다물, 돌다불)
ㆍ옻물탕 - 도전리에 있는 약물터. 피부병에 신효했다 함.
ㆍ도전리(道全里) (구전자 : 김한수) - 본래 강원도 원주군 강천면의 지역인데 고종 32년(1895) 여주군에 편입되고, 1914년에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탑전리, 전고론리, 원심리, 도성리를 병합하여 도촌과 전거리의 이름을 따서 도전리라 함.
ㆍ가죽나무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가죽나무가 있었음.
※ 가재(邊)+나무골(柴草場)→가죽나무골.
시초장(柴草場) = 땔나무나 풀을 베는 장소로 지정된 장소.
ㆍ감투바위 - 도전리에 있는 바위. 감투처럼 생긴 바위.
ㆍ감투바위골 - 감투바위가 있는 골짜기.
ㆍ고창틀 - 상보들 서쪽에 있는 들.
※ 고(高 높은곳)+잣(小 작은)+들(坪) 고잣들→고창들 (언덕위에 있는 작은 들)
ㆍ관모산 - 원심이 동북족에 있는 산. ※관모산(冠帽山)
ㆍ귀밑들 - 도전리에 있는 들.
※ 귀(귀퉁이)+밑(下)+들 (산귀퉁이 아랫들)
ㆍ덤바골 - 덤바위가 있는 골짜기 ※덤(덧붙이)
ㆍ덤바위 - 도전리에 있는 바위. 더미로 됨.
ㆍ뒷대 - 뒷대, 됫대, 도전리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 강천면의 맨끝마을. 일명 도성동이라 함. 옛지관이 고개가 되다(힘들다)하여 됫대라 하였음.
ㆍ망구네미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 망구가 어딘지는 모르겠으나 그곳을 넘는(넘어가는) 골이란 말인듯 하다.
ㆍ매봉산 - 도전리에 있는 산. ※매(뫼山)+봉(峰)+산(山)
ㆍ무두치고개 - 도전리에 있는 고개 - 운촌리로 가는 고개
※ 「두」나 「둔」은 편편하고 크다는 뜻이다. 평지가 한곳도 없는 고개란 뜻으로 무둔치(無屯峙 또는 毋屯峙)라고도 한다.
ㆍ병풍바위 - 도전리에 있는 바위. 병풍처럼 생겼음.
ㆍ병풍바위골 - 병풍바위가 있는 골짜기.
ㆍ보금산 고개 - 전거론 남서쪽 보금산에 있는 고개.(운촌리쪽 고개)
ㆍ분투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분토골이라고도 함. 분토가 남.
ㆍ산수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전주이씨의 산소가 있음.
ㆍ새말 - 원심이 옆에 새로된 마을.
ㆍ새텃말 - 전거론 남서쪽에 새로된 마을.
 .새텃말 폭포-새터말 뒤에 있는 폭포로 높이 5m 놀이터 됨
ㆍ샛담 - 원심이와 전거론 새에 있는 마을.
ㆍ서낭뎅이 - 도전리에 있는 들. 서낭당이 있었음.
ㆍ서러지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강원도, 경기도 경계가 있는 골짜기.
ㆍ아랫말 - 전거론의 아래쪽 마을.
ㆍ업드네미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ㆍ옻나무 다불- 아랫말 남쪽에 있는 마을. 옻나무가 있었음.
  (옻나무가 심어진 다물)
※ 다불-다물-무더기라는 뜻.  (돌무더기=돌다물, 돌다불)
ㆍ옻물탕 - 도전리에 있는 약물터. 피부병에 신효했다 함.
ㆍ운무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옛 난리때 움을 묻고 피난하였다 함.
※ 윗(上)+물(水)+골(谷)
ㆍ원수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원(院)+숲(藪)+골  원(院)이 있던 숲속
ㆍ원심동 - 원래의 마음대로 살아야 한다는 뜻도 있고, 옛날 도성에서 강원도로 넘어가는 지름길로서 길손이 쉬어갈 수 있는 시설이 있었는데 이를 원막이라 하였는데에서 유래한다는 얘기로 전함. 일명 원심이라고 함
ㆍ원심이 공동묘지 - 원심이에 있는 공동묘지
ㆍ장자터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장자(부자)가 살았다 함.
※ 장자골은 어느 곳이나 흔하게 있는 지명이며 하나같이 부자가 살던 터라고 구전한다. 그러나 장자골 장자터골의 어원은 잔(小)+자(山)+터(垈)+골(谷) 낮거나 작은 산능선안에 있는 골짜기란 뜻이다.
ㆍ전거원동 - 전거론, 전거른 이라고 부르며 원심이 남쪽에 있는 마을.
ㆍ줄바위 - 치마바위 아래에 있는 줄로 서 있는 바위.
해발 541m의 당산에 있는 치마바위아래 줄로 서 있는 바위.
ㆍ중벌 - 중평동, 뒷대 남동쪽에 있는 마을. 
※ 중(中 가운데)+벌(坪)
ㆍ중보들 - 도전리에 있는 들. 
※ 상보들, 중보들, 하보들
ㆍ지누구뎅이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진흙구덩이가 있었음.
ㆍ지세모롱이 - 도전리에 있는 모룽이.  ※ 지(址)+새(間)+모롱이(隅)
ㆍ큰고개 - 도전리에 있는 큰고개
ㆍ탑선이 - 탑전이, 탑전동. 원심이 동쪽에 있는 마을. 탑이 서 있었음.
ㆍ토동 - 툇골, 토역동 이라고도 하며 전거른이 동남쪽의 마을을 가리킴.
※ 터(垈)→퇴→토
ㆍ토역동     툇골
ㆍ운무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옛 난리때 움을 묻고 피난하였다 함.
※ 윗(上)+물(水)+골(谷)
ㆍ원수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원(院)+숲(藪)+골  원(院)이 있던 숲
ㆍ원심동 - 원래의 마음대로 살아야 한다는 뜻도 있고, 옛날 도성에서 강원도로 넘어가는 지름길로서 길손이 쉬어갈 수 있는 시설이 있었는데 이를 원막이라 하였는데에서 유래한다는 얘기로 전함. 일명 원심이라고 함. 
ㆍ원심이 공동묘지 - 원심이에 있는 공동묘지
ㆍ장자터골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장자(부자)가 살았다 함.
※ 장자골은 어느 곳이나 흔하게 있는 지명이며 하나같이 부자가 살던 터라고 구전한다. 그러나 장자골 장자터골의 어원은 잔(小)+자(山)+터(垈)+골(谷) 낮거나 작은 산능선안에 있는 골짜기란 뜻이다.
ㆍ전거원동 - 전거론, 전거른 이라고 부르며 원심이 남쪽에 있는 마을.
ㆍ줄바위 - 치마바위 아래에 있는 줄로 서 있는 바위.
해발 541m의 당산에 있는 치마바위아래 줄로 서 있는 바위.
ㆍ중벌 - 중평동, 뒷대 남동쪽에 있는 마을.  ※ 중(中 가운데)+벌(坪)
ㆍ중보들 - 도전리에 있는 들.  ※ 상보들, 중보들, 하보들
ㆍ지누구뎅이 - 도전리에 있는 골짜기. 진흙구덩이가 있었음.
ㆍ지세모롱이 - 도전리에 있는 모룽이.  ※ 지(址)+새(間)+모롱이(隅)
ㆍ큰고개 - 도전리에 있는 큰고개
ㆍ탑선이 - 탑전이, 탑전동. 원심이 동쪽에 있는 마을. 탑이 서 있었음.
ㆍ토동 - 툇골, 토역

동 이라고도 하며 전거른이 동남쪽의 마을을 가리킴.
※ 터(垈)→퇴→토
ㆍ토역동     툇골



북내면의 지명 유래

여주군 1읍 9면의 하나로 면을 중심으로 북에서 남으로 흐르는 금당천을 사이에 두고 서쪽과 동쪽이 각기 행정구역이 달라 서쪽은 백제 온조왕 13년(서기전 6년)에 백제의 도읍을 위례성에서 남한산성으로 옮길무렵에는 백제땅에 속하다가 신라가 백제를 멸하고 나서 지금의 광주지역을 한산주로 고칠 때에는 신라의 영역에 들어 있었다.그후 고려 태조 24년(941)에는 광주땅에 속하였다가 고려 현종 9년에 원주로 편입되었다.
1257년 현재의 여주를 영의(永義)라고 칭할 때에는 금당천 동쪽은 원주지역이고 서쪽은 영의지역이 되었다.
그러나 1699년 강희 기묘(己卯)지도를 보면 북면의 경계는 동쪽은 금당천이요.
근당천을 건너면 원주이고 북쪽은 상동면 (현양동) 서쪽은 등신면의 구현동과 재가동의 경계요. 남쪽은 한수(漢水)가 경계로 되어있다.
당시 리명은 배(盃)동(현 학동강변) 오천(烏川)동(보뜰말, 대수리). 오금동(五今), 고달(高達)동(상교, 주암, 외룡, 내룡), 천(川)동(소지게) 구남(九南)동(당우, 신남)등 6개리에 398호 1822명이 살았다고 하였다.
한편 금당천 동쪽은 원주 서면으로 지금의 강천면 지역과 북내면의 하천 동쪽 전부를 합한 지명으로 1800년초에 서면은 분할하여 강천면을 떼어내고 나머지는 지내면으로 했다가 다시 내면으로 고쳐 그대로 원주에 속했고, 당시 리는 8개동이었다.
그러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시 북면과 원주내면을 병합하여 북내면이 되었고, 리는 19개리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ㆍ金堂川(金塘川)
이 河川의 原流는 양평군 지제면 茂旺里 모라치고개 南谷에서 시작되어 日新里를 경유하여 관내에 북내면 주암리 서원리 사이와 석우리 내룡리, 외룡리, 당우리, 신남리, 천송리 등을 경유하여 신륵사 동쪽 한강에 합류하는 하천이다.
이 하천 변에 당우리 들과 청수들을 이룩하여 북내면에 농업요지를 이룬다.



제1절 당우리(堂隅里)


ㆍ당우리- 본래 여주군 북면의 지역으로서 서낭당이 있는 모퉁이가 되므로 당모루, 당머루, 또는 당우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모냉이를 병합하여 당우리라 한다.
북내면의 중심지가 되어 면사무소, 경찰지서, 우체국,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 시장 등이 있다.
자연부락으로는 당모루, 모냉이 등이 있다.
ㆍ금당교 (구전자:군지참조)- 금당교 (북내교):다리
당모루 동쪽 금당천에 있는 다리
※당우리와 신접리의 연결다리
ㆍ당머루- 당머루(당우리. 당모루, 당우): 마을 , 당우리 참조
※① 당(산 의뜻)+모루(모퉁이), ② 당(堂)+모루(모퉁이)
ㆍ당모루- 당모루(당우리, 당머루, 당우):마을 ※당머루 참조
ㆍ당우- 당우(당우리, 당머루, 당모루):마을 ※당우리 참조
ㆍ당우시장- 당우시장:장, 당우리에 있는 시장. 1958년부터 섬(현재는 없어졌음)
ㆍ모냉이- 모냉이 (모양): 마을 당모루 북쪽에 있는 마을
※모랭이= 우(隅)의뜻이 = 모냉이로 변음
ㆍ모양-모양(모냉이);마을 ※모냉이 참조
ㆍ모냉이들 (구전자:최철국 73세)- 모냉이 남쪽에 있는 들
ㆍ북내교 (구전자:군지참조) ※금당교 참조
ㆍ새보들 (구전자:최철국 73세)- 당우리 남쪽에 있는 들 새로된 보가 있음.
※왜정때 수리조합보를 조성하고 사용하였던 들
ㆍ새재 (구전자:군지참조)- 당우리에 있는 고개 ※새(間)+재(峴)
ㆍ새재(구전자:군지참조)- 새재밑에 있는 골짜기
ㆍ새터말(구전자:군지참조)- 당우리에 새로 생긴 마을
ㆍ생겨골 (구전자:최철국 73세)- 당우리에 있는 골짜기
ㆍ소나무숲 (구전자:군지참조)- 당우리에 있는 소나무 숲
※새보인(人)들 금당천 뚝방에 형성된 송림(松林)
ㆍ속게 (구전자:최철국 73세)- 당우리 북쪽에 있는 들
※옛날에 어떤 주물을 만들던 장(壯)이 있었던 곳이라하여 붙여진 이름 용(鎔)




제2절 신남리(新南里)


ㆍ신남리 (구전자:김노식 38세)- 본래 여주군 북면 구남동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양동과 구남동을 병합하여 신남리라 한다.
자연부락으로는 구남, 생이, 주막거리 등이 있다.
ㆍ가산 모롱이 (구전자:군지 참조)- 신남리 오학리와 통하는 지방도에 접해 있는 마을
※가(邊)+산(山)+모롱이(隅)
ㆍ구남 (구전자:김노식 38세)- 구한말 김씨 씨족들이 대성으로 살았는데 그중 김교익의 자손이 남자로만 아홉 명을 낳아서 길렀기 때문에 구남으로 불리었다.
※구남이라고 한자로 쓰면서 구남(九南), 구남(九男), 구남(丘南), 등 여러 가지로 쓰고 있는데 옛 문헌이나 족보들의 묘지를 쓸 때 구남(丘南)으로 쓴 곳이 많고 김씨(金氏)들 족보에는 구남(九男)이라고 쓰고 있다.
옛 읍지들은 구남(丘男)이 많다. 당우리에서 볼 때는 산 너머 남쪽의 마을이다.
※구(丘언덕)+넘어(옛말은 남이 南 ) (언덕 너머 마을)
ㆍ구남동 ※구남 참조
ㆍ도장골 들(구전자:김재석 70세)- 생이 앞에 있는 들
※도장(導掌)을 옛날 관제(官制)에 세곡이너 도저를 받아 나라에 바치는 일을 맡은 관리를 칭하는 말이다.
ㆍ등잔박골- 생이 서쪽에 있는 골짜기
※등잔(긴등)+박(外)+골(谷)(긴등 바깥 골짜기)
ㆍ버삽고개- 버삽고개(버시고개, 보습고개) ※버섯고개 참조
ㆍ버시고개 ※보습고개 참조
ㆍ보습고개- 생이 서쪽에서 오학리 구억말로 넘어가는 고개
※고개길이 쟁기의 모습과 같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
ㆍ분토골(粉土谷) (구전자:군지참조)- 신남리에 있는 골짜기로 분토가 났었다.
ㆍ산신당 (구전자:김재석 70세)- 3년마다 11월 초순에 마을의 안녕을 위하여 제사를 지냄 고려시대부터 전해 내려옴.
※ 생이 남쪽 산기슭에 있음.
ㆍ생이(신양동)- 옛날에 큰 홍수가 질 때 마을 앞 금당천이 범람하였다고 하는데, 이때 이 마을에도 큰 시내가 생긴 이후로 새우가 많이 모여서 「생이」로 불리움. (김노식 남 38세)
옛날에 어느 선비가 좀 먼 동네를 갔다 오는데 날이 샜다하여 생이라 함.(김재덕 70세)
※새(新)+양(陽)+이(里)
(새로 생긴 양지마을의 뜻)
ㆍ신양동 ※생이 참조
ㆍ샘골- 천곡 참조
ㆍ생겨골- 구남 동쪽에 있는 골짜기
ㆍ생골- 신남리에 있는 골짜기. 샘이 있음.
ㆍ생이골- 생골 참조
ㆍ생이고개- 생이 골에 있는 고개
ㆍ생이 앞들- 생이 남쪽에 있는 들
ㆍ신남교 (구전자:군지참조)- 신남리에 있는 다리
ㆍ안산(案山) (구전자:김재석 70세)- 구남 앞에 있는 산
ㆍ안산들 (구전자:김재석 70세)- 구남앞에 있는 들
ㆍ웃구남 (구전자:군지참조)- 구남의 윗마을
ㆍ주막거리 (구전자:김노식외 2명 38세)- 옛부터 이 마을에는 「주막」이 있어 오가는 길손의 편의을 보아 주었다고 하는데 언제부터인지 「주막거리」로 불리우게 되었다.
ㆍ주막거리들 (구전자:김재석 70세)- 주막거리 앞에 있는 들
ㆍ천곡- 구남에서 오금리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골짜기
ㆍ호랑이굴- 봉미산에서 산신당으로 내려오는 길목에 있는 굴로서 산신당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자 호랑이굴 입구에 호랑이가 돼지머리를 갖다 놓아 마을 사람들이 그 이후로 산신당의 제사를 지냄.




제3절 외룡리(外龍里)


ㆍ외룡리 (구전자:이상헌 65세)- 본래 여주군 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머리, 연마루, 내촌동, 담터를 병합하여 외룡리라 하였다.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주위의 산봉우리가 용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용모양 바깥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외룡리라 하였다 한다. 자연부락으로는 안(바깥) 용머리, 담터, 연마루가 있다.
ㆍ개너구리- 연마루 동쪽에 있는 마을
ㆍ금계동- 용머리 남쪽에 있는 마을
※담(땀)+터(址)=따로 떨어져 있는 마을
ㆍ내촌동- 안말, 안용머리, 용두머리 안쪽의 마을을 안용머리 바깥쪽을 바깥용머리 라함
또는 안말 바깥말 이라 함.
ㆍ담터 ※ 금계동 참조
ㆍ댕알고개- 외룡리에서 대신면 하림리로 넘어가는 고개
ㆍ댕알산- 외룡리 서북방에 위치함.
ㆍ도리들 (구전자:군지참조)- 외룡리에 있는 들 ※도(廻)+내(川)=도래= 도리
ㆍ돌터개울- 외룡리에 있는 내
※돌(溝渠)+터(垈)+개울 (小川) (터앞을 흐르는 작은 도랑개울)
ㆍ등지골- 등지고개에서 남쪽으로 흐르는 골짜기
※등(背뒤)+지(峙치)+골(谷)
ㆍ바깥용머리 (구전자:이상헌 65세)- 용머리 마을 중에 용두뿌리 바깥마을
ㆍ버덩땀 (구전자:군지참조)- 댕알산 밑 버덩에 있는 마을 ※버덩은 거친들(坪)의 뜻임.
ㆍ비렁뱅이 고개- 외룡리에 있는 고개
※비렁뱅이. 배랑뱅이는 걸인을 낮춰 부르는 말로 이 지방의 속어(俗語)임.
ㆍ선바위- 외룡리에 서 있는 바위
ㆍ아랫마을- 안말 아래쪽의 마을
ㆍ안땀- 담터 부락중에 안쪽의 마을
ㆍ안말 (구전자:이상헌 65세)- 안용머리, 내촌동 ※내촌동 참조
ㆍ용두뿌리 (구전자:이상헌65세) ※안용머리와 바깥용머리 사이로 흘러내린 산줄기 끝부분
ㆍ연마루- 연현동, 외룡리, 서쪽 끝부분 산중에 들어있는 마을
※연(硯)은 본래 필구중에 벼루를 뜻하는데 벼루는 벼루돌이 아닌 벼랑의 옛말이 벼루다.
이것을 (벼랑) 한자로 고쳐쓰면서 발음이 같은 벼루돌(硯)자를 붙혀 지명을 만들었다.
연(벼랑)+마루(꼭대기, 산마루)=연마루
(즉 벼랑(된비탈)위에 있는 마을의 뜻임)
ㆍ연마루고개- 연마루에서 대신면 하림리 미륵으로 넘어가는 고개
ㆍ연현동 ※연마루 참조
ㆍ외룡교(구전자:군지참조)- 여주, 양동간 지방도로중 외룡리 담터에 있는 작은 다리
ㆍ용두동 ※용머리 참조
ㆍ용머리- 외룡리에서 으뜸되는 마을
※마을 중심을 관통한 산줄기의 끝부분을 용의 머리란 뜻(龍頭)에서 그 주위에 집단 형성된 부락을 통칭하여 부르는 명칭이며 용머리부락중에 용두뿌리 안쪽(北)을 안용머리 바깥(南)쪽을 바깥용머리라고 부름.
ㆍ웃땀- 안말(안용머리) 마을 중에 위쪽의 마을
ㆍ원골- 외룡리에 있는 골짜기
ㆍ장자봉 (구전자:이상헌 65세)-외룡리에 있는 산
※장자란(臣當, 부자와 같은 뜻으로 속어(俗語)며 이산이 부자집 노적(제물)을 쌓은 형국이라하여 붙여진 이름.)
ㆍ중룡교 (구전자:군지참조)- 용머리 앞에 있는 다리
ㆍ중보들 - 외룡리에 있는 들로 보(洑)가 있음
ㆍ황새바위- 외룡리에 있는 바위로 황새처럼 생겼음.



제4절 내룡리(內龍里)


ㆍ내룡리 (구전자:신동억 50세)- 본래 여주군 북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용산동 , 벌말, 산양말을 병합하여 내룡리라 하였다.
내룡리의 유래는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주위의 산봉우리가 용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용모양 안쪽에 위치하였다는데 있다.
자연부락으로는 용산말, 벌말 등이 있다.
ㆍ구석말 (구전자:이상헌 65세)- 내룡리 끝에 있는 마을로 산의 경지가 가파른 곳에 위치함.
ㆍ굿배미- 구석말 남쪽에 있는 마을
※구(句)+웃(上)+배미(畓)=구웃배미=굿배미(옛 윗배미논)
ㆍ너르석 바위(구전자:군지참조)- 내룡리에 있는 바위
※너르석이란 편편하고 넓은 바위란 뜻임.
ㆍ도룡골 (구전자:이상헌 65세)- 상교리 들어가는 길목에 있는 들
※도룡리란 산줄기가 그 근원 도산을 향하여 다시 도라 향한 것을 말한(廻龍)으로 희룡 안쪽의 들이란 뜻.
ㆍ독사고개-독사들 위에 있는 고개로 용혈을 끊어 놓음.
ㆍ독사들- 평촌 서쪽에 위치한 들
ㆍ뒷뫼(구전자:군지 참조)- 용산말 뒤에 있는 산 ※뫼는 산을 말함
ㆍ등지고개- 내룡리 외룡리 상교리 경계에 위치함.
※등(背뒤)+치(峙)+고개=등치고개=등지고개=뒷고개라는 뜻으로 이것은 외룡리 쪽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ㆍ벌말 ※평촌 참조 벌(坪버덩)+말(마을)=벌말=버덩말 또는 들말
ㆍ산양말 ※양지말 참조 산(山)+양(陽地)+마을
ㆍ살구골(구전자:이상헌 65세)- 독사고개 서쪽에 있는 산골짜기로 살구나무가 있었다 함.
※살은 살피라고 하며 경계를 뜻하는 것이고, 구는 구역의 뜻으로 경계지점의 뜻으로도 쓰임.
ㆍ상자골- 내룡리에 있는 골짜기 ※상좌(上座)의 변천
.서낭댕이 고개(구전자: 군지 참조)-내룡리에 있는 고개로 서낭당이 있었음.
※촌락을 출입하는 경계 언덕이나 산모퉁이에 있는 것으로 행주산성 싸움에 유래하여 유사시에 돌팔매에 적당한 작은 돌을 오고 갈때마다 한개씩 던져 축석한 곳으로 훗날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송골 - 내룡리에 있는 골짜기 ※속골 또는 솔(松) 골
ㆍ쌍내들 (구전자:이상헌 65세)- 용산말 앞에 있는 들로 곡창지대임.
금당천과 고달천 사이에 있기 때문에 쌍내들이라 함.(雙川)
ㆍ아랫말 (구전자:군지 참조)- 용산말 아래쪽에 있는 마을
ㆍ양지말 (구전자:이상헌 65세)- 산양말, 굿배미 남쪽에 있는 마을
ㆍ용산- 용산동, 용산말 ※용산말 참조
ㆍ용산동 ※용산말 참조
ㆍ용산말 (구전자:신동역 50세, 이상헌 65세)
1. 용의 형상을 하고 있는 봉우리의 양지쪽에 위치하였다하여 「용산말」로 불림.
2. 용산 밑에 있기 때문에 「용산말」이라 불림
※용(湧)은 산줄기를 말함 또는 주산(主山)을 싸고 있는 산을 지칭하는 경우가 더 많음.
ㆍ윗상자골 (구전자:이상헌 65세)- 상자골 위에 있는 골짜기
ㆍ중간말 (구전자:군지참조)- 벌말 남쪽에 있는 마을로 벌말과 용산중간이 됨.
※ 간촌(間村) 중촌(中村) 새땀 새말과 같은 뜻
ㆍ평촌 (구전자:신동억 50세)- 넓은 들 복판에 있다하여 평촌 또는 벌말 이라 하였다.
(평촌(坪村))






제5절 상교리(上橋里)


ㆍ상교리 (구전자:안남희41세)-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상고동과 교향동을 병합하여 상교리라 하였다. 자연부락으로는 다리목, 점말, 고달, 증골등이 있다.
ㆍ가마골 (구전자:이문재외3명 53세)- 점말에서 국사령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골짜기
옛날에 보쌈을 하여 대신면으로 가는 도중에 쉬었던 곳임.
※현재는 민가가 없다하나 감골(큰 마을)이 가마골로 변한 곳이 많다.
(숯가마, 옹기가마 등 있었던 곳은 대개 골자를 넣지 않고 터자를 넣게 된다. 그러나 이곳은 점말 주위에 있기 때문에 가마터가 있던 곳일지도 모른다.)
ㆍ고달 (구전자:안남희 42세) 절터골, 상고동(上高洞)
마을에 고달사라는 절이 있어 고달이라고 불리었으나 지금은 절터만 남아 있고 당시의 웅장한 사찰면모를 알려주는 사지(寺地)의 주초석, 석불좌대, 부도탑,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ㆍ고달사터 (구전자:군지참조)-절터 골에 있는 고달사의 터.
신라 재35대 경덕왕23년(764에 창건하였는데 고려 제4대 광종26년 (975)에 새운 보물 제6호 원종대사 혜진탑비 귀부, 보물 제7호 원종대사 혜진탑, 보물 제8호 석불대좌와 국보 제4호 부도가 있음.
ㆍ고달사비 대석(구전자:군지참조) ※고달사비 받침 참조
ㆍ고달사비받침- 고달사 터에 있는 비의받침
어느 비의 받침인지 알 수 없으나 그 거북 받침은 아주 정교한데 위쪽으로 한곳이 깨진 것이 몹시 아까움.
ㆍ고암 ※ 북바위 참조
ㆍ교향동- 다리목 , 교향동 ※다리목 참조
ㆍ교향동 ※다리목 참조
ㆍ국사령 고개(國師嶺)- 절터골에서 지제면 곡수리로 넘어가는 높은 고개
※①왕사(王師), 국사(國師)가 너머다닌 고개 하여 불러지는 명칭
②사리는 고불고불한 형태의 지명이 많은데 사리 앞에 다른 자가 더 붙어 있을 때는 싸리로 변하는 경우가 많다.
국은 굽이나 곱이 고비로 변음된 경우가 있어 굽사리 곱싸리 등이 대개 산이 협하여 오르내리는 길이 심하게
꼬불꼬불한 길인 경우들이다.
간혹 절터가 있던 근처의 고개면 한자로 쓰면서 국사(國師)라고 썼다.
ㆍ국사령 ※국사리 고개 참조
상교리 서북 양평과 경계에 위치한 높은 산
ㆍ기차바위 (구전자:이문재외 3명 53세)- 산의 형태가 기차모양으로 생겨서 기차바위로 불리움.
ㆍ느느실(구전자:군지참조)- 상교리에 있는 골짜기
※늘어난 (확장한)의 뜻이 많아 농지를 개간하여 면적이 늘었거나 마을은 민가가 늘었거나한 지명에 많이 붙여지는 곳으로 너더리, 느르실, 누르미, 느르재 등의 지명과 공통한다.
※산이나 골짜기나 늘어졌거나 넓어진 경우도 있다.
ㆍ다리목(橋項洞, 橋香洞) (구전자:안남희 41세, 송종석외3인 60세)
마을 입구에 위치한 곳으로 인간의 다리목에 해당된다해서 다리목이라 하였다.
(안남희남41세)
소소한 돌다리가 여러 개 있어서 다리목 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송정석 외3인 남 60세)
※달(達=山)+이(里)+목(項 목쟁이)
산능선 자락이 늘어진 끝에서 골짜기로 들어가는 목쟁이의 뜻일 경우도 있다.
ㆍ둥지봉(구전자:이문재외 3인 53세)- 상교리에 있는 산
※둔지(屯地)가 변음 하여 둥지로 됨. (높은 산에 언덕진 부분)
ㆍ매봉- 상교리에 있는 산
※매화나 매(鷹)와 관계없이 뫼사 매(山+봉(峰)=산봉우리란 뜻
ㆍ병방모- 내룡리와 상교리의 경계상에 있음. 상교리를 방위하는 곳
ㆍ부두골- 상교리에 있는 골짜기 ※비탈골
ㆍ북바위 (구전자:이문재 53세)- 고달사터 동쪽에 있는 바위로 이곳에서 북을 올렸기 때문에 북바위라 함.
※마을에서는 북(鼓)처럼 생겨서 북바위라고 하는데 이산의 바위들은 그 색이 검지 않고 붉다.
붉(赤)이 붓, 북으로 변한 경우가 많다, 붉은 바위란 뜻 같다.
ㆍ북바위산 (구전자:군지참조)- 북바위가 있는 산
ㆍ빈대바위- 고달사터 서쪽에 있는 바위
ㆍ뻥치고개 (구전자:군지참조, 이문재 53세)-뺑치산에 있는 고개
옛날에 과부를 보쌈하여 도망가던 고개라서 뺑치고개라 함. (이문재53세)
※뺑은 쑥을 말한다. 쑥대, 뺑대, 뺑(쑥)+치(고개峙)+고개
ㆍ뺑치산 (구전자:군지참조)- 상교리에 있는 산
ㆍ사기골- 고달사터 남쪽에 있는 산골짜기
※사기(寺基), 사기(沙器)등의 뜻으로 많이 쓰임. 더러는 사이(間)의 뜻도 있음.
ㆍ산신당- 장바위 밑에 있는 신당, 고려 제4대 광종때 원종대사가 고달사에 있게되니. 전국의 승려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배웠는데 그 중 한사람이 여주목사에게 「고달사의 여자신도 하나가 세 정승을 낳을 상인데 그 배필이 이미 정해져 있더라」 고 말하니, 목사가 며느리를 삼을 욕심이 생겨서 그 방책을 강구한 끝에 중의 말을 듣고 진잠 바위에서 난 장사 아이를 죽였더니, 그 여자 신도가 달려가 장사의 시체를 안고 함께 죽었는데 원종대사가 이 광경을 보고 한탄하기를 「이 장사아이를 잘 길러서 나라를 위하여 크게 쓰려고 하였더니 이제 허사로다」 하고 수리바위에서 술을 빚고 징바위에서 징을 쳐서 장사아이의 명복을 빌고 난 뒤 여러 승려들에게 「나는 이제 이곳을 떠날 때가 되었으니 고달사에서 해마다 장사아이의 명복을 빌어 달라」 부탁하고 돌아갔는데 그 후부터 절이 어지러워지더니, 화적떼가 닥쳐 모두 약탈해 가서 승려들이 굶어 죽게 되니 한 늙은 스님이 나타나 사기골에 깊이 묻혀 있는 흰 흙을 가르쳐 주어서 잠시 허기를 면했으나 결국은 폐사가 되고, 마을 사람들이 장사터(징바위)밑에 사당을 짓고, 해마다 정성을 드려 제사를 지내며 또는 포수가 사냥할 때에도 꼭 이 신당에 빌어야 한다고 함. 현재는 나무만 있음.
ㆍ상고동-고달, 절터골, 고달참조 ※상고동(上高洞)=웃고달
ㆍ새절재 (구전자:이문재외 3명 53세)- 상교리에 있는 산으로 주춧돌과 탑기단부가 남아있음.
※고달사후에 창건되었던 상원사지(上院寺地) 뒷고개
ㆍ수리바위 (구전자:군지참조)- 점말 동쪽에 있는 바위. 산신당 참조
※수리란 세 종류의 수리 또는 술(酒) 물(水) 수레(車) 등의 한자로 기재되는 곳이 많으나 수리의
본뜻은 높은 꼭대기(정상:정수리)의 뜻이 담겨 있는 곳이 많다.
ㆍ신털이봉- 고달 앞들에 있는 작은 산으로 고달사 승려들이 시주를 마치고 돌아올 때 신에 묻은 흙을 턴 것이라 함.
ㆍ쌀기골 ※사기골 참조
ㆍ영통산 (구전자:이문재외 7인 53세)- 다리목 북쪽에 위치한 산 (靈通寺가 있던 산)
ㆍ원종대사 혜진탑(구전자:군지참조)-고달사 터에 있는 것으로 탑몸에 거북, 용, 구름 연꽃과 사천왕의 상을 새겼는데 보물 제 7호로 지정됨.
ㆍ원종대사 혜진 탑비 기부 및 이수- 고달사터에 있는 원종대사혜진비의 받침, 높이 0.91m, 길이 3.21m, 이수의 높이1.09m, 너비2.33m, 대사의 존칭은 찬유 성은 김씨인데 신라 제 48대 경문왕 9년(869)에 나서 고려 제4대 광종 9년 (958) 8월에 입적하였다.
광종이 몹시 슬퍼하여 원종대사 혜진이란 시호를 내리고 영정을 그리게 하였으며, 광종26년(975) 10월에 이 비를 세우게 하였음.
비문은 한림학사 김정언이 지었는데 1916년에 무너져 비는 경복궁으로 옮기고 받침만 남아 있어서 보물 제 6호로 지정됨.
ㆍ장사터- 징바위, 진잠바위 ※징바위참조
ㆍ점곡- 점말, 점골, 점곡동, 즘골, 즘촌 즘말 ※점말 참조
ㆍ점곡동- 점말, 점골, 점곡, 즘골, 즘촌, 즘말 ※점말 참조
ㆍ점골- 점말, 점곡, 점곡동. 즘골. 즘촌, 즘말 ※점말 참조
ㆍ점말 (구전자:송종석외3명60세)-점골, 점곡(店谷),점곡동(店谷洞), 즘골, 즘촌, 즘말
마을에 옹기점이 있었기 때문에 불리워 지게 되었다.
ㆍ절터골 (구전자:안남희 42세)- 고달, 상고동, 상교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 ※고달참조
ㆍ즘골- 점말, 점골, 점곡, 점곡동, 즘촌, 즘말 ※점말 참조
ㆍ즘말- 점말, 점골, 점곡, 잠곡동, 즘골, 즘촌 ※점말 참조
ㆍ즘촌- 점말, 점골, 점곡, 점곡동, 즘골, 즘말 ※점말 참조
ㆍ조사당 ※산신당 참조
ㆍ지풍골(구전자:이문재외 3명 53세)- 상교리에서 있는 골짜기 ※깊은 골
ㆍ진잠바위 ※징바위 참조
ㆍ진주암 (구전자:군지참조)- 상교리에 있는 산
ㆍ장바위 (구전자:이문재 53세)-진잠바위, 장사터
도달살터 북쪽에 있는 바위로 이곳에서 징을 쳤기 때문에 징바위라 함.
ㆍ큰고개 (구전자;이문재 53세)점말 북쪽에 있는 고개
ㆍ학발산 (구전자:이문재 53세)-산의 형태가 학의 발모양으로 생겼으며, 주암리의 옥녀봉을 그리워하여 학이 되어 날아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옴.
ㆍ행치고개- 원주에서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가는 가장 쉬운 길은 행치고개를 넘어 국사령으로 가는 것이었다.
따라서 벼슬아치가 행차를 하였으므로 행치고개라 함.
※한(大)+치(峙)=한치(큰고개)=행치
ㆍ행치산 (구전자:군지참조)- 상교리에 있는 산




제6절 주암리(注岩里)


ㆍ주암리 (구전자:이광식 45세)- 죽바위, 죽바우 또는 주암리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개편으로 북면에서 북내면으로 명칭 변경됨.
이 명칭은 옥녀봉 산에 작은 소가 있는데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옥수가 철철 넘쳐 농경지에 이 물을 대었다 하였으며 또한 부락에 죽바위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 두자를 합쳐서 주암리라 한다.
자연부락으로는 옥녀봉과 죽바위가 있다.
※조선시대 리명(里名)은 죽암(竹岩)이었다.
ㆍ여수-금산 (구전자:군지참조)- 금광산, 죽바위 북쪽에 있는 광산
ㆍ옥녀봉- 죽바위 서북쪽에 있는 마을
※옥녀봉 산 아래 동편(東便) 금당천변에 있음.
ㆍ옥녀봉- 이 산 정상 가까이에 직경 4m정도의 소(沼)가 있는데 이소에 선녀가 밤이면 목욕을 하러 온다하여 옥녀봉이라 한다는 전설이 있다.
바위틈에서 흘러나오는 옥수(玉水)가 철철 넘쳐 농경지에 물을 대었던 아름다운 소였으나 일제 때 금광을 개발하면서 없어졌다 한다.
북내에서 양동으로 가는 대로변 좌측에 우뚝 솟아 있어 한눈에 바라보이는 바위산으로 전체적인 산형은 삼각형에 가깝다.
전에는 이 산에서 많은 금을 채굴하였으나 지금은 다른 광물을 채굴하고 있다.
옥녀봉을 뒷산으로 하여 마을이 있어 옥녀봉으로 불리우고 있다.
ㆍ주암시장- 주암리에 있는 시장. (1970년대에 없어졌음)
ㆍ죽바위 ※죽바위참조
ㆍ죽바위 (구전자:군지참조)- 주암리에 있는 바위. 죽당처럼 되었음.
ㆍ죽바위 (구전자:이광식외 1명 45세)- 예부터 이 바위 때문에 주민들은 죽만 먹고 살았다고 전해오며 마을 이름도 바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제7절 서원리(西院里)


ㆍ서원리 (구전자:최병옥 53세)- 본래 지평현 상동지역인데 1895년 여주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원곡과 서화를 병합하여 서원리라 함
자연부락으로는 원곡과 서화가 있다.
그래서 자연부락의 서화의 서자와 원곡의 원자를 합쳐서 서원리라 한다.
ㆍ까치바위 (구전자:곽건영외1명 70세)- 바위형상이 까치처럼 보여 그 명칭이 붙여졌으며 까치바위를 기점으로 여주 양평의 행정구역이 구분됨.
ㆍ말무덤- 삼국시대부터 6ㆍ25까지 전쟁시에 죽은 말의 시체가 나왔던 곳이나 지금은 논으로 되었음.
ㆍ삼바위골-여주, 원주, 양평을 의미하는 3개의바위가 있는데 옛날에는 위3개 군의 분치(分峙)가됨.
ㆍ서화 (구전자:군지참조)- 서원리에 있는 자연 부락명
ㆍ서화고개- 서화에서 양평군 양동면 단석리 요골로 넘어가는 고개
ㆍ서화현 ※서화 고개 참조
ㆍ서홰 ※서화 참조
ㆍ원곡 (구전자:곽건영의 외 1명 70세)- 원골, 원촌, 원주군 지내면에 편입되었을 당시 원주 원님이 한영에 갔다가 돌아올 때, 이곳에 오면 날이 저물어 간이로 막을 짓고 머물고 갔기 때문에 불려진 이름이라 한다.
※옛날 제도로 원(院)은 나라의 공무로 출장중인 사람이 날이 저물면 유숙하고 가는 여관의 역할을 하다가 조선후기에는 일반인의 유숙도 가능했다.
이 원(院)이 있던 곳의 지명에 원(院)자(字)를 많이 썼고, 이 마을이 1895년 이전에 지평현 상동면(지금 양동면)에 속해 있었다.
양동자체에서 볼 때 서쪽에 있는 원(院)터 마을이란 뜻이고, 서홰란 서쪽에 있는 홰라는 뜻인데 홰는 쉰다(息宿)의 옛말로 근래에도 닭장안에 닭이 쉬거나 잠자도록 설치한 것을 닭의 홰라고 불리운다.
ㆍ원골- 원곡, 원촌, ※원곡 참조
ㆍ원골막- 원주 원님이 쉬었다 갔던 간이로 지은 집으로 현재는 없음.
ㆍ원촌- 원곡, 원골 ※원곡 참조
ㆍ원터 ※원곡 참조, 원(院) 터(基):원곡(원골 참조)


제8절 석우리(石隅里)


ㆍ석우리 (구전자:한명기외1명 53세)- 본래 강원도 원주군 지내면의 지역인데 1895년 여주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석장동, 입석동, 장우동을 병합하여 입석과 장우의 이름을 따서 석우리라 하였다.또한 옛부터 돌이 많은 곳이어서 돌을 피하기 위하여 돌아서 가기 때문에 석우리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자연부락명으로는 거지허탕골, 담모랭이, 선돌, 돌담이등이 있다.
ㆍ거지허탕골- 지형이 이상하여 입구에서 보면 그 안쪽이 굉장히 넓어 보이고 큰마을이 있을 것으로 보이지만 막상 들어가 보면 인가가 없어 동냥을 나갔던 거지들이 허탕을 치고 나오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ㆍ고클바위 (구전자:군지참조)-고클바위가 있는 주변지역
고클모양으로 된 석우리에 있는 바위
※고클=방안을 밝히기 위하여 기름으로 등불을 켤 수 없는 서민층에서 방구석에 소나무 관솔에 불을 다려 올려 놓을 수 있게 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연기나 끄름을 밖으로 배출하도록 연통식으로 장치한 것이다
ㆍ곰실(구전자:군지참조)- 석우리에 있는 들
※곰이란 산중에 사는 짐승류 곰(熊)의 뜻도 있지만 곰은 크다(大)의 뜻이 많다.
곰실(큰 논고래) 곰재(큰 고개) 곰내(큰 개울)
ㆍ곰실고개- 곰실위에 있는 고개
ㆍ구지절- 석우리에 있는 산
ㆍ느락골- 석우리에 있는 긴 골짜기
※너븐, 너른(廣)과 느락은 같은 뜻이 많다.
느랏(락)골=넓은 골 너븐바위(넓고 큰 바위)
너븐여울= 넓은 여울(廣灘)
느락골이면 대개 그 부락에서 넓은 골짜기에 많이 붙여지는 이름이다.
ㆍ담모랭이 (구전자:한명석외 1명53세)-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지형이 담처럼 생겼기 때문에 불리워지게 되었다.
※선돌과 관계가 깊다. 선돌이 신석기시대 경계표지라면 선돌주위에 돌담이 있기 마련이고 그 돌담 모퉁이에 해당된 마을이 담모랭이 라고 붙혀진 경우가 많다.
ㆍ돌담들 (구전자:군지 참조)- 돌담이 마을 앞에 있는 들
ㆍ돌담이(구전자:한명석외 1명 53세)- 옛부터 돌이 많아서 이 돌을 농경지 둑에 쌓았기 때문에 돌담 이라고 부른다.
※세운돌(선돌: 선들)과 관계된 지명이다.
선돌 주위에 돌담이 있기 마련이다.
ㆍ두일 (구전자:군지참조) ※거지허탕골 참조
두일(杜一) 하나로 막힌 골이란 뜻으로 원이름 거지허탕골을 한자로 기록한 것임.
ㆍ뒤일-두일 앞에 있는 골짜기
.뒷골-담모랭이 뒤에 있는 골짜기
ㆍ드랭이-석우리에 있는 산
※높은 봉우리일 경우에 두령(頭領)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다.
ㆍ바깥모롱이- 담모랭이 바깥쪽에 있는 마을
ㆍ박석고개 (구전자:원용무 72세)- 박석고개 위에 길을 만들었는데 길을 만들면 동네가 좋지 않다고 하여 길에 깔았던 돌을 느티나무 밑에 묻어 놓았기 때문에 박석고개라 한다.
※돌을 묻어 박석이라는 명칭은 거의 없고 박석(薄石)이란 넓고 얇게 뜬 돌이란 뜻이며 이 경우 외에 마을과 마을사이에 있거나 산과 산 사이에 있을 경우도 적지 않다.
받 (山)+새(間)+고개(또는 마을) 이 같은 경우 새(間)가 석으로 변음된 곳이 많다.
박석고개나 박석마을이란 이름은 너무도 많다.
ㆍ방축고개 (구전자:군지참조)-방축골 위에 있는 고개 ※방축(防築)
ㆍ방축골- 석우리에 있는 골짜기
ㆍ석장동 ※돌담이 참조
ㆍ선돌 (구전자:원용무외 1명72세)- 석우리에 있는 바위
※선도의 유래는
1.선녀가 빨래를 하고 하늘로 올라가다가 빨래방망이와 빨래바탕돌을 떨어뜨렸는데 방망이는 지금의 선돌이 되고 바탕돌은 선돌옆의 큰 바위가 되었다.
2.마귀할머니가 석우리를 지나가다가 지팡이를 땅에 꼽았는데 그것이 후에 선돌이라 불리게 되었다.
※신석기 시대 유물로 대개는 어떤 구역의 경계 표시로 훗날 신앙의 대상이된 경우도 많다.
ㆍ선돌 (구전자:한명기외1명 53세)- 입석, 입석동
옛날에 세워진 선돌이 있기 때문에 불려지게 되었다.
ㆍ선바위 (구전자:군지참조)- 석우리에 있는 바위
ㆍ선바위- 선바위가 있는 골짜기
ㆍ아랫말- 돌담이 아래쪽에 있는 마을
ㆍ안 담모롱이- 담모랭이 안쪽에 있는 마을
ㆍ왜미들- 석우리에 있는 들
ㆍ왜미방죽- 왜미들에 있는 못
※왜, 외(참외, 오이)+미(山)
형태가 참외나 외처럼 생긴 산자락에 있는 들, 마을 등에 붙여지는데 왜, 외 등은 모두 오이(苡)의 방언들이다.
ㆍ웃말- 돌담이 위쪽에 있는 마을
ㆍ입석 ※선돌 참조
ㆍ입석- 선돌, 입석동 ※선돌 참조
ㆍ입석동- 입석, 선돌. ※선돌 참조
ㆍ잣자리공동묘지- 담모랭이에 있는 공동묘지
※잣(小.底.柏)+저리(峴)=낮은+고개 또는 잣고 개
ㆍ장우동 ※담모랭이 참조
ㆍ중봉(中峰 또는重峰)- 석우리에 있는 산으로 중턱에 논 한섬지기가 있음.
ㆍ큰골- 석우리에 있는 큰 골짜기
ㆍ토일들- 석우리에 있는 들



제9절 덕산리(德山里)


ㆍ덕산리(德山里)- 원래는 강원도 원주목 지내면 장산촌에 속한 부락이었다.
1895년 행정구역 변천때 원주 지내면과 여주 북면을 합하여 북내면으로 될 때 북내면 장산 촌에 속했다가 1914년 리명(里名)의 재조정 당시 덕산리(德山里)로 되었다.
동쪽은 중암리 서쪽은 금당천 북쪽은 석우리 남쪽은 장암리와 경계가 되었고. 큰 마을은 넉들(골말, 안말, 동산말의 통칭)도내미, 갖고개, 버덩말 등이 있다.
ㆍ갬발- 잣고개마을 동북편 흑두들기 위의 산기슭 공동묘지 남쪽구역에 산이 느러진 자락에 서향판 전부를 말한다.
ㆍ사당터-넉들에서 긴미 가래배미 보들로 넘어가는 언덕 음달이다.
사당이 있었다하여 붙혀진 이름이다.
ㆍ안평지- 탱골과 검성골의 정상에서 합쳐진 곳인데 -산정산 부분이지만 평지가 넓어 논지와 농가가 있어 아늑한 평지가 있다하여 안평지(安坪地)라 한다. 현재는 골프장이 되었다.
ㆍ찬우물 백이- 탱골 정상 남쪽에 안평지라는 평지가 있는데 그곳에 우물이 있다.
물이 차다고 해서 찬우물백 이라 부른다.
현재는 골프장 역내로 들어갔다.
ㆍ새터말-넉들과 도내미 사이를 말한다. 두 마을 사이에 있어 새(間)터라 부른다.
ㆍ후등고개- 넉들 마을 뒤고개란 뜻이다.
ㆍ동내재- 넉들 서남쪽에서 장암리와 모냉이를 통하는 낮은 언덕고개다.
마을 앞의 재(고개)이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물받이- 탱골 안막 우측 음달인데 안평지와 쇠머리 산의 물이 수로가 없이 흘러 우기라 수기가 많을 때 물의 낙차가 생기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다.
ㆍ곰실-잣고개 마을에서 석우리로 넘어가는 길 좌우 농지가 있는 곳을 말한다.
옛날에 곰이 많이나와 곰실이라고 부른다는 유래를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곰이란 (大)크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큰개울이라는 뜻으로 곰내 큰 부락을 곰말, 큰고개는 곰재, 곰치, 큰나루는 곰나루 등으로 쓰고 있다. 이곳은 큰고개실이란 뜻에서 곰실로 이름이 붙혀진 것이다.
ㆍ망종봉- 덕산리 탱골에서 양동면 단석리 거단리로 넘어가는 고개다.
죽어서 마지막 넘어가는 고개라고 하여 한자로 망종봉(忘終峰)이라고 쓴다.
ㆍ서울 보는 바위- 탱골정상에 있는 바위로 바위위에서 서울을 바라볼 수 있다는 바위인데 그다지 크지는 않고 장암리에서 양동 거단리를 통행하는 산길변에 있다.
높은 위치에 있는 바위이기 때문에 붙혀진 이름이다.
현재는 골프장 역내에 들어갔다.
ㆍ쇠머리산- 검성골과 탱골 사이에 솟아있는 산인데 구전으로 천지 가력할 때 물에 묻히고 쇠머리만큼 남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이것은 새(間)가 쇠로 변음하고 마루(산등마루)가 머리로 변하여 쇠머리 산이라 하는 것이지 원뜻은 새마루산(새간에 있는 산꼭대기 산)의 뜻이다.
ㆍ탱골- 덕산리에 석우리 경계 골짜기다.
큰 바위(물바가지 바위)가 있어 태암(泰岩)골이라 한다.
ㆍ검성골- 한자로 쓰면서 금상곡(琴庠谷)이라고 쓴다.
그러나 원명은 검산(劍山=바위산 암산(岩山)의 뜻)골이다
즉 바위가 많은 골짜기라는 뜻이다.
ㆍ흑두들기- 잣고개 마을에서 동쪽으로 개울건너편에 있는 검성골과 태암골 개울 사이에 있다.
수리시설이 온전하지 못하고 천수답들이다.
논두렁에 가래질을 거의 하지 못하고 두렁에 누수를 막기 위하여 두렁을 두들기는 데서 발원된 이름이다.
ㆍ골말- 넉들부락 동남부에 위치한 마을
ㆍ물방아거리- 남산보들에서 담터로 가는 논들 소로길 옆에 금당천과 인접한 곳에 물레방아를 설치하고 봇물을 이용하여 사용하던 방앗간이 있었다하여 물레방아-물방아거리라고 하였다.
ㆍ남상보
ㆍ버덩말- 남산보들에게 금당천변에 있는 마을이다.
옛부터 여러 가구가 집단해서 살지는 않았다. ※버덩(野)+말(里)
ㆍ도내미-덕산리 북쪽에 위치한 마을이다.
금당천이 외룡리 쪽에서 남쪽으로 흐르면서 곰실 입구의 상에 부딪쳐 냇물이 방향을 서남쪽으로 바꾸면서
을앞을 둘러흐른다. 이 때문에 도내미라 부른다.
※도 (廻돈다)+내(川)+미(山)
ㆍ잣고개- 잣나무가 많아서 잣고개라고 부른다는 유래도 있으나 본뜻은 잦(작은, 자딴)고개라는 뜻인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백현(柏峴)이라고 잘못 기재하고 있다.
이 고개 넘어 10가구 정도가 살고 있다.
넉들에서 잣고개 마을로 넘어가는 작은 고개를 말하는 것이다.
ㆍ넉들- 덕산리 중에 제일 큰 마을로 동산말, 안말, 골말을 합쳐 통칭한다.
원음은 넓(廣)들이다. 마을 앞에 남산보들이라고 부르는 넓은 들이 있어 붙혀진 이름이다.
ㆍ굴앞골- 검성골 양지쪽의 골짜기로 천연 바위굴이 있어 선사유적지였다.
굴앞 골짜기란 뜻에서 붙혀진 이름이다.
지금은 골프장이 되어 훼손되었다.



제10절 장암리(長岩里)


ㆍ장암리- 본래 강원도 원주목 지내면에 속하는 마을로 장산촌(長山村)이었다.
1895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여주의 북면과 원주의 지내면을 합병하여 북내면이라 칭하고 1914년 리명의 제정 당시 장산 촌이라는 장(長)자와 같은 구역안에 좌암촌(佐岩村)의 암(岩)자를 합하여 장암리(障岩里)라고 명명하고 여주군 북내면 19개리 중의 한마을로 되었다.
조선초기 원주 원씨가 세거하기 시작하여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어 총호수의 3분의 1에 달하였었다가 현재는 그 수가 많이 줄었다.
동쪽은 흥왕산을 경계로 중암리에 접하고 남쪽은 신접리, 서쪽은 당우리, 금당천 북쪽은 덕산리와 경계하고 있다.
자연집단 부락으로는 웃말, 아랫말(증터 또는 소계방), 음달말(원래의 음달말은 지금 없어지고 현재 앞말산 밑에 몇집을 칭함) 양지말(현재는 집은 다 없어지고 전답으로 변함), 토골미, 좨미(웃좨미, 넘은 좨미)등이 있다.
ㆍ각장골- 긴미 아랫말 끝에 있는 골짜기로 맨 가장 자리의 골짜기다.
※가장(가장자리 邊)+골(谷)=맨 끝 가장자리의 골짜기
ㆍ삼우터- 한자로 쓰면서 삼우대(三友垈)라고 쓰고 있다.
긴미 마을 앞에 있는 앞말산 남쪽 부분을 칭하는 지명인데 선비가 즐기던 곳이기 때문이다.
※삼우(三友)=시(詩)+술(酒)+거문족(琴)
ㆍ광터들- 은행나무가 있어 은행나무거리하고도 부른다.
옛날에 부자가 광을 짓고 살던 곳이라 은행나무 밑에 금항아리가 묻혔다는 전설이 있으나 이들이 광을(창고)지었던 터기 때문이 아니고 긴미에서는 제일 넓은 들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광(넓은 廣)+터(垈)+들
ㆍ앞밭들- 현재는 집들이 없지만 옛날에 음지말을 이루고 있던 것이 각장골 입구까지인데 그 당시 음지말 앞에 있는 밭(田)들이기 때문이다.
현재는 일부만 논(畓)으로 기답한 것도 있다.
ㆍ토골미- 한자로 쓸 때 토금동(土金洞)이라고 쓰는데 이곳은 금과는 상관없는 곳이고, 그 뒷산을 토골미산이라고 부르기 때문인데 산이름을 토골미라고 부른 것은 터(垈)+골(谷)+미(山)이 본뜻이다.
그것은 옛날 작은 좨미가 바로 이 토골미산 동쪽 골짜기이기 때문에 작은 좨미 부락이 있을 때 지어진 이름으로 텃골은 지은 산이란 뜻이다.
ㆍ사다리- 산의 원줄기는 흥왕산(또는 설왕산)에서 서쪽으로 길게 뻗은 능선에서 다시 남쪽으로 4줄기의 산이 뻗었기 때문에 사다리라고 부른다.
※사(四)+달(산줄기 達)+이(里)
ㆍ매봉- 매와 독수리가 잘 앉아서 붙여진 명칭이나 이것은 유모어에 불과하고 산봉우리란 뜻이다. ※매(뫼 山)+봉
ㆍ수리봉- 설왕산 줄기 중에 우뚝 솟은 봉으로 가창골 윗부분이다.
제일 높은(頂上)의 뜻에서 수리(정수리)봉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ㆍ빈밖들- 마을과 들사이에 빈영산(해발 80m)이 있다.
빈영산이란 몹시 가파른 산을 말하는 것으로 마을에서 볼 때 빈영밖에 있는 들이기 때문에 빈밖들이라고 하여 장암리의 큰 보들 논으로 유일한 들이며 100%가 논이다.
※빈영= 비령(嶺)
ㆍ앞말산- 긴미 부락 남쪽에 위치하여 마을의 청룡 역할을 하고 있는 산이다.
산 능선이 나지막하고 굴곡이 없이 길게 뻗은 산이다.
그래서 마을 앞에 있는 말림(조선시대 땔나무나 목축용 풀을 베지 못하도록 금지(말리는) 하는 곳) 산이란 뜻에서 지어진 이름인데 한자로 표기하면서 전마산(前馬山) 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타는 말의 뜻이 아니고 이두식으로 풀이하면 역시 앞말산이다.
ㆍ음지말- 아랫말 중에 남쪽 앞말산 밑에서부터 각장골 입구까지를 말하는 것인데 원래의 음지말은 다 없어지고 앞말 밑에 몇집만 남아있는 북향 말이다.
ㆍ긴미- 장암리 중에 제일 큰부락이다.
긴미란 산이 길다는 뜻에서 긴(長)+미(山)인데 변음 하여 진미라고도 부른다.
아랫말을 소계방(瀟溪坊)이라고 하여 중터라고도 하고 웃말과 음지 말을 합쳐서 통칭하는 이름이다. 긴산이란 흥왕산을 근원으로 하여 긴등이 여러 줄기 서향으로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ㆍ다래기실- 청룡안 고래와 연결된 북향 논들이다.
논다랭이가 크지 않은 거의 계단식이 된 논들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다랭이실, 다래기실이라 한다.
ㆍ검성골 버덩- 덕산리 검성골(琴床谷) 들어가는 입구에 있는 들을 말한다.
최근에 개간되어 경작지가 됨.
ㆍ호랑이 색은골- 가창골안에 있는 골짜기로 호랑이가 죽어서 썩은 일이 있는 골짜기다.
ㆍ논머리- 가창골 꼭대기 산속에 논이 있었다. 그 주위를 말한다.
ㆍ웃터- 긴미 부락중에서 제일 위쪽이다. 옛날 집터인데 현재는 집이 없다.
ㆍ여우골-긴미 장터골 서쪽 골짜기를 말하는데 여우들의 서식이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다.
ㆍ논틀-긴미 아랫말 서쪽에 있는 논들이다.
논들이 변음하여 노틀이고 그 보(洑)를 논틀보라고 한다.
ㆍ왜갈나무 숲- 아랫말 웃말사이에 소하천이 있는데 하천변에 오리나무와 아카시아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
다.
이 숲에 백노, 왜가리, 황새종류들이 서식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철새들이 매년 오다가 1950년 봄부터 오지 않고 인접 부락 신접리로 옮겼다.
ㆍ곳집거리- 긴미 아랫말과 웃말사이에 작은 개울이 흐르고 있는데 길가에 고집(庫)을 짓고 장례에 사용하는 상여들의 가구를 보관하던 창고가 있던 곳이라하여 곳집거리 또는 고추거리라고 하였다.
ㆍ연당거리- 긴미중 웃말 아랫부위를 칭하는데 마을에 화재때 방화수와 농업용수를 겸하여 사용하도록 하기 위하여 1943년에 연못을 파고 못의 이름을 연당(蓮糖)이라고 하였다.
그 연못 근처를 연당거리 또는 연못거리라고 불렀다.
ㆍ용수물- 바위틈에서 솟아오르는 물로 옛날 지하수를 이용하기 전까지 식수로 사용한 물이다. 물이 차고 물맛이 좋고 수질이 극히 좋다.
땀여(더위에 생기는 피부병)치료와 위산과다 치료에 효험이 좋은 물이다.
용수정(龍水井:聳水井)이라고도 한다.
※1991년도 발굴할 때 화살촉, 돌칼, 토기 등이 다량 출토되었다.
ㆍ돌다리- 좨미고래 서쪽 끝 양쪽산이 안고 있는 사이에 작은 시내가 흐르는데 돌로 징검다리를 놓고 통행하던다리가 있던 곳
ㆍ좨미- 큰좨미 작은좨미를 통합한 칭호
ㆍ좨미고래- 좨미부락 앞고래실 전답고래
ㆍ산다골-좨미부락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평범한 골짜기며 가는 산줄기가 많이 내린 곳이다.
※산(山)+달(達)+골(곡(谷))
달(達)도 산의 뜻이다.
ㆍ차돌봉- 청룡안고래 동남부에 있는 낮은 산봉우리로 차돌(磋石)이 많고 규석광산까지 있던 곳이다.
ㆍ청룡안-긴미 동남쪽에 있는 논고래 오시뫼 청룡안 사다리 용수물까지 연결된 긴 고래실중에 능골 산뿌리 끝부분 안쪽을 청룡안이라고 부르고 그 부위의 논고래를 청룡안 논고래라고 한다.
※어떤 목적물의 좌측을 싸고 있는 산줄기를 청룡이라고 부른다.
ㆍ닥밭재-긴미 뒷능과 광터사이에 느러진 나지막한 언덕고개, 농지화 되기전에 닥나무 밭이었기 때문이다.
ㆍ뒷골- 긴미 북쪽 뒷능 너머 고래 즉 마을 뒷고래를 말하는데 현재 전부가 농지다.
ㆍ뒷능- 흥왕산에서 서향으로 길게 내려온 나지막한 산줄기로 긴미 마을의 백호 역할을 하고 있으며 원호(
豪) 이하 누대의 묘소가 계장되어 있다.
고관의 묘소가 있어 능(陵)이라 부른다고 구전하는 사람도 있으나 왕의 묘가 아니 이상 고관의 묘라고 해서 능(陵)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고 뒷산줄기라는 뜻에서 뒷능(陵)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ㆍ능골-두줄기 산 능선이 남향으로 뻗은 사이에 있는 골짜기로 농지가 있다.
※능(丘陵)+골(谷)
ㆍ가창골-긴미 웃말부락에서 옛날에 나무를 땔 때 시초장(柴草場=땔나무와 풀을 베든 곳)으로 사용해 왔다.
나무꾼의 노래소리가 들리던 골짜기라고 가창골(歌唱谷)이라고 하였다.
ㆍ절골-긴미 윗부락에서 흥왕산으로 올라가는 골짜기, 가창골 남쪽너머 골짜기로 옛날에 절이 있던 골짜기로그 유지만 남아 있다.
최근에 수원사라고 하여 복원하였다가 다시 폐허되었다.
ㆍ절골- 좨미 동쪽 골짜기로 흥왕사로 올라가는 골을 말한다.
ㆍ새나무터-토골미산 동향판 산으로 경사가 완만하다.
옛날 세가들의 사폐지 내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소유 임야가 없어 땔나무와 목축사료용 풀을 벨 곳이 없기 때문에 어떤 구역을 지정하여 시초장(柴草=나무나 풀을 깎을 수 있는 장소)을 정해주는데 새로 지정한 곳이라 하여 새나무터(新柴草場)라고 부르게 되었다.
ㆍ장터골-긴미 앞말산 너머 삼우터 남쪽의 사다리 능선 남쪽에 있으며 옛날 운동경기 중에 장치기를 하던 터다. ㆍ장각수- 장암리 가창골 물과 검성골이 합류되어 다시 덕산리의 태암골 물과 합류하는 지점으로 긴다리물이다.
하천 옆에 옷물(접촉성 피부염에 치료목적으로 사용하는 물)이 있었다.
※장각(長脚긴다리)+물(水)
ㆍ오시매-원음은 오서(鼇鼠)뫼(山)이다. 오서란 날다람쥐과 청서(靑鼠=청살 무라고 함)를 말하는 것으로 현재도 많이 서식하고 있다.
즉 청살무가 많이 서식한다하여 오서 뫼가 오시 매로 변음된 것이다.
(긴미서 좨미로 다니는 낮은 고개)
ㆍ오리나무들 (구전자:이현채 64세)
※동가나무들 참조
ㆍ동가나무들- 오리나무들이라고도 부른다.
전자용으로 동가나무를 기러 교목이었다가 삭은 후에 오리나무를 길러 정자나무로 하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ㆍ신작골- 웃좨미 북쪽 골짜기로 설왕산에서 내려오는 골짜기다.
ㆍ진실- 웃좨미서 동남쪽으로 넘어가면 당우리에서 도전리로 가는 포장도로가 나오는데 그 골짜기를 말하며 현재 전체가 논(畓)고래가 되어 있다.
긴고래실이란 뜻에서 긴실인데 긴(長)이 진(長)으로 발음되어 진실이라고 부른다.
ㆍ덕고래- 설왕산(흥왕산) 남쪽하던 부에 위치하며 좨미서 중산을 넘어 다니는 고개로 좨미쪽은 거의 평지고 중산 쪽은 가파른 편이다.
언턱진 고개라는 뜻에서 턱고개가 덕고개로 변한 것이다.
ㆍ산다골-좨미부락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좨미부락을 들어가려면 초입 좌측골짜기다. 한자로는 산다곡(山多谷)이라 씀.
동쪽에서 서쪽으로 원능선이 늘어진데다가 남쪽으로 여러 가닥 늘어진 곳이다.
산(山)+달(達山)+골=산달골을 산다골로 부르고 있다.
ㆍ구삿골-옛날 샛길 골이라는 뜻이다. ※구(옛 舊)+새(間)길+골(谷)
ㆍ수수고개 ※희수 고개 참조
ㆍ희수고개-좨미 서쪽끝 돌다리에서 여강학교로 넘어가는 고개다. 수수고개라고도 부른다. 수수(붉은 차돌)돌이 박힌 산줄기의 고개이기 때문에 붙혀진 이름이다.
ㆍ전나무고개-전나무(憎木)이 서있던 고개
ㆍ목판골
ㆍ박석고개-뒷능이라고 부르는 마을 북쪽에 있는 산의 윗 뒷능과 아랫 뒷능사에 있다.
수기가 많다고 해서 인위적으로 옛날에 길에다 돌을 많이 박아놓았다.
현재도 박힌돌로 깔려 있다.



제11절 중암리(中岩里)


ㆍ중암리(구전자:김연호 51세)- 본래 강원도 원주군 지내면의 지역인데 고종 32년(1895)여주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동암동, 완장동, 중산동을 병합하여 중산과 동암의 이름을 따서 중암리라 함.
자연부락으로는 동암, 건너말, 녹수골, 가창골, 진원 완장이 돌산 등이 있다.
ㆍ가창골 (구전자:서영주 62세)- 동암 북쪽에 있는 마을
ㆍ겉다니 고개- 여주군 북내면 중암리, 덕산리와 양평군, 양동면 단석리 거단이 부락의 경계 지점에 있는 고개
ㆍ녹수골(구전자:군지 참조)- 중산 북쪽에 있는 마을로 약물이 있었다 함.
ㆍ녹수동 ※녹수골 참조
ㆍ당고개- 중암리에 있는 고개로 서낭당이 있었음.
ㆍ동암- 중산 서쪽에 있는 마을(퉁바위)
ㆍ동암- 중산 서쪽에 있는 바위(퉁바위)
ㆍ방아골- 중암리에 있는 골짜기
ㆍ베틀바위(구전자:서영주62세)- 중암리에 있는 바위로 베틀처럼 생겼음.
ㆍ보들(구전자:군지 참조)-중암리에 있는 들로 보(洑)가 있음.
ㆍ상왕사(霜旺寺)- 흥왕사, 설랭이절 ※설랭이절 참조
ㆍ설랭이절 (雪旺寺)-상왕사.흥왕사.
신라 제 35대 경덕왕 때 고달과 소달형제가 있었는데 모두 불교에 귀의하여 고달은 고달사를 짓고, 소달은 절터를 구하기 위하여 100일 기도를 마치고나니 5월인데, 이곳에 이르니 서리가 내렸으므로 그 자리에 절을 짓고 설랭이절 또는 상왕사라 하였는데 그 뒤에 흥왕사로 고쳤다 한다.
ㆍ수뭉골(구전자:서영주62세)- 중암리에 있는 골짜기
ㆍ완장동 (구전자:군지참조)- 지론 서북쪽에 있는 마을
※산능선이 완만하면서 긴등이 생긴 형태의 마을
ㆍ완쟁이 ※완장동 참조
ㆍ울 바위(구전자:서영주62세)-중암리에 있는 바위로 사람이 말을 하면 산울림 소리를 내는 바위 ※대답바위라고도 함.
ㆍ중산-중암리에서 으뜸 되는 마을
ㆍ중산동 ※중산 참조
ㆍ중암리 은행나무(구전자:군지참조)-중암리 산 175번지에 있는 은행나무 높이 16m, 둘레 4m, 너비 35평, 수령 약 300년
ㆍ지론(구전자:서영주 62세)- 녹수골 북쪽에 있는 마을
※고개 마루턱에 논이 있어 생긴 이름. (지(峙) +논)
ㆍ큰골 (구전자:군지 참조)- 중암리에 있는 큰 골짜기
ㆍ퉁바위 ※동암 참조
ㆍ풀목산 (구전자:서영주62세)- 강천면과 도전리와 북내면의 경계에 있는 산
ㆍ행성바위- 중암리에 있는 바위 ※행성은 상여의 뜻
ㆍ흥왕사(興旺寺)-상왕사, 설랭이절, ※상왕사 참조



제12절 운촌리(雲村里)


ㆍ운촌리(구전자:이종규59세)- 어두운, 어득운, 어둔리, 운촌, 운천
본래 강원도 원주군 지내명의 지역으로서 보금산 서쪽 골짜기가 되어 늘 구름이 끼고 어두우므로, 어두운, 어득운 또는 운촌, 운천이라 하였는데 고종 32년(1895)여주군 북내면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숲말을 병합하여 운촌리라 함.
자연부락으로는 숲말, 양지말, 웃말이 있다.
ㆍ갈월고개(구전자:군지참조)- 갈월 위에 있는 고개
ㆍ갈월들 (구전자:이종규 59세)-운촌리에 있는 들
ㆍ강대울-운촌리에 있는 골짜기
ㆍ건넌들- 어두운 건너쪽에  있는 들
ㆍ구락골- 운촌리에 있는 골짜기로 굴이 있어 구락골 이라 함.
※굴앞골의 변음이다.
ㆍ굴바위 (구전자:군지 참조)- 운촌리의 구락골에 있는 바위
ㆍ도투바위 (구전자:이종규 59세)- 운촌리에 있는 바위
ㆍ도투박골-도투바위가 있는 골짜기
※도투바위골의 변천어
도투는 함경도지방에서는 돼지(豚)의 사투리. 이 고장에서는 처녀가 머리에 드리는 댕기의 종류로 도투락 댕기, 도투락, 도투라고 함.
ㆍ망재- 운촌리에 있는 산
※변란때 망(파수)을 본다는 뜻도 되고 높아서 사방을 바라볼 수 있다는 뜻도 있다.
재=(높은 고개)
ㆍ매봉재(구전자:군지 참조)-운촌리에 있는 산
※지명 중에 산+산+산 즉, 산을 겹쳐서 이름이 지어진 경우가 많은데 뒷날 식자(識者)란 사람들이 한자(漢字)로 지명을 쓰면서 전혀 다른 뜻으로 표기(表記)된 경우가 많다.
본래 「매」는 「말」이 변한 경우가 많고 「말」은 꼭대기, 마루산의 뜻이다.
이것을 매라고 하여 매(梅)또는 응(鷹)등의 한자를 붙였다.
처음에 말이 몰(모리)로 변하고 몰이 뫼로 변하고 뫼(미)가 산(山)으로 음이 변해온 것이다. 결국 매봉산이란 매(山)+봉(峰)+산(山)이다.
ㆍ무두치 고개 (無屯峙)
운촌리에 있는 고개 ※산이 가파르기 때문에 평지가 없어 쉬어갈 곳이 없다는 뜻이다.
ㆍ무두치산- 무두치고개가 있는 산
ㆍ미락골- 운촌리에 있는 골짜기로 미륵이 있음.
ㆍ미력골 ※미락골 참조
ㆍ바랑골- 운촌리에 있는 골짜기
※발도 산(山)의 뜻이다.
발(山)+안(內)+골(谷)
산중(山中)에 안골짜기의 뜻이다.
ㆍ박음산 (구전자:이종규)- 천지가 개벽할 때, 산에 바구니가 걸려 있었기 때문에 불리워지게 되었다.
※꽂힌산(串山)(우뚝한 산이란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은데 이산은 그렇게 유달리 우뚝한 산은 아니다.
ㆍ방목산(구전자:군지 참조)- 운촌리에 있는 산으로 소를 놓아 먹였음.
ㆍ보꼬리들(구전자:이종규59세)= 운촌리에 있는 들로서 복이 있는 들이라 하여 보꼬리라 하였음.
※보거리(洑巨犁)
ㆍ분지개 고개- 운촌리에 있는 고개
※석지(碩地) 분지(分枝)- 분지(分枝) 원줄기에서 갈려진 줄기
ㆍ사기막골- 운촌리에 있는 골짜기로 사기점이 있었음.
※사기는 절터(寺基) 사기점(沙器) 등의 뜻이 있다.
ㆍ상운촌 상촌, 웃말, ※웃말 참조
ㆍ상촌- 상운촌, 웃말. ※웃말 참조
ㆍ서당골 (구전자:군지참조)- 운촌리에 있는 골짜기로 서당이 있었음.
ㆍ수촌-숲말,음지, 음달말, 숲말 참조 ※수촌(藪村)
ㆍ숲말- 수촌, 음지, 음달말
1.어두운 남쪽에 있는 마을로 숲이 많았음.(이종규 59세)
2.이 곳으로 내려오는 골짜기가 제일 깊어서 물이 많았다하여 부락이름이 수말(水)이었던 곳이 현재는 숫말이라 부르고 있다.
(박준식63)
ㆍ승지골(구전자:이종규59세)-운촌리에 있는 골짜기
ㆍ양지말(구전자:군지 참조)-어두운 양지쪽에 있는 마을
ㆍ어둔리- 어두운, 어득운, 운천, 운촌, 운촌리. ※운촌리 참조
ㆍ어두운- 어둔리, 어득운, 운천, 운촌, 운촌리. ※운촌리 참조
ㆍ어득운- 어두운, 어둔리, 운천, 운촌, 운촌리. ※운촌리 참조
ㆍ운천 ※운촌리 참조
ㆍ운촌 ※운촌리 참조
ㆍ음달말 (구전자:이종규59세)- 숲말, 수촌, 음지. ※숲말 참조
ㆍ음지 ※숲말 참조
ㆍ웃말- 상운, 상운촌, 어두운 위쪽의 마을
ㆍ한배미들- 운촌리에 있는 들로 한배미로 됨.
ㆍ간촌-간씨(簡氏)들이 누대 살고 있다 하여 간촌
※마을과 마을사이에 있는 마을로 간촌(簡氏)이라고 하는데 이런 경우 우리말로 새땀, 새말이라 부른다.
위의 마을은 간씨(簡氏)와 관련된 지명이다.



제13절 신접리(新接里)


ㆍ신접리 (구전자:이영환48세)- 본래 강원도 원주군 지내면의 지역인데 고종 32년(1895)여주군에 편입되고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신촌과 접가동을 병합하여 신접리라 하였다.
조선중기에 여흥 민씨가 처음 정착하여 새로이 마을을 형성하였다는 새말(新)과 새말에 인접하여 마을이 생긴 후부터 두 마을을 합하여 신접리로 하였다 한다.
자연부락으로는 새말과 접줄이 있다.
ㆍ가재골(구전자:송조영61세)-새말 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가재가 많았음.
※가재가 많아 가재골이 아니고 가재는 가장자리(邊)의 뜻이 깊다.
가재울이라는 지명은 나무도 많다.
ㆍ가재울(구전자:군지참조) ※가재골 참조
ㆍ개리울들 ※신접리에 있는 들
ㆍ검박뿌리 (구전자:송조영61세)- 들, 바위
ㆍ검은바위(구전자:군지참조)- 신접리에 있는 바위, 색깔이 검음.
ㆍ공실골(구전자:송조영61세)-접줄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
ㆍ공실들- 접줄 북동쪽에 있는 공실골 앞의 들
ㆍ늠모들(구전자:군지참조)- 신접리에 있는 들로 늪이 있었음.
※늠(凜=쌀광름)은 곡식창고(凜廣)
지방관리의 녹봉이나 녹봉으로 주기위한 토지 등을 참고할 필요도 있다.
ㆍ뒷골-접줄뒤에 있는 골짜기
ㆍ뒷밭들- 신접리에 있는 들로 밭이 많음.
ㆍ매봉(구전자:송조영61세)- 신접리에 있는 가장 높은 산
ㆍ밤가시-가재울 모퉁이로 논과 밭이 조금 있음.
ㆍ범바위(구전자:군지참조)-신접리에 있는 바위로 범처럼 생겼음.
ㆍ벗째고개 (구전자:군지참조)-신접리에 있는 고개
※벗, 재(峴, 陵)벋은 고개란 가파르지 않고 완만한 작은 고개일 경우 많이 쓰임.
ㆍ백로 왜가리 서식지-신접리 285번지에 있는 천연기념물 400년쯤 되는 은행나무가 있는 데 해마다 백로, 왜
기 떼가 와서 새끼를 침.
ㆍ새말(구전자:이영환48세)-신촌(新村)
조선중기에 이곳은 인가가 없었던 곳으로 여흥 민씨가 처음으로 정착 새로이 마을을 형성 하였다하여 새말이라 불리고 있다.
새말에는 현재 백로 및 왜가리 서식지가 있는데 당초 이 새는 북내면 장암리에 있었던 것이 1950년 이곳으로 옮겨와 서식하였는데 백로와 왜가리가 서식하고부터는 마을이 번성하고 많은 인재가 배출되었다고 한다.
ㆍ삭은절(구전자:송조영61세)-옛날에 절이 있었는데 빈대가 너무 많아 신도들이 빈대를 잡자고 하였으나 스님들은 살생을 할 수 없다고 방치하다가 빈대소굴이 되어 스님들은 떠나버리고 절은 삭아서 쓸어졌다고 함.
지금도 여강중고등학교 뒷산과 주변산에 기와파편과 사기그릇 파편이 흩어져 있음.
ㆍ신접교(구전자:군지 참조)-신촌 서쪽에 있는 다리
ㆍ신촌 ※새말 참조
ㆍ신촌교 ※신접교 참조
ㆍ앙골(구전자;송조영 61세)-접줄 안쪽에 있는 골짜기
※안골(內谷)의 발음이 와전된 것.
ㆍ자망들(구전자:군지참조)-자망보, 신접리에 있는 들
ㆍ자망보 ※자망들 참조
ㆍ장배미들- 신접리에 있는 들. 긴 배미가 있음. ※긴 논배미
ㆍ접주- 지촌, 접줄 ※접줄 참조
ㆍ접줄(구전자:이영환48세, 엄어도71세)-접주(接主), 지촌
1.전설에 의하면 산중턱에 조그마한 암자가 있어서 그 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보니 인가가 생겼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에 접절 자연부락이 형성되었는데 모양이 접줄처럼 되었다하여 접줄로 불렀다.
일명 이 골짜기를 미륵골이라고도 하는데 현재는 절의 흔적은 없고 바위에 미륵의 흔적만 남아 있다.
한편 일설에는 인근에 「새말」마을이 번창하여 「새말」에 인접하여 생기었다하여 접줄(接) 이라고도 한다.
2.(구전자:엄어도71세)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곳은 산과 산이 겹쳐져 있어 동네가 있는 줄 모르고 군인들이 그냥 지나쳐 피해를 보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같이 산과 산이 겹쳐 있어 접줄이라 하였다.
ㆍ조산(구전자:송조영61세)-신접리에 있는 작은 산
ㆍ조산들-조산이 있는 들
ㆍ지식들-지식보 신접리에 있는 들로서 가뭄시에도 물이 맑고 좋음.
ㆍ지식보 (구전자:군지참조)※지식들 참조
ㆍ지촌-접줄, 접주. ※접줄 참조



제14절 지내리(池內里)


ㆍ지내리(구전자:심근식81세)- 모안, 못안, 못안말, 무안, 지내
본래는 강원도 원주군 지내면으로 있다가 고종 32년(1895)에 여주군으로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북면과 지내면을 통합하여 북내면 지내리라 하였다.
조선시대 세종대왕 능을 여주에 모실 때 지내리 뒷산이 화산이라 이 마을이 화를 당한다하여 그 예방으로 부락복판을 가로 막아 둑을 쌓아 저수지를 만들면 마을에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하여 뚝을 쌓았다고 지내리라 하였다.
그 후 저수지에서 빨래를 할 때 물이 적어 물을 흐르게 하기 위해 빨래 방망이로 흙을 판 원인으로 인하여 홍수때 저수지 뚝이 파여서 이제는 그 흔적만 있는 상태이다.
자연부락으로는 돌바우, 못안말, 양지말, 웃말이 있다.
ㆍ검은돌-흑석골, 검은박골. ※지내리에 있는 들
ㆍ검은박골- 검은들, 흑석골, ※검은들 참조
ㆍ개지박골- 우렁바위 앞에 있는 골짜기
ㆍ귀논들(구전자:군지참조)-지내리에 있는 들로 귀가진 논이 있음.
ㆍ너문버즐(구전자:심근식81세)- 버즐 너머쪽에 있는 골짜기
ㆍ다래실-지내리에 있는 골짜기로 올라가는 곳이 다래처럼 지형이 이루어져 있어 다래실 이라 함.
ㆍ동막골- 여수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
ㆍ돌바우- 땅속이 바위로 되어 있어서 돌바우라 함.
ㆍ돌바우앞(구전자:군지참조)-돌바우 앞에 있는 들
ㆍ들게논- 지내리에 있는 논으로 메말라서 등게가 많이 된다 함.
ㆍ마구할미바위(구전자:심근식81세)- 마귀할미가 놀았다하여 명칭이 지어지게 됨.
ㆍ매기자리(구전자:군지참조)- 지내리에 있는 들
ㆍ맷돌바위- 지내리에 있는 바위로 맷돌처럼 생겼음
ㆍ맷돌바위골(구전자:심근식81세)- 마구할미바위 있는 곳의 골짜기
ㆍ모안-못안, 못안말, 무안, 지내, 지내리. ※지내리 참조
ㆍ모래봉-옛날에 모래만 쌓여 있었기 때문에 모래봉이라 함.
ㆍ못안말-모안,못안, 무안, 지내, 지내리. 방망이로 두드려서 연못이 터져 못안말이라 함.
※지내리 참조
ㆍ못안- 모산, 못안말, 무안, 지내, 지내리 ※지내리 참조
ㆍ못장동-못안말과 석암동의 경계
ㆍ무안 ※지내리 참조
ㆍ박상골(구전자:군지 참조)- 지내리에 있는 골짜기
ㆍ박전골(구전자:심근식81세)- 여수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
ㆍ밧안터(구전자:군지 참조)- 지내리에 있는 골짜기
ㆍ버줄-지내리에 있는 골짜기
ㆍ붓당골(구전자:심근식81세)- 여수 고개 남쪽에 있는 골짜기
ㆍ석암동 ※돌바우 참조
ㆍ새나지골- 지내리에 있는 골짜기
ㆍ새말림(구전자:군지참조)-지내리에 있는 산
ㆍ소터골(구전자:심근식81세)-여수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
ㆍ안버즐(구전자:군지 참조)-버즐의 안쪽 골짜기
ㆍ안청수- 청수들 안쪽의 들
ㆍ양지말- 지내리에 있는 마을로 양지바른 지역에 위치하고 있어 양지말 이라 함.
ㆍ억새-지내리에 있는 골짜기
ㆍ여수 ※여새 참조
ㆍ여새고개-여수고개, 절고개, 여새위에 있는 고개
ㆍ여수고개- 여새고개, 절고개. ※여새고개 참조
ㆍ우렁바위(구전자:심근식81세)-지내리에 있는 바위로 우렁처럼 생겼음.
ㆍ웃말-지내리에 있는 마을로 높은 지대에 있기 때문에 웃말이라 함.
ㆍ자맹이(구전자:군지참조)- 지내리에 있는 들
ㆍ절고개-여새고개, 여수고개, ※여새고개 참조
ㆍ지내-모안, 못안, 못안말, 무안, 지내 ※지내리 참조
ㆍ호장골(구전자:심근식81세)- 여수고개 밑에 있는 골짜기
ㆍ흑석골-검은들, 검은박골. ※검은들 참조



제15절 가정리(稼亭里)


ㆍ가정리(구전자:이성국외1명42세)-본래 강천면 지역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원주군 지내면의 지내동 일부를 병합하여 가정리라 하였다.
「가정」의 유래는 원나라에서 우리나라에 동녀(童女)의 징녀(徵女)를 강요할 때, 원나라 황제에게 금수로서도 하지 못할 일을 하고 있으니 중지하게 하라고 진정하는 청을 올려 그 제도를 중단하게 하였다.
그로 인하여 원나라 재상들로부터 탄압을 받게 되어 조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곡 선생을 이곳으로 귀양 보내게 되어 이곳에 와서 정자를 짓고 살았는데 그의 호를 따서 가정리라고 하였다.
자연부락으로는 가정자, 반여울 등이 있다.
ㆍ가정 ※가정자 참조 ※가정자(稼亭子)
ㆍ가정리 ※가정자 참조
ㆍ가정리 숲(구전자:군지참조)-가정리에 있는 숲
ㆍ가정자(구전자:이성국외 1명 42세)-고려시대 가정 이곡선생이 이 마을에 귀양와서 정자를 짓고 은둔하였기 때문에 정자의 이름을 따서 부르게 된 것임.
ㆍ날타리(구전자:군지 참조)- 가정리 마감산(馬甘山)에 있는 골짜기
ㆍ날타리고개- 날타리 골짜기에 있는 고개
ㆍ농바위- 노린재, 가정리에 있는 바위 ※느린+재=느린 재=노린재
ㆍ노린재 ※농바위 참조
ㆍ느러칭이-가정자에 있는 골짜기
ㆍ느티나무- 둘레 1.5m, 높이6m, 수령 약 500년
ㆍ당게 (구전자:김호승70세)-가정자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 당집이 있었음.
ㆍ대세비- 반여울 남쪽에 있는 골짜기
ㆍ됭이정골(구전자:김호승외 4명 70세)- 가정자와 반여울 사이에 있는 골짜기
ㆍ바탕터- 가정자 남서쪽에 있는 들 ※밧(外)+당(堂)+터(垈)
ㆍ무안고개(구전자:군지 참조)- 반여울에서 지내리 무안으로 넘어가는 고개
ㆍ반곡동 ※반여울 참조
ㆍ반여울(구전자:이성국외 1명42세)- 반곡동(盤谷洞), 반탄(泮灘)
고려때 가정 이곡이 원나라에 처녀 공출을 막은 죄로 이곳에 와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금당 천에 낚시를 드리고 있는데 조정에서 더 멀리 섬으로 귀양 보내라는 전지를 받은 관원이 여주에 와서 한강을 건너려하였으나 홍수 때문에 감히 건너기는커녕 구경하기조차 무서웠으나 이상하게도 가정이 낚시질하는 반쪽은 여울이 되었다.
반쪽은 물이 깊고 반쪽은 물이 얕았다하는 연유로 반여울이란 지명이 붙여지게 되었다.
ㆍ반여울 숲 (구전자:군지참조)-반여울에 있는 숲
ㆍ반탄(泮灘) ※반여울 참조
ㆍ방게-가정리에 있는 골짜기
ㆍ방축골-가정자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
ㆍ버줄저수지-버줄에 있는 못
ㆍ서낭고개- 가정리에 있는 고개. 서낭당이 있음.
ㆍ연당우물(구전자:김호승외4명 70세) 가정자에 있는 우물로 약물이라 할만큼 물이 좋음.
ㆍ채골- 가정자 북동쪽에 있는 골짜기
ㆍ채골고개- 채골뒤에 있는 고개
ㆍ턱골-가정자 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집이 있었음. ※터(基, 址,垈)+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