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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석문동지맥(終)

석문동지맥 제4구간-주월령에서 석문동천/달천합수점까지

by 범여(梵如) 2021. 3. 17.

☞ 산행일시: 2021년 03월 14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날씨에 미세먼지 심함

☞ 산행거리: 도상거리 10.8km(옥녀봉 왕복 1.4km포함) / 7시간 30분소요(시간 의미없음)

☞ 참석인원: 현오, 수헌, 산으로님과 함께

☞ 산행코스: 주월령-무명봉-무명봉-무명봉-287.3m봉-무명봉-고개-무명봉-순흥안공 묘-311.3m봉-무명봉

                 중부내륙고속도로 암거-신원터 삼거리-양고개-안부-무명봉-안부-묘지-무명봉-안부-472.0m봉

                 옥답산-안부-암봉-무명봉-안부-조망바위-안부-옥녀봉 갈림길-435.4m봉-무명봉-무명봉-옥녀봉

                 다시 옥녀봉 갈림길-자사골 고개-151m봉-전주유공 묘-임도-석문동천/달천 합수점

소 재 지: 충북 괴산군 장연면, 감물면 / 충주시 살미면

석문동지맥 개념도...수헌님 블로그 인용

 

우리나라 거의 대다수 산꾼들은 맥산꾼의 전설이자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추앙되는 박성태 선생이

저술한 “新山經表”는 지맥꾼들에게는 바이블과 같은 존재이다.

나 역시 박성태 선생의 신산경표를 기준으로 10년정도 쉼없이 걸어왔는데 신산경표를 걷다가보니

山自分水嶺과 조금 다른 의심스러운 부분도 보이나, 그렇다고 박선생의 역작을 폄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지난주에 끝낸 신산경표상의 신선지맥을 걷다가보니 조금 의심스러운 점이 들었다

그래서 오늘은 대한산경표상의 “석문동지맥”의 걸어보기로 한다

신산경표상의 신선지맥과 대한산경표상의 석문동지맥은 백두대간 능선의 마패봉에서 분기하여 신선봉, 연어봉,

소조령, 탁사등봉, 솔치재, 박달산을 지나 743.7m봉까지는 같이오다가 이곳에서 신선지맥은 성불산을 거쳐

안민천과 달천이 만나는 곳에서 입수를 하고, 석문동지맥은 743.7m봉에서 우측으로 분기하여 느릅재, 주월산을

지나 중부내륙고속도로를 지나고 옥답산을 넘어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 팔봉교 아래로, 마패봉 아래 지릅재에서

분기한 석문동천이 달천에 입수하는 지맥이다.

‘신산경표를 연구해 보면 선생님께서는 산줄기의 유형을 주로 '합수점'형 (가령 각화지맥이나 문수지맥)과

'산줄기'형(가령 고산지맥이나 후망지맥) 등의 두 타입으로 구분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대한산경표에서 설명하는 우리나라 산줄기 분류의 기준으로 그 기본 정신은 산자분수령입니다.

이들 지맥의 요건은 위와 같이 합수점형 〉 울타리형 〉 산줄기형 등 세 가지로 구분되며 이들은 우선 순위가 있습니다.

우선은 합수점형이 지맥으로서의 우선권을 갖게되고 이 합수점형이 거리나 등급, 물줄기의 우위 조건 등을 충족하지 못

할 때 울타리형이 그 다음 지맥의 요건을 구비하였을 경우 지맥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있게 되며 그마저도 부합하지 않

을 때에는 산줄기에서 지맥의 요건을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출처] 석문동지맥 - 대한산경표를 이야기하다.|작성자 현오

오늘은 그 의심을 풀기위해 高手들과 함께 석문동 지맥을 걸어보기로 하고 길을 떠난다

2주전에 743.7m봉에서 주월령까지 걸었기 때문에 오늘은 주월령에서 합수점까지 걷기로 하고

산행 고수인 “대한산경표”의 저자 산으로님,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 “현오와 걷는 지리산”의 저자

현오 권태화님, 그리고 맥 산행에 있어 나의 멘토(mentor)역할을 해주는 수헌님, 그리고 나, 4명이 길을 나선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늘 독립군으로 활동(?)하는 범여로서는 사람이 그리운데 오늘은 천군만마를 얻은 셈이다

4명이 산에서 만나는 것은 2018년 12월 12일 문혜지맥 마지막 답사산행후 거의 2년반에 같이 산행을 한다.

다들 공사다망한 탓일까?

162지맥길을 완주한 산으로님은 요즘 둘레길이나 다니면서 野性을 잃어버려 마치 사람들이 주는

모이나 먹는 서울시청광장 비둘기가 된 느낌이고, 권 작가(현오)님은 집필준비를 하는지 코빼기 보기가

힘이들고, 산에 관한한 食性이 워낙 까탈스런 수헌님, 3년안에 162지맥을 마치려고 발악하는(희망사항이지만)

범여 역시 바쁘기는 마찬가지이다.

오늘 산행거리가 그리 길지않아 서울에서 8시반쯤에 같이만나 들머리에

주월령에 도착하니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愛馬를 세워놓고 산행을 준비한다

배넘이 고개(舟越嶺:10:05)

괴산군 장연면 방곡리와 감물면 구월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주월산 아래에 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으로 주월산은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가

주월산을 보고 ‘배가 넘어 다니 것이다’ 하였는데 주월산 아래에 있다고 해서 주월령이라 한다

주월령에 내리니 이곳이 내륙지역이라 그런지 추위를 많이타는 범여로는서 상당히 추운 느낌이다.

산행을 준비하는데 공장에서 강아지 한마리가 우리한테로 온다

텅빈 공장에서 사는 강아지...

사람이 그리운지 짓지도 않고 꼬리를 흔들면서 아양을 떨어댄다.

情이 많은 권작가님이 베낭에서 산행때 간식거리로 가져온 소시지 3개를 주니

순식간에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운다...저 넘! 오늘 완전히 양넘 지갑줏은 날이네

산행을 시작하다(10:10)

자동차 문을 잠그고 사진 한 컷 찍는 사이에 선두는 벌써 능선으로 올라가고 있다

능선으로 오르는 우측에 전주이씨 가족묘가 보인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서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0:18)

오늘은 지맥길로는 우리 일행이 개척산행이나 다름이 없기에 지명이나 고도가 알 길이 없다

그러기에 산행기에 무명봉 기록이 많을걸 같다

무심코 우측으로 내려가다보니 맥길이 아니다

다시 무명봉으로 되돌아와서 좌측 능선으로 내려간다

맥 산행의 大家이신 竹泉선생의 빛바랜 흔적이 반갑기만하다

등로에서 바라본 괴산군 감물면 구월리(九越里)의 모습

마을 동남쪽으로 박달산이 주월산으로 내려와 북쪽의 항성뫼와 이어져 마을을 감싸고 있고, 서쪽으로

달천을 바라보고 있는 전형적인 작은 농촌 마을로 자연마을로는, 배너미, 곤졸, 아시리, 학월, 구정 등이 있다.

배너미는 과거 대홍수시 배가 마을을 넘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배너미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다.

곤졸(곤지)는 아시리 남쪽에 있는 마을로 곤지소라는 연못이 있어서 이 연못과 관련하여 생긴 이름이다.

아시리(아사리)는 구월리의 중심되는 마을로 옛날에 아름다운 선비들이 많이 살았다고 하여 아사리라 부르다가

후에 아곡이라 불렀으며, 이것이 변음되어 아시리라고 부르며, 학월은 소나무에 학이 많이 날아와 앉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구정은 우물에 거북이 들어왔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구월이라는 명칭은 학월과 구정의 이름을 따서 생겼다.

묘지를 지나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구월리쪽으로 벌목지가 나오고 맞은편에 2주전에 걸었던 주월산이 보인다

완만하게 능선으로 올라간다

조그만 봉우리에 올라선 다음에...

내리막으로 내려간다

다시 오르막길

무명봉(10:28)

등로가 거칠어지기 시작하나 그런대로 걸을만 하다

오늘은 차를 가져왔으니 귀경할 교통편 걱정이 없고, 일행이 있으니 맘이 편하다

후배들도 느림보 범여를 배려해주니 그저 고맙기만 하다

다시 오르막길...날씨가 쌀쌀한 탓인지 땀은 나질 않는다

무명봉(10:42)

등로는 희미하나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간간히 주월단맥으로 규정하고 걸었던 신경수 선생과 죽천선생의 흔적도 보인다

뵌지가 3년 가까이 되었는데 잘 계시겠지?

287.3m봉(10:50)

좌측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 아래로는 중부내륙고속도로 괴산I.C 근처가 보이고 올라야 할 능선과 옥답산(우)과

옥녀봉(희미하게 보이는 뾰족한 봉우리)이 보인다.

좌측으로는 맥길에서 벗어나 있는 여인의 젖꼭지처럼 보이는 옥녀봉의 포스가 쥑인다

산에는 생강나무들이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올해는 봄꽃들이 예년보다 열흘정도 빠른 느낌이다

이렇게 계절은 어김없이 다시 오건만 민초들의 삶은 자꾸만 팍팍하기만 하다.

최근에 발생한 LH사태를 비롯해 참으로 정상적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민초들을

허탈하게 만드는 사건들...자연은 순리적으로 움직이건만 인간들은 개판이다

무명봉(10:53)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우측으로는 벌목지가 나온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사람은 언젠가는 늙어 죽는다.

살아있는 사람의 운명은

이와 같은 것이다

이 세상의 젊은 사람이나

늙은 사람이나 현명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모두 죽음에 굴복한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음에 이른다

그들은 죽음에 이끌려

저승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를 구할 수가 없다

-수타니파타-

고개(10:58)

괴산군 감물면 구월리에서 장연면 광진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앙증맞은 돌탑 2개가 이채롭다.

예전에 民草들이 넘었던 고개이나 지금은 민초들이 다닌 흔적은 전혀없고 잡목의 저항이 엄청 심하다

올괴불 나무들도 꽃을 피우기 시작하고...

생강나무도...

오늘 처음으로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어제 지맥을 한바리하고온 수헌님도 힘이드는 모양이다

무명봉(11:08)

빠져나갈 틈이 안보인다... 천신만고 끝에 잡목지대를 빠져나와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 오르막으로 올라간다

구월리에서 올라오는 임도를 만난다.

묘지가 나오고 맞은편 코앞에 있는 주월산은 흐릿하고 그 뒷쪽의 박달산은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오늘은 중국발 미세먼지가 엄청 심하다...청정지역 괴산의 산에서도 숨쉬기가 힘이든다

순흥안공 묘(11:13)

현사(賢士)라고 기록된 묘비가 이채롭다.

현사란 ‘어질고 현명한 선비’라는 뜻인데 흔히볼 수 있는 묘비는 아니다

순흥안공 묘가 3기가 나란히 있는데 가운데는 제단, 좌,우에는 묘비가 서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두 분 모두 부인을 2명씩이나 두었으니 생전에 女福이 많았던 집안인가 보다.

뒤돌아 본 묘지의 모습

묘지에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311.3m봉(11:15)

먼저 도착한 산으로, 현오님이 나를 기다린다

오늘은 다들 여유가 있어 보인다...산행거리 대비 시간은 별 의미가 없다

이곳은 봉따먹기 大家들의 흔적이 많이 보인다

살짝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내리막길은 낙엽으로 인해 미끄럽다.

잡목의 저항이 심하다.

고도를 확 낮추어 내려가다가 다시 능선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1:25)

다시 내리막길

직진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버리고 좌측 계곡으로 내려간다

계곡 아래로 내려서니 고속도로 수로가 나오고 고속도로 너머 전봇대가 있는 곳이

지맥길이 있는데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맥길을 짤라먹어 우회를 해야한다

수로의 철망을 넘어서 간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수안보쪽의 모습인데 오늘은 미세먼지가 상당히 심하다

괴산I.C쪽으로 향하다가...

급경사의 철계단쪽으로 내려간다

휀스가 또 길을 막는다

고속도로 갓길을 따라서 간다

경찰순찰차 전용 주차장 뒷쪽으로 올라간다

고속도로옆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암거(11:40)

고속도로를 빠져 나오니 좌.우로 과수원이 나오고 고속도로와 나란히 하는 510번 지방도가 나온다.

신원터 삼거리(11:41)

괴산군 장연면 진대리에 속한 신원터 마을로 삼거리 우측으로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원래는 연풍군 면의면 지역인데 일제시대인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진대동(陳垈東) 작약과

수회면(水回面)의 작담동(鵲潭洞), 광석(廣石)을 병합하여 광석과 진대의 지명 한 글자씩 따서

광진리라 부르고 괴산군 장연면으로 편입되었다.

신원터라는 지명은 잿골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나뭇꾼과 행인등이 쉬어가는 마을이라 해서

‘쉬는터’로 불리다가 변음(變音)이 되는 신원터라 불린다

중부내륙고속도로와 나란히 하는 510번 지방도로를 따라서 간다

양고개(11:48)

괴산군 장연면 진대리에서 조곡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510번 지방도가 지나며

바로 옆에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나란히 달리고 있는데 고개 주위에는 과수원이

많이 보이고, 고속도로로 인해 끊어진 맥길...한참을 돌아서 마루금에 복귀한다

빡센 마루금

무명묘지를 지나...

계속되는 빡센 오르막길

고속도로 너머 조금전 내가 내려온 철계단이 보인다

힘들게 능선에 올라선다.

권작가님의 흔적

힘들게 숨한번 내쉬고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1:58)

진달래도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한다

능선에서 내려가니...

먼저 도착한 후배들이 밥상터를 고르고 있다.

점심 만찬(12:00~13:55)

오늘 오리고기, 삼겹살을 거하게 쏘신 산으로님.

2년 반만에 만난 4인방

산에 관해 뭘 그리 할 얘기가 많은지 고기에다 라면, 소주 3병, 막걸리 1병을 마시면서

야단법석을 만들어 맥길에 관해 치열한 난상토론 벌이다보니 식사시간이 2여시간이 흘렀다.

난 오늘 후배들 덕분에 입만 가지고 왔으니 미안할 따름이다...담에 왕따 시킬까 걱정이네

내일은 지난주 검사한 CT와 엑스레이, 체혈을 가지고 병원에 가서 상담을 해야 하기에

먹는걸 최대한 자제했다...뒷마무리는 늘 수헌아우님 담당...흔적을 남기지 않고 깨끗히

주변 정리를 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밥을 먹고 난 다음인지 오르막길은 힘이든다

참! 곱다.

무명봉(14:08)

내리막을 내려선 다음에...

웬 심사가 꼬였을까

안부(14:15)

여기서부터 급경사의 오르막이 시작된다

묘지(14:18)

사초(莎草)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코가 땅에 닿을만큼 급경사의 오르막길...숨이 멎을것만 같은 통증이 몰려온다

흐미 아까운 거

무명봉(14:28)

옥답산인줄 알고 힘들고 올라왔는데, 한참을 더가야 한다

다시 내리막길

안부(14:30)

넓은 공터에 이장한 듯한 묘지의 흔적이 보인다

옥답산으로 향하는 빡센 여정은 계속된다

우측으로 멋진 조망처가 보이나 오늘은 미세먼지로 인해 오리무중이다.

조망처에서 바라본 괴산군 장연면 광진리 진대마을의 모습

진대리동의 중심 마을로 옛날부터 진터가 있어서 붙혀진 지명이다

반갑습니다

급경사 오르막의 끝이 보이기 시작한다

천신만고 끝에 472.0m봉 정상에 도착한다

472.0m봉(14:42)

넘어진 고사목으로 인해 지저분 정상...땅바닥에 작명가(?)이신 세레야님께서

붙혀논듯한 ‘작은 옥탑산 472.0m’이라는 코팅지가 땅바닥에 나딩굴고 있다.

잠시후에 오를 옥답산 전위봉이라 해서 ‘작은 옥탑산’이라 한 모양인데 기왕하시려면

‘탑’이 아닌 ‘답’으로 제대로 하셔야지 이게 뭡니까.

이곳이 옥답산인줄 알았는데 다시 조금 더 가야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14:43)

옥답산으로 향하는 빡센 오르막길

오늘 산행중 가장 힘이들었던 곳이다

힘들게 능선에 올라서니 후배들이 느림보 범여를 기다리고 있다.

옥답산(玉踏山:509.6m:14:52)

괴산군 장연면 조곡리와 광진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국립지리원 지도에는 무명봉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영진지도와 다음 지도에는 옥답산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산의 북동쪽 아래에 있는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에 있는 왕다래기 마을의 지명 유래와도 관련이 있다.

왕다래기는 王踏(왕답)이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조선시대의 철종 임금이 무더위가 극심한 어느 해,

한양 일원의 피서지를 알아보았으나 마땅한 장소가 없었고, 그런 중에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여덟 개의

산봉우리가 물 속에 거꾸로 비치고, 여덟 개의 봉우리 아래 수달이 떼를 지어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거기에서 등장하는 왕답이 옥답으로 변하여 이 산명도 옥답산으로 된 것은 아닌지?(범여의 생각 中에서)

정상에는 3등 삼각점과 선답자들이 걸어논 옥답산 코팅지가 있다 

인증샷

오랫만에 만난 4인방...수헌님 블로그 인용

옥답산 정상 3등 삼각점(△충주310)

옥답산에 먼저 도착한 후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하려는지 산으로님이 이제 내리막길만 남았다고

하는데 저 말이 뻥인줄 난 안다...산이란 날머리에 도착해야 끝이 나니까.

고수들의 흔적

옥답산에서 옥녀봉으로 향한다

내리막길은 생각보다 미끄럽다

곱게 生을 마감했구나

안부(15:05)

다시 오르막으로 오르다

암봉(15:09)

편안한 능선을 걷는데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탓인지 날씨는 꽤나 춥다

권작가님!...오늘 후답자들을 위해서 흔적을 많이 남기네요

무명봉(15:17)

좌측으로 내려가는데 생각보다 등로는 뚜렸하다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지나온 옥답산(좌 뒷쪽)을 뒤돌아 본다

안부로 내려간다

안부(15:20)

다시 오르막길

잘 생겼다

암릉길 좌측으로 우회길이 보이나 원칙대로 가야제...개척 산행인데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잠시라도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말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남긴 이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뒤에 오는 이의 길잡이가 될 것이니까.

힘들게 정상으로 향한다

살짝 우회를 하고...

힘들게 암릉 정상에 올라선다

조망바위(15:28)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지나온 옥답산(뒷쪽)의 모습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당겨본다...아주 가깝지만 모든게 흐릿하기만 하다

잔나비 걸상 버섯인가?...버섯들이 많이 보인다

조망바위를 지나 살짝 좌측으로 꺽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에서 ...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등로 우측에는 자작나무 조림지가 보인다

안부(15:35)

다시 오르막이 시작된다

안부 주위에는 산괭이눈 군락지인지 이제 피기 시작하는 괭이눈이 많이 보인다

 

산괭이눈(꽃말: 순간의 아름다움)

봄을 만끽하는 고양이의 눈을 닮은 괭이눈은 고양이의 눈을 말하는데 열매가 익을 무렵이면

그 모양이 고양이가 햇볕을 받으며 눈을 지그시 감고 있는 모습과 비슷하다.

괭이눈은 잎 모양이 달걀형이고, 줄기는 옆으로 뻗으며 마디에서 뿌리가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줄기 끝에서 여러 개의 작은 가지가 나오는데, 꽃줄기가 곧게 자라 4~5월이 되면 그 끝에 작은 꽃이 노랗게 핀다.

 

그런데 꽃이 워낙 작아서 눈에 잘 안 띄니까 벌과 나비가 제대로 볼 수 없어서 꽃받침과 그 주변의

잎까지 노란색으로 물들인다. 그 부분도 꽃처럼 보이게 해서 벌이나 나비를 유인하기 위한 것이다.

다른 괭이눈 종류들이 대부분 개울이나 습지에서 자라는 반면 산괭이눈은 약간 마른 땅에서 자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중북부 이북의 응달이나 고목 주변에서 잘 자란다.

 

키는 약 10~15㎝ 정도이며, 잎은 길이가 0.5~2㎝, 폭은 0.8~2.5㎝이다. 잎의 모양은 둥근 하트형이며,

잎 주변의 줄기에는 잔털이 나 있다. 달걀형인 괭이눈 잎과 약간 다른 점이다. 꽃은 지름이 약 1~2㎝

내외이고, 연한 녹색인데 가운데는 노란색으로 상단부에서만 꽃이 뭉쳐 달린다.

 

꽃이 필 때 주변의 녹색 잎들은 꽃처럼 노란색으로 변하지만, 종자를 맺으면 다시 녹색으로 돌아온다.

열매는 6~7월경에 달리고 넓은 달걀형이다.

범의 귀과에 속하며 주로 관상용으로 쓰이고 어린순은 식용한다. 우리나라 경기 북부 지방과 일본에 분포한다.

빡센 오르막 능선을 올라간다

옥녀봉 갈림길(15:48)

먼저 도착한 후배산꾼들이 느림보 범여를 기다린다

물 한모금 마신 후 베낭을 벗어놓고 지맥길에서 0.7km정도 떨어진 옥녀봉으로 향한다

맥길에 떨어진 옥녀봉으로 향한다

산에서 보는 옥녀봉은 별로인거 같은데 중부내륙고속도로에 보면 정말 멋진 산이다

435.4m봉(15:51)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고 신선지맥 띠지도 보이는데 이곳은 신선지맥과는 관련이 없는 듯 한데...

435.4m봉 삼각점(△충주424)

다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조그만 봉우리로 올라간다

무명봉(15:54)

아기자기한 암릉을 피하면서 옥녀봉으로 향한다

올괴불나무(꽃말:사랑의 희열)

올괴불나무는 인동과의 낙엽관목으로 괴불나무 무리 중에

가장 일찍 꽃이 핀다는 의미의 ‘올’자가 붙어 '올괴불나무'라 부른다

꽃이 작고 색이 연하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아 지나쳐가는 이들에게는 바로곁에

있어도 눈길을 끌지 못하지만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보면 아주 예쁘다

​꽃은 3월에 연분홍색으로 잎보다 먼저 피고, 묵은 가지 끝에서 길이 2∼3mm의 꽃자루가 나와 2송이씩 달린다.

멋진 소나무가 있는 봉우리를 지난다

봉우리 우측은 녹슨 철조망이 처져있어 조금 조심해야 할 구간이다

무명봉(15:56)

다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코 앞의 옥녀봉이 보인다

옥녀봉은 까칠한 암산(岩山)이다...직진으로는 올라갈 수가 없다

암릉 아래의 좌측으로 향한다

주월산과 박달산쪽을 바라보는데 짙은 미세먼지로 인해 아예 보이지도 않는다

좌측으로 우회하여 옥녀봉으로 올라간다

옥녀봉(玉女峰:467.4m16:10)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와 괴산군 장연면 조곡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풍수지리상의

옥녀산발형(玉女散髮形), 즉 옥녀가 장군에게 투구와 떡을 드릴 준비로 화장을 위해

거울 앞에 앉아 머리를 풀어헤친 형상 대지(大地, 명당)가 있어 붙어진 산의 이름으로 병자호란 때

명나라 장수 이여송은 조선의 명산 혈기(穴氣)를 끊기 위하여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 옥녀봉 명당을 파혈하기 위하여 다섯 번이나 강을 건너 옥녀봉 명당을 찾아 헤매었으나, 결국은

실패하였다고 하며 오늘에도 이곳에 대혈(大穴)이 있음을 짐작하는 풍수지사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고 있고,

옥녀봉 계곡의 피난처로 이름이 있는 요골은 임오군란 때 평민으로 번장한 명성황후가 한 때 피해 머물다가 떠난

일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옥녀봉 동쪽에는 마당재[397m]가 있고 북사면에는 작은 중뫼산[131m]이 있고, 달천을 건너서는 문주리

수주의 팔봉산[483m]이 있고, 북서쪽으로 내려가는 곳에는 큰골 골짜기가 있다.

마당재는 토계리와 괴산군 장연면 조곡리를 연결하는 고개로서 고개마루에는 4,000여 평의 평평한 고원지대를 이루고 있다.

남사면은 조곡리 상리마을에서 서류하는 석문천이 불정면 하문리 풍류산[460m] 앞에서 달천에 유입되고 있고,

북사면에는 달천이 토계리 자사골 북쪽에서 곡류하여 북류하고 있다.

옥녀봉 서쪽의 북류하는 달천 건너서는 이류면 문주리의 성골, 문박, 수주 등의 자연마을이 발달되어 있다.

옥녀봉 북사면의 달천이 동쪽으로 흐르는 곡류천 연변의 토계리에는 자사골, 칼바위, 왕다래기(일명 왕달악기,

또는 왕답기) 등의 자연마을이 발달되어 있으며, 남사면에는 조곡리 중리(일명 공말) 등의 자연마을이 발달되어 있다.

토계리는 원래 충주시 수안보면에 소속되었으나 1989년 살미면으로 편입되었는데 석문천이 달천에 유입되는

합류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토계리의 도랫말마을은 대홍수로 마을이 없어졌다.

옥녀봉 부근의 문주리 수주팔봉은 석문천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부근의 경승지로 유명한데 그 중의 하나인

석문천 연변의 토계리의 칼바위(일명 검암)는 절경으로 이름난 관광지 겸 피서지가 되고 있다.

동쪽의 살미면 문강리에서는 국도 19호선이 남북으로 관통하고 있고, 문강리에서는 서쪽 토계리로 통하는

도로가 개설되어 있으며 옥녀봉의 서남쪽에는 충주IC로 통하는 중부내륙고속국도가 지나고 있다.

열심히 산줄기를 살펴보는 高手님들

조금전에 지나온 옥답산의 모습

서쪽으로 중부내륙고속도로 넘어로 보인는 산은 풍류산인 듯 하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 간다

다시 돌아온 옥녀봉 갈림길(16:35)

옥녀봉까지 왕복 1.4km 거리를 45분을 걸어서 갔다왔다

물 한모금 마시고 다시 베낭을 메고 맥길을 이어간다.

옥녀봉을 다시한번 뒤돌아 본다

계속되는 내리막길

약초재배지인듯한 낡은 그물망을따라서 내려간다

이 분은 신선지맥으로 걸어셨나?

밤나무 단지로 내려선다

밤나무 사이로 수주팔봉과 합수점이 보이기 시작한다

선두에서 리딩을 하시는 산으로님

계속되는 내리막길

고수들과의 함산...하는 얘기라곤 늘 지맥길에 대한 얘기이다.

흔히들 남자들끼리 모여 군대 얘기를 하면 1박2일은 해야한다고 하나

우리들끼리 모여서 맥길에 대한 얘기를 하면 11박 12일 해도 안 끝날 것이다

병풍처럼 둘러처져 있는 수주팔봉 아래로 뾰족하게 솟아있는 칼바위(劍岩)아래로 합수점이 보인다

이곳은 원래의 석문동천 물줄기가 원래보다 많이 바뀌어 버렸는데 그 원인은 예전에 토계리의 도랫말마을이

대홍수로 마을이 없어지는 바람에 물길이 바뀌었다고 한다

1930년대 지형도...석문동천 변경전의 고지도

1970년대 지형도...석문동천 변경후의 지도

마지막 오를 봉우리를 바라보면서...

자사골 고개로 내려간다

자사골 고개(紫沙谷峴:17:07)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 도랫말에서 달천강변에 있는 자사골 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자사골은 달천가에 있는 마을로 모래가 붉은 색이어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다시 벌목을 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능선에서 바라본 자사골 마을의 모습

벌목지 윗쪽에 있는 마지막 봉우리로 올라간다

수헌, 산으로님은 도망가고(?) 어젯밤 늦게 제주도에서 올라온 권작가님과 같이 길을 걷는다.

우리 지맥길의 이론가로서 “현오와 걷는 백두대간”과 “현오와 걷는 지리산”의 저자이기도 하고,

예전엔 “월간 山”에 맥길에 대한 꾸준한 글을 게재한 분이다.

오늘은 나와 걸으면서 산 얘기가 아닌 불교 얘기로 꽃을 피운다.

주제는 고려시대에 정혜결사를 주도한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1158~1210)스님에 대한

얘기와 우리나라 역대 최고의 고승 원효(元曉, 617∼686)성사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 마지막 봉우리로 올라간다

벌목지에서 우측으로 올라간다

벌목지에서 뒤돌아 본 옥녀봉의 모습

능선에서 밤나무 농장 농로로 올라간다

151m봉(17:19)

밤나무밭 정상에 있는 봉우리에 올라서는데 석문동지맥 마지막 봉우리이다

밤나무밭 가운데의 농로를 따라서 합수점으로 향한다

도랫말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건너 숲속으로 내려간다

맥길은 지맥스러움(?)을 나타낸다

곧이어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석문동 지맥 마지막 구간 개척산행의 리딩을 맡고있는 대한산경표의 저자 산으로님

지맥길 독도에 관한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神의 경지에 오른 高手이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가니 ...

토계리 도랫말 뒷쪽에 있는...

묘지가 나온다

전주유공 묘(17:30)

등로에서 바라본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 도랫말 마을의 모습

도랫말은 이 마을만이  남향으로 돌아 앉아 있으며, 물이 마을 앞을 돌아서 흐른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좌측으로 달천(달래강)이 흐르고 그 뒷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처진 수주팔봉이 한 폭의 풍경화를 연상케 한다

수주팔봉은 달천 건너편에 있는 충주시 이류면 문주리의 팔봉 마을에서 바라보면 여덟 개의 산

봉우리가 정상에서 강안까지 도열하듯이 바라보인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주팔봉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조선시대의 철종 임금이 무더위가 극심한 어느 해, 한양 일원의 피서지를 알아보았으나 마땅한 장소가 없었고,

그런 중에 낮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여덟 개의 산봉우리가 물 속에 거꾸로 비치고, 여덟 개의 봉우리 아래 수달이

떼를 지어 다니는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잠에서 깬 왕은 신하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면서 이와 같은 장소가 어디에 있는 지 알아보게 했다.

이에 이조판서가 그와 비슷한 장소가 수주팔봉이라는 곳에 있다고 고했고, 왕은 충주목사에게

수주팔봉의 풍경을 그려 올리게 하였고, 며칠 후, 충주 목사가 올린 그림을 본 왕은 그림 속의 풍경이

꿈에서 본 모습 그대로라고 하면서 수주팔봉으로 행차를 하였다 한다.

 

충주에 도착한 왕은 유주막 나루에서 배를 타고 팔봉으로 들어갔는데, 그 경치가 신비스러울 만큼 수려하여

몇 번이나 감탄을 했다고 한다. 세 봉우리의 가장 북쪽에 있는 두릉산은 두릅나무가 많아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과 능선 상에 권감찰사의 무덤과 또 다른 무덤이 마치 왕릉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이 있다.

임도(17:33)

뚜렸한 임도를 따라서 내려간다

묘지로 내려가는데 이곳의 묘지가 전부 전주유씨 묘지들이다

묘지에서 바라본 팔봉교의 모습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팔각정이 나오고...

좌측으로 가서 달천 제방으로 올라간다

물길이 바뀌어버린 석문동지맥의 마지막 구간

예전의 대홍수로 인해 물길이 바뀌었고 지금은 합수점이 배수장으로 바뀌어 버렸지만

우리는 원칙대로 걷기 위해서 이쪽으로 왔다.

석문동지맥의 합수점인 석문동천(배수갑문)과 달천이 만나는 합수점으로 내려간다

석문동 지맥 마지막 구간 지도...수헌님의 블로그에서 인용

합수점인 배수갑문 아래로 내려간다

물길이 바뀌어 배수갑문으로 변해버린 석문동천의 마지막 모습

석문동천(石門東川)은 백두대간 마패봉 아래에 있는 느릅재 근처인 충주시 수안보면 사문리에서 발원하여

수안보면 수회리를 감돌아 시의 살미면 토계리에서 달천과 합류하는 하천으로 한강수계의 지방하천으로

달천의 제1지류로 하천연장 22.5km, 유로연장은 22.5km, 유역면적 99.14㎢이며, 유역의 형태는 사각형에

가까운 형상을 이루고 있으며 사행하천(蛇行河川:뱀이 기어가는 모양처럼 구불구불 흘러가는 하천)으로

하천변 대부분이 산지이며, 일부 구간에 농경지가 분포되어 있으며 유역의 경사는 대체로 북쪽으로 흐르는

유로를 따라 남에서 북으로 완경사를 이루고 있다.

석문동천/달천 합수점(17:40)

백두대간 문경새재 윗쪽인 마패봉에 출발하여 신선봉, 소조령, 탁사등봉, 솔치재, 박달산을 지나서

743.7m봉에서 신산경표상의 신선지맥과 작별하고 주월산, 옥답산을 지나 새로운 맥길의 한 획을

기록한 석문동지맥의 大尾를 장식하며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는다.

산행거리는 짧았지만 난이도가 지맥길중에서 최상급에 해당할 만큼 힘이 들었다

그와중에서 마지막 구간을 고수들과 함께 걸으면서 많은걸 배운 유익한 산행이었다

인증샷

합수점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팔봉교 다리로 올라간다

합수점에 있는 팔봉교의 모습

팔봉교에서 바라본 수주팔봉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와 팔봉폭포의 모습

팔봉교 너머로 칼바위(검암)와 수주팔봉으로 이어지는 구름다리 아래로 팔봉폭포가 보이는데

지금의 석문동천은 팔봉폭포쪽으로 물길을 인위적으로 돌려 놓았다.

팔봉폭포는 칼바위와 모원정정자 사이에 있는 폭포로, 1963년에 왕다래기 마을 앞의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칼바위 앞에서 물줄기를 차단시키고 칼바위 아래의 암릉을 20m정도 절단을 하여 생긴 폭포라 하며, 폭포의

높이는 그렇게 높지 않으나 칼바위와 모원정정자를 배경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여느 폭포 못지 않게 장관을 이룬다

팔봉폭포 건너편의 개울가는 차박을 즐기시는 분들이 성지로 여기는 곳이란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도 캠핑을 즐기는 분들의 캠핑카가 많이 보인다

칼바위 아래에 있는 농지의 모습

이곳이 원래의 석문동천이었는데 물길을 인위적으로 구름다리 아래로 돌려버려 논이 되어 버렸다

인위적으로 바뀌어 버린 석문동천 마지막 구간을 바라보는 산으로님은 뭔가 아쉬운 듯 하다

저 구름 다리에 있는 팔봉폭포로 가고 싶은데 곧바로 가는 길이없어 입맛만 다신다.

토계리(土界里) 마을 회관(17:55)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라는 명칭의 유래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한자를 그대로 번역하면 땅의 경계가 된다. 달

천으로 인해 대소원면 지역과 살미면 지역이 나누어지고 그 경계에 위치하고 있어 그런 이름이 붙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자연마을로는 도랫말, 솔안, 왕다라기가 있는데 도랫말은 이 마을만이 남향으로 돌아 앉아 있으며, 물이 마을 앞을 돌아서 흐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솔안은 마을 앞뒤에 솔밭이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왕다라기는 옛날에 어느 왕이 이 곳에 머물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산물로는 대학찰옥수수, 고추, 사과, 담배 등이 있다.

토계리는 석문천이 달천과 합류하는 지역으로 들이 비교적 넓은 편이며 논농사 외에 담배와 고추 등

밭농사를 짓는 농촌 마을이다.

그리고 수주팔봉은 산과 물이 어우러져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다

마을회관 맞은편에 있는 버스정류장

이곳에서 충주택시를 호출하여 주월령으로 향한다

얌전히 쥔장을 기다리고 있는 범여의 愛馬

주월령에 돌아오니 아침에 만났던 강아지가 다시 꼬리를 치며 찾아온다.

내 베낭에 있던 소시지 3개를 주니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운다.

강아지와 작별을 하고 충주시 중앙탑면 탄금호 근처에 있는 막국수집으로 와서

간단하게 뒷풀이를 한 다음에 서울로 향한다

2년 반만에 산에서 만난 4인방...다들 고마웠습니다

어제 팔공지맥 한 구간을 끝내고 의성에서 사고로 인해 산행이 힘들었을뻔했는데

참석한 수헌 아우님, 제주도에 어젯밤 마지막 비행기로 올라와서 여독이 풀리기도

전에 산행에 참석한 권작가님...오늘은 쉬고싶은 맘이 굴뚝같았지만, 내가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라면 겁박하는 바람에 찍소리도 못하고 나온 후배들에게 미안하다

이러다가 왕따 당하는 것은 아닌지 두렵기도 하다...나이가 들수록 사람이 그리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