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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무주(덕유)지맥(진행중)

무주(덕유)지맥 제1구간- 백암봉(분기점)에서 설천봉까지

by 범여(梵如) 2024. 12. 2.

 

 

  산행일자: 2024년 11월 17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날씨에 몸을 가누기조차 힘든 강풍

☞ 산행거리: 도상거리 3,1km +들머리 7.5km / 5시간 2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덕유산 안성탐방지원센터-문덕소-칠연폭포 갈림길- 다리(1)- 다리(2)

                    깔닥고개- 다리(3)- 동엽령- 1,378.2m봉- 암봉- 안성계곡 갈림길

                    암봉- 안부- 안부- 무명봉- 암봉- 백암봉- 안부- 갈림길- 안부- 오수좌골 갈림길

                    중봉- 쉼터- 주목군락지- 아고산대 모포장- 향적봉 대피소- 향적봉

                    설천봉- 무주리조트

☞ 소  재 지:  전북 무주군 안성면, 설천면 / 경남 거창군 북상면

 

지난주는 절집 산문을 1년에 한번밖에 열지 않는다는 희양산 아래에 있는 봉암사를

갔다 오느라 산행을 못했더니만 1주일 내내 몸이 찌뿌등하여 미칠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직까지 사무실 이전을 하면서 망가진 몸뚱아리로 장거리 산행을 나서기에는

아무래도 무리일 듯 싶어서 거리도 짧고 제도권 등로로 조금 편안하게 걸어 보려고

생각한 곳이 무주(신산경표상:덕유)지맥...짧게 타면서, 체력 테스트를 해보기로 한다 

무주(덕유지맥) 개념도

 

무주(덕유)지맥이란?

신산경표상의 덕유지맥(德裕枝脈)은 백두대간 덕유산 백암봉에서 북쪽으로

분기하여 덕유산 향적봉(1614m), 두문산(1051.2m). 안성재, 어둔산(679m), 

봉화산(884.5m), 버드산(512m), 구리골산(658m), 시루봉(500m),마향산(731m)을

거처 무주 남대천/금강합수점인 무주읍 대차리 서면나루 에서 그 맥을 다하는

31.9km의 산줄기로 무주, 남대천의 우측 분수령을 덕유지맥(德裕枝脈)이라 하는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무주지맥이라 부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무주를 가려면 우리집에서 가까운 남부터미널로 가면 아주 편한데 근데

남부터미널에서 무주로 가는 첫 버스가 07시 40분이라 늦어도 너무 늦어서

하는 수 없이 열차를 타고 대전으로 가서 대전에서 무주로 가기로 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서울역으로 향한다

서울역(04:57)

집 앞에서 첫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하니 새벽 5시가 채 안된 시간.

매표소에 가서 어제 예매한 열차를 찾아서 플렛홈으로 향한다 

서울역발  대전행 열차표 

서울역에서 탄 열차는 광명역만 정차하고 곧바로 대전역으로 향하는 열차라서

졸지도 못하고, 어두컴컴한 창밖만 바라보는 사이에 아직도 어둠이 짙게 깔린

대전역에 도착한다

대전역(06:15)

대전역을 빠져나와 대전복합터미널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는데, 버스를 잘못탔다.

복합터미널로 가기는 가는데 여기저기를 빙빙 돌아서 가는 버스라, 10분정도

밖에 안되는 거리인데 50분이 걸리는 버스라, 버스에서 내려, 다른 버스로

갈아타는 바람에 조금 시간이 늦어졌다

대전복합터미널(06:50)

터미널에 도착하여 무주가는 버스를 예매한 후에 유부우동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커피까지 한 다음에 무주로 출발하는 버스로 향한다

대전발 → 무주행 버스표

무주로 가는 버스 시간이 예전에 비해서 10분정도 당겨졌구나.

대전에서 출발한 버스는 50분만에 무주에 도착하고, 그 50분

동안에 버스에서 꿀맛같은 쪽잠을 잤는데, 몸이 상당히 개운한 느낌이다

무주터미널 버스 시간표

07시 55분에 무주터미널에 도착하여 안성가는 버스표를 예매한다

 무주발 → 안성행 버스표 

버스표를 예매하고, 플렛홈으로 가서 버스에 올라탄 다음에 기사 양반에게

버스표를 주니, 기사분이 어르신 표를 바꿔 오라고 한다...난 행여 표를

잘못 끊었나하고 의아해서 물어보니, 내가 예매한 버스표는 무주에서

안성을 거쳐서 장계로 가는 직행버스인데, 요금이 3,100원이고, 이 버스는

무주군내 버스라 표를 끊을 필요도 없고, 현금으로 1,000원만 내면된다

직행버스나 군내버스나 시간 차이가 거의 없다고 한다.

 

08시에 무주를 출발한 버스에는 손님이라곤 달랑 나혼자인데다가 중간에

타는 손님도 없어서 종점까지 홀로오는 바람에 25분만에 안성터미널에 도착한다 

안성시외버스터미널(08:25)

안성터미널에 도착하여 곧바로 택시를 타고 덕유산안성탐방지원센터로 향한다

덕유산안성탐방지원센터(08:40)

덕유산안성탐방지원센터에 도착하니 국공파는 아직 출근을 안했는지

문이 굳게 잠겨있다...택시에서 내려 산행을 준비하는데, 잔뜩 지푸린 흐린

날씨가 금방이라도, 눈이나 비가 올 것같아 조금은 불안하지만 기상청의

예보를 믿어 보기로 하고 장비를 점검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8:45)

근데 이건 뭐여!...11월 15일부터 12월25일까지 출입통제라니...

국공파가 출근했으면 산행도 못하고, 그냥 돌아갈 뻔 했잖아...

법을 위반하면 안 되는줄 알면서 어쩔수 없는 차선책을으로

동엽령을 향해서 줄행낭을 친다

높은 산치고 깊지않은 계곡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동엽령까지 4.2km라고 하니 부지런히 걸어야 할 듯 싶다

덕유산안성탐방지원센터 좌측에는 칠연의총 공사장이 보이는구나

 

칠연의총( 七淵義塚)

무주군 안성면 공정리에 있는 구한말 전사한 신명선(申明善) 의병 부대의 유해를 합장한 무덤으로

1907년 일본의 강압으로 정미칠조약이 체결되어 우리의 군대가 해산을 당하게 되자 일본의

침략에 울분을 참지 못하던 시위 보병(侍衛步兵)들은 전국에 흩어져 항쟁을 벌였다.

 

이때 시위대 출신인 신명선이 덕유산을 거점으로 의병을 모집하여 무주·장수·순창·용담·거창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면서 수많은 공을 세웠다... 신명선 부대는 초기 창의할 때 불과 40여

명에 지나지 않았으나 점차 세력이 불어나 150여 명의 의병이 결집된 부대가 되었다.

 

신명선 부대는 1908년 4월, 일본군 사살 15명, 부상 20명의 성과를 거둔 장수에서 격전 후

칠연계곡 송정에서 쉬고 있던 중 잠복하고 있던 일본군의 기습을 받아 150여 명의 전 대원이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는데, 의병 문봉호(文奉鎬)가 인근 주민의 도움을 받아 유해(遺骸)를

습하여 송정골에 안치하였으며, 1969년 지역의 향토 예비군에 의해 흩어진 유해를 다시 수습하여

성분(成墳)하고 묘역을 정비한 후 ‘백의총(百義塚)’이라 불렀다. 1976년 4월 2일 ‘칠연의총’이라

명명하였으며,  2003년 12월 11일 칠연의총 성역화 사업을 통해 다시 정비되었다

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북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 정미칠조약(丁未七條約)은 1907년 7월 24일,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점하기 위해 체결한

  불평등조약으로, 전체 7개 항목으로 이루어진 이 조약으로 일제는 대한제국 정부의 시정을

  개선한다는 명목하에 법령의 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 등 일체의 사무에 대해 승인권을

  장악함으로써 입법, 사법 및 고등 관리의 임면 등 대한제국의 내정을 실질적으로 장악할 수

  있게 되었다... 한일신협약(韓日新協約)이라고도 부른다

날씨는 을씨년스럽지만 동엽령으로 향하는 등로 좌측으로 펼쳐지는 칠연계곡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택시를 타고 오느라 보지못한 용추폭포를 시작으로 문덕소,

칠연폭포, 명제소 등 기암괴석으로 이어진 칠연계곡의 흐르는 물은 금강 상류인

구리향천(九良川)으로 향하며, 칠연계곡의 또다른 이름으로는 칠연암동이라도 한다 

문덕소(文德沼:08:57)

덕유산의 이름난 계곡인 칠연계곡(七淵溪谷)에 있는 일곱개의 폭포 중 큰 물웅덩이로

칠연계곡 제4경으로 부르는 곳으로, 소(沼)는 계곡에 자연적으로 생긴 물웅덩이를

말하는데 폭은 약 50m정도이며 웅덩이의 물은 어둡고 바닥이 보이지 않으며 그 깊이는

알려지지 않았다.

 

문덕소라는 이름은 이곳 물웅덩이에서 도를 닦고 있는 도인에게 옥황상제가 나타나서

살면서 덕을 얼마나 쌓았는지 물어보았다는 전설이 전해서 문덕소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는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서는 산만큼 좋은곳이 없다.

국공파의 통제를 피해서 산 속에 들어오긴 했지만, 그래도 산길로 접어들길

잘했다는 생각에 기분은 정말 굿이다...지난 3개월간 사무실 이전으로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 걱정이 되지만, 그래도 산에만 들어오면 이렇게 기분이 

좋은 걸...

이 멋진 길을 도둑고양이처럼 들어와서 홀로 걸으니...

훔쳐먹은 사과가 맛있다고 했던가...그러나 난 지금 법을 어긴

상태이긴 하지만, 통제된다는 자체를 모르고 들어왔고, 

서울서 이곳까지 가지 없지 않은가 하는 억지 논리를 펴는

내 자신이 우습게 되어 버렸구나...

칠연폭포 갈림길(09:04)

예전에 몇번이나 가봤던 칠연폭포...이곳에서 0.3km정도 떨어져 있는 곳이지만

오늘은 아직 완전체로 돌아오지 않은 내 체력이 산행 후반에 어찌될 지 몰라서

과감히 포기하고 동엽령으로 향한다

칠연폭포(七淵瀑布)는 

무주군 안성면 통안마을 뒤 덕유산 쪽에 반석으로 형성된 계곡과 그 일대를

칠연암동이라 하는데, 무주구천동에 비해 그리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기암괴석과 크고 작은 폭포, 소(沼)와 담(潭)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작지만

아기자기한 곳으로 이곳의 대표적인 명소는 칠연폭포로 일곱개의 폭포와 못이

연이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폭포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 한 도사가 신선(神仙)이 되길 원해 날마다 열심히 기도를 했는데, 어느날 꿈에

신령이 나타나 안성땅 바위속 ‘봉산마을 책암’에 있는 책을 꺼내어 공부하면 신선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그 후 도사는 안성에 찾아와 책 바위에서 책을 꺼내 7년동안 열심히 공부한 뒤 계곡을

오르던 중 허기를 느껴 길가 집에 들어 밥을 달라 요청했는데 그 집 주인이 받을 주지 않고

오히려 쫓겨났다... 화가 난 도사는 도술을 부려 그 집을 폭포로 만들어 버리고 다시 길을

가는 데 하늘에서 천제(天帝)가 나타나 도사의 잘못을 꾸짖으며, 위쪽에 폭포의 수가 7개 있으니

그 곳에 가서 7년을 공부하라는 명을 내리게 되어 도사는 천제의 말대로 그곳에서 7년을

더 공부한 뒤 드디어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서린 폭포다.


칠연폭포의 언저리를 금강산 산정의 팔담에 비할 만한 절경이라는 칭송을 듣고 있다.

적송이 남달리 잘 보존되어 있고 항상 청류가 흐르는 계곡과 기암으로 ‘칠연암동’이라

불리어 지금도 신비한 전설을 간직한 폭포를 감상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는 대표적인

관광지로 꼽힌다.   

세상살이를 하다보면 늘 아쉬움이 남는다 했던가...

몇번을 가봤던 칠연폭포였지만, 오늘 그냥 패스하려니 진한 아쉬움이 남는구나.

칠연폭포로 향하는 나무계단을 바라보며, 동엽령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다리(1)(09:06)

동엽령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계곡 건너 저 옴팍한 곳이 칠연폭포가 있는 곳이다.

뭣이던지 지나고 나면, 늘 아쉬움이 남는 법일까?

자꾸만 칠연폭포가 있는 계곡으로 눈이 가는구나

며칠전에 계속 내린 비로 인하여 비에젖은 등로의 낙엽이 상당히 미끄럽다

신선이 따로있나 신선처럼 살다보면 내가 신선이제

동엽령으로 향하는 호젓한 이 길을 홀로 걷다보니

내가 마치 신선이 된 같은 착각이 든다

사람들이 산을 찾는 목적은 각기 다르겠지만, 나에게는 늘 일상처럼

무의식중에 산에 들어서니 마치 신앙과도 같은 것이랄까...

똑같은 코스를 여러번 걷지만 갈 때마다 다가오는 느낌이 다르니,

늘 호기심이 첫사랑처럼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다리(2)09:35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동엽령:덕유 03- 04:해발 820m↓안성분소)

안성탐방지원센터에 2km를 걸어왔다는 셈인가?

 

겨울산 / 유응교

 

겨울 산이 저 만치

텅비어 있는 채 서 있다.

그 비어있는 마음으로

 

열려있는 가슴 속으로

나 홀로 걸어간다

 

겨울 산은

마음을 비우고 간 사람에게

그 넉넉한 품을 열어준다

뭣 짓거리여...멀건 대낮에 사랑놀음이라니...

동엽령으로 향하는 힘든 워밍엄이 시작될 모양이다.

이곳이 해발 900여m정도 되는 곳이지만 아직까지는 걸을만하다.

올해동안 산행 시계가 멈춘 탓이라...호기심반, 두려움반의 심정으로

서서히 고도를 높혀간다

아직도 어지러운 娑婆世界에 뭔 미련이 있다고...

직진 능선이 아닌 우측의 사면길로 오르다가 보니 깔딱고개가 나온다

깔닥고개(970m:10:02)

능선에 올라서니 이정표가 있고, 남덕유산으로 향하는 백두대간 능선이 보인다

동엽령이 아직도 1.7km나 남았다는 이정표와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동엽령:덕유 03- 05:해발 970m↓안성분소)과

좌측의 위에는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이동통신 중계탑이 보인다

등로는 직진의 오르막이 아닌 우측의 사면길로 향하는데

범여의 발걸음을 배려해주는 건가?...아뭏든 고맙기만 하다

깔닥고개 위에 있는 이동통신탑

조그만 능선에서 올라선 후에 다시 내리막길...

세속의 일상속에 부딪히는 모든걸 산 속에서는 내려놓고

아무런 잡념은 다 잊어 버린 채 걷고, 또 걷는다

제도권 등로의 편안함 때문에 너무 심심해할까봐서 그런지

간간히 나타나는 돌길...긴장을 늦추지말고 조심해서 산길을

걸어라는 얘기인가?

조금씩 고도를 높히면서 올라서니 힘든 탓인지 땀이 흘러 내린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동엽령:덕유 03- 06:해발 1.030m↓안성분소)

다리(3):10:16

이곳의 고도가 1,030m...북사면이라 바람은 없으나 날씨가 조금씩 추워지는 느낌이다

너덜겅같은 곳을 지나니...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동엽령:덕유 03- 07:해발 1.104m↓안성분소)

너덜겅을 통과하니 예전에는 없었던 데크목 계단이 동엽령으로 이어진다.

자꾸만 편안함을 추구하려는 인간들의 利己心 때문에 자꾸만 자연이

홰손되는 것 같아 조금은 안타까운 생각인데, 비단 범여만의 생각일까?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동엽령:덕유 03- 08:해발 1.200m↓안성분소)

산죽길 사이로 이어지는 호젓한 등로도 이렇게 변해 버렸구나.

자연을 보호한다고 계단을 설치한 지는 모르겠으나,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둘 때가 최상의 자연보호 방법인데, 인간의 좁은

所見으로 이 짓거리를 해놨으니, 자연보호가 아닌 자연홰손인 셈이다

산죽길을 벗어나자 강한 바람이 갑자기 불어오면서 우박인지 눈인지

분간이 잘 안되는 얼음 덩어리같은 물질이 모자위를 두드리는데

조금은 겁이 난다...베낭속에 아인젠과 스패치, 핫팩은 준비해 왔다마는

뚜꺼운 옷은 베낭의 무게를 감안하여 가져오지 않아 은근히 겁이난다

동엽령에 올라선다

동엽령(冬葉嶺:1,358.2m:11:02)

경남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와  전북 무주군 안성면 용추리를 잇는 고개이다

덕유산에는 빼재(신풍령), 동엽령, 육십령 등 3개의 큰 고개가 있는데

다른 두 고개와는 달리  동엽령(冬葉嶺)은 깊은 산중에 있는 탓에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런데 '겨울 잎'으로 해석되는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 일대에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듣기가 어려우며 무주와 동엽령을 마주하고 있는 거창군에서 동엽령을

'동업이재'로도 부르는 것을 보면 이런저런 짐작을 해볼 수는 있다.

 

거창군이 발간한 <거창군사(居昌郡史)>는 동엽령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동엽령은 경상도와 전라도 지방의 토산품을 교역하기 위해 넘나들던 재넘이로

재로 오르는 병곡 대하골(현재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에는 옛날 동업이재를 넘나들던

나그네를 위해 술을 빚어 팔았다고 하는 주막터가 있었다고 한다.

백두대간 능선인 동엽령에 올라서니 강한 바람이 태클을 걸어온다.

쉼터에는 항상 북적거리던 대간 산꾼은 커녕, 개미 새끼 한마리도 안 보인다.

나중에 알았지만, 지금 이곳은 12월 15일까지 통제구간 때문이라 그런줄

나만 몰랐던거 같다

계곡을 올라 올 때는 몰랐는데 능선에 올라서니 갑자기 뚝 떨어지는 

기온에다 바람 때문인지는 몰라도 손이 엄청나게 시렵고, 잠깐이지만

계곡을 올라오면서 흘린 땀에 젖은 옷이 범여의 몸뚱아리를 힘들게 만든다

살짝 능선 아래로 내려와서 젖은 옷을 갈아입고, 바람막이 자켓을 입은 다음에

지맥 출발점인 백암봉으로 향한다

알겠습니다

산꾼이 날씨를 탓하지만, 그렇다고 가야할 산을 아니 간 적이 있었던가...

바람이 불면, 바람에 순응하면서 천전히 발걸음을 옮긴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보니 눈 앞에 멋진 암릉이 보이는데 국토정보 지리원의

지도에는 표기조차 안되어 있는 무명봉이지만, 일반 대간지도에는 1.390m봉이다

오랫만에 하는 산행이라 그런지 모든것이 정겹게만 보인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백암봉:덕유 01- 23:해발 1.290m↓동엽령)

갑자기 등로가 열리면서 가야할 백암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뚜렸하게

보이고, 능선 좌측에는 안성계곡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뎃빵 노릇을

하고있는 가새봉(1,396m)이 멋진 모습으로 산꾼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데크목 계단을 내렸선 다음에 봉우리를 만나는데  국토정보지리원의

지도에 등장하는 족보가 있는 1,378.2m봉이다

1,378.2m봉(11:15)

대간 산꾼들은 대부분이 오르지 않고, 통과하는 홀대받는 봉우리이지만

엄연히 족보있는 봉우리다...오르는 길은 희미하다...간간히 오르는

산꾼이 있는 모양이다

世俗에서 산에 대한 가슴 앓이를 하다가 산 속에 들어오면

이렇게 기분이 좋구나...백암봉으로 향할수록 추위의 강도는

조금씩 강해지는 느낌이나, 뚜버기 걸음으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길을 걷는다 

암봉(11:20)

안성계곡 갈림길(11:21)

예전의 산행시에는 좌측의 안성계곡으로 향하는 뚜렸한

등로가 보였는데 목책 너머로 보여야 할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

하기사 길이란 1년만 다니지 않아도 없어지는게 산길이 아니던가.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백암봉:덕유 01- 22:해발 1.306m↓동엽령)

춥겠다... 철없는 넘이 아니라 기후변화에 대처하지

못한듯 하여 안타까운데 내가 도와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다.

인간들의 오만과 탐욕으로 인한 희생양이 된 진달래

안부에서 오름길에서 능을 바라보니 백암봉(中) 너머로

중봉이 얼굴을 내미는데,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듯 하다

대포바위?...상상하는 생각은 자유?...

예전에 이곳을 10여번정도 지나갔지만 덕유산 능선에 이런

멋진 암릉이 있다는 걸, 오늘에서야 알았다.

혜민스님의 책에서 본 듯한 글귀가 생각나는구나

 '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암봉(11:24)

세상을 살아가면서 각자가 가야할 길은 있을 것이다

나에게는 나만의 길이 있고, 그대에게는 그대가 가야할

길이 있을 것이다..그리고 무엇이 옳은 길이고, 정확한 길,

유일한 길이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안부(11:26)

백암봉이 가까워져 오는 모양이다....백암봉을 지나 안성계곡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대장 노릇을 하는 가세봉이 멋진 모습으로 산꾼의

가슴을 셀레게 한다...산 아래의 마을에서 보면 ' 가세(가위의 전라도 방언) '처럼

생겼다고 해서  '가세봉'이라고 불린다.

안부(11:34)

여름에 이곳에 오면 원추리와 박새꽃이 환상을 이루는 군락지였는데 지금은 번식력이

뛰어난 먹성좋은 산죽이 원추리와 박새꽃의 보금자리를 많이 뺏은 느낌이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서서히 오르막으로 향한다

백암봉으로 향하는 길에 왔던 길을 뒤돌아 보는데 늘 까칠하기만

하던 남덕유산이 오늘은 한없이 인자하기만 하는구나.

세상을 살면서 늘 까칠하기만 하면 주위에 사람이 없다는걸

오늘은 그걸 나에게 가르쳐 주려는 모양이다...그래서 늘

산은 중생들이 스승이라 했다던가...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백암봉:덕유 01- 21:해발 1.342m↓동엽령)

안부를 지나 데크목 계단으로 오르는데 갑자기 엄청난 寒氣가

몸뚱아리를 엄습하며, 수술 부위를 압박하니 숨쉬기조차 힘이든다.

오늘 날씨가 이렇게 갑자기 추울줄은 예상을 하지 못했는데

조금은 불길한 예감이 들지만 지금으로서는 대처할 방법이 없다

무명봉(11:48)

다행히 정상 능선이 아닌 서쪽 사면길로 이어지는데, 잠시나마

바람을 피할 수 있어서 몸을 추스리면서 천천히 걸어간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백암봉:덕유 01- 20:해발 1.388m↓동엽령)

암봉(12:02)

안부를  지나 백암봉으로 향하는 철계단으로 향하는데

능선 아래에서 불어오는 강한 바람탓에 추워도 너무 춥다.

백암봉 가는 길에서 바라본 거창군 북상면 병곡리 계곡

이곳은 ' 경남에서 가장 오지 ' 라는 뜻으로 ' 함경도의 산수갑산 '

빗대어 ' 경상도의 산수갑산 ' 으로 불릴만큼 오지이라고 한다.

철계단으로 올라서니 무주(덕유)지맥의 시작점인 백암봉이

올라오느라 수고했다고 하면서 반갑게 범여를 반겨주니

눈물나게 고맙구나 

백암봉(白巖峰:1,503m:12:20)

경남 거창군 북상면과 전북 무주군 안성면, 설천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산꾼들 사이에는 송계사 삼거리라고도 부르는 곳으로 안성 방면으로 하얀

암봉을 내리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안성 방면으로 피라밋처럼 삼각형으로 

솟아오른 가세봉이 그 아래 망봉까지 지능선 꼬리를 늘어뜨리고 서있다.

 

향적봉과 중봉, 덕유평전의 남쪽에 있는 봉우리로서 덕유산의 한가운데

대간은 이곳에서 동쪽으로 꺾어졌다가 북향하고, 남쪽으로는 지리산으로 

뻗어내리는 봉우리로, 구천동으로 내려가려면 중봉 못미쳐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오수좌굴을 경유한다.

 

'흰바위봉'이란 뜻인데, 바위의 색이 엄격하게는 회색에 가깝다고 하며

이곳이 신산경표상의 덕유지맥의 시발점이며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무주지맥이라 부르는 곳으로, 오늘 내가 지맥길의

첫발자국을 내딛는 곳이기도 하는 봉우리다

인증샷

동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남강(진양)기맥 능선으로 이어지는 거창의 산그리메가

한 눈에 들어오는데, 남령을 지나 월봉산~수망령~금원산~기백산~황석산 등의

멋진 모습이 14년전에 저 능선을 걸었던 추억들을 소환해본다.

 

좌측 맨 끄트머리에는 법보종찰 해인사를 품고있는 가야산이 아련히 보이고,

우측으로는 거창의 산그리메들이 펼쳐지는데, 거창의 명산들인 우두산과

비계산, 삼봉산들이 도열해 있는데, 거창에는 참으로 명산들이 많은 곳이다.

郡內에 해발 1,000m가 넘는 산이 13개나 된다고 한다

본격적인 무주(신산경표상:덕유)지맥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중봉:덕유 01- 19:해발 1.503m↓동엽령)

백암봉에서 무주(덕유)지맥을 시작하는 발걸음을 내딛는데 바로 앞에는

덕유산의 주봉이 향적봉(1,614.2m:뒷쪽)과 중봉(1,593.7m:앞쪽)이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보기에는 부드럽고, 완만한 모습이나,

두 봉우리가 모두 우리나라(남한)에 열손가락 안에드는 봉우리라

그리 만만하게 볼 산은 아니다

안부(12:27)

지금의 덕유산 정상으로 가는 길은 이름처럼 한없이 德스러운 길이다

갈림길(12:30)

좌측으로는 용추계곡으로 이어지는 흐릿한 등로가 보인다.

오늘 원래의 계획은 이곳으로 올라와 지맥길을 시작하려 했는데,

오랫만에 하는 산행인데다가,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등로라 조금은

자신이 없어서 동엽령쪽의 제도권 등로를 향해서 올랐지만, 언젠가는

이 능선을 꼭 한번 걸어보리라...

뒷쪽으로 보이는 향적봉은 출입이 통제되지 않은 모양인지 어렴풋이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저기를 가기위해 향적봉 대피소를

어떻게 통과할까 고민을 해야할 듯 싶다

덕유산 지도

"예부터 '덕(德)이 많아 넉넉한 산, 너그러운 산'으로 불리고 있는 덕유산은 

 향적봉(香積峰)을 주봉으로 삼고  달리는 덕유연봉(德裕蓮峰)들이 장장

100리길의 대간(大幹)을 이루며 영·호남을 가르는 우리나라 12대 명산중 하나다.

 

삼남(三南)을 굽어보는 덕유연봉의 최고봉인 향적봉에 오르면 북으로 가깝게는

적상산(赤裳山, 1,038m)을 아래에 두고 멀리 황악산(黃岳山), 계룡산(鷄龍山)이 

보이며, 서쪽은 운장산(雲長山), 대둔산(大屯山), 남쪽은 남덕유산을 앞에 두고

지리산(智異山), 반야봉(般若峰)이 보이며 동쪽으로는 가야산(伽倻山), 금오산

(金烏山)이 보인다. 

 

향적봉 정상에서 발원한 옥수가 흘러 내리며 구천동 33경을 만들고, 북사면의

무주리조트, 서남쪽의 칠연계곡을 이루어 수많은 탐방객들을 맞이하는 덕유산은

두문산(斗文山, 1,051m), 칠봉(七峰, 1,161m),거칠봉(居七峰, 1,178m) 등의

고봉(高峰) 등을 거느리고 봄철이면 칠십리 계곡에 빨간 철쭉꽃을 피우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으로 피서객을 손짓하며, 가을이면 붉게 타는 단풍으로 만산을 물들이고,

겨울이되면 하얀 눈이 뒤덮인 설경속에 설화를 피워 신비경을 이룬다."

   -국립공원덕유산 홈페이지 참조-

남한의 산수갑산(山水甲山)이라는 병곡리 계곡 너머로 마치 群鷄一鶴처럼

뾰족 솟은 가야산을 중심으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서부 경남의 高峰들의

스카이라인은 환상 그 자체이다...내 고향(경남 의령)의 진산인 자굴산은

여기서 보기가 무리인 듯 싶어서 아예 포기를 한다

 

* 산수갑산(山水甲山)이란 함경남도 삼수군과 갑산군을 통칭하는 지명이다

  그러나 관용어로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든 대단히 험한 벽지(僻地)로 

  몹시 어려운 지경이나 최악상황을 의미한다.

 

  삼수군과 갑산군이 위치한 개마고원은 한반도 최고의 오지(奧地)로 매우

  험하고 추운 지역이라 유배지로 아주 딱인 곳인데  조선시대 내내 유배지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하는데, 그만큼 오지라는 뜻이다

등로 좌측으로는 내가 걸어야 할 무주지맥 능선에 있는 무주 덕유산CC의

필드는 아직도 파란 잔디가 그대로이고 그 뒷쪽으로 보이는 산이 두문산이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백암봉:덕유 01- 18:해발 1.471m↓백암봉)

안부(12:34)

안부를 지나서 중봉으로 향하는 길에  바람이 불어대니 커다란 나무

한그루 없는 덕유평전에서 강한 바람이 불어대니 몸뚱아리에서 이상 신호가 온다.

갑자기 온 몸이 사시나무 떨듯이 추위가 엄습해오는데 피할 방법이 없다.

베낭에서 바람막이 자켓을 꺼내입고 중봉으로 향한다

길 / 천상병

 

가도가도 아무도 없으니

이 길은 無人의 길이다.

 

그래서 나 혼자 걸어간다.

꽃도 피어 있구나.

 

친구인 양 이웃인 양 있구나.

참으로 아름다운 꽃의 생태여

길은 막무가내로 자꾸만 간다.

 

쉬어가고 싶으나

쉴 데도 별로 없구나.

 

하염없이 가니

차차 배가 고파온다.

그래서 음식을 찾지마는

가도가도 無人之境이니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참 가다가 보니

마을이 아득하게 보여온다.

아슴하게 보여진다.

 

나는 더없는 기쁨으로

걸음을 빨리빨리 걷는다.

 

이 길을 가는 행복함이여.

나는 행복합니다

중봉 오르는 길에서 뒤돌아본 덕유평전의 모습

진사들의 일출 사진 포인트로도 아주 유명한 곳이다

백암봉에서 횡경재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을 바라본다.

4번이나 저 길을 걸었지만, 아직도 저 능선에 대한 갈증은

멈추지 않는구나...다시한번 5번째 백두대간을 걸어볼까

생각을 해보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자신이 없다.

그래 온 김에 눈에라도 담아가자는 생각에 한없이 그쪽으로

눈길이 간다

중봉 오르는 길에서 바라본 무주군 안성면의 산그리메

안성면(安成面)은 본래 대곡소 및 횡천소와 함께 부리현에 속했던 안성소였고,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백제 때에는 진내군, 통일신라 때는 진례군, 고려 때는

금주군 또는 부리현에 속하였다가 조선시대에는 금산군에 속하였으며

현종 15년(1674) 적상산사고와 관련하여 무주현이 무주도호부로 승격하면서

횡천면과 함께 무주도호부에 소속되었고 일안면과 이안면 그리고 횡천면으로

개편되었다.

 

1914년 행정개편 시 일안면과 이안면 전역을 중심으로 유가면의 오동, 진원, 물리,

도치 등 4개 리와 적상면의 사교, 사전, 구교 등 3개 리를 편입하여 8개리로

개편하고 옛 안성소의 이름에 따라 안성면이라 하였고, 특히 이 고장 출신으로

고려때의 명신(名臣)이었던 김신(金侁:출생연대 미상)이 왕명을 받고 원나라로

들어가 요양행성참정을 역임하면서 큰 공을 세우고 돌아와서 조정으로부터

큰 상을 받게 되었는데, 1305년(고려 충렬왕 31년)에 금산이 김신의 고향이라하여

금주군으로 승격시키기도 했다.

천천히 중봉으로 오르는 길의 바람은 장난이 아니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는 탓인지 보온장갑을 착용했는데도 손가락이 빠지는듯한

추위는 계속되고, 아침부터 먹은것도 별로 없는데 구토가 나면서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는데 미칠것만 같은 분위기다...저체온증인가?

옴짝 달싹도 하기 힘들 정도인데, 바람을 피할 곳도 없는데, 설상가상으로

다리에 쥐까지 나기 시작하는데, 이러다가 죽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설천봉까지 가야 곤도라를 탈 수 있는데...잠시 베낭을 내려놓고 앉아서

가 난 다리를 주무른 다음에 다시 중봉으로 향한다

오수좌골 갈림길(13:04)

중봉에 올라서니 등산객을 위한 쉼터 의자들이 보이고, 우측으로 1.4km정도를

내려가면 ' 오수자좌골 ' 이 나오는데, 이정표에는 ' 오수자골 ' 이라 표기를 해놔서

조금은 헷갈리는데, 2021년 10월말 혼자서 오수좌골로 걸었던 기억을 소환해본다

안부에서 올라오는데 10분도 안 걸리는 거리를 30분이나 걸리는 惡戰苦鬪 끝에

중봉으로 올라선다 

오수좌굴(吳首座窟:1,242m)...2021년 10월 31일 산행때 사진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에 있는 천연 동굴로 오수자(吳竪子) 혹은 오수좌(吳首座)라는

사람이 살았다 하여 붙은 이름으로 오수좌는 힘이 세고 성질이 사나워 때때로

백련암에 가서 행패를부려 걱정거리였다고 한다.

 

안성의 한 선비가 절에서 공부하는 것을 얕보고 오수좌가 싸움을 걸었는데, 선비는

미리 큰방에 불을 잔뜩 지펴 놓고 싸움을 시작하여 한참을 부둥켜안고 싸웠다.

선비가 오수좌를 번쩍 들어 방바닥에 내동댕이치니 구들장이 꺼지면서 불에 다리를 데어

고생하다가 죽게 되니 비로소 절간이 조용해졌다는 전설이 있으며 오수자굴, 계조굴,

계수굴(戒殊窟)이라고도 부른다.

수좌굴은 무주군 설천면의 제34경인 겨울철에 거꾸로 자라나는 역고드름으로

유명한 굴로 겨울철에 동굴의 상부 온도가 0℃보다 약간 높고 동굴의 하부

온도가 0℃보다 낮을 경우, 상부의 천정부에서 지하수가 스며들어 하부로 물방울의

형태로 떨어지는데, 이때 하부가 상대적으로 온도가 낮아 아래에서부터 역고드름이

자라게 된다고 하는데, 백련사(白蓮寺)에서 좌측으로 돌아 중봉으로 가는 계곡인

제자골(帝子谷)에 있으며, 넓이는 3칸 정도 된다.

 

TV 프로그램 등에 역고드름이 많이 소개되면서 명소가 된 오수좌굴의 역고드름과

중봉에서 덕유산 평전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탐방 코스가 유명하다.

구천동 탐방 지원 센터를 기준으로 무주 구천동 계곡을 따라 약 6㎞를 올라가면

백련사가 나오며, 백련사 입구 갈림길에서 좌측 계곡을 끼고 약 2.8㎞ 지점에 있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향적봉:덕유 01- 17:해발 1.563m↓백암봉)

중봉(中峰:1,593.7m:13:05)

무주군 설천면과 안성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높이로 치면 남한에서 열손가락에

들어가는 산이지만, 근처에 덕유산의 주봉인 향적봉 때문인지 그 흔한 정상석

하나도 없고, 삼각점인지 지적도근점인지 구분이 안 되는 삼각점(?)이 있고,

돌로된 봉우리로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했던 홍길동’ 이 처럼 완전히

서자(庶子) 취급을 받는 봉우리이지만 주변의 조망은 정말로 좋다.

트랭글앱에서는 이곳을 제2덕유산이라 표기를 해놨다

중봉이라 표기를 해논 이정표 윗쪽 데크목 정상으로 올라간다

오수좌골 내리막길 서남쪽으로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하여 중봉, 하봉,

밤머리재, 웅석봉으로 이어지는 덕천(웅석)지맥 능선도 멋진 모습으로

그로키 일보직전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데, 2017년 2월인가 저 곳을 홀로

호젓하게 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솟아나는구나.

남한의 산수갑산이라 부르는 병곡리 계곡 너머로 거창군을 통과하는

남강(신산경표상:진양) 능선에 있는 월봉산, 거망산, 금원산, 기백산으로

이어지는 거창군의 산그리메가 가슴을 설레게 하는구나

 

저 길을 걸을때만 하더라도 정말 겁없이 산을 헤매고 다녔는데,

지금은 이빨빠진 호랑이가 되어버린 범여...가는 세월을 잡을수는

없고, 우짜면 좋겠노...

중봉 정상의 모습

바람이 드세니 몸뚱아리는 더 힘이들고, 강하게 부는 바람에 몸뚱아리는

사시나무 떨듯.춥고...먹은것도 없는데 또 다시 구토가 시작된다

보이는 저 향적봉까지만 가면 곤도라를 탈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해보지만, 아주 편안한 길인데도 다리는 천근만근이다

여름에 오면 원추리가 장관을 이루는 곳인데, 지금은

원추리는 보이지 않고, 철쭉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구나

향적봉으로 향하는 길

아고산대는 공간적으로 고산대와 산지림 사이에 위치한 해발고도가 비교적 높은

지형으로 바람과 비가 많고, 기온이 낮으며, 확 트인 뛰어난 조망과 다양한 야생화,

서늘한 기후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덕유산 아고산대는 구상나무, 주목 등

상록침엽수림 및 철쭉, 신갈나무 등이 서식하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아고산대로는

지리산의 반야봉과 천왕봉, 소백산 비로봉, 설악산 대청봉이 있다

 

* 아고산대(亞高山帶)란 식물의 수직 분포에 따라 나눈 지대 구분의 하나로 해발 

 1,500~2,500m 사이의 지대로 고산대와 저산대의 사이에 있으며 저온 건조하여 침엽수가 많다.

그래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뚫고 나가라고 하지 않았던가...

죽음이 엄습해오는 듯한 저체온증의 고통...부지런히 걸어서

저 향적봉 아래 곤돌라 타는 곳까지 가는 길일 것이다 

중봉에서 향적봉으로 향하는 길에서 간간히 만나는 朱木

동북쪽으로 눈을 돌리니 백두대간 능선의 대덕산, 초점산, 삼봉산을 지나

황강(수도)지맥으로 이어지는 수도산과 법보종찰 해인사를 품고있는

가야산이 아련하게 보이는데, 해인사 퇴옹당에 주석하셨던 성철스님이

참으로 그립다...요즘처럼 비정상이 판을치는 難世에 큰스님이 살아

계셨다면 우매한 중생들에게 어떤 죽비(竹篦)를 내리칠까?

쉼터(13:12)

쉼터에서 바라본 무주군의 산그리메

무주는 무풍의 무(茂)와 주계의 주(朱)를 따서 이름 지은 고을이며 삼국시대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 서로 맞닿았던 요충지였다... 얼마나 피를 많이 흘렸던지

백제는 주계를 붉은 내 적천(赤川)이라 불렀고, 후에 신라가 주계를 차지하자

이름을 단천(丹川)이라 고쳤는데 이것 역시 ‘붉은 강’이란 뜻이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이 고장의 이름에 붉을 적자와 단자가

붙은 것을 가을 단풍 때문으로 잘못 알고 있다.

 

무주는 예부터 산이 높고 물이 맑아 산고수장(山高水長), 산자수려(山紫水麗)로

이름난 고장으로 덕유산을 중심으로 한 구천동 33경과 적상산 가을단풍, 칠연계곡

원시림 등 볼거리도 많다... 또한 여름날 남대천으로 나가면 호롱불 밝힌 반딧불이의

군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청정 자연이 살아 있는 고장이다.

주목 군락지를 지나면서, 갑자기 몸이 뻣뻣해지는 느낌이다.

거기다가 수술 부위의 통증까지 시작되니 미칠것만 같은데

당장 대처할 방법이 없으니 참으로 난감하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면서 고통이 진정되기만 바랄뿐이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향적봉:덕유 01- 23:해발 1.547m↓중봉)

주목군락지(13:20)

아고산대 모포장(13:23)

예전에 없었던 아고산대의 모포장도 만난다

저 주목은 범여가 겪는 고통을 아는지 모르는지...

향적봉 0.3km 지점이라니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생긴다

우리나라 특산종인 구상나무는 높이가 18m에 이르는 상록교목(常綠喬木:일 년 내내

늘 잎이 푸르고 줄기가 곧고 굵으며 높이 자란 나무)으로 老木의 껍질이 거칠며, 

종자는 길이 6mm정도이고, 날개는 45mm 정도이며, 지리산, 가야산, 한라산 등지에서

자생하는 희귀식물로서 덕유산에는

향적봉을 중심으로 해발 1,000m 이상지역에서 자생하고 있다고 한다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향적봉 대피소가 보이고...휴!... 살았다는 안도감이 든다

향적봉 대피소(1,605.8m:13:35)

향적봉 대피소로 내려서는데, 등로의 문이 굳게 잠겨있고 문을 통과하려는데

국공파 직원이 나오더니만, 지금은 백암봉에서 이곳에서 백두대간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지금 통제구간인데 어떻게 왔냐고 하면서 추궁을 하면서, 지금 이 구간을

통과하면 벌금이 10만원이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고

저체온증에다 체기가 심해서 죽을 맛이니, 일단 소화제같은 약을 좀 달라고 하니

약은 없고, 바늘로 따 주겠다고 한다.

 

그리고는 나의 안색을 보니, 좀 심각해 보였던지 젊은 남.녀 국공파 직원이

저희들이 부축을 해 줄테니, 같이 가지고 한다...그러면서 국립공원 관리공단

사무실까지 가서 차로 무주읍내 병원까지 모셔 주겠다고 한다.

 

대피소에서 향적봉으로 오르는 길은 100여m밖에 안 되지만 숨이 너무 가팔라

가다서다를 반복하는데 관리공단 여직원이 앞에서고, 남자분이 뒤에서 내 걸음과

보조를 맞추면서 향적봉 정상에 올라선다

향적봉 대피소 이정표

이곳에서 백련사쪽으로 내려가면 무주구천동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무주(茂朱)는 북한의 삼수갑산(三水甲山)과 남한 오지(奧地)의 대명사로 

무주라는 지명은 속세와 동떨어진 곳으로 인식돼 왔기에 세상 돌아가는 일에

어두운 사람을 두고 “무주 구천동에서 왔나?”라는 말을 많이 한다.

 

조선 중기의 문신(文臣)으로 광주목사(光州牧使)를 지냈던 갈천(葛川)임훈(林薰:1500~1584)의

기행문중에 「덕유산향적봉기(德裕山香積峰記)」에 무주구천동을 불공을 이룬자 9천명이

머문 둔소라 했고 박문수어사가 천(千)씨 부자와 관련해 구천동민을 신도로 다스렸다.

 

구(具)氏와 천(千)氏가 많이 산다고 해서 具千洞이라 한다고 하는 말도 있다.

어찌 되었던 크고 웅장한 산세의 덕유산은 무주구천동의 33비경을 만들고 수많은

탐방객에게 자연의 넉넉함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설천면의 라제통문에서 덕유산 산록에 있는 백련사에 이르는 약 28㎞의 굽이진 계곡 일대를

구천동(九千洞)이라 하는데, 옛날엔 구천동이라면 심산유곡의 대명사로 쓰인 적이 있다.

그만큼 구천동 골짜기가 어둡고 구불구불한 것을 두고 빗대어 말한 것. 장장 70리에 걸쳐

흐르는 계곡물은 곳곳에서 기암에 부딪히고 암반을 미끄러지는가 하면 어느 때는 폭포가

되고, 빨리 치닫다가 고요한 담을 이룬다.

 

구천동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성불군자 9000인이 살았으므로 구천인의

둔지라는 뜻에서 구천둔(九千屯)이라 하였다가 구천동으로 개칭됐다는 등 몇 가지 설이

전해오지만 구체적인 근거자료는 없다.

 

옛날 신라와 백제의 국경이자 관문이었다는 라제통문에서 시작해 마지막 향적봉

정상까지 이어지는 구천동 33경은 숱한 전설과 지명의 유래가 전해온다.

33경중 제14경 수경대까지는 관광단지 밖에 있으므로 외구천동, 제15경 월하탄에서

제33경 덕유산 정상까지는 내구천동으로 나누는데, 크고 작은 폭포와 소, 기암괴석과

여울이 보는 이를 감탄하게 한다. 계곡물은 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로 차다. 걸터앉기

좋은 너른 바위가 많고, 물이 차가워 탁족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향적봉 정상의 이정표

덕유산을 배경으로 그 중턱(해발 920m)에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백련사는 구천동

계곡에서 유일한 사찰로, 예전에 구천동 계곡에는 전에 십여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하나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오직 백련사만이 남아 있다.

 

백련사의 창건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고증자료가 없기 때문에 언제부터 사찰이

존재했는지 알 수 없으나 다만 구전을 통해 통일신라 신문왕 때 백련 스님이

초막을 짓고 수도하던 중 흰 연꽃이 솟아 나온 곳에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경내에는 매월당 부도, 백련사 계단, 정관당 부도 등의 문화재가 있다.

향적봉(香積峰:1,614.2m:13:45)

전북 무주군 설천면과 안성면의 경계에 있는 덕유산의 주봉으로 ‘향기가 쌓여

있는 봉우리'라는 뜻으로 이곳에서 가까운 곳의 적상산 '향로봉'에서 향을

피우고 제사를 지내면 그 향기가 이곳에 와서 쌓이고, 그 향기를 찾아 온 산신들이

기도를 들어줬다고 하여 유래된 지명으로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에 이어 남한에서

4번째로 높으며 옛적에 광려산(匡慮山) 또는 여산(廬山)으로 불렸으며 정상은 암릉으로

되어있고 돌로 된 정상석과 이정표, 1등 삼각점(△무주11 / 1988재설)이 있는데,

최근에는 옛 정상석 밑에다가 한글로된 정상석이 또하나 설치되어 있다

 

이후 이성계가 고려 명장시절 이 산에서 수도 전념할 때 수많은 맹수들이 우굴거렸으나

한 번도 해(害)를 입지 않아 덕이 풍부한 산이라 하여 덕유산이라 하였으며, 덕유산의 최정상인 

향적봉(香積峰)은 향나무가 많았다고한다...지금은 향나무대신 중봉 부근에 주목 몇 그루만 남아 있다.

향적봉은  유마경 향적불품(香積佛品)에서 유마거사가 법을 구하러 온 중생에게

향반을  향적불의 나라에서  가져오게 하여 수만 군중에 베풀었다는 유마경(維摩經)에서

유래하며, 금강산의 중향성(衆香城)은 불교에서  향적불(香積佛)이 계시는 불국토의

이름으로 덕유산의 향적봉은 향적불이 머무는 봉으로,  향적전은 부처님 공양음식을

만드는 건물의 의미다.

 

<등덕유산향적봉기>향적봉 부근에는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조선 명종 7년(1552) 갈천(葛川) 임훈의 <등덕유산향적봉기>에서 ‘향림(香林주목)이

즐비하게 있으므로 산봉우리 명칭을 향적봉이라 했다’고 기록하고, 또한 ‘이 나무를

향나무라 하면서 어찌 잎에서 향기가 없느냐고 물었더니, 안내하는 스님이 대답하기를

이 향목은 미륵불이 이 세상에 와서 살게 되면 그때야 비로소 향기가 나게 된다고 

대답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유마경(維摩經)은 대승불교의 재가주의(在家主義)를 천명한 불교경전으로

 유마경은 고대 인도의 상업 도시인 바이샬리에 살던 재가 보살인

 유마거사(維摩 居士를 주인공으로 한 대승 경전으로 ‘공성’에 입각한

 반야의 지혜로 현실의 삶 속에서 보살도의 바른 실천에 대해 유마 거사의 설법을

 담은 경전을 구마라습(鳩摩羅什) 번역하였는데,  유마(維摩) 병문안을  

문수보살(文殊菩薩) 문답한 내용을 기록한 것으로, 불국품(佛國品), 방편품(方便品), 

보살품(菩薩品 14품()으로 되어 있다.

인증샷

향적봉 정상 1등 삼각점(△무주11 / 1988재설)

덕유산(德裕山)은 무주와 장수, 경남 거창과 함양 등 4개 군에 걸쳐 있는데,

정상인 향적봉을 중심으로 산줄기가 30㎞나 뻗어 있으며 넓게 퍼진 무수한 산이

물결치는 모습은 장중하기 이를 데 없다... 첩첩이 산과 산이 발밑에 깔렸고,

산들이 앞뒤로 수십 겹이나 늘어서 있으며, 높고 낮은 봉우리가 어깨를 겯고

뻗어나간 산세가 너무나도 화려하고 엄숙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이중환의 <택리지>에서는 “덕유산은 흙산으로 난리를

겪을 때에 숨어들면 적군이 찾지 못한데서 ‘덕(德)이 큰 산’”이라고 했다.

 

"예부터 '덕(德)이 많아 넉넉한 산, 너그러운 산'으로 불리고 있는 덕유산은 

 향적봉(香積峰)을 주봉으로 삼고  달리는 덕유연봉(德裕蓮峰)들이 장장

100리길의 대간(大幹)을 이루며 영·호남을 가르는 우리나라 12대 명산중 하나다.

 

삼남을 굽어보는 덕유연봉의 최고봉인 향적봉에 오르면 북으로 가깝게는

적상산(赤裳山, 1,038m)을 아래에 두고 멀리 황악산(黃岳山), 계룡산(鷄龍山)이

보이며, 서쪽은 운장산(雲長山), 대둔산(大屯山), 남쪽은 남덕유산을 앞에 두고

지리산(智異山), 반야봉(般若峰)이 보이며 동쪽으로는 가야산(伽倻山), 금오산

(金烏山)이 보인다. 

 

크고 넉넉한 덕스럽고 기상 넘친 덕유산은 찾는 이의 마음을 평안하게 한다.

남덕유와 북덕유로 구분된 덕유산은 남덕유는 암봉 의지형에 날카롭다면

북덕유는 전형적인 육산으로 매우 유순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이중환의“택리지” 기록에 의하면 흙산인데 九泉洞이 있고

천석이 깊숙하다...난리를 겪을 때 이 산에 숨어들면 적군이 찾지 못한데서

“덕이 큰산” “넓고 크다” 라고 하였다.

정상에서 이곳 저곳으로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데 공단 직원이 이곳의

추운데 오래 있으면 큰일 난다고 하면서 재촉을 하기에 서둘러 설천봉으로

향한다

설천봉(雪川峰:1,520m:14:05)

전북 무주군 설천면 삼공리와 덕산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성처럼 생긴 3층의

팔각정 건물인 상제루가 있고 넓은 공터에 무주리조트 리프트가 연결되어 있는 최상류

지점으로 주위의 조망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그야말로 일망무제인 곳이다

 

설천(雪川)이라는 지명에 대한 유래는 구천동과 관련이 있는데, 옛날 불교 전성기 시절 구천동에

많은 사찰이 있어 구천 명이나 되는 승려들이 수도하던 곳이라 하여 구천동, 구천둔이라고

전하여 오는데, 구천동의 구천승려가 밥을 짓기 위하여 아침저녁으로 쌀을 씻던 하얀 쌀뜨물이

구천계곡을 따라 이곳까지 온통 눈과 같이 하얗게 흘러내렸다 하여 눈 설(雪)자와 내 천(川)자를

붙여 설천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또 다른 설은 또한 영조 때

형조참판 겸 훈련금위대장을 지낸 이봉상(李鳳祥)이 이곳에 살면서 자신의 호를 ‘雪川이라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설천봉 상제루(上帝樓)

상제루(上帝樓)라는 지명은 옥황상제에게 제사를 지낸다는 뜻으로 지어진 이름이며,

마치 성처럼 생긴 3층 팔각정인데 지금은 무주리조트의 매점및 판매시설이 들어서 있다.

이곳의 덕유산 무주리조트를 공사할 당시에 자꾸만 사고가 일어났었는데 이곳 상제루에서

제사를 지내고 난 다음부터는 신기하게도 무탈하게 공사가 진행되었다고 한다

곤도라 탑승장

곤도라 탑승장소에서 표를 끊고 곤도라를 타고 관리공단 직원과 함께 아랫쪽으로

향하는데, 곤도라를 타고 하차장까지 가는데는 20여분이 소요되는데, 곤도라 안이

따뜻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몸이 좀 풀리는 느낌이다...공단 직원들이 염려스러웠는지

계속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왠지 모르게 젊은 친구들에게 미안하다

무주리조트(14:30)

곤도라를 타고 내려오니 혼자서 무주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젊은

친구들에게 나혼자 무주로 가겠다고 하면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택시를 타고 무주로 향하는데, 택시안이 따뜻해서 그랬는지

정신없이 깊은 잠에 빠졌다가 택시기사가 깨우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나 택시에서 내린다

무주공용버스 터미널(15:00)

15시 35분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예매하고는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세 씻고

환복을 하고는 터미널 내 매점에서 따뜻한 꿀차 한병을 사서 마시고는

서울로 향하는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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