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토평(왕령)지맥(진행중)

토평(왕령)지맥 제1구간 - 분기점에서 성산임도까지

by 범여(梵如) 2025. 2. 17.

☞ 산행일시: 2025년 02월 09일

☞ 산행날씨: 쾌청한 날씨에 강추위에 바람이 드셈

☞ 산행거리: 도상거리 12.5km +들머리1.3km+ 날머리 2.4km / 7시간35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천왕재- 432.3m봉- 안부-인동장공&강릉최씨 묘-묵묘-토평(왕령)지맥 분기봉

                      534m봉- 안부- 489.5m봉- 무명봉- 임도- 450.7m봉- 372.8m봉- 안부

                     묘지- 안부 갈림길- 547.4m봉- 무명봉- 무명봉- 안부- 무명묘지- 337.5m봉

                    산영재- 349.5m봉- 묘지- 안부- 326.8m봉- 387.5m봉- NO63송전탑

                    서흥김공묘- 방골재- 산불감시초소봉- 고개- 밀성손씨&배부인 경주이씨묘

                    291.7m봉- 373.1m봉 갈림길- 안부- 경주최공&김해김씨묘- 382.4m봉

                    무명봉- 형왕령산- 안부- 418.2m봉- 안부- 426.1m봉- 묘지- 묵은 임도

                    안부- 271.4m봉- 안부- 아우왕령산- 무명묘지- 안부- 251.1m봉-성산임도

☞ 소  재 지: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 창녕군 성산면, 고암면 

 

요즘 날이 갈수록 떨어지는 체력탓인가...산에만 들어서면 개고생을 하지만 8부능선을

넘어버린 지맥길을 멈출수도 없어서 매 주말마다 베낭을 메고 집을 나서지만 이제는

솔직히 말해서 자신감이 떨어진다.

 

앞으로 2번만 가면 꿈에도 생각 싫은 지긋지긋한 화원지맥길을 마칠것 같아 산행을

준비하는데, 토요일에 해남쪽에 눈이 온다는 예보에 고민을 하다가, 다음주로

미루고, 눈도 오지 않은 창녕쪽의 지맥길로 방향을 바꾼다.

 

일기가 불순할 때는 홀로 다니는 산행이라 늘 불안하고 조심스럽다.

창녕쪽의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날씨는 좋으나 기온이 아침에는 영하 10도란다.

그래도 우짜겠나...가야제...

 

토평(왕령)지맥 개념도

토평(왕령)지맥은

낙동정맥 사룡산에서 분기한 밀양(密陽)지맥(신산경표상:비슬지맥(琵瑟枝脈)이

서남진 하다가 천왕산(619m)에서 남쪽으로 청도(신산경표상:열왕) 지맥을

분기시키고, 청도지맥은 남진하면서 낙동강을 향해 두가닥의 산줄기가 토평천을

사이에 두고 분기 되는데, 북쪽의 산줄기가 토평(신산경표상:왕령)지맥이고,

남쪽 산줄기가 계성(신산경표상:화왕지맥)이다.

 

토평(왕령지맥)은 청도(열왕)지맥의 x534.4m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해서 아래로

토평천(土坪川), 위로는 차천(車川)을 낙동강으로 흘려 보내면서 왕령산

(旺嶺山 x429m), 퇴포산(x268m), 태백산(△284m), 대니산(x408m), 석문산(x242m),

진등산(x283.8m)을 지나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개포나루터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31.1 km인 산줄기 이다.

 

그런데, 창녕군 대합면의 태백산(泰白山 284m)에서 신산경표상의 왕령지맥과

대한산경표상의 토평지맥은 이곳은 가는 길을 달리한다

 

水界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다시 남쪽으로 분기해서 구룡산(x209m),

험듬산(x219m), 코장산(x228m), 둔지산(x191m), 큰당매산(x194m), 듬밑산(x181m)을

지나 창녕군 이방면 성산리 토평천/낙동강 합수점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신산경표상의

왕령지맥보다 총도상거리가 5.5 km 정도 더 긴데다, 토평천 합수점으로 이어져 있어

토평지맥이라 부르며, 일부 산꾼들은 신산경표상 합수점인 도동나루가 아닌 토평천으로

향하는 산꾼들도 있다.

 

토평천은 세계적인 습지로 유명한 우포늪을 통과하여 창녕군 이방면 성산리에서

낙동강과 합수하는데 맞은편에는 의령군 낙서면 아근리와  합천군 청덕면 앙진리

사이로 흐르는 내 고향 신반에서 내려오는 물줄기인 신반천이 낙동강으로 입수하는 곳이다

 

토평천(土坪川)은 경남 창녕군 고암면 감리에서 발원하여 이방면 성산리 낙동강으로

합류하는 지방하천으로 낙동강 수계의낙동강의 제 1지류이다. 하천의 수계는 본류인

토평천과 지류인 중대천, 도야천, 대합천, 평지천, 초곡천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천연장은 30km, 유로연장 31.4km, 유역면적 123.17㎢이다.

 

창녕군 고암면 감리 열왕산 북서쪽 산록에서 발원해 감동댐을 이루고 대지면·

유어면 일대를 사행(蛇行)하면서 흐르다가 유어면 구미리와 이방면  성산리

사이에서 낙동강에 유입하며, 하천 하류에 우포늪이 있으며, 토평천 곳곳의

하천 연변에 대나무숲이 들어서 있으며 하류부는 사행이 심하여 하상 물질은

이토(泥土:빛깔이 붉고 차진 흙)로 구성되어 있다.

◆ 주요 봉우리
지맥분기점(x534.4m), 왕령산(旺嶺山 x429m), 퇴포산(x268m), 태백산(△284m),
대니산(x408m), 석문산(x242m), 진등산(x283.8m), 도동나루에서 낙동강에 입수한다.

 

그러나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지맥 분기점에서 태백산까지는

같이하다가 태백산에서 신산경표상의 트랙에서 갈라져 중부내륙고속도로~

1034번 지방도~130.8m봉~125.5m봉(구룡산 분기점)~노랑갓골산~갓골고개

133.8m봉~도마트 고개~162.9m봉(험듬산분기점)~코장산~솔고개~큰당메산~

듬밑산분기점~208.0m봉~73.6m봉~토평천/낙동강 합수점으로 맥을 달리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역(04:50)

이른 아침에 집을나와 서울역으로 가는 첫 차를 타려고, 버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잠깐 사이에 귀가 떨어져 나가는 것 같은 추위를 느낀다

지난 3일이 입춘인데 입춘날부터 몰아친 강추위에 한반도가 꽁꽁 얼어붙은 느낌이다

春來不似春이련가...40분만에 서울역에 도착한다.

서울역발 → 동대구행 열차표

늘 습관처럼 이른 새벽에 집을 나온탓에 열차에 오르면 깊은 잠에 빠진다.

이 열차는 광명, 대전만 거치고 곧바로 동대구역으로 향하기에 바짝 긴장해야 한다

대전에 내리라는 멘트를 듣고는 깜빡 잠이 들었다가 잠에서 깨어나 시계를 보니

헐~~~07시가 넘어 버렸다...이 열차는 06시 55분에 동대구역에 도착하는데

지나친 모양이다... 경주에서 다시 올라와야 하나 체념을 하고있는데 잠시후에

이번역은 동대구역이라고 멘트가 나오는게 아닌가...

 

사연인즉 강추위로 인해 열차가 정상적인 속력을 내지 못하고 감속 운행을

하다보니 예정시간보다 20분을 훨씬 넘긴 채 동대구역에 도착한다

동대구역(07:16)

서부주차장에서 08시에 출발하는 창녕가는 버스를

타야하는데 시간이 간당간당하니 마음이 급하구나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각하에게 禮를 갖춘 다음에 지하철역을 향한다

도시철도 동대구역 게이트를 통과하는데 지하철이 가버리는

바람에 한참을 기다렸다가 서부주차창으로 향하는 열차에 오른다 

대구 서부주차장(07:50)

지하철역을 빠져나와 대합실에 도착하니 10분정도 시간적 여유가

있으나 아침을 해결할 시간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표를 예매한

다음에 플렛홈으로 향한다

대구 서부발  → 창녕행 버스표

입춘이 지난지가 1주일이 지나가는데, 날씨는 한겨울로 되돌아가는 느낌이다.

이곳 대구 날씨도 체감온도가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졌는지 추워도 너무 춥다.

인간들이 제 정신이 아니니 날씨도 인간을 닮아가는지 제 정신이 아니다.

창녕시외버스터미널(08:44)

추우니까 열차만 늦는게 아니라 버스도 예상 시간보다 

10분 이상 늦은 시간에 창녕 터미널에 도착한다.

 

터미널에 도착하여 평소 이용하던 택시를 호출하니

지금 손님을 모시고 운행중인데 10분만 기다리단다.

오늘은 이래저래 아침부터 꼬이기 시작하니 괜스레

맘이 급해진다...10여분 늦은 시간에 도착한 택시를

타고 들머리인 천왕재로 향한다

천왕재(千往峙:391.1m:09:15)

경상남도 창녕군 고암면 감리에서 밀양시 청도면 두곡리로 가는 고개로

창녕군·밀양시·청도군의 경계가 되는 천왕산 남쪽에 소재하며, 도로명 주소가

창밀로라는 24번 도로가 九折羊腸으로 펼쳐지며, 밀양시 청도면과 창녕군 고암면

경계 표지판, 천왕재 표지판과 넓은 주차장이 보이고, 번지없는 주막이라는 매점도 있다

 

지명의 유래는 길이 험하여 호랑이와 도둑이 많아 행인 1,000명이 모여야

넘어 갈 수 있는 고개라고 한 데서 유래한다고 하며, 두 갈래 길이 있는데,

천왕산 정상을 통과하여 경상북도 청도로 가는 길과 남동쪽으로 가서 밀양시

청도로 가는 길이 있다고 한다.

번지없는주막(09:10~45)

천왕재에 도착하여 택시에서 내리니 이곳 날씨도 예외없이 춥다.

아침도 해결하지 못했는데 기왕 늦은거 아침이나 해결하려고 주막집 문을 열고

들어가니 쥔장과 요리하는 이모님이 둘이서 난감한 표정을 짖고 있는데

내가 들어가면서 아침 식사를 좀 할 수 있느냐고 하니까...이곳에 한달전에 온

나를 보고는 단박에 알아본다...그러면서 하는 말이 지금 가스불이 켜지지

않아서 좀 힘들다고 하면서 가스 고치는 사람이 1시간 넘어야 온다고 한단다.

 

어째서 가스불이 안되냐고 하면서 내가 보면 안되냐고 하면서 여인들이

가르쳐주는 가스통으로 가보니 안전 차단기가 떨어져 밸브가 잠겨 있는게 아닌가...

버턴을 누르면 밸브가 열리는 걸, 몰랐던 모양이다.

내가 간단하게 해결해주니 야~~~ 사장님!...엄지로 최고라는 표시를 한다.

 

내가 두 여인에게 남자는 밤일때만 필요한 게 아니라 낮에도

필요하지요 하고 농담을 건네니, 이 여인들은 뭣이 그리도 좋은지

배꼽을 잡고 웃어댄다.

떡국 한그릇을 시키니 떡국양도 많이주고 고기도 듬뿍 넣어준다.

그러면서 식대를 받지않겠단다...첫 개시이니 그러지 말라고

하면서 밥값을 계산하고, 커피까지 한잔 얻어 마셨는데 시간에

쫒기다보니 급하게 떡국을 먹느라 어떻게 먹었는지 기억도 없다.

나 역시 아침을 해결했으니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주막을 빠져 나온다

산행을 시작하다(09:50)

천왕재 안내판 아래에 있는 수준점을 확인하고 본격적인 산행에 들어선다

도로 윗쪽의 水路를 지나 갑자기 시작되는 급경사길에

조금전 급하게 먹은 음식 탓인지 숨쉬기가 힘이 들 정도로

숨이 차다

432.3m봉(09:58)

밋밋한 등로가 족보있는 432.3m봉이란다.

준.희 쌤의 산패는 없고, 선답자의 시그널이 없었다면

무심코 지나치기 딱 좋은 봉우리이다

432.3m봉을 지난 다음에 한동안 평평한 분지같은 곳을 지난다

안부 갈림길(10:07)

우측의 청도면 두곡리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지나 직진길을 따른다

안부 갈림길을 지나니 묘지가 나오고 분기봉을 향하는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된다

인동장공&강릉최씨 묘(10:10)

인동장공&강릉최씨 묘를 지나면서 급경사의 오르막을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좌측으로 보니 관리가 안되어 있는 묘지의 봉분 위에 있는

나뭇가지에 선답자들의 시그널 2개가 걸려있고, 상석에

義興芮氏와 배부인 海州石氏라고 적혀 있으나 후손들이

찾지 않는 모양이다

한달전에 이 길을 걸으면서 지나왔던 청도(신산경표상:열왕)지맥

분기점격인 천왕산이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범여를 반겨주는구나

토평(왕령)지맥 분기봉으로 오르는 등로는 잠깐이지만

코가 땅에 닿을만큼의 급경사에다 낙엽이 엄청 미끄럽다.

조금전에 급하게 먹은 떡국 탓이련가...갑자기 배가 바늘을

찌르는듯한 통증이 찾아오면서 구토가 시작되는데.

먹은 떡국을 다 토해낸 다음에야 구토가 멈추니 하늘이 노래진다

토평(왕령)지맥 분기봉(10:26)

오늘도 설레는 마음으로 추운 산속으로 들어섰지만 예기치 않은

구토를 한 탓인지 살짝 불안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언제 내가

편하게 산행을 한 적이 있었던가...힘들겠지만 가는데까지

가보는거지 뭐...

분기점을 지나자 예전에 걸어둔 듯한 준.희 쌤의 흔적이 범여를 반긴다

534.4m봉(10:30)

헐~~~이곳이 천왕산이라고?

이곳은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 기록된 족보있는

봉우리이긴 하지만 동북 배하사님께서는

번지수를 잘못 짚어도 한참을 잘못 짚은듯 하다

대한산경표의 저자이신 산으로 아우님이 선배를 반겨준다.

지나간 지가 오래된 듯한 빛바랜 시그널에 토평지맥이라

적어놨다...나도 태백산부터는 토평천이 입수하는 곳으로

걸어볼 생각이요

안부(10:33)

고도를 조금씩 높히면서 등로는 조금씩 까탈을 부리는 듯 하지만

지난 12~1월에 惡名(?)높은 화원지맥을 걸으면서 생긴 내성 탓인지

이런곳은 식은 죽먹기로 가뿐하게 통과한다

지도상에는 등록되지 않은 그야말로 무명봉인 489.5m봉으로 오른다.

아침에 거금(?) 7000원이나 주고 먹은 떡국을 오바이트 하고 났는데도

체기는 가시지 않고, 아직까지 배가 아파오지만, 다행히도 완만한

오르막이라 느릿느릿 황소걸음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489.5m봉(10:37)

등산화가 푹 빠질 정도의 푹신한 낙엽을 밟으면서

내려서니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가 산꾼을 반긴다.

한번도 뵙지는 못했지만 전국의 지맥길에서는 어김없이

만나는 시그널이라 반갑다...

멋지고 튼실한 老巨樹 한그루가 지맥길을 지키고 있다.

아무리 험한 세상이라고는 하나 매스컴에서 떠들어 대는

악한 넘보다, 드러나지 않게 착하게 사는 사람이 더 많기에

세상이 굴러가듯 산도 마찬가지인 듯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귀막고(라디오 안 듣고), 눈감고(신문 안보고 ,TV 안보고 )

사니 참으로 세상살이가 편하던데, 이 노거수를 보니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그러기에 산은 늘 인간의 스승인듯 하다

갑자기 잣나무 조림지 사이로 나타난 멋진 비포장 임도...

맥 산꾼들은 이런걸 두고 고속도로라고 부르지...

무명봉(10:45)

무명봉을 내려서니 양지바른 곳에 남쪽의 화왕산 능선 줄기를

바라보면서 忙中閑을 즐기고 있는 亡者의 보금자리가 나온다.

 

나 역시 올해안에 저 산줄기(계성:신산경표상:화왕)지맥을

걸어볼 계획이지만, 늘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범여의

산행계획은 어디로 튈디 모르는 럭비공과 같아서 장담은 금물이다.

그게 어쩌면 나홀로 산행을 하는 독립군의 特權인지도 모르지...

멀리서도 오셨군요... 나 역시 서울에서 오긴 했지만

이 근처가 내가 태어난 고향인지라 멀리서 왔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구나...

하기사 나도 고향을 떠난지가 50년이란

세월이 훌쩍 넘었으니 고향에 대한 별 감흥은 없다.

별 생각없이 무심코 내려서는데 좌측으로 갑자기 나타난 임도...

임도(10:50)

지도를 확인하니 내가 아침에 산행을 시작한 천왕재에서 지맥 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산 허리를 휘감으며 사면길로 이어지는 임도이구나.

임도에서 바라본 화왕산(火旺山:757.5m)의 모습

밀양(신산경표상:비슬)지맥에서 갈라져 나와서 창녕군을 통과하는

지맥길이 3개나 있는데 신산경표상에서 뎃빵 노릇을 하는 산의

이름이 한결같이 '왕(旺)' 자가 들어가기에 어느 고대국가와 관련이 있나

싶어서 확인을 해보니 '임금 왕(王)' 자 아닌 '성할 왕(旺)' 자로 기록한 게

이채롭다.

 

한달전에 걸었던 열왕산(烈旺山:663.3m), 오늘 걸어야 할 왕령산(旺嶺山:428.6m)

언제 걸을지 모를 저 앞에 보이는 화왕산(火旺山:757.5m)도 마찬가지인데

그 이유는 좀 알아봐야 할 듯 싶다

초반부터 컨디션 난조를 보이는 범여를 배려함인지

이 임도가 그저 고마울수가 없구나...난 맨날 산에게

신세만 지는데 이 恩功을 어떻게 갚아야 하나...

임도를 따라서 10분정도 걷다가 우측으로 휘어지는 길에서

추운 날씨에 손님(?)을 기다리는 깨진 의자가  있는 곳에서

임도를 버리고 좌측의 숲속으로 올라선다.

初行길에 후답자가 길을 잃을까봐 배려해주는 선답자들의 흔적

450.7m봉(11:05)

날씨가 추운지 아님 가뭄 탓인지는 몰라도 뫳돼지의

사우나는 물도 말라 버렸고, 땅바닥도 얼어버렸다

372.8m봉(11:08)

족보에도 없는 372.8m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나뭇가지

사이로 커다란 봉우리 하나가 범여를 겁박하듯 내려다 본다

지도를 보니 토평(왕령)지맥 능선에서 높이로만 따진다면야

최고 뎃방인 봉우리나 뭔 연유인지는 몰라도 산 이름 하나를

부여받지 못한 무명봉이란 타이틀로 찬밥 신세구나 

안부(11:12)

안부를 지나 아무런 흔적도 없는 무명봉에서 높이로는 최고 뎃방인 

547.4m봉을 바라보면서 또 다시 내리막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등로에 있는 生木과 枯死木은 뭘 소근거릴까?

 

중국 제나라 시대의 명재상 안영(晏嬰:? ~기원전 500년)은 그의

저서 안자(晏子)에서 삶과 죽음에 대해 이렇게 갈파(喝破)했다.

 

세상에 죽은 사람을 ‘돌아간 사람’이라고 말한다.

죽은 사람을 돌아간 사람이라고 하는 말은

곧 살아있는 사람은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길가는 사람만이 집을 잃고 방황한다면 온 세상이 그를 그르다

비난하겠지만, 온 세상 사람들이 집을 잃고 방황하고 있으니

아무도 그른줄을 모르고 있다. 

 

* 안자(晏子)는 중국 춘추 시대의 제나라 명재상인 안영의 언행을 기록한 책이다.

  안영(晏嬰:? ~기원전 500년)은 중국 춘추시대 제나라(齊)의 명재상으로 자는 (仲),

  시호는 (平). 안약[晏弱, 안환자(晏桓子)]의 아들로, 제나라 래(萊)의 이유(夷維) 사람이다.

 

  제 영공(靈公), 장공(莊公), 경공(景公) 3대를 섬긴 재상으로서 절약 검소하고 군주에게

  기탄없이 간언한 것으로 유명하였으며, 안평중(晏平仲) 혹은 안자(晏子)라는 존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컨디션 난조를 배려함인지 아직까지 길은 상당히 좋다

묘지(11:18)

편안한 길을 걷다가보니 한 눈에봐도 명당 자리임을 알 수 있는

묘지 너머로 갑자기 등로가 확 열리면서 창녕의 진산이라는

화왕산을 중심으로 구룡산, 관룡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범여의

눈을 호강시켜준다...겨울에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다는 창녕이건만

화왕산의 북사면 지역으로는 눈이 꽤많이 쌓여있다 

길 위에서의 생각 / 류시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 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에 바람을 그리워 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 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는 날을 그리워 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 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자는 죽을것을

염려하고 죽어 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 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 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吉)에서 쓰러진다.

묘지 위해서  한동안 멈춰 화왕산의 멋진 view를 즐긴

다음에 다시 맥길을 이어가는데, 추운 날씨에 滯氣로

인한 탓인지 산행 속도가 나질 않으니 걱정이긴 하지만

최선을 다한 후에 그 다음을 생각해보기로 하고, 천천히 걷는다 

안부 갈림길(11:26)

안부 갈림길에서 고암면 감리로 내려가는 뚜렸한 사면길을

버리고 547.4m봉을 향한 본격적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본격적인 급경사의 오르막을 향하는길에 초반부터 체력저하가

시작되는데, 이럴수록 천천히 가야할 듯 싶어서,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오늘 산행중에 최고봉인 547.4m봉으로 향한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면서 능선에 올라서니...

넓은 평지가 나오고...

잠시후에 잡목이 무성한 547.4m봉에 올라선다

547.4m봉(11:56)

547.4m봉은 신산경표상의 왕령지맥 봉우리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라 그런지 무명봉인데도 이름값은 한다...다른 맥꾼들과는

달리 저질 체력인 범여는 안부에서 짧은 거리를 올라오는데도

30분이란 시간이 걸렸다...정상에는 선답자의 시그널이 많이

걸려있고, 말라 비틀어진 잡풀속에 묻혀버린 삼각점으로 향한다

547.4m봉 정상 삼각점(△청도334 / 1982재설)

낙엽속에 묻혀버린 삼각점

또다른 산패를 바라보면서 서쪽으로 향하는데, 토평(왕령)지맥길중에

가장 으뜸인데도 홀대를 받는구나... 마치 아버지한테 인정 못받는 큰형처럼...

서쪽으로 맥길은 이어지면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서는데

나뭇가지 사이의 우측 아래로는 한달전에 저 곳을 지났던

상가복소류지가 보이고, 좌측으로는 창녕군 고암면 계상리의

마을들이 어렴풋이 보인다

등로에서 바라본 창녕군 고암면 계상리(桂上里)의 모습

계상리(桂上里)의 대부분이 산지와 구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토평천이

서류(西流)하고 북쪽으로는 계팔소류지가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계팔, 나무골,

신기동, 신월, 평촌, 해양동 등이 있다.

 

계팔은 계상리에서 중심이 되는 마을로 계수나무가 여덟 그루 있었다 하여 계팔이라

불리우며, 나무골은 해양동 서쪽에 있는 마을로 앞산이 나비같이 생겼는데 칡이 많다

하여 나비골 또는 나무골, 갈동이라 불린다... 신기동은 계팔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명칭이고, 신월은 평촌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평촌은 계팔 서쪽에 있는 마을로 평탄한 들에 위치한다 하여 평촌이라 이름 붙여졌으며

해양동은 불미골 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547.4m봉 정상으로 올라오는 길도 힘이 들었지만 내려가는 길은

마사토로 된 미끄러운 급경사라 오를때 보다도 더 힘이드는 기분이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주고, 스틱에 의지한 채 조심스레

내려가는데 정오인데도 세찬 바람이 불어서 그런지 날씨는 차갑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모든게 내맘대로 안된다는 걸 내 나이

70을 넘어서야 깨닫는 느낌이다...미끄러운 길을 다리에 너무

힘을 주고 내려와서 그랬는지 갑자기 다리가 굳어지면서

쥐가 나는 통증이 밀려오는데 미칠것만 같구나...베낭을 내려놓고

한동안 다리를 주무려니 통증이 사라지고 다시 길을 나선다

547.4m봉에서 급경사의 내리막길 다 내려오니 어디서 나왔는지

좌측으로 뚜렸한 임도가 나오고, 그 임도를 따라서 크고 가느다란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는  편안한 길을 걷는다.

무명봉(12:22)

정오가 지난 시간임에도 추운 날씨가 풀릴 기미조차 안보인다

트랙을 확인하려고 오른쪽손 장갑을 끼지 않았더니만

손가락이 빠져 나가는 느낌이다...노간주 나무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흔적을 보면서 조심스레 맥길을 이어간다.

무명봉(12:26)

안부(12:29)

가느다란 소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맥길을 호젓하게 홀로 걷는다.

이런길은 내가 가장 선호하는 스타일의 길이다...나홀로 산행길엔

딱 좋은 길...나에겐 이런 길을수 있다는 자체가 즐거움인지 모르겠다

무명묘지(12:34)

무명묘지가 있는 봉우리를 지나 직진길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꺽어져 길이없는 곳으로

내려가는데, 무심코 걷다보면 헛짓거리(알바)하기 딱 좋은 곳이다

길이없는 곳으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 2개가

바람에 나부낀다... 아무래도 홀로걷는 범여가 걱정이

됐던 모양이다...감사합니다

소나무 연가 / 이해인

늘 당신께 기대고 싶었지만

기댈 틈을 좀채 주지 않으셨지요

험한 세상 잘 걸어가라

홀로서기 잘 걸어가라

 

홀로서기 일찍 시킨

당신의 뜻이 고마우면서도

가끔은 서러워 울어습니다.

한결같음이 지루하다고 말하는 건

얼마나 주제넘은 허영이고

이기적인 사치인가요

솔잎 사이로

익어가는 시간들 속에

이제 나도 조금은

당신을 닮았습니다

337.5m봉(12:42)

예전에 묘지가 있었던 흔적처럼 보이는 337.5m의 무명봉에서  완만하게

내려서니 멋진 노거수 한그루가 산꾼을 번겨주는 산영재가 시야에 들어온다

문어의 형상처럼 보이는 멋진 노거수

범여의 눈에는 마치 문어처럼 보이지만 다른 산꾼들의

눈에 어떻게 비칠지 궁금하다...생각이야 각자 다르겠지...

산영재(12:45)

창녕군 고암면 계상리와 성산면 방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고개 위에는

멋진 노거수 한그루가 고개를 지키고 있고, 남북으로 이어지는 움푹한

고개가 옛날에 이 고개를 넘었던 民草들의 哀歡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듯 하다.

 

예전에는 성산면과 고암면의 民草들이 넘나들었던 중요한 고개였는데

지금은 근처에 있는 방골재쪽으로 20번 도로(도로명 주소:고암성산대로)가

뚫리는 바람에 지금은 맥 산꾼들이나 지나가는 잊혀진 고개로만 남아있으며

왜 이곳을 산영재라 부르는지에 대한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다

산영재를 지나 다시 오르막길

코를 흠흠거리면서 솔향의 향기를 느껴보려 하지만

메마른 겨울이라 그런가 향긋한 松香은 느끼지 못하고

헉헉거리는 범여의 가쁜 숨소리만 느끼면서 올라서니

족보있는 349.5m봉가 나온다

349.5m봉(12:52)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 기록된 족보있는 봉우리이건만 그 흔한

준.희쌤의 산패도 보이지 않고, 선답자들의 시그널 몇개만 바람에

흩날린 뿐...아무런 표식조차 없는 홀대받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후손들에 의해 대접을 받지 못하는 무명묘지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349.5m봉 정상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분기점에서부터

편하게 걸어왔던 맥길이 서서히 野性을 드러내며, 맥길스러움을 나타낸다

그래 이 맛이야...

맥길이 이 맛도 없으면 뭔 재미로 걷겠나.

편안한 길을 따라서 가면서 초반에 체기로 이해 리듬이

깨져버린 몸뚱아리를 추스리며 내려서는데 등로 살짝 옆에

소나무숲에 영원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망자의 보금자리를 만난다

묘지(13:00)

오래된 탓인지 床石에 새겨진 망자의 身上에 대한

기록은 글씨가 마모되어 식별할 수가 없구나

안부(13:05)

맥산꾼의 일부 지도에는 말구리재라고 표기가 되어 있지만 다른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조차 없는 무명안부로 좌측의 사면길로

이어지는 등로가 보이는데 고암면 계상리 해양동 마을로 가는 길이다

어렴풋이 보이는 소나무숲 사이로 이어지는 맥길.

마치 초딩이 시절에 소풍가서 보물찾기 할 때처럼 흐릿한

맥길을 이어간다...

326.8m봉(13:14)

산행을 시작하면서 체기로 인해 어려움을 있었지만 느린 걸음으로

오다보니 여기까지 왔다...처음에는 산에서 뭔 일이 생길까봐

산행을 포기를 할까말까 많은 갈등을 겪었지만 그래도 맥길을

걸어야겠다고 결정한 건 잘한 일인듯 하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완만하게 오르니 삼각점이

정상을 지키고 있는 387.5m봉에 도착한다

387.5m봉(13:26)

387.5m봉 정상 삼각점(청도462 / 1982 재설)

방골재 가는 길

NO63송전탑(13:30)

154kV 창녕-구기T/L NO63송전탑을 통과한 다음에...

급경사 길을 내려가는데 묘지의 뒤태가 절반쯤 날아가버린

묘지가 양지 바른곳에서 따스한 겨울 햇살에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서흥김공묘(13:36)

서흥김공묘 아래로 내려서니 방골재를 지나가는 20번 국도가

보이고 생각보다 교통량이 많아 보이며, 간간히 할리데이비슨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라이더들도 보이는구나

등로에서 바라본 방골재를 통과하는 20호선 국도

경상남도 산청군 지리산국립공원(중산리) 인근을 기점으로 경상남도

중부 산간지역(의령, 창녕)을 거쳐 경상북도 청도, 경주시를 지나

포항시까지 동서 방향으로 뻗어있는 도로로 총 연장 241.8㎞이며

산청∼포항선이라고도 하는데, 경상남도 중부 내륙인 의령군, 창녕군과

경상북도 남부 내륙인 청도군을 동서 방향으로 관통하여 연결하는 도로이다

방골재 도로옆에 있는 수준점

방골재(方谷嶺:257.0m:13:41)

경남 창녕군 고암면 계상리와 중대리 성산면 방리를 잇는 고개로  좌측은

고암면 소재가가 있는 중대리가 있고, 우측은 방리를 지나, 예전에 걸었던

밀양(신산경표상:비슬)지맥을 통과하는 청도군 풍각면 비티재로 이어지는

구절양장의 20번 국도가 통과하며 방골(方谷)로 가는 고개이다

 

신라 때에 대로(大路)였으며, 산 너머에 적현원(赤峴院)이 있었다고 한다.

방골재의 '재'는 산 '령(嶺)'이나 고개 '현(峴)'을 지칭하는데, 대체로 산에

고개가 있는 곳에는 '재'가 붙어 높고 험한 곳을 가리켰으며, 령(嶺)은 대관령·

한계령 등 옛 관방이 있는 곳이나 조령·추풍령 등 교통상 중요한 몫을 하던 곳을

일컫는 명칭이었다고 한다.

방골재 휀스에 걸려있는 반바지님의 흔적

도로를 가로질러 결빙주의 안내판 쪽으로 가는데 이곳은

약간 옴팍한 곳이라 그런지 바람도 없고, 따스한 햇볕이

쪼이는 곳이라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준비한다

휴식(13:42~52)

산행을 시작한 지 4시간이 지날 즈음이라 그런지 슬슬 피로가

밀려오기 시작하고, 아침에 급하게 먹었던 떡국을 다 토해 버린 

탓인지 허기도 몰려온다.

 

그러나 아직도 체기가 조금 남아있는 듯하여 먹는게 겁이난다.

그래서 가지고 물만 마시고 그냥 굶어보기로 한다...그러면서

10분정도 휴식을 취하는데, 따스한 햇빛이 너무 좋다.

다시 길을 나서는데....

조금전에 내가 지나온 능선(좌)에 힘들게 올랐던 토평(왕령)지맥의

최고봉인 547.4m봉이 지맥길의 최고봉의 위용을 뽐내고 있고

맨 뒤쪽으로는 한달전에 걸었던 열왕산을 축으로 하여 

우측으로 구룡산~관룡산~화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날씨가 좋으니 정말 환상 그 자체이다

토평(왕령)지맥과 계성(화왕)지맥 사이의 옴팍한 곳에 자리잡은 

창녕군 고암면 계상리 들녘은 봄을 기다리며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고,

나뭇가지 뒷쪽의 들녘 너머로는 화왕산에서 내려오는 산줄기 끄트머리에

박월산(384.9m)이 깔딱진 산불감시초소봉으로 오르는 범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고암면 소재지 동북쪽에 위치한 계상리(桂上里)는 본동인 계팔(桂八)은 오래된

마을로 8개의 봉우리를 뜻하는 제팔(梯八)이라 불리다가 발음이 좋지 않아

1870년 경 8개의 봉우리가 곧 8명의 대과 급제자를 배출하리라는 설에 따라

계팔(桂八)로 변경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계상리로 바뀌었다.

 

옛날부터 한학(漢學)에 대하여 자부심을 갖고 있는 마을로 벽계정, 계산재,

계산서당 등이 있으며,  행정리로는 칠월, 계팔, 신기 3개로 나뉜다

산불감시초소봉(292.4m:13:57)

곧추선 능선으로 올라서니 산불감시초소가 보이고, 초소에서 나를

내려다보고는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서울서 왔다' 고 하니 대단하시다면서

커피를 한잔하고 가라는데 지금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그러니 감사한

마음만 받겠다고 하니 조심해서 가시라고 인사를 한다.

잠시후에 가야할 능선을 올려다 보는데 맨 좌측의 봉우리는 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373.1m봉이고, 그 앞의 봉우리가 맥길인데, 저기서

우측으로 꺽어져 가장 높은 봉우리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왕령산으로

가는 맥길인데, 보기에는 유순해보이는 능선 같은데,  지맥길이란

산속으로 들어가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으니... 옛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속은 모른다 '고 했는데, 지맥길의 산 속도 같은 느낌이랄까...

 

좌측 아래로는 방골재에서 고암면소재지가 있는 중대리로 내려가는

九折羊腸의  20번 국도가 보인다

산불감시초소봉에서 바라보니 창녕군 고암면(高岩面)소재지가 보인다

 

창녕군에 속해있는 고암면은 동쪽으로는 산악을 경계로 밀양시 청도면과,

서북쪽으로는 대합면·대지면·성산면과, 남쪽으로는창녕읍과 접하고 있다.

1914년 고암면(古巖面)과 월미면(月未面)을 통합하면서 월미면에 속하였던

도야리와 하리를 읍내면으로 분속하여 고암면(高岩面)이라 하였다.

『여지도서』(창녕)에 '고암면(高巖面)' 지명을 수록하고 있는데, "관문에서

10리 떨어져 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서쪽으로 개방되고, 동쪽은 열왕산(烈旺山), 남쪽은 화왕산(火旺山 )과 관룡산(觀龍山),

북쪽은 천왕산(天王山)으로 둘러싸인 험준한 산지를 이루며, 산지에서 발원한 토평천

(土坪川)이 면의 중앙부를 가로질러 낙동강에 유입하며 토평천을 따라 평지가 발달하여

억만리 일대에 평야가 펼쳐져 있는데, 경지율은 낮지만 주민은 농업에 종사하여 순수한

농업지역을 이룬다...주요 농산물로 쌀과 감이 많이 생산되며, 특산물로 육질이 연하고

맛이 좋은 꽈리고추를 생산하고 있고, 도로는 창녕~밀양 국도가 중앙부를 가로지르고

있으나 교통이 불편한 편이다.

국가유산으로는 감리(甘里) 마애여래상(경남유형문화유산 46), 청민공 노변소의 묘

(경남기념물 153), 구니서당(경남문화유산자료 249), 대산성(臺山城), 우천리 고분군

(牛川里古墳群), 금곡사지(金谷寺址) 등이 있다.

커피를 대접하겠다는 초소를 지키는 분과 유쾌한 작별을

하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좁은 소로(小路) 양 옆으로 있는

키작은 소나무들이 텃세를 하려는지 범여의 베낭을 당기면서

태클을 걸어대기 시작한다.

7분 정도를 걸어니 암릉으로 된 고개가 나온다.

고개(14:05)

창녕군 고암면 중대리와 성산면 방리 사이에 있는 고개인데

지도상으로는 아무런 표식조차 없는 무명고개이고 좌측 아랫쪽의

나뭇가지 사이로는 방골재에서 고암면 소재지가 있는 중대리로

향하는 20번 국도가 흐릿하게 보이며, 무너진 돌탑이 고개를

지키고 있구나.

 

고암면에 있는 중대리(中大里)는 고암면의 면소재지로 고암면의

가운데에 위치한 큰 마을이므로 중대동이라 불리우며, 면사무소,

초등학교, 서드에이지라는 큰 요양시설이 있으며, 20호(산청-경주),

24호(광주-울산) 국도가 중대에서 창녕으로 가는 삼거리 길을 이룬다. 

어디에 쓰는 물건인고?

까칠한 고개에서 올라서니 왕령산으로 향하는 등로는 고속도로 수준이며,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는 몰라도 등로 주변에는 플라스틱 물통이 일렬로

서서 산꾼을 반긴다

플라스틱통의 도열을 받으며 봉우리에 올라서니 좌측 아래의

양지바른 곳에 화왕산 능선을 바라보며 누워있는 묘지가 있구나.

밀성손씨&배부인 경주이씨묘(14:09)

묘지에서 올라와 마루금으로 복귀한다

좋은 길은 여기까지?

 여태껏 편히 걸어왔던 등로는 갑자기 뚜렸한 등로가 사라지고...

길이 없는 곳을 향한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시작되는데, 여기까지

오면서 위태위태했던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한다

쌤께서는 어찌 내 맘을 귀신처럼 아는지...

헉헉거리면서 힘들게 올라가는 가풀막길에

힘내라는 격려문구를 걸어 놓으셨다.

늘 健安하셔요...세세생생 복받을깁니다

갈수록 발걸음이 무거워진다...배가 고파도 너무 고프지만

먹는게 겁이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수통에 있는

물 한모금으로 허기를 견디면서 천천히 맥길을 이어간다

291.7m봉(14:25)

지도상에는 없는 291.7m의 무명봉에 올라 왔던 길을

뒤돌아 보면서 선 채로 잠깐동안의 휴식을 취하면서 

방골재에서 방리로 이어지는 20번 국도를 바라본다

 

창녕군 성산면에 속해있는 방리(芳里)는 성산면의 동부로 고암면에서

국도 20호선을 따라 청도 방면으로 북쪽 방골재를 넘으면 나오는 마을이다.

 

방리는 밭이 많은 골짜기이므로 밭골이라 불리던 것이 방골로 변한 것으로

봄이면 산에 참꽃이 만발하는데 이 경치가 아름다워 꽃다울 방(芳)자를 썼다고 한다.

비티재는 방골에서 청도군 풍각면 금곡리와 안산리로 가는 산과 고개로, 꿩이 나르는

형국이라 하여 비치(飛雉)재라 하였고, 후에 비티재로 음이 변하였으며,행정리로는

원동, 방리 2개로 나뉜다.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길

간벌을 하고 심어논 편백나무 조림지는 쥔장이 관리를 하지

않은 탓인지 생육 상태가 썩 좋지가 않구나...좌측으로는

족보있는 373.1m봉이 보이지만 맥길이 아니라 갈 일은 없다

373.1m봉 갈림길(367.1m:14:35)

산불감시초소봉에서 거리상으로는 그리 멀지 않은 곳이지만

컨디션 난조로 인해, 38분이란 시간이 소요됐지만, 이곳까지

걸어왔다는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싶다...무명봉인 정상에는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많이 보이고, 373.1m봉은 좌측으로

이어지지만, 맥길은 북쪽의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등로가 보이지 않는 희미한 맥길

북사면의 음지라 그런지 땅바닥이 얼어있는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안부(14:41)

경주최공&김해김씨묘(14:43)

안부를 지나면서 오르막으로 향하는데 묘지 가운데로 이어지는

맥길을 따라서 왕령산으로 향하는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경주최공 부부 묘지를 지나 뻑센 오르막이 시작되는데

봉분조차 잘 보이지 않는 월성최씨 할매가 영원한 안식을

취하고 있는데, 행여나 민폐가 될까봐 조심스레 오르막으로 향한다

빡센 오르막길...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무명봉으로

향하는데 너덜길 같은  돌길을 지나 빡세게 올라선다

382.4m봉(15:12)

안부에서 힘들게 무명봉에 도착한 후에 90도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서니 왕령산으로 가는 길이라서 그런지

등로는 아주 좋다

추운 날씨라 땀은 나지 않지만, 그래도 한주동안 세속에서 찌든

노폐물이 몸속에서 빠져 나오는지, 옷에서 베어나오는 역겨운

악취가 코끝을 자극한다

열심히 체력을 단련하거라...건강은 한번 망가지면

회복하기가 그리 쉽지 않느니라...세상살면서 앞만 바라보며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했던  범여도 몸뚱아리를 칼로한번

난도질하면서 건강을 잃고나니 모든게 허무하더라.

무명봉(15:20)

왕령산이라 생각하고 봉우리에 올랐는데 이곳이 왕령산이

아니고 아직도 더 가야 하는구나...김치국물만 먼저 마신 꼴이구나

고도차가 없는 편안한 길이긴 하지만 무명봉에서

10분을 더 걷고 나서야 오늘에 처음을 산 이름을

부여받은 왕령산 정상에 도착한다

형왕령산(兄旺嶺山:428.6m:15:32)

창녕군 성산면 방리와 고암면 간상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명성에 비해

그 흔한 표시석 하나도 없고 조망도 없는 산으로 준희쌤의 산패마저 없었다면

그냥 지나치기 딱 좋은 산이다...멋진 지명을 가지고 있는 산이지만, 왕령산에

대한 유래는 창녕군의 그 어떤 자료에도 보이지 않는구나.

오늘 걷는 지맥길에는 왕령산이 2개가 있는데 이곳 왕령산이 고도가 높은

관계로 형님 왕령산이라고 부르고, 잠시후에 만나가 될 아우 왕령산이

있는데 아우왕령산에 대한 자료는 여러 문헌에서 보이지만, 이곳의

왕령산에 대한 자료는 없다...아버지한테 미움을 받는 큰 아들처럼..,

 

국립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구분없이 2곳을 다 왕령산이라

표기를 해놔서 조금은 헷갈리는 곳이다

왕령산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고도차가

거의 없는 맥길을 따라서 서쪽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안부(15:38)

418.2m봉(15:42)

지도상에 기록된 엄연한 족보있는 봉우리이건만, 준.희쌤의

산패는 보이지 않고,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만 외롭게 정상을

지키고 있다

소나무숲 사이로 이어지는 지맥길...오후가 되었는데도

바람이란게 멈출줄을 모르구나...아!...춥다

안부(15:47)

안부를 지나면서 까칠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희미한 등로로 올라서니...

예전에 성터였는지 돌담이 보이고 잡목의 저항을 받으면서

돌담을 넘으니 산불감시초소가 426.1m봉에 도착한다

426.1m봉(15:56)

426.1m봉 정상에 올라서니 날씨가 靑冥한 탓일까

동서남북 전체가 시원스레 보이는게 이런걸 一望無際라는 걸까.

초소를 바라보니 산불감시요원이 퇴근 시간이 임박한 지

범여를 본체만체하며 퇴근준비를 하는 중이다

 

초소 벽에 붙어있는 준.희쌤의 산패에는 지도상의 표기와는 달리

426.5m봉이라고 되어 있는데, 그때보다 높이가 40cm가 낮아졌구나.

하기사 사람도 나이가 들면 키가 줄어드는데, 산도 그러는 모양이다.

산패에는 분명히 삼각점이 있다고 표시가 되어있어 삼각점을 찾으러

다녔지만 삼각점 수색에는 실패를 한다

북쪽으로 바라보니 비슬산 자락의 남쪽끝자락의 조화봉(照華峰:1,059.4m)

정상에 있는 비슬산 강우 레이더 관측소가 어렴풋이 보이고, 우측으로 뻗어

내리는 밀양(비슬)지맥길의 능선...2021년 10월에 홀로 저 길을 걸었으니

벌써 4년이란 세월이 흘렀구나...

북서쪽을 바라보니 깨끗한 푸른물이 가득 차 있는 달창저수지가 보이고,

저수지 좌측의 야트막한 봉우리가 퇴포산인데 카카오 지도에는 티피산으로

기록이 되어 있고,  그 뒷쪽으로는 예전에 경북 달성군이었다가 지금은

대구광역시로 편입된 현풍읍과 유가읍이 아련하게 보인다.

 

퇴포산(退砲山:268.4m)은 창녕군 성산면 정녕리와 후천리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본말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북서쪽으는 달창저수지가 있다

지명은 한자로 '퇴포산(退砲山)'이라 쓰고, '토포산'이라 읽으며, 구전에 지명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본말리의 지형과 관련한 것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즉, 구지면 본말리가 호랑이 형국을 하고, 지명은 포수가 총을 쏘는 형상을 한 데서 "총을 쏜다."는

뜻의 토포(吐砲)산이라고 한 것이 토포(退砲)라고 변했다고 한다. 또는 토포를 토표(土豹),

즉 표범이라 하여 지명은 표범 형국이며, 달성군 본말의 태봉산은 범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쪽 표범이 그 쪽을 향해 노려보고 있으므로 태봉산의 범이 꼼짝을 못해 본말에서

만석꾼이 끊이지 않는다는 전설이 내려온다고 한다.

저 달창저수지는 달성과 창녕의 경계에 있는 저수지라 하여 붙혀진 이름이며,

창녕군 성산군 가복리에서 발원한 운봉천(雲峰川)이 달창저수지에 와서는

차천(車川)이라는 이름표를 바꿔 달고, 유가읍과 현풍땅을 적신 다음에

낙동강으로 입수한다

잡목의 저항이 심한 서쪽으로 바라보니 바로앞에 여인의 적꼭지처럼

봉긋하게 생긴 태백산(284.6m)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고, 그 너머로는

달성군 구지산업단지가 어렴풋이 보이며, 남쪽으로는 창녕군 이방면이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니 화왕산 끝자락 아래에 있는 창녕읍내가

아련하게 보이고 북쪽으로는 방골재에서 봤던 고암면 소재지도 보인다

 

창녕군에 속해있는 창녕읍(昌寧邑)읍은 1960년 1월 1일 읍으로 승격하였다.

북쪽은 고암면(高岩面), 서쪽은 대지면(大池面)·유어면(遊漁面)·장마면(丈麻面)과

접하고 동쪽으로 밀양시와 경계를 이루며, 화왕산(火旺山)·관룡산(觀龍山)이 남북으로

이어져 있고, 서부에 해발고도 100m 이하의 구릉군이 발달하였다.

주요농산물은 쌀·보리 외에 양파·마늘·고추를 많이 생산하며, 옥천리 일대에서 채취되는

자연송이는 전량 일본으로 수출하고 있으며, 또한 낙농업이 발달하여 젖소·돼지·닭의

사육이 활발하고, 산지에서는 양봉업도 이루어진다. 읍의 중앙부로 구마고속도로와

부산∼마산 국도가 통과하여 인접지역 간의 교통이 편리하다.

국가유산으로는 창녕 신라진흥왕척경비(新羅眞興王拓境碑:국보 33), 창녕 술정리

동삼층석탑(述亭里東三層石塔:국보 34), 창녕 송현동 석불좌상(보물 75),

관룡사 약사전(觀龍寺藥師殿:보물 146), 관룡사 대웅전(보물 212), 창녕탑 금당치성문기비

(昌寧塔金堂治成文記碑:보물 227), 관룡사 용선대석조석가여래좌상

(龍船臺石造釋迦如來坐像:보물 295), 창녕 석빙고(石氷庫:보물 310), 관룡사 석조여래좌상(보물 519),

술정리 서삼층석탑(보물 520), 화왕산성(火旺山城:사적 64), 목마산성(牧馬山城:사적 65),

창녕 교동(校洞) 고분군(사적 80), 창녕 송현동 고분군(사적 81), 창녕 하병수씨가옥

(河丙洙氏家屋:중요민속자료 10), 토천(兎川)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유산 10), 관룡사 약사전

삼층석탑(경남유형문화유산 11), 관룡사 사적기(事蹟記:경남유형문화유산 183), 창녕향교

(경남유형문화유산 212), 창녕객사(경남유형문화유산 231), 관룡사 석장승(石長丞:경남민속자료 6),

직교리 당간지주(直橋里幢竿支柱:경남문화유산자료 17), 관룡사 부도(浮屠:경남문화유산자료 19),

석불사 석불입상(石佛寺石佛立像:경남문화유산자료 20), 관룡사 원음각(경남문화유산자료 140),

창녕 척화비(斥和碑:경남문화유산자료 218) 등이 있다.

426.1m봉을 탈출하려니 잡목의 태클이 워낙 심해서 무척이나 힘이든다

여름철에는 고생께나 할듯 싶다

묘지(16:04)

잡목들의 강력한 저항을 千辛萬苦 끝에 탈출하여 내려서니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묘비에 적힌 망자의 이력은

낡고 바래져 판독조차 쉽지가 않구나...

 

西向이긴 하지만 양지바른 곳이라 터는 잘 잡았네요

억새꽃 그리움 / 이원문

 

쓸어 안은 너의 꽃

바람 불어오면

그날이 잊혀질까

 

몇번의 마음으로

다시 찾았건만

못 잊을 그날만이

 

그날만의 흔적만

옛날을 찾는다

그 옛날을 찾는다

해는 서서히 하루를 마감하려는지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는데

범여는 아직도 산에대한 미련이 남아있는지 아직도 산을 헤맨다.

산에 그리움일까?...아니면 산에 대한 짝사랑일까.

묵은 임도(16:15)

느릿느릿한 걸음으로 내려서는데 갑자기 어디서

뛰어나왔는지 낙엽이 수북히 쌓여있는 묵은 임도가

범여를 놀래킨다

안부(16:23)

426.1m봉에서 내려와 고도를 많이 낮춘 다음에 다시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앙증맞은 암릉이 있는곳에 도착한다

271.4m봉(16:28)

이곳 역시 족보있는 봉우리이건만 산패는 보이지 않고

선답자의 시그널 몇개만이 이곳이 족보있는 봉우리임을 알려준다

백두사랑산악회의 낡은 시그널이 걸려있는 271.4m봉에서

내려서는데, 소나무의 무덤과 무질서하게 널부려져 있는

고사목을 피해가면서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6:32)

안부를 지나면서 다시 오르막길...시간이 흐를수록 발걸음은 느려진다.

하루종일 먹은 것이라곤 보리차물 밖에 없는 탓이라 그런지 이제는

방전될 체력마저도 없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고 천천히 오르다보니

오룩스맵상에 표기된 왕령산에 도착한다.

준.희쌤의 산패에는 이곳을 아우왕령산이라 표기해놨다.

조금전에 지나온 왕령산을 고도가 높아서 왕령산이라

부르고, 이곳은 고도가 낮아서 아우 왕령산이라 부르는데,

고도차는 있지만 거리도 그리 멀지않고, 똑같은 지맥길에

같은 지명이 2개나 있으니 조금은 헷갈린다...그래도 아우왕령산이라 

부르는 이곳에 대한 지명유래에 대한 자료는 보인다

아우왕령산(弟旺嶺山:262.6m:16:40)

창녕군 성산면 냉천리와·운봉리와 고암면 간상리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간적 마을 북쪽에 있는 산으로 산 위에 왕령산성이 있으며, 기우제를 지냈던

무재터가 남쪽 중턱에 남아 있고, 또 임진왜란 때 군사들이 인근의 비슬산과

화왕산을 봉화로 연결하던 봉화대 터가 남아 있으며, 왕재산이라고도 하는데,

왕재, 즉 크고 높은 재에 '산'이 덧붙어져 매우 높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한다.

지명은 지리지와 고지도, 읍지류에 수록된 '유남산(楡南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기도 하는데 기록의 차이로 지명 비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한다. 즉 읍지에서는

"현의 북쪽 30리",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여지도서』에서는 "현의 북쪽 10리에 있다."

라고 한 것에서 거리가 20리나 차이가 난다. 읍지 기록에 의하면 왕령산이 유남산이

되지만, 조선 후기 여러 지리지의 기록을 따를 경우에는 고암면 억만리 어은에

소재한 방어산이라는 설도 있다.

아우왕령산을 지나자마자 등로가 보이지 않는

좌측으로 급격하게 휘어져 내려가는데...

오늘은 이곳까지 오면서 지맥길을 편하게 걸었는데

그냥 보내주지 않으려는지 가오를 잡으면서 산꾼을 괴롭힌다

가오리 나무?

무명묘지(16:44)

낙엽이 푹신한 등로를 아무런 생각없이 내려오다가

갑자기 푹파인 곳이 있었는데 그곳에 빠지면서

푹하고 꼬꾸지는데, 넘어지면서도 내 자신이 우습다.

방심하지 말고 걸어라는 경고인가...

안부(16:46)

안부에서 오르면서 트랙을 확인하려고 스마트폰을 켜는데,

헐~~~이게 뭐여...베터리 잔량이 8%밖에 안 남았네...이걸 어쩌남.

251.1m봉(16:51)

원래 오늘의 산행 계획은 성산중학교까지 가려고 했는데 아침에

체기로 인해 걸음이 느려지면서 예상보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고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걸으면 성산중학교에서 끝내고 창녕에서

서울가는 18시 30분 버스를 탈수는 있겠지만, 문제는 스마트폰이다.

하는 수 없이 이 봉우리 아래를 지나가는 성산임도에서 산행을

마무리하기로 한 다음에 아침에 이용했던 택시기사에게 이곳으로

오라고 전화를 하고는 지금 스마트폰 베터리 잔량이 없어서 비행기

모드로 해놨으니 고암면 간적 저수지쪽으로 해놓고는 임도로 향한다

성산 임도(17:00)

창녕군 성산면 십이리와  고암면 간상리를 이어지는 임도인데 말이

임도이지 2차선의 포장도로인데, 지방도로로 승격이 된 느낌이다

임도에서 간상리 방향으로 내려가면서 택시가 오기를 기다리는데

30분이 훨 지났는데도 택시는 오질 않으니 조금은 불안한 느낌이다

그 사이에 스마트폰 베터리 잔량이 3%를 가리키니 사용할 수도

없고 그러기를 20분이 지난 후에야 택시가 도착한다.

 

택시기사는 성산면 십이리쪽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연락도

안되고 하여 이리저리 헤매다가 포기하고 읍내로 향하는 길이란다.

서울가는 버스 시간이 촉박할까봐 걱정을 했는데 시간은 촉박하지만

잘 하면 가능하겠다면서 속력을 내는데 정확하게 5분전에 터미널에 도착한다

창녕 터미널(18:25)

5분전에 터미널에 도착하고, 부곡에서 온 버스가 대기하고 있다

창녕발 → 서울행 버스표

버스기사에게 잠깐 기다려 달라고 부탁하고 버스표를 예매하여

급하게 차에 오른다...씻지 못하고 옷도 갈아입지 못해서 엄청나게 찝찝하다.

그래 어쩌랴...참아야제...버스가 중간 휴게소인 옥천휴게소에

도착하고,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 입고나니

조금은 살것만 같다...그 이후에 깊은 잠에 빠졌다가 서울에

도착하여 집으로 향하는데 날씨가 엄청 춥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