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행일시: 2026년 02월 08일
☞ 산행날씨: 쾌청한 날씨...강추위에 바람이 드셈
☞ 산행거리: 도상거리 12.7km + 들머리 1.1km / 5시간 10분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계동마을회관 -방굼고개- 안부- 126.5m봉- 분성배씨 가족묘
구룡산 갈림길- 115.9m봉- 안부- 서흥김공 묘- 안부- 무명봉
경산김공&인동장씨묘- 구룡산- 구룡산 하산길- 무명묘- 밀양박공 묘
연안차공&창녕성씨 묘- 100.6m봉- 안부- 무명봉- 농로- 포산곽씨가족묘
노랑갓골산- 갓골고개- 62.5m봉 갈림길- 갓골마을- 밀성박씨 추모당
70.7m봉- 토마토고개- 기독교인 묘지- 100.9m봉- 무명봉- 뒷골마을
밀양박공 묘(알바)- 험듬산 갈림길- 임도삼거리- 삼거리- 151.5m봉
코장산갈림길- 안부- 코장산- 안부- 물탱크- 189.5m봉- 공터- 솔고개
☞ 소 재 지: 경상남도 창녕군 대합면, 이방면
범여와 남도지방과 지맥길 인연이 지독히도 맞지 않은가보다.
남도지방 지맥길은 산이 높거나 험해서도 아니지만 사람들이 잘
다니지 않다가 보니, 길도 없거니와 잡목의 저항이 워낙 심해서
여름철에는 아예 산행을 포기해야 하기에, 나처럼 홀로 다니는
산꾼에게는 정말 고역이다....지난주에 힘든 삼포(신산경표상:옥룡)지맥을
마치고 함평(신산경표상:철성)지맥을 시작하려고 자료를 준비중인데
토.일요일에 엄청나게 폭설이 내린다다고 하여 포기를 하고 날씨가
좋다고 하는 영남지방으로 발길을 돌리기로 한다

서울역(04:55)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와서 서울역가는 첫 버스를 기다리는데
날씨가 장난이 아니다...버스정류장 전광판에 찍힌 날씨가 -14도를
가리키는데다가 바람까지 불어대니 추워도 너무 춥다

서울역발 → 동대구행 열차표
집을 나올때는 딱히 어느 지맥길을 가겠다는 생각도 없이 왔다가
토평지맥길을 걸어보기로 한다...이 지맥길을 태백산(창녕군 대합면 소재)을
기준으로 하여 토평천으로 향하는 대한산경표와 도동나루로 향하는 신산경표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걷고있는 셈이다...대부분의 산꾼들이 신산경표를
따라서 걷고있는 도동나루 방향은 지도와 트랙이 자세하게 나와있어
편하게 맥길을 걷고 있지만, 토평천으로 향하는 대한산경표의 지맥길을
걷는 산꾼들도 거의 없지만, 지도도 없다...水界를 기준으로 걸어가는
백두사랑산악회와 송백산악회 등이 걸었지만 워낙 지나간 지가 오래되어
흔적조차 없지만 개척자의 심정으로 걸어 보려한다

동대구역 광장(07:00)
이 나라는 지금 보수,쪼개져 고통받는 民草들에게는 눈꼽만큼의
관심조차도 없는 정치하는 인간들이 걱정이 되는지 이 嚴冬雪寒에
광장에서 홀로 민초들의 安危을 생각하면 얼마나 서러울까?
죄송한 마음에 閣下에게 禮를 올리고 지하철역으로 향한다

지하철 동대구역(07:10)

대구서부주차장(07:33)
이곳에서 평소처럼 대합실내 분식집에서 오뎅2꼬치와
김밥한줄로 아침을 해결한 다음에 창녕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대구서부발 → 창녕행 버스표

08시에 출발하는 창녕행 버스를 타면서 평소 이용하는
창녕택시를 예약해놓고 버스에 오르는데 버스가 이제서야
시동을 걸었는지 버스안이 냉골이다...40분을 넘게 개떨듯이
떨다가 창녕터미널에 도착한다

창녕시외버스 터미널(08:45)
택시를 타고 들머리인 계동마을로 향하는 오늘 창녕지방의 기온이
영하 10도라는데 기사양반의 이야기로는 올해 들어서 가장 추운
날씨라고 한다.

계동(桂洞) 마을회관(09:05)
계동은 창녕군 대합면 내울리 남부의 행정리 명칭으로 울기와 밤실,
일신동 등 일대 마을을 말하는데, 절골에 계산재(桂山齋:경주최씨 봉선소)가
있었음을 보아 이 일대가 계산으로 불리었던 것 같으며, 이 마을은 예전에
경주최씨의 집성촌이었다고 하며, 마을의 도로명 주소가 나복(螺福)길이다.
계동마을을 지나 임도로 올라가는데 1년전과는 달리 임도를 마구 파헤쳐놔서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안되고, 택시가 더 이상 갈 수가 없어서 이곳에서
내려 들머리로 향하는데 지난해 3월에 왔으니 1년만에 온 셈인데
방굼고개로 향하는 길이 바뀌어도 너무 바뀌었다...한참을 가다보니
방굼고개가 아닌 성지골로 향하다가 지도를 확인한 다음에 방굼고개로 향한다.
내울리에 속해있는 성지골(聖旨谷)은 고려시대에 인도에서 건너온 성지도사란
스님이 명당을 찾아서 이곳을 지나갔다하여 유래된 지명으로, 그가 잠시
이 골짜기에 쉬면서 地勢를 보고나서 ‘구룡산 정기를 받아 평화로우리라’ 하였다는
유래가 전해진다
* 봉선소(奉先所)란 시조(始祖) 중심으로 봉선·돈친정신을 앙양하고
전통 종중 사업을 계승하 묘소·유적지 수호하는 殿閣을 말한다

방굼고개(09:25)
좌측으로는 대합면 내울리 천왕저수지가 있는 새땀마을에서
방굼마을로 넘어가는 자동차가 다닐만큼 임도는 넓으며
지명의 유래는 방굼마을에서 차용한 듯 하다
창녕군 대합면 내울리에 있는 방굼마을은 밤굼, 방굴 등으로도
불리는데 울기의 북쪽, 옥산의 서편에 있는 마을로, 옥산의 옛마을이
있었던 곳으로 6.25동란 때는 이 일대에 전투가 치열하여 완전히 폐허화
되었고, 그때 사람들이 이곳을 많이 떠나 비게 되었는데 그후 새 사람들이 와
새동리를 만들었다 하는데, ‘방은 밭이 변한 것’ 으로 ‘밭이 많은 굼진 곳’ 이란 뜻이다.

산행을 시작하다(09:35)
산행을 시작하는 방굼고개는 지난 3월에 걸었던 때와는 달리 뭔 공사를
시작하는지 전혀 다른 방향으로 바뀌어 버려서 상당히 헷갈린다
이른 아침인데도 날씨가 상당히 춥다...거기다가 바람까지
강하게 불어대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중무장을 한 채
산행을 시작한다

방굼고개에서 올라서니 잡풀에 묻혀버린 묘지가 나오고
예전에 한가닥 하신분의 묘지같은데 후손들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은 느낌이다

추운 날씨에 겨울이라 그런지 산 전체가 회색빛의
을씨년스러운 모습이다...봄이 시작된다는 立春이
지난지가 4일이나 지났건만 아직도 이곳은
한겨울의 중앙에 서 있는 느낌이다

안부(09:38)

좌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대합면 내울리 천왕 저수지가
보이는데 퇴산천의 발원지가 되는 저수지이기도 하다
창녕군 대합면에 속해있는 내울리(內亐里)의 지명유래는 ‘마을이
우렁이(소라)처럼 생겼다’는 뜻의 ‘울기(亐)’에서 에서 유래된 지명으로
울기(亐)는 우렁이 터·우렁이 마을이라는 의미로 풀이되며, ‘우’의 음차로
‘울기(亐: 于基)’로도 해석한다.
우렁이를 다시 훈차하니 ‘소라 라(螺)’ 를 썼으며, 소라나 고동은 배로 기어
다녔으므로 복족류(腹足類)의 마을 이름에 땀에 따라 나복(螺腹)이라
하였는데 螺腹이 螺福으로 변한 마을 이름으로 한자로 표기하고 있다

126.5m봉(09:45)
춥고 힘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산을 걸을 수 있다는 건 즐겁다.
언제 누가 간 지도 모르고 내가 가는 이 길이 대한산경표상의
토평지맥길이라는 걸 내가 확신하기에는 자신이 없는데 트랙을
보니 126.5m봉이라고 나와 있고 나뭇가지에 빛바랜 산으로님
(대한산경표의 저자)의 시그널이 선배 범여를 반긴다

산으로님 고맙소...당신이 있기에 오늘 내가 희망을 갖고 걷고 있소...

나뭇가지 사이로 지맥길에서 떨어져 있는 구룡산이 얼굴을 내민다.
오늘 내가 걷는 이 길은 남들이 잘 다니지도 않고 다닌지도 오래된
곳이라 선답자들이 지나간 흔적을 더듬으며 걸어가는데다 날씨마저
아주 추운 날씨라 어차피 합수점까지 못할 것 갔으니 구룡산이나
가봐야겠다

낙엽만 무성할 뿐 어차피 개척산행을 하면서 걷는데
봉사문고리 잡는 기분으로 걸으니 바짝 신경이 쓰인다

추운 날씨에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忙中閑을
즐기는 亡者부부의 모습이 참으로 부럽소이다

구룡산을 바라보며 내려서는데 구룡산 정상은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분성배씨 가족묘(09:48)

묘지를 헤치는 뫳돼지에 대한 고육책인가?
망자의 천년주택은 감옥살이 하는 기분이다

구룡산 갈림길(09:50)
지맥길은 이곳에서 우측으로 향하지만 용기를 내어 구룡산으로 향한다

뭐든지 그냥 하는 사람은
열심히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고
열심히 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당할 수 없고
즐겨서 하는 사람은
미쳐서 하는 사람을 당할 수 없다

115.9m봉(09:55)

지맥길은 아니지만 이 주위에서 아름있는 명산이다 보니
구룡산으로 향하는 길은 좋다...주변에 지금은 농사를
짓지 않은 듯한 농장이 보이고 탱자나무 울타리가 구룡산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해준다

안부(09:58)

서흥김공 묘(10:10)

안부(10:12)

무명봉(10:14)

경산김공&인동장씨묘(10:17)

경산김공 부부묘지에 올라 동북쪽을 바라보니 미세먼지로 인해
약간 흐리긴 해도. 대한산경표의 토평지맥과, 신산경표상의
왕령지맥의 갈 길이 확연히 다른 분기점의 중심에 선 태백산이
오똑 솟아있고 그 뒷쪽으로 펼쳐지는 비슬산의 스카이라인이 환상적이다.

날씨가 추워서 아직까지 몸뚱아리가 예열이 덜 된 탓인가?
천천히 오르는데도 힘이 든다...천천히 오르다가 보니...

삼각점 표시판과 구룡산 정상석의 뒷태를
보이는 구룡산 정상이 하는 말... 잘 왔구먼 하면서 산꾼을 반긴다

구룡산(九龍山:208.9m:10:23)
창녕군 대합면 내울리와 신당리, 이방면 초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서 멋진 정상석과 3등 삼각점, 선답자들의 시그널에 바람에
휘날리나 조망은 그리 좋지 않은 편이며 근처에는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우포늪이 있다...지명의 유래는 “아주 오랜 옛날 구룡산 계곡에는 용 열 마리가
승천을 위해 수련을 했고, 아홉 마리는 승천했지만 한 마리는 남아다고 하여”
유래된 지명이며 이 전승은 불교적 내용이 많은 관찰사(승천사) 전승과 함께
전해지는 산이라고 한다...또다른 설은 산봉우리와 등이 아홉개가 있다고 해서
불렀다고 한다.

구룡산 정상석의 뒷면 모습
람사르습지(Ramsar 濕地)는 생물 지리학적 특징이 있거나 희귀 동식물의
서식지로서 보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어 ‘람사르협약’에 의해 지정된 습지를
말하는데, 람사르협약이란 1971년 이란의 람사르에서 체결된 협약으로,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와 습지의 자원을 보전하기 위한 국제환경협약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1997년에 101번째로 가입했으며, 2008년에는 경상남도 창원에서 제10차 람사르 총회가
열렸다.
2012년 10월 현재 람사르협회에 등록된 우리나라의 람사르 습지는 대암산 용늪,
창녕 우포늪, 울주 무체치늪, 신안 장도습지, 태안 두웅습지, 제주 물영아리오름,
전남 무안갯벌, 순천만 보성갯벌 등 18곳이 등록되어 있다.

구룡산 정상에서 만난 선답자들의 흔적들

구룡산 정상삼각점(▲창녕321)
경도 128도 25분 19초, 위도 35도 35분 13초

구룡산에 잠깐 머무는 사이에 손가락이 빠질것만 같은
추위가 엄습해 오고 바람이 강하게 불어 서둘러 길을
떠난다

산행 시간을 좀 줄여보기 위해서 올라왔던 길이 아닌
좌측으로 내려서는데 약간의 잡목의 저항이 있긴 하지만
남도지방의 잡목에 비해선 양반이다

갑자기 등로는 좋아지고...

편안한 등로를 찾아서 내려오니 구룡산을 오르지 않고
올라오는 편안한 도로가 보인다...구룡산은 지맥길에서
1여km나 떨어진 곳이라 어떻게 보면 알바를 한 셈이다
선 무당이 사람을 잡는다고 평소같으면 거리가 멀어서
눈길도 안 주던 곳인데 얼떨결에 구룡산을 찍고 왔다

구룡산 하산길(10:35)
초곡리의 시멘트 도로에서 올라오니 십자안부가 나오는데
동쪽으로는 구룡산으로 올라가는 등로가 보이고
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를 따른다

고요한 寂寞 속에 침묵만이 산을 휘감고 있고 간간히
쉬고 있는 산짐승들만이 이방인의 불침범에 혼백백산하여
도망을 가는데 내가 재들에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데
민폐를 끼쳐서 괜스레 미안한 느낌이다

무명묘(10:39)
무명묘인지 移葬한 묘인지 봉분 자체가 안 보이고 나뭇가지
사이로 이방면 초곡리 마을들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해가 나면서 기온이 산행 시작때부터는 조금 오른듯 하지만
세차게 불어대는 강한 바람 때문인지 날씨는 여전히 춥다

내리막으로 내려서니 잔디가 전혀 자라지 않은 밀양박공 묘지가 나온다

밀양박공 묘(10:45)

밀양박공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마을 농로가 나온다

농로를 걸으면서 바라본 창녕군 이방면 초곡리의 모습
창녕군 이방면에 속해있는 초곡리(草谷里) 이방면의 중동부의 안리(雁里),
동쪽에 넓게 자리한 지역으로 초곡의 동쪽은 대합면 대곡리, 내울리,
신당리, 주매리 등과 이어져 있으며, 창녕에서 이방으로 오는 지방도가
남부를 지나가고 있다.
초곡 마을이 있는 골짜기는 약 2km가 되는 좁고 긴 골짜기로 골짜기 사이에 있는
마을이란 뜻으로 새실이라 불리었을 것이며, 한자로 기록하면서 새(풀)가 많다 하여
‘풀 초(草)’를 써 초곡(草谷)이라 쓰였다. 초곡 이전에는 ‘새 봉(鳳)’을 써서 ‘봉곡(鳳谷)’
이라 쓰였다고도 하며 자연부락으로는 새실(草谷), 솔뜸(鼎谷), 문동골(問童谷),
서재골( 書齋谷) 들이 있으며, 초곡은 중심이 되는 마을로 새실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풀이 많은 골짜기라 불렀으며 산의 형상이 봉황을 닮았다고 하고 봉곡(鳳谷)이라고 한다.
솔뜸(鼎谷)은 새실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의 형세가 솥모양을 닮아 솔티미, 솔텀,
솔덤으로 부르다가 변음이 되었다고 하며, 문동골(問童谷)의 새실 북쪽에 있는 마을로
내울리와 접경인 이곳 일대인 중봉(僧峰), 비파등과 대곡이 남쪽 사부랑골 등지에서
예산 절이 있었다 하는데 절을 찾으러 가다가 아이에게 물었다하여 문동골이라
하였으며, 서재골은 새실 가운데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예전에 서재가 있었다고
해서 유래된 지명이란다

초곡리로 가는 농로에서 우측의 산으로 올라간다

연안차공&창녕성씨 묘(10:53)

묘지 뒷쪽으로 올라간다

능선에서 올라서니 관리가 안된 묘지가 나오고...

자세히보니 안동권씨 묘지인 듯 하다

묘지를 지나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간다

100.6m봉(11:01)
오룩스맵상에 기록된 엄연한 족보있는 봉우리지만 그 흔한 시그널 하나 안보인다

봉분조차 희미한 무명묘지를 지나니 가늘고 키큰 소나무들이
추운 날씨에 집에 있지 길도 없는 곳을 와서 왜 개고생을 하느냐고
나에게 힐난을 한다...나도 그러고 싶은데 역마살이 날 그냥두지 않는구료...

안부(11:08)

무명봉(11:10)

보이지 않는 길은 우측으로 향하지만 개척자의 길을
걷기에 트랙도 없고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 없는 길이지만
컬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개척하는 심정으로 걷는다

산이 그렇게 높지 않지만 그리만만하게 볼 산길은 아닌듯 싶다

지난주에 걸었던 남도지방 나주땅과는 달리 방치된 묘들이 많이 보인다

묘지 아래로 내려서는 길에 넓은들을 보면서 농로로 내려선다

겨울 산에 가면 / 나희덕
겨울산에 가면
밑둥만 남은 채 눈을 맞는 나무들이 있다
쌓인 눈을 손으로 헤쳐내면
드러난 나이테가 나를 보고 있다
들여다볼수록
비범하게 생긴 넓은 이마와
도타운 귀, 그 위로 오르는 외길이 보인다
그새 쌓인 눈을 다시 쓸어내리면
거무스레 습기에 지친 손등이 있고
신열에 들뜬 입술 위로
물처럼 맑아진 눈물이 흐른다
잘릴 때 쏟은 톱밥 가루는 지금도
마른 껍질 속에 흩어져
해산한 여인의 땀으로 맺혀 빛나고,
그 옆으로는 아직 나이테도 생기지 않은
꺾으면 문드러질 만큼 어린것들이
뿌리박힌 곳에서 자라고 있다
도끼로 찍히고
베이고 눈 속에 묻히더라도
고요히 남아서 기다리고 계신 어머니,
눈을 맞으며 산에 들면
처음부터 끝까지 나를 바라보는
나이테가 있다.

농로(11:16)

잠시후에 오를 노랑갓골산이 빨리 오라고 하면서 얼굴을 내민다

북측으로는 아침에 산행을 시작한 계동마을로 넘어가는
능선이 보이고 새실마을을 바라보면서 농로를 따라서 간다

농로에서 바라본 새실(草谷)마을의 모습
새실(草谷)마을은 이방면 초곡리 중심이 되는 마을로 새실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풀이 많은 골짜기라 불렀으며 산의 형상이 봉황을 닮았다고 하고 봉곡(鳳谷)이라고 한다.

새실로 향하는 농로를 버리고 다시 산으로 올라간다

포산곽씨(苞山郭氏) 가족묘(11:20)
포산(苞山)이란 지금의 대구시 달성군 현풍읍의 옛 지명을
말하는데 곽씨(郭氏)하면 현풍곽씨로 더 알려진 셈인데
알고보면 같은 뿌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달성군지』에는 비슬산을 일명 포산(苞山)이라 한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포산은 수목에 덮여 있는 산이란 뜻이다...비슬산은 소슬산(所瑟山)
이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인도의 범어로 일컫는 말이며 중국어로는 포산(苞山)이란
뜻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신라시대에 인도의 스님이 우리나라에 놀러 왔다가
인도식 발음으로 비슬(琵瑟)이라고 해서 이름을 붙였다는 기록이 있다

묘지 뒷쪽으로 올라서니 갑자기 등로가 사라지고...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노랑갓골산으로 올라선다

노랑갓골산(143.3m:11:45)
창녕군 이방면 초곡리와 안리, 대합면 대곡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숲이 우거진 채, 선답자들의 시그널에 쓰여있는 노랑갓골산이라
쓰여 있지만 않았다면 그냥 지나칠 뻔 했다...행여나 하고 오룩스 트랙을
확인하니 분명이 노랑갓골산이 맞기는 맞다.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으나 이 산의 서남쪽에 있는 갓골마을에서 유래된 듯
한데 갓골산 앞에 왜 ‘노랑’ 이란 지명이란 붙인 이유는 알 길이 없다.
창녕군 대합면 갓골마을(冠洞) 지명유래는 ‘뒷산이 갓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혀졌다는 자료는 보이지만 확신 서지는 않는구나

좌측으로 살짝 꺽어지니...

오늘 산행길에서 갠지스강의 항하사(恒河沙)에서 바늘찿기 만큼이나
힘이 든(?)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를 만나는데 왜 그리도 반가운지...
* 항하사(恒河沙)는 인도의 갠지스강을 나타내는 단어인 항하(恒河)에서 비롯된
수의 단위를 나타내는 명칭으로 항사(恒沙)라고도 하며 항하사는 갠지스 강의
모든 모래를 합한 숫자라는 뜻으로, 수리적으로는 1052를 뜻한다.
1항하사를 줄여서 1항으로 표기하기도 하며 항하사의 1만 배를 아승기(阿僧祇)라고
하는데, 불경 ‘화엄경’에서 나온 산스크리트어 asaṃkhya (또는 아산키야 asaṃkhyeya,
asankhyeya (Sanskrit: असंख्येय)를 음역한 말로 승기, 아승기야(阿僧祇耶)라고도 한다.
무수겁(無數劫),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시간을 뜻한다.

등로에서 나뭇가지 아래로 바라보이는 들녘이
창녕군 이방면 소재지가 있는 안리(雁里)마을이고 우측에는
지맥길에서 벗어나 있는 험듬산(219.2m)인듯 하고, 남쪽에
능선을 이루고 있는 산이 내가 오늘 걸어야 할 산이 코장산(228.3m)이다

흐릿한 등로를 따라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등로는 까칠하나 지난주에 걸었던 남도지방과는 달리
잡목의 저항이 없으니 훨씬 편안한 느낌이다

갓골고개를 내려서면서 바라본 옥산저수지의 모습
저수지 뒷쪽으로 대곡리 아랫담과 웃담마을을 바라보면서
웃담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로 내려서는데 지도상에
표기된 갓골고개이다
경상남도 창녕군 대합면에 속해있는 대곡리(大谷里)는 북서쪽과 남쪽으로
약간 트여 있고 태백산(泰白山), 왕령산(旺嶺山) 등의 산지로 둘러싸인
분지에 위치하며 북쪽으로는 죽전천이 흐르고 마을 내로 계동천이 흐른다.
자연마을로는 대곡, 하담이 있으며, 대곡은 대곡리의 본 마을로 큰 골짜기에
마을이 있어서 한실 또는 대곡이라 하였고, 하담은 대곡의 남쪽 아래 있는
마을이라 하여 아래담 또는 하담이라 불린다.

갓골고개(11:57)
창녕군 대합면 대곡리와 이방면 안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우측으로는
옥산저수지가 보이고 고개 앞에는 경주김씨 계룡군파 선산이 있다
갓골(冠洞)고개의 지명유래는 ‘뒷산이 갓처럼 생겼다’는 갓골마을에서
유래된 지명인 듯 하다

갓골고개를 가로질러 경주김씨 묘지쪽으로 올라간다

마침 묘지에서 가족들이 성묘를 끝내고 飮福중이다.
그러다가 나를 보더니 음식을 좀 드시고 가란다.
난 처음에 구정이 1주일밖에 안 남아서 미리 성묘를 온 줄
알았는데 어제가 亡者의 기일이라 제사를 지내고 성묘를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음식물을 건네는데 안 그래도 배가 살짝 고팠던 차라
고맙게 음식을 얻어먹고 다시 길을 떠난다

경주김씨 묘지를 지나 올라서니 진주하공 가족묘가 나오고...

농사를 표기했는지 잡풀이 무성한 과수원이 나온다

62.5m봉 갈림길(12:02)
우측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족보있는
62.5m봉이 있지만 그냥 좌측으로 향한다.

맥길에서 바라본 지나온 노랑갓골산의 모습

가야산 호랑이라 불리웠던 성철 큰스님께서는
몸을 바르게 세우면
그림자도 바르게 서고,
몸을 구부리면
그림자도 따라 구부리진다고 하셨다
나는 지금 어떤 그림자를 가지고 있을까?

창녕군 이방면 안리 새치골 마을의 모습
갓골(冠洞)마을 서쪽에 있는 마을로 새(鳥)의 집처럼
생겼다고하여 붙혀진 마을 지명이라고 한다

편하고 완만한 길을 따라서 내려가니 엄나무
재배지가 보이고 농기계가 있는 갓골마을로 향한다

갓골마을(12:10)
창녕군 이방면 안리에 속해있는 갓골마을(冠洞)의 지명유래는
‘뒷산이 갓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르는 마을 이름으로 각골·관곡으로도
불리며, 동리 바로 앞에 저수지가 있어 ‘갓골(冠洞 저수지)’로도 불렸다고
전하며 진주하씨의 세거지로 알려져 있다

논길 가운데로 걸으면서 바라본 갓골(冠洞) 소류지의 모습

마을길로 올라서니 캠핑카를 제작하는 카센터가 있고
그 뒷쪽의 능선으로 오르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능선으로 오르는 길은 좋다...자연산 板石으로 된
길을 따라서 편하게 맥길을 이어간다

뒤돌아본 노랑갓골산과 갓골마을 앞에있는 관동소류지

편안한 길을 걷다보니...

바로 앞쪽에 잘 관리된 밀성박씨
추모당이 보이고 좌측으로는
새치골에서 올라오는 등로가 나온다

밀성박씨 추모당(12:21)

밀성박씨 추모당 뒷쪽의 과수원으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북쪽으로는 이방면에서 가장 큰 마을인 거남리 옥야마을이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신산경표상의 왕령지맥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데 신산경표를 고집했으면 개고생을
안하고 꽃길만 걸어갈 수 있었지만, 내가 선택한 길이라
후회는 없다

철지난 단감나무 사이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이곳은 단감나무 농장들이 많이 보인다

단감나무 사이로 이어지는 지맥길...

70.7m봉(12:25)
족보있는 70.7m봉 정상에는 태양광
판넬이 쥔 행세를 하는데 가관이 아니다

농장 가운데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다가...

소나무 숲을 헤치면서 내려서니...

내고향 신반으로 향하는 67번 도로(도로명 주소:이방로)가
지나가는 토마토고개로 내려선다

토마토고개(12:33)
창녕군 이방면소재지를 비롯한 이방면의 모든 행정기관이 있는
안리와 이방장을 비롯해 가장 큰 상업시설이 있는 거남리 옥야를
잇는 중간에 있는 고개로 67번 도로가 지나가며, 현풍 12km라는
팻말과 산토끼 노래의 발상지 이방면 안내판이 서 있으며 왜 이곳을
토마토고개라고 부르는 유래에 대한 자료는 없다.
고개 너머의 옥야 방향쪽으로 안리마을에 속해있는 도미터골이라는
지명이 지도에 보이긴 하지만 유래를 알 길이 없으나 아마도
도미터골 마을에 있는 고개라고 해서 토마토고개라고 부르는
모양이다(범여의 생각中에서)
예전에 고향을 다닐 때 무조건 이곳을 지나야했기에 수도없이
지나다닌 고개였지만 토마토고개라는 지명은 오늘 처음 알았다

북측을 바라보니 이방장(옥야 방향)으로 향하는 토미터골이 보인다
창녕군 이방면 안리에 속해있는 토미터골은 옥야중학교와 이방장이
가기 직전에 있는 마을로 토마토골의 지명 유래가 된 마을인 듯 하나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고, 양파의 주산지인지 비닐하우스가
많이 보인다

트랙상의 지맥길은 고개를 가로질러 능선을 치고 올라 가야 했지만...
옥야쪽으로 내려가서 보니 좌측으로 올라가는
넓은 임도가 보이기에 그곳을 따라서 편하게 오른다

아마 묘지로 향하는 길인지 길은 무쟈게 좋다.

내 예상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들어 맞았다
묘지가 나오면서 길은 끊어졌고 구상나무같은 나무에
망자의 명패가 걸려있는 수목장도 보이고 좌측에는
기독교인 부부묘인 평장도 보인다

기독교인 묘지(12:41)

묘지를 지나니 등로는 아예 보이지도 않고 힘들게 무명봉에 오른다

무명봉에 올라서 뚜렸한 좌측으로 향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선답자들의 산행 기록이 없으니
확신이 서질 않는다...좌측으로 이어지는 자실개쪽으로 향한다
창녕군 이방면 안리(雁里)에 속해있는 자실개 마을은 안리 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앞산이 ‘자 척(尺)’ 모양의 형국이라 불리워진 마을로
자실개(尺谷洞), 자개(尺蓋)라 부르기도 한다.

100.9m봉(12:56)
오룩스맵상에 있는 족보있는 봉우리에 도착하니
위드마운틴 클럽이라는 시그널 하나가 보이는데
왜 그리도 반가운지...

등로는 잘 안보이나 좌측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기에
무조건 좌측으로 향했는데 이게 결과적으로 대형 알바의
단초가 된 셈이다

희미한 길을 내려서니 뚜렸한 등로가 나오고 룰루랄라
하면서 걸어가지만 아직까지 알바를 한다는 인식조차도
못하고 걸어가는 중이다

무명봉(13:00)

무명봉으로 내려서니 양파를 심어논 비닐하우스가 보이고...

좌측 아랫쪽으로는 창녕군 이방면 안리
뒷골(後谷)마을 들녘에 창녕의 명물인 양파밭들이 보인다
내동 마을 뒷쪽에 있는 마을이라 뒷골(後谷) 붙혀진
지명으로 마을 서쪽에 후곡저수지가 있다.

창녕군 이방면 안리 뒷골마을로 내려서는데 이곳으로
오면서 몇개 안되는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이 마을이 나오지
않았는데...결과적으로 알바를 한 셈이 되었다
조금전에 지나온 100.9m봉에서 우측으로 갔어야 했었는데
조금 편하게 걷다보니 엉뚱하게 뒷골 마을로 내려와 버렸다.
북쪽으로 보이는 민가 뒷쪽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토평지맥
마루금인데 되돌아 가기에는 너무 많이 와 버렸다

뒷골마을(13:05~20)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왔는데도 지도가 없고 선답자의
몇개 안되는 산행기도 제각각이라 헷갈렸다.
갑자기 다리가 풀리는 바람에 전봇대 옆쪽에 있는
배수지 창고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오늘 처음으로 휴식을 취한다

날씨는 오후가 되면서 기온이 많이 올라간 듯 하나
강하게 불어오는 바람 탓인지 범여의 몸뚱아리는
여전히 춥다

배수장옆 대밭 사이의 능선으로 올라서니
수북히 쌓인 낙엽이 상당히 미끄러워
다리에 힘을 줬더니 갑자기 근육이 뭉치면서
경련이 오는데 미치겠다...베낭을 내려놓고
근육이완제 한알을 먹은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예전에 헬기장(?)이었는지 넓은
공터를 지나니 묘지가 나온다

밀양박공 묘(13:30)

묘지를 지나 오르는 길은 완전히 고속도로(?)이다

좋은길로 올라서니 험듬산 갈림길이
나오고 마루금에 복귀한다

험듬산 갈림길(13:37)

등림마을 내려가는 임도 뒷쪽으로 보이는 험듬산(219.2m)의 모습
창녕군 이방면 장천리와 등림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험듬산의 지명
유래(어원) 정보에 대한 자료는 찾을 길이 없다...산 서쪽 아래의
낙동강변에는 합천.창녕보가 있고, 정확한 지명유래는 알 수 없으나
산에 험한 바위가 많이 있어 험듬산, 험암산이라 하며, 산 아래에
지혜로운 사람이 산다 하여 지리산(智利山)이라고도 부르는 산으로
가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등림산성(登林山城)이 있는데 임진왜란
당시 낙동강 상류로 올라가는 왜군들을 막아낸 의병들의 전승지라고 한다.

등림마을로 내려가는 길은 시멘트로 포장되어 있고
지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는데 감나무밭으로
이어지는 임도옆에 배창랑선생의 시그널이 반갑기만 하다
우측으로 내려가는 이방면 등림리(登林里)는 옛 옥야면 등림촌으로 오래 전부터
불려온 지명으로 나주 임(林)씨가 살고 매일 진전(進展)하는 마을이란 뜻으로
등림이라 불리었다고 하며 이방면의 중서부로 서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강변의 비옥한 토지를 경작하며, 행정리로는 등림과 죽전 2개리로 나뉜다.

잠시후에 오를 코장산(228.3m)가 시야에 들어온다

오늘은 편안한 길들이 많아서 오랫만에
범여의 몸뚱아리가 호사를 누리는 기분이다

임도삼거리(13:42)
좌측의 안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등로를 버리고
코장산으로 향하는 직진의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길을 가다가 뒤돌아 본 험듬산의 모습
범여가 갔다오기에는 지맥길에서 너무 멀다

삼거리(13:45)
우측에서 올라오는 창녕군 이방면 등림리에서 올라오는
시멘트 도로를 만나서 코장산으로 향하는 토평지맥길을
이어간다

151.5m봉(13:48)
차량이 다닐만큼 넓은 임도로 올라가는 길에 임도 개설로 인하여
절반만 남은 봉우리가 151.5m봉인데 국립지리정보원에
등록된 엄연히 족보있는 봉우리이다.

2월의 노래 / 목필균
잊혀진 이별이 어디 있으랴
내가 너였어도
네가 나였어도
꿈길 만이 길이라
동백꽃 흥건하게 내려앉는데
입춘 대문 활짝 열면
큰 호흡으로 들어서는 햇살로
겨우내 동여 맨 옷고름 풀어내면
지천으로 피어날 꽃들
홍매화 피어나고
눈 비비면 일어설 산수유도
네 숨결로 노래하는데
어찌 내가 네게로 가지 않을까?
먼 길 거슬러 올라가며서서히 몸일으키햇살이 분주다

코장산갈림길(13:50)
험듬산 갈림길에서 편하게 걸어 왔던 임도를
버리고 코장산으로 가기 위해 숲속으로 향한다

반갑습니다

짝뚱 연리지?

언제적 지나갔는지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땅바닥에 드러누운 이 대장의 흔적...

아무리 바쁘지만 땅바닥에 누워서 힘들어하는
후배의 고통을 외면할 수 없어서 나무가지에
묶어두고 다시 길을 떠난다

안부(13:56)

낙동강변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차갑지만
늦은 오후에 내리쬐는 햇살은 따스하다
코장산으로 오르는 길은 없지만 예전에
군부대가 있었는지 낡은 타이어들이 보인다

느긋하게 코장산 정상에 오르니 아무런 흔적도 안 보인다

이리저리 살펴봐도 아무것도 안보이고 실망한 체
솔고개로 향하는 길에 선답자의 흔적이 보이는데 어찌나
반갑던지...

코장산(228.3m:14:08)
경남 창녕군 이방면 등림리와 동산리, 안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숲이 우거져 아무런 조망도 없고, 군포 신상호님, 독도는 우리땅이라 외치시는
이경일님 등의 시그널 몇개만 정상을 지키고 있는데 오후라 그런지 우측의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참으로 차갑다.
산의 남서쪽으로는 아주 큰 규모의 단감농장들이 많이 보이고 좌측 아랫쪽은
우리 세대가 국민학교 다닐때 음악교과서에 나오는 故 이일래 선생(1903~1979)이
이방국민학교 교사로 재직시에 작사. 작곡한 국민동요 산토끼 노래 동산이 있다.
지명의 유래는 안리 내동의 뒷쪽에 있는 산으로 고장산(高長山)이라 부르기도 하며
이 산에 있는 바위에 구멍이 뚫려있어 소의 코처럼 생겼다고 해서 소코덤(牛鼻岩)이라
불리는 이 산을 코장산이라 불리웠는데, 이 바위의 지명을 따 코장산이라
불리웠다가 고장산으로 음훈차가 되었다고 한다

코장산에서 만난 또 다른 선답자들의 흔적

코장산을 내려가는 길에서 바라본 창녕군 이방면 등림리의 낙동강변이
보이고, 2013년 6월 2일에 걸었던 황강(신산경표상:수도)지맥의
합수점인 황강이 낙동강에 入水하는 지점에 청덕교가 아련하게
보이니 참으로 반갑구나...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다 좌측으로 보니...

안부 윗쪽으로 감나무 농장들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안부에 내려서면서 바라본 창녕의 진산인 화왕산 능선과 창녕읍내의 모습
지금의 창녕군은 옛 창녕현(昌寧縣)과 영산현(靈山縣)이 합하여 이루어진
곳으로 옛 창녕현 지역은 삼한시대의 불사국(不斯國)으로 비정되기도 한다.
삼국시대 초기에는 가야의 영역이었음을 이곳에 분포·출토되고 있는 가야의
고분과 유물들이 말해주고 있으며, 신라의 세력확장에 따라 6세기 중엽인 555년
(진흥왕 16)에 신라가 이곳을 점령하고 하주(下州)를 설치했다.
영산현은 삼국시대에 서화현(西火縣)이었으며,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경덕왕 16)에
창녕지역은 화왕군(火王郡)으로 개칭되었고, 영산은 상약현(尙藥縣)이 되었다.
고려초인 940년(태조 23)에 각각 창녕군과 영산현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018년
(현종 9)에 2곳 모두 밀성군(密城郡, 密陽)의 속현으로 병합되었고, 1172년(명종 2)에
창녕군, 1274년(원종 15)에 영산현에 감무가 파견됨으로써 독립했다.
조선초의 군현제 개편으로 1413년에 창녕현과 영산현이 되어 조선시대 동안 유지되었으며,
1631~37년(인조 9~15)에 창녕현이 영산현에 합병되기도 했다... 창녕의 별호는 창산(昌山)·
하성(夏城)이었으며, 영산의 별호는 취산(鷲山) 취성(鷲城)이었다. 지방제도 개정으로
1895년에 대구부 창녕군·영산군, 1896년에 경상남도 창녕군·영산군이 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 때 영산군이 창녕군에 합병되어, 15개면으로 개편되었으며, 1918년에
읍내면을 창녕면으로, 1936년에 남곡면을 남지면으로 개칭했고 1955년 창락면이
창녕면에 병합되고, 1960년에 창녕면이, 1962년에 남지면이 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71년
남지읍 고곡출장소가 설치되었다가 1998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고곡출장소가 폐지되었다.
한편 국내 최대의 자연늪으로 알려진 우포늪은 1998년 3월 람사르 협약 등록 습지가 되었다.
2011년 1월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다가, 국가지정 문화재 천연기념물 제524호로
재지정되었다.

안부(14:14)
마루금은 안부에서 단감농장 저수조로 올라갔다가 내려가야
하는데 그냥 편하게 단감농장 사이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서
토평지맥길을 이어간다

단감밭을 지나면서 바라보면서 바라본
창녕군 이방면 동산리 가매실과 새날비의 모습
동산리에는 가매실(골)과 새날비의 2개 자연마을이 있는데
가매실(釜谷)은 ‘마을의 골짜기 안이 마치 가마’ 처럼 둥글게
생겼다고 해서 불려진 지명이며, 마을 앞으로 나무 갯벌(木浦)이
있어서 침수가 잦았는데 지금은 제방을 축조하여 수해가
없는 마을이 되었으며, 김해김씨와 초계정씨의 집성촌이다.
새날비(飛鳥谷)는 가매실 서쪽에 있었던 마을로 양쪽의 산이
마치 봉황(鳳凰)이 날아가는 형상이 붙혀진 지명이며, 봉황이
나는 형국이라 명당이라 소문이 나서 이 골짜기에 묘지가
많았으며, 국골 북동쪽으로 3.4호가 살았으나, 지금은 아무도
살지않은 廢村이 되었다고 한다

물탱크(14:17)
단감밭 끄트머리에서 감나무 사이로 급하게 내려서니 커다란 물탱크가 나온다

189.5m봉(14:25)
시멘트 농로의 윗쪽의 농장 저수조가 있는 곳이 오룩스맵에
등록된 족보있는 봉우리라 올라가려다가 금방 내려와야
하기에 그냥 편하게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감나무밭을 지나간다

아무리 길이 많아도 종착지는 하나다.
인간은 대개 길을 가면서
동반자가있기를 소망한다.
어떤 인간은
동반자의 짐을 자신이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지고
어떤 인간은
자신의 짐을 동반자가 짊어져야만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길을 가는데 가장 불편한 장애물은
자기 자신이라는 장애물이다.
험난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버리는 일에 즐거움을 느끼고
평탄한 길을 선택한 인간은
길을 가면서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일에 즐거움을 느낀다.
전자는 갈수록 마음이 너그러워지고
후자는 갈수록 마음이 옹졸해진다.
지혜로운 자의 길은 마음 안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길은 마음 밖에 있다.
아무리 길이 많아도 종착지는 하나다.

코장산에서 이방면 안리로 내려가는 산줄기의 모습
능선 뒷쪽으로는 밀양(신산경표상:비슬)지맥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시멘트 도로가 끝나고 급경사를 따라서 감나무 농장 아래로 내려간다

공터(14:35)

솔고개가 가까워졌는지 차량소리가 심하게 들린다

휀스에 갇혀있는 묘지 아랫쪽의 대밭으로 맥길은 이어지나
그냥 좌측으로 우회하여 내 고향(의령군 부림면)으로 향하는
67번 도로로 내려서니 솔고개가 나온다

솔고개(14:45)
경남 창녕군 이방면 동산리와 옥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67번 도로
(도로명 주소:이방로)가 지나가는 고개로 커다란 느티나무 노거수 2그루와
쉼터, 옥천버스정류장이 있고 옥천마을 표시석이 있으나 솔고개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이방면 동남부에는 람사르 습지로 등록된 거대한 호수인 우포(牛浦:소벌)와
나무갯벌(木浦) 의 서편에 또 다른 작은 늪이 있는데. 이 늪을 쪽지늪이라
부르며, 쪽지벌의 긴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에 옥천리이다.

옥천리는 소벌, 나무갯벌, 쪽지벌 등 큰 늪이 있는데 이 주변의 사람들은
예전에 漁業을 주업으로 하는 이들이 있어 내륙의 어촌으로 불리웠던
마을이기도 했으며, 지금은 土沙가 많이 유입되어 면적도 많이 줄었다고 한다.
옥천, 잠어실, 토평, 노동 등의 마을이 있으며, 옥천(玉川)의 지명유래는
옛날에 물이 좋은 샘이 마을에 있어 불려진 지명으로, 나무갯벌 서쪽
산너머에 있는 쪽지벌 북쪽 안에 있는 마을로,옥새미, 옥샘으로 불린다.

옥천버스 정류장 농어촌 버스 정류장 시간표

이곳에서 합수점까지 남은 거리는 약 7~8km 정도라 부지런히
걸으면 지맥길을 하나 마무리 지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게 하면
귀경 시간이 너무 늦어서 고생할 것 같아서 이곳에서 베낭을
정리하고 있는데 옥천리쪽에서 산불감시요원이 타고있는
트럭이 나오기에 무조건 도로를 가로 막고는 서울로 가야 하는데
좀 태워 달라고 사정을 하니 처음에는 탈 곳이 없다고 하면서 거절을 한다.
그러면 뒷쪽의 적재함에라도 태워 달라고 하니 난감해 하더니만
조수석을 정리하고는 타라고 하는구나

이방면 안리(雁里) 사거리(14:50)
천신만고 끝에 산불감시요원의 배려에 안리 사거리에 도착했는데
나는 예전에 고향을 갈 때 이곳을 수없이 지나갔지만 이곳을 내동으로만
알고 있었지 안리라는 지명은 오늘에야 처음 알았다...산불감시요원은
이곳에 나를 내려주고는 다시 솔고개로 향한다...세세생생 복받을깁니다.

안리 버스 정류장의 모습

안리삼거리(15:10)
창녕군 이방면에 속해있는 안리는 이방면사무소, 소방서, 파출소,
이방초등학교, 산토끼 노래동산이 있는 마을로, 지명의 유래는
마을의 뒷산이 ‘기러가 날아가는 모습’처럼 보인다고 해서
‘기러기 안(雁)’자를 써서 안리라고 하며, 안리외 장재 등 2개의
행정리가 있고, 폭이 4km나 될 정도로 큰 면적을 가진 마을이다

안리는 본 마을인 내동(內洞)을 비롯하여 많은 자연부락이 있는데,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안골(내동), 안골 마을 뒷쪽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뒷골(후동:後洞), 마을의 형상이 갓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갓골(冠洞), 내동 북쪽으로 예전에 창고가 있었다고
해서 이름 붙혀진 창(倉)터, 내동 북쪽에 있는 자실개 마을은 마을
앞산이 ‘자(尺)’ 생겼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며, 자실개와 갓골
사이에 있다고 해서 부르는 샛담, 갓골 서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지형이
새(鳥)처럼 생겼다고 해서 부르는 새치골, 갓골마을 아래 뜸으로
골짜기가 길다고 해서 ‘긴골’ 이라 부르다가 ‘길다’ 가 ‘질다’ 로 變音
되어 불리는 진골(長谷)마을 이외에 못마, 오야장(吾世場)터 가 있다

창녕군에 속해있는 이방면 (梨房面)은 창녕군의 서부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으로 대합면과, 남으로는 유어면과 경계를 하고 있으며, 서쪽은
낙동강이 흐르는데 강 건너는 합천군 청덕면, 덕곡면등이 있고,북쪽은 대구광역시
땅으로 낙동강을 사이에 둔 서쪽은 고령군 우곡면이지만 동편의 강을 건너지
않는 곳은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대암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이방면의 한가운데에는 高長山이 있고 그 아래에 면소재지인 안리 마을이
있으며, 남쪽 성산리에는 성산산성이 있는데 이 성은 신라 때 낙동강 건너
고령, 의령쪽의 외적을 막기 위한 성이었다고 전래되는데 [삼국사기]에
신라 때에 이 근처인 감물(甘勿)의 싸움이 나온다.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古地名으로는 다음과 같다.
文房山 在縣西北三十里(문방산 재현서북삼십리)
甘勿倉院 在甘勿倉津東岸(감물창원 재감물창진동안)
문방산은 지금은 독지골산이라 불리는데 석리 글방 마을의 뒷산 이름이며
감물 창원은 감물창 나루 동편 언덕에 있다고 하였으니 지금의 현창리를 말한다.
이방면의 이방(梨房)은 [梨旨. 文房] 두 마을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梨]는 지금의 성산리 배말리의 차자인 [梨旨]의 첫자이며, [房]은 석리
글방의 기사인 [文房]의 뒷자라 하며, 이 두 마을에 만석지기 큰 부자가
살아 면이름을 작명할 때에 대표적인 두 마을의 이름을 한자씩 따모아 된
지명이라 한다.

이방면의 행정중심지인 이곳 내동마을에는 서울로 가는 버스가
서지 않는다고 한다...예전에는 이곳에서 손을 들면 버스가
세워준다고 했는데 지금은 옥야에서만 선다고 한다.
이곳 내동에는 택시가 없다고 하여 옥야에 있는 이방면 택시를
호출하는데 아무리 전화를 해도 전화를 받지 않으니 난감하다.
우리 고향(의령군 신반)에 오는 이 버스가 막차인데 이걸 놓치면
대구까지 가야 하는데...
하는 수 없이 지나가는 차량들을 상대로 앵벌이를 하는데 세워주는 차가 없다.
바람이 많이 불어 춥기는 하고, 미치겠구먼...그런데 窮하면 通한다고 했던가
지나가는 승용차 한 대가 서길래 사정을 이야기했더니 타라고 한다.
젊은 부부에다 아기까지 있는데 조금은 미안하다.

나를 내려주고 대구로 향하는 젋은 부부의 차량
너무 고맙습니다...세세생생 복받을깁니다

옥야 사거리(15:40)
창녕군 이방면 거남리와 창천리 경계에 있는 마을로 이방장과 보건소와
옥야중.고등학교가 있으며 안리가 있는 내동이 이방면의 행정중심지라면
이곳 옥야는 이방면의 상업중심지라고 볼 수 있는 곳으로, 이방면 거남리에
속해 있으며, 예전에는 옥야면 소재지가 있었던 곳으로 글자 그대로 면내의
들(野)이 기름지고 넓으니 옥야천리(沃也千里)이었으므로 옥야(次野)라
한 것으로 다른 이름으로 불린 오야(吾也)는 옥야의 와전이나 변화로 보인다.

젊은 부부의 배려로 이방장터에 내려서니 하루종일 걸으면서
먹은 것이 별로 없은데다 긴장이 풀리니 갑자기 배가 엄청 고프다.
마침 장터 공터에 만두와 찐빵을 파는 차가 있어서 만드 한팩을
사서 게눈 감추듯 먹고나니 배가 든든하다...맞은편에 있는
이방약국에 가서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에 커피 한잔을 마시면서
서울로 가는 버스를 기다린다

이방면 전체가 산토끼를 홍보하는 걸 보니 이방면의 랜드마크인 듯 하다
이일래선생님이 이방공립보통학교에 재직중 산토끼,단풍,등
주옥같은 국민동요를 작사,작곡하시어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자라나는우리 어린이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신 선생님이다

이방발 → 동서울행 버스표

커피 한잔을 마시고 편의점앞 의자에서 25분정도 멍때리기를
하는데 의령에서 출발한 버스가 온다...재빨리 버스에 오른다.
이 버스는 현풍에 도착하여 손님을 가득 태우고 고속버스에
들어서고 나는 버스에서 깊은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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