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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장흥(사자)지맥(진행중)

장흥(사자)지맥 제1구간 - 분기봉에서 정남진 천문과학관까지

by 범여(梵如) 2025. 3. 26.

☞ 산행일시: 2025년 03월 16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날씨에 강풍...엄청 추움

☞ 산행거리: 도상거리 11.5km +들머리 1.2km / 6시간 22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사자산 활공장-분기점(사자산 미봉)- 암봉- 조망바위- 안부- 무명봉

                     다시 사자산 활공장- 추모비- 안부- 주상절리- 사자산 두봉- 갈림길

                    사자산 망바위- 조망바위- 갈림길- 눌제진사문공&여산송씨 묘

                    임도- 묵밭- 효성사- 기산고개- 광산노공&장흥위씨 묘- 광산김공&장흥위씨 묘

                    안부- 무명봉- 안부- 당뫼산- 비포장 도로-덕림재- 며느리 바위 포토죤

                   우드랜드- 모자송- 며느리 바위 갈림길- 안부-억불산- 억불산 전망대

                    2번째 전망대- 억불산 분기점?- 암봉- 조망바위- 한전 중계소

                    김해김씨세장산- 체육시설- 정남진 천문과학관

☞ 소  재 지: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읍, 안양면, 용산면 / 보성군 웅치면

 

주말에 전국적으로 눈이나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1주일 내내 가슴을 조이게 한다.

나이 들어서 청승맞게 비를 맞으면서 산행한다는 자체가 우습기도 하지만,

늘 혼자하는 산행이기에 기상 이변이 생기면 산에서 대처하기 쉽지가 않아서

늘 조마조마한 게 문제이다.... 토요일 오후에 일기예보를 검색하니 비가

오기는 하나 비올 확률이 60%라는 전남 장흥의 일기예보에 화원, 진도지맥과

더불어 악명높은 장흥(신산경표상:사자)지맥을 잡목이 나오기 전에 끝내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구라청의 날씨 예보가 誤報이길 바라면서 자정

지난 시간에 광주를 가기 위해서 호남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장흥(사자)지맥 개념도

장흥(사자)지맥은 호남정맥 사자산 미봉(尾峰:667.5m)에서 남쪽으로 분기해서

사자산 두봉(頭峰:569.2m), 당뫼산(164.5m), 억불산(x517.2m), 광춘산(387.9m),

괴바위산(x462.8m), 부용산(610.7m 0.55km), 깃대봉(x361.6m), 양암봉(x469.2m),

천태산(x545m), 부곡산(425m), 공성산(x367.2m), 오성산(x215.5m, -0.18km)을 지나

장흥군 대덕면 옹암리에서 남해바다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6.6km

달하는 산줄기인데, 水界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탐진강의 동쪽으로 해서

장흥반도의 끝자락인 남해로 입수한다고 해서 장흥지맥이라 부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광주행 버스표

새벽 01시 30분에 출발하는 광주행 버스에 오른다.

원래는 저녁에 막차를 타고  장흥에 가서 1박을 한 다음에 조금 이른

시간에 산행을 시작하려 했었는데, 진도, 화원지맥을 하면서 여관에

자보니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잠을 설치니 산행을 할때 엄청

피곤하여 광주로 가는 버스에서 푹자고, 장흥가는 첫 차를 타고가서

산행을 좀 짧게 하는게 편할 것 같아서 야심한 새벽에 버스를 타고

아주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광주 버스 터미널이다

광주 유스퀘어 버스터미널(04:50)

광주터미널에 도착하니 이곳은 워낙 터미널이 커기도 하거니와

대합실 문도 열려있다...터미널을 빠져나와 터미널 건너에 있는

뼈해장국집에서 이른 새벽에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와서

장흥가는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에 30분 정도를 기다렸다가 06시 05분에

출발하는 장흥행 버스에 오른다

광주발 → 장흥행 버스표

화순, 장흥가는 버스 시간표 

06시 05분에 광주를 출발하여 장흥으로 가는 버스는 첫 차라서 그런지

손님이라고는 나를 포함하여 달랑 3명뿐이다... 이 버스는 말이 직행

버스이지, 화순, 능주, 봉림, 장평, 장동을 거쳐서 장흥에 도착하는데

광주에서 장흥까지 1시간 50분이란 시간이 걸린 다음에 장흥 터미널에

도착한다.

장흥터미널(07:50)

터미널에 도착하여 저녁에 서울가는 막차의 버스표를 예매하고는

화장실에 들려서 느긋하게 비우는 즐거움을 만끽하고는

택시 승강장으로 향하는데,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니

불안하긴 하지만 비가 그치기를 기원하면서 터미널을

출발하여 산으로 향한다

장흥에서 서울가는 버스 시간표

분기점인 사자산 미봉(尾峰)을 접근하기 위해서는 여러 구간의

코스가 있으나 많은 지맥꾼들이 이용하는 구간이 제암산 철축평원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간재를 경유한 다음에 분기점으로 향하는데

거리가 만만찮아 그럴 경우에 산행도 시작하기 전에 지칠것 같아서

택시를 타고 기사분에게 스마폰에 내장된 트랙상의 지도를 보여

주면서 활공장까지 갈 수 있겠냐고 하니까, 한번도 가보지는

않았지만 가는데까지 가보자고 하면서 쾌히 승낙을 한다.

 

주차장을 지난 후 부터는 비포장 도로이기는 하나 차량이 다니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고, 행여 걱정했던 차량을 통제하는 바리게이트도

없어서 九折羊腸의 임도를 따라서 천천히 오르다보니 활공장에

도착한다 

사자산 활공장(08:35)

택시기사분의 연세가 78세라는데, 평생 장흥에서만 살면서도

차량을 가지고 이곳에 올라와 보기는 처음이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자기도 기분이 좋다고 하면서 여기저기를 둘러본다

 

택시요금이 17,000원인데, 여기까지 차를 타고 왔으니 2시간

가까이 시간을 단축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 2만원을

드리고는 산행 준비를 한다

산행을 시작하다(08:45)

활공장 벤취에 베낭을 벗어놓고 스틱만 가진 체 사자산

미봉으로 향하는 길에 두봉을 뒤돌아보니 오늘도

짙은 안개가 산꾼을 많이 괴롭힐 모양이다.

 

그렇지만 늦게 산행을 시작하여 걱정을 많이 했지만

그래도 활공장까지 택시로 올라왔다는 건 어쩌면

신의 한수인듯 하다...1.2km 떨어진 분기점으로 향한다

사자산 미봉으로 향하는 길은 제도권 등로인지 등로는 아주좋다.

활공장을 출발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멋진 봉우리가 보이기에

분기점인 사자산 미봉(尾峰)인 줄 알았는지 가서 보니 아니더라

착각은 자유라고 했던가...조금전에 분기점이라고

생각하고 올랐던 암봉은 분기점과 활공장의 중간쯤에

있었던 암봉이었고, 여서서 보니 호남정맥에서 갈라지는

분기점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장흥(신산경표상:사자)지맥의 분기점에 도착하니 15년전인

2011년 5월 14일에 호남정맥을 지나면서 이곳을 지나갔으니

감회가 새롭다...내가 맥길을 걸을려고 이곳에 다시 온다는

생각을 꿈에도 안했으니 말이다.

사자산 미봉(獅子山 尾峰:667.5m:09:03~07)

전남 보성군 웅치면 대산리와 장흥군 장흥읍 삼산리, 안양면 비동리의

경계에 있는 호남정맥에 속하는 산으로, 제암산, 억불산함께 장흥읍을

둘러싸고 있는데 펑퍼짐한 암봉으로 되어있고, 장흥군에서

설치한 정상석에는 사자산 간재봉 660m 라고 표기가 되어있다

 

사자의 엉덩이를 닮았다 하여 부르는 미봉(尾峰)이라 부르며, 곰재를 사이에

두고 제암산과 마주보고 있으며, 동서로 400m의 능선이 길게 뻗어 있다.

정상은 거대한 암반으로 이루어졌으며, 산 모양이 사자 형상을 하고 있어

사자산이라고 부르며, 거대한 사자가 엎드려 고개를 든 채 일어서려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장흥군 안양면 모령리 마을 쪽에서 보면 수사자가 앉아있는 모습이고,

장흥읍에서 보면 사자의 머리쯤으로 생각되는 곳이 일본의 후지산을 닮았다 하여

장흥의 후지산으로도 부르는데,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후지산(富士山)으로

불렀고 이곳에 쇠말뚝을 박았다고 전한다.


1993년 큰불로 공무원이 순직한 후 매년 산신제를 지낸 이후로는 산불이 나지

않는다고 전해지며, 제암산 사이에 있는 능선은 철쭉 군락지대로 유명하며

매년 5월 철쭉제가 열리고 있다

분기점에서 바라본 제암산(帝岩山:806.2m)의 모습

전남 장흥군 장흥읍, 장동면, 보성군 웅치면에 있는 산인 제암산(帝岩山) 정상은

임금 (帝)자 모양의 3층 형태로 높이 30m 정도되는 바위가 우뚝 솟아 있고.

골짜기마다 샘이 많으며 장흥의 진산답게 웅장한 모습을 자랑한다

 

지명의 유래는 수십명이 한자리에 앉을 수 있는 이 정상의 바위를 향하여 

여러 바위와 장흥 인근의 모든 산들이 이 산을 향하여 기립한 듯하고

또한 모든 산들이 이 산을 바라보고 임금에게 공손히 절을 하고 있는 형상이라

임금바위(帝巖)이라고 부르며 이 산을 제암산이라 한다고 전해진다.

 

산 속에는 가난한 형제가 나물을 뜯으러 갔다가 떨어져 죽어 바위가 되었다는

형제바위가 있고, 형제바위 아래 좌우에 의상암자와 원효암자가 있으며,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제암단이 있다... 중턱에 자연휴양림이 조성되어

있으며 용추골 용추폭포는 관광지로 유명하고,  남쪽 사자산 사이에 있는

철쭉 군락지대에서는 1991년부터 매년 5월 제암 철쭉제가 열리고 있는데

제암산에서부터 곰재(熊峙)를 넘어 사자산으로 뻗어나가는

철쭉 군락지인 철쭉평원. 그 넓이는 참으로 엄청나고 광대하다.

특히 이 모든 철쭉들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은 자생종이라고 한다.

 저 아랫쪽에는 예전에 이 길을 걸었때는 없었던 멋진 전망대가

보성군 웅치면을 향해서 설치되어 있는데, 조망은 멋진 곳이나

흐릿한 미세먼지가 그림을 망쳐버렸다

동쪽으로 뻗어가는 호남정맥의 멋진 마루금.

예전에 저 길을 같이 걸었던 동료산꾼들은 지금은 다들

뭐하시는지, 궁금하구나...다들 하산하셨는지 소식이 없구나.

 

뒷쪽 우뚝 솟은 일림산을 두고, 보성군과 장흥군이 서로 자기들

산이라고, 우기면서 볼썽사나운 법정 다툼까지 한 사연이 있는 산이다.

 

정작 쥔인 산은 가만히 있는데, 인간들의 탐욕과 사리사욕으로

쥔장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오만방자한 짓거리를 그만했으면 한다

 

사연은 이러했다.

 

보성군 웅치면과 장흥군 안양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 명칭 논란은 보성지역은

일림산(日林山)을, 장흥지역은 삼비산(參妃山)을 주장한 게 발단이었다


수십만평의 철쭉 자생지로 유명한 이 산은 보성군이 매년 5월 '일림산 철쭉제'를 개최,

많은 인파가 찾으면서 이름 논쟁을 가열시켰는데, 논쟁의 발단은 국토지리정보원에서

발행된 지도에는 제2봉(627m)의 이름은 일림산으로 명기된 반면 장흥-보성 경계인

주봉(主峰.667m)은 이름이 누락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부터다.

 

보성군은 작은 산 이름이 엄연히 있는 만큼 당연히 일림산이 돼야 한다는 주장인 반면

장흥군은 예부터 마을 주민들이 주봉 이름을 삼비산으로 불러온 만큼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보성군은 2000년 정상 부근에 '일림산' 표지석을 세우고, 보성 다향제(茶鄕祭)

행사의 하나로 일림산 철쭉제를 열고 있고, 국토정보지리원 발행 지도에

일림산으로 명기돼 있어 일림산이란 명칭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관광객들이 늘면서 장흥군 안양면 청년회가 "산 이름을 되찾아야 한다"며

장흥군에 민원을 제기했고, 장흥 안양 청년회는 "예로부터 삼비산(三妃山)으로

불려왔는데 엉뚱하게 일림산으로 잘못 알려졌고, 이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흥군도 국토지리정보원에 삼비산과 관련된 구전이 실린 안양면지(面誌 ) 등을

제시하고, 일부 지도에 일림산으로 오기(誤記)가 된 부분을 정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결국 법정으로까지 갔으나, 장흥군의 패배로 공식 지명을 일림산으로 표기하나,

아직도 장흥군에서 세운 이정표에는 삼비산 그대로이다

일기예보에는 오후 3시 이후로 비가 온다는데 갑자기 하늘이

시커머지면서 먹구름이 몰려오는데 왠지 모르게 불안하다.

우짜겠노...하늘에 운명을 맡기고 걷는데까지 걸어봐야제...

장흥(사자)지맥 분기점에 잠시 머물다가

본격적인 맥길의 첫 발걸음을 준비한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사자산 정상석 바로 아래의 이곳

나뭇가지에 준.희쌤의 사자지맥분기점란 산패가 걸려 있었는데

지금은 보이지가 않는구나...한참을 찾다가 포기하고 길을 떠난다

지맥의 첫 발걸음을 내디디면서 동남쪽을 내려다보니 

달바우산(399.2m)이 보이고, 장흥군 안양면 비동리에

있는 飛洞堤라는 저수지가 흐릿하게 보인다

선답자들 사이에 장흥(사자)지맥  산길이 거칠기로는 

진도, 고흥, 화원지맥 못지 않다고  겁을주는 맥길이지만,

어차피 숙명적으로 걸어야 할 길이기에 다가올 맥길이

어쩔까하는 궁금증 앞선다...산꾼이 못가야 할 길은 없다고

굳게 믿으면서 오늘의 맥길을 시작한다

등로에서 바라본 장흥군 안양염 비동리의 모습

비동리(飛洞里)는 사자산 앞 평지에 자리한 농촌마을로 벼랑처럼 된 층암이

바닥에 깔렸으므로 비렛골, 비래동 등으로 불리다가 비동리로 개칭되었다.

자연마을로는 비동, 동촌, 중골, 절테, 붓당골마을 등이 있으며, 비동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유래 또한 비동리의 그것과 같다.

 

동촌마을은 비동의 동쪽에 자리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중골마을은

비동과 동촌 사이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고 절태마을은 절터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붓당골마을은 불당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라 한다.

장흥읍을 내려다보는 사자산 두봉(頭峰)의 멋진 포스가 압권이다

지척에 보이는 사자산(獅子山) 두봉은 길게 뻗어 안양면의 월계골까지 이어지는데, 

흡사 고개를 들고 먼 산을 바라보는 사자 모양을 한 이 산은 장흥읍내를 지키는

수문장처럼 보인다...그래서 예로부터 이 고장 사람들은 이 산을 사자산이라 하였고,

일제강점기 장흥에 살았던 일본인들은 이 산의 모습에 찬탄을 아끼지 않았다.

그들은 사자산이 일본의 후지산과 닮았다고하여 장흥 후지산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암봉(09:15)

산은 그저 산일 뿐 / 법정 스님


산을 그저 건성으로
바라보고 있으면
산은 그저 산 일 뿐이다.

그러나 마음을 활짝 열고
산을 진정으로 바라보면
우리 자신도 문득 산이 된다.

내가 정신없이
분주하게 살 때에는
저만치서 산이
나를 바라보고 있지만

내 마음이 그윽하고
한가할 때는
내가 산을 바라본다.

조금전에 왔던 길을 되돌아 가는 길인데도 

산죽 사이로 이어지는 길이 왠지 모르게 어색하다.

 

높은 산길이라 그런지 조금씩 강하게 불어대는 바람이

다시 겨울로 되돌아 가는 느낌이랄까...세속의 인간들이

반칙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며, 살아가니 자연도 인간을 닮아가는 느낌이랄까...

조금전까지만 해도 능선에 먹구름이 몰려와서 범여의

애간장을 녹이던 먹구름은 사라지고, 흐릿한 미세먼지만

극성을 부리는데 서북쪽의 호남정맥 능선에 있는 제암산은

옛 모습을 잃지않고, 15년전에 저 길을 걸었던 산꾼을 반긴다

 

저 길을 걸을때가  범여의 전성기였는데, 이제 70을 훌쩍 넘긴

노인네가 되어가는 내 모습이 왜 이리도 초라할까...그래 세월을

되돌릴 수 있는 초능력자가 있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가는 세월이 아쉽기는 하지만, 세상의 이치인데 우짜겠노...

조망바위(09:18)

분기점인 사자산 정상인 미봉(尾峰)에서 사자의 머리처럼 보이는

두봉(頭峰)은 사자가 하늘을 우러르는 사자앙천형(獅子仰天形)

산으로 사자가 도약하는 형상으로 보이는구나.

 

두봉 뒷쪽으로는 장흥읍내의  아파트 단지가 보이고, 동남쪽으로는

오늘 내가 오를 억불산이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하는듯 하다

산죽 사이로 이어지는 마루금.

1주일 내내 世俗에서 시달린 肉身을 치유하기엔 산길만큼

좋은 의사는 없는듯 하다...아무런 생각없이 걷고, 또 걷다보면

어느새 몸과 마음은 healing이 되는 느낌이다

안부(09:23)

베낭도 없이 스틱만 가지고 활공장으로 편하게 걷는다.

잠시후에 어떻게 다가올지도 모를 맥길은 그때 생각하기로

하고, 걷고 또 걷는다

오늘 내가 걸었던 능선을 뒤돌아 본다.

얼마 걷지 않았던거 같은데 어느새 분기점은

저만치 멀어져만 간다

무명봉(09:30)

장흥군의 이정표에는 아직도 일림산을 삼비산으로

표기되어 있어 조금은 헷갈린다...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으면 억울할지는 몰라도 수긍을 해야하는거 아닌가요.

 

우측 아래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아침에 택시를 타고온

그 임도를 말하는 모양이다

멋진 사자산 두봉을 바라보면서 활공장으로 향한다

사자산 활공장(09:32)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인 이곳이 사자산의 등뼈에 해당되는

부분으로 주위에 억새들이 많이 있어 마치 사자갈기 같다고 한다

 

* 갈기란 말, 사자 따위 짐승의 목덜미에 난 긴 털을 말한다

평상 너머로 보이는 달바우산... 또 그너머로 보이는 득량만

그리고 아무것도 볼 수 없게 꼬라지를 부려되는 미세먼지...

이게 자연의 섭리(攝理)인가...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활공장에서의 아쉬움을 안고, 다시 베낭을 메고 길을 나선다

추모비(09:33)

이곳에서 짧은 生을 마감하신 모양이다.

고 임재량님 추모비를 지나자마자 2번째 활공장을 만난다

 

 이곳은 패러글라이더 30대가 동시에 이륙할 수 있는 이·착륙장이 있고,

5~9월까지는 항상 남풍이 불어 패러글라이딩의 명소로 이름나 있다.

그래서 해마다 9월 초에는 장흥 재향군인회에서 주관하는 사자산 일주

산악구보 행사와 함께, 사자산과 탐진강(耽津江)변에서 전국패러글라이딩대회가

열린다고 한다

활공장 좌측으로 보이는 안양면 비동리의 달바우산과 비동제 풍경

우측으로는 아침에 지나온 장흥읍 금산리와 금산저수지가

그 너머로 매봉(422.5m)은 비교적 뚜렸하게 보인다.

 

장흥군 장흥읍 금산리(錦山里)는 제암산 앞 평지에 자리한 마을로, 논농사가

주로 이루어지는 마을인데, 지명의 유래는 마을 주변에 금이 매장되어 있다 해서

금산리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금산, 도치바웃골, 등잔골, 북당골, 한치, 신기,

서당골, 원골마을 등이 있다.

 

금산마을은 본 리가 시작된 마을로, 지명 유래 또한 금산리의 그것과 같으며,

도치바웃골마을은 도치(도끼)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등잔골마을은 옥등잔이 벽에 걸린 형의 명당이 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고,

북당골마을은 불당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한치마을은 큰 고개 밑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칭해진 이름이며, 신기마을은 한치 남쪽에 새로 된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서당골마을은 서당이 있었다 하여 불리게 된 이름이고,

원골마을은 원(院)집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2번째 활공장에서 내려서니...

꽃망울을 터트리려다가 추운 날씨땜에 움추리고 있는

생강나무꽃을 만난다...많이 춥겠구나...추위를 많이

타는 나도 엄청 춥다...따스한 봄날은 언제 오려는지?...

안부(09:35)

안부에서 암봉이 있는 무명봉으로 올라선다

무명봉 정상으로는 오르지 않고, 멋진 소나무와 

그 뒷쪽으로 보이는 억불산을 보면서 사면길로 향한다

무명봉 정상의 사면길로 내려서니...

길섶 수풀속에서 바짝 엎드린 하얀 제비꽃이 홀로

호젓하게 걷고있는 범여의 가슴을 들뜨게 하는구나.

하얀 제비꽃과 눈맞춤을 하고,사자산 두봉으로 향하는 길.

자연과 교감하면서 올 봄에는 어떤꽃과 사랑을 나눌까.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구나.

무등산의 주상절리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멋진

주상절리를 바라보면서 사자산 두봉으로 향한다

주상절리(柱狀節理:09:53)

기둥모양의 절리(節理, joint)라는 뜻으로, 절리는 지형 용어로 암석에

생기는 갈라진 틈 또는 결을 의미하는데, 보통 고온의 마그마 또는 용암이

찬공기나 물과 만날 때 급격한 냉각과정에서 수축되면서 생성되는데,

보통 이 과정에서 생기는 절리에 의해 기둥모양 돌들이 다발로 나타나서

붙여진 이름이다.

 

수직방향의 긴 기둥모양의 돌들이 특징적으로 나타나 독특한 지형을

형성하는 것으로 유명하나, 반드시 수직방향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현무암, 안산암 등 화산암의 암맥이나 용암, 용결응회암 등에서 잘 나타나며,

그 중에서도 온도가 높고 유동성이 큰 현무암질 용암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주상절리는 보통 육각형의 단면을 가지는 돌기둥들이 규칙적으로 붙어서

연속적으로 나타나, 그 독특한 형상으로 인해 관광지로 개발된 곳이 많다.

육각형의 단면이 나타나는 이유는 용암의 표면에 냉각·수축의 중심이 되는

점들이 고르게 분포할 때, 각 수축 중심점들을 중심으로 수축이 균등하게

일어나면서 형성되기 때문으로 보고 있는데, 그러나 반드시 육각형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사각형이나 오각형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보통 단면의 크기는 수 센티미터에서 수 미터에 이르기도 하며, 기둥의

길이는 수 미터에서 긴 것은 수십·수백 미터에 이르기도 한다.

 

일반적으로 화산암에 나타나므로 화산활동이 활발했던 곳에서 잘 볼 수 있는데,

세계적으로 영국 북아일랜드 북부 해안의 자이언트 코즈웨이(Giant's Causeway),

아르메니아의 가르니(Garni) 계곡, 미국 와이오밍 주의 데블스 타워(Devil's Tower),

아이슬란드의 여러 해안들에 있는 주상절리가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도 제주도

지삿개 등 여러 해안의 주상절리들과 울릉도의 국수바위, 광주 무등산의 입석대와

서석대, 한탄강 일대, 경주, 포항 등의 주상절리가 유명하며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곳들이 많다.

주상절리를 지나면서 뒤돌아 본 분기점(사자산 미봉)의 모습

좌측 능선의 달바위산 너머로 득량만(得糧灣)은 흐릿하게 보이나

그 뒷쪽으로 이어지는 고흥지맥길은 아예 흔적조차 안 보이니

참으로 아쉽다...고흥지맥길을 걸을때 개고생한 기억이 소환되는

기분이다

 

득량만(得糧灣)은 전라남도 고흥군의 고흥반도 북서쪽에 있는 만으로 『조선지형도』에

의하면 본래는 장흥반도와 고흥반도 사이에 있는 지금의 보성만 전체를 아우르는 만이었다.

그러나 보성만(寶城灣)이라는 이름이 생겨나고 그 구획이 설정되면서 득량만(得粮灣)은

고흥군 · 보성군 · 장흥군으로 둘러싸여 있는 보성만의 후미 부분만을 일컫게 되었다.

만(灣) 깊숙한 곳에는 고흥군 남양면의 우도(牛島)와 무인도인 각도섬, 하구룡도, 중구룡도,

상구룡도가 있고 주변 해안에는 간척지가 널리 펼쳐져 있으며, 고흥군 대서면 남정리와

보성군 조성면 예당리에는 득량만방조제가 건설되어 넓은 간척평야가 조성되었다.

 

지명은 득량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 득량만(得糧灣)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양식(糧食)을 얻는 만(灣)’이라는 뜻으로 그만큼 물산이 풍부하다는 이야기다

산불감시카메라가 범여를 째려보고 있는 사자산 두봉에 도착한다

사자산 두봉(獅子山 頭峰:569.2m:09:57)

장흥군 장흥읍 금산리와 안양면 기산리와 비동리 경계에 있는 산으로

미세먼지만 아니면 온 주변을 다 볼수있는 조망이 아주 멋진 곳이건만

오늘은 아쉽게도 주위의 조망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이곳의 사자의 머리에 해당하는 두봉(頭峰:569.2m)으로 꼬리에 해당하는

미봉(尾峰:667.5m)에 비해 높이는 낮으나, 워낙 멋진 포스를 가지고 있어서

장흥의 사자산하면 이곳을 말한다.

 

제암산(807m), 억불산(518m)과 함께 장흥의 삼산(三山)으로 불리는 사자산은

장흥읍을 굽어보고 있는 장흥의 진산으로, 특히 호남정맥 다음 구간으로 넘겨지는

큰 맥의 꼭지점처럼 마지막 힘 있게 높이 솟아 있다. 정상 서쪽의 두봉(569.2m)이

사자의 머리, 사자 두봉에서 정상까지 이어지는 능성(산등성이’의 방언)이 사자의

허리(활공장), 정상 북릉이 사자의 꼬리(미봉)로 사자가 하늘을 우러르는

사자앙천형((獅子仰天型)의 산으로 사자가 도약하는 형상하고 있는 산이다  

 

사자앙천형((獅子仰天型)이란

   풍수지리학상 사자가 하늘을 우러러 포효(咆哮)하는듯한 지세를 말한다

장흥읍을 지키는 스핑크스와도 같은 모습의 사자산은 일제 때 장흥에 살던

일본인들은 일본의 후지 산(富士山)과 닮았다 하여 ‘장흥 후지산’이라 부르며

감탄했다는 이야기도 전하는 산으로, 장흥읍에서 우뚝 솟구쳐 올라 한라산 산록의

초원지대를 연상케 하는 사자산은 봄이면 파릇한 기운이 스며들면서 진홍빛

철쭉과 함께 아름다운 생명의 신비함을 느끼게 하고, 여름이면 산등성이가

짙푸른 푸른 초원으로 덮이면서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가, 가을이면 산등성이에

억새밭으로 이어지면서 억세꽃이 날리면서 오히려 더욱 찬란한 빛을 띤다.

그리고 겨울철 흰 눈이 등성이에 쌓이면 황야를 쓸쓸하게 걸어가는 한 마리 사자 같은

인상을 주는 등 철따라 다양하고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산이라고 한다.

인증샷

산행코스는 여러 개 있는데, 제암산이나 곰재와 연결한 종주코스가 산행의

즐거움을 한껏 느끼게 하는데, 산행 기점이 공설공원묘지 주차장인 경우

간재골짜기의 제암산 임도(林道)를 따라가다가 간재에 도착한 후 오른쪽의

사자산 미등(꼬리)과 패러글라이더 이륙장을 거쳐 사자산 두봉(머리)에 이르게 된다.

정상은 거대한 암반으로 이루어졌으며, 장흥읍내와 남해로 빠져나가는 탐진강이

멀리 내려다 보이며 주변에 천관산 장천재, 수인산성, 부춘정, 수문해수욕장이 있고,

바다낚시 명소인 회진(會鎭)과 동양3대 보림인 보림사 외에 유치 자연휴양림,

천관산 자연휴양림, 제암산 자연휴양림 등의 관광지가 있다.  

사자산 두봉에 잠깐 머무는 사이에 강풍이 몰아치면서

손가락이 빠져 나갈것만 같은 추위가 엄습해와 서둘러 길을 떠난다

갈림길(09:59)

우측으로 제암산 주차장으로 향하는 뚜렸한 임도가

보이고, 맥길은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기산마을쪽으로

향한다

장흥군의 중앙에 위치한 장흥읍은 수인산(561m), 사자산(668m), 억불산(517m)

광춘산(384m) 등에 둘러싸여 분지를 이루며, 보성군 · 강진군 등과 접해 있다.

탐진강이 읍의 중앙을 가로질러 서류하면서 금강천과 합류하는데, 연안에

충적평야가 펼쳐져 있다. 읍 소재지인 기양리를 비롯하여 27개 법정리가 있다.

 

본래 장흥군 지역으로서 장흥부(長興府) 소재지이므로 부내방(府內坊) 또는

부내면(府內面)이라 하여 11개 동리를 관할하였는데, 1895년(고종 32) 지방 관제

개정에 의하여 장흥부를 장흥군으로 고침과 동시에 군내면(郡內面)으로 고치고

1914년에 장흥면이라고 해서 15개 리로 개편되었다.

 

1932년에 부동면의 12개 리를 편입하여 27개 리가 되고 1942년에 읍으로 승격되었다.

『삼국사기지리지』(보성)에 "마읍현(馬邑縣)은 본시 백제의 고마미지현(古馬弥(彌)知縣)으로

 경덕왕이 마읍(馬邑)으로 개명, 지금의 수령현(遂寧縣)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수령현이 현재의 장흥읍이다. 『해동지도』(장흥)와 『호남지도』의 장흥읍 일대에

벽사역(碧沙驛), 예양서원(汭陽書院), 연곡서원(淵谷書院) 등이 기록되어 있다.

사자산 망바위(10:01)

망바위에서 바라본 이곳 장흥지방에는 위씨(魏氏)가 참으로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얼마나 많았으면 “장흥에서 사람 셋이 모이면 그 중에 한 사람이 魏氏”라고

할 정도라고 한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실학자였던 관산읍 방촌리 출신인

위백규 선생을 꼽을 수 있으며, 명문가 출신도 아니고 벼슬도 하지 않았던 한낱

시골 농사꾼에 불과한 그가 어느 실학자 못지 않았다고 한다.

 

흔히 실학이라고 하면 다산 정약용을 꼽는데 그야 높은 벼슬을 하다 해남으로

귀양을 와서 그렇지만 위백규 선생은  시골에서 대단한 안목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몽고족의 침입과 원나라의 내정간섭으로 이어지는 격동기인 고려후기

 사회의 시대적 아픔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다 간 원감국사 충지선사도

 속성은 위씨이며 속명은 원개이다. 그밖에도 예전에 미국에서 골프 천재라고

 불렸던 미셜 위도 이곳 장흥 출신이다.

조망바위(10:05)

조망바위 좌측으로 내려서니 안전로프가 있고

산죽길이 펼쳐지는데 관리가 잘되어 있다

기산마을로 향하는 이정표

급경사의 좌측에는 너덜길이 펼쳐지고 그 아래로는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마을이 펼쳐진다

 

기산리(岐山里)는 중국의 주(周)나라 문왕(文王)이 도읍하였던 기산과

흡사하다 하여 기산(岐山)이라고 하였다 하며 기산, 동계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마을 앞에 지석묘가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신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으로 추정되며, 조선 중엽 팔문장(章)중의 한사람인 백광훈(白光勳)리

태어난 곳으로 장흥에서는 으뜸 마을이라 하여 일기산이라고 불려왔다고 한다

 

* 팔문장(八文章)이란 조선 중기의 송익피(宋翼弼), 이산해(李山海),백광훈(白光勳),

 최경창(崔慶昌), 최입(崔岦), 이순인(李純仁), 윤탁연(尹卓然), 하응림(河應臨) 등 8명의

 문장가를 이르는 말. 팔문장이라는 말은, 명대(明代)의 칠자팔재(七子八才)를 본뜬 것으로,

 송익필의 묘지명(墓地銘)과 이덕무(李德懋)의 ≪이목구심서 耳目口心書≫,

 ≪고담유고 孤潭遺稿≫의 <동사팔문장 東史八文章> 등에 근거를 두고 있다.

 

 이들 8인이 동인(同人)이 되어 시주 상화(詩酒相和) 했다는 데서 비롯되는데, 여기서 문장이란

 시문(詩文)을 포함하는 넓은 의미로 씌었으나, 이들 8인이 문학상으로 일정한 경향이나

 주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구성 성분도 다양하다.

 송익필 · 백광훈 · 최경창 등은 서류(庶流)로서 서로 비슷한 처지였다고 하겠으나,
이산해 ·

 윤탁연 · 이순인 · 하응림 등은 당당한 가문(家門)에서 출생했고, 상당한 벼슬을 한 인물들이다.

 이는 일시 환로(宦路)가 여의치 못하던 사대부(士大夫)와 불우한 서민 문사(庶民文士)들의 한때의

 모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기산리로 향하는 데크목 계단...이 계단이 없었던

시절에 사자산으로 오르는 길은 꽤나 땀을 흘리면서

고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밀양 만어산에 있는 어산불영(漁山佛影)을 닮은 멋진 너덜길.

거기에 비해서 규모는 적지만 충분히 감동적인 모습으로

산꾼에게 다가오는구나.

장흥(長興)지역의 인물로는 국문학사에 기행가사(紀行歌辭)의 

효시를 남긴 가사문학의 효시자 기봉 백광홍(白光弘, 1522~1556 선생은

“관서 명승지에 왕명으로 보내실제 / 행장을 다사리니 칼한자루 뿐이로다”

시작되는 ‘관서별곡’을 지었던 조선 명종(12대임금)때 문신이었던

그는 이곳 안양면 기산리 출신이다.

그가 관직을 그만두고 한양으로 돌아올 적에 관서지방의 뛰어난

뛰어난 경치에 탄복하여 지었다는 ‘관서별곡’은  우리나라 최초의 가사문학

작품으로 훗날 ‘관동별곡’을 지은 송강 정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장흥에는 우리나라 문학사에 많은 영향을 미친 녹두장군의 송기숙과

작가 한승원이 이 지역 장흥 출신이며, 또 지난해 우리나라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 한강의 부친이 한승원이다. 

 

또한 『생의 이면』을 지은 이승우와 일반독자들에게 너무나 많이 알려진 서편제,

이어도,병신과 머저리, 당신들의 천국 등을 쓴 소설가 이 청준도 장흥 회진면

출신이며, 고려시대(고종)에 국사를 지내신 원감국사 충지스님도 이곳 장흥 출신이다. 

갈림길(10:10)

직진의 기산리로 이어지는 뚜렸한 사면길을 버리고

등로가 전혀없는  우측의 내리막길로 내려서면서

오늘 산행의 첫번째 苦行이 시작된다

맥길을 우회하더라도 좀 편할길을 갈 껄하는 생각도

해보지만, 범여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아서 잡목이

태클을 걸어대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바라보면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왜 장흥(사자)지맥이 화원이나 진도지맥처럼 힘든

산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듯 하다...그래도 우짜겠노

내가 택한 길인데...

이 분은 최근에 지나가신 모양이다...시그널이 따끈따끈하다

세상사 살아가면서 좋은일만 일으면 무슨 재미랴...

힘들일도 있어야 살아가는 의미가 있지 하면서

내 스스로를 위로하며 잡목과 사투를 벌이면서

조금씩 천천히 내리막길로 향한다

많이 내려놨나 싶다...등로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눌제진사문공&여산송씨 묘(10:40)

700m 남짓한 내리막길을 30분이나 걸렸으니

얼마나 개고생을 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묘지 아래로 이어지는 편안한 길을 따르면서 몸뚱아리를 추스린다

임도(10:45)

임도를 가로질러 내리막으로 내려서는 길에...

선답자들의 흔적들이 범여를 안내한다...다들 복받을깁니다

그래 내가 선택한 이 길...누구를 탓하랴.

묵묵하게 힘든 길을 걸어가는데, 왠지

모르게 이런 길을 걸을때가 맘이 편하니

난 맥길 체질인가...문제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체력이 떨어지는게 서러운 생각만 든다

예전엔 밭이였던 모양이다...여름철엔 지나가기 힘들겠구나.

묵밭을 가로질러 숲속으로 들어서면서 또다시 고행길은 시작된다

오늘은 늘보님이란 분이 범여를 안내할 모양이다

거친 잡목을 헤치면서 내려서니 잠깐 좋은 길을

걷다가 내려서니 편백나무 숲이 맥길을 가로막는다

맥길은 살짝 좌측으로 꺽어지고...

늘보님의 시그널 방향으로 내려서니 매화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는 묵밭을 만난다

묵밭(10:57)

이제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하는 매화꽃 한그루가

갑자기 들이 닥친 추위에 몸을 잔뜩 웅크린 채,

추위에 떨고있는 모습이 안쓰럽기만 하다.

이보시게 그대만 추운게 아니라, 나도 엄청 춥다네...

똑닥이 카메라로 아웃포커싱 촬영한 매화꽃

 

조선 중기에 문신이자 서예가인 상촌(象村) 신흠(申欽:1566~1628)은

그의 수필집 ‘야언(野言)’에 실린 7언절구(七言絶句)에서 매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梅花)는 한평생 춥게 살아도 그 향기(香氣)를 팔지 않는다.

 

풀이하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원칙을

지키며 의지(意志)와 소신(所信)을 굽히지 않겠다는 뜻이다

묵밭에서 올해 처음 만난 매화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나니 등로가 보이지 않는 편백나무 숲이 길을 막는다

편백나무 숲을 통과하여 돌계단을 내려서니...

이번에는 대밭이 태클을 걸어대며 갈길 바쁜 범여를 붙잡는다.

대밭을 통과하는데 윗쪽은 베낭을 잡아 당기고,

아랫쪽은 등산화를 붙잡으면 태클을 걸어댄다.

이건 산꾼에게 엄연한 반칙이라 빠때루를 줘야

하는 거 아닌가?

대나무숲을 통과하니 이번엔 시누대가 바통을 이어받아

범여를 괴롭히지만, 그런다고 해서 한번도 안가본 적은 없다.

힘들게 시누대 숲을 빠져나오니 관리가 안된 기와집이 보인다

한때 대단했던 건물이었는데 관리가 되지않아

퇴락한 모습이 한 눈에 보이는데 안타깝구나.

건물 마당에 피어있는 저 동백은 쇠락한 기왓집의 그 의미를 알겠지?

효성사(孝星祠:11:05)

효성사(孝星祠)는 광산노씨(光山盧氏)의 사우로 이곳은 1972년(壬子) 후손들의 정성

어린 모선으로 향의가 제발하였으며, 상촌(桑村) 노숭을 비롯하여 백마장(白馬將軍)

노의, 운암(雲庵) 노자원, 긍재(肯齋) 노자형, 송와(松窩) 노자정, 소재(蘇齋) 노수신 등

6분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유림의 뜻을 모아 기산마을 효경동에 3칸 맛배집 사당과

내삼문 건물을 창건하여 향사해왔으며, 이후 1978년(戊午) 지역 유림의 천거로 오당(梧堂)

노관을 추배하였다... 주벽 상촌 노숭 선생을 중앙에 모시고 이하의 분을 좌우로 모시는

소목식(昭穆式) 형태의 7현(顯) 위패를 봉안하고 매년 陰 3월 11일 지역 유림의 주관으로

제향을 봉행한다고 한다.     

효성사사적비(孝星祠事蹟碑)

효성사 경내로 들어가 보려 했으나 문이 굳게 잠겨있어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나서는데, 후손들이

잘 관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효성사로 이어지는 편백나무 숲을 지나니...

잠시후에 오를 우뚝솟은 억불산이 보이고, 갑자기 밀려오는

먹구름이 금방이라도 비를 쏟을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그리고 강하게 불어대기 시작하는 바람에 손가락이 시릴

정도의 추위가 엄습해온기 시작한다

조금전에 지나왔던 사자산 두봉...왜 그리도 내려오는

길이 나에게 모질게 굴었는지...참 많이도 섭섭했다

벌건 속살을 드러내놓고 있는 뒷쪽으로는 나즈막한

당뫼산이 빨리 오라고 재촉을 하는구나.

지둘러라...빠른게 능사는 아니잖혀...

효성사로 이어지는 한천골에서 내려가는 길

우측에는 쥔장의 손길을 기다리는 녹차밭이 보인다

18번 국도인 기산고개에 도착하자 입구에 효성사

입구라는 표시석과 청헌광산노공병선 효행비가 서 있다.

기산고개(11:17)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와 장흥읍 향양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18번 일반국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좌측으로는 억불산이

도로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지도상의 공식지명은 아니고

산꾼들 사이에 기산마을 윗쪽에 있는 고개라서 편의상

부르는 지명인 듯 하다

장흥읍쪽으로 향하다가 GS칼텍스 주유소가 보이는

녹색 휀스 뒷쪽으로 올라가야 맥길이나 산을 깍아버려

오를 수가 없다...종려나무가 심어져 있는 뒷쪽으로 향한다

뭘 하려는지?... 좌측으로 우회해서 올라서니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은 묘지가 나타난다

광산노공&장흥위씨 묘(11:21)

마루금에 복귀하면서 바라본 장흥군 안양면의 들녁

안양면(安良面)은 전라남도 장흥군 동부에 위치한 면으로 면의 서 · 북 · 동

방향을 연태봉, 억불산(517m), 사자산(668m) 등 대체로 해발고도 400~700m의

산지가 둘러싸고 있고, 득량만과 접한 해안지대에 간척평야가 펼쳐져 있다.

앞바다에는 유인도인 장재도가 있는데 인공방조제로 육지와 연결되어 있으며,

면 소재지인 운흥리를 비롯하여 기산리 · 비동리 등 13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본래 장흥부에 딸린 안양향(安壤鄕) 또는 안회향(安懷鄕)인데 조선 때에 안양방(安壤坊)

또는 안양면이라 하여 30개 동리를 관할하였고, 고종 때에 안상(安上) · 안하(安下)의

두 면으로 나뉘었다가 1914년에 다시 합하여 안양면이 되고 13개 리로 개편 관할하였다.

『해동지도』(장흥), 『여지도』의 안양면 일대에 장재도(長財島)를 한자를 달리해 '장재도

(壯載島)'로 기록하고 있으며, 『1872년지방지도』의 안양면 일대에 해창(海倉), 수문창

(水門倉)과 수락(水落), 사촌(沙村) 등이 기재되어 있다.

마루금에 복귀하면서 뒤돌아 본 사자산 두봉의 모습

마루금에 복귀하니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바람에

심하게 흔들리면서 범여를 격하게 환영해주는 듯하다

등로는 보이지 않는다...이럴때는 스마트폰에

깔려있는 트랙을 확인한다...요즘은 일상속에서

문명의 利器에 인간이 지배당하는 느낌이다

광산김공&장흥위씨 묘(11:27)

장흥지역을 걸으면서 묘비나 상석을 살펴보면

다른지역과는 달리 꼭 아호(雅號)가 적혀있는 걸

많이 보는데 이 분의 아호는 石岡인 모양이다

맥산꾼에게는 저승사자같은 존재인 이 넘들도 슬슬

산꾼을 괴롭히기 위해서 워밍업을 시작하는구나.

나는 니 꼬라지 보기 싫어서 좀 일찍 왔서 이곳을 지나간다

광산김씨 가족묘를 지나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간다

안부(11:30)

안부를 지나면서 밀양박씨 가족묘를 지나고...

기산고개를 지난 능선에 오르면서부터는 

묘지 둘레길을 걷는 기분이다...후손들이

문중마다  勢를 과시하듯 묘지들이 호화롭다

호화로운 묘지를 뒤로한 체...

다시 숲속의 오르막길로 향하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저 아래의 호화로운 묘지와는 달리 후손들의 삶이

궁핍해서 그렇나, 초라한 묘지가 범여의 가슴을

아리게 하는구나...그러나 너무 서러워마소.

화려함은 꼭 좋은것만은 아니거던요...

흐린 날씨에 차가운 바람, 짙은 미세먼지 탓에

그리 급한 가풀막도 아니건만 숨이 차는구나.

오름길에 또다른 묘지를 지난후에 무명봉에 도착한다

무명봉(11:40)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향하는 길에 무명묘지를 만나고...

커다란 돌무더기를 지나면서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11:42)

안부에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이곳이 장흥군 예비군 훈련장인 모양이다.

예비군 훈련장을 지나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서니

백두사랑산악회 산패가 걸려있는 당뫼산에 도착한다 

당뫼산(164.7m:11:52)

장흥군 장흥읍 향양리와 안양면 기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북쪽으로는 예비군 훈련장이 있고, 동쪽 산 아래로는 공동묘지가

있으며, 정상에는 4등 삼각점이 있는데 찾을 길이 없다.

당뫼산에 대한 지명의 유래도 찾을 방법이 없어서 많이 아쉽구나

주변의 풀섶을 아무리 뒤져봐도 삼각점을 찾을길이

없어서 포기하고 동쪽으로 향하는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마삭줄이 양탄자를 깔아논 듯 레드카펫이 아닌

그린카펫을 밟는 기분으로 공동묘지 사이로

이어지는 맥길을 따라서 걷는다

亡者들은 말이없고...

공동묘지에서 비교적 잘 관리된 묘지도 보이고

그렇지 않은 묘지도 보이는데, 저승에서도

貧富 차이가 있는 모양이다

묘지 너머로 보이는 억불산은 미세먼지에 갇혀버린 느낌이다

이럴때는 肉眼이 아닌 慧眼으로 바라봐야 억불산을 제대로

있을법한데, 범여는 아직까지 道人이 아닌 凡人이라 보이질

않는구나.

묘지와 대밭 사이로 이어지는 망자들의 공동주택

아래로 내려서니 비포장의 넓은 길이 나타난다

비포장 도로(12:05)

비포장 도로를 가로지른 다음에...

마치 고인돌을 모아 놓은듯 바위들이 널부러져 있는 곳을 통과하니...

쥔장이 형편이 어려운건지, 아님 배농사를 포기한건지 

철조망에 말라 비틀어진 잡초 줄기에 배밭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하는 듯 하다

정상적인 배밭이라면 전지가 끝나고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할 배밭은 아무래도 수확을

포기한 듯 하다...이게 우리 농촌의 자화상인가?

오늘 자주 만나는 늘보님의 흔적을 바라보면서...

장흥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로 이어지는 덕림재로 내려선다

덕림재(120m:12:12)

장흥군 장흥읍 우산리와 안양면 기산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고개가  "말안장 처럼 생겼다 "고 해서 덕림재라고 한다

 

주변의 여러 길이 뚫리기 전에는 이 고개가 장흥의 남부 지방으로 통하는 길이었다.

덕림재에서 떠오르는 보름달과 예양강에서 낚시하는 이들의 호롱불이 한데 어우러지는

풍경이 아름다워 장흥팔경의 하나로 꼽혔으며, 장흥읍내를 흐르는 탐진강에 억불산의

그림자가 거꾸로 비치는 모습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았다 한다.

 

도로명 주소는 우드랜드 길이며, 장흥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로

이어지는 길인데 트랙은 반바지님께서 걸어둔 덕림재 뒷쪽의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나 북쪽으로 조금 더 걸어간다

우드랜드길을 벗어나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간다

편백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땅바닥에 마구 버려진 채

마삭줄과 뒤엉켜 살고있는 숲을 통과하니...

이내 좋은길이 나오고...

장흥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의 도로로 들어선다

孫錫演先生之墓 팻말이 서 있는 나무 다리 지나

편백나무 숲속으로 올라간다

며느리 바위 포토죤(12:23)

나무의자 뒷쪽으로 보이는 며느리 바위는미세먼지 탓에 흐릿하다.

 

억불산 정상 아래에 아기를 업은 여자처럼 다소곳이 서 있는 바위가 있는데 며느리바위다.

마치 여인의 치맛자락이 동, 서, 북쪽으로 부드럽게 펼쳐지는 듯 보이며 억부산(億婦山)

이라고 불렀다는데, 이 바위에 얽힌 전설은 이러하다.

아주 먼 옛날, 장흥고을에 마음씨 곱고 효성이 지극한 며느리가 시아버지를 모시고

어린 아들과 오순도순 살고 있었는데, 마음이 비단결처럼 고운 며느리와는 정반대로

시아버지는 자린고비보다 더한 구두쇠로 인근에 소문이 자자하였다. 노인은 거지가

동냥을 오면 곡식은커녕 매까지 때려서 쫓아냈다... 화가 난 한 거지가 고을 사또에게

그 노인의 나쁜 심성을 일러바치자 사또는 노인을 관아로 불러들였다.

사또가 “네 이놈 듣거라. 너는 동냥을 하러 온 사람을 도와주기는커녕 매를 때리고

못살게 군 일이 있느냐?” 하자, 노인은 “절대로 그런 일이 없습니다” 하고 거짓말하였다.

이에 사또는 “앞으로는 절대 그런 일이 없도록 하여라”하고는 노인을 돌려보냈다.

얼마 후 한 스님이 노인의 집으로 동냥을 왔는데, 노인은 “네 이놈, 여기가 어디라고 얼씬거리느냐,

썩 물러가거라” 하며 똥을 퍼 와서 탁발승의 몸에다 끼얹어버렸다. 그러고는 “저기 쌀통에서 쌀을

한 번만 퍼가지고 가라” 하고 들어갔는데, 그 통은 못을 박고 철사로 둘둘 뭉쳐 있어서 한 움큼밖에

꺼낼 수 없게 만들어져 있었다.

이 모습을 본 며느리는 밥과 쌀을 가지고 와서 시아버지의 용서를 빌었다.

그러자 탁발승은 “어느 날 어느 시에 천둥번개가 치고 장대 같은 소나기가 쏟아질 것입니다. 그

때는 주저 말고 억불산으로 올라가시오. 그리고 어떤 경우에도 뒤를 돌아보면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며느리가 무슨 뜻인지 물어보려 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스님은 사라지고 말았다.

며칠 후 탁발승이 예언한 날이 되자 먹장구름이 하늘을 덮더니 천둥번개가 몰아치고

동이로 물을 퍼붓듯 소나기가 쏟아졌고 며느리는 탁발승의 말대로 억불산으로 가기 위해

시아버지께 함께 가자고 하였으나 구두쇠 노인은 재산이 아까워서 막무가내였다. 며

느리는 하는 수 없이 아들만 데리고 산으로 갔는데, 잠시 후 시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얘야, 며느리야, 나 좀 살려다오.”

너무나 애절한 울부짖음에 며느리는 탁발승의 당부를 잊은 채 뒤를 돌아보았다.

그 순간 며느리는 돌로 변하여 바위가 되었고, 아랫마을은 온통 물바다가 되었다.

그 바위를 그때부터 며느리바위라 불렀고 그리고 그 물난리에 생긴 소(沼)를 박씨와

임씨 두 성씨가 살았다고 해서 박림소(朴林沼)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그리고 며느리가 돌로 변할 때 며느리의 수건이 날아간 곳은 수건 건(巾)에 뫼 산(山)자를 써서

건산리라고 하였는데, 지금도 탐진강 중류 장흥읍 연산리의 창랑정(滄浪亭) 앞에는 깊게 팬

소(沼)가 남아 있고 건산리라는 마을이 있다고 한다

편백나무 숲사이를 누구의 제지도 받지않고 호젓하게 길을 걷는다

장흥 우드랜드

억불산 자락엔 편백나무·삼나무 빽빽이 우거진 20만평에 이르는 조림숲이 있는데

40여년 전 한 조림가가 심은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자라 주민과 여행객들에게

피톤치드에 흠뻑 젖어 쉴 공간을 열어주었는데, 이 편백숲에 올해 대규모 숲체험

시설이  '우드랜드'라 이름 붙인 일종의 휴양림이다.

 

일반 휴양림과 다른 점이 나무와 관련된 다양한 전시·체험장이 곁들여진다는 점이다.

13만2천㎡(약 4만평)의 편백숲 안에 숲치유 체험장·목재전시장·목공예 체험장 등

체험시설과 12채의 황토한옥·통나무집·황토흙집을 지었졌고,  편백나무숲 사이로

톱밥을 깐 산책로를 내고 지하수를 끌어올려 편백노천탕도 만들었다.

우드랜드 윗쪽으로 올라서니 데크목 계단으로 만들어진 곳에

'말레'길에 대한 안내판이 서 있는 곳을 통과한다

 

말레는 장흥지역의 옛말 대청(大廳)을 뜻하는데 '대청마루'란 한옥에서

몸체의 방과 방사이에 있는 큰 마루로서 나무널판을 사용한 점과 방과

방사이에 위치한 마루로 가족의 이해와 소통으로 공유하는 소박한

자리등의 온화한 뜻과 역할이 있으므로 정남진 우드랜드 '말레' 휴양의

본거지로서 행복 재충전과 소통의 중심이 되고자 하는 뜻을 담았다고

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을 보니 내가 걸어야 할 지맥길의

동선과는 차이가 많구나.

앙증맞은 조형물에다 시를 새겨놨다

 

마지막 싯귀가 새겨져 있는 조형물을 지나고...

데크목을 따라서 향하는 억불산 등로를 버리고

트랙을 따라서 데크목 좌측의 능선으로 향한다

억불산으로 오르는 길...선답자들이 흔적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고, 그 흔한 시그널 하나도 없다

행여 내가 잘못 가지는 않았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트랙을 확인하니 지맥 마루금은 분명히 맞다

스마트폰상의 트랙을 전적으로 신뢰하면서 오르고 또 오른다

미치겠구먼...

음지라 그런지 물기가 살짝 젖어있는 암릉의 오름길은

엄청나게 미끄럽다...좌측 나무가지 사이로 며느리 바위가

안쓰러운 듯 개고생하는 범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북쪽으로 바라보니 지나온 사자산 너머로 보이는

제암산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임에도 흐릿하기만 하다

갈수록 발걸음은 느려지고 체력이 바닥나기 시작한다.

선답자들은 다들 어디로 갔을까, 행여 내가 알바중인지

모를것 같아서 다시 트랙을 확인하지만 아주 정상적으로

잘 가고 있단다.

비록 고행의 길을 걷는다고 할지라도 옳은 길이면

가야지 우짜겠노...나무 힘이들어 가다서다를

반복하니 시간은 자꾸 지체만 되는구나

돌더미속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산괴불주머니

추운 날씨 탓인가...아직까지 꽃을 틔울 기미가 없다

이 험한 길에서 만난 늘보라는 분의 시그널.

왜 이리도 반가운지...고맙습니다

계속되는 고행의 길

근데 갑자기 산죽 사이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구나.

지맥 마루금은 직진의 급경사 능선으로 치고 올라가야

하는데 길은 보이지 않고...

좌측의 우회길을 따라서 억불산으로 향하는

편한 길을 따라서 간다... 우드랜드에서

직진 거리로는 500m정도밖에 안되는 거리를

1시간 20분이나 걸린 셈이니 여기에서 시간과

체력소모가 엄청나게 심했다

오룩스맵을 안내하는 여인은 계속해서 경로를

벗어났다고 경고 멘트를 날리는데, 어차피

억불산 자체가 지맥길에서 벗어나 있는데

나보고 우짜란 말인겨...

능선으로 올라서니 살짝 좌측으로...

전망좋은 곳 모자송이란 안내 팻말이 있다

며느리 바위 윗쪽에 있는 전망좋은 곳이한 곳에 서니

몸을 가누기조차 힘들정도로 심한 바람이 불어대고,

미세먼지 탓에 주변의 모든 사물들이 제대로 보이지가

않는구나

모자송(母子松:14:15)

모자송 조망대에서 바라본 득량만도 오늘은

눈이 아닌 마음으로 바라봐야만 할 것 같다.

아쉬움을 두리 하고 억불산으로 향한다

며느리 바위 갈림길(14:16)

130m 아래에 며느리 바위가 있다고 하나

너덜길 올라오면서 너무 체력을 소진한

탓이라 그냥 포기하고 억불산으로 향한다

억불산 정상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안부(14:18)

억불산에서 바라본 탐진강이 강진만으로 흘러가는 모습과

강진만앞의 가우도 그리고 남해 바다와 완도

그리고 좌측의  해남쪽 모습은 흐릿하기만 하다.

억불산 정상으로 오르는데 바람은 어느새 강풍으로 변해 버렸다

艱飮野店 (간음야점: 주막에서)  / 김삿갓

​千里行裝付一柯(천리행장부일가)

천릿길을 지팡이 하나에 맡겼으니

 

 

餘錢七葉尙云多(여전칠엽상운다)

남은 엽전 일곱 푼도 오히려 많아라.

 

囊中戒爾深深在(낭중계이심심재)

주머니 속 깊이 있으라고 다짐했건만)

 

野店斜陽見酒何(야점사양견주하)

석양 주막에서 술을 보았으니 내 어찌하랴.

억불산(億佛山:517.4m:14:24)

전남 장흥군 안양면 기산리, 장흥읍 우목리 · 수양리 용산면 계산리 · 모산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장흥읍 동남쪽에 있어 시가지를 굽어보고 있으며, 비교적 낮은

편이지만 능선이 길고 부드러워 마치 고운 여인이 치맛자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걷는 것과 같은 형상이다.

 

억불산이라는 지명은 정상 부근의 바위 모양이 억 개의 부처가 서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이름 지었다 한다. 옛날 봉수대가 있던 정상부에는 기암괴석이

알맞게 조화를 이루고 있고 특히 탐진강과 함께 장흥을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고 있다. 재미있는 전설이 담긴 며느리 바위는 어린애를 업은 여자의 형상,

아니면 스님이 합장하고 기도하는 부처 모습의 형상을 하고 있는 그 웅장함에

놀라게 된다.

 

억불산 기슭에 정남진 편백숲 우드랜드가 자리잡고 있어서 편백나무가 많기로 유명하다.

20만 평의 편백숲이 산책로로 최적이어서 아침 산행을 하는 사람들과 나이드신 분들이

오르는 산으로 장흥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 주는 산이기도 하며, 특히, 산 중턱에 

천문과학관이 개관되면서 5부 능선에 있는 천문과학관까지 4~6m 폭의 임도가

 잘 조성되어 있고 가로등과 음향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낮이든 야간이든

누구나 부담 없이 공원에서 산책하는 기분으로 오를 수 있는 산이다.

추운 날씨에다 강풍까지 불어대는 오후라서 그런지 억불산 정상에

사람은 커녕 개미 한마리도 보이지 않아 나홀로 전세를 낸 느낌이다.

나 역시 잠깐 머무는 사이에 너무 추워서 인증샷도 안 남기고

서둘러 길을 떠난다

정상석 아래로 내려서니 억불산 전망대가 보이고 안부로 내려선다

안부로 내려서니 정남진 장흥...억불산 며느리 바위의

안내판 밑둥치 썩어 문드러진 채로 방치되어 있다

안부에서 데크목 전망대로 향한다

억불산에서 내려다 본 장흥

장흥(長興)이란 지명은 고려 인종이 이 곳 출신 공예태후를 맞아 

의종·명종·신종을 낳은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내려줬다고 하는데,

‘장흥(長興)’엔 ‘길이 번창하라’는 임금의 바람이 담겨 있는 것이다.

장흥은 전남도립공원인 천관산을 비롯해 억불산·제암산·사자산·수인산·

부용산 자락이 병풍처럼 서서 길손을 포근하게 반겨주고, 전남 3대강인 

탐진강은 56㎞ 물줄기를 이루며 장흥읍을 가로 질러간다.

 

 동쪽으로 보성군·고흥군, 서쪽으로 강진군·영암군, 남쪽으로 완도군, 

북쪽으로 화순군과 접하고 있다. 예로부터 찬란한 남도문화를 꽃피운 

예술의 고장 예향이라 불려 문화유적을 많이 간직한 곳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쌓인 전통문화와 역사를 볼 수 있다.

특히 장흥 석대들녘은 동학농민 혁명과정에서 전봉준을 중심으로 하는 

농민군 주력과는 별개로 이루어진 전투가 있었던 역사의 현장이다. 

당시 전봉준을 비롯한 지도부가 모두 체포된 이후에도 항전이 계속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지로서, 동학농민전쟁의 전체적 현황을 파악하는데

 중요한 유적지이며 반외세·반봉건을 지향하는 민족·민주운동을 지향한 역사적인 장소이다.

억불산봉수(長興億佛山烽燧)

 장흥군 장흥읍 우목리의 억불산 정상에 위치한 억불산 봉수는

초축시기는 고려시대이며, 봉수성격상 연변봉수(沿邊烽燧)로

 최초 지지기록은『세종실록(世宗實錄)』「지리지(地理志)」로서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 소속 어불봉화(於佛烽火) 명칭으로 동으로

천내현(天乃峴), 서로 강진 수인산(修因山)에 응한다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억불산봉수 명칭으로

동으로 전일현(全日峴), 남으로 천관산(天冠山), 북으로 강진현 수인산에

응한다고 하였고,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억부산봉수(億夫山烽燧)로

표기되어 부의 동쪽 5리에 소재한다.

 

전일산봉수(全日山烽燧)가 와서 응하며 강진현 수인산봉수에 응한다고 하였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에 의하면 5거 간봉1노선의 봉수로 소개되어 있다.

이렇듯 대응봉수는 시대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지만 최종 동쪽의 장흥 전일산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북쪽의 강진 수인산봉수에 응하였다고 하며, 봉수에 대한 사서의

기록은 명종 14년(1559) 2월에 억불산봉수 연대가 벼락에 부서지고 그 밑 지대의

큰 돌이 뽑혀 간 곳이 없었다고 하여 벼락으로 인해 봉수가 훼손된 사실을 전하고 있다.

 

봉수는 억불산 연대봉의 동서로 장축을 이루는 바위암반 능선상의 동쪽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사방을 조망하기 용이한 곳이다. 연대는 평면 방형으로 기저부

사면에 치석한 흔적이 있는데 원지형을 살리고 낮은 곳은 석축으로 보강하였다.

연대의 규모는 직경이 동서 8.5m, 남북 7.3m 정도이며, 높이는 지형에 따라 다른데

동쪽이 1.6m, 서쪽이 2.8m, 남쪽이 1.1m, 북쪽이 1.8m 정도이다.

안부(14:29)

억불산 전망대(14:30)

장흥 읍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있는 전망대에는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으나 너무 추워서 그냥 패스한다

2번째 전망대로 내려간다

2번째 전망대(14:32)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이 지은 기문(紀行文)에 화순 남쪽에는 장흥이 있다. 

“옛날에는 낙토(樂土)라 일컬었고, 백성은 순박하고 일은 간략하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임종선은 “땅이 큰 바다로 임하였다”라고 하였으며,

최경지가 자신의 시에서 “아득히 넓은 바다로 삼면이 물인데, 푸르고

두꺼운 땅에는 얼마나 산이 많은고”라고 노래했던 장흥읍에 자리한

억불산은 장흥읍의 동남쪽에서 장흥읍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산이다.

부드러운 산 능선은 어찌 보면 아름다운 여인이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걸어가는 것과도 같다.... 억불산 정상에는 그 옛날 봉수대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개미새끼 한마리도 보이지 않는 억불산 정상을 한번 뒤돌아 본다.

언제 온다는 보장은 없을망정, 다시 꼭한번 와보고 싶은 산이다

억불산 정상을 뒤로하고 데크목 계단 아래로 내려서니

바로 앞에는 우드랜드에서 올라오는 데크목 로드가 보인다.

지맥길과는 전혀 다른 길이지만 억불산 정상으로 향하는

목적지는 똑같은데, 저 곳으로 왔으면 개고생도 안하고

시간도 엄청나게 줄일수 있을것 같았다

정상적인 지맥길은 데크목 로드가 아닌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은 시누대숲 사이로 이어지는데

원칙을 추구하는 정통파 맥꾼들의 흔적이 보이는구나

시누대 숲을 지나니 땅바닥에 굵은 로프가 산꾼을 반긴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지만 자연은 절대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는듯 하다.

원칙대로 걸으면서 맥길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편안한 길도 나오는구나

트랙상으로는 이곳이 장흥(사자)지맥 능선이다.

억불산은 지맥길에서 한참을 벗어난 지점에

있다는 얘기이다...우측의  시누대 아래에서

우드랜드로 올라온다고 트랙상으로는 그렇게

되어 있지만 그 아래에서 올라오는 길은 전혀없다

억불산 분기점?(14:37)

트랙상으로는 한참을 돌아서 지맥 마루금에

복귀한 셈이지만, 꼭 이게 맞는건지 확신이

서지 않는구나.

마루금이 맞긴 맞는 모양이다.

의심을 잔뜩 품고(?) 걷는 범여에게

이 길 마루금을 확인을 시켜주는 선답자의

시그널이 반갑기만 하다

데크목 계단도 있고...

이끼가 낀 로프도 땅바닥에 굴러 다니지만...

등로는 생각보다 뚜렸하고 잘 관리되어 있다.

저 아래에 보이는  하얀 건물이 정남진천문과학관이고

그 뒤쪽으로 광춘산(387.9m), 세연봉(404.5m), 괴바위산(462.8m)으로

이어지는 지맥 능선은 흐릿하여 제대로 된 그림을 볼 수 없어서 아쉽다

조심스럽게 내려서는 길에...

능선길에 병풍 역할을 해주는 암릉 때문인지

강한 바람을 피하면서 계속되는 내리막길로 향한다

암봉(14:45)

잡다한 생각을 잊어버리기에는 산만큼

좋은 곳은 없는 듯 하다...걷고 또 걷다보면

雜念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산죽길이 나오고,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선답자의 흔적이 보이나 행여나 하는 마음에

스마트폰의 트랙을 확인하니 아주 정상적으로 가는 중이다

3월의 날씨가 다시 겨울로 되돌아가는 듯한 추위이나

범여의 산에 대한 욕망을 멈추지는 못하는 듯 하다

살짝 젖은 미끄러운 암릉길을 조심스레 내려간다

조망바위(14:51)

마루금 능선을 가로막고 있는 정남진천문과학관 너머로

이어지는 지맥길에 있는 광춘산(387.9m:우)과 좌측으로

맥길에서 벗어나 있는 함질봉(414.5m)도 오늘은 미세먼지의

그늘에서 못하고 있구나

광춘산을 바라보면서 편안한 내림길이 계속되는데

조금전 억불산을 오르면서 개고생한 걸 보상받는 느낌이다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강하게 흔들린다.

오후로 접어들면서 바람은 더 심해지는 느낌이다

데크목 계단을 내려서니 컨테이너 박스에 녹슨 안테나가

여러개 달려있는 구조물이 나오는데 관리가 안되는지

아니면 용도 폐기된 시설물인지 건물은 녹슬고 낙엽만 쌓여있다

한전 중계소(14:55)

용도 폐기된 듯한 이정표를 바라보며 내려서니...

우드랜드에서 데크목 바닥길을 따라서 아주

편하게 양넘 지갑줏듯 억불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을 만난다(14:58)

데크목길을 가로질러 마루금은 정남진천문관으로 향하고...

말타면 종부리고 싶은게 인간의 마음인가...

편안길을 내려서니 긴장이 풀리는지 슬슬

범여의 夢遊病이 시작되는 느낌이다

김해김씨세장산(15:00)

이리로 갈까, 저리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좌측으로 향하는데

지나고 보니 이리가나 저리가나 금방  길은 다시 만나더라...

우리 동네 뒷산인 대모산만큼이나 샛길이 많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 둬야 가장 아름다운 법인데

인간의 손때가 많이 탄 이곳도 조금씩 망가지기

시작하는 느낌이다...순수성이 사라지는 곳을 지난다

체육시설(15:02)

억불송의 후계자라고 하는 보호송인 해송 나무를 지나고...

등로 가운데는 야자매트가 깔려있고, 우측은 편백나무,

좌측은 동백나무의 도열을 받으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쉼터를 지나니...

갈림길을 만나면서 정남진천문과학관에 도착한다

정남진 천문과학관(15:07)

장흥군 장흥읍 우산리의 억불산 자락 해발 274m지점에 있는 전라남도

최초의 천문과학관으로 2006년 7월 7일 개관하였으며 부지면적 4,855㎡,

건평 438.48㎡(연면적 733.84㎡) 규모의 지상 2층 건물이다.

 

주요 시설로는 1층에 사무실, 시청각실, 기계실, 전기실, 2층에

주관측실, 보조관측실, 천체투영실, 전시실, 3층에 전시실과

전망대가 설치되어 있으며, 7m의 원형돔으로 된 주관측실에는

400mm슈미트카세그레인식 반사굴절망원경이 설치되어 있고

슬라이딩돔의 보조관측실에는 6대의 반사망원경과 굴절망원경이

있어 낮에는 태양의 표면을, 밤에는 행성, 은하, 성운, 성단 등의

천체를 관측할 수 있다.

 

또한 천체투영실에서는 밤낮이나 기상에 관계없이 사철 가상의

별자리를 볼 수 있고 시뮬레이터로 생동감 있는 별들 사이의

여행을 즐길 수 있고, 교육프로그램으로 사계절 별자리여행,

다큐멘터리 등을 상영하기도 한다.

천문과학관 주차장 앞에는 화장실을 겸한 쉼터가 있고

바람도 불지 않아서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산에서

추위 때문에 먹은 것이 없다보니 갑자기 허기가 몰려온다.

초코파이 2개와 두유에다, 육포로 늦은 점심을 대신하고

휴식을 취한 다음에 길을 떠날 채비를 한다

우드랜드에서 억불산 오르는 등로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허비하여

원래 계획했던 자울재까지 갈 수 있으려나 하고 출발을 하려는데

주차장에 서 있던 승용차가 한 대가 출발을 하려고 시동을 건다.

 

근데 갑자기 산행할 기분이 나지않아 승용차에 다가가서

장흥 터미널에 가서 서울가는 버스를 타야하는데, 좀 태워주면

안 되냐고 하니까... 타라고 하는게 아닌가.

 

이게 웬 떡이냐 싶어, 무조건 승용차에 올라타서 터미널로 향한다.

5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부부신데, 貴人의 도움으로 편하게

터미널에 도착한다

장흥시외버스 터미널(15:40)

장흥발 → 서울행 버스표

장흥 터미널에서 바라본 억불산과 며느리 바위

17시에 서울로 출발하는 버스를 기다리면 1시간 이상을

이곳 저곳 돌아 다니다가 버스에 오른다.

 

장흥에서 출발하는 버스는 강진과 나주 혁신도시를 거쳐서

순천~전주간  고속도로로 오르면서 깊은 잠에 빠졌다가

버스가 휴게소에 들어서면서 잠에서 깨어보니 오수 휴게소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버스에서 내리는데, 이곳은 눈이 내리기

시작하고, 눈이야 내리던지 말던지, 버스는 알아서 갈테고

나는 또다시 깊은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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