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행일시: 2025년 10월 19일
☞ 산행날씨: 잔뜩 흐린 날씨에 오후 늦게 간간히 빗방울
☞ 산행거리: 도상거리 11.2km +날머리 0.3km / 4시간 3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무등파크호텔- 케이블카 매표소 -케이블카봉- 꾀재- 장원시민체육공원
안부- 326.1m봉- 안부- 무명봉- 안부- 무명봉- 쉼터- 안부- 돌탑
장원봉- 쉼터- 325m봉- 장원 갈림길- 잣고개 갈림길- 체육시설
갈림길- 무명봉- 잣고개- 쉼터- 304.0m봉- 쉼터- y임도 삼거리
안부- 쉼터- 무명봉- 안부- 두암동 갈림길- 무명봉- 쉼터- 군왕봉
무인감시카메라- 각화재- 쉼터- 무명봉- 안부- 261.1m봉- 쉼터
쉼터봉- NO21송전탑- 안부사거리- 무명봉- 쉼터- 280.8m봉
안부- 태봉- 쉼터- 각화사갈림길- 안부- 291.7m봉- 안부- 쉼터
안부- 무명봉- 분토마을 갈림길- 노고지리산- 안부- 경렬사 갈림길
도동고개?- 무명봉- 갈림길- 김해김공&밀양박씨 묘-도동고개
도동사거리- 장등동 버스차고지
☞ 소 재 지: 광주광역시 동구, 북구
요즘 날씨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
9월말부터 시작되는 강원도와 경북 북부의 동해안 지역은 주말마다
어김없이 비가오니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이 가을비는 농사를
짓는 농민들에게는 아무 씨잘데 없는 비이기도 하지만, 나처럼 1년 단위로
계획을 세워서 산행을 하는 맥산꾼들에게도 난감한 건 나만의 생각일까?
원래 계획은 토요일 저녁에 삼척으로 가서 하룻밤을 자고 삼척 남(육백)지맥
마지막 구간을 끝내려고 했는데 이곳은 금요일부터 화요일까지 비가 온다는
구라청의 예보로 인해 결국 비를 피해서 교통이 좋고, 비가 오지 않는다는
광주지역의 지맥길을 걷기로 하고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와서 호남고속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광주행 버스표

05시 30분에 광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자마자 늘 습관처럼
깊은 잠에 빠졌다가 버스가 정안휴게소에 도착하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나 차창밖을 바라보니 하늘에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어 왠지 모르게 불안한 느낌이나, 다행히 광주에 도착
하였는데도 비는 오지 않는다.

광주 유스퀘어 터미널(09:12)
터미널에 도착하여 대합실에 있는 식당에서 순두부 백반으로
든든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택시를 타고 무등파크호텔로 향한다

무등파크호텔(09:55)

케이블카 매표소(10:00)
파등파크호텔에서 운영하는 케이블카는 9시부터 운행을 하나
일기가 불순하면 10시부터 운행하며, 아주 안좋을 때는 운행을
멈추기도 한다는데 오늘은 9시부터 정상적인 운행을 한다고 한다.

표를 예매한 다음에 케이블카를 타고 10분정도 걸려서 정상에 도착한다

케이블카봉(10:10)

케이블카봉에서 내려다본 광주시 동구 지산동의 모습
지산동(芝山洞)은 북쪽으로 산수동, 동쪽으로 남구 화암동, 남쪽으로
운림동과 학동 일부, 서쪽으로 서석동과 동명동 일부와 접하고 있다.
지산동의 지명은 기와의 방언인 ‘지와’를 한자로 표기한 지막(芝幕)에서
유래되었으며, 무등산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향로봉과 장원봉의 산자락에서
광주천 방향으로 침식에 의해 형성된 지역으로, 행정동인 지산2동에는 산지가
많고 지산유원지가 형성되어 휴양시설로 이용되고 있으며, 지산1동은 택지와
행정시설로 이루어져 있다

케이블카봉에서 우측으로 와서 무등산을 바라본다.
지난주와는 달리 무등산이 꽤나 뚜렸하게 보이는데
무등산의 주봉인 천왕봉이 물끄러미 범여를 내려다 보고 있다

케이블카봉으로 되돌아와서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한다(10:25)

급한 내리막길로 내려서는데 이 주변 동네사람들이
산책을 나왔는지 베낭도 없이 운동화에 나무 지팡이를
집고 케이블카봉으로 올라오면서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는 내 베낭을 보고는 어매 겁나게 무거울텐데
어찌 베낭을 큰걸 지소왔소 하면서 이상하게 쳐다본다

꾀재(291m:10:28)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과 북구 청풍동을 연결하는 고개로 우측으로는
조선시대 무신인 구성(龜城) 전상의(全尙毅:1575~1627)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충민사(忠愍祠)가 있고, 좌측으로는 지산유원지 팻말이 보이는데
무등파크호텔이 있는 곳을 말하는 모양이다.
지명의 유래는 꾀가 많은 김덕령(金德齡:1567~1596) 장군이 자주 다닌
고개라는 뜻에서 이름이 붙혀졌으며, 장원봉 아래에 무진고성지의 터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옛날부터 이용되던 길로 추측되지만, 남아 있는 기록은 많지 않다.
지산유원지에서 동쪽 협곡을 따라 올라가면 매우 가파른 고갯길이 나타나는데,
이 재를 넘으면 평두뫼(平頭山:545m)를 거쳐 화암촌으로 가는 길이 나오고
남쪽에는 향로봉이 있고, 북쪽으로는 장원봉에 이르는 고개이다

우측으로 2.0km 지점에 충민사가 있다고 한다
광주광역시 북구 화암동에 있는 조선시대 무신 전상의를 배향한 사우인
충민사(忠愍祠)는 조선시대 무신인 구성(龜城) 전상의(全尙毅:1575~1627)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우로 전상의는 현재의 광주광역시 서구 구동에서 태어났으며,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1627년(인조 5)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안주성[평안남도 안주군] 전투에 참여하여
싸우다가 진영이 함락되어 전사하였다...1637년(인조 10) 병조판서로 추증되고,
시신을 안주에서 무등산으로 옮기고 예를 갖추어 장례하였다.
1684년(숙종 10) 전상의의 행적을 기리고자 현재 동구 지원동 화산마을에
정려각(旌閭閣)을 세우고, 안주 충민사(忠愍祠), 광주 경열사(景烈祠),
제주 귤림서원(橘林書院) 등에 배향하였고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모든 사우가 훼손되었다... 1985년 전상의 묘소가 있는
화암마을에 사우와 수의문, 유물관을 세우고, 화산마을에 있던 정려각을
옮겼고 한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장원봉:무등 05- 03:해발 291m↓바람재)

꾀재에서 올라서니 장원시민체육공원에서
남정네 한사람이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장원시민체육공원(10:29)

잠시후에 오를 장원봉이 보이고 장원봉 좌측으로는
광주시 동구 지산동의 아파트 단지들이 날씨가 흐린
탓인지 흐릿하게 보인다.

안부(10:31)

안부에서 올라서니 무명봉이 나오고
묘지를 바라보면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안부를 지나면서...

다시 오르막으로 이어지고 곧이어 326.1m봉에 도착한다

326.1m봉(10:38)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 준.희쌤의 326.1m봉 산패가 있었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질 않고, 시그널 몇개만 보인다...그러나
오룩스맵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는 그냥 무명봉이다

326.1m봉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흔적

326.1m봉 정상에서 사진 한 컷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날렵하게 생긴 한 여인이 다람쥐처럼 나를 추월한다

안부(10:39)

안부에서 오르막길로 올라서는 곳에 우측으로 난
샛길이 보이는데, 북구에 있는 화암동으로 가는 길이다

무명봉(10:41)

초반부터 오르막 내리막길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이어진다

안부(298m:10:44)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장원봉:무등 05- 02:해발 298m↓바람재)

살다보면 많이 담는다고 해서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담고 채운다고 해도 넓은 마음이
한없이 풍족해지는 것도 아니잖은가.
그저 비워 내는 것이
담아두는 것보다 편할 때가 있다.
봄의 파릇함을 담아 두고 싶다고 해서
여름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며,
가을의 낭만을 한없이 즐기고 싶다 해서
가슴 시린 겨울이 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저 오는대로 담아 두지 말고
흘려보내면 되고...
사랑만을 담아 두고 싶다고 해서
이별의 슬픔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행복한 추억만 담아두고 싶다고 해서
눈물의 기억을 지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사면길을
버리고 우측의 빡센길로 맥길을 이어간다

가을동화님!... 격려 감사해요.

묘지가 있는 무명봉에 오르니 낡은 의자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무명봉(10:49)
정상에는 묘비가 있는 묘지가 있고, 정신나간(?)
보라색 제비꽃들이 피어있다...꽃이나 인간들이나
정상적인게 하나도 없구나...오래된 묘비에 새겨진
글씨들이 마모되어 판독이 힘들어 포기를 한다

철없는 제비꽃

이 넘도 철없기는 마찬가지구나.

내려서는 길에 장원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보인다

내리막길은 시작되고...

쉼터(10:51)

안부(10:53)

0.2km 남았다는 이정표를 보면서...

지맥길과 광주의 둘레길인가 빛고을 산들길과 합쳐지는 모양이다

장원봉을 향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돌탑(11:00)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고 했던가.
장원봉으로 오르는 이정표에는 갑자기 장원봉은
사라지고 쌩뚱맞은 무진고성 표식이 나오는구나

장원봉 정상에 올라서니 내 또래쯤 되는 분이
스마트폰을 보면서 스마트 삼매경에 빠져 혼자서
킥킥거리는 모습이 참으로 여유로워 보인다

장원봉(壯元峰:387.5m:11:04)
광주광역시 동구 지산동과 북구 청풍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장원봉(壯元峯)은 무등산 지봉(支峰)으로 속설에
향교가 옛날 봉우리 아래 있었고, 고을 사람 중 장원하는 자가 많아 이름이
생겼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872년 광주지도에 장원봉과 호두가 표기되어 있다.
『1872년 지방지도』[광주지도]에는 장원봉이 그려져 있으며, 1896년 지도군수
오횡묵(吳宖默:834~1906)은 『지도군총쇄록』[1896]에 “읍의 형국은 배가 가는
형상이라 하고, 읍의 주산(主山)은 장원봉이다”라고 썼으며, 장원봉 동남쪽 무등산의
작은 봉우리인 꼬막재는 꼬막뫼에 있는 고개인데, 광주 두방면[1910]에 속한 호두(虎頭)
마을의 호두가 범머리〉호두〉꼬두매〉두뫼로 변이된 것으로 보인다

장원봉은 광주광역시의 주산(主山), 무등산은 조산(祖山)이라는 기록이 있다.
그만큼 장원봉은 광주에서는 큰 의미가 있는 산으로 광주의 지적 측량은
장원봉을 기점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으로는 옛길인 무돌길이 넘는
잣고개와 무진도독고성 터가 있다.
과거에 장원봉 아래에는 광주향교가 있었다고 전하는데 광주향교는 풍향동
또는 산수동에 있었다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현재 여러 학교가 있는 풍향동을
옛 광주향교 터로 추정하는 설의 고사리 지역은 국도 제29호선 동쪽[동신대학교 입구]의
풍동리가 아니라, 옛 담양 철도길이 있던 현 군왕로 남쪽 지역이었다.

산세가 붓끝처럼 생긴 곳은 필봉, 또는 문필봉으로 칭하는 경우가 많은데
장원봉도 향교(鄕校)와 관련지어 과거시험에서 장원급제 배출 염원을 담아
별칭으로 쓰여 왔으며 장원봉에서 내려선 산줄기는 멀리 우산동 소산, 무냉이등,
범덕등으로 이어지면서 북하늬바람을 막아준다.
솔샘[松泉]은 수구가 되어 예로부터 세 정승이 나온다고 하여 ‘삼정골’이라는
불려왔고, 장원봉을 중심으로 남쪽 무등산호텔·지산유원지, 서편으로 신양파크호텔·
법원·검찰청, 북동쪽으로 장원초등학교·율곡초등학교·두암타운이 자리잡고 있다.

인증샷

장원봉에서 남쪽을 바라보니 여인의 젖꼭지처럼 봉긋하게 솟은
봉우리가 무등산팔각정이 자리잡고 있고, 좌측에 있는 봉우리가
내가 조금전에 케이불카를 타고 올라온 봉우리다...그 뒷쪽으로
병풍처럼 둘러친 산줄기가 무등산 능선이며, 바로 아래에는
무등파크호텔 인도어 골프장 그물망이 보인다

장원봉 정상에서 바라본 광주시내의 모습

팔각정을 당겨본다...그 뒷쪽 우측으로는 지난 여름에 걸었던
지석(신산경표상:분적)지맥 능선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오늘도 주중에 내린 비 때문에 흐릿하나 산줄기가 지난주
보다는 훨씬 낫다는 것에 위안을 삼는다

장원봉에 잠시 머물다가 다시 길을 떠난다

쉼터(11:08)

가을 꽃 / 이원문
깊어 가는 가을
마음은 젊은데
몸은 왜 이리
늙어만 가는지
늙었어도 젊은 마음
꿈에서나 찾을까
찍어 발라 문지르고
잡아 당겨 펴 보고
펴 보니 펴지나
문지르니 윤이나나
종이 살갖에 느는 줄음
무엇으로 막을까
올린 머리 내려도
그것도 아니고
거울 앞에 맡긴 마음
그러면 젊어질까
늙음에 보는 거울
세월 앞에 부끄럽다
그 한 번 젊은 모습
거울 뒤에 숨었을까
어제 찾아 보는 거울
내 모습 어디갔나
구겨놓은 그 세월
그 얼룩만 밤이다

첫구간에 이어서 오늘도 편하게 맥길을 걷는다
지난 여름과 초가을에 강원도 태백과 삼척지역의
맥길에서 개고생한 걸 이곳에서 보상받는 느낌이랄까...

325m봉(11:11)

행여나하는 하는 마음에 325m봉에 올라섰다가
실망만 하고 다시 제도권 등로로 내려선다

장원리 갈림길(11:13)
장원리는 광주읍성유허 발굴조사보고서 『광주읍성』1[2008]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기와 출토와 함께 고려 말 시기의 축성으로 추정하고 있으며『전라남도지지조서』
[1916]의 광주군 서방면사무소 '지지조사부도례'와 『1:10000 지형도』-광주[1916]
등에 의하면 광주군 읍내에서 작고개로 가는 길 좌측이 호두리, 작고개로 가는 길 우측
[현 구와산 북쪽 기슭]이 장원리로 풍향리와 장원봉이 있었던 동계리 사이에 장원리가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흐릿한 직진의 길로 들어서니 반가운 선답자들의 흔적이 보이고...

장원봉의 우측 사면길에서 내려오는 길을 만나 내리막으로 향한다

잣고개 갈림길(11:16)

잣고개로 향하는 길 우측에 쉼터가 보이고,
지맥에서 갈라지는 샛길이 너무 많아서
마치 헤즈볼라의 하마스의 땅굴을 연상케 한다

체육시설(11:17)

갈림길(11:18)

직진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내리막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올라간다

무명봉(11:20)

맥길 우측에 있는 묘지를 지나고...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며 잣고개로 향한다

무진고성 성곽이 나오고...

잣고개로 내려선다

잣고개(尺峴:11:23)
광주광역시 북구 청풍동과 동구 산수동을 연결하는 고개로 구절양장의
꼬불꼬불한 도로(도로명 주소:무등로)가 지나가면 무진고성의 성곽과
무등산국립공원 표시석을 비롯한 각종 안내판이 많이 보이는 고개다.
지명의 유래는 옛날부터 성이 있던 고개라 하여 ‘성(城)’의 옛말인 ‘잣’고개라고
불렸으며, ‘성고개’라고도 부르며, 『대동지지』에 "무등산 고성이라는 백제 때 성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옛날 성터가 있는 곳에 '잣(잿)', '작'이 쓰였으므로 '성치(城峙)' 또는 '척현(尺峴)'이다.
최근의 발굴 기록에 의하면 무진고성은 장원동을 중심으로 잣고개의 장대봉과 제4수원지 안쪽
산 능선을 따라 남북 1㎞, 동서 0.5㎞, 둘레 3.5㎞의 타원형으로 축조되었다. 성안은 '도둑골'로
'관', '국성' 같은 명문이 새겨진 유물이 나왔으며 이는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시대 중기 때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한국지명총람』13-전남편에는 “잣고개는 장안촌 동북쪽에서
청옥동으로 가는 고개로 무진도독고성(武珍都督古城)의 위쪽인데 잣나무가 많다”고
기록되어 있다.

잣고개를 가로질러 무진고성으로 올라간다

안내판이 너무 많아서 정신이 혼란스럽다.

무진고성에 등장하는 지명은 광주의 옛 지명이라고 한다
무진주(武珍州)는 백제와 통일신라 때 광주 지역을 부르던 옛 지명으로
백제 동성왕[재위 479~501년]이 “탐라가 공물과 조세를 바치지 않자 친히
치고자 무진주”에 이르렀다는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본기」의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무진주를 ‘노지(奴只)’라고도 불렀다는 『삼국사기』
「잡지」 지리조의 기록도 있다...무진주는 무주(武州)를 거쳐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지금 이름인 광주(光州)라 하였다.

통일신라시대인 686년(신문왕 6) 무진군이 무진주로 승격되면서 광주 지역은 처음으로
전라남도 지역의 행정 중심지가 되었으며, 그 뒤 757년(경덕왕 16)에는 행정구역의
명칭이 중국식으로 고쳐지면서 무진주가 무주(武州)로 바뀌고, 무주에는 15군 43현이
소속되었다... 무주의 치소였던 광주 지역은 현웅현(玄雄縣:현 전라남도 나주시 남평읍),
용산현(龍山縣:현 전라남도 나주시 일부), 기양현(祈陽縣:현 전라남도 담양군 창평면)을
직접 관할하는 등 전라남도 지역 행정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군왕봉으로 가는 길이 2갈래로 갈라지는데 무진고성으로
오르지 않고 좌측으로 가면 완만한 길이고, 성곽위로 올라가서
가면 조금은 힘들지만 큰 차이는 없는듯 하다

성곽위로 올라서서 군왕봉 방향으로 향한다

무진고성(武珍古城)은 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성곽터인
이 산성은 무등산의 지맥이 북쪽으로 뻗어내린 장원봉(壯元峰, 해발 386m)을 중심으로
잣고개의 상태봉(狀台峰, 해발 350m)과 제4수원지 안쪽 계곡에 남북장축 약 1㎞,
동서장축 약 500m의 장타원형으로 축조된 포곡식(包谷式 : 계곡과 산정을 함께 두른 성)
성으로 둘레는 3,500m이다
잣고개 정상에 있는 서문은 광주시내에서 무등산으로 가는 도로의 통과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으며, 잣고개와 석곡수원지 중간쯤에 위치한 동문도 일부 훼손되었다.
남문과 서문지 주변에는 건물지가 있는데, 건물지는 성을 따라 능선상에 배치되어
모두 17개소에서 확인되었다.
성벽의 축성은 능선의 진행 방향을 따라 편축(片築)하는 방법으로, 능선의 7∼9부
지점을 L자 형태로 다듬고 기점부에 5단 정도의 석축을 1m 내외 높이로 쌓은 후
석축과 능선경사면 사이의 공간에 잡석을 채워 다진 것으로 이러한 축성법은 기저부에
5단 정도 석축을 한 점에서 백제의 축성법과 동일하지만 성벽 상부를 잡석채움식으로
쌓아 흙을 판축한 백제와는 다른 방법이다. 성벽 전체를 정연하게 쌓은 고구려나
신라와는 기본적으로 차이가 있어 백제 축성법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새로운
유형의 백제식 축성법을 보여준다.

동문지에서 초축과 수축 성벽이 확인되었는데, 초축은 자연적인 계곡의 암반층 위에
장방형으로 잘 다듬어진 석재를 정연한 수평면을 유지하면서 쌓았으며, 수축 때에는
암반층 위의 퇴적토층에 부정형의 자연 합석을 허튼층막쌓기로 쌓아 초축과는 구분된다.
건물지와 동문지에서 출토된 유물은 ‘官(관)·城(성)·國城(국성)’ 등의 명문이 있는
기와편과 서조문(瑞鳥文)·귀면문(鬼面文)·일휘문(日暉文)이 돋을새김된 막새기와,
순청자와 상감청자 등의 자기류 등으로, 이 유물들로 보아 8세기 말에서 9세기 초에
축조되었다가 9세기 중반에 폐성이 되었고, 다시 9세기 후반경에 수축되어 고려 초
(12세기)까지 사용된 성지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지리지』와 『동국여지승람』에 무진도독 때의 고성이 현(縣) 북5리에
2,560보 또는 32,448척이라 기록되어 있어, 이 성이 무진도독고성으로 비정되기도 하였다.
이 성의 성격을 밝히기 위하여 1988년과 1989년 두 차례 발굴조사가 전남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이 조사에서 무진도독성지라는 결정적인 자료가 없어 이와 관련된
유사시에 대비한 배후 산성일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이곳에서 지맥길은 직진으로 이어지는
산성을 버리고 수로를 건너서 우측으로 향한다

숲으로 들어서니 희미한 등로가 보이고...

성곽을 따라서 조금 더 올라 왔다가 이곳으로 왔으면 편할뻔 했다

쉼터(11:31)

쉼터를 지나니 묘지가 나오고...

본격적인 빡센 오르막이 시작된다

304.0m봉(11:39)
정상에는 묵묘와 갈참나무 노거수 한그루가 서있다.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면 분명히 준.희쌤의 산패가
있었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맥길은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우측으로 내려서니 백두사랑의 이 대장의 흔적이 선배를 반긴다

이내 뚜렸한 등로가 나타난다

쉼터(11:47)

등로 좌측의 숲에는 묵묘들이 많이 보인다

후손들의 발길이 전혀 닿지않은 연안차공 묘지로
내려서니 조금전 무진고성에서 헤어진 등로를 만난다

y임도 삼거리(11:49)

편안한 길을 따라서 군왕봉을 향해서 동쪽으로 향한다

호젓한 길을 따라서 아무런 생각없이 길을 걷는다

나무계단으로 내려서면서 고도를 낮춘다

안부(11:53)

군왕봉은 아직도 갈 길이 멀구나

생각없이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기에 고개를 들어보니 쉼터가
보이고, 등산객들이 많이 보인다

쉼터(11:55)

등산객들의 떠드는 소리를 피해서 빨리 그곳을 벗어난다

등로 좌측 아래에 묘지가 있고, 광주제2순환도로를 달리는
차량소리가 시끄럽고, 그도로 너머로 광주시 북구 두암동의
아파트 단지들이 보인다
두암동(斗岩洞)의 명칭은 '말바우'의 지명을 한자로 옮기면서 '두암리'로 부른데서 유래한다.
이때 '말바우'의 '말'은 '말[馬]'과 무관하며 '바우'는 '바위'를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두암의
지명인 말바우는 당시 두암시장 입구에 '말[큰]바우'가 있어서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광주목 편방면(片坊面)에 속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월동리와 각화리 일부를 합하여 두암리라고 하고, 광주군 서방면에 편입되었으며,
1935년 광주군은 광주부가 되었고 1955년 광주시 풍향출장소 관할이 되었다.
1973년 구제 실시로 광주시 동구 관할로 개편하였다. 1980년 북구가 신설되어
북구에 편입되었고,1986년 직할시 승격으로 광주직할시 북구 두암동이 되었고
1995년 광역시 승격으로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으로 개편하였다.

편하게 이어지는 사면길을 버리고 우측의 데크목 계단으로 향한다

급경사의 오름길에는 데크목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크게 힘들이지 않고 편하게 오르막 능선으로 향한다

무명봉(12:00)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군왕봉:무등 13- 02:해발 180m↓무진고성)

안부(12:02)

잠시후에 오르막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편한 우회등로가 있고,
조금전에 떠들던 등산객들이 무리지어 오더니 나를 추월한다

두암동 갈림길(12:06)

무리지어 가는 등산객들을 만나고, 이들이 떠들어대는
시시콜콜한 얘기를 듣기 싫어서 일부러 천천히 걸어면서
이들과 거리를 둔다

무명봉(12:09)
쉼터가 있는 무명봉에 도착하고 이정표와 캐노피로 만든
쉼터에다, 체육시설까지 갖춰져 있으며, 무명묘지와 녹차를
심어논 조그만 밭도 보인다...남쪽으로는 흰구름를 뒤집어 쓴
무등산 정상이 흐릿하게 보이는구나

무명봉에서 바라본 무등산 천왕봉의 모습

오늘 산행길에서 만나는 산봉우리 정상에는 어김없이
묘지들이 보이는데 광주사람들은 산꼭대기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올라갔으니 내려가야제...

다시 오르막길...군왕봉을 향해서 고도를 높혀간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군왕봉:무등 13- 03:해발 328m↓무진고성)

쉼터(12:17)

조금전에 지나온 쉼터와 똑같은 컨셉으로
조성되어 있으나 체육시설은 없다

군왕봉으로 향하는 데크목 계단

그리 힘들지 않게 군왕봉 정상에 오른다

군왕봉 정상에 있는 무진고성 안내판...쌩뚱맞은 느낌이다

군왕봉(君王峰:356.9m:12:22~30)
광주광역시 북구 두암동과 청풍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비변사방안지도』에 군왕봉과 경열사가 그림과 함께
표기되어 있으며 북구 일곡동에는 모룡대(慕龍臺)가 있는데, 모룡대의
「모룡대기(慕龍臺記:936) 에는 '군왕봉이라는 높은 봉우리가 우뚝 솟아
임금의 위치로 군림해 있고, 그 아래 작은 산봉우리들이 마치 신하들이
임금을 모시고 정사를 의논하는 형국으로 되어 있는데, 지형이 이처럼
군신(君臣)관계의 구조로 되어 있으므로 이 봉우리를 군왕봉이라 하였다"
는 기록이 있다.

군왕봉 쪽에 있는 마을 삼정골은 제2순환로와 두암 제2교각 밑에 있는데,
삼정승[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나올 자리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여기에는 삼정골 문화공원이 있으며, 또한 두암동, 각화동, 청풍동, 망월동,
장등동 등에서 군왕산으로 오를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는데, 주로
삼정골 산책로를 이용한다.
두암동의 동쪽, 각화동 남쪽에는 참팽이·참판·참판골이라고 불리는 등성이가 있고,
그 인근에 있는 마을을 참판골이라고 하였다...조횟들이라고 부르는 들이 각화동과
문흥동 사이에 펼쳐져 있으며, 뒷동산을 형성한 세자봉(世子峯)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어, 인근 경열사, 무진도독고성과 함께 군왕봉이 매우 유서 깊은 산임을
유추할 수 있다.

군왕봉 안내판

군왕봉 정상에서 바라본 광주광역시 북구의 모습

군왕봉 정상 삼각점...판독이 불가능하다

가을 노래 / 이해인
하늘은 높아 가고
마음은 깊어가네
꽃이 진 자리 나다
열매를 키워 행복한
나무여 바람이여
슬프지 않아도
안으로 고여 오는 눈물은
그리움 때문인가
가을이 오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까이 들리고
멀리 있는 친구가 보고 싶고
죄 없이 눈이 맑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고 싶네
친구여
너와 나의 사이에도
말 보다는 소리 없이
강이 흐르고
이제는 우리
더욱 고독 해져야 겠구나
남은 시간 아껴 쓰며
언젠가 떠날 채비를
서서히 해야 겠구나
잎이 질때마다
한 웅큼 의 시들을 쏟아 내는
나무여 바람이여
영원을 향한 그리움이
아느새 감기 기운처럼 스며드는 가을
하늘은 높아 가고
기도는 깊어가네

구름속에 묻혀버린 무등산 아래로 덕봉산이 조망되고
그 아래로 청풍동에 속해있는 등촌마을이 한가롭게 보인다
광주광역시 북구 석곡동 관할 청풍동과 덕의동, 전남 담양군 남면 개선동
경계에 있는 덕봉산(德峰山:415.4m)은 무등산 북쪽 능선으로 배재[梨峙]를
거쳐서 등촌과 석저 마을 사이에 솟아 있으며 북동쪽 광주호변이 있는 산록에
개선사지 석등이 위치한 산이다
『여지도서』에 "김덕령을 왜적들이 '석저장군'이라 칭했고, 돌 밑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고 두려워 그곳을 피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덕봉(德峰)은 우뚝 오른 산으로 동쪽 돌밑[石底] 마을의 울타리가되며
등촌은 웃대실[上大谷]이라고 하며, 주민들이 덕봉몬뎅이에 기우제를 지냈다.

당겨본 등촌마을의 모습

군왕봉에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길을 떠난다

덕봉산 아래에 있는 광주제4수원지의 모습

군왕봉 정상에서 고도를 낮추면서 각화재 방향으로 내려간다

편안한 등로로 내려서니 무인감시카메라가 나를 감시한다

무인감시카메라(12:37)

데크목 계단을 따라서 고도를 낮추면서 각화재로 향한다

등로가 젖어있어 미끄럽기는 하나 걷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다

각화재가 보이기 시작한다

각화재(角化峙:221m:12:42)
광주시 북구 각화동에 있는 고개로 우측으로는 등촌마을로
가는 길이고, 좌측으로는 각화저수지로 이어진다.
각화동에 있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인 듯 하며, 각화동(角化洞)의 명칭 유래는
삼각산(三角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광주 『동연혁지』에 따르면
삼각산 아랫동네인 '각하(角下)'에서 비롯되었다고 적혀 있는데, 이후 각하(角下)가
각화(角化)라는 말로 변경되어 오늘날까지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구조이정목(현 위치번호:↑신촌마을:무등 13- 06:해발 221m↓군왕봉)

쉼터(12:43)

쉼터에서 바라본 무등산의 모습

맥길은 바탈봉으로 이어진다

쉼터에서 올라서니 멋진 사각정자와 체육시설이
보이나 이용하는 사람은 전혀없고, 지나온 군왕봉
이후부터 산행이 끝날때까지 사람은 커녕, 개미새끼
한마리도 못봤다

무명봉(12:49)

체육시설이 있는 무명봉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향한다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넓은 공터에 누군가가 보리봉이라
표기를 해놨는데 지도상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는 곳이다

안부(12:51)

나무계단으로 올라서 족보있는 261.1m봉에 도착한다

261.1m봉(12:53)
등로에서 살짝 벗어난 지점에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
표기된 족보있는 261.1m봉이건만, 산패도 없고,선답자들의
시그널 하나도 안 보이는 庶子 취급받는 봉우리다

261.1m봉 내려서는 등로에 시그널이 걸려있는데
선답자들은 이곳을 좌표로 삼은 모양이다

내리막길로 향하는 길에 묘지가 있고 들어가지
말라는 표시인지 안전로프가 처져있다

쉼터(12:56)

좌측으로는 각화저수지로 내려가는 샛길도 보인다

또 다시 길은 이어지고...

쉼터봉(13:00)

쉼터봉에서 만난 미역취

잠시후에 오를 280.8m봉이 나뭇가지 사이로 뾰족하게 보인다

데크목으로 되어있는 내리막길은 상당히 미끄럽다

NO21송전탑(13:06)

송전탑을 지나 안부사거리로 내려선다

안부사거리(13:07)

오름길에 평장을 한 묘지도 보이고...

짧은 거리에 고도를 높이면서 오르려니 숨이 차는구나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천천히 올라간다

무명봉(13:17)

다시 내리막길

쉼터(13:20)

280.8m봉(13:23)
지도상에는 이곳이 바탈봉으로 되어있고, 이정표에도 태봉이 0.2km
남았다는 표시가 되어있어 분명히 바탈봉이 맞은듯 한데 국토지리
정보원의 지도에는 그냥 280.8m봉으로만 표기가 되어있어 헷갈린다
지명의 유래를 알 길이 없어서 AI한테 물어보니 이렇게 답변을 하는구나
바탈봉은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동과 청풍동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각화동(角化洞)'의
명칭이 삼각산(三角山)과 관련된 '각하(角下)'에서 유래한 것처럼, 바탈봉 역시 산의 뾰족한
봉우리(角)에서 이름이 파생된 것으로 보이며,
바탈봉은 단순히 산의 봉우리가 아니라, 구릉지의 형태적 특징(뾰족함, 봉우리)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해석한다

바탈봉에서 0.2km 지점에 있는 태봉으로 향한다

안부(13:25)

안부를 지나자마자 태봉 정상이 보이는구나

태봉(太峯:301.3m:13:27~35)
광주광역시 북구 각화동과 망월동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광주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멋진 전망대와 커다란 돌무더기와 나무로
만든 빛고을 산들길이라는 통나무 이정표, 등산의 효과라는 안내판,
바탈봉 표시석이 이곳에서 서있어 조금은 헷갈리는 곳이기도 하다.
태봉(太峯)은 ' 큰봉우리 ', ' 높은 봉우리 ', 라는 뜻으로 대봉(大峯),
세자봉(世子峯)이라고도 부르며, 1982년에 발간된 『한국지명총람 』
각화리 편에는 뒷동산과 세자봉으로, 망월리편과 1961년 『산림청고시자료 』에는
분토마을 남쪽에 있는 산으로 태봉이라고 표기하였다.
이와함께 대봉으로 표기되어 있는 지형도와 지도도 흔히 볼 수 있으며, 1911년에
발간된 『 조선지지자료 』에는 세자봉이라 기록되어 있다

생뚱맞은 바탈봉 정상석...자리를 잘못잡은 듯 하다

태봉 정상의 쉼터
이곳에서 물 한모금을 마시면서 1여분간의 휴식을 취하는 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오늘도 구라청에 뒷통수를
맞는 기분이다

광주시내를 통과하는 저 산줄기가 지난 여름에
걸었던 지석(신산경표상:분적)지맥인 듯 하다

빗방울이 떨어지니 마음이 급해진다.
서둘러서 태봉의 능선으로 내려간다

마루금 동북쪽으로 네년봄에 걸어볼 계획인
황룡(신산경표상:병풍)지맥 산줄기가 흐릿하게 보인다

태봉에서 내려서자마자 멋진 쉼터가 나온다

쉼터(13:36)

이곳 쉼터에 태봉에 관한 안내판이 서 있고...

녹색이음 누리길 안내판도 같이 보인다

안전로프가 처져있는 나무계단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각화사갈림길(13:39)

각화사갈림길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향하고...

또다시 이어지는 나무계단길

등로에 떨어진 밤송이에서 토실토실한 밤을 꽤나 많이 수확한다

안부(13:42)

등로 좌측 아에 있는 도시의 민가와 가까운 모양인데, 뭔 축제를 하는지
음악소리와 사람들의 소리가 들린다...10월은 정녕 축제의 계절인가?...
각 지자체마다 하는 축제는 왜 이리도 많단 말인가...저 축제가 지역민의
삶의 질과 이익 창출이 되었으면 좋으련만, 행여 지자체장들의 치적 쌓기는
아닌지 의심스럽다...민초들의 피땀 흘린돈 함부로 쓰지 마시게...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보고싶다고
다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며,
나의 사랑이 깊어도
이유없는 헤어짐은 있을 수 있으며
받아들일 수 없어도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아무 노력없이도 움직일 수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움직여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 속에 있을 때
더 아름다운 사람도 있다는 것을.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듯
사람도, 기억도
이렇게 흘러가는 것임을.
작가 공지영의 ‘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 ’ 중에서...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나무계단으로 올라서니...

쉼터광장이 있는 291.7m봉 정상에 도착한다

291.7m봉(13:55)
291.7m봉에 올라서니 넓은 데크목광장과 녹색이음누리길,
빛고을산들길이라는 이정목과 안내판이 있고 정상에는
내 키보다도 더 큰 잡초들이 무성하다...선답자의 산행기에
등장하는 시그널이 걸려있는 나무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못본건지, 아니면 없애 버렸는지 알 수가 없구나

데크목광장에서 바라본 광주광역시 북구 각하동의 모습

억새밭을 지나서...

노고지리산을 향한 발걸음을 내딛는다

계단으로 내려가는데...

잠시 소강상태인 빗줄기가 쏟아지고, 하늘엔 먹구름이 지나간다

안부(14:00)

쉼터(14:04)

비는 간헐적으로 내리지만 우의를 입을정도는 아니다

안부(14:07)

안부에 서 있는 등산안내도...모든 길은 각하저수지로 향하는 듯 하다

무명봉(14:08)

무명봉에서 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고 조금을 내려가니
안부 삼거리가 나오는데 분토마을 갈림길이다

분토마을 갈림길(14:10)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동 분토(紛土)마을은 자기(瓷器)를 만들 수 있는 분토가 많이
난다는 뜻에서 분토마을로 불리며, 또다른 설은 무등산에서 내려다 보이는 형국이
토끼의 발모양이라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한다.
현재의 마을은 임진왜란을 피해서 들어온 홍주석씨를 중심으로 성촌된 것으로
보이며, 일찍부터 개발 제한 구역과 공원 지역으로 지정되어 개발이 많이 되지
않아 좋은 자연환경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주민들이 많다

분토마을 갈림길에서 직진을을 하니 칡넝쿨이 길을 막고 있으나
다행히 우측으로 뚜렸한 길이 나있어 걱정을 덜었다

이곳에서도 토실토실한 밤들을 조금 수확한다

지나가는 먹구름 때문에 내린 비였는지 비는 완전히 그쳤다

통나무 계단으로 올라서서 노고지리봉에 도착한다

녹색누리이음길 안내판

노고지리산(256.9m:14:18)
광주광역시 문흥동과 망월동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상에는 정상석과
안내판 녹색 이음누리길 안내판이 있고 이곳 역시 사람들의 발걸음이
뜸한지 정상에는 잡풀이 무성하다
지명의 유래는 종다리라는 새가 많았다고해서 붙혀진 지명이며
‘노고지리’는 종다리과의 통틀어서 이르는 ‘종다리’의 옛말로
1982년에 발간된『한국지명총람』에는 없으나 지형도에는 표기되어 있다

인증샷

완만한 내리막길

안부(14:23)

경렬사 갈림길(14:27)

넓은 공터에 쉼터의자들이 보이고 , 경렬사 안내판이 있고
우측으로는 경렬사로 향하는 길이고,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광주시 북구 망월동에 있는 경렬사(景烈祠)는 고려말 정지장군(鄭地:1347~1391)을
모신 사우(祠宇)로 왜구 격퇴에 공을 세운 장군을 배향하고 사우인데 제4수원지
아랫쪽에 펼쳐지는 분토마을 뒷산에 위치하며, 1871년 3월 대원군의
사원 철폐령에 따라 헐리게 되었다.
정지장군의 고려말의 무관으로 초명은 준제(准提), 시호는 경렬(景烈)이며,
나주에서 태어났고, 공민왕 1년(1365) 사마시에 장원하고 이듬해 문과에
급제하고 벼슬에 나갔으며, 공민왕 23년(1374)에 중랑장(中郞將: 고려시대
정5품의 무관직)이 되어 수군(水軍)에 대한 헌책(獻策)을 올려, 수군을 창설케
했으며, 우왕3년(1377)에 순천도병마사가 되어, 순천 낙안 등지를 침범한 왜적
18급을 목베고, 3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다...이듬해 영광, 광주, 동복 등에
다시 왜적이 나타나자 이들을 뒤쫒아 옥과에서 적을 불태워 죽이고 말 100필을
얻는 등 공을 세웠으며, 전라도순문사, 해도도원수, 영광, 전라, 경상, 강능도
도지휘처지사, 문하평리 등을 지내면서 왜구를 소탕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경렬사 갈림길 가운데 묘지인지 넓은 공터에 목책이 처져있고
주위에도 묵은 묘지가 많으며 이곳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내림길 안전로프가 처져있는 묘지를
따라서 내려가는데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도동고개가 얼마남지 않은 모양이다

내리막길로 내려서는데, 트랙에서는 이곳을
도동고개라 표기가 되어있어 상당히 헷갈린다

도동고개?(14:34)
이곳이 옛날에 민초들이 넘었던 도동고개였던가?

도동고개(?)를 올라서니 묘지가 정상을 지키고 있는 봉우리가 나온다

무명봉(14:40)

무명봉을 지나니 대밭이 나오고...

버스타는 곳 표지판이 서 있고, 이곳을 지나자마자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14:44)
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지는 편안한 길을 버리고
등로가 전혀없는 급한 내리막으로 향하는데, 선답자의
시그널 2개가 걸려있다

나 역시 그리로 내려가본다

조금을 더 내려가니 발이 푹푹 빠지는 낙엽길에
물이 등산화에 들어오고, 옷에는 도둑넘들이 태클을
걸어대는 바람에 다시 되돌아와서 편안한 길을 따라서 간다

범여 몰골 좀 보소...거지도 상 거지네

木橋 2개를 건너니...내리막 양지바른 곳에 묘지가 있다.

김해김공&밀양박씨 묘(14:48)

묘지를 지나니 차량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많이 걸려있다

도동고개로 내려선다

도동고개(14:50)
광주광역시 북구 문흥동과 석곡동 관할 장등동 사이의 고개로 동문대로라
불리는 6차선의 29번 국도가 지나가는데 교통량이 상당히 많다.
무등산에서 북서쪽으로 향한 능선이 대봉과 노고지리산에서 내려서 이 고개를
거쳐 삼각산으로 이어지며, 광주와 담양을 잇는 중요한 재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해동지도』에 저원(猪院)과 저원현(猪院峴)으로 기록되어
있으며,『대동여지도』에도 저치(猪峙)로 표기되어 있고 광복 이후 산적이 많아 '도둑고개'라
불렀는데 가파르고 솟은 곳은 돋보인다. '돋>돛'으로 되어 한자로 옮길 때 '저(猪)'를 취하는
사례가 많다...1922년 광주와 담양을 잇는 광담철로가 부설되었다.

도동고개에 있는 위령비

마루금에 복귀한다(14:53)

도동사거리(14:55)
신호등을 건너서 좌측 능선으로 맥길은 이어지는데 버스 정류장이
보이니 왠지 더 걷고 싶지가 않아서 조금 이른 시간에 산행을
종료하고 우측의 버스 차고지로 향한다

버스차고지 앞에 있는 버스 표지판
외지 사람들은 참으로 알아 먹기가 힘이든다

장등동 버스차고지(15:00~40)
장등버스차고지는 여러 버스회사가 공동으로 운영하는지
꽤나 큰 규모인데, 고속버스터미널로 향한다는 표식이 있어서
손을 들면, 빙빙 돌아서 가기에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하면서
몇번 버스를 타라고 하는데 기사들마다 다른 번호를 갈켜주는
바람에 은근히 화가난다...이곳에서 40분 정도를 기다렸가
47번 버스를 탔는데 이 버스도 그리 빠르지는 않구나

광주버스터미널앞 버스정류장(16:35)
도동고개에서 1시간 가까이 걸려서 고속버스터미널 앞
버스 정류장에 내려서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한다

광주고속버스 터미널(16:45)

광주발 → 서울행 버스표
점심을 해결할 시간이 없어서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에
베낭에 남은 간식으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 버스에 오른다

고속버스에 오르자마자 늘 습관처럼 잠에 빠진다.
버스가 정차하는 바람에 정안휴게소에서 잠에서
깨어나 오뎅국물로 속을 달랜후에 다시 서울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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