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5년 12월 06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심한 미세먼지
☞ 산행거리: 도상거리 27.2km + 들머리 0.4km / 8시간 30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재각-떨꾹재-쉼터-떡고개-마산-경주최씨 묘-갈림길
이천2구복지회관-천동마을-승진축산-구장터삼거리
가마정마을 갈림길-호산-무명묘지-망월사갈림길-154.6m봉
김해김씨 가족묘-김해김씨 세장산-연하마을 입구-갈림길
갈림길-천제산-농로-송암고개-옥봉마을 버스정류장
희망채가든-덕림정, 원행정 버스 정류장-길마재-산소마을
버스 정류장-영호교회-영호리 버스 정류장-영호마을 입구
서리등갈림길-칠거리-삼거리-고개-갈림길-고개-종길재사거리
신송버스정류장-갈림길-입석고개-시종신학sk중계기지-태봉산
안부-안부-68.3m봉-801번 지방도-송산 고인돌 떼-진주강공 묘지
전주이씨 가족묘-김해김씨 가족묘-농로 사거리-농막-구산리 오거리
구산3구 입구-태봉정 입구-갈림길-61.3m봉-천주교인 묘
포장도로-물탱크봉-송정버스 정류장-갈림길-마을길-민가-구봉교회
달성배씨 묘-도로-무명봉-경주배씨 가족묘-여시머리-다리
영산강 둑
☞ 소 재 지: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도포면, 시종면 / 나주시 반남면
지난주에 2박 3일 일정으로 후쿠오카(福岡) 골프투어를 갔다가 서울에 오니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감기 기운이 와서 주중에 내내 고생을 한다.
이번주에는 휴식을 취할겸 산행을 쉴까 생각을 했지만, 주말만 되면 몸뚱아리에서
꿈틀거리는 역마살 때문에 비교적 따뜻한 남도지방의 영암(신산경표상:백룡)지맥
마지막 구간을 마무리 하기로 하고 새벽 1시에 집을 나서서 택시로 센트럴시티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광주행 버스표

01:30분에 광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탔지만 감기 기운이 있는 탓인지 머리도
아프고 몸이 무겁다...집에서 출발하면서 먹은 감기약 때문인지 계속 잠이
쏟아지고 그 바람에 非夢似夢을 헤매다고 버스가 광주터미널에 도착하면서
잠에서 깨어나 버스에서 내린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04:45)
터미널에 도착하니 서울과는 달리 날씨는 그리 춥지않다.
추위에 지독히도 약한 범여로선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해야 하는데, 감기 탓인지는 몰라도 뭘 먹고 싶다는
생각은 없지만, 억지로라도 아침을 해결해야 하기에 터미널에 있는
편의점에서 햇반과 오뎅을 구매하여 전자렌지로 돌려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터미널 내의 대합실로 향한다

광주발 → 신북행 버스표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에 45분간을 대합실 의자에서 멍때리기를 한 다음에
광주에서 해남으로 향하는 첫 차를 타기위해 플렛홈으로 향한다

05시 50분 출발하는 신북행(영암군 신북면) 버스에 오른다
동지가 가까워진 탓인지 아직도 날이 밝으려면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 지
광주를 출발한 버스가 나주, 영산포를 거쳐 신북터미널에 도착했는데도
어둠이 완전히 가시지 않고, 주위에는 짙은 안개로 인해 사물의 구분이
잘 안될 정도이다.

신북터미널(07:20)
신북에 도착하여 터미널 옆에있는 택시타는 곳에서 택시를 타고 행군저수지로
가자고 하니까, 기사가 잘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방향으로 향하는 바람에
조금을 버벅거리다가 지난 1구간에 내려왔던 날머리인 재각에 도착한다

재각(07:35)
지난 4월 26일 1구간을 마칠때 이곳을 내려왔으니 거의 8개월만에
이곳에 온 셈이다...어느 문중의 재각인지는 편액이 없고, 문이 굳게
잠겨있어 알 길이 없고, 재각 뒷쪽으로는 잘 꾸며진 묘지가 보인다.
택시기사가 길을 잘못 찾아서 한참 버벅거린 것이 미안했던지 택시비를
1,000원을 깍아준다...택시기사와 작별을 하고 산행을 준비한다

행군저수지의 모습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에 속해있는 행군동...태양광 단지 너머로
행군저수지가 보이는데 행군이란 지명은 고려 초기시대에 태조
왕건과 후백제의 견훤이 이곳에서 치열한 전투를 하면서 유래된
지명으로 명동리 행군봉(왕건 군대가 행군했던 산)과 가까운
이곳을 행군동이라고 하였다
장산리(長山里)는 마을이 긴 산에 둘려 쌓여 있다고 하여 산장산(山長山)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장산리(長山里)로 바뀌었다고 한다

생각보다 날씨는 포근하고 서둘러 산행을 준비한 다음에
보리를 심어논 밭 가운데를 가로질러 오늘 산행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밭을 지나면서 8개월전에 내려왔던 편안한 길은 안보이고
밭을 정리하면서 마구 버려진 잡목들이 길을 막는다

잡목의 저항을 헤치고 올라서니 김해김씨 세장산비가
서 있는 떨국재에 도착하여 본격적인 맥길 산행에 접어든다

떨꾹재(75m:07:45)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와 이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딸국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떨국재 우측으로 보이는 영암군 신북면 용산리의 모습
용산리(龍山里)는 주변의 백용산, 오봉산이 용의 형국과
비슷하다 하여 용산(龍山)이라 하였다고 한다

초반부터 넓은 고속도로(?)처럼 펼쳐지는
등로는 범여의 발걸음을 가볍게하는 느낌이다
오늘 맥길은 거리는 30여km 정도는 되지만 60% 정도가
도로를 따라서 가는 맥길이라 走力을 빠른 산꾼들은 간단하게
한방에 끝내는 맥길이기에 컨디션 난조인 내가 오늘 이 길을
선택한 이유이다

쉼터(07:50)
이곳은 남쪽이라 그런지 현재 기온이 영상이고, 바람도 불지 않아서
잠깐 사이에 땀이나기 시작하여 이곳에서 자켓을 벗고 산행을 시작한다

떡고개(07:55)
영암군 신북면 용산리와 이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마산으로
오르는 펑퍼짐한 능선에 선답자의 시그널이 걸려있는 이곳이
지도상에 떡고개라 표기되어 있는데 유래는 알 길이 없다

갑자기 횡포를 부리는 지맥길...텃세하지마소.
전국을 헤집고 다니는 산꾼이 이런것에 쫄지는 않소...

다시 편안한 등로가 보이고 동백이 군락을 헤치고 있는
곳을 지나니 족보있는 산의 정상이 산꾼을 반긴다

마산(馬山:159.2m:08:00)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와 용산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해발이 159.2m밖에
안되지만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산으로 정상에는 준.희쌤의 산패와 주렁주렁
달린 선답자의 시그널이 천리도 넘는 먼 길을 찾아온 산꾼을 반긴다
이곳은 912년 3차 덕진포해전 때 태봉국 왕건수군이 주둔했던 산으로 왕건은
912년 덕진포 해전(德津浦海戰) 승리의 기세를 몰아 병선을 덕진에서 서호, 목포에서
몽탄에 이르는 요충지에 배치하고, 자신은 모산앞 이목동에 있는 신북면 마산
(왕건의 말(馬)이 있던 곳)에 진지를 구축했다... 마산은 덕진포에서 20리(8km) 거리이며,
견훤이 흩어진 병사를 모아 은거하고 있던 반남면 자미산성으로부터 또한 20리 거리에 있다.
왕건과 견훤 군사는 마산과 자미산성 사이에 있는 신북면 월평리를 중심으로 치열한 전투를
벌인곳으로 덕진포에서 신북으로 향하다 보면 오른쪽으로 마산이 보이고 그 아래 작은 방죽이
나오는데 이곳은 군사들이 말에게 물을 먹이는 곳으로 말물통이라 불린 이목동저수지(냉천지
만들기 전에 저수지 가운데 물통이 있었음)자리이고 수백년 세월동안 덕진다리를 건너 이곳을
지나던 길손들도 말에게 물을 먹이고 쉬어 갔다고 하여 마산이란 지명으로 유래되었으며 마산
아래 박굴이라는 곳은 이목동저수지 위 떨국재와 마산 아래 떡고개 부근이며 옛날 군사들이
훈련했던 곳이라 전해진다.

인증샷
* 덕진포 해전(德津浦海戰)은
912년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 덕진포 일대에서 벌어진 태봉과
후백제의 전투로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덕진리 덕진포 일대는 태봉과
후백제 사이의 패권을 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요충지로서 당시에는 나주에
속하였으며, 덕진포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태봉이 승리함으로써 서남해안의
제해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그 이후 태봉은 내륙에서도 후백제와 신라를
더욱 압박하여 삼한 영토의 3분의 2를 차지하였다.
903년(궁예 3)에 있었던 궁예의 나주전투 승리로 덕진포 일대는 덕진포
전투가 일어난 912년경에는 태봉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다... 궁예는 904년에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바꾸고, 905년에 도읍을 철원으로 옮긴 다음부터 상주
일대를 공격하여 신라 침공을 시작하였으며, 덕진포 전투의 원인에 대하여
사서(史書)에는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단지 『고려사(高麗史)』에는
“왕건은 궁예가 나날이 포악해지는 것을 피하고자 하여 909년에 궁예의 동의를
얻어 서남해안으로 향하였다.”라고만 전하고 있다.
이때의 출정으로 왕건은 광주 염해현[지금의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 임수리
추정]에 있다가 후백제에서 오월국(吳越國)으로 보내는 사신선을 나포하여
돌아왔다
덕진포해전으로 태봉은 서남해안의 세력을 장악하였으며, 실질적으로
당시의 패자로 등장하게 되었다...이제현은 덕진포해전으로 궁예는
삼한의 3분의 2를 점령하였다고 평가할 정도로 큰 의미를 부여하였다.
덕진포해전의 결과로 얻어진 서남해의 제해권은 왕건이 왕이 된 다음
일시적으로 불통되었으나 후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하였으며, 왕건은
덕진포해전을 통하여 영암의 최지몽, 나주의 오다련과 같은 전라남도
지역 세력들과 연계를 갖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전쟁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마산에 잠깐 머물다가 내리막으로 향하는데
여러 산꾼들의 시그널 속에 자기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산으로 아우님의
흔적을 만난다...세속의 삶 속에서 말할 상대는 참으로 많지만, 자기 속내를
다 들어내고 말할 상대는 그리 많지 않은데, 저 산으로 아우님은 내 속내를
다 털어놓고 말할 상대중에 한사람인 心性이 참으로 고운 후배이다.

마산에서 내려서니 자꾸만 짙은 안개가 산 아래에서 몰려오고
등로 우측에는 봉분은 없고 烏石으로 조성된 경주최씨 묘지가 나온다

경주최씨 묘(08:03)

갈림길(08:04)

경주최씨 묘를 지나자마자 뚜렸하게 이어지는 직진길을 버리고
맥길은 좌측으로 뚝 떨어지는 내리막길로 이어진다

편백4나무 숲길로 이어지는 급경사의 내리막길
오늘 맥길은 가장 높은 산이 조금전에 지나온 마산이고
대부분이 나즈막한 산에다가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가기에 가벼운 등산화를 신고 왔는데 상당히 미끄럽다

갑자기 툭 튀어나온 감나무밭 너머로 오늘 산행중에 가장
까칠한 호산이 흐릿하게 보인다...그려!...조그만 기다려라.

수확이 끝난 감나무에는 까치밥으로 남긴 단감들이 간간히 보인다.

나 역시 까치밥으로 남긴 단감 하나를 따서 먹는데
서리를 맞은 감이 참으로 맛깔나는구나.
까치에게는 미안하지만 서너개의 감을 수확하여
베낭에 넣는다...

트랙상의 맥길은 우측의 대밭으로 이어지는데 들어가보니
도저히 치고나갈 구멍도 안보이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일보 전진을 위한 이보후퇴하고 했던가...
마루금을 포기하고 감나무밭 아래로 내려서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 천동마을로 내려선다

마을로 들어서니 쥔장이 떠나버린 빈집들이 간간히 보인다.
이게 현재 우리나라의 인구 감소가 이루어지고 있는 농촌의
自畵像인 듯 하다

이천2구복지회관(08:17)

혼자놀기

맥길을 가로막고 있는 주택...한참을 돌아 마루금에 복귀한다

천동(泉洞)마을(08:20)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 마을인 이목동(梨木洞)의 이(梨) 자와
천동(泉洞)의 천(泉) 자를 합하여 이천리(梨泉里)라 했다는 천동마을의
도로에 도착한다

천동마을에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도로 우측으로는 영암전자과학고가 보이는데 지금은 敎名이 전남에너지고로
바뀐 모양이다...그 뒷쪽에 있는 여석산(礪石山:60.9m)은 짙은 안개속으로 숨어 버렸다.
숫돌산, 싯돌메, 쉿둘메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여석산은 영암군 신북면 월평리에 있는
야산으로 왕건이 주둔했던 마산으로부터 북쪽으로 1㎞ 정도 떨어진 신북면 소재지인
월평리가 나오고, 소재지 약간 지나 왼쪽에 나지막한 산이 있는데 고려 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쟁패의 현장으로 왕건 군사들이 숫돌을 캐내 이곳에서 생산된 숫돌로
칼을 갈아 견훤과의 전투에서 승리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지는 산이다

승진축산(08:23)

마루금에서 벗어난 우측의 62.3m봉 정상에는 이동통신탑이 있고,
그 아래에 있는 관광버스 주차장을 바라보면서 구장터 삼거리로 향한다

나주에서 영암, 해남으로 향하는 13번 국도(도로명 주소:예향로)가
지나가는 곳에 도착한다...이곳을 구장터 삼거리라고 하며 또다른
지명으로는 부선장터라 부르기도 한다.
옛날 부선장터에서 반남 자미산성에서 온 견훤과 전투를 하였고 왕건
군대 군수품인 칼과 창을 갈았던 숫돌은 여석산에서 공급했다고 한다.
신호등을 확인한 다음에 재빨리 도로를 건넌다.

구장터삼거리(08:30)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의 13번 국도변에 있는 구장터 삼거리...부선마을에
있었다고 해서 부선장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그 역사는 후삼국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S-OIL주유소와 E1 가스충전소, 이마트무인편의점, 영암석재, 무등 농자재의
간판들이 보인다

구장터라 불리는 부선장은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과 세지면, 영암군 금정면과
사통팔달하며, 특별히 해남~강진~완도~영암~나주~광주를 연결하는 국도변에 있다
『구한말 한반도 지형도(舊韓末韓半島地形圖)』에 의하면 장의 이름은 부선장이며,
지금은 ‘구장터’라는 비석이 서 있는데 이곳은 서쪽의 호산과 접하는 곳으로 조선 시대에는
관리들이 숙박하는 수원(燧院)이 있었다... ‘수’는 부싯돌 수(燧)이므로 부선장과 통한다.
부선장 구장터는 역로를 따라 영암에서 나주로 상행할 때, 반남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다

트랙을 확인하니 E1 LPG충전소 뒷쪽으로 맥길이 이어지는데
그쪽으로 가니 길을 막혀있고 비집고 올라갈 틈이 보이지 않아서
다시 구장터 삼거리로 되돌아 간다

이마트 편의점에서 도포쪽으로 가는 도로를 따라서 간다

다시 마루금에 복귀를 한 다음에 가마정마을 표지판을 향해서 간다

가마정마을 갈림길(08:37)

가마정 마을길로 들어서니 누런 속살을 드러낸 황토밭 너머로
오늘 산행중에 가장 까칠하다는 호산이 물끄러미 범여를
내려다 본다...맥길은 황토밭 가운데로 이어지는데 지금
밭 쥔장이 밭에서 중장비를 동원한 채 작업을 하고 있어서
밭 가운데로 갔다가는 뭔 봉변을 당할 지 몰라 마을길로
우회를 한다

호산으로 가는 길에서 본 가마정 마을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에 속해있는 가마정 마을은 가매정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가매정은 옛날 선비들이 가마를 타고 가다 산천이 좋고 공기가 맑아 쉬었다
가는 마을이라고 했다”고 유래된 마을 지명이라고 한다

황토밭을 빙 돌아서 호산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뒤돌아보니
짙은 미세먼지가 엄청나게 심하다...바로 앞에 보이는 신덕마을도
미세 먼지 탓인지 멀게만 느껴진다

황토밭을 지나서 올라서니 감나무밭이 나오고 좌측으로는
호산의 산자락에 자리잡은 망월사로 오르는 도로가 보이고
감나무밭의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비닐하우스를 지나면서...

호산으로 향하는 본격적인 苦行이 시작된다

그래 내가 언제 편안한 길을 원했던가?
2주만에 하는 산행이라 그런지 몸뚱아리가 힘들다.

길은 보이지 않고 거친 잡목의 태클을 피하다보니
철조망이 보이고 철조망에 몸뚱아리를 의지한 채
천천히 호산으로 향한다

개고생을 하면서 오르니...

산불감시초소가 보이는 호산 정상이 나온다

호산 정상을 지키는 산불감시초소와 운동기구들...

호산(虎山:155.6m:09:10~13)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와 월평리, 나주시 반남면 석천리의 경계에 있는 구릉지에서
솟구쳐 오른 산으로 정상에는 3등 삼각점과 준.희쌤의 산패, 산불감시초소와
각종 운동기구들이 보이고, 온 사방이 탁 트인 산이지만 오늘은 짙은 미세먼지로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모든게 아쉽기만 하다.
지명의 유래는 호랑이 형국 명당이 있다고 전하는 산으로 풍수에서는 ‘호산 호랑이가
쫓으니 영암 도포의 돼지머리가 되었다.’라고도 해석하는데, 산줄기의 뻗어가는 모양을
동물에 견주어 풀이한 것이다.
『1872년 지방 지도』 중 「영암군지도」에 읍치 북쪽 북일종면과 북이종면의 경계에
호산이 보인다고 하며, 또 『호남지도』[영암]와 『해동지도』에도 금성(錦城, 지금의
전남 나주시)과의 경계에 기록되어 있다... 범뫼(버미)란 별명을 지닌 호산 밑은 길목으로
부소원(夫所院)과 부선장(夫先場)이 있었다... 『대동여지도』에 부소원이 표기되어 있다.
호산의 모양새는 산불 감시 초소가 설치된 북동쪽 최고봉과 망월사 위 남서쪽 조금 낮은
봉우리가 마주보는 쌍봉 형태로 호산의 북동쪽 냉천골에서 신북면 소재지로 내린 물은
영산강 수계의 삼포강이며, 남쪽 골짜기는 영산강 영암천의 수계인 도포천의 발원지이다.

“호산은 영암의 어디에서나 보인다. 반대로 호산에 올라가면 영암 어디든지 다 볼 수 있으며
구름 자욱하게 깔린 월출산의 모습을 호산에서 바라보면 마치 바다위에 섬인 듯 하다.
월출산의 시작점과 끝점이 한눈에 들어오니 달이 떠오르는 월출산을 전체적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고 한다.

호산의 산패아래 마삭줄 줄기속에 있는 삼각점(?)
자세히 보니 삼각점이 아닌 지적도근점이다

호산에서 바라본 나주시 반남면(潘南面)의 모습
전남 나주시 남부에 있는 면으로 동남쪽으로 영암군 신북면, 서쪽으로
시종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서북쪽으로 공산면과 왕곡면에 접하고 있다.
동서로 약 4km, 남북으로 약 5km의 야산 구릉지대로 형성되어 있으며 중앙에
자미산이 있으며 영산강 지류인 삼포강이 동서로 가로질러 흐르며, 기름진 옥토를
이루고 있어 물산이 풍부하며 면의 대부분이 100m 이하의 낮은 구릉지와 평야를 이루고 있다.
삼포강이 면의 동부와 북부 경계를 흘러 영산강에 유입하며, 대안리·덕산리·하촌리 일대에
비교적 넓은 농경지가 분포하며 쌀·보리를 비롯한 채소 및 과일 생산이 많다... 나주 반남지역에
흩어져 있는 대형 고분군은 이 지역이 백제로 통합되기 이전의 마한 연맹 왕국을 이끈
세력들의 중심부였음을 말해준다.
자미산성 터는 백제 때 반나부리현(半奈夫里縣) 이전에 이 지역에 있었던 54국의
마한연맹 왕국 중 하나인 내비리국(內卑離國)으로 추정하는 견해도 있다.
자미산성은 지리적으로 전략적 요충지인데다 해상교통의 요지여서 견훤이나
견훤의 배후를 공격하는 왕건의 입장에서 양보할 수 없는 중요한 곳이었다.
자미산성 일대가 후삼국시대에 견훤과 왕건 세력이 충돌한 격전지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나주시지』에도 견훤이 자미산성에 주둔하여 나주의 왕건과 대항하였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고 기술되고 있는 것은 이를 두고 한 말이라 여겨진다.

호산 정상 3등삼각점(▲영암 307 /1999 재설)

짙은 안개로 인해 호산에서 아무것도 볼 수없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길을 떠난다

무명묘지(09:14)

망월사(望月寺) 갈림길(09:15)
호산 남사면에는 1777년(정조 1) 창건한 망월사를 비롯해 미륵굴, 선덕암이 있다.
망월사에는 “월출산의 구정봉 아홉 용이 승천하려면 정북향 망월사 샘물을 마셔야 하나,
망월사를 지키는 호랑이 산신이 절 앞을 여러 겹 산으로 쌓아서 용의 접근을 막는 방패로
삼고 샘물의 입구 또한 동쪽으로 만들어 남쪽의 월출산의 용들이 물을 마시기 어렵게
해놓았다.”라는 전설이 있다.
석간수가 흘러나오는 이 샘은 호랑이 음부에 해당하며,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는
법이 없다고 하며 망월사 약사전에는 2002년 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59호로
지정한 영암 망월사 석불 좌상이 있다.

좌측으로 내려가는 망월사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154.6m봉으로 올라간다

154.6m봉(09:19)
암봉으로 이루어진 정상에는 아무도 찾지않은 의자가 애처롭다
나라도 앉아서 의자의 외로움을 달래주고 싶지만 갈 길이 멀어서
미안하구나...

조금전에 지나온 호산을 뒤돌아 본다.
그리 높은 산이 아닌데도 평야 가운데 우뚝솟아 있으니
엄청나게 높아 보이니 과연 신북면의 진산인 듯 하다

154.6m봉 정상을 지나자마자 신북면 행정리로 향하는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우측으로 내려간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급경사의 시누대 터널을 통과하는데
간간히 보이는 선답자의 시그널이 맥길임을 알려준다

迷路처럼 이어지는 급경사의 내리막길

참으로 고역이다...시누대에 얼굴이 할키고 손에는 流血이 낭자하다

김해김씨 가족묘(09:32)

김해김공 가족묘는 계속되고...

영국의 대문호 월리웜 세익스피어는 죽음에 관해 이렇게 정의했다.
죽음은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만든다
왕도 농부도 모두 같은 길을 걷는다

묘지에서 이어지는 맥길은 편안하다

또다시 이어지는 김해김씨의 묘지들...
예전에 다들 한자리씩 하셨던 분들같다

가선대부겸 호조참의를 계셨던 분 묘지를 지나니...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지내셨던 분의 묘지도 지난다.

묘지에서 내려서니 묘지를 관리하는 건물도 있는데
이 지방의 김해김씨의 위세는 대단한 모양이다

김해김씨 세장산(09:39)

힘들게 호산에서 내려서니 고구마 수확이 끝난 황토밭이 나오고
농로가 나오는데 앞에 보이는 나즈막한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이
잠시후에 가야할 천제산이다

연하마을 입구(09:45)
황토밭을 지나 우측으로 내려서니 스텐레스 난간이 있는 삼거리가
나오고 앞에 보이는 마을이 나주시 반남면 석천리 연하마을이다.
맥길은 앞에 보이는 비닐하우스쪽으로 올라간 다음에 좌측으로
확 꺽어져 밭으로 내려와야 하는데 별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그냥 좌측의 마을 도로로 향한다.
연하마을은 마을 앞산의 지형이 호형(虎形)이며 마을의 터는 호산(虎山)의
하록(下麓)이여서 연화도수형(蓮花倒水形:연꽃이 물 위로 올라온 모양)의
명당지대라 하고 마을 앞 중앙에 있는 당산나무(도보호수로 수령 약 4, 5백년 추정)가
너무나도 웅장하고 아름다워 잎이 무성한 여름철이나 겨울철 나뭇가지에 눈꽃송이가
마치 ‘활짝핀 연꽃 같다’ 하여 연화동이라 부르기도 하고, 지금은 연화마을로 부르고 있다

트랙상 맥길은 저 앞에 보이는 대밭을 찍고 좌측으로 확 꺽어서
내려와야 하는데 눈팅이로만 맥길을 확인하고 농로를 따라서 걷는다.

마루금에 복귀한 다음에 조금을 더 가니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09:48)

왔던 길을 뒤돌아 보니 미세먼지를 뒤집어 쓴
호산이 나에게 까칠하게 굴었던게 미안했던
모양인지 물끄러미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갈림길(09:50)

또다시 마을로 이어지는 농로를 버리고 숲길로 들어선다.
명산만 찾는 등산객들의 입장에서 보면 오늘 내가 걷는 이 길을
백번 이해하기 어렵겠지만 맥꾼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당연하다

아주 나즈막한 곳의 산이지만 멋진 이름을 가진 산을 만나러 간다

가는길에 선답자의 시그널을 만나니 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는 뜻이겠지...

천제산(天祭山:58.3m:09:57)
영암군 신북면 행정리의 야트막한 능선에 있는 산으로 준희쌤의
산패와 맥꾼들의 시그널만 덩그러니 있고, 멋진 이름과는 달리
‘하늘에 제사를 지낸다는 신령스러운 산’ 은 아닌 듯 하고 주변의
잡목으로 이해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天神이 노하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지명의 유래는 100년 전부터 산이 유명하다하여 제사를
모셨기 때문에 천제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천제산을 찍고 몇발자국 되돌아와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이리저리 헤매면서 내려서니...

선답자의 흔적을 만나고, 조금전에 헤어진 농로로 내려선다

농로(10:03)

농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좌측으로는 영암군 도포면
영호리가 보이고, 우측으로 보이는 산이 삼봉산(68.4m)이다

삶이 항상 완벽하지는 않다.
길처럼, 많은 굴곡과 오르막이 있지만
그 자체가 삶의 아름다움이다.

겨울만 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미세먼지...올 겨울도
벌써 미세먼지가 시작되는지 온 세상이 흐릿하다.
지난 월요일부터 일본 후쿠오카에서 3일동안 따뜻한
곳에서 즐겁게 라운딩을 하고 온 탓인지 심한 미세먼지에
적응이 안되는지 목이 답답하다...구비진 길을 내려서니
우측으로 영암군 신북면 행정리 송암마을이 얼굴을 내민다

도로에서 바라본 송암마을의 모습
송암은 작은 산으로 가지처럼 사방이 둘러싸여 있다 하여 샛가지라
하였으며 그 아래에 자리잡은 마을이 송암마을로 행정리(杏亭里)는
대부분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은행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으능정이, 은행정 또는 행정이라 하였다. 자연마을로는 골미, 광암, 송암,
옥봉, 유호정 등이 있다

송암고개(10:09)

좌측으로 식당이 보이나 아직 영업을 시작하지 않았는지
불은 꺼져있고, 나 역시 아직까지 배가 고프지 않아서
그냥 지나친다... 821번 2차선 포장도로(도로명 주소:마한문화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여기부터 태봉산 아래 입석마을까지 약7.5km를
도로를 따르는 도로가 곧 마루금인 구간이니 참으로 지루하다

옥봉마을 버스정류장(10:15)

영암군 신북면 행정리에 있는 옥봉마을은 송암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옥봉귀소형(玉鳳歸巢形)의 명당이 있으며 우뚝 솟은 봉우리 밑이 된다
하여 옥봉이라 한다.
* 풍수지리상의 옥봉귀소형(玉鳳歸巢形)은 ‘봉황새가 집으로 돌아오는 형세’ 를 말한다

이곳에서 보면 영암의 진산인 월출산이 아주 멋지게
조망되는 곳인데,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질 않구나.

희망채가든(10:18)
예전에 행월초등학교가 있었던 곳은 폐교가 되었고, 지금은
희망채 가든이라는 간판이 걸려 있는데 아마도 식당인 듯 하다

고향 생각 / 書娥 서현숙
노을이 지는 저녁
서산에 뉘엿뉘엿
해는 저물고
시리고 차가운
계곡 물소리
산새 소리 들리는
저 언덕 너머
부모 형제들
붉은 흙집 초가집
오손도손 살았는데
지금은 다 뿔뿔이
흩어져
제 갈 길 가고
아무도 없는
텅 빈 고향 집
오늘도 기다리는
어머니 마음.

도로를 따라서 무작정 걸어간다...왜!...
이 길이 지맥 마루금이니까.

덕림정, 원행정 버스 정류장(10:24)
영암군 신북면에 속해있는 행정리(杏亭里)는 행정리는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北二終面) 지역인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의해
옥봉리(玉峰里), 송암리(松岩里), 조동(早洞), 화산리(花山里),
광산리(光山里), 광암리(光岩里), 유호정(柳好亭)을 병합하여
신북면에 편입하고 행정리(杏亭里)라 했고, 은행나무 정자가 있으므로
으능정이, 은행정 또는 행정이라 하였다.

삼거리가 나오고 우측으로는 덕림정, 원행정마을로
가는 길이고 맥길은 직진의 오르막으로 이어진다

한산농원 창고옆 도로에는 月池祠 입구라는 표시석이 있다

월지사 표시석을 지나 길마재로 오르는 길 좌측에 朗州崔氏
世莊山碑가 그 뒷쪽에 트랙상으로 68.4m봉이라 표시된
봉우리가 있고 우측으로는 삼각점이 있는 57.5m봉이 있다.
트랙을 확인하니 맥길은 그냥 도로를 이어지기에 그냥 도로를
따라서 갔는데, 선답자의 산행기를 보니 많은 맥꾼들이 68.4m봉으로
올라 갔더라...오룩스맵상으로는 68.4m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카카오 지도에는 삼봉산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 낭주(朗州)는 전라남도 영암(靈巖)의 옛 이름으로 삼한시대 마한의
영토였다가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였고 월내군(月奈郡)이라 불렸으며
758년(신라 경덕왕 17)에 영암군(靈巖郡)이 되었다...995년(고려 성종 14)에
낭주군(朗州郡)이라 개칭하였고 안남도호부를 설치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낭주 안남도호부를 폐지하였고, 영암군(靈巖郡)으로 복칭되었다.
낭주 최씨의 시조 최지몽은 흔(昕)의 아들로 최흔(崔昕)은 신라 효공왕
(재위 897~912) 때 전라도 낭주(영암)의 토착세력이었다고 한다... 문중의
추정에 따르면 최흔은 본래 최씨가 아니고, 아들이 고려 태조에게 최지몽(崔知夢)
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았기 때문에 최흔으로 기록되었다고 하며, 최지몽(崔知夢)은
고려 태조가 후삼국 통일할 것을 예지하여 최지몽(崔知夢)이란 이름을 하사받았고,
고려 개국공신이 되었다... 후손 최안우(崔安雨)는고려가 망하자 조선을 반대한다는
의미에서 벼슬을 버리고 전라도 나주군 봉황면 만봉리 도성산(道成山)으로 들어가
은둔하였다... 그러나 최흔 이후의 계대가 확실치 않아 고려 말 전객령(典客令)을
지낸 최희소(崔希沼)를 중조로 하여 세계(世系)를 잇고 있다.

길마재(45m:10:29)
영암군 신북면 행정리와 월지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지명의 유래는 영암군의 어느 자료에서도 찾을 길이 없다

반바지님의 길마재 표지판

길마재를 지나면서 펼쳐지는 비닐하우스 단지들...
영암땅의 풍요로움을 대변하는 듯 하다

산소마을 버스 정류장(10:35)
산소는 영암군 신북면 월지리(月池里)의 자연마을 중 하나인 산소동
마을을 말하며 산소 버스정류장옆에 월지사(月池祠) 표석이 서 있다
이곳에서 우측 마을 도로로 가면 여재각(如在閣)과 월지사로 가는 길인데
여재각(如在閣)은 영암군 신북면 월지리에 있는 하동 정씨 문중의 재실로
여재각의 뒤로는 1947년에 건립된 월지사(月池祠)가 있다
정유재란시 왜적들이 주룡강에 침투했다는 소식을 듣고 각군에 격문을 돌리고
군량미를 모아 전투에 참가하여 순절하는등 전공이 아주 많았던 구곡재(九谷齋) 정대절,
조선 선조 때 예조 좌랑을 지낸 모암공(慕菴公) 정지성 , 영모재(永慕齋) 정지설을
배향한 하동정씨 사당이다

산꾼이 산길을 안 걷고 도로를 따라서 걸으니 지루하고 힘이든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 하듯, 힘들거나 말거나 산꾼은 산길을
걸어야 하는가 보다

영호교회(10:37)
남쪽은 산행시작부터 같이해 온 영암군 신북면과 작별을 하고
이곳부터는 영암군 도포면 영호리로 행정구역이 바뀌지만,
북쪽은 계속해서 신북면 월지리와 동행을 한다

영호리 버스 정류장(10:38~50)
오늘 맥길은 바람도 불지않고, 기온도 높아서 춥지는 않지만
짙은 미세먼지 탓인지 목이 상당히 아프다...이른 새벽에
햇반 하나로 아침을 해결하고 이곳까지 왔더니만 배가 고프다
버스 정류장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집에서 가져온 단팥죽을
먹으려고 보온밥통을 열고 숟가락을 찾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숟가락이 보이지 않으니 참으로 난감하네...하는 수 없이
아침에 마산을 내려오면서 딴 단감 3개로 허기를 면하고
약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영호마을 입구(10:51)
영암군 도포면에 속해있는 영호리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영평리
(永平里)의 영(永) 자와 회호정(回湖亭)의 호(湖) 자를 따서 영호리(永湖里)라고 했다.
영평 마을은 운월 서쪽에 있는 마을로 영원히 풍요롭고 평안하라는 뜻으로 ‘길 영(永)’ 자와
‘평안할 평(平)’ 자를 써서 영평 마을이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회호정 마을은 어느 도사의
말을 믿고 바다에 둑을 쌓다 망한 ‘조 감사’라는 부자의 전설에서 유래하여, 다시 호수가
되돌아 와야 한다는 뜻으로 돌 회(回) 자와 호수 호(湖) 자를 써서 회호리(回湖里)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은 산행이 아니라 도로와 목장, 농장투어를 하는 느낌이랄까.
남도지방 영암땅의 풍요로움이 물씬 풍기는구나

영암지역의 고분군(古墳群)을 표시한 이정표도 만난다

선답자의 산행기에는 오늘 지맥길에서는 하루종일
영암의 진산인 월출산이 보인다고 했는데 날을 잘못
선택했는지 월출산은 커녕 500m앞의 산도 안 보이니
참으로 아쉽다

서리등(瑞利嶝) 갈림길(10:58)
영암군 도포면 면소재지가 있는 구학리에 속해있는
마을이지만 서리등에 대한 유래의 자료는 찾을길이 없다

칠거리(10:59)
영암군 신북면 월지리와 도포면 영호리, 구학리의 경계에 있는 삼거리로
우측에는 류진농장이 있고, 좌측은 도포면사무소가 있는 구학리로
가는 길이다...길은 삼거리인데 지명은 칠거리라 상당히 헷갈린다
이곳부터 좌측은 영암군 도포면 영호리에서 구학리로 행정구역이
바뀌지만 우측은 계속해서 신북면 월지리와 동행을 한다.
구학리(龜鶴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구정(九亭)의 ‘구(九)’ 자와
학송(鶴松)의 ‘학(鶴)’ 자를 따서 구학리(九鶴里)라는 이름을 붙였다.
구정 마을은 마을 지형이 거북과 같이 생겼고, 거북 머리가 있고 그 옆에
우물이 있어서 ‘거북 구(龜)’ 자와 ‘우물 정(井)’ 자를 써서 구정(龜井)이라고도
불렀다고 하며 현재는 거북 머리도 도로 확장을 위해서 파 버리고, 우물도 매립했다.

150m 전방에 Y자 삼거리가 나오고 이정표를 보면서
계속해서 맥길은 도로를 따라서 걸어가는데 참으로 지루하다

삼거리(11:10)
영암군 도포면 구학리와 신북면 월지리, 시종면 만수리가 만나는 지점으로
도로명 주소가 우측으로는 마한문화로로 이어지고 맥길은 덕화만수로
진행하며 우측은 신북면 월지리에서 시종면 만수리로 바뀌는 갈림삼거리로
신북면에서 시종면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고개(11:13)

굽어지는 길을 걷다가보니 파란색 물탱크가 보이고 그 뒷쪽에 집한채가
있는 뒷봉우리가 족보있는 58.5m봉이다...도로가 생기기전엔 마루금이나
지금은 마루금 트랙이 도로로 그어져 있어서 그냥 도로를 따라서 간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미세먼지는 심해지고 목도 조금씩
아파오기 시작하지만 이 길은 내가 선택한 길이라 아무
고민도 없이 걷고, 또 걷는다

우측 도로 전봇대 뒷쪽으로 태봉산이 시야에 들어오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게만 느껴진다... 저 아래까지 도로를
따라서 걸어야 한다

도로에서 바라본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泰澗里)의 모습
태간리 북쪽은 시종면 만수리, 남쪽은 도포면 봉호리, 서쪽은 시종면
월송리, 동쪽은 도포면 구학리에 접해 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태산리(泰山里)의 ‘태(泰)’ 자와 송간리(松澗里)의 ‘간(澗)’ 자를 따서
태간리가 되었다.
태간리 명산마을은 조선시대에 진도군 명산면 지역으로 고종 32년(1895)
영암군에 편입되었으며, 그 지명을 따라 명산(命山)이라 한다... 송간 마을은
구송마을과 신송마을로 나뉘어 졌으며 구송마을은 태간제 저수지의 북쪽에
있으며, 송간마을의 옛 마을이라는 뜻이다.
신송마을은 구송마을의 남쪽에 있는 마을로 송림이 울창하여 그 속에서
나오는 물이 맑고 깨끗하여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였으므로 마을 이름을
송간(松澗)이라고 했다는 구전이 전하고 있는데,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송간리, 금성리, 상명리, 입석리와 구송리·중명리의 일부와 북이시면의
유곡리, 명축리, 회덕리, 태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태간리라 하고, 시종면에
편입하였고 태간리는 대부분이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쪽에 태간제가 있고 지방도 821호선이 지나간다.

갈림길(11:28)

고개(11:31)

야트막한 능선으로 이어지는 산그리메와 누런 속살을 드러내고 있는
황토밭이 이곳의 풍요로움을 대변하는 듯 하다...그래서 이곳은 지난봄에
걸었던 신산경표상 흑석지맥의 마루금인 삼호쪽의 무화과밭과는 달리
토질이 비옥하여 고구마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란다

이정표를 바라보면서 종질재 사거리로 향한다

종길재사거리(11:36)
영암군 도포면 봉호리와 시종면 태간리 경계에 있는 사거리로 이곳에서
맥길은 821번 지방도로 이어지는 시종면소재지 방향으로 이어지다가
곧바로 좌측의 농로 방향으로 향한다
종길재 좌측으로는 영암군 도포면 봉호리로 향하는 길인데 봉호리(鳳湖里)는
둠벙이 있어 둠벙개라고 부르다가, 이것이 변하여 봉개, 붕개 또는 봉호정,
봉호정리라 불렀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여러 마을을 병합하면서
봉호리가 되었으며, 대부분 평지와 낮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고 북쪽에 봉호제
저수지가 있으며, 남쪽으로 영암천이 흐른다

종길재 사거리를 지나자마자 좌측의 농로로 향하고 이곳부터는
좌측은 도포면 봉호리 우측은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로 들어선다

좌측으로 시종면 태간리 명산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지난다

친환경을 표방하는 태양광...과연 정답일까?

아무런 생각없이 길을 걷는데 농로변 민가의 개쉬키
한마리가 이방인을 보고는 지랄발광을 한다.
그러던지말던지 할배는 지나갈란다.

축사를 지나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으로 휘어져 맥길을 이어간다

마루금은 농로를 벗어나 목장으로 향하나 그냥 농로를 따른 다음에...

821번 지방도로에 들어서서 시종면소재지 방향으로 향한다

821번 도로를 따라서 걷다보니 광주로 향하는 표지판이 보이고...

송간마을 버스정류장 직전에 수준점이 있다

수준점(23.7m)

수준점을 지나 신송마을 버스 정류장이 보이고 우측으로 향하는
송간마을 이정표가 보인다...영암군 시종면 태간리에 속해있는
송간 마을은 구송 마을과 신송 마을로 나뉘며 구송 마을은 태간제
저수지의 북쪽에 있으며, 송간 마을의 옛 마을이라는 뜻이다.
신송 마을은 구송 마을의 남쪽에 있는 마을로 송림이 울창하여
그 속에서 나오는 물이 맑고 깨끗하여 주민들이 식수로 사용하였으므로
마을 이름을 송간(松澗)이라고 했다는 구전이 전하고 있다.

신송버스정류장(11:52)

길이 막혔다는 말은 있어도 끝났다는 말은 없다
길이 막히면 길은 그 자리에 잠복한다
비 오는 날 유리창에 떨어진 빗물
머뭇거리지만 스스로
길을 만들며 흘러내린다
길 안에는 또 다른 길들이 내장되어 있다
윤석호님의 ‘길에대한 단상’ 중에서

벚꽃나무가 도열한 821번 지방도 우측으로는 태간저수지가 보인다

갈림길(11:54)
시종면소재지로 향하는 821번 지방도를 버리고 좌측 농로로 향한다

잠시후에 오를 태봉산이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하니
이제 너무도 많이 걸었던 도로투어(?)가 끝이날 모양이다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지고...

농로가 맥길인 우측으로 시종면 태간리 입석마을에 있는 자라봉고분이 있는
곳이 어렴풋이 보이고 조금을 더 가니 시멘트 농로 우측으로 수로가 지나간다.
영암태간리(靈巖泰澗里)에 있는 자라봉고분은 호남 지방에 분포하는 전형적인
왜식(倭式) 고분 양식인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앞쪽 반은 거의 사각형을 이루고
뒤쪽 반은 둥근 모양을 이룬 무덤) 중에서도 만든 시기가 가장 빠르다고 보고된 고분이다.
최근의 발굴 조사 결과 6세기 초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드러났으며. 발굴 조사 결과
석실(石室) 안에서 나온 개배(蓋杯:뚜껑)라든가 주구(周溝:무덤 주위를 빙 두른 배수로)에서
출토된 병과 사발, 개배 등으로 볼 때 무덤을 만든 시기는 6세기 초기나 전반 무렵으로 파악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좌측으로 휘어져가는 농로를 버리고 수로 옆으로
향하는데 도둑넘풀이라는 씨앗이 바지에 잔뜩 붙는다

수로 옆으로 내려서니 도로가 나오고 도로를 따라서 7.5km 가량을
걸었서 참으로 지루하고 힘든 길을 왔다...산꾼은 힘이 들어도
산길을 걸어야지 도로를 걷는건 체질이 아닌듯하다

입석고개(12:05)
영암군 시종면 태간리 입석마을과 월송리 태산 경계이 있는 고개로
공식적인 지명은 아니고 입석마을 위에 있다고 해서 부르는 지명이다
입석마을에는 자라봉 고분이 있다...도로명 주소가 입석길인 길을 가로 지른다.
입석마을은 태봉산 북동쪽의 밑단부에 자리한 작은 마을로 동쪽으로 200여m
떨어진 곳은 낮은 구릉이 남북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 구릉의 말단부와 논
가운데에 지석묘 20여기가 남북 방향으로 2열을 이루고 있다.

이동통신 중계탑을 바라보면서...

숲속으로 들어서니...

등로는 안 보이고 지맥길의 本性을 드러내면서 꼬라지를 부린다

준.희쌤... 감사합니다

길은 보이지 않고 무대포로 티고 올라서니...

태봉산으로 향하는 좋은 길을 만나고
길 옆에는 꽤 큰 규모의 정수장이 보인다.

태봉산으로 향한다

이곳은 등산객들이 올라오는 모양이다
해충기피제를 뿌리는 시설물도 보인다

시종신학sk중계기지(12:25)

태봉산 가는 길

고맙습니다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온 연어
생이 빠져나가고 본능만 남아 헐떡거린다
그에게 길은 무엇이었나
도착한 곳이 목적지 인지 묻지도 않고
헐거워진 몸뚱이를 털어 다음 생을 쏟아 낸다
목적지가 처음부터 길의 일부였다는 것을
연어는 알고 있었을까
윤석호님의 ‘길에 대한 단상’ 중에서

편안한 등로로 올라서다보니 멋진 2층 팔각정이
보이고 계단을 따라서 태봉산 정상으로 올라선다

태봉산 정상에 올라서니 이 지역 사람들이 자주 오는지 넓은 공터에
泰山亭이라는 2층 팔각정과 각종 체육시설, 2등 삼각점이 있다

태봉산(太峰山:84.2m:12:30~35)
영암군 시종면 월송리와 봉소리와 도포면 봉호리의 경계에 있는 구릉지 위에
우뚝 솟은 뫼로 큰 산을 뜻하여 태(太)뫼라고 하였는, 한자로 표기하며
태산이 되었고, 봉우리가 첩어로 뒤에 붙으면서 태산봉이 되었고 남동쪽
기슭에 태산마을이 있으며, 영진 5만지도에서는 태산봉(泰山峰)으로 표기되어 있다.
백룡산(420.8m)에서 북쪽으로 내려선 호산(155.6m) 능선이 서쪽으로 흐르다
솟아오른 봉우리로 야트막한 야산 봉우리는 사방이 잘 조망되며, 백룡지맥의
출발지 활성산이 보이고 특히 서편 영산강 쪽이 훤히 보인다고 했는데 실제로
와보니 나무에 둘러쌓여 그렇지는 않으며, 풍수지리에서는 ‘태산봉이 사자의
꼬리’ 에 해당된다고 한다.

2등삼각점(▲영암 24 / 1990 재설)

정상은 넓은 잔디밭 안부로 체육시설이 있고 지맥은 태봉산 정상 직전에서
도포면과 다시 만나고 정상에서 내려서며 완전하게 시종면으로 진입한다.
이곳 태봉산에서 신산경표상의 지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져 구산리를 거쳐
여시머리를 지나 삼포천 합수점 향할 것인가, 직진으로 가서 신학리를 거쳐
영암천 합수점으로 가는 신학리 학림마을 딴섬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태산봉을
내려서서 도로 투어로 10.3km이어지는데, 대부분의 산꾼들은 신산경표의
트랙을 따라서 여시머리로 향하지만, 일부 양식있는 산꾼들은 영암천으로 향한다.
나 역시 영암천쪽으로 가는게 맞는 듯 하다...하지만 갑자기 산행 일정이 바뀌어서
이곳으로 오는 바람에 여시머리쪽으로 가지만, 조만간 영암천쪽으로 걸어볼 예정이다

오늘 산길은 오전에 종길재 사거리에서 온전히 시종면에 들어섰다가
태봉산 정상 직전에 도포면에 잠깐 발을 담근 다음에 태봉산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내려가면서 합수점까지 온전히 시종면 길을 걷는다

남도의 겨울산을 푸르게하는 마삭줄이 등로에 많이 보인다

안부(12:38)

등로 좌측 아랫쪽에는 묘지들이 보이고...

맥길은 직진의 북쪽으로 이어진다

호산을 지난 이후부터는 땅바닥에 돌멩이 하나도 안보고
이곳까지 왔었는데 태봉산을 내려서면서 처음으로 바위
하나를 만나니 왜 그리도 반가운지...

묘지가 있었던 곳이였는지 石物은 보이나
묘지의 봉분은 사라지고 넓은 임도만 보인다

안부(12:42)

68.3m봉(12:47)

68.3m봉 정상에서 맥길은 완만한 우측으로 이어지고 이곳까지
오면서 가지고 온 단팥죽을 숟가락이 없어서 먹지 못했고, 마땅히
먹을게 없어서 쫄쫄 굶고 이곳까지 왔더니만 배가 고파도 너무 고프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도차가 거의없는 완만한 산길이라 걸을만 하다

臘前月季(섣달 전의 월계화) / 楊萬里(양만리)
只道花無十日紅(지도화무십일홍)
열흘 붉은 꽃이 없다 말이 많더니
此花無日不春風(차화무일불춘풍)
이 꽃은 일년 내내 봄 아닌 날 없어서
一尖已剝胭脂筆(일첨이박연지필)
꽃받침 비집고 붉은 꽃잎 내비친 뒤에
四破猶包翡翠茸(사파유포비취용)
활짝 피어 비췻빛 꽃술을 보여주는데
別有香超桃李外(별유향초도리외)
복사꽃 오얏꽃과 다른 향기 갖고도
更同梅頭雪霜中(갱동매두설상중)
매화처럼 눈과 서리 싸워 이기니
折來喜作新年看(절래희작신년간)
새해에 꽃을 꺾어 기분 좋게 감상하듯
忘却今晨是季冬 망각금신시계동
오늘이 섣달인 걸 까마득히 잊고 마네
* 楊萬里(양만리:1124~1206)는 중국 남송시대의 학자ㆍ시인으로
자는 정수(廷秀). 호는 성재(誠齋). 남송 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경쾌하고 자유롭고 활달한 시체(詩體)가 특징이다.
저서에 시집 ≪강호집(江湖集)≫, ≪퇴휴집(退休集)≫,
고전의 주석인 ≪성재역전(誠齋易傳)≫가 있다.

바위가 귀한 영암군 시종면 땅에 호위무사처럼
버티고 있는 바위 2개를 지나서...

마을로 이어지는 801번 지방도로로 내려선다

801번 도로 내려서기 직전에서 바라본 영암군 시종면 봉소리의 모습

801번 지방도(12:55)
영암군 시종면 월송리 송산마을과 봉소리 경계로 맥길은
도로를 가로질러 옹벽 윗쪽의 대밭쪽으로 이어지지만
편의상 송산마을 쪽으로 내려가 송산마을 너머로
시종면 소재지가 있는데 그리 멀지않는 길인데도
미세먼지로 인해 멀게만 느껴진다

영암군 시종면 월송리(月松里) 송산마을
영암군 시종면에 속하는 법정리로 월송리는 조선 시대 영암군 북이시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폐합에 따라 명목리, 치리, 신당, 송산, 회덕리
일부와 진도군 명산면의 망월리를 병합하여 망월리에서 ‘월(月)자’ 와
송산의 ‘송(松)자’ 를 따서 월송리라 하여 시종면에 편입되었다.
월송리는 대부분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앞에 태산봉과 남산봉이
있으며, 시종 저수지와 밭갱이 저수지가 있고, 동쪽은 태간리, 서쪽은 구산리, 남쪽은
봉소리, 북쪽은 내동리에 접하며, 주민들은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으며, 수박,
총각무, 고추 등도 재배한다.
두 개의 행정리가 있으며, 치리 마을·송산 마을·신소정 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있는데
송산 마을은 월송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치리 마을과 진봉이라는 낮은 산을 사이에
두고 서쪽에 형성되어 있고 송산 마을에 월송리 송산 고인돌 떼가, 신소정 마을에
월송리 신소정 고인돌 떼가 있다.

마루금을 살짝 우회하여 시멘트 도로로 올라간다

월송리 송산 고인돌 떼(月松里松山支石墓群:13:02)
월송리(月松里) 송산(松山) 고인돌 떼는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월송리
송산 마을 뒤로 난 길가의 구릉에 8기가 분포하고 있으며, 고인돌은 마을
끝의 민가 앞과 농로 사이에 위치한다.
월송리 송산 고인돌 떼는 원래 받침돌이 있는 덮개돌 3기가 열 지어 있었으나
주변에서 하부가 매몰된 5기가 확인되어 총 8기로 고인돌은 규칙적인 열은
보이지 않고 있지만 전체적인 양상이 장타원형을 이룬다.
덮개돌의 규모는 길이 200~370㎝ , 폭 150~190㎝, 두께 105~160㎝ 정도인데,
가장 큰 고인돌은 길이 370㎝, 폭 190㎝, 두께 110㎝으로 받침돌 3개가 있다.
고인돌 밑에 2~3개의 받침돌이 3기에서 확인되었는데, 일부는 판석으로 덮개돌을
괴고 있어 탁자식 고인돌의 무덤방으로 추정할 수 있다
1986년 목포 대학교 박물관 조사에서는 3기로 보고되었지만 그 후로 매몰된 5기를
추가하여 2013년 현재 총 8기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으며, 마을 주민들은 ‘상여 바위’라고
부르고 있으며, 또한 월송리 송산 고인돌 떼는 ‘월송리 송산 지석묘’로도 불린다.
전남 지방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2만기 이상의 고인돌이 분포하고 있는 곳으로,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송산 고인돌 떼를 지나 좌측으로 향하는 농로를 버리고
고구마 수확이 끝난 황토밭으로 올라 가는곳에 밭에는
간간히 고구마가 보이는데, 배도 고프고 베낭에 먹을것도
변변찮아 고구마 3개를 줏어서 묘지로 올라가 칼로 깍아서
먹으니까...허기가 조금은 가시는 듯 하다

진주강공 묘지(13:05~20)

진주강공 묘지에서 고구마 3개를 깍아먹고 양지바른 곳에 있으니
졸음이 쏟아지는데 지금 이 시간에 잠을 자면 합수점까지 가기가
힘들것 같아서 물탱크가 보이는 묘지 뒷쪽의 대밭으로 올라가니
등로가 지저분하다

다시 되돌아 나와서 우측의 마루금을 보면서 고구마밭을 횡단한다

고구마밭을 지나서 마을 도로로 내려선 다음에...

마루금에 복귀하여 도로를 가로질러 좌측의 묘지쪽으로 오른다

전주이씨 가족묘(13:35)

전주이씨 가족묘를 올라서니 또다시 고구마밭이 나오고
뒤돌아보니 이동통신사 중계탑이 보이는 태봉산은 지척에
있구나...고구마밭을 지나니 또 다시 묘지가 나온다

김해김씨 가족묘(13:38)

세월을 잊은듯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채 망자곁을 지키는 문인석

묘지를 내려서서 밭 옆으로 이어지는 농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농로 사거리(13:40)

농로사거리 우측에는 전주이씨 양녕군파 평장묘가
조성되어 있고, 대밭 사이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 양녕군 이경(陽寧君 李儆:1616~1644) 조선 중기의 왕족으로
선조의 서자(庶子)였던 경창군의 차남이며, 훗날 임해군의 양자가
되었다... 세종대왕의 큰형 양녕대군(讓寧大君)과 봉호(封號:제왕(帝王) 또는
군주가 가봉(加封), 사여하는 칭호를 말함)의 한국어 발음이 같지만, 한자는
다르며 양녕대군은 '사양할 양(讓)', 양녕군은 '볕 양(陽)'을 쓴다.

농막(13:41)

농막을 지나면서 시멘트 농로를 버리고 감나무밭으로 들어선다

감나무밭 끄트머리에서 잡목 사이로 올라가야
하지만 허기진 배로 오르기에는 자신이 없다.

좌측으로 내려가서...

조금전에 헤어진 시멘트 도로로 내려서면서 마루금에 복귀한다

구산리 오거리(13:46)
구산리에서 시종면소재지로 이어지는 820번 도로가 지나가고...

좌측으로는 봉소리1구라는 오석으로 된 마을 표시석이 있다
영암군 시종면에 속해있는 봉소리(鳳巢里)는 조선 시대에 영암군
북이시면(北二始面)의 지역으로 북쪽은 구산리, 동쪽은 월송리, 남쪽은
신학리에 접해 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철두리, 봉암리,
괴목리, 수동리, 대호정, 연동, 조동을 병합하여 시종면 봉소리로 개설하였다.
대부분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마을 서쪽으로 영산강이
흐르며 저수지는 남동쪽에 동방제가 있고, 연동 마을에 연동 저수지가
있으며 지명의 유래는 입향조인 봉암(鳳巖) 강연(姜淵)과 관련하여
마을에 봉소정(鳳巢亭)이 있어 봉소리라는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주민 대부분은 벼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으며, 수박, 무, 배추 등을
재배하고 있으며 두 개의 행정리가 있으며, 원봉소 마을·철두 마을·조동 마을·
연동 마을·괴목정 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원봉소 마을에 조선 시대
조개더미인 봉소리 봉소 조개더미가 있고, 시종면소재지에서 원봉소 마을로
들어오는 길가에 삼국 시대 고분군인 봉소리 진등 석실 고분군이 있고 봉소리
연동 마을은 부근에 연동지라는 못이 있었는데 연이 많이 자생하였으므로
거주민들이 ‘연꽃 연(蓮)’ 자와 마을 ‘동(洞)’ 자를 써서 연동이라 불렀다고 하며,
괴목정 마을은 예전에 태산봉 남봉에 괴목으로 지은 정자인 괴목정(槐木亭)이
있어 마을 이름을 따왔다고 하며, 봉소리 동쪽으로 지방도 801호선이 지난다.

오거리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오르막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구산3구 입구(13:50)
영암군 시종면 구산리(九山里)는 마을 뒷산이 거북이처럼 생겨서 ‘거북 구(龜)’ 자에
‘뫼 산(山)’ 자를 써서 구산(龜山)이라 했는데, 언제부터인지 아홉 구자를 쓰는
구산(九山)으로 바뀌었다... 거북 구의 획수가 많고 쓰기가 어려워 쓰기 쉬운
아홉 구로 변한 것이라고 한다.

구산리는 대부분 낮은 산지와 평지로 이루어져 있고, 마을 서쪽으로 영산강이
흐르고 있으며,구산에 태뫼봉이 있으며 동쪽에 구산제가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원구산마을, 세까지마을, 송정마을, 희정마을, 태정마을, 육거리 마을 등이
있으며 구산3구는 희정마을로 부른다

도로 너머 황토밭 뒷쪽으로는 지맥길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원구산(42.8m)이 봉긋하게 솟아있다

도로에서 바라본 태봉정 마을의 모습

태봉정 입구(13:57)

태창농장을 지나니 잠시후에 오를 61.3m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갈림길(14:02)
구산오거리에서 도로를 따라오다가 호화묘지 좌측의 능선으로 오른다

이 지역 사람들의 조상에 대한 禮敬은 참으로 대단하다
특히 이곳은 문중들의 勢대결을 벌이는듯 주변에
호화묘지들이 즐비하다

호화로운 금낭제 동복오공 부부묘를 지나서...

숲속으로 들어선다

트랙상 마루금이 맞으나 등로는 보이질 않고
오랫만에 잡목의 저항을 받으며 올라서니
족보있는 61.3m봉이다

61.3m봉(14:10)

61.3m봉 아래로 내려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맥길을 안내한다

잡목의 저항을 뿌리치고 내려서니 평장으로 조성된 천주교인 묘지가 나온다

천주교인 묘(14:14)

묘지 아래로 내려서니 포장도로가 나온다

포장도로(14:15)

트랙상 맥길은 포장도로를 가로질러 황토밭으로 내려가야
하지만, 귀찮아서 우측으로 내려가니 마을이 나오는데
시종면 구산리에 속해있는 새동네(태봉정) 마을이다

마을 도로를 따라서 새동네로 내려섰다가....

마을 도로를 버리고 농로로 맥길을 이어간다

과수원을 지나서...

농로로 올라간다

배밭을 따라서 남쪽으로 향한다

물탱크봉(14:21)

물탱크봉을 내려서니...

시멘트 농로가 나오고...

맥길은 도로 아래로 내려가 밭을 가로질러 가야하지만
그리로 가면 축사도 있고 사람들이 주거하는 민가도
있어서 마루금을 포기하고 좌측의 농로를 따른다

농로로 내려서니 821번 지방도를 만나고...

좌측으로는 구산저수지가 보인다

도담농장도 지나고...

우측으로 보이는 물탱크와 목장 가운데로 트랙상의 맥길이 이어진다

한참을 우회한 다음에 마루금에 복귀한다

송정버스 정류장(14:40)

821번 도로를 따라서 가는데 민가에 있는 개쉬키 2마리가
산꾼에게 금방이라도 물려고 달려드는데 밭에서 일하는
쥔장이라는 자가 아무런 제지도 않고 물끄러미 쳐다만 본다

갈림길(14:43)
창원황씨 세장비가 있는 곳에서 821번
지방도를 버리고 좌측의 마을길로 들어선다

마을길에서 바라본 시종면 구산리의 모습

길에 대한 단상 / 김황흠
어둠에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찾아갈 수 있는 길을
가려하지 않기 때문
잃어버렸거나 잊어버린 것
바스락거리는 묵은 낙엽 부스러기
바람에 흩어지며 드러나는 산길
이 길은 고개 너머 먼 길로 닿아 있으리라
지금까지 걸어 온 무수한 걸음은 흔적도 없고
다만 길만이 홀로 남아
기다리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들이 밟고 간
발자국이 모여 만들어진 길은
지워지지 않는다

12월에 노지(露地)에서 자라는 배추라?...
영암, 해남, 진도지방에서나 만날수 있는
풍요로움과 넉넉한 들녘길을 걷는 범여의
마음도 덩달아 넉넉해지는 느낌이다

영암의 들녘에서 유난히 많이 만나는 물탱크도
다른 지방에서는 접하지 못하는 명물(?)인 듯 하다

마을길(14:52)
마을길 끄트머리 삼거리에 도착하니 컨테이너가 보이고...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올라가니 민가가 나오면서 길이 막혀버렸다

주택의 뒷쪽의 양파밭 위로 올라서니 또다른 민가가 나온다

민가(14:55)
민가로 올라서니 마귀할멈처럼 보이는 여인이 남의 집에
들어왔다고 지랄발광을 한다...길을 잘못 들어서 왔노라고
미안하다고 하는데도 난리부르스인데, 개쉬키들도 쥔여인을
닮았는지 금방이라도 나를 물어 뜯을듯이 난리다

그러던지 말던지 싹 무시하고 민가를 빠져 나온다

신산경표상의 백룡지맥 산행기 끝트머리에 등장하는
영암구봉교회가 보이기 시작하고 그 뒷쪽으로 흐르는
영산강은 아직도 미세먼지에 가려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

들녘 너머로 흐르는 영산강은 아직까지는 오리무중이다

도로를 지나 구봉교회로 올라간다

구봉교회(15:00)

교회를 지나니 지금 막 파종을 한 양파밭이 보이고 묘지가 나온다

달성배씨 묘(15:02)

달성배씨 묘를 지나니 영암군 시종면에서
무안군 일로읍으로 연결하는 도로를 개설중이다

도로(15:04)
도로 우측으로는 영암군 시종면 구산리 마을이 보이고 바로 아래에는
영암웰빙이라는 건물을 바라보면서 개설중인 도로를 가로 지른다

보리밭이 있는 농로 가운데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저 앞에서는 한창 묘지를 조성중이다...남도 지방
사람들의 조상에 대한 예경은 본받을만하다.

무명봉(15:10)
예전에 능선이었는데 지금은 밭으로 변해버린 듯한 무명봉...
뒷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4등삼각점(영암 441/1999 재설)이 있는
42.8m봉인데 트랙상의 지맥길은 이곳에서 좌측으로 확 꺽어진다

영산강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하고 고구마를
수확한 밭을 지나 시멘트 농로로 내려선다

시멘트 농로를 따라서 서쪽으로 향한다

경주배씨 가족묘(15:18)

시멘트 농로를 버리고 좌측 아래로 내려서니
신산경표상의 합수점인 여시머리가 시야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갑자기 나타난 태양광 단지...

태양광 단지안으로 들어서니 휀스로 꽉 막아놓아
빠져나갈 틈이 안 보인다...다시 되돌아 나간다

되돌아 나와서 영산강 뚝방으로 맥길은 이어진다

여시머리(15:38)
신산경표의 트랙은 이곳 여시머리라는 밭 가운데의 둔덕같은
봉우리에서 맥길이 종료된다...여시머리 앞으로 펼쳐지는
들녘은 예전에 강이었는데 지금은 매립하여 농토로 되었다고
여시머리라는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

영산강 제방으로 가면서 뒤돌아 본 여시머리
신산경표상의 백룡지맥의 끝인 현재의 구산리 여시머리 남쪽 들판은
매립지라 예전엔 강이었을 터이니 현재의 지형이 아닌 옛 지형으로 따져
태봉산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신학리 학림마을 앞 딴섬쪽으로 가야한다는
의견도 있고, 일부 맥꾼들은 학림마을쪽으로 가고 있다

다리(15:46)
영암군 시종면 구산리에 무암군 일로읍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공사중이고 아직까지 다리 이름도 없다
이곳에서 우측으로는 영산강과 삼포천이 만나는 합수점이 나오고
좌측으로 이어지는 영산강 제방길을 따라가면 영암천과 영산강이
만나는 합수점이 나오는데 삼포천 합수점까지는 약 1km밖에 안되는
거리이고, 좌측의 영암천 합수점까지의 거리는 4km정도 되는 거리다

영산강 건너는 무안군 일로읍 인의산(仁義山:154.7m)이 보이고
새로 건설되는 다리를 바라보면서 영암천과 영산강이 만나는 제방길을
따라서 걷고 또 걷는다

제방(16:05)
어느듯 해는 서산으로 기울기 시작하고 영암천이 영산강으로 합류하는
영산강 제방을 따라서 터벅터벅 걸어가니 조금은 불안하지만
맥길을 걷는 산꾼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걷고 또 걷는다

제방길을 걸어가니 이제서야 산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데 지도를 보니
영암천 건너에 있는 영암군 서호면으로 하은적산(下隱跡山, 304.2m)과
모재산(197.3m)인 듯 하나 확신이 서질 않는구나...

제방을 따라서 15분정도 걸어가는데 영암천 합수점 방향에서 작업을 마친듯한
트럭이 나와 반대로 올라가고 있다...에라 모르겠다...배도 너무 고프고
합수점이고 나발이고 일단 살고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손을 드니
처음에는 무심하게 지나가더니만 한참을 가다가 차를 세우고
빨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이곳은 택시도 잘 안들어 오려고 하는 지역이리고 하면서 어딜 가냐고 묻는다
영암천이 만나는 영산강까지 갔다가 시종면에 가서 신북으로 가는 버스를
탈것이라고 하니 이 지역을 잘 아시냐고 묻기에 서울서 왔다고 하니
이해를 잘 못하는 눈치이다...그러면서 자기가 신북까지 간다면서
시트가 지저분 하다고 하면서 타라고 한다...덕분에 편하게 신북터미널까지 왔다

신북터미널(16:52)
트럭기사님의 도움으로 편하게 신북터미널까지 와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차에서 내리는데 광주로 가는 버스(16시 50분발)는
떠나 버린다...아이쿠 우야노...버스시간표를 바라보니 17시 30분에
광주가는 버스가 있기에 얼른 화장실에 가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근처에 있는 편의점에 우유 하나를 사먹고는
버스정류장에 버스가 오기를 기다린다

신북터미널 버스 시간표

신북(영암)발 → 광주행 버스표
예정 시간보다 조금 늦게 버스가 도착하고 버스에 오르자마자
너무 피곤했던 탓인지 깊은 잠에 빠졌다가 버스가 광주 시내로
들어오면서 잠에서 깨어난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18:40)

광주발 → 서울행 버스표

버스표를 예매한 후에 터미널 내에 있는 식당에서 씨래기국밥으로
저녁을 해결하고나니 이제서야 좀 살것만 같다...오늘 산행은
배고픈 설움을 뼈저리게 느낀 하루였다...식사후에 커피까지
한잔 마신 여유를 만끽하고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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