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시: 2025년 04월 26일
☞ 산행날씨:맑은 날씨에 약간의 미세먼지
☞ 산행거리: 도상거리 12.3km + 들머리 0.2km + 날머리 1,3km / 5시간 5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분기점-폐콘크리트 초소-안부-안부-NO195 송전탑-317.6m봉
안부-금정배수지-무명봉-238.0m봉-영운재-218.4m-무명봉-무명봉
무명봉-235.4m봉-독갓재-암봉-260.9m봉-안부-형제봉-안부-무명묘지
무명봉-안부-317.2m봉-오봉산-호재-359.4m봉-쇠재-안부-백룡산-안부
폐헬기장-가막재-363.6m봉-옹골재-348.1m봉-가막산갈림길-갈림길
안부-장산리 임도-208.4m봉-임도-무명봉-안부-묵밭-고개-121.4m봉
유인 도강김씨묘-산장산 도로-산장산 고개-안부-139.7m봉-안부
무명묘지-비석거리재-131.8m봉-떨꾹재
☞ 소 재 지: 전라남도 영암군 금정면. 덕진면, 신북면
지난주에 참으로 힘들게 산행을 한 탓에 주중 내내 힘이 들어서 이번주에는
하루를 쉬려고 생각을 했다...작동이 되지 않은 스마트폰은 잭을 꽂는 자리에
물기가 마르니 충전은 되는데, 스마트폰 안에 깔려있는 오룩스맵은 불통이다.
누구한테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예전에 기.지맥을 같이한
인연이 있는 “산동네 ”라는 닉을 가진 임사장님에게 전화를 하니 고쳐줄테니
자기 사무실로 토요일에 오라고 한다
토요일 일찍 산동네님 사무실에 들려서 지도를 복원하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산동네님은 예전에 KT에 근무하다가 나와서 통신과 소방설비
감리를 하는 전문건설업체를 운영하는 IT 전문가이다...3시간 가까이 시간이
걸려 지도를 복원하고, 점심까지 대접을 받은 다음에 집으로 온다.
짐에와서 법복을 갈아입고 초파일을 1주일 앞두고 진행하는 연등축제가
있는 동국대 교정으로 가서 연등축제에 참석하였다가, 후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중간에 집에오니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다.
너무 피곤하여 내일 산행을 할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다가
보면, 얼마 남지않은 지맥길을 2년안에 끝내지 못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서 가장 난이도가 낮은(?) 지맥길을 찾다보니 보니 영암(신산경표상:백룡)
지맥이다...이 지맥길은 등로도 좋고, 거리도 짧아서 대부분의 맥꾼들이
원삿으로 끝내는 맥길이라 아무리 걸음이 느린 범여라 할 지라도 2번이면
될 것 같아서 이곳으로 결정하고 베낭을 챙긴 다음에 잠자리에 든다

영암(백룡)지맥 개념도
영암(백룡)지맥은
땅끝기맥 활성산(498m) 북쪽 1.3 km 지점의 418m봉 에서 북서쪽으로 분기해서
형제봉(288.4m)을 지나 백룡산(420.8m) 에서 다시 남.북쪽 두 갈래로 산줄기가 갈라지는데
남쪽으로 이어진 산줄기는 마산(159.2m), 13번국도, 호산(155.9m), 천제산(58.3m),
태산봉(84.2m)을 지나 영암천의 좌측(북측) 분수령이 되어 영산강에서 그 맥을 다하
북쪽으로 이어진 산줄기는 조리봉(227.7m), 오봉산(162.3m), 태산(85.4m), 두류산(106m),
고문산(103.5m), 옥룡산(132.9m)을 지나며 삼포천의 좌측(북측) 분수령이 되어
영산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산줄기로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영암지맥이라고 부른다
신산경표에서는 땅끝지맥 지맥분기점 ~ 백룡산 ~ 태산봉 으로 이어진
도상거리 31km인 산줄기를 백룡지맥(白龍枝脈) 이라 하고, 백룡산에서
북쪽 오봉산 ~ 두류산 ~ 옥룡산 으로 이어진 도상거리 42km인 산줄기를
옥룡지맥(玉龍枝脈) 이라고 명명 했는데 대한산경표에서는 삼포지맥이라고
하는데, 옥룡지맥의 끝은 옥룡산 아래 몽탄마을로 보는데는 별 이견이 없는듯 싶으나,
백룡지맥의 끝은 현재 구산리 여시머리 남쪽 들판은 매립지역 이라
예전엔 강이었을 터이니 옛지형으로 따져 태산봉 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신학리 학림마을앞 딴섬쪽으로 가야한다는 또 다른 견해도 있다.
◆ 주요 봉우리
지맥분기봉(418m), 형제봉(288.4m), 백룡산(420.8m), 마산(159.2m), 호산(155.9m),
천제산(58.3m), 태봉산(84.2m)
◆ 종주에 필요한 지도
1/25000 용흥. 영암. 영산포. 소산.몽탄.
지리원 온맵지도 영암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토요일 제등행렬에 참석하였다가 동국대학교 중앙광장에서 인증샷

동국대학교 명진관
불교대학원을 졸업한 지가 25년이나 지났구나.
한참 불교에 심취해 있을 때 명진관 옆에 있는 중앙도서관에서
佛書를 대여하여 참으로 열심히 공부했고, 도반들과 교수들과
늦은 시간까지 토론하는 그 시절이 좋았는데, 이제는 자꾸만
부처님에 대한 열정이 식어가는 느낌이다.

오랫만에 교정의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正覺院을 들려서 참배를 한 후에
내 구역인 종로3가에 들려 점명부에 출석 체크를 하고, 불알친구인
淸眼과 제등행렬에 참석했다가 후배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중간에
집으로 향한다

서울발 → 광주행 버스표

남도지방의 중심도시인 광주란 곳은 버스 교통이 참으로 편한 곳이다
대부분의 도시로 향하는 첫 차가 06시에 출발하는데, 광주로 가는
첫 차가 05시 30분이다...집 앞에서 버스를 타고 호남고속터미널에
도착하니 04시 50분...버스표를 예매하고 조금 휴식을 취한 다음에
광주가는 버스를 타고 깊은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광주 터미널가기
직전의 “비아” 라는 곳에 버스가 정차하는 바람에 잠에서 깨어난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08:45)

광주발 → 영암행 버스표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에 도착하니 09시 05분에 출발하는
영암행 버스가 있어서 버스표를 예매하고, 터미널 내에 있는
토스트 가계에서 토스트와 두유하나로 아침을 해결하고
영암행 버스에 오른다...이 버스는 직행이라고는 하나 화순과 능주, 나주,
영산포, 신북이라는 곳을 거친 다음에 영암으로 향하는데, 도심을
통과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신호등 때문에 예상했던 시간보다도
시간이 많이 지체되는 느낌이다

영암터미널(10:32)
영암터미널에 도착하여 곧바로 택시를 타고 서광목장으로
가자고 하니, 나이가 드신 택시기사분이 잘 모르겠단다.
하는 수 없이 영암군 금정면 연소리 892-2를 찍어서 가자고
하니 금방 알아채고 가는데 들머리에 도착하니 15분정도 걸린다

옛 서광목장 터(10:45)
예전에 엄청나게 큰 규모였던 서광목장이라는 곳이 있었던
장소에는 목장은 없어지고, 풍력발전 바람개비만 목장터를
지키고 있다.
예전에 땅끝기맥을 걸을 때, 봄.여름.가을.겨울산악회하는 곳에서
후배산꾼들과 이곳을 지나간 지가 2014년 9월이었으니 어언
11년이란 세월이 지나가 버렸구나...고장난 벽시계는 멈출줄도
아는데, 세월이란 시계는 왜 이리도 정확한 지...가는 세월을
멈추는 방법이 없을까...그 당시에 산행 대장을 했던, 진권아우는
우째 잘 사는지 모르겠다

산행을 시작하다(10:55)
잡풀이 우거진 목장터에는 차량을 세워놓고 쑥을 캐기에
여념이 없는 아낙네들이 보이고, 잡풀더미를 헤치고 오르는데
우측에는 N04 대명GEC(주)라 적혀있는 바람개비를 끼고 0.3km정도
올라가니 영암(백룡) 분기점이 나온다

영암(백룡)지맥 분기점(11:03)

인증샷

분기점에서 11년전에 걸었던 땅끝기맥에서 갈라져 영산강으로 입수하는
영암천으로 향하는 영암(신산경표상:백룡)지맥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분기점에서 북측을 향하다가 NO를 알 수 없는 바람개비(풍력발전기)를
바라보면서 좌측으로 꺽어져 내려가는데 지맥길답게 등로가 보이지 않는구나

자연에게 전하는 말
하늘에게 물으니 높게 보라고 합니다
바다에게 물으니 넓게 보라고 합니다
산에게 물으니 올라서라 합니다
비에게 물으니 모두 씻으내라 합니다
파도에게 물으니 부딪혀 보라합니다
안개에게 물으니 마음으로 보라 합니다
태양에게 물으니 도전하라 합니다
달에게 물으니 어둠속에서도 빛나라 합니다
별에게 물으니 길을 찾으라 합니다
바람에게 물으니 맞서라 합니다
어둠에게 물으니 모든걸 내려놓고
쉬어가라 합니다
知人이 카톡으로 보내준 좋은글 중에서

지맥길의 첫 발을 내딛는데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기에 큰 걱정없이 내려서니
예전에 목장을 운영할 때 초소로 사용했던 듯한
폐큰크리트 시설물이 산꾼 범여를 맞이한다

폐콘크리트 초소(11:05)

또 다시 좌측으로 살짝 꺽어져 내려서니...

지난주에 장흥(신산경표상:사자)지맥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legend의 빛바랜 시그널이 오늘도 범여를 인도해 주실 모양이다
늘 고맙습니다...세세생생 복 받을깁니다

안부(11:10)

분기점에서 뚝 떨어지듯 내려서니 편백나무 조림지가
나오고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걸어간다.
지난주와는 달리 산동네님의 복원해 준 오룩스맵 지도를
믿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초반부터 고도차가 없는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걸어가는데
낙엽속을 비집고 얼굴을 내밀고 있는 귀한 봄구슬붕이꽃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는데 봄구슬붕이의 꽃말이 “기쁜소식” 이라고
했는데 좋은 일이 있을라나...?

봄구슬붕이(꽃말:기쁜소식)
봄구슬붕이는 산과 들에서 자라는 두해살이풀로, 비탈지고 양지 바른 곳의
비옥한 토양에서 자라며, 키는 5~15㎝로 아주 작은 편이나 봄에 핀 꽃이
여름까지 가는 경우가 많아 꽃을 오래 관찰할 수 있는 꽃이다.
뿌리에서 생긴 잎은 길이가 1~3㎝, 폭은 0.7~3㎝가량 되는데, 이 잎은
질긴 편이나, 줄기에서 생긴 잎은 길이는 0.5~1.2㎝, 폭은 0.2~0.8㎝로
밑이 합쳐져 짧은 엽초로 되는데, 꽃은 4~5월에 가지 끝에 연한 자주색으로
한 송이씩 달리며 길이는 2.5~3.5㎝ 정도이다.
꽃잎은 큰 것이 다섯 개, 그 주위로 작은 것이 다섯 개 있는데, 작은 꽃잎은
부화관(副花冠)이라고 하며, 꽃받침통은 길이 0.8~1㎝로 5개의 능선이 있고
5개로 갈라지며 끝이 뾰족하다... 열매는 6~7월경에 달리며 2개로 갈라진다.
구슬붕이와 다른 점은 부화관에 작은 톱니가 있다는 점이다.
봄구슬붕이는 용담과에 속하며, 긴구실봉이, 봄구실봉이라고도 하며
관상용으로 쓰이며 약재로도 사용되며, 우리나라와 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 부화관(副花冠)이란
꽃잎과 수술 사이 또는 꽃잎과 꽃잎 사이에서 생겨난 기관으로,
꽃잎처럼 생긴 작은 부속체를 말한다

봄구슬붕이를 만나는 행운을 누리면 내려서니 간간히
보이는 철쭉은 벌써 끝물인지 꽃잎이 시들기 시작한다.
어쩌면 저 철쭉이 요즘의 내 삶을 대변하는 듯 하다.
최근의 2~3개월 사이에 내가 아는 지인과 친구, 선배가 한명씩
갑자기 자다가 말고, 生을 마감하는 걸 보고나니 나 역시
저렇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으니, 쉼없이 앞만 보고
살아온 내 삶에 허무함이 밀려오는구나...살아온 인생은 삶의 종착지로
향해가고 지맥길은 합수점으로 향하는데 똑같은 목적을 가진 bucket list
라고나 할까...저 철쭉을 보니 괜스레 마음이 우울해지는구나

천천히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걷는데 등로 주위에 군락을
이루고 있는 두릅나무에서 먹기 좋을만큼 자란 두릅을
조금 수확을 하는 손맛을 본다

두릅을 재취하는 능선 뒷쪽에 있는 활성산은 綠陰속에 묻혀 버렸고
우측으로 펼쳐지는 월출산 능선 맨 좌측의 옴팍한 곳이 11년전에
걷었던 돈밧재인 듯한데, 하도 오래되어 확신이 서질 않는구나
영암군 금정면 연소리와 영암읍 농덕리·한대리 경계에 있는 활성산(活城山:498.0m)의
지명은 정상에 있던 활성산성(活城山城)에서 유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궁성산과
함께 활 쏘는 훈련장으로 쓰였다고 전하며, 토성(土城)의 흔적이 남아 있다.
활성산 정상에 서면 월출산과 함께 영암 읍내를 조망할 수 있으며, ‘남궁성산’이라는
별명이 있다.
무등산에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호남 정맥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져 나와 월출산으로
뻗어가는 능선에 위치한 활성산은 동쪽의 영암읍 한대리와 금정면 연소리 골짜기는
탐진강 수계의 유치천이며, 서쪽의 영암읍 농덕리와 장암리 계곡은 영산강 수계의
영암천이다...한편 활성산의 세 갈래 능선은 북동쪽은 국사봉을 거쳐 궁성산으로,
북서쪽은 백룡산으로, 남쪽 월출산으로 이어진다.
활성산은 영암읍 동쪽 울타리로 금정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월출산이 화강암이
드러나 거칠다면 활성산은 정반대로 바위가 드러나지 않은 무덤덤한 흙산으로 산 정상은
평탄한 면이 넓게 펼쳐져 있어 산성(山城)의 입지로 적합하다.

안부(11:18)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영암읍을 향해서 가는 송전탑이 보인다

NO195 송전탑(11:23)

범여 몰골 좀 보소...산행 초반부터 松花가루를
뒤집어 쓴 모습이 거지중에 상거지일세

317.6m봉(11:25)

지도상에는 표기조차 안되어 있는 317.6m의 무명봉에서
우측의 내리막길로 향하는데 편백나무에 걸려있는
선답자의 흔적이 보이니 맥길을 제대로 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잡목의 저항이 있기는 하지만 4월에 걸었던 장흥(사자)지맥길에
비하면 이곳은 초반이긴 해도 이 정도면 식은 죽먹기다...고개를
숙이면서 낮은 포복형태로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우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등로가 살짝 열리면서 조금전에 택시로
들머리로 향했던 영암군 금정면 연보리의 골짜기가 살짝 보인다.
연보리(連寶里)는 활성산 북쪽에 위치하며 아천천이 흐르며, 자연마을로는 다보,
보촌, 양계, 연홧등, 연산, 차내리 등이 있는데, 다보리는 연산의 서쪽에 있는 마을이며
다부냇골 또는 다포내촌이라 불렸고 보촌리는 차냇골 서북쪽에 있는 마을이며 보가
있다 하여 보촌, 봇고리라 한다... 양계리는 연봉징이 동북쪽에 있는 마을로 골짜기의
물이 마을 앞에서 합수된다 하여 양계라 하였으며, 연산리는 연봉쟁이라고도 하며
연보리에서 가장 큰 마을이고 연홧등은 양계와 다보의 사이 등성이 밑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연화(연꽃)’처럼 되었다 하여 연홧등이라 한다... 차내리는 연봉징이 남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로 찬 물이 난다 하여 냉천, 차내리라 한다

오늘 내가 가야할 백룡산이 얼굴을 내민다...서울에서 새벽에
출발하여 5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영암까지 와서 11시에 산행을
시작했으니 저 백룡산까지 갈란지 모르겠다...가는데 까지 가봐야제...

봄인데 / 윤보영
아무려면 어떤가요
봄인데
환한 꽃처럼 웃는
그대 생각 나는 봄인데.
그대 생각하면 내 안에
함께 걸을 꽃길이 생기는데.
그대 손잡고
꽃길로 걷고 있는 봄인데.
꽃길로 걸어가다
나도 꽃이 되는 봄인데.

등로에서 바라본 냉천이제(冷川二堤)의 모습

요즘 하는 일이 바빠서 선답자의 산행기를 走馬看山격으로 읽긴 했지만
지맥길 중에서 가장 착한 축에 든다는 소문이 자자해서 찾아왔건만
초반이긴 해도 등로에 들어서니 꼭 그렇지만은 않구나

지맥길이란 까칠하고 터프해야 제 맛이 나는건데
자기를 순둥이로 불러주는데 꼬라지가 난 것일까...

안부(11:29)

윗쪽으로는 나뭇가지가 베낭을 잡아 땡기고 아랫쪽은 마삭줄
줄기가 신발을 붙잡으면서 태클을 걸지만, 이 정도는 눈도
깜짝 안하고 통과하는데 안부로 내려서는 길에 붉은 병꽃이
산꾼을 반긴다

붉은 병꽃(꽃말:사랑의 고백)
인동과에 속하며 꽃피는 관목으로 이루어진 속. 학명은 Weigela subsessilis L.H.Bailey이며
병꽃나무는 낙엽활엽관목으로 한국 특산식물이며 국외반출 승인대상으로 병꽃나무라는
이름은 병모양의 꽃이 피는데서 유래됐다고 한다.
병꽃나무속에 속하는 대부분의 식물은 잎이 폭이 좁고 타원형이며, 무리 지어 피는 꽃은
길이가 3.5cm 정도이며, 폭은 좁으나 긴 씨꼬투리는 2쪽으로 벌어진다. 병꽃나무는 5월에
꽃이 피는데 처음에는 황록색으로 피지만 나중에는 붉은색으로 변한다.
병꽃나무의 꽃받침은 가운데가 나누어져 있으나, 붉은병꽃나무는 밑까지 나누어져 있어
이 2종을 구분할 수 있다.

안부로 내려서니 철책 휀스로 가려진 금정배수지가 보이는구나

금정배수지(11:36)

금정배수지 뒷쪽으로 올라서니 빽빽한 樹木들 사이로 이어져야 할
등로는 숨어버리고, 나뭇가지에 걸려있는 선답자의 흔적이 길을 안내한다

얼굴을 타격하는 나무들을 피해서 올라가는데 오늘의
복병은 단연 송화가루이다...나무가지와 부딪힐때마다
최루탄처럼 터지는 송화가루로 인해 기저환자인 범여는
참으로 고역이다...하지만 이 또한 지맥길의 통과의례인 걸...

예전에 산불이 난 지역인가 보다.
불에 탄 枯死木 사이로 비집고 나오는 토실토실한
고사리가 갈 길이 먼 산꾼의 발길을 붙잡는다

우측 사면으로 이어지는 편백나무 숲에서 뿜어대는
피톤치드 향내음을 맞으면서 올라서니 조그만 무명봉이 나온다.
* 피톤치드(Phytoncide)는 식물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내보내는 항균 기능을 하는 물질로
특정 성분을 지칭하는 말이 아닌 식물이 내뿜는 항균성의 모든 물질을 통틀어서 일컫는데
희랍어로 ‘식물의’이라는 뜻을 가진 ‘phyton’과 ‘죽이다’를 의미하는 ‘cide’의 합성어다.
20세기 중반 러시아 레닌그라드 대학(지금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의 토킨(Boris P. Tokin)
교수가 처음으로 피톤치드에 대해 설명했다... 그가 발표한 글에 따르면 피톤치드는 식물이 주변의
균에 대항하여 내보내는 휘발성 물질들이며, 숲 속에서 시원한 향을 느낄 수 있는 것은 피톤치드의
영향 때문인데, 피톤치드는 균을 억제하는 역할을 하지만 천연물질로 인체에는 이롭다.
사람이 호흡을 통해 피톤치드를 흡수하면 스트레스가 완화되고 심리적으로 안정되는 효과가 있으며
면역력과 심폐기능을 강화하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으며 폐 질환 등 호흡계 질환 치료에도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도시의 공기에 포함된 유해 물질을 중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도
피톤치드인데 편백나무, 소나무 등이 피톤치드를 많이 함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삼림욕은 식물이 무성하게 자라는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일사량이 많을 때에 하는 것이 좋다.

무명봉(11:43)

편백나무 숲을 지나 완만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오늘 산행중에 처음으로 만나는 족보있는 238.0m봉
정상에 도착한다

238.0m봉(11:48)

관리가 전혀 안되는 238.0m봉 정상 4등삼각점(△ 영암 469/?)

238.0m봉의 우측으로 내려서자마자 뚜렸한 직진의
등로를 버리고 좌측의 내리막길로 가야하는데 독도에
유의해야 할 구간이다

좌측으로 내려가라는 선답자의 흔적을 보면서 내려선 다음에.
산자분수령의 원칙에 충실하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트랙상으로는 직진으로 이어지는데...

선답자들은 우측으로 향해서 내려갔는데,
사연이 있겠지...

갑자기 나타나는 빽빽한 시누대의 대나무숲길 사이로
이어지는 좁은 등로를 따라서 급경사의 내리막길로
향한다

白晝에 뭔 짓거리여...
사랑에 미치면 나무나 인간이나 밤낮이 없는 모양이구면...

千辛萬苦끝에 시누대 숲을 통과하여 영운재로 내려서는데
조금전에 선답자들이 왜 직진이 아닌 우측으로 길을 안내했는지
알 것만 같다...낙석 방지 휀스에서 그 답을 찾는다.
지맥길은 도로를 건너서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난 좌측의 덕진면 방향으로 향한다
시누대 숲을 통과하면서 몸뚱아리는 초반부터 만신창이가 돼버렸다

영운재(如雲峙:150m:12:03)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와 금정면 연보리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영암읍에서 금정면소재지
방향으로 이어지는 819번지방도(도로명 주소:여운재로)가 통과하며, 노송리쪽에는
“언덕위의 하얀집이란 카페”와 “여운사” 란 절집이 보이고, 영암군에 설치한 여운재란
표시석도 있는데 이곳에서 바라보는 영암읍내와 월출산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지도상에는 영운재라 표기가 되어있고 표시석에는 여운재로 되어 있다
영암에서 보면 동쪽에 있는 높은 산마루로 워낙 산이 높아 구름도 쉬어간다는 여운재
남쪽으로는 둔덕치와 활성산, 북쪽으로는 형제봉과 호재가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금정면이
나주에 속해 있어 당시 여운재는 영암과 나주의 경계이자 두 지역의 소통로 역할을 했다.
여운재는 여운치(如雲峙)라고도 부르며 영원현(嶺院峴)이라는 기록도 있다고 한다.
영암군 덕진면 노송리와 금정면 연보리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로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해남을 잇는 삼남대로였고 영암과 나주의 경계부에서 두 지역의 교통로이자 소통로
역할을 해왔으며, 민족상잔의 비극이었던 6.25전쟁 당시 수많은 민간인들이 영문도
모른 채 인민군과 군인·경찰이 쏜 총에 쓰러지는 참상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다.
2016년 9월 2일 터널이 개통되어 지금은 영암풍력발전단지로 출퇴근 하는 도로로
주로 이용되는 고개이다.

『한국 지명 총람』에는 영운재를 여운치(如雲峙) 또는 영원현(嶺院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조선 시대 기록에서는 영운재를 영원치(嶺院峙) 또는 영원현으로 기록하고 있다.
『명종실록(明宗實錄)』 19권에 1555년 나주와 영암 일대에서 싸움이 있었고 치근이
영원(嶺院)에서 적을 만났다는 이야기가 나타나며 또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동쪽으로 나주목 경계에 있는 영원치에서 오는 길이 14리이다.”라고 기록되었고,
부도에는 영원현으로 표기되어 있다... 한편 『여지도서』[나주]에 역원 중 “영원은
지금 없어졌다.”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로 보아 고개에 원(院)이 있어서 ‘영원’ 지명이
유래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에 발간된 『만기요람(萬機要覽)』, 『대동지지(大東地志)』 등에서는 나주 지역의
경계에 있는 고개를 영원치로 표현하고 있고, 『청구도(靑邱圖)』에도 영원치가 표시되어 있다.
한편 1911년 조선 총독부에서 편찬한 『조선 지지 자료(朝鮮地誌資料)』에 영운치가 노송리의
마을인 노노동(老老洞) 뒤에 있는 고개로 기록되어 있어 현재와 같은 지명으로 변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언덕위의 하얀집이란 카페 주차장 옆에 쉼터 의자가 있기에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10분정도 휴식을 취하면서
쥬스 하나로 원기를 보충한다

휴식(12:05~15)
휴식을 취하면서 송화가루를 뒤집어 쓴 베낭을 정리하는데
헐~~~! 이게 뭐여...진드기 한마리가 유람중이다.
아이고 무서봐라...바로 옆에가 절집이고 다음주가 초파일인데
살생을 할 수가 없어서 풀섶으로 던져 버린다

여유로운 휴식을 취한후에 절집에서 흘러나오는
阿彌陀經 독경소리를 들으면서 다시 맥길로 향한다

영운재 좌측에 있는 아담한 절집 여운사의 모습

묘지를 지나서 대나무숲으로 들어서면서 마루금으로 향한다

편안한 오르막길로 올라가는데 등로 가운데에 뱀 한마리가
길을 막는다...하마터면 밟을뻔 했다...최근에 변덕스러 날씨 탓인지
내가 스틱을 건드려 봤는데도 미동도 하지 않다가 한참후에
대나무 숲으로 사라진다

218.4m(12:22)
영운재에서 금정면쪽의 지맥길에서
올라오는 길을 만나면서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

영운재에서 올라오는 길부터는 오랫만에 범여의 몸뚱아리가 호강을 한다.
그려...살다보면 그런 날도 있어야제...

무명봉(12:26)
이 봉우리 아래로 신 819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4차선의 여운재터널이 통과한다

무명봉에서 내려서니 좌측으로 벌목지가 나오면서
월출산과 영암읍내가 시원스레 조망이 되는구나

바로 아래에는 강진~광주간 고속도로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며
그 뒷쪽으로는 영암의 진산인 월출산이 멋진 모습으로 다가와
범여의 눈을 호강시키는구나...낭주골 처자는 어디쯤에 살고 있을까?...

등로에서 바라본 영암읍내의 모습
영암군은 동쪽은 장흥군, 서쪽은 영산강을 건너 무안군, 남쪽은 해남군·강진군, 북쪽은
나주시와 접하고 있는데, 동쪽은 호남정맥의 줄기가 이어져 내려 산지를 이루고, 서쪽은
하천 하구에 평야가 전개되어 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토로서 월나군과 아로곡현(阿老谷縣)·고미현(古彌縣)이 있으며
일본에 유학을 전수해 준 왕인(王仁)의 탄생지가 있으며, 신라의 통일 이후 경덕왕 때 영암군으로
개칭했고, 월출산은 신라의 소사(小祀)를 지내는 곳이 되었다.
왕건(王建)이 후삼국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최지몽(崔知夢)과 도선 등의 활동으로 고려초에 영암의
지위는 급속히 상승되어, 995년(성종 14)에 낭주로 승격되었고, 안남도호부(安南都護府)를 두었다.
1018년(고려 현종 9) 안남도호부가 전주로 옮겨감으로써 다시 영암군으로 복칭되었고 이 무렵의
영암은 남부의 황원군·도강군·곤미현·해남현·죽산현 등을 영속하는 호남 서남부의 행정중심지로서
존재하였다... 1172년(명종 2) 감무(監務)의 파견이 시작되는 것을 계기로 이들 군현이 독립해 대체로
현재의 지역에 상응하는 구역으로 축소되었다.
남동부에 월출산(月出山)이 천황봉(天皇峰, 809m)을 최고봉으로 구정봉(九井峰, 743m)·
사자봉(獅子峰) 등의 많은 봉우리를 만들고 기암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주위 일대에 백룡산
(白龍山, 420.8m)·국사봉(國師峰, 613m)·흑석산(黑石山, 650m)·주지봉(朱芝峰, 491m)·
도갑산(道岬山, 376m) 등이 솟아 있다.

월출산(月出山:810.7m)은 전남 영암군 영암읍과 강진군 성전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1972년 1월 29일 전라남도기념물 제3호로 지정되었으며 호남정맥 무등산 줄기에 속하고
산이 높지는 않지만 산의 몸체가 매우 크고 수려하며 1973년 3월 남서쪽으로 3.5Km 떨어진
도갑산(376m) 지역을 합하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가 1988년 6월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었다.
삼국시대에는 달이 난다 하여 월라산(月奈山)이라 하고 고려시대에는 월생산(月生山)이라
부르다가 조선시대부터 월출산이라 불러왔으며, 천황봉(天皇峯)을 주봉으로 구정봉, 사자봉,
도갑봉, 주지봉 등이 동에서 서로 하나의 작은 산맥을 형성하는데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이
많아 예로부터 영산이라 불러왔다.
동쪽으로 장흥, 서쪽으로 해남, 남쪽으로는 강진만을 가로막고 있는 완도를 비롯한 다도해를
바라보고 있고 도갑사, 무위사 등의 사찰과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144) 등을 비롯해 뾰족한
암봉과 골짜기를 따라 폭포와 유적들이 산재해 있으며 곳곳에 얽힌 수많은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신라 말기에는 99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하며 북쪽의 용추폭포, 동쪽의 구절폭포, 남쪽의 금릉경포대
등이 절경을 이루고 1978년에 천황봉으로 오르는 산 중턱에 길이 51m와 너비 0.6m의 구름다리를
놓았는데 절벽 높이가 무려 120m나 된다... 예로부터 월출산 산자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바위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경외감을 가져왔는데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영암에 관한 것이다.
월출산에는 움직이는 바위라는 뜻의 동석 3개가 있었는데 중국 사람이 이 바위들을 산 아래로
떨어뜨리자 그 가운데 하나가 스스로 올라왔다고 하는데 그 바위가 바로 영암인데 이 동석 때문에
큰 인물이 많이 난다고 하여 고을 이름도 영암(靈巖)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지맥 마루금인데도 마치 제도권 등로를 걷는 느낌이다.
이럴때는 맥꾼들이 습관처럼 나오는 버릇...트랙을 보면서
맥길을 제대로 가고 있나를 체크한다

무명봉(12:28)

오룩스맵을 확인하니 지극히 정상적으로 맥길을 걷고있다

무명봉(12:32)

고도차가 거의 없는 올망졸망한 무명봉을 지나치면서
걸어가니 235.4m봉 정상에 도착한다

235.4m봉(12:34)

계속해서 내리막으로 이어지는 지맥길

피톤치드가 가장 많이 나오는 시간대인가?
편백나무 숲을 지나는데 머리가 상쾌하다

“ 참된 스승이란 산을 닮은 사람을 말한다 ”라고 하지 않았던가...
난 오늘도 참된 스승을 찾기 위해서 천리 먼길의 남도땅으로
내려와서 산길을 헤매고 있다

예전에 엄청나게 컸던 목장 초지에는 소 대신에
바람개비(풍력발전기)가 쥔장 노릇을 하고 있고 우측의 사면에는
감나무밭, 그 아랫쪽의 연보리에는 꽤나 큰 규모의 연보저수지가 있다

독갓재(190m:12:38)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와 금정면 연보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소형 차량이 다닐 수
있을만큼의 비포장 도로가 지나가고 있고, 마치 고인돌 처럼 보이는 바위들이 보인다.
지도상에는 독갓재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영암군에서 설치한 넘어진 이정표에는
(← 영보정 1.3km, ↓여운사 1.1km, → 금정 동래가든 1.3km, ↑백룡산 2.5km)로 표기가
되어 있으나 독갓재의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다.

힘이 드나?...누워서 사람들을 안내하는 이정표.
좌측으로는 덕진면 영보리(永保里)는 청암도(靑巖道:조선 시대에 전라도 나주의
청암역(靑巖驛)을 중심으로 한 역도(驛道)] 찰방이 딸린 영보역(永保驛)이 있어서
영보역, 역촌(驛村), 역몰, 영보촌이라고 불렸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냉천(冷泉), 관곡(寬谷), 내동(內洞), 서당(書堂), 은행정(銀杏亭)을 병합하면서
영보리라 하였다고 한다.
영보리에는 조선 전기에 예문관 직제학을 지낸 최덕지(崔德之:1384~1455)가 은퇴한 뒤
영보촌에 건립한, 전라남도 기념물 제104호 영보정(永保亭)과 보물 제594호인
「최덕지 초상 및 유지 초본(崔德之肖像 및 油紙草本)」이 있다.
또한 내동 마을에 10기, 냉천동 마을에 11기 등 총 21기의 고인돌이 있으며, 1982년에
영암군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약 350년의 영보리 느티나무[보호수 15-15-2-4]가 있다.

독갓재를 가로질러 백룡산을 향해서 오르는 길에는
제도권 등로에서나 볼 수 있는 국가지점번호 이정판이 보인다

산악자전거(MTB)가 다니는지 등로는 패여있고, 그 길에 대한산경표의
저자인 “산으로” 아우님과 “독도는 우리땅님” 시그널이 땅 속에 묻혀있다.

오랫만에 착하게 살자
시그널을 정리한 다음에 다시 길을 떠난다

암봉(12:45)

국가지점번호판(國家地點番號板)이란
국토 및 국토와 인접한 바다를 10m×10m의 격자로 구획하여 그 지점마다 부여한
고유 번호를 표기한 판으로 산, 들, 바다 등 거주 지역이 아닌 곳에 설치하여 그곳에서
발생하는 응급 상황에 활용하고 있다

운동에는 한계가 있으나 산행에는 한계가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무리 힘이 들어도 산길에만 들어서면 모든 것을 내려 놓은듯
마음이 편하고, 모든걸 망각한 채 無我之境으로 걷고 있으니
말이다

등로 우측으로는 군 교통호가 나란히 등로와 같이 가고있다

국가지점번호 이정판이 있는 무명봉에서...

내리막길로 내려 가니 안부가 나오고 다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260.9m봉 정상에 도착한다

260.9m봉(12:58)

260.9m봉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과...

국가지점번호 이정판이 있는 봉우에서 내리막길로 내려간다

“산행이란 마음과 머리의 때를 씻어내는 정신의 목욕이다”라는
명언이 있듯이 1주일간의 世俗에서 찌든 때를 씻어내는데는
산만큼 좋은 곳이 어디 있으랴...아무런 생각없이 걷고 또 걷는다

안부(13:03)

백룡산으로 향하는 가풀막이 시작되는데 산악잔차를 즐기는
마니아들이 등로를 완전히 누더기로 만들어 버렸다.
당신네들이 보기에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다고 생각이 안드나요.
내 편하고, 내 즐겁자고 이렇게 산길을 누더기로 만드는 이 형태...
아둔한 범여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질 않는구나.

준.희 쌤이 아닌 동밖에님의 격려문구를 보면서 누더기길을 올라간다

바위밑에 숨어서 꽃을 피우고 있는 땡비싸리도
잔차족들이 맘에 들지 않은 모양이다.

완만한 능선으로 올라가니 국가지점번호 이정판과...

선답자의 흔적들이 잔뜩 걸려있는 형제봉 정상에
도착하는데 선답자들의 산행기에 등장하는 산패는
보이지가 않는구나

형제봉(兄弟峰:288.4m:13:10)
영암군 덕진면 운암리와 금정면 아천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도상에는 뚜렸하게 형제봉이라 표기가 되어 있지만 실제로
형제봉에 도착해보면 산봉우리라고도 할 수 없는 그저 밋밋한
안부처럼 보이며, 이곳 형제봉에 대한 자료도 찾을 길이 없어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대체적으로 전국에 수많이 있는 형제봉은
2개 봉우리가 있어서 형제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 많은데
이곳은 봉우리가 2개는 커녕 하나도 안 보이는구나

안부(13:12)

무명묘지(13:14)

조금씩 고도를 높히면서 맥길은 백룡산으로 향하고 있다

담쟁이 /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 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리지 않고
앞으로 나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꽃을 피울 준비를 하는 둥굴레와...

돌양지꽃을 보면서 오르막으로 올라서니 무명봉이 나온다

무명봉(13:25)

안부(13:27)

다시 조금씩 고도를 높히면서 올라서니 국가지점번호
다라 2973 5020 이정판이 있는 317.2m봉에 도착한다

317.2m봉(13:34)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조차 없는 그냥 무명봉이다

317.2m봉인 무명봉을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형제봉 이정표...참으로 헷갈린다.
지도상은 분명히 오봉산으로 표기가 되어 있고.
지맥 산꾼들의 산패에도 정확히 오봉산이라고 하는데
정작 가장 정확해야 할 영암군에서 설치한 이정표에는
이곳을 형제봉이라는 이정표를 세워놨다...업자에게
돈만 주고 감독을 안한 탁상행정인지는 몰라도 헷갈린다.
지금이라도 확인을 해서 잘못됐으면 시정이 되었으면 한다.
멀리서 온 산꾼들을 헷갈리지 않게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봉산(五峰山:320.5m:13:38))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와 운암리, 금정면 아천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지만
이곳 역시 조금전에 지나온 형제봉과 같이 산이라기 보다는 그냥
밋밋한 능선에 보이는 안부처럼 보이는데, 지도에서 표기된 것처럼
산패에 오봉산이라 적혀 있지만 영암군에서 설치한 이정목에는 형제봉이라
표기가 되어 있어 헷갈리고, 지명의 유래도 알 길이 없다

다만 1994년 영암 문화원에서 발행한 『영암의 전설집』에 수록되어 있는
영암군 신북면 명동리의 오봉산 벼락바위의 전설에서 오봉산은 이렇게
표기가 되어 있다.
영암의 오봉산과 백룡산(白龍山) 자락 아래에는 명동리(明洞里)라는 경관도 좋고
인심도 좋은 마을이 있었다... 그런데 오봉산에 사는 백 년 묵은 지네가 산에 나무하러 온
사람들을 물어 죽이면서부터 마을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기 시작하였고, 마을도 점차
흉흉해졌고 마을 사람들은 관아의 도움을 청하였으나 관병들도 지네를 두려워하여
누구도 지네를 잡으러 가려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관아에서는 오봉산 지네를 죽이는 사람에게는 큰 상을 내리겠다는 방을 붙였다.
전국에서 힘께나 쓰거나 칼, 창 등의 무기를 잘 쓰는 사람들이 몰려들었으나 아무도 지네를
잡지 못했고 지네가 무서운 마을 사람들은 하나 둘 마을을 뜨기 시작했다.
남아 있던 사람들은 버드나무 골 아래에다 제단을 쌓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
그러자 갑자기 하늘이 컴컴해지면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고 하늘에서 섬광이 번쩍하더니
큰 벼락이 오봉산에 떨어졌고 잠시 후 핏물이 오봉산 골짜기로 흘러 내려왔는데 마을 사람들이
가서 보니 지네가 피범벅이 되어 죽어 있고 지네가 살던 바위도 두 동강이 나 있었다.
그 이후 마을은 다시 살기 좋은 마을이 되었고, 그때 지네가 벼락을 맞은 바위는 벼락 바위,
지네의 피가 흐르던 골짜기는 벼락 냇가로 불리며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서
오봉산의 지명을 찾을수가 있다

오봉산 정상에서 내려서자마자 안부 삼거리가
나오는데 트랙상의 지도를 보니 호재이다

호재(315m:13:40)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와 덕진면 운암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아천리로
이어지는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운암리 용목골로 내려가는 길은 안전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걸로 봐서는 사람들들의 왕래가 많은 걸로 보이나, 호재라는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어서 조금은 답답하다.
영암군 덕진면에 속해있는 운암리(雲岩里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운곡(雲谷)
마을의 운(雲) 자와 선암(船岩) 마을의 암(岩) 자를 따서 운암리(雲岩里)라 하였으며
덕진면에서 가장 높은 지역에 자리하고 있고, 오봉산(五峰山) 기슭이라 항시 구름이 끼고
암석이 많아서 운암리라고 했다고도 전해지며, 선암 마을은 오봉산을 배산(背山)으로 하고,
월출산을 마주 보고 있는 마을로 조선 시대에 마을 앞 바위에 배를 맺다 하여 선암(船岩)이라 했다.

호재에서 올라서니 등로를 가운데 두고 지나가는 산꾼을 검문하듯
양쪽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바위가 있다.

동네 마실가듯 편안한 발걸음으로 걷다보니 백룡산의 전위봉인
359.4m봉이 나오는데 준.희쌤의 산패가 아닌 동밖에님의 산패이다

359.4m봉(13:49)
오룩스맵 지도에는 359.4m봉이라 표기가 되어 있지만
영진 1/50,000 지도에는 이곳이 형제봉이라 표기가 되어 있다.
정상에는 국가지점번호 다라 2965 0057 표지판이 있다

359.4m봉 정상에 있는 국가지점번호 다라 2965 0057 표지판

359.4m봉 정상에서 살포시 내려서니...

쇠재라는 고개가 나온다

쇠재(305m:13:56~14:02)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와 덕진면 운암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고개 정상에는 여러개의 쉼터용 벤취와 밀양박씨지천비가 있고 백룡산으로
오르는 길목에 있는 고개라서 그런지 등로는 아주 좋지만 이곳 역시 영암의
여 고개와 마찬가지로 쇠재에 관한 지명유래는 알 길이 없어서 답답하다

백룡산으로 오르는 등로를 바라보면서 베낭을 내려놓고
휴식을 취하려는데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편하게 휴식을 취한다

밀양박씨지천비(密陽朴氏之阡碑)

우측으로는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로 이어지는데 언제일지는 몰라도
삼포(신산경표상:옥룡)지맥을 걷기 위해서 다시한번 이곳을 와야 할 듯 싶다.
아천리(鴉川里)는 서쪽으로 낮은 산지가 있으며 아천천(鴉川川)이 흐르며
자연마을로는 동령, 백운, 안몰골, 장동, 장승배기, 식산마을 등이 있다.
동령마을은 백운의 동쪽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동령이라 하였으며, 백운마을은
본촌, 금와라고도 하고 백룡산의 밑이 되며 옛 금마면에서 으뜸가는 마을이었다.
안몰골은 색운 서북쪽 골짜기 안에 있던 마을로 생철(무쇠)을 불리는 점이 있었다 하여
생철점이라고도 하며 장동마을은 긴 골짜기 밑이 된다 하여 장동이라 하였다.
식산은 칙산이라고도 하였으며 삼박굴 동남쪽, 산 밑에 있는 마을이고 장승배기는
장이 섰었다 하여 장승배기라 한다.

백룡산 가는 길

안부(14:13)

백룡산으로 가는길에 설치된 안전로프는 망가진 채
방치되어 있고 오늘 산행중에 가장 높은 백룡산을
향하는 고도를 높히지만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그리 힘들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천천히 정상으로 향한다

정상의 좌측에는 두릅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는데,
간간히 먹기좋은 넘들이 보여서 손맛을 보면서 두릅을
조금 수확한 후에 정상으로 향한다

두릅을 조금 수확하여 능선을 올라서니 이정표와 백룡산(418.3m 표시판,
영암23 삼각점, 사각정자와 무인산불감시카메라) 이정표(↓여운사 2.3 Km,
금정과 아천 1.5 Km, ←덕진 녹차밭 1.9 Km) 등이 서 있으며 정상은 평평한
넓은 공터로 형성되어 있다

백룡산(白龍山:420.8m14:23~14:30)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와 덕진면 운암리, 신북면 명동리에 걸쳐있는 삼면 경계산으로
이정표와 정상 표지판, 사각정자와 산불감시카메라를 비롯한 여러가지 시설물들이
참으로 많고, 남쪽으로는 영암읍내와 월출산이 범여의 눈을 호강 시켜주고 우측으로는
영암(신산경표상:백룡)지맥에서 분기하는 삼포(신산경표상:옥룡)지맥의 분기하는 산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나주목(羅州牧) 금마면 터였던 지금의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백운 마을 아래에
용지(龍池)가 있었는데, 백룡산이라는 이름은 이 산 정상에 흰 구름이 자욱하게 일고,
뇌성벽력이 치면서 용지에 살던 백룡(白龍)이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백룡산은 활성산에서 형제봉을 거쳐 오르는 산으로, 북서쪽으로 영산강과 영암천 북쪽으로
등성이를 내밀고 있고, 동쪽의 금정면 아천리 골짜기는 영산강 수계의 금천(錦川)로
남동쪽의 덕진면 운암리 산기슭은 영산강 수계의 영암천이고, 북서쪽의 신북면 명동리 계곡은
영산강 수계의 삼포천의 발원지이다... 북쪽 두 갈래 능선은 북서쪽의 호산을 거쳐 나주시 반남면
자미산과 영암군 시종면 태산봉에, 북쪽의 나주시 세지면 태산을 거쳐 영산포 가야산과 서쪽의
무안군 동강면 백련산과 옥룡산에 이르는데 영진 5만지도에는 418.3m로 표기되어 있고 오룩스
맵에는 420.8m로 되어 있다.

오늘 내가 걷는 영암지맥 트랙은 분기점에서 출발하여 북쪽으로 향하다가
신산경표상의 백룡지맥의 주봉인 백룡산에서 덕진면을 가운데 두고 U자 형태로
이어가는 길인데 백룡산 아래에는 영암군 덕진면의 들녘이 퐁요하게만 느껴진다
덕진면의 지명유래
덕진면의 동쪽은 금정면, 남쪽은 영암읍, 서쪽은 도포면, 북쪽은 신북면에 접하여, 이전에는
면내 용산리, 장선리, 덕진리 일부가 영산강의 해수면에 접하였으나, 영암과 목포를 연결한
영산강 하구둑 축조로 내륙지역이 되었는데, 영암군 영암읍과 덕진면 경계에는 영암천이
흐르는데, 옛 이름은 덕진천이다... 덕진천에는 덕진교가 놓여 있었고, 덕진교의 서쪽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덕진포 포구로 덕진교는 덕진면 덕진리 교변 마을과 영암읍의 역리 마을 사이에 있어
나주에서 영암읍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나 지금이나 반드시 통과하여야 한다
덕진교의 덕진 여인 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통일 신라 때 덕진이라는 여인이 지금의 영암천변에서 주막집을 운영하였는데
당시 이 지역은 강진 등 남해안에서 서울로 올라가는 교통로 중 하나로 사람의 왕래가 많았다.
그런데 손님들은 강에 다리가 없어 건너는 데 불편을 겪었다... 특히 장마철에는 하천의 강물이
불어나 목숨마저 위협했는데 덕진은 이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다리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였다.
한 푼 두 푼 땅속 항아리에 묻기 시작하여 300냥이라는 거금이 모였다... 그러나 덕진 여인은
원인 모르는 병에 걸리어 갑자기 세상을 뜨게 되면서 소원을 이룰 수 없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영암 원님이 부임해 왔다. 첫날 밤, 원님의 꿈에 소복을 입은 부인이
나타났는데 다름 아닌 죽은 덕진 여인이었다. 덕진 여인은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고 묻어놓은 돈
삼백 냥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날이 밝자 원님은 덕진 여인이 일러준 곳을 파보니 과연 삼백냥이
발견되었고, 원님은 이 돈으로 큰 다리를 놓은 다음 덕진 여인의 이름을 따서 덕진교라 이름하였다.
그리고 덕진 여인의 업을 기리기 위하여 군민들은 속칭 덕진비를 세웠는데 덕진면의 유래가 되었다

백룡산에서 바라본 월출산
월출산에는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동석(움직이는 돌)이 세 개가 있다고 전해 오는데
그 하나는 운무봉(雲霧奉)에 나머지는 도갑과 용암 아래에 있었다 한다.
월출산에는 세개의 신령스러운 움직이는 바위가 있었는데, 그 바위는 천명을 동원해도
절벽에서 떨어뜨릴 수는 없지만, 단 한 사람이 흔들어도 곧 떨어질 것같이 흔들거렸다. 높
이는 1m 정도이고 둘레는 열 아름 쯤 되는 큰 바위인데 서쪽은 돌뼈(石骨)뿐인 산머리에
있고 동쪽은 끝없는 절벽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 동석은 그 무게로 보아 수 백인을 동원해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으나 한 사람이 흔들거나
열 사람이 흔들어 보거나 마찬가지로 움직이는데, 이 세개의 동석 때문에 영암에 큰 인물이
난다해서 이를 시기한 중국 사람이 바위 세개를 모두 떨어뜨렸는데, 그 중 하나가 다시
옛 자리에 올라와 있어 이 바위를 신령(神鈴)한 바위라고 전하고 있다.
이 동석 전설로 인해 영암(靈巖: 신령한 바위)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다.
월출산의 줄기 사이로 밤재(栗峙)·감재·도갑재(道岬峙) 등이 있어 장흥·강진·해남 등지와 연결된다.
군의 북서부로 영산강이 굽이치고, 삼포강(三浦江)·영암천(靈巖川)·도갑천(道岬川)·송계천(松溪川)
등의 작은 하천들이 북서부로 좁은 평야들을 이루어 농경지가 전개되고 저수지도 많다.

인증샷

백룡산 정상 2등삼각점( △영암 23/ 1990 재설)

인증샷

백룡산 정상에서 서북쪽으로 내려가서 언제 올지도 모를
삼포(옥룡)지맥 분기점을 확인하고는 다시 정상으로 되돌아 간다

삼포(옥룡)지맥 분기점 표지판

삼포(신산경표상:옥룡)지맥 개념도
삼포(옥룡)지맥은 백룡산(420.8m)에서 북쪽으로 갈라져 조리봉(227.7m), 오봉산(162.3m),
태산(85.4m), 두류산(106m), 고문산(103.5m), 옥룡산(132.9m)을 지나며 삼포천의
좌측(북측) 분수령이 되어 영산강 몽탄나루 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2km인 산줄기로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삼포지맥이라고 부른다

백룡산 정상으로 되돌아 와서 산불감시카메라 좌측의
서쪽으로 내려가면서 다시 영암(백룡)지맥길을 이어간다

다시 편안한 길을 따라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맥길을 향한다

안부(14:34)

국가지점번호 다라 2910 512 안내판을 지나...

넓은 공터처럼 보이는 폐헬기장으로 향한다

폐헬기장(384.4m:14:37)
넓은 공터에 잡풀만 가득한데 예전에 헬기장으로 사용한 듯이 보이며
우측으로는 영암군 신북면 명동리로 이어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인다
명동리(明洞里)는 동쪽에 백룡산[420.6m], 남쪽에 가막산[166.0m], 북쪽에
조리봉[228.0m]이 자리 잡고 있는 마을로 산자락 밑에 위치하며, 농경지가
협소하며 마을 앞에는 제방인 명동제가 있다.
자연마을로는 난두메, 덕산, 묵지동, 선인정, 옥정, 와우동 등이 있는데 난두메는 와우동
서쪽 산 밑에 있는 마을로 사방으로 가는 길목 옆이 되며 덕산은 와우동 서북쪽 산 밑에 있는
마을이며 묵지동은 옥정 남쪽에 있는 마을이고, 선인정은 선인무수형(仙人舞袖形)의 명당이
있다 하여 선인정이라 하였고 옥정은 명동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물맛이 좋고 물이 많이 나는
샘이 있다 하여 옥정(玉井)이라 하였으며, 와우동은 백등 북쪽에 있는 마을로 있으며 와우
(臥牛)처럼 생겼다 하여 와우동이라 한다.

길은 떠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돌아오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인간이 길을 만들기 이전에는 모든 공간이 길이였다.
인간은 길을 만들고, 자신이 만든 길에 길들여져 있다

폐헬기장에서 내려가는 완만한 내리막길에는 그리 위험하지 않은데도
안전로프가 처져있고 산악 잔차(MTB)가 다녔는지 등로가 패여있다

가막재(335m:14:42)
영암군 신북면 명동리와 덕진면 운암리를 이어주는 고개라는데, 지도상의
가막재와 반바지님이 표기한 가막재의 정확한 위치는 불분명하다.
이곳이 왜 가막재라 지명을 표기했는지 그 유래도 알 길이 없다.
가막이란 ‘감옥’의 방언(方言:표준어와는 다른, 어떤 지역이나 지방에서만
쓰이는 특유한 언어(사투리)인데 이곳에 감옥이 있을리는 만무한데 가막재라?...
지명의 유래를 알 길이 없어 답답하다

가막재에서 완만한 오르막길로 올라서니 나무의 높은 곳에다
맨발님께서 363.6m봉 산패를 붙혀놨는데 무심코 지나치면
놓치고 쉬운 산패이다

363.6m봉(14:46)

참으로 착하고 편하게 이어지는 지맥길...
지난주에 이곳 근처에 위치한 장흥(신산경표상:사자)지맥길의
개고생한걸 보상받는 기분이랄까...그래 이런맛도 있어야제...

옹골재(14:48)
밋밋한 등로... 안부도 아니고, 그렇다고 봉우리도 아닌곳에
영암군에서 새운 정체불명의 옹골재란 이정표...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 옹골재란 지명유래의 자료도 찾기 어렵다...영암군민만 아는 고개인가?
그렇다면 그들만의 리그란 뜻인지?...전라도 지방에서는 옹기를 옹골이라
부른다는데 이곳의 지형이 옹기처럼 생겼다는 뜻인 건 아닌지(범여의 생각 중에서)

禪師들은 묻는다
어다로 가십니까, 어디서 오십니까.
그러나 대답을 할 수 있는 자들은 흔치 않다.
때로 인간은 자신이 실종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길을 간다

348.1m봉(14:50)
지도에는 표기조차 없는 348.1m의 무명봉에서
살짝 좌측으로 휘어져서 내려가는데 나뭇가지에
신경수 쌤의 시그널이 보이는 이곳은 어느 단맥일까?

땅끝기맥에서 갈라져 나온 영암(백룡)지맥에서 갈라져 나온
호산단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지만 확신은 들지 않는다.
호산단맥이란 백룡산(白龍山:△418m:영암군 신북면 금정면 덕진면)
가막산(加幕山:363.6m) : 영암군 신북면 덕진면, 산장산 (130m:영암군 신북면)
마산(159.2m:영암군 신북면), 호산(虎山:△155.9m:영암군 신북면),
천지산 (天地山:58.3m:영암군 신북면)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말한다

잔차족들의 횡포(?)로 망가져 가는 지맥길

국립지리원의 지도 표기와는 전혀 동떠러진 이정표.
영암군에서는 이곳을 가막재란다...엄청 헷갈리네...

가막산(加幕山)갈림길(295m:14:57)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도 없고, 고도 표시도 없는 곳에 반바지님께서
가막산 갈림길이라는 코팅지가 있는데 이곳에서 우측으로 1.5km 거리의 북쪽에
가막산(加幕山:165.9m:신북면 장산리)으로 가는 능선이 분기되는 갈림길이다.
가막산·형제봉 등을 거느리고 있는 백룡산의 남쪽 계곡은 영암천의 많은
지류들이 흐르고 있어며, 취락이 형성되어 있는 곳으로 가막산도 지나온 가막재처럼
지명에 대한 유래는 찾을 길이 없다

갈림길(15:00)
가막산갈림길을 지나 뚜렸한 내리막길로 내려오다가 직진으로 이어지는
제도권 등로를 버리고 지맥길은 우측의 숲속으로 이어지는데, 이곳부터
우측은 신북면 명동리에서 장산리로 좌측은 덕진면 운암리에서 백계리로
행정구역이 바뀐다.

우측의 숲속으로 들어서니 안면이 많은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범여를 반긴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등로에는 벌목을 하고
정리가 되지 않은채로 방치되어 있는 간벌목을 피해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주변에는 지금도 벌목을 하는지
전기톱의 기계음 소리가 시끄럽게 들린다

안부(15:10)

희미한 등로는 계속되고, 빛바랜 이대장의 시그널이 선배를 반긴다.
안 본지가 10년이 넘었으니 이제는 이대장의 얼굴도 기억이 잘 나지 않는구먼...

간벌목으로 인해 어지러운 등로를 지나니...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가 보이고 간벌목의 저항을 받으면서 임도로 내려선다

장산리 임도(15:14~25)
영암군 덕진면 백계리와 신북면 장산리 경계에 있는 임도인데 벌목 트럭이
보이고, 송화가루 때문인지 목이 답답하여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 마시면서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물 한모금 마시면서 바지에 묻은 송화가루를 털어 내는데,
또 이건 뭐야...진드기 한마리가 바지 위로 유람을 하고 있다.
얼른 털어내고 베낭을 보니 2마리가 더 기어 다닌다.

지난해 화원지맥을 걸으면서 진드기가 살 속을 파고들어서
고생한 트라우마 때문에 진드기를 털어내고 서둘러 길을 나선다

선답자의 흔적을 바라보면서
간벌로 인한 지저분한 등로로 올라선다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는 우측 아래로 향하고...

임도 아랫쪽에는 간벌을 하는 벌목공들의 기계톱 소음이
계곡의 정적을 깨는 소리를 들으면서 능선으로 올라간다

208.4m봉(15:35)

지도상에 표기조차 되어있지 않은 무명봉인 208.4m봉을
지나서 조금전에 헤어진 임도와 다시 조우를 한다.

임도(15:40)
다시 만났던 임도는 산사면을 휘돌아서 장산리의
좌측 마을로 내려가는 바람에 다시 작별을 한다.
S.T콜리지란 분은 만나고, 알고, 사랑하고 그리고 이별하는 것이
모든 인간의 공통된 슬픈 이야기다 하지 않았던가...그것을
오늘 내가 걷는 산길에서 그것을 체험한다

잠깐 遭遇했던 임도와 헤어진 후 우측으로 이어지는 임도로 맥길을 이어간다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임도와 능선의 고도차가
거의 없어서 그걸 핑계 삼아서 그냥 임도로 향한다

비포장 임도가 끝나고 복숭아밭으로 향하는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다

복숭아밭 시멘트 도로에서 바라본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의 모습
장산리(長山里)는 마을이 긴 산에 둘려 쌓여 있다고 하여 산장산(山長山)이라
하였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장산리(長山里)라 했다고 한다.
대부분 낮은 산지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자연마을로는 수현, 율촌, 호암, 가막산리,
양동, 주암, 행군 등이 있는데, 수현은 지대가 낮아서 서쪽 산 너머에 있는 물이 이곳으로
넘어온다 하여 무네미라 불렸으며, 율촌은 밤나무가 많았다 하여 밤나뭇골이라 불렸다.
호암은 범바위가 있었다 하여 범바위(호암)이라 불렸고, 가막산리는 가막산(군 산천) 밑에 있는
작은 마을이라 하여 가막산리라 하였으며, 양동은 신북남 국민학교가 먼저 세워지고 1955년에
정부 보조로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되었고 학교에서 선량한 국민을 기른다는 뜻에서
양동이라 하였다... 주암은 앞에 줄바위가 있다 하여 줄바위, 주암이라 불린다. 행군은 주암 북
쪽 행군봉(도 산천) 밑에 있다 하여 행군이라 하였다.

다시 마루금에 복귀를 한다...뒤돌아 본 능선에는 송전탑이 보이고
맥길은 좌측인 서쪽으로 향하는데 오전과는 달리 등로가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등로는 희미한데 먹기 좋을만큼 자란 두릅을 따는
즐거움을 느끼면서 걸어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무명봉(15:45)

등로는 희미하나 잡목의 저항은 그리 심하지 않은데,
지맥길은 편안한 산길보다는 거친 산길이 더 애정이
가는 건, 맥산꾼들의 DNA일까?

안부(15:48)

안부에서 올라서니 갑자기 나타나는 묵밭

묵밭을 지나면서 또다시 편안한 맥길은 펼쳐지고...

넓은 묵은 임도가 나오고 룰루랄라를 외치면서 편안한
길을 걷는데, 길이 편하니까...슬슬 졸음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임도가 끝나면서 묘지가 나오고 맞은편에는 잠시후에
오를 족보있는 121.4m봉이 홀로걷는 범여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다

밭 좌측에 있는 묘지를 가로질러 고개로 내려가는데 등로 좌측으로
수현마을이 보인다... 장산리에 있는 수현마을은 지대가 낮아서 서쪽
산 너머에 있는 물이 이곳으로 넘어온다 하여 무네미라 불렸다고 한다.

고개(15:54)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 수현마을과 용계동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상수도 보호구역
입간판과, 김해김씨 세천비, 장산저수지에서 시작되는 용수로가 보이며 북측으로는
꽤나 큰 규모의 장산저수가 있다
장산저수지는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에 있는 저수지로 장산리에 있는 용계동(龍鷄洞) 마을과
산장산(山長山) 마을에서 딴 것으로, 용계동 마을은 용산 저수지 남동쪽, 무네미 동남쪽으로
백룡산 밑 골짜기에 있는 마을이고, 산장산 마을은 용산 저수지(龍山貯水池) 남서쪽에 있다.
1996년 농업용수를 공급할 목적으로 건립한 용산저수지의 수계는 영산강 삼포천이며 수혜 지역은
신북면 용산리 일원이며, 신북면 명동리 백룡산(420.8m) 북쪽의 조리봉 서측으로 타고 내린
물이 용산저수지를 거쳐서, 서촌과 용계동 사이를 지나 금박골을 거쳐 모산리 앞들에 이른다.

김해김씨지천비(金海金氏之阡碑)
조금전에 지나온 백룡산 아래의 쇠재에는 밀양박씨지천비를 만났고,
이곳에서는 김해김씨지천비를 만난다...전국의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세장비(世葬碑)라는 비는 많이 만났지만 지천(之阡)이라 표기된 비는
이곳 영암에서 처음으로 만난다...그런데 지천(之阡)이란 단어는
국어사전에는 표기조차 되어있지 않다
세장비(世葬碑)는 문중(門中:공동의 조상을 지닌 자손들로 조상의 제사를
목적으로 조직된 부계 혈연집단)의 선산(先山) 입구에 서 있는 비인데
동아 玉篇에는 묘도(墓道)라고 표기된 걸 보니 김해김씨 문중 산소로
가는 길 입구라고 해석하면 될 듯 하다

고개를 가로질러 밭 언덕으로 올라간다

묵밭을 가로 지른 다음에...

능선으로 올라서니 등로는 보이지 않고...

트랙을 보면서 121.4m봉 정상으로 향한다

121.4m봉(16:05)

121.4m봉 정상 아래에는 봉분조차 잘 안보이는
무명묘지 한 기가 있고, 서북쪽으로 이어지는
우측 등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잡목이 묵은 임도를 가로막고 있지만...

지난 겨울에 화원, 장흥(사자)지맥을 걸으면서
쌓은 내공 탓인지 이런 곳은 식은 죽 먹기다.

임도를 지나니 묘지가 나오고 트랙을 확인하니 산장산 마을이다

순천박공 묘를 내려서니...유인 도강김씨 묘지가 나온다
전국의 수많은 산에서 수도없이 많은 묘지를 만났지만
도강김씨는 처음인 듯 하다

유인 도강김씨(道康金氏) 묘(16:08)
도강 김씨(道康金氏)는 고려 왕조 때 도강(道康)이었던, 현재의 전남 강진(康津)을
관향(貫鄕)으로 삼는 한국의 성씨로 시조(始祖)인 김희조(金希祖)는 김알지(金閼智)의
34대손이며 신라 경순왕 김부(新羅 敬順王 金傅)의 7대손으로 고려 9대 왕인 명종 왕호
(明宗 王晧) 치세 시절에 병부상서(兵部尙書)를 거쳐,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역임하였으며
특히 병부상서 역임(재임)시, 장군 경대승과 함께 구국 충심(救國 忠心)의 발로로써 발호하여
1178년 당시 김희조(고려 병부상서)와 경대승(고려 장군)은 지난날 1170년 군주 의종 왕현
君主 毅宗 王晛)의 실권(實權)을 탈취하여 고려시대의 군벌 무신정권을 자행한 장군 정중부
(1178년 암살될 당시까지 8년간 고려의 국가실권자)를 오히려 역반란 정변(逆反亂 政變,
이른바 1178년 당시 고려장군 경대승의 군사 쿠테타.)으로써 제거하고 종묘사직(宗廟社稷)을
구호한 공훈으로 도성부원군(道城府院君)과 도강백(道康伯)에 봉작되고 식읍지(食邑地)로
도강현(道康縣) 현재 강진을 하사 받았다

도강김씨 묘지 아래에 있는 조림지를 지나...

밭 아래로 내려서니 시멘트로 된 마을 도로가
나오는데 이곳의 도로명 주소가 산장산길이다

산장산 도로(16:11)

맥길은 시멘트 도로 우측의 능선으로 이어지나 곧바로
내려와야 하기도 하고, 너무 늦은 시간에 산행을 시작한
탓에 그냥 편안한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빽빽한 시누대 숲 좌측 아랫쪽에 산장산 마을이 보이는데
워낙 시누대가 촘촘하게 자라고 있어서 민가들이 肉眼으로는
잘 보이나 똑닥이 카메라로 찍으니 마을이 잘 안 보인다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에 속해있는 산장산(山長山) 마을은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
지역으로 영암문화원에서 발행한 ‘영암의 땅이름’ 책자에 따르면 마을 부근에
세명당이 있어 훌륭한 세 장군이 날 지역이라는 풍수지리설로 지명이
삼장산(三將山)이었으나 현재는 마을이 긴 산에 둘려 쌓여 있다고 하여 산장산(山長山)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수현리, 신동리, 대월촌, 가막산, 서당동, 기정리,
행군동, 주암리, 호암리를 병합하여 장산리(長山里)라 해서 신북면에 편입되었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여 있어 물이 맑고 깨끗하며 마을 중심부에 우물이 있는데 일제말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 흉관에 ‘물이 좋다’라는 표시가 있어 옛날부터 물좋고 인심좋은 마을로
전해지고 있는 산장산 마을은 산으로 둘러 쌓여 있을만큼 외진 곳에 위치한 탓에 늦게까지
상수도가 들어오지 않아 예전부터 전해내려오는 마을의 우물을 이용해 밥도 짓고 빨래도
하는 등 불편을 겪어왔다... 하지만 우물이 오염된 것으로 나오면서 최근에 마을내에 상수도가
설치돼 수돗물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됐다고 한다.

비닐하우스를 지나면서 잠시 헤어졌던 마루금에 복귀하니
세갈래 길이 나오는데 카카오의 지도에는 산장산 고개라고
표기가 되어 있다

산장산 고개(16:18)

세갈래로 이어지는 길 중에서 가운데의 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완만한 오르막을 올라서니 등로 주변에는
잘 관리된 럭세리한 망자들의 천년주택들이 많이 보이고,
그 너머로는 가막산(加幕山:165.9m)이 범여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달성배공과 유인 김해김씨의 잘 관리된 묘지의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후답자들이 길을 잃을까봐 선답자들의
흔적들을 노간주 나무에 많이 걸어놨다

묘지 윗쪽에 올라서면서 맥길은 살짝 거칠어졌다가...

이내 길은 좋아진다

안부(16:23)

안부를 지나면서 등로는 오랫만에 지맥길의 野性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와중에도 먹기좋은 두릅이 많이 보이기에
꽤나 많은 두릅을 수확하면서 맥길을 이어간다

139.7m봉(16:26)

안부(16:27)

좌측 아랫쪽으로는 잘 관리된 삼나무와 편백나무
조림지를 보이고, 그 아랫쪽으로는 장산리 양동마을이 살짝 보인다.
장산리에 속해있는 양동마을은 신북남 국민학교가 먼저 세워지고
1955년에 정부 보조로 피난민들이 정착하면서 형성되었고 학교에서
선량한 국민을 기른다는 뜻에서 양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무명묘지(16:34)

편백나무와 삼나무 조림지를 지나니...

예전에 산불이 났는지 썩어 문드러진 고사목들이 많이 보인다

밋밋한 안부가 나오는데 지도상의 비석거리재이다

비석거리재(125m:16:40)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와 명동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비석이 많아서 붙은 지명인 듯 한데, 주위를 둘러봐도
비석은 전혀 보이지 않으며, 왜 비석거리재라는 유래는
알 길이 없다...오룩스맵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으나
카카오지도와 산꾼들이 이용하는 지도에는 비석거리고개라
표기되어 있으며, 등로 옆 잘 보이지 않은 곳에 붙혀논 반바지님의
비석거리재 코팅지가 있는데 무심코 지나치기 딱 좋을 듯 하다

약간 거친 등로로 올라서니 준.희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131.8m봉에 도착한다

131.8m봉(16:43)

131.8m봉을 내려서면서 산이라 그런지 갑자기 흐린 날씨에
어두워지는 듯 하니 똑닥이 카메라가 빛의 잔량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사진이 흐릿하게 흔들린 듯 보인다

떨꾹재(75m:16:50)
영암군 신북면 장산리와 이천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딸국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지명의 유래는 알 길이 없다...오늘 많은 고개를
지나면서 정확하게 지명은 명명되어 있으나 고개의 유래가 확인된 건
영운재 하나 뿐이다...영암군의 무성의가 참으로 놀랍다

좌측의 신북면 장산리 행군동 행군저수지 방향이고...

우측은 영암군 신북면 이천리 냉천저수지로 가는 길이 뚜렸하게 보인다
이천리(梨泉里) 는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병합 마을인 이목동(梨木洞)의
이(梨) 자와 천동(泉洞)의 천(泉) 자를 합하여 유래된 지명으로, 자연마을로는 구장터,
탑동, 시암골, 어랑, 통메, 호산 등이 있다... 구장터는 부선장이라는 시장이 섰었다 하여
부선장터, 구장터라 했으며 수원이라는 원집이 있었다 하여 수원이라고도 한다.
탑동은 가마정 미륵이 있었는데 망월암에서 가져갔으며 앞에 탑이 있었다 하여 탑등이라
하며, 시암골은 물이 많이 나는 시암(샘)이 있다 하여 시암골이라 한다.
어랑은 근처에 어랑유수(漁浪遊水)의 명당이 있다 하여 어랑으로 불리며 통메는 이천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통처럼 생긴 산인 통메 밑이 된다 하여 통메라 한다.
호산은 호산(군 산천) 밑이 된다 하여 호산이라 하였으며, 국가유산으로는 조선 정종 때에
세워진 망월사가 있고 망월사 내에는 전라남도 유형 문화재 제259호인 영암 망월사
석불 좌상이 있다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한다...오후 4시 10분에 영암에서 서울까지
다이렉트로 가는 버스는 애초부터 탈 생각이 없었지만, 더 늦으면
광주에서 서울가는 차편이 쉽지 않을 것 같아서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는 스틱을 접고 행군동 방향으로 내려간다

떨꾹재에서 내려서니 보리밭이 나오고 그 아래로 행군 저수지가 보이는데
행군동, 행군저수지, 행군봉 등의 지명은 1,100여년전 고려를 개국한 태조
왕건 군사들의 발자취가 스며있는 지명이라고 한다

보리밭 아래로 내려서니 현판이 없는 제각이 보이고
시멘트 도로가 나오는데 도로명 주소가 연동길 65~57이다

무명 제각을 지나서 도로를 따라서 행군저수지 방향으로 향하는데
마을 도로 우측에는 꽤나 큰 규모의 태양광 단지가 보이고
조금을 더 가니 감나무 농장이 나온다

감나무 농장(17:10~30)
농장에 도착하여 노크를 하니 농장의 여쥔장인 듯 한 여인이
나오더니 산도 없는데 어디서 왔는냐고 하길래 서울서
왔다고 하니 깜짝 놀란다...지금 서울을 가야하는데 시간이 늦어서
그러니 택시를 불러 달라고 하니 자기가 잘 아는 택시를
불러주고는 택시 올때까지 입가심을 하라고 캔으로 된
배쥬스를 하나 준다

쥔장 여주인 준 배쥬스로 입가심을 하고...

쥔장의 양해를 구하고 수도에서 깔끔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는데
영암군 신북면 택시가 도착하여 쥔장 여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영암군 신북면 버스터미널로 향하는데 10분정도 걸려서 신북터미널에
도착한다(택시비 7,000원)

신북터미널(17:40)

신북터미널 버스 시간표

신북발 → 광주행 버스표
영암군 신북면 버스터미널에 도착하니 17시 40분...18시 25분에
광주로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는 터미널 밖의 마당에서 베낭을
내려 놓으니 피곤했던 탓인지 졸음이 쏟아진다...얼마나 잤을까
매표소 쥔장인 듯한 여인이 광주가는 버스가 금방 들어올텐데
넋놓고 주무시냐고 하면서 나를 깨운다.
잠시후에 영암에서 광주로 가는 버스가 들어오고 버스를 타고
1시간 조금 지난 싯점에 광주터미널에 도착한다

광주 유스퀘어 버스터미널(19:32)

광주발 → 서울행 버스표
광주에 도착하니 오늘도 버스표들이 다 매진되었고, 21시에 출발하는
리무진 버스와, 21시 10분에 서울로 출발하는 우등버스표 뿐이다.
10분 차이인데 비싼 버스를 탈 이유가 없어서 21시 10분 버스표를
예매하고는 계속해서 버스 무인판매기를 두드리니 갑자기 20시 20분의
취소표 한장이 나온다...얼른 예매를 하고는 21시 10분표를 취소하고
50분 일찍 서울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오늘은 취소표가 나오니 참 운이 좋은 편이다.
서울에 도착하니 자정이 가까운 시간이라 아들에게 전화를
하니 터미널까지 아버지를 모시러 왔다... 아들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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