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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삼포(옥룡)지맥(진행중)

삼포(옥룡)지맥 제1구간 - 백룡산(분기점)에서 뒷골재까지

by 범여(梵如) 2026. 1. 5.

☞ 산행일시: 2025년 12월 28일

☞ 산행날씨: 흐린날씨에 생각보댜 포근한 날씨

☞ 산행거리: 도상거리 8,1km + 들머리 1.3km / 4시간 58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임도- 묘지- 진주하공&도강조씨 부부묘- 무명봉-헬기장

                    안부- 백룡산- 무명봉- 안부- 365.8m봉- 무명봉- 명동재

                    361.3m봉- 임도삼거리- 임도쉼터- 갈림길- 조리봉 갈림길

                    조리봉-다시 조리봉 갈림길- 무명봉- 안부- 무명봉- 가는재

                    오봉산- 안부- 160.4m봉- 안부- 노루목재- 118.7m봉- 104m봉

                    도로 삼거리-  성균생원정공&의인평산신씨묘- 114.1m봉- 안부

                    105.6m봉- 안부- 무명봉- 93.8m봉- 임도안부- 121.5m봉 갈림길

                    뒷골재

☞ 소  재 지: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금정면 / 나주시 세지면

 

오랫만에 남도지방의 날씨는 괜찮은듯 하나, 몸뚱아리가 따라주지 않는구나.

올해도 일찌감치 독감예방주사에나, 코로나 주시까지 맞았는데도 지독한

감기에 1주일내내 개고생을 한다...너무 힘든데다가 목에 피까지 나오니

정말 죽을 맛이다...계획했던 삼포(신산경표상:옥룡)지맥을 나서려고 했는데

솔직히 자신이 없다...하루를 쉴까도 생각을 해봤지만 12월에는 일본 골프투어에다

다른 일정으로 2번이나 빠져서 이러다가는 안 되겠다 싶어서 힘들지만 산을

걸으면 조금이나마 나을것 같아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서 호남고속 터미널로 향한다

삼포(신산경표상:옥룡)지맥은 ?

땅끝기맥 활성산(498m) 북쪽 1.3 km 지점의 418m봉에서 시작되는 영산남(백룡)지맥이

북서쪽으로 분기해서 형제봉(288.4m)을 지나 백룡산(420.8m)에서 가지를 쳐서 북쪽으로

이어진 삼포(옥룡)지맥은 조리봉(227.7m), 오봉산(162.3m), 태산(85.4m),

두류산(106m), 고문산(103.5m), 옥룡산(玉龍山:132.9m)을 지나며 삼포천의 좌측(북측) 

분수령이 되어 영산강 몽탄나루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2km인 산줄기로 수계를

기준으로 하는 대한산경표에서는 삼포지맥이라고 부른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광주행 버스표

이른 새벽에 집을 나와서 광주로 향하는 첫 버스에 오른다.

평소같으면 버스에 오르자마자 깊은 잠에 빠질 시간인데

오늘은 왠지 잠은 오질않고,몸에 식은 땀이 흐르면서 마른

기침이 계속나고 미칠것만 같다...집에서 쉴걸하는 후회도

해보지만 지금으로서는 별 방법이 없구나

 

정안 휴게소에서 버스는 잠깐 정차를 한 다음에 다시 광주로

향하는데 정읍을 지날 즈음에 도로가 미끄러운지 버스가

속도를 내지 못하고 거북이 걸음이다...그 바람에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게 광주에 도착한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08:48)

광주발 → 신북행 버스표

예정된 시간보다 20여분정도 늦게 광주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아침을 해결할 요량으로 간단한 행동식만

준비하고 왔는데 조금은 난감하다...지금 식당에 가서

아침을 먹으면 신북가는 버스시간을 놓칠수가 있어서

그냥 신북(영암군 신북면)가는 버스에 오른다

신북버스터미널(10:25)

이 버스는 여러곳을 거친 다음에 해남군 땅끝마을까지 가는

버스인데 말이 직행버스이지, 완행버스같은 느낌이다.

 

광주에서 출발한 버스는 진월동, 나주, 영산포를 거쳐서 신북터미널에

도착하니 10시 25분...곧바로 택시를 타고 오늘 산행 들머리인 영암군

신북면 명동리 저수지 윗쪽의 임도로 향한다  

임도(10:55)

묵은 임도는 백룡산을 휘감으며, 신북면 명동리와 금정면 와운리로

연결되는 이 시멘트도로는 영암군에서 1년에 한번씩 개최하는 잔차

경기용 도로라고한다

산행을 시작하다(11:02)

삼포(옥룡)지맥의 분기점인 백룡산으로 접근하는 방법은 2가지이다.

1, 영암군 신북면 명동리 옥정마을에서 올라가는 방법이 있는데,

    이곳으로 오르면 접근성은 뛰어나나 급경사라서 나같은 산꾼들은

    영암(신산경표상:백룡)지맥의 접속구간까지 한참을 버벅거려야 한다.

 

2,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아천저수지 윗쪽으로 올라가는 코스가 있는데

    이곳은 고도차가 완만하여 백룡산까지 쉽게 접근을 할 수 있으나

   신북이나 영암읍내에서 접근하려면 자동차로 한참을 돌아야 하기에

   교통비(택시비)가 많이 들어가는 단점이 있다...그러나 분기점까지의

   거리는 양쪽이 비슷하다...난 힘들지만 호주머니 사정을 감안하여

   1번을 택했다.

철계단 위로 올라서니 초반부터 빡센 오르막길이다.

거기다가 주중에 계속내린 비 탓인지 젖은 낙엽밑에는

살짝 얼어있어 생각보다 등로는 상당히 미끄럽다

묘지(11:10)

빡센 오르막을 올라서니 시누대 숲이 나오고 예전에 한자리

하셨듯한 묘지가 나오는데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한듯

봉분에는 잔디 대신에 시누대가 점령하고 있고,  문인석만

쥔장을 지키고 있구나...

 

한번 흘러가면 다시오지 못할

더없는 세월에 왜이리 아둥바둥거리는지,

아!...무상한 세월이여...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오늘 아침마저 버스 시간을

맞추려고 굶은데다가 감기 몸살로 인한 체력 저하로 초반부터 힘이

부치는구나...

가는데까지 가보고 안되면 백룡산을 지나 고도를 낮추는 곳에서

산행을 끝내려 생각하며 천천히 올라서니 또다른 묘지가 나온다

진주하공&도강조씨 부부묘(11:16)

지맥길을 드러서기도 전에 다리가 점점 무거워지는구나

무명봉(11:23)

또다시 이어지는 빡센 오르막길...숨이 끊어질듯한 통증이 수반되고

등로는 미끄럽고, 감기 몸살로 인한 컨디션은 말 그대로 최악이다.

 

아!...이러다가 감기 몸살에다 체력저하로 산에서 죽을 수 있겠다는

섬뜩함이 엄습해온다...이번주는 집에서 쉴걸하는 생각에 후회가

막심하다...오늘도 산이란 스승에게 배운다... 過猶不及이라는 뜻을...

 

*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정도가 지나침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음.

논어(論語)》 <선진편(先進篇)> 나오는 말로중용(中庸) 

  중요성을 이르는 말이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면서 거북이 걸음으로 오르다보니 8개월전에

영암(신산경표상:백룡)지맥을 걸을 때 지나갔던 헬기장에 도착한다

헬기장(11:38)

들머리에서 이곳까지 0.8km밖에 안되는 거리를 급경사의

오르막길이긴 해도 등로가 나쁜것도 아닌데도 36분이란

시간이 걸렸으니 컨디션이 최악임을 알려주는 듯 하다

영암지맥 산줄기를 따라서 분기점으로 향한다.

8개월만에 다시 찾은 산줄기는 범여를 격하게 환영하는 듯 하나

범여의 몸뚱아리가 정상이 아니다보니 모든게 귀찮기만 하니

우짜겠노...그래도 싫은 내색조차 않으니 참으로 고맙구나

백룡산이 조금씩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안부(11:41)

안부에서 오름길은 잔차족들이 다녔는지 등로는 많이 파인데다가

비온 후의 등로는 많이 젖어있어 힘들게 능선으로 올라서니

백룡산 정상에 있는 산불감시초소가 범여를 물끄러미 내려다본다

백룡산(白龍山:420.8m11:48~53)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와 덕진면 운암리, 신북면 명동리에 걸쳐있는 삼면 경계산으로

이정표와 정상 표지판, 사각정자와 산불감시카메라를 비롯한 여러가지 시설물들이

참으로 많고, 남쪽으로는 영암읍내와  월출산이 범여의 눈을 호강 시켜주고 우측으로는

영암(신산경표상:백룡)지맥에서 분기하는 삼포(신산경표상:옥룡)지맥의 분기하는 산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나주목(羅州牧) 금마면 터였던 지금의 영암군 금정면 아천리 백운 마을 아래에

용지(龍池)가 있었는데, 백룡산이라는 이름은 이 산 정상에 흰 구름이 자욱하게 일고,

뇌성벽력이 치면서 용지에 살던 백룡(白龍)이 승천했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백룡산은 활성산에서 형제봉을 거쳐 오르는 산으로, 북서쪽으로 영산강과 영암천 북쪽으로

등성이를 내밀고 있고, 동쪽의 금정면 아천리 골짜기는 영산강 수계의 금천(錦川)로

남동쪽의 덕진면 운암리 산기슭은 영산강 수계의 영암천이고, 북서쪽의 신북면 명동리 계곡은

영산강 수계의 삼포천의 발원지이다... 북쪽 두 갈래 능선은 북서쪽의 호산을 거쳐 나주시 반남면

자미산과 영암군 시종면 태산봉에, 북쪽의 나주시 세지면 태산을 거쳐 영산포 가야산과 서쪽의

무안군 동강면 백련산과 옥룡산에 이르는데  영진 5만지도에는 418.3m로 표기되어 있고 오룩스

맵에는 420.8m로 되어 있다.

백룡산 정상의 이정표

명동저수지 윗쪽의 임도에서 분기점인 백룡산 정상까지 1.3km밖에

안되는 거리에다 등로까지 아주 좋았는데 독감으로 인한 최악의

컨디션 탓인지 50분이란 시간이 소요됐다...이곳에서 그냥 주저앉아 버린다

백룡산 정상 2등삼각점( 영암 23 / 1990 재설)

그래도 맥꾼들의 시그널이 용기를 잃지 말라고 격려하는듯 하다.

나도 한때는 저 분들처럼 정말 겁없이 맥길을 걸었고 지맥길 완주까지는

9부 능선을 넘은, 지금은 왠지 자신이 없고, 野性을 잃어버린 산꾼으로

변해가는 내 자신이 서럽구나.

 

 

세계적인 禪 명상가로 알려진 베트남의 ‘틱낫한’(Thich Nhat Hanh)

스님께서는  늙음을 긍정하고, 나이 듦이 저주(咀呪)가 아닌 축복  으로 

받아들이며,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곱게 늙어갈 수 있는 

길이라고 했는데, 난 왜 이리도 맥길에 집착하는지?...나 자신도 모르겠다

백룡산정상에서 바라본 영암의 진산인 월출산(月出山)의 모습

월출산에는 예로부터 신령스러운 동석(動石:움직이는 돌)이 세 개가

있다고 전해 오는데 그 하나는 운무봉(雲霧奉)에 나머지는 도갑과

용암 아래에 있었는데, 그 바위는 천명을 동원해도 절벽에서 떨어뜨릴

수는 없지만, 단 한 사람이 흔들어도 곧 떨어질 것같이 흔들거렸다고 하며,

이는 1m 정도이고 둘레는 열 아름쯤 되는 큰 바위인데 서쪽은 돌뼈(石骨)

뿐인 산머리에 있고 동쪽은 끝없는 절벽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이 동석(動石)은 그 무게로 보아 수 백인을 동원해도 움직이지 못할 것 같으나

한 사람이 흔들거나 열 사람이 흔들어 보거나 마찬가지로 움직이는데,

이 세개의 동석 때문에 영암에 큰 인물이 난다해서 이를 시기한 중국 사람이

바위 세개를 모두 떨어뜨렸는데, 그 중 하나가 다시 옛 자리에 올라와 있어

이 바위를 신령(神鈴)한 바위라고 전하고 있다.

 

이 동석 전설로 인해 영암(靈巖: 신령한 바위)이라는 지명이 유래하였으며

월출산의 줄기 사이로 밤재(栗峙)·감재·도갑재(道岬峙) 등이 있어 장흥·강진·

해남 등지와 연결되며, 군의 북서부로 영산강이 굽이치고, 삼포강(三浦江)·

영암천(靈巖川)·도갑천(道岬川)·송계천(松溪川)등의 작은 하천들이 북서부로

좁은 평야들을 이루어 농경지가 전개되고 저수지도 많다.

겨울 산길 / 유안진

 

속세의 웃음맛과

속세의 울음맛을

영영 끊어버린

겨울나무들

 

山寺로 올라가며

염불외는 소린 듯

바람이 분다

 

뉘우친 破戒僧

뒤처져 걷는 길에

때묻은 발자욱을

따라가며 지워주는

 

눈발이 흩날린다.

풍경소리 들린다.

향 내음도 자욱하다

 

* 파계승(破戒僧)이란?

  불교의 계율을 어긴 승려를 말한다

본격적인 삼포(옥룡)지맥의 첫 발걸음을 내딛는다

백룡산 정상을 내려서면서 부터 내리막길이라 肉身은 좀 편한 듯 하나

찬 바람의 영향 탓인지 마른 기침은 계속된다...잔차족들이 다니는

곳인지 등로는 패여있고, 젖어있어 상당히 미끄럽다

무명봉(12:05)

계속되는 완만한 내리막길

안부(12:07)

컨디션 저하로 인해 여차하면 탈출을 결심하면서 걷다보니

마음이 훨씬 편안한 듯한 느낌이다...버리고 비우면 이렇게

편안걸 왜 집착을 하면서 사는 나 자신이 왜 이리 초라하고

추하게  보이는지...

편안한 도로를 따라서 내려간다

초반에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등로가 유순하고 편하니

그렇게 몸뚱아리를 괴롭히던 기침조차 잠시 멈추는구나...

365.8m봉(12:15)

가야할 길들은 초반이긴해도 뚜렸하다...백룡산에 오르면서

힘들었던 몸을 추스리면서 마음을 정리하기에는 더없이 좋다

무명봉(12:19)

명동재(明洞峙:12:22)

본래 영암군 북이종면의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선인정, 옥정,

묵지동, 와우동, 백동, 덕산, 난두리를 병합하여 명동리라 해서 신북면에 편입된

명동리와 우쪽 금정면 아천리를 이어주는 고개로서 명동리(明洞里)에는 옥정 마을과

와우동 마을 등의 자연 마을이 있고 동쪽에 백룡산(420.6m)이 남쪽에 가막산(166m)이

그리고 북쪽에 조리봉(227.7m)이 자리 잡고 있으며 산자락 밑에 위치하고 농경지가

협소한 마을이이다...명동마을 우측에 았는 고개라 명동재라 부르는 모양이다.

361.3m봉(12:25)

361.3m봉 아래에는 용도폐기된 산불감시초소가 방치되어 있다

361.3m봉 아래로 내려서니 ....

망가진 통나무이 계단이 보이나 불편하여 없는것이 더 나아 보인다 

겨울 산행이라 각오는 했지만 보이는 모든게 회색빛이다

다음사이로 살짝 얼굴을 드러내는 금정면 월평리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월평리(月坪里)라는 명칭은 월평 마을에서 유래되었으며, 마을 앞으로

금천(金川)이 흐르는데 금천 건너 삼망산에서 마을을 바라보면 넓고 비옥한

논이 무리지어 있는 때논들[群畓坪]이 금천과 어울려 월형(月形)을

이뤄 월평이라 했다고 한다.


동쪽에 있는 삼망산[320.9m]과 서쪽의 백룡산 자락의 깃대봉 사이에 위치한 마을로

중심부만이 평지로 되어 있고, 높고 낮은 산들이 마을을 감싸고 있으며, 마을 중앙을

흐르는 금천 주변으로 농경지가 형성되어 있고, 산자락에 과수원 및 밭이 형성되어 있다.

봉덕제, 금정제, 취정제 등의 작은 제방들이 월평리 곳곳에 분포해 있다

정오가 넘은 시간이라 바람은 잦아들고 기온도 아침에 비해서는

많이 올라간 느낌이라 그리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 살 것같다

갑자기 나타난 넓은 임도...

잘 관리된 넓은 임도 아래로 내려서니 이정표가 있는

사면길의 임도가 눈 앞에 나타난다.

임도삼거리(12:40)

우측으로는 영암군 금정면 와운리 화산마을로 이어지고

좌측으로는 신북면 명동리 덕산마을로 이어지는 이정표가 있다.

이 도로는 아침에 산행 들머리 철계단 아래에 있는 그 임도와

이어지는 도로인 듯 하다

임도 아래의 대나무밭을 따라서 우측의 화산마을 방향으로 향한다

임도쉼터(12:43)

임도 우측에는 잘 리된 묘지가 산을 휘감고 지나가는 임도가 지나가는

금정면 와운리(臥雲里)이다...와운리는 동쪽과 남쪽은 금정면 안노리,

서쪽은 전남 나주시 세지면 모산리, 북쪽은 나주시 세지면 성산리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

 

본래 나주군 원정면 지역이었는데, 1895년(고종 32)에 영암군에 편입되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당시 화산리, 분수리, 신기리, 양와리, 강변리, 운동리, 기동의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고, 양와리의 와(臥) 자와 운동리의 운(雲) 자를 따서 와운리라 하고 금정면에

입되었으며, 오봉산(162.3m)밑에 위치한다

와운리로 향하는 임도를 버리고 대나무 숲 사이로 이오지는 임도로 향한다

산은 말이 없지만 모듬 진리를 품고 있다.

산에 오르면 자연이 스승이 되고 나는 제자가 된다.

산은 인간없이도 온전하지만 인간은 산 없이는 공허하다

갈림길(12:48)

우측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넓은 임도를 버리고

조리봉으로 이어지는 등로를 따라서 숲속으로 향한다

소나무 숲사이로 오르는 힐링의 길...고도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몸이 맘만큼 안따라주니 힘이드는구나

조리봉 갈림길(12:57)

조리봉(227.7m:12:58)

영암군 신북면 용산리와 금정면 와운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지맥길에서 50여m 정도 벗어난 지점에 있으며, 족보있는

봉우리지만 산패는 안보이고 선답자들의 시그널만 주러주렁 달려있다.

 

조리봉이란 지명의 유래는 영암군의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데 전국에 있는

대부분의 다른 조리봉들은 조리나 국조리 모양을 닮아있어 불려졌다는

유래가 많은데 이곳도 같은 의미가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다시 조리봉 갈림길(13:00)

조리봉을 지나면서 부터 삼포지맥길은

슬슬 지맥의 本色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간간히 만나는 선답자의 흔적이 그저 고맙기만 하다

등로가 거칠어지긴 하나 등로는 비교적 뚜렸하다.

무명봉(13:05)

무명봉을 헤치고 내려서니...벌목을 하고 편백나무를 심어논 곳이 나온다

안부(13:07)

벌목지 능선으로 올라간다

오늘 산길에서 처음 만나는 일망무제... 바로 앞에는 금정면 안노리의 마을과

23번 국도가 시원스레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궁성산(弓城山:487.5m).계천산

(溪泉山:406.1m), 봉천산(335.0m), 덕룡산(德龍山:376.4m)이 병풍을 친 듯한

모습이 환상 그 자체로 땅끝기맥으로 10년전에 걸었던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저 산줄기 뒷쪽으로는 예전에 골프에 미쳐있을 때, 해마다 겨울에 골프투어로 왔던

아크로C.C가 있는 곳이다.

무명봉(13:10)

무명봉 정상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는데

이곳에도 편백나무들이 많이 심어져 있다

바로 앞에는 분수제라는 조그만 저수지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는 삼망산(三望山:304.8m)이 보이는구나...

 

이곳 금정면은 영암군의 11읍ㆍ면 중의 하나로, 동쪽은 장흥군 유치면, 남쪽은 영암읍,

서쪽은 덕진면과 신북면, 북쪽은 나주시 세지면과 봉황면 등과 접경을 이루고 있다. 

 

당시 나주군의 지역으로 사금(砂金)이 많이 나온다고 해 금마면이라 하여 남송 등 57개 마을과

나주군 원정면의 월평 등 29개 마을, 그리고 나주군 세화면 임천리 일부 지역을 병합해 조선

고종 32년(1895년)에 지방관제 개정으로 영암군에 편입됐다.

 

“금정면은 일제 강점기부터 감으로 유명했던 고장”이라며 “월출산 동북쪽 산악지대로 일교차가

커서 당도 높은 감과 배가 생산된다”라고 자랑했다... 금정면은 본디 말랑말랑하고 단맛이 뛰어난

대봉시로 이름난 고장이며 금정면에는 동활성산과 남활성산이 있는데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어느 시대에 전란이 일어나 남쪽에서 쏘는 화살이 동쪽 활성산까지 날아갔다고 한다.

동쪽은 궁성산, 남쪽은 활성산으로 부르고 있다.

벌목지에서 바라본 활성산(活城山:498m)의 모습

영암군 금정면 연소리와 영암읍 농덕리·한대리 경계에 있는 활성산(活城山:498m)은

정상에 있던 활성산성(活城山城)에서 유래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궁성산과 함께

활쏘는 훈련장으로 쓰였다고 전해지며, 토성(土城)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활성산

정상에 서면 월출산과 함께 영암 읍내를 조망할 수 있으며, ‘남궁성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산이다

활성산은 무등산에서 국사봉으로 이어지는 호남 정맥에서 남서쪽으로 갈라져 나와

월출산으로 뻗어가는 능선에 위치하며, 활성산 동쪽의 영암읍 한대리와 금정면

연소리 골짜기는 탐진강 수계의 유치천이며, 서쪽의 영암읍 농덕리와 장암리 계곡은

영산강 수계의 영암천이다... 한편 활성산의 세 갈래 능선은 북동쪽은 국사봉을 거쳐

궁성산으로, 북서쪽은 백룡산으로, 남쪽 월출산으로 이어진다.

활성산은 영암읍 동쪽 울타리로 금정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월출산이 화강암이

드러나 거칠다면 활성산은 정반대로 바위가 드러나지 않은 무덤덤한 흙산으로 산

정상은 평탄한 면이 넓게 펼쳐져 있어 산성(山城)의 입지로 적합하다.

 

정상 일대에는 660만㎡ 규모의 서광 목장이 있어며 서광 목장은 1998년 모 기업의

부도로 2004년 주인이 바뀌어 영암 목장이 되었고, 골프장으로 전환하려다 지역

주민의 반대로 빈 초원 지대로 남아 있다.

벌목지를 내려서니... 

문화류씨세장산비와 안내판이 있는 가는재에 내려선다

가는재(13:19~25)

영암군 신북면 용산리와 금정면 와운리를 연결하는 비포장 임도로

문화류씨세장산비와 안내판, 임도 양쪽으로 문중묘가 있다. 

가는재는 좁은 골짜기 위에 있는 고개 라고 해서 유래된 지명으로

이곳에는 임진왜란 당시 효자로 소문난 유공신(柳公信)

얘기가 전해져 내려오는 곳이다

와운리에 살던 효자 유공신

조선시대 선조 때 와운리에 ‘유공신(柳公信:1579~1655년)’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공신은 어렸을 때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에게 많은 칭송을 받았다... 그러던 중 그의 나이 서른 살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게 되었다.

공신은 어머니 묘 앞에 초막(草幕)을 지어 놓고 삼 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다. 공신은 시묘살이를 할

동안 '자신이 나이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기에,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시묘살이를 하지

못한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다.

 

공신은 “아버님도 마땅히 삼 년 동안 보살펴 들여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머니 삼 년 상을 마치고, 아버지 묘 앞도 초막을 짓고 다시 시묘살이를 시작하였다.

이를 바라보는 마을 주민들은 “하늘이 내린 효자야!”, “그러게 말일세, 삼 년도 어려운데 육 년

동안 부모님의 시묘살이를 하다니.”라며 공신의 효행을 높이 평가하여 만나는 사람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런데 공신이 아버지 묘 앞에서 시묘살이를 할 무렵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왜적들이 조선 전역을 다니며 만행들을 저질렀다... 그리고는 공신이 사는

와운리에도 왜적들이 들어오려 하였는데, 왜적이 마을에 들어오려 하자,

이미 왜적들이 저지른 만행들을 소문으로 들었던 마을 주민들은 무서워 떨며 앞다투어

도망가기 시작했다... “왜놈이 쳐들어왔다.”, “빨리 도망가자.”라며, 마을 주민들은

보따리를 싸서 마을 뒷산인 오봉산으로 올라갔다.

한편 그 무렵 마을에 이상한 일이 일어났는데,  왜적이 마을로 들어오려 하자

난데없이 어디선가 구름과 안개가 마을을 덮더니 앞을 보지 못할 정도까지 되었다.

구름과 안개로 마을이 뒤덮자 마을로 들어오려던 왜적들도 놀라서 마을로 들어가지

않고 발길을 돌렸고, 그러는 동안도 공신은 아버지 묘 앞에서 시묘살이를 하고 있었다.

 

왜적이 다른 곳으로 가자 마을을 뒤덮고 있던 구름과 안개가 걷히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오봉산으로 왜적을 피해 달아났던 마을 주민들도 다시 마을로 돌아왔다.

마을 주민들은“휴! 살았다. 큰일 날 뻔했어.”, “그게 다 효자 공신이 덕분일 가야.”,

“맞아, 그렇고말고.” 왜적이 간 후 마을로 내려온 주민들은 구름과 안개가 별안간

나타난 것이 ‘공신의 효심’때문이라고 칭찬하기 시작하였다.

 

마을 주민들은 공신의 효행을 대대로 전해 주기 위해 마을 이름을 ‘와운리’ 또는

‘운동’ 등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1596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에 효열각이 세워지고,

와운리에 효자비가 세워졌다고 하며, 현재의 효자비는 후손들이 1956년 세운 것으로,

1994년 와운리에서 모산리로 옮긴 것이라고 한다.

가는재 옆 문화류씨 묘지의 따뜻한 곳에서 어제 저녁부터 굶었던

탓인지 지독하게 배가 고파오지만 베낭에는 마땅히 먹을것이 없다.

육포 몇쪼가리와 두유 하나로 허기를 면하고 5분정도의 휴식을

취한 다음에 오성산을 향한 오르막으로 향한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무조건 치고 올라서니...

고사목으로 담장을 쳐놓은 대봉감나무밭으로 넘어간다

감나무밭에서 우측으로 살짝 벗어나 있는 오봉산으로 향한다

오봉산(五峰山:162.3m:13:45)

영암군 신북면 용산리와 금정면 와운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야트막한 봉우리에 대봉 감나무밭이 점령(?)하고 있는 족보있는

산이란 느낌이 무색한 산이다...정상에는 선답자의 산행기에 등장하는

준.희쌤의 산패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나무에 걸려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은 꺽어진 나무가지에 매달려 내동댕이 처져 있구나.

 

오봉산은 정확한 지명유래는 찾을 수 없지만 주위 마을 지명인 용산리에서 주변의

백룡산과 오봉산을 보면 용의 형국과 비슷하다 하여 용산리라 하였다는 유래가

보이며, 산 동쪽 아래에 있는 와운리를 가로지르며 흐르는 금천(金川)이 있다

등로 주위에 대봉시 감나무 과수원이 많이 보이는데 이곳 금정면은 대봉시 산지로

유명한 곳이란다

망가진 오봉산 정상의 모습

오봉산에서 바라본 나주시 영산포(榮山浦)의 모습

 

영산(榮山이란 지명은 원래 흑산도에 설치되었던 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고려 말엽에 일본 해적질의 노략질을 피해 흑산도

사람들이 남포강가에 피난 와서 살았기에 이곳을 흑산도 영산현의 이름을 따서

영산현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이후 영사창 앞을 흐르는 강이라 하여 영산강 또는 영강이라 부르게 되었고 영산포라는

지명은 포구의 이름으로 사용되었으나 일제 강점기인 1937년 영산면이 읍으로 승격될 때

행정지명 영산포읍으로 확정되었으며, 나주 영산포에는 목포 개항과 동시에 1900년대

초반부터 일본인들이 거주하기 시작하여 그 당시 인구의 3분의 1이 일본인이었다고 한다

안부(13:48)

오봉산에서 감나무밭으로 내려와서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다시 野性을 드러내며 지맥길의 꼬라지를 부리기 시작하는

맥길을 살살 달래가면서 조금씩 고도를 높혀간다

160.4m봉(13:54)

지도상에 정식으로 표기되지 않는 무명봉이다.

등로가 難解하다

등불을 밝혀주는 레전드의 흔적...복받을깁니다

안부(13:56)

안부를 지나면서 맥길은 좌측으로 이어진다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빛바랜 선답자의 흔적을

등불 삼아서 조심스레 맥길을 이어간다

일상이라는 굴레를 벗어나 산에 대한 그리움으로 

낯설은 남도땅을 홀로걷는 이 발걸음...참으로 좋다

날씨는 아침과는 달리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으나,

배고픈 설음은 계속되지만 특별히 해결할 방법은 없다

산은 외롭지 않다.

오히려 나를 비우게 한다.

고독이 깊을수록 마음은 투명해진다.

 

오늘도 산에 오르면서 배운다.

인생도 한걸음이라는 것을...

시누대 숲사이로 이어지는 지맥길...苦行이 시작되는 곳이다

시누대의 거센 저항을 벗어나니... 

자동차가 다니는 2차선 도로가 보이는데, 아!...살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누대숲 빠져 나오니 좌측으로 신북면 용산리 서촌마을이 보인다.

지금 내가 걷고있는 영암군이란 지자체는 마을의 지명 유래같은

것엔 관심이 없는지 여러 자료를 찾아봐도 서촌마을에 대한 기록은

찾을길이 없다.

서촌 마을 윗쪽으로는 지맥길에서 많이 벗어나 있는

고봉산(132.1m)이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다

노루목재(85m:14:12)

영암군 금정면 와운리와 신북면 용산리의 경계로 용산마을과 기동제가 있는

기동마을을 이어주는 12번군도(도로명 주소:신금로)가 지는 고개이다.

 

산행지도를 보면 이곳에서 와운리쪽으로더 내려가서 노루목재라는 표식이

보이지만, 산꾼들은 이곳을 노루목재라고 부르는데, 영암군의 어느 자료에도

노루목재에 관한 자료는 찾을 수 없지만 노룩목재의 유래는 대부분 노루와

연관된 지명으로 알려져 있는데, 즉 고개의 경사가 완만하고 마치 노루의 목처럼

길게 늘어져 있어 붙여졌거나 옛날 이 고개에서 노루를 많이 잡았다 하여 노루목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는데 이곳도 그런 연유와 비슷해서 부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지만 어디까지나 범여의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다.

도롯가 옆에 붙어있는 반바지님의 흔적...

고개에 관한 열정 정말 대단하십니다

혼자놀기

도로를 가로질러 묘지로 향하는 돌계단으로 올라간다

등로 우측에 있는 전주최공과 밀양박씨 묘지를 바라보면서 능선으로 오른다

산은 나에게 속도가 아닌 방향을 가르쳐준다.

말하지 않는 산이 나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

 

산의 높이는 말로 측정하지 않고

묵묵히 오른자만이 높이와 깊이를 안다.

잡목의 저항을 헤치고 올라선 후...족보있는 118.7m봉에 도착한다

118.7m봉(14:20)

영암군 금정면 와운리와 신북면 용산리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준희쌤의 산패와 반바지님이 코팅지에 신궁이라 적어놨고,

많은 맥꾼들의 시그널이 잔뜩 걸려 있으나 조망은 전혀없는 밋밋한 봉우리다

 

산 동남쪽으로는 와운리 신흥골이란 마을이 있다...신궁이란 지명은 카카오

지도에는 신궁이란 지명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국토지리정보원의 지도에는

아무런 표식이 없는 무명봉이다

 118.7m봉 정상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향한다

등로는 보이지 않고 잡목의 저항을 헤치고 내려선다

묘지가 나오고 잠시후에 가야할 나주힐스골프장이 시야에 들어온다

탁트인 공간을 지나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우측으로 감나무밭이 있고, 잡목의 저항이 너무 심해서...

 감나무밭으로 잠시 내려 섰다가...

다시 숲으로 들어선다

잡목의 태클이 너무 심해서 또다시 밭으로 내려선다

황토밭 너머로 흐릿하게 보이는 산이 나주시

세지면 성산리 승자산(承子山:132.6m)인 듯 하다.

밭을 지나니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좌측으로는 신북면 용산리

신흥마을로 향하는 길이고, 직진은 나주힐스C.C로 가는 길인데

많은 맥산꾼들이 골프장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 좌측의

마을 도로로 향하는데 범여는 정공법을 택하며 골프장으로 향한다

우측으로 휘어지는 시멘트도로를 버리고 직진으로 향한다

도로에서 바라본 영암군 금정면 와운리(臥雲里)의 모습

104m봉(14:42)

무명봉의 잡목을 헤치고 내려서니 나주힐스C.C 7번홀 그린이 나오고

골퍼들이 퍼팅을 시도하고 있기에 잠시 머무른다...이 골프장은

캐디가 없이 노캐디 방식으로 운영하는지 골퍼들이 직접 카트를

끌고 다니면서 라운딩을 하는터라 내가 골프장을 걷던지 말던지

관심이 없다.

 

남정네 셋과 여인 한명이 그린에서 퍼팅을 하는데 가장 먼 곳에

있는 친구가 롱퍼트를 성공하기에 나이스 퍼팅을 외쳐주니

모자를 벗고 나에게 禮를 표한다. 

카트 도로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7번홀 티박스를 지나 좌측으로 내려서니...

8번홀 그린이 나오고 이쪽 팀은 내기를 심하게 하는지

퍼팅을 아주 신중하게 하고 있다...잠깐 머물렀다가...

골프장을 빠져나와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 삼거리(14:50)

영암군 신북면 용산리와 나주시 세지면 성산리로 향하는 도로(도로명주소:신지로)로

이곳부터 우측은 나주힐스C.C를 지나면서부터 행정구역이 영암군 금정면에서

나주시 세지면으로 바뀐다...하지만 좌측은 계속해서 영암군 신북면이다.

도로 삼거리에서 골프장을 끼고 우측의 도로로 향하다가

나주시 세지면 안내판을 보면서 좌측의 시멘트 도로로

꺽어져 올라간다

묘지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로 올라가는 길

 성균생원정공&의인평산신씨묘(14:55)

 묘비에 기록된  성균생원(成均生員)은 처음보며 정작 본관(本貫)은

기록되어 있지 않아 조금은 특이하다...의인(宜人:조선 시대, 정육품과 

종육품 문무관의 아내에게 주어지던 품계)평산신씨 묘에 오른다

  

* 성균생원(成均生員)이란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하여 수학(修學)한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관습적으로 칭하는 말로 소과에 급제하여 진사나

   생원이 되면 성균관에 입학할 자격이 생겼지만, 실제로 성균관에 들어간

   사람들은 많지 않았으며, 그래서 이들과 구분하기 위하여  성균생원이라

  한것 같다.

 

  이러한 호칭은 족보나 비문(碑文)같은 사적(私的)인 문헌에서 보이며

  실록이나 방목과 같은 공식적인 자료에는 나타나지 않는데, 즉

  성균생원이란 법제에 의한 공식적인 칭호가 아니라 관습적인

  용어라 보면 될 것 같다

묘지에서 바라본 나주시 세지면(細枝面)의 모습

 세지면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31개 동리를 관할하던 지죽면과

25개 동리를 관할하던 세화면, 욱곡면의 구천리를 병합해 세화와 지죽의

머리글자를 따서 세지면으로 개칭하였다... 나주시의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성덕산(171m)이 솟은 남동부를 제외한 대부분의 지역이 완만한

구릉지를 이루고 있다.

 

영산강의 지류인 만봉천과 금천이 세지면의 중심부를 흐르고 있으며, 하천 양안에

있는 동곡리·죽동리 일대에 넓은 농경지와 취락이 분포하며, 자연환경이 깨끗하여

토하젓, 참계장 등 먹거리가 풍부한 고장이다. 기온이 온화하여 과실 작물이 생산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어 나주배는 물론 세지멜론은 전국 생산량의 60% 차지하고 있다.

또한 송제리 5층 석탑과 벽류정 등 소중한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영광-강진, 담양- 해남을 잇는 국도와 지방도가 나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묘지 뒷쪽의 시누대 숲 사이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틈이 보이는 않는다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시누대 숲을 빠져나와...

편안한 등로에 도착한다

114.1m봉(15:10)

114.1m봉에서 맥길은 좌측으로 꺽어지고, 잡목의  저항이 심하다

이름없는 묘지로 내려선 다음에 안부에 도착한다

안부(15:13)

105.6m봉(15:16)

맥길은 우측으로 향하고...

벌목을 하고 새로운 편백나무로 교체중이다

편백나무가 식재되어 있는 곳으로 내려가니

좌측으로 주차장이 보인다

안부(15:20)

안부에서 올라서니 우측에는 태양광 단지가 보이고...

태양광단지 나뭇가지 사이로 나주시 세지면 성산리의

마을들이 흐릿하게 보이는구나...오늘은 흐린 날씨라

시야가 별로 좋지가 않다

무명봉(15:23)

이곳부터 좌측은 영암군 신북면 용산리에서 모산리로 바뀐다

무명봉에서 맥길은 급하게 좌측으로 꺽어지는데

주변에는 동백꽃나무들이 많이 보인다.

93.8m봉(15:30)

4등삼각점(영암 426 / 1986 재설)

자꾸만 등로는 거칠어지면서 지맥의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임도안부(15:41)

시누대와 마삭줄의 저항을 받으면서 오르막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을 하면서 먹은게 없으니 배가 허리에

붙은 느낌이다...너무 허기가 지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구나...버벅거리면서 올라서니

편안한 길이 나온다

121.5m봉 갈림길(15:53)

이곳에서 좌측으로는 지맥길에서 살짜가 벗어나 있는

121.5m봉이 있지만 그냥 패스하고 우측으로 향한다

쉼터 의자가 보이고 베낭을 내려놓고 먹거리를 찾아보지만

마땅히 먹을게 없다...사탕 2알을 꺼내서 한 입에 넣고 길을 떠난다

이곳은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등로는 좋다.

가는데까지 가보기로 한다

조금을 더 내려가니 멋진 육각정이 있는 곳이 나타난다.

뒷골재(16:00)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구암마을에서 산정마을을 있는 고개로

정상에는 동물이동통로 위에 멋진 육각정이 있는데 지도상에는

표기되어 있지 않지만 이 지역 사람들은 구암마을 뒷쪽에 있는

고개 라고 해서 이곳을 뒷골재라 부른다고 한다.

몸뚱아리 컨디션도 최악이고 배가 너무 고파서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기로 하고 좌측의 구암마을로 내려가는데

신북면소재지가 보이고 그 뒷쪽으로 호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주린배를 부여잡고 내리막으로 향하는데 RV차량 한대가 내려온다.

손을 드니 차를 세워주길래 신북버스정류장까지 태워 달라고 하니 타라고 한다

덕분에 편하게 신북버스정류장까지 온다...복받을깁니다

신북터미널(16:15)

터미널에 도착하여 터미널 우측에 있는 중국집에 가서

짬뽕 한그릇으로 허기를 면한 다음에 터미널로 되돌아 와서

버스표를 예매하고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에

광주행 버스를 기다린다

신북발 → 광주행 버스표

배부르고 등따시니 버스를 타자마자 졸음이 쏟아진다

비몽사몽간에 잠에서 깨어나니 버스는 광주터미널에 도착한다

광주유스퀘어 버스터미널(17:55)

광주발 → 서울행 버스표

광주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출발하는

버스가 있어서 정신없이 버스에 오른다...참으로

힘들게 짧은 한구간을 끝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