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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함평(철성)지맥(終)

함평(철성)지맥 제2구간 - 24번국도에서 솔마재까지

by 범여(梵如) 2026. 3. 17.

 

 

☞ 산행일시: 2026년 03월 01일

☞ 산행날씨: 맑은 날씨...오후에 흐림...지독한 잡목의 저항

☞ 산행거리: 도상거리15.2km+들머리 0.5km / 8시간 15분 소요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코스: 송산마을 버스 정류장- 무명봉- 안부- 154.4m봉- 155.1m봉

                    갈림길- 범음사 삼거리- 갈림길- 무명봉- 암봉- 조망바위

                    임도 합류점- 안부- 철성산- 철성산성 터- 갈림길- 갈림길

                   오석고치- 무명봉- 95m봉- 안부- 안부- 갈림길- 안부- 122.2m봉

                  무명봉- 안부- 갈림길- 안부- 삵재- 갈림길- 소일치- 166.1m봉

                  무명봉- 안부- 함평나비 터널 위- 112.6m봉 갈림길- 무명봉- 안부

                  무명봉- 금적고개- 무명봉- 갈림길- 내동치- 무명봉- 130.4m봉

                  안부- 묘지- 마당실고개- 갈림길- 갈림길- 옥마산 갈림길

                  137,0m봉- 안부- 갈림길-안부- 무명봉- 갈림길- 128.8m봉

                  서당치- 무명봉- 갈림길- 파묘- 함평노공&무안박씨- 갈림길

                  호암고개(1번국도)- 호암2교- 갈림길- 80m봉- 무명봉- 안부

                  갈림길- 무명봉 갈림길- 임도삼거리- 폐헬기장- 갈림길

                  143.1m봉- 묘지봉- 안부- 무명봉- 151.8m봉- 암릉- 안부

                  113.9m봉- 안부- 묘지- 선암골 도로- 방수제 갈림길

                  갈림길-물탱크-솔마

☞ 소  재 지: 전라남도 함평군 대동면, 나산면, 학교면

 

기상청의 일기예보에 이번주 남도지맥의 날씨는 맑음이라고 나온다.

잡목들이 꼬라지를 부리기 전에 함평(신산경표상:철성)지맥을 마무리

해야겠다는 욕심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리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에

토요일 늦은 시간에 간단하게 베낭을 챙겨서 호남터미널로 향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서울발 → 광주행버스표

새벽 01시 버스를 타고 광주로 향하는데 요즘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 정신과에서 약을 처방받아 먹는 탓인지

아니면 약의 毒性이 강해서 그런지 예전에는 버스만 타면

잠에 푹 빠졌는데 요즘은 버스에서 좀처럼 잠을 이룰수가 없다.

이리저리 뒤척거리다가 광주터미널에 도착한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04:25)

광주터미널에 도착하여 늘 습관처럼 24시간 영업하는 설렁탕집에서

억지로 아침밥을 해결하고 터미널 건너편에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향한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앞 버스 정류장(04:50~05:25)

버스 정류장에 너무 일찍 온 탓인지 시간적 여유가 너무 많다.

할 일없는 사람처럼 이리 갔다 저리 갔다하는데도 왜 이리

시간이 지루한 지...지난주엔 05시 20분에 출발하던 버스가

오늘은 5분이나 늦게서야 터미널에 도착하여 함평읍내로 향한다

송산버스정류장(06:45)

비포장 도로를 달리는 달구지처럼 덜컹거리면서 달리는

버스도 시끄럽지만, 버스 기사가 틀어대는 라디오가 더 시끄럽다.

지난주와는 달리 이 버스는 해보면소재지가 있는 문장공영터미널에서

10분간이나 정차를 한다...그래봤자 손님은 커녕 개미새끼 한마리도

안 타는데... 다시 어둠속의 좁은 지방 도로를 달리다가 함평터미널

가기 직전인 24번 국도인 송산 버스정류장에 하차를 한다(요금 6.000원)

 

버스 정류장에 내리자 아직도 주위는 어둠속이다

이곳에서 헤드렌턴을 켜고 산행을 하는데 주위 사물들이

조금씩 보이면서 날이 밝아지기 시작한다.

24번 국도에서 산행을 시작하다(06:55)

송산버스 정류장에서 나산면 구산리 방향으로 도로를 따라서

약 500m 정도 걸어가서 마루금에 복귀를 하는데 지난주에

비닐하우스에서 옷을 갈아 입었던 곳이 나온다.

 

아직까지 가로등 불빛이 보이는 나산면은 8~90년대 한때 잘 나가던 자수성가형

나산그룹의 창업주 안병균 회장의 고향으로 극장식 식당인 무랑루즈, 초원의집,

홀리데이인서울을 운영하고 섬유, 유통, 건설, 방송, 금융까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했으니 과도한 부채로 인해 그룹 해체 수순을 밟았던 비운을 맞았다.

 

나 역시 나산그룹한테 간접적인 피해를 조금 본 사람이다.

그 당시 나산그룹의 임원분과 한동네에서 헬스장을 같이 다녔던

인연으로 나산이 운영했던 수서와 선릉역, 보라매 공원쪽에 있었던

스포츠센터 인테리어 공사를 부분적으로 했었는데 그룹의 해체 수순

시절에 잔금이 조금 남아 있었는데 받은 어음이 부도나는 바람에

미세한 피해를 입었는데, 지금은 기억조차도 없다

비닐하우스 뒷쪽으로 가니 마늘밭이 나오고 절개지라

길이 없다...다시 되돌아 나와서 민가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서 가는데 온동네 개쉬키들이 때창으로 소리를

질러대는 바람에 굉장히 조심스럽다...다행히 집에서

아무도 안나오고 집 뒷쪽으로 이어지는 맥길로 향한다

민가 뒷쪽으로 올라서니...

날은 완전히 밝아졌고, 부뜰이님 부부의 시그널이 범여를 반긴다

몸이 풀리기도 전에 부딪히는 급경사의 오르막길...

이런곳엔 범여의 몸뚱아리는 쥐약(?)이다

버벅거리면서 오르는데 바닥에는 군락을 이루고 있는

마삭줄이 태클을 걸어대면서 텃세를 하는데 미칠것만 같다

무명봉(07:25)

족보에도 없는 무명봉에 도착하니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범여를 응원하며 격하게 환영을 해준다...감사합니다

조금전 산행을 진행하 급경사의 오르막을 오르면서

조금 버벅거리면서 시간이 지체해서 그랬는가...일출은

벌써 中天으로 올라와 버렸다... 지난주에 이 지역을 산행

하면서 지독한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1주일내내 개고생을

했는데 오늘은 다행스럽게 미세먼지도 없고, 바람도 불지

않아서 조금은 편하게 산행을 할 듯 싶다

안부(07:27)

154.4m봉(07:30)

족보있는 154.4m봉 정상에 올라서니 이정표가 나오고

돌무더기에 사각으로 된 묘지가 있는 잘 관리된 등로가 나온다.

묘지 아래로 이어지는 월광비젼타운이 아닌 좌측의 소망봉으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제 멋대로 이름이 붙은 이정표가 있다

산패는 보이지 않고 선답자들의 흔적만이 이곳이 154.4m봉을 알려준다

저거들 맘대로 이름(?) 지어진 소망봉을 따라서 걷는데

등로는 뚜렸하나 바닥에는 마삭줄이 군락을 이루고 있고

범여가 가는 길에 도열해 있는 편백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향이 머리를 맑게 해주는구나

조금전 이정표에서  말하는 소망봉에 도착하는데

지도상에는 155.1m봉으로 족보있는 봉우리다

155.1m봉(07:37)

155.1m봉에서 내려서니 우측으로 월광기독학교 함평캠퍼스가

보이고 그 딋쪽으로는 황새봉(135.9m대동면 강운리 소재)과

나뭇가지 뒷쪽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마을이 대동면 가식골이다

갈림길(07:41)

뚜렸한 직진길을 버리고 편백나무 숲에 숨어있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을 보면서 길이 전혀없는 좌측으로 향한다

길이없는 숲을 헤치고 내려서니 우측에 묵밭이 보이고...

묵밭 뒷쪽으로 보이는 가정집처럼 보이는 건물이

지도상에는 범음사라는 절집으로 표기되어 있다

범음사로 이어지는 임도로 내려선다

임도에서 바라본 범음사쪽의 모습

범음사 삼거리(07:41)

좌측으로 내려가는 대동면 상옥리 매동으로 향하는

길을 버리고 직진의 편백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철성산 방향으로 올라간다

 

대동면 상옥리에 속해있는 매동(梅洞)마을은 100여년전 옥동마을에서

살던 파평윤씨 일부가 이쪽으로 이전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으며,

풍수지리설상  매화낙지형이라 하여  매동(梅洞)”이라 불렀으며 잣나무가

많아  “잣두마을”로 부르기도 했는데 현재는 북쪽 양지에 있는  마을을

양지뜸, 남쪽 음지에 있는 마을을 음지뜸이라고 한다.

 

* 매화낙지형(梅花落地形)이란  풍수지리설에서명당터를 이르는 말로

   매화는 향내가 사방에 퍼지므로 명성과 인망이 높은 자손들이 태어난다고 한다.

 

철성산 표지석 뒷쪽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그냥 편안한 등로를 따라서 올라간다

갈림길(07:43)

철성산으로 오르는 편안한 제도권 등로로

올라가니 마루금과 너무 멀어지는 느낌이라

우측의 능선으로 올라간다 

범음사에서 철성산으로 오르는 마루금의

주능선은 의외로 등로가 뚜렸하고 편하다 

무명봉(07:46)

철성산으로 향하는 길에 도는 조금씩 높아지기 시작하고

산행 초반에 무리하지 않고 워밍업하듯 몸을 풀면서

천천히 오르막길을 오른다...지난주에 미세먼지와 강풍만

아니였다면 좀 편하게 길을 걸을 수 있을터인데, 오늘은

날씨는 지난주와 비교도 안될만큼 좋으니 잡목의 저항이

변수일 듯 하다

철성산으로 향하는 제도권 등로라 관리는 

잘되어 있으나 암릉이 서서히 시비를 걸어오기 시작한다

암봉(07:54)

암봉에 올라서니 지난주에 짙은 미세먼지로 보지 못했던

천주봉(右)와 고산봉(左)이 시원스럽게 파노라마처럼

펼쳐지고 있는데 다만 아쉽다면 아침 햇살의 영향으로

뚜렸하지 않은 점이 아쉽다

조망바위(07:56)

조망바위에서 바라본 함평읍내의 모습

 

함평(咸平)이라는 지명은 함풍의 ‘함’ 모평의 ‘평’ 자를 따서 만들어졌으며,

조선이 개국한 지 18년이 된 1409년 태종은 고려의 구습을 혁파하고 나라의

면모를 일신하고자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에 착수한다.

 

이때 영광군 령이었던 함풍현(咸豐縣)과 모평현(牟平縣)을 통합하고 영광군

속현이었던 해제현(海際縣)과 임치현(臨淄縣) 그리고 나주군 소속이었던

영풍향(永豐鄕), 다경부곡(多慶部曲)을 병합하여함평현(咸平縣)으로 재편했다.

동시에 종6품의 현감을 임명해 국왕이 직접 통치하는 현령관급(懸鈴官級)으로

승격시켰다... 그리고 505년 후인 1914년 현의 명칭이 군으로 바뀌면서 함평군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함평천지란 지명은 호남의 50여 개 고을을 엮어 노래한 ‘호남가(湖南歌)’의 시작

대목에 함평천지가 처음으로 등장하는데 호남가는 조선시대 문인인 이서구

(李書九, 1754~1825년)가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민중들의 노래로 불리어

오다가 한말과 일제치하에는 고향을 그리는 노래로 애창되어 왔다고 한다.

 * 호남가는 “함평천지 늙은 몸이 광주 고향을 보려하고, 제주 어선을 빌려 타고

  해남으로 건너갈 제~”로 시작하는데, 그 의미는 “모두가 함께 어울려서 평화(咸平)롭게

  살아가는 좋은 세상(天地)에 최고 어른(늙은 몸이)이 광명한 고향(光州)을 보려하고 온

  백성을 구제(濟州)하는 큰 배(漁船)를 빌려 타고 남쪽지방(海南)으로 건너갈 제~”로

  풀이할 수 있다.

 

  마을 이름을 엮어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 낸 노래이고, 일종의 언어유희라 할 수도 있다.

  여기서 함평천지의 뜻을 알 수 있는데, 함평천지는 “모두가 함께 어울려서 평화롭게

  살아가는 좋은 세상”이라는 뜻이다.

임도 합류점(07:57)

조금전 범음사 앞에서 시작된 제도권 등로를 이곳에서

합류하여 본격적인 철성산으로 오르는 길로 향한다

안부(07:59)

철성산으로 향하는 통나무 계단이 시작되고 오늘 산행중에

유일하게 지명을 가진 산이며, 신산경표상의 母山으로

여기는 산 오름길 좌측에는 잘 관리된 묘지가 보인다

가파른 오르막길로 올라서니 돌탑과

팔각정이 있는 철성산 정상에 올라선다

철성산 정상에 올라서니 정성스레 쌓은 돌탑 4개와 팔각정과

이정표, 준.희쌤의 산패와 선답자들의 시그널들이 산꾼을 반긴다

철성산(鐵城山:266.5m:08:10~12)

전남 함평군 대동면 월성리와 상옥리, 금곡리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정성스레 쌓은 돌탑 4개가 있고, 통나무의자와 팔각정이 있는 쉼터로

이정표(나막마을 1km)가 서 있다.

 

철성으 쌓았던 성터라서 철성산이라 이름 붙여진 이 산은 천주봉 혈맥이 뻗어내려

이룬 산으로, 산은 낮으나 기암괴석이 많아 아름다운 경관을 보여주며 고막원천과

평야지대에 우뚝 솟은 산으로 웅장하며 운치를 더해준다.

 

철성산 주변은 대체로 산악 지형을 이루고 있는데, 동쪽만은 나산천과 고막천이 흐르고

있어 이 하천 주변에는 계곡 평야가 형성돼 있으며 산 위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제단과

백제 때 쌓았다고 전해오는 500여m의 테뫼식 석성이 있다... 또 철성산성 북쪽에서는

월야면 월악리에 소재하고 있는 태청(대한산경표상:고막원)지맥의 월악산성이 잘 조망된다.

이 철성산성과 월악산성은 산성이 입지한 지형뿐만 아니라 축성법에 있어서도 서로

공통점을 지니고 있는데『함평군지』에 "철성산이 학교면에 있으며, 승두봉의 맥이

이어져 높게 솟고, 위에 성곽이 있고, 남쪽에 석수굴(石水庵)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옥리 쪽 중봉에 석수암(石水庵)이란 이름은 석벽 사이로 물방울이 떨어지는데

장마나 가뭄 때 한결같이 방울방울 떨어지는 기이함을 보여 주는 돌샘이 있다 하여

석수암이라 하였으며 약수는 영험이 있다 하여 병자들이 찾아와서 병을 다스렸다는

기록이 있다.

인증샷

철성산 정상을 走馬看山으로 둘러보고 등산로

입구 방향으로 맥길을 찾아서 내려간다

선답자들의 외호를 받아서 내려가는데 돌담이 보인다

이곳이 지도상에 표기가 된 철성산성인 모양이다.

철성산성 터(鐵城山城:08:14)

함평군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속하여 굴내현(屈乃縣)과

다지현(多只縣)이 설치되었으며, 삼국통일 후 경덕왕 때에

굴내현은 함풍현(咸豊縣)으로, 다지현은 다기현(多岐縣)으로

각각 개칭되어 모두 무안군에 속하였다.

 

이 시기의 유적으로는 대동면에 철성산성(鐵城山城)터가

남아 있는데, 고려 태조 왕건이 나주에 주둔하면서 파군교

(破軍橋)에서 후백제군을 격파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고려와 후백제 사이의 중요한 격전지였음을

알 수 있다.

함평군 대동면 월송리에 위치한 철성산성 일대는 본래 무안현 금동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행정 개편으로 함평군 학교면으로 이관되었고,

다시 1973년 행정 개편으로 인하여 지금의 대동면 지역으로 편입 되었다.

 

그런 연유인지는 몰라도 철성산성에 관한 기록은 무안현 지리지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대동지지’무안현 성지조에는 “성은 동쪽 30리에 있다”고

기록돼 성(城)의 존재와 치소와의 거리만이 언급돼 있다.

 

이 기록은 여타의 읍지류에서도 마찬가지 실정이나 다만 일제시대 조사기록인

‘조선 보물고적 조사자료’에는 학교면 동암리에 소재하는 성으로 보고되어

있으며 “둘레 300간(540m)의 석축으로 높이 1간(1.8m), 폭 4간(7.2m)이며,

곳곳이 붕괴되었다”고 조사돼 있다.

 

철성산성의 축조와 폐성 연대에 대해서는 기록뿐만 아니라, 수습 유물 또한 없어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주변에 분포하고 있는 고분군으로 미루어 보아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며, 성내 면적이 좁아 삼국시대 이후에는 성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것으로 추측된다.

 

산성이 축조되어 있는 해발 220m의 철성산 서쪽 봉우리의 산세는 대체로 북쪽과

동쪽이 높고, 서쪽과 남쪽이 낮은 북고남저형(北高南底型)으로, 남쪽의 남악 마을

쪽으로는 계곡 지형을 이루고 있다

등로 좌측의 나무가지 사이로 골프장이 보이는데

트랙상의 지도에는 나타나지 않아서 골프장 이름을 

모르겠다

갈림길(08:17)

철성산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좌측으로 가버리고

직진의 금곡리 마을로 향하는 임도를 따라서

맥길을 이어간다

레전드님의 흔적이 보이면서 등로는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한다

갈림길(08:20)

직진으로 이어지는 대동면 월송리 동암마을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를 버리고 등로가 전혀 보이지 않은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가는데 본격적인 함평지맥의 악명이 시작될려나?...

등로는 보이지 않으나 선답자들의 흔적을 따라서 조심스레 내려간다

없는 길을 찾아서 한참을 버벅거리다가... 

텃밭과 민가 사이로 내려서니...

도로명 주소가 대동길인 2차선 도로인 오석고치에 도착하는데 북측으로는

좌측의 배르힐C.C 들어가는 도로 건너편으로는 천지영농조합법인이라는

건물이 보이고 그 뒷쪽에 보이는 동네가 동암(東巖)마을이다

 

철성산 아래에 있는 (東巖)마을은 마을 주위에 크고 작은 고인돌이 있어

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집단으로 거주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550여 년 전 평택 임씨와 고씨가 터를 잡고 살다가 그 후 낙안오씨

오철검(吳哲檢 1479년생)이 평택임씨의 사위가 되어 남평에서 들어와

성촌하였으며 마을 앞에 있는 고목나무도 그때 심었다고 전한다.

 

맨 처음 임씨와 고씨가 입주했을 때는 성암(聖岩 1789년 호구 총수 지명)이라

부르다가 그 후 낙안오씨가 성세하면서 입향조인 오철검(吳哲檢)의 호를 따

마을 이름을 동암(東岩)이라 불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오석고치(五石高峙:65m:08:30)

함평군 대동면 월송리 동암마을과 금곡리 남악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2차선 도로(도로명 주소:대동로)가 지나가며 월송리고개라고도 부른다.

 

지명의 유래는 높은 고개에 5개의 바위가 있었다고 해서 붙혀진 지명이라고 하며

고개에는 함평에서 최대인 27홀 규모의 베르힐C.C. 입구가 있으나 내가 트랙을

다운 받아서 다니고 있는 오룩스맵 지도에는 골프장 표기가 없다

오석고치에 자리잡고 있는 베르힐C.C. 입구의 모습

베르힐C.C는 27홀 규모의 회원제 골프장으로 48만평 규모로

레이크, 스카이, 배르힐 코스로 운영되고 있다고 하는데

난 이곳에서 라운딩 해보지는 못했다.

도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서니...

반바지님께서 전봇대에다 오석고치라는 표식을 해놨고...

절개지로 치고 오르는데 오늘 산행이 힘듬을 예고하는 기분이 든다

시누대가 등로를 꽉막고 있어서 잔뜩 겁을 먹었는데

다행히 우측으로 공간이 보이기에 살짝 비켜서 걸어간다

산에 들어서면 참으로 삶의 지혜를 많이 배우는 듯 하다.

쉬우면 쉬운대로, 힘들면 힘든대로 살아가라는 喜怒哀樂의 의미를...

그래서 산은 인간들의 스승인 모양이다

시누대 밭을 헤쳐 나가니 앙증맞은

바위가 있는 무명봉이 나온다

무명봉(08:38)

걸을 수만 있다면

설 수만 있다면

들을 수만 있다면

말할 수만 있다면

볼 수만 있다면

살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언더우드 박사의 낙서장에

적혀있는 기도문 中에서 

95m봉(08:41)

오석고치에서 잡목의 강력한 저항을 헤치고

올라서니 무명봉이 나오고 이곳에서 지맥길은

우측으로 꺽어져서 내려간다

길이 전혀 안 보이는 곳으로 내려 가다가

좌측을 보니 임도가 보이기에 임도로 내려선다

안부(08:43)

등로에서 바라본 대동면 금곡리 나막(羅幕)마을의 모습

나막(羅幕) 마을 바로 앞 도로변에 27기의 고인돌이 있고 마을 서쪽

200m 지점의 동암으로 통하는 도로 고갯마루에 백제 돌널무덤 2기가

있는 등 주위의 문화유적으로 미루어 볼 때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유서 깊은 마을이다.

 

이 마을에 후손이 살고 있는 성씨로 함평 노씨가 맨 먼저 입촌했고 14대째

생활의 안주처로 삼고 있으며 다음으로는 광산김씨로 역시 14대째 내려오고

있는데 광산김씨 입향조는 병조좌랑을 지낸 학교면 월산리 입향조 자보(自普)의

현손(玄孫)인 선(銑. 1562~1633)이며 임진란 전에 입촌했다. 마을을 안고 있는

뒷산 철성산(鐵城山)의 암벽이 비단 병풍을 연상하게 한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나막(羅幕 1789년 호구총수 지명도에도 동일하게 표기)이라고 했다 하는데

한일 합방 후 일인들이 남악(南岳 912 행정구역 개편 지명)이라 표기하였으나

지금은 옛 표기 "羅幕"으로 쓰고 있다.

 

나막이란 지명은 철성산성과 관계가 있을 것 같으나 제시할 수 있는 정확한 자료가

아직 없으며 나막의 동남쪽 1.5km 지점에 같은 금곡리에 속하는 마을으로

동막동(東幕洞 1789년 호구총수 지명)마을이 있고, 철성산성 동쪽에 있는 막사여서

"東幕"이라고 했다면 "羅幕" 또한 철성산성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군내 지명으로 "幕"자가 붙어있는 곳은 대굴포 전라수영터의 동쪽에 "東幕"

금성산성의 북동편에 역시 "東幕" 철성산성의 남동에 "東幕" 그리고 이 마을

"羅幕"이란 지명이 있다.

우측으로 베르힐 필드가 있는지 라운딩하는 골프들의

웃음소리가 들리지만 나무에 가려져 필드는 보이지 않는다

안부(08:46)

임도에 OB난 골프공 하나가 보이는데 조금전에 OB를 낸 볼인지

아직도 볼이 따끈따끈하다...안 그래도 3월에 라운딩을 3번이나

나가야 하는데, 지난해 12월에 후쿠시마 2박3일 갔다온 이후로

골프채가 어디 있는지도 모르니 처음부터 새로운 볼을 칠 수 없으니

잃어버려도 부담이 없는 로스트볼로 쳐야하니 잘 됐다

이 임도는 아마도 골프장 소유인 듯 하다

갈림길(08:48)

직진을 하면 클럽하우스가 있는 베르힐 코스로 향하는 길이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골프장 사이로 이어지는 맥길을 이어간다

갈림길을 지나서 능선으로 올라서니 좌측으로는 베르힐 코스...

우측으로는 함평읍내가 보이는 스카이코스가 펼쳐지며

그 사이의 완충지역으로 지맥 마루금이 이어지는데

골프장 社主가 지맥꾼인지, 아니면 골프장 설계자가

지맥꾼인지는 몰라도 지맥꾼들의 배려는 너무 완벽하다

안부(08:50)

지맥길을 걸으면서 수도없이 골프장을 지나갔고, 가다가

싸움도 많이했고, 수도없이 쫒겨나기도 했는데, 이 골프장은

아무런  trouble없이 지나갈 수 있으니, 맥산꾼들의 입장에서

보면 최상의 골프장 설계이다...언제가 한번 이곳으로 라운딩을

한번 와봐야겠다

잡목의 강력한 태클에 숨도 돌릴 겸 뒤돌아 보니

지나온 철성산이 범여가 잘 지나가나 걱정이 되는지

물끄러미 범여를 내려다 본다

122.2m봉(08:57)

122.2m봉 우측 아래로 보이는 골프장에는 라운딩하는

골프들의 웃음소리가 요란하다...아!...그렇지 내일이

월요이긴 하지만 대체 공휴일이라 수도권에서 내려온

골프들이 많은 모양이다...오늘같은 날 라운딩하기는

최상의 날씨이다... 나도 연습이라도 좀 해야 올해는 호구가

안될텐데...맨날 산에만 돌아다니니 개나 소나 다 덤벼되는

호구가 된지는 오래된 듯 하다.

맥길은 동남쪽으로 이어지고...

이곳은 날씨 탓인지 벌써부터 잡가시들이 푸른입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무명봉(08:57)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으로 부서지지 않음을 뜻한다.


법정스님의 홀로사는 즐거움 中에서 

등로과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하지만 아직은 걸을만하다

안부(09:00)

베르힐 골프장의 규모가 엄청나게 큰 모양이다

아직까지 나뭇가지 사이로 골프장이 보이는데

내가 회원권을 가지고 있는 여주의 모 골프장도

27홀짜리인데 이렇게 큰 거 같지는 않던데...

희미하게 맥길이 보이고 등로는 험하지 않으나

땅바닥에 누워서 군락을 이루고 있는 마삭줄이

텃세를 하느라 시비를 걸어댄다

갈림길(09:05)

안부(09:07)

다시 등로는 좋아지고...

묵은 임도로 내려서니...

등로 좌측으로 베르힐코스 8번홀이

보이고 이내 삵재로 내려선다

옴팍파인 삵재로 내려서니 좌측으로는 대동면

금곡리 마을이 나뭇가지 사이로 보인다.

 

금곡 마을 뒷산의 명칭이 금곡산(金谷山)이며 산 아래 서쪽 마을을 금적골

(金積洞 1789년 호구총수 지명), 동쪽마을을 동막동(東幕洞 1789년 호구 총수 지명)

이라 부르다가 금적골(金迪洞 1912년 행정구역 개편명)과 금곡(金谷 1912지명)으로

나누어졌으며 1914년에는 금곡을 월곡으로 바꾸었고 그 후 금적골과 월곡을 합해

금곡(金谷)이라 불러오고 있다.

 

이 마을은 지명 그대로 금이 많이 나오는 곳으로 해방 전까지만 해도 금을 캐는

광산이 여럿이었고 금곡리 430번지 일대가 금을 정선하던 곳이었다.

 

나막 마을 바로 앞 도로변에 27기의 고인돌이 있고 마을 서쪽 200m 지점의 동암으로

통하는 도로 고갯마루에 백제 돌널무덤 2기가 있는 등 주위의 문화유적으로 미루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살았을 유서 깊은 마을이다.

삵재(75m:09:12)

함평군 대동면 금곡리와 백호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좌측은

금곡마을로 내려가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나, 우측은 베르힐

골프장 8홀이 있지만 맥길을 걷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는 곳이다.

 

 지명의 유래는 삵이 많이 출몰하여 삵고개라고 했다는데 삵은

살쾡이라고도 부르는 고양이과 멸종위기종 동물로 옛날에는

스라소니와 함께 동네 어귀에 많이 살았다는 짐승이다.

뫳돼지 쉬키의 체력 단련장도 지난다

지난주는 날씨 때문에 개고생할 걸 생각하면

오늘은 그저 고맙고 고마울 뿐이다...丙午年이

시작된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3월로 접어

드는구나...가는 세월을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정녕 없단 말인가?...

갈림길(09:17)

오석고치에서 시작한 베르힐 골프장은 여기서 완전히 벗어난다

산꾼을 정말 배려해주신 골프장 社主에게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금곡리 남악마로 내려가는 뚜렸한 임도를 버리고

조금은 까탈스러운 오르막길을 오르는데

이곳 역시 마삭줄의 줄기가 태클을 걸어대면서

갈 길을 붙잡는다...나 좀 나줘라...갈 길이 멀다

힘들게 능선을 치고 오르니 지도상에

소일치(消日峙)라는 봉우리에 오른다  

소일치(消日峙:09:23)

함평군 대동면 백호리와 금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이곳은

그 흔한 선답자의 시그널 하나도 걸려있지 않고, 잡목과 잘 생긴

소나무 몇그루가 정상을 지키고 있다

 

지명의 유래를 뜻 글자인 한자로 풀이한다면 동서가 트여

한 장소에서  일출과 석양을 볼 수 있는 장소 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는데 함평군의 어느 자료에도 소일치에 기록이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

소일치를 살짝 벗어난 지점에 선답자들은 이곳을

소일치라고 생각했는지 시그널들이 몇개가 보이는구나

3월의 나무들 / 정연복

 

한창 기승을 부리는

꽃샘추위 앞에

 

오늘도 나무들은

죽은 듯이 가만있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빈가지마다

 

물이 오르고

꽃망울 맺히면서도.

 

출산을 코앞에 둔

산모처럼

 

곧 태어날 새봄을 위해

몸조심한다.

166.1m봉(09:30)

비교적 뚜렸한 길을 따라서 맥길을 이어가는데

아직까지는 선답자들께서 그토록 겁을 주던 산길은

아니지만 산길이란 언제 변덕을 부리면서 꼬라지를

부릴지 모르니 有備無患의 자세로 잔뜩 긴장하며 걷는다

무명봉(09:33)

안부(09:35)

함평나비 터널 위(09:38)

함평군 대동면 백호리와 금곡리의 경계인데 이곳부터 서남쪽으로는

학교면 복천리가 꼽사리를 끼니 2면 3리가 만나는 지점으로 이곳

아래로 무안에서 광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 (12번 국도)가 지나

가는데 산윗쪽 까지 차량소리가 시끄럽다

터널 위에서 지맥길은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지는데 터널의

길이가 꽤나 긴 지 트랙을 확인하니 계속 함평나비터널

윗쪽을 걸어가는 셈이다

112.6m봉 갈림길(09:41)

안부 좌측으로는 뚜렸한 사면길이 보이나 트랙을 확인하니

마루금은 직진의 오르막으로 이어진다...당연히 오르막으로

향한다

무명봉(09:43)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등로는 뚜렸하다

안부(09:45)

안부에서 올라서니 氣가 찬다

말라 비틀어진 칡넝쿨 사이로 가시나무들을 발톱을 숨기고 있다

저 위에 보이는 봉우리가 지맥길에서 살짝 벗어난 112.6m봉인데

도저히 올라갈 틈이 보이지 않는다...지맥길에  벗어난 봉우리라

핑계삼아 오르는 걸 포기하고 좌측으로 향한다

좌측으로 이어지는 지맥길...이곳도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다

조금전 안부에서 사면길로 이어지는 편안한 길의 의미를 알겠다.

하지만 거기까지 되돌아 가기엔 너무 많이 왔다.

한꼬라지 하는  범여가 돌아갈리는 만무하고 베낭에서 

전지가위를 꺼내어 칡넝쿨과 아카시아, 가시나무를

하나씩 제압(?) 하며, 천천히 맥길을 빠져 나간다

20여m를 빠져나오는데 15분이란 시간이 걸렸다

뭔 지랄인지?...자켓도 찢어지고 앏은 장갑을 낀

손등에는 鮮血이 낭자하다 

지독한 잡목지대를 빠져나와 내려서니...

조금전 안부에서 이어지는 등로를 만나는데 사서 개고생을 한 셈이다

무명봉(10:15)

힘들게 내려서니 차량통행이 거의 없는 아스팔트 도로로 내려선다

도로에서 바라본 함평군 학교면 복천리 금적마을의 모습

 금적고개(75m:10:18)

함평군 대동면 백호리와 금곡리 금적동를 있는 고개로 

학교면 복천리에서 대동면 백호리를 거쳐서 함평읍내로

가는 길인데 바로옆을 지나가는 무안~광주를 잇는 고속도로의

영향인지 도로의 역할을 잃어 버린지 오래된 듯 하고, 길가에는

망가진 볏집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는데 지명의 유래은 고개 동쪽

아래에 있는 금적마을애서 떠온 듯 하다.

 

 

도로를 가로질러 절개지로 오르는데 기럭지가 짧은

범여는 키작은 비애를 뼈저리게 느끼며 능선으로 올라간다

함몰지역을 지나 무명봉에 도착한다

무명봉(10:25)

조금전의 개고생을 보상받는 느낌이다...무명봉에서 우측으로 향한다

등로 죄측의 나뭇가지 사이로 시야가 열면서 바로 아래에는

내동마을이 보이고 들녘 너머로는 고막원천(신산경표상:태청)지맥

능선이 영산강으로 흐르는 모습이 흐릿하게 보인다

편백나무와 동백이 혼제되어 군락을 이루고 있는

뚜렸한 임도를 따라서 완만한 오름길로 향한다

갈림길(10:32)

펑퍼짐한 능선에 올라선 다음에 뚜렸한 직진 등로를

버리고 좌측으로 급하게 꺽어지는데 독도에 주의해야

할 구간인 듯 하다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서니 선답자의 보이니

그리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내리막으로 향한다

시누대를 헤치고 내려서니...

나뭇가지 사이로 도로가 보이면서 내동치로 내려선다

내동치(內洞峙:10:39)

함평군 대동면 백호리와 학교면 복천리 내동마을로 이어지는 고개로

좌측 아랫쪽으로는 내동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고 우측의 고개 정상에는

멋진 기와로 된 담장이 보이는데 경주이씨세장산이 있는 제실이란다

 

함평군 학교면 복천리에 있는 내동마을은 지금으로부터 500여 년 전 무안박씨가

복암산 줄기를 따라 지형을 살펴보다가 그곳이 산으로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고

남향이므로 사람이 살기에 적당하다고 판단하여 살기 시작한 후 무안박씨촌이 되어 있다.

내동(內洞)이란 지명은 글자 그대로 안쪽에 깊숙이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내동(內洞)"이라고 하였다 한다.

경주이씨 세장산이 있는 제실 앞에 가기 직전에  좌측 절개지로 올라선다

굼뱅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했던가...

느림보 범여는 남들이 한방에 끝내는 지맥길을

2~3번 가기는 하지만 매주 가다시피하니

이제 지맥의 끝이 조금씩 시야에 들어오는 느낌이다

산이란 자연속을 걷다보니 조급함보다 여유가 생기는 듯 하고

이제는 내가 아닌 남을 우선 배려하는 여유로움마져 생기는 듯 하다

산길은 아직도 겨울잠에서 덜 깨어났는지 온통 잿빛 풍경이다

그렇지만 사시사철 푸르름을 유지하고 있는 편백나무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톤치드의 香은 산꾼의 피로를 말끔하게

씻어주는 느낌이다

무명봉(10:50)

희미한 길을 따라서 편하게 걸어간다

낙엽속에서 나오는 먼지로 인해 목이 아플정도이지만

지난주에 비하면 鳥足之血이니 그저 감사할 뿐이다

130.4m봉(10:53)

이곳부터는 좌측의 함평군 학교면 복천리와 대동면 백호리의

능선 경계를 걷다가 좌,우가 온전히 하교먄으로 들어선다

안부(10:55)

등로가 희미할 때쯤 되면 선답자들이 길을 안내하니 

범여도 마치 코도 안풀고 산행하는 기분이다

묘지(11:00)

지맥길은 묘지 우측의 산 능성으로 걸어야 하나 그냥 묘지로 올라오는

편안한 길을 내려서니 시멘트 임도가 나오고 우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마당실고개(11:02)

함평군 학교면 복천리 내동마을과 마산리를 잇는 시멘트

임도삼거리로 이곳에서 지맥길은 비포장 도로쪽으로 향한다 

마당실 고개에서 바라본 학교면 마산리

청수원(靑水院)으로 내려가는 모습이 보인다.

 

마산리에 속해있는 청수원은 지금으로부터 450여 년 전 함평노씨와 밀양박씨가

입촌하여 마을을 형성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으며 이 마을에 이주해 온 사람들은

원래 현 죽정리(竹亭里)인 새터에서 살았으나 잡귀 때문에 살지 못하고 이 마을로

옮겨왔다고 하며, 현재는 노씨와 박씨 외에 여러 성씨가 모여 함께 살고 있다.

 

함평노씨와 밀양박씨가 이곳에 이주해 와서 사는데 식수(食水)가 좋아 병이 없고

불구자가 생기지 않아 마을 이름을 '청수원(靑水院)'이라고 하였다 한다.

"원(院)"이 붙은 곳은 역원이 있던 곳인데 역원의 이름에 청수원이란 이름이

없어 고증하지 못하고 있다.

이곳도 여름철이면 맥산꾼들을 엄청 괴롭히겠다

갈림길(11:05)

좌측에 묘지가 있고 편안한 임도는 여기서 끝나고 맥길은 직진으로 향한다

희미한 임도로 들어서니...

묵은 임도 양 옆으로 동백나무들이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우려와는 달리 생각보다 등로는 뚜렸하다

갈림길(11:08)

묘지에서 올라온  묵은 임도는 우측으로 향하고 

맥길은 좌측으로 향하는데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안보여서 트랙을 확인하니 분명히 지맥길로 잘 가고 있다

등로가 아주 難解하다...조심스럽게 우측으로 향한다

우측에 농장이 있는지 철조망이 처져있고, 능선으로 오른다

옥마산 갈림길(11:14)

우측으로는 마산리에 있는 옥마산(玉馬山:122.7m)으로

향하는 뚜렸한 등로가 보이고, 지맥길은 남측으로 향하는데

얼마 걷지않아  137,0m봉이 나온다

137,0m봉(11:16)

안부(11:20)

이 지맥길이 어렵다는 걸 보여주려는지 등로는

잘 보이지 않으나 레전드님께서 어리버리한

후답자가 걱정이 되는지 길을 안내한다...감사합니다

갈림길(11:24)

등로는 보이지 않고 노간주나무가 태클을

걸어오는데 정말 고역이다...그래 각오하고

온 맥길이 아니던가...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

안부(11:26)

무명봉(11:30)

갈림길(11:32)

128.8m봉(11:34)

오전에는 조용하던 바람이 정오가 다 되어가면서 

인근에 영산강의 영향인지 바람이 불어대기 시작하는데

기온은 높은 편이나 날씨는 꽤 추워지는 느낌이다

 

아무 생각없이 내리막길로 내려서니 준.희 쌤의 산패가

걸려있는 서당치로 내려선다

서당치(11:37)

함평군 학교면 복천리와 죽정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예전에

민초들이 넘었던 고개였는지 좌,우 양측으로 등로는 뚜렸하나

지금은 인적이 드문 탓인지 등로에 나무들이 터를 잡기 시작한다.

그리고 서당치에 대한 자료는 알 길이 없어서 아쉽기만 하다

 

병오년(2026년)이 시작된 지가 엊그제만 같은데

벌써 3월이라니...요즘들어서 자꾸만 지맥을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인지 마음이 조급해진다

무명봉(11:41)

무명봉에 올라서 살짝 좌측으로 향하는데

그래도 다행인게 등로가 조금씩 보인다는 점이다 

잡목들의 저항은 거칠어지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다

갈림길(11:46)

등로가 잘 안보이는데...감사합니다

파묘(11:47)

묘지로 이어지는 희미한 길을 따라서 내려간다

함평노공&무안박씨(11:51)

갈림길(11:54)

함평노공 묘지에서 내려가는 길을 버리고

좌측의 숲으로 이어지는 맥길을 이어간다

숲을 헤치고 들어서니  등로는 뚜렸하고

선답자들의 흔적이 범여에게 갈 길을 알려준다

갑자기 차량소리가 심하게 들리고 水路가 태클을 걸어온다

수로를 건너니 선답자들도 이쪽으로 간 모양이다

나무가지 사이로 함평에서 나주로 이어지는 1번 국도가 보인다

급경사이긴 하지만 다행히 낙석 방지용으로 설치한

휀스가 있어서 거추장스런 스틱을 먼저 아래로

내던지고 휀스를 부여잡고 1번 국도로 내려선다

1번 국도는 전남 목포시 신항 교차로에서 판문점을 거쳐 평북 신의주시

잇는 대한민국의 일반국도로 남.북이 분단되기 전까지의 전체 노선 길이는

약 1068km이며, 현재 대한민국에서 군사 검문 없이 접근할 수 있는 종점은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까지다

 

대한민국으로만 봤을때는 총 연장 498.7㎞(도로포장율 99.8%, 미포장도로 636m,

미개통도로 400m), 2차선 152.9㎞, 4차선 279.6㎞, 6차선 64.9㎞이며, 지나는 지역은

전라남도 목포시·무안군·함평군·나주시,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장성군, 전라북도 정읍시·

김제시·전주시·완주군·익산시, 충청남도 논산시· 공주시·연기군·천안시, 경기도 평택시·

오산시·화성시·수원시·의왕시·안양시, 서울특별시, 경기도 고양시·파주시이다

호암고개(虎岩峙:12:02)

함평군 학교면 죽정리와 고막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4차선의 1번국도(도로명 주소:영산로), 호남선 철도가 철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지명의 유래는 함평쪽의 우측에 있는 죽정리

호암(虎岩)에서 유래된 듯 하며, 우측으로는 함평역(구지명:학교역)이

있고 좌측의 나주 방향으로는 고막원역이 있다.

 

지명의 유래가 된 죽정리 호암(虎岩)마을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함평노씨가 입향한 후 함평이씨와 고령신씨가 입향하여 마을을 형성하여

현재는 많은 성씨가 모여 살고 있으며, 이 마을 뒷산에 범(虎) 형상을 하고

있는 범 바위가 있다고 하여 마을 이름을 "호암(虎岩)"이라고 하였다 한다.

이 마을은 1914년 이전에는 목포부 금동면이었다고 한다.

차량들이 그리 많이 지나지 않아서 중앙분리대를 

무단횡단하여 맥길을 이어간다

내 마음에 그리움이란 정거장이 있습니다 / 용혜원

 



내 마음에 그리움이란
정거장이 있습니다

그대를 본 순간부터
그대를 만난 날부터
마음엔 온통 보고픔이 돋아납니다
나는 늘 기다림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리움이란 정거장에
세워진 팻말에는
그대의 얼굴이 그려져 있고
‘보고 싶다 ’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그대가 내 마음의 정거장에 내릴 때면
온통 그리움으로 발돋움하며 서성이던
날들은 다 사라지고
그대가 내 마음을 환하게 밝혀줄 것입니다

내 눈앞에 서 있는
그대의 웃는 모습을 바라보며
어린아이마냥 좋아할 것입니다

그대를 기다림이 나는 즐겁습니다

호암2교(12:04)

1번 국도를 무단횡단하니 호남선 철길이 나오고

호암2교가 철길을 지나는 바람에 편하게 맥길을

이어간다

호암2교에서 바라본 함평군 학교면 고막리의 모습

 

함평군 학교면에 속해있는 고막리(古幕里)의 지명은 고막원이 있었으므로

원몰, 고막 또는 고막원이라 하였으며 자연마을로는 원고막, 신촌, 광진, 송암,

재생원 마을이 있다.

 

원고막(元古幕)마을의 지명에 원자가 붙은 것은 고려와 조선조 때 이 곳에

원(院)이 있었기 때문이며 고막이란 이름은 고막대사(古幕大師)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무안 승달산에 있는 법천사의 고막대사가 약 700여 년 전에 도술로 마을 앞에

돌다리를 놓았다고 전해오고 있으며 신촌(新村) 마을은 원래 원고막에서 살았던

사람이 새로운 촌락을 형성하였다 하여 마을 이름을 신촌(新村)이라 하였다.

 

광진(廣津) 마을은 마을 앞이 바다였으므로 나룻배가 왕래하여 나루터가 있었는데

나루터의 명칭인 광나루터에서 유래되어 마을 이름을 광진(廣津)이라고 하며,

송암(松岩) 마을의 지명 유래에 대해서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지형으로 보아

마을 뒷산에 소나무와 바위가 많기 때문에 마을 이름을 송암(松岩)이라고 하였을

것으로 여겨지며, 재생원(再生院) 마을은 군내 각지를 떠돌던 음성 나환자를

정착시켜 재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 하에 정착했기 때문에

마을이름을 재생원이라 하였다.

갈림길(12:05~15)

호암2교를 지나자마자 맥길은 좌측 능선으로 꺽어지는데

이른 새벽에 설렁탕 한그릇으로 아침을 먹은 후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인지 배가 고프다...바람을 피해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간식으로 원기를 보충하면서 10분정도의 휴식을 취한다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잡목구간...벌써부터 가시들이 파란순을

보이면서 산꾼을 겁박하려는 태세이지만 아직을 걸을만 하다

낙엽 사이로는 바람꽃들의 새순들이 올라오는데 다른곳은

벌써 꽃들이 다 졌는데 이곳은 날씨가 추웠는지 이제서

기지개를 켜면서 여유를 보이고 있다

능선으로 올라서니 좌측 아래쪽 호남선 철길이

지나가는 절개지이고 맥길은 우측으로 휘어진다

우측으로 발걸음을 돌리니 빛바랜 준.희쌤의 흔적이

반갑게 범여를 맞아준다...행여 길을 잃을까봐 勞心焦思

하시는 후배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눈물나게 고맙다

등로에 콘크리트 기초석들이 많이 보인다.

예전에 송전탑이나 이동통신탑이 있었던 

자리인 듯 하나 시설물을 철거했으면 깔끔하게

해야지 이게 뭐여...

희미한 맥길을 걸어가는데 동백과 노간주, 청미래들이

어울려 산꾼을 괴롭히는데 왜 이 지맥길이 산꾼들에게

악명높은 힘든 지맥길인줄 알 것만 같다

80m봉(12:38)

지도상 등장하는 족보있는 봉우리는 아니고

산꾼들의 산행기에 등장하는 봉우리이다

이제부터는 편하게 가는 건 꿈도 못꾸고

자연에 순응하면서 걸어보려고 한다

무명봉(12:40)

안부(12:45)

안부에서 다시 오르막이 시작되지만

생각보다 의외로 등로는 뚜렸하다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채우고 비우는 
과정의 연속이라 하지 않았던가...

오늘 무엇을 채우고 
또 무엇을 비울 것인가?

마음에도 저울이 있다
가끔씩 가리키는 무게를 
체크해 보면서 살아야 할 듯 싶다

열정이 무거워져 
욕심을 가리키는지

사랑이 무거워져 
집착을 가리키는지

자신감이 무거워져 
자만을 가리키는지를

말이다

갈림길(12:48)

보이지 않은 길을 찾아서 무명봉에 올라서니

등로가 뚜렸한 갈림길이 무명봉 정상이 나온다

무명봉 갈림길(12:45)

우측의 학교면 죽정리 방향을 버리고 4시방향의

길이 전혀 보이지 않은 숲을 헤치고 내려서니

선답자들이 맥길을 안내한다...감사합니다

등로가 전혀 안보이는 곳 등로 바닥에 나뭇가지가

전지가위에 짤려 떨어져 있다...얼마전에 맥산꾼이

지나간 흔적인 듯 하다...내려서니 곧바로 임도

삼거리가 보인다

임도(12:52)

동쪽으로는 학교면 죽정리에서 올라오는 임도이고 좌측으로는

학교면 고막리 재생원 마을로 항하지만 남쪽으로 행하는 임도는

오룩스맵 지도상에는 표기조차도 안되어 있는 임도이다

 

재생원(再生院) 마을은 군내 각지를 떠돌던 음성 나환자를

정착시켜 재생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하에

정착했기 때문에 마을이름을 재생원이라 하였다고 한다.

임도 사거리에서 능선으로 올라선다

능선에 올라서자마자 앞이 캄캄하다...그래 가는데까지 가보자...

폐헬기장(12:55)

폐헬기장에서 내려서니 갈수록 가관이다

우측으로 조금전에 지나왔던 임도와 지맥 능선이 나란히 간다

왜 편안한 길로 처음부터 안갔느냐하면 지도에도 없는 임도에다

어디로 갈지 몰라서 개고생하면서 능선길을 따라서 왔다

임도를 걸으면서 트랙을 확인하니 임도가 맥길이었구나.

사서 개고생을 하다니...헛웃음만 나오는구나

갈림길(13:10~20)

이곳에서 베낭을 내려놓고 물 한모금을 마시면서 

베낭을 베개삼아 누워서 하늘을 보면서 10분 정도의

여유로운 휴식을 취한 다음에 다시 길을 나선다 

갈림길 좌측으로 향하는 임도는 학교면 고막리 

광진제 저수지를 지나 광진마을로 향하는 길이다.

 

고막리에 속해있는 광진(廣津) 마을은 마을 앞이 바다였으므로

나룻배가 왕래하여 나루터가 있었는데 나루터의 명칭인 광나루터에서

마을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아주 짧은 거리이지만 등로는 아주 거칠다

길이 보이지 않는 곳을 버벅거리면서 올라서니

맨발님의 산패가 걸려있는 143.1m봉이 보인다 

143.1m봉(13:25)

143.1m봉 정상에서 내려가는 길에는 메마른 낙엽에서

나오는 먼지로 목이 아플 지경이다...등로는 흐릿하나

잡목의 저항은 조금전에 비해서 훨씬 나은 편이다

멧돼지의 체력단련장(?)을 지나서 내려가는데...

의외로 등로는 뚜렸하나 산행을 하면서 먹은게

별로 없어서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고 발걸음은

느려진다

묘지봉(13:30)

봉분위에 나무들이 자라는 걸로 보아서 후손들이

조상에 대한 관심이 없는 듯 하다...뿌리없는 나무가

없듯이 조상을 잃어버린 후손이 되면 안되는데...

나뭇가지 사이로 가야할 151.8m봉이 보이기 시작한다

안부(13:32)

우리네 인생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따름이고

이 세상에 잠시 소풍 온

사람들일 뿐이다

같이 웃고 
같이 슬퍼해 줄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성공한 사람이다


인생이 아름다운 건 
사랑 때문이 아닐까?

무명봉(13:37)

힘들게 봉우리로 올라선다... 151.8m봉인 줄

알았는데 올라와서 보니 151.8m봉은 더 가야한다

다시 시작되는 오르막길...쉬엄쉬엄

걷다보니 151.8m봉 정상에 도착한다

151.8m봉(13:43)

함평군 학교면 죽정리 선암골과 고막리 광진골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정상에는 나무들이 우거져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며 맨발님의 산패와 귀한 2등

삼각점이 정상을 지키고 있으면 선답자들의 일부

산행기에는  이곳을 선암산으로 부르고 있는데

아마도 죽정리 선암골 윗쪽에 있는 산이라 그렇게

부르는 모양이다.

 

학교면 죽정리에 속한 선암(仙岩)마을은 500여년 전에

한양조씨가 입향하여 村落을 형성하였다고 하나 그 이후에

한양조씨 후손들은 없어지고, 평산신씨와 나주임씨 등이

살고 있으며, 이 마을 뒷산에 신선바위가 있는데, 마을 이름을

신선바위에서 따와 선암(仙岩)이라 불렀다고 한다

151.8m봉 정상 2등삼각점(나주 25 / 1990 복구)

151.8m봉 정상에서 내려서니 암릉위에 솔갈비들이

많이 쌓여있고, 체력이 방전되어 다리에 힘이 없는

탓인지 상당히 미끄럽다...조심스레 내려간다

등로는 비교적 뚜렸하나 노간주 나무들의 횡포가 너무 심하다

암릉(13:50)

안부(13:53)

안부에서 오르는 길은 정비가 잘 되어있다

갑자기 좋은 길은 사라지고 잡목들의 엄청난 

저항이 시작된다...미칠것만 같은 능선으로

헤치고 올라서니 족보있는 113.9m봉 정상이 나온다 

113.9m봉(13:59)

113.9m봉에서 내려서는 길...

감사합니다...급하게 내려서니 안부가 나온다

안부(14:04)

안부에 내려서고 트랙에서 맥길을 하려고 호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려는데 갑자기 머리속이 하해지는 느낌이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없어졌다. 

안부에 베낭을 내려놓고 스틱만 가지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왔던길을 되돌아 가면서 스마트폰 수색 작업(?)에 들어간다

스틱으로 이리저리 숲을 헤쳐가는데도 폰이 보이지 않으니

불안하고 미칠것만 같다... 113.9m봉 정상 바로 아래까지

올라오니...

칠칠맞은 쥔을 원망하며 내 스마트폰이 나를 애타게 기다린다.

휴~~~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다리가 풀려버려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린다...안부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20분이란 시간을

허비했다...

다시 안부(14:40)

이곳에서 물 한모금을 마시면서 정신을 차린다.

그 바람에 30분 이상의 아까운 시간을 허비한 셈이다

체력은 떨어지더라도 정신줄은 놓지 말아야지...

묘지(14:43)

묘지를 지나 내리막길에는 등로가 보이지 않고...

트랙을 따라서 등로가 없는 곳을 내려서니 엄청나게 큰 규모의 축사

철조망이 길을 막고 심한 畜糞 냄새가 산꾼의 코끝을 자극한다.

 

아무리봐도 비집고 들어갈 틈도 보이지 않을 뿐더러 철조망을

넘어 가더라도 축사 쥔장과의 마찰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우측으로 우회하여 맥길을 이어간다

축사 우측으로 내려가서 학교면 죽정리

선암골로 가는 시멘트 도로로 내려선다

선암골 도로(14:48)

선암골 도로에서 좌측으로 향하는데 맥길을 가로막고

있는 대형 축사앞을 지나면서 마루금에 복귀한다

남쪽으로는 뾰족하게 생긴 속금산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한다

방수제(放手堤) 갈림길(14:51)

직진으로 이어지는 시멘트 도로를 따라서 가면 방수제라는

저수지 방향이고 맥길은 농로를 따라서 우측으로 이어진다

왔던 길을 뒤돌아 본다...대형축사 뒷쪽에

우뚝 선 113.9m봉을 바라보면서 스마트폰을

분실하여 많은 시간을 허비한게 후회스럽기만 하다

갈림길(14:52)

우측으로 꺽어지는 시멘트 도로 윗쪽에는 배수장인지

축사인지 알 수 없는 건물을 보면서 좌측으로 맥길을

이어간다

봄이오는 소리

맥길은 파란 물탱크 뒷쪽의 잣나무숲으로 이어진다

능선으로 올라서 잣나무숲으로 올라야 하는데

지금 이곳은 잣나무 가지치기를 하는 중이라

등로는 보이지 않아 그냥 우측으로 향한다

물탱크(14:57)

능선 아래에 있는 농장을 가로질러 솔마재로 향하는데

월호리에서 함평으로 향하는 버스가 지나간다

농장을 빠져 나오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이곳이 솔마재이다

오늘은 더 이상 산행하기가 어려울 것 같아서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하고 지나가는 차량들을 상대로 앵벌이를

시도하지만 지나다니는 차도 거의 없고, 몇대가 지나가지만

아무도 태워주지 않아서 하는 수 없이 학교면 택시를 호출한

다음에 베낭을 정리하고 나니 택시가 도착한다

솔마재(15:10~15:17)

함평군 학교면 죽정리와 금송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2차선 도로

(도로명 주소:중천포로)가  지나가며 또 다른 지명으로 금송리고개라

부르기도 하며, 농가 한 채와 양쪽에 솔마재 버스정류장이 있고

이동통신탑과 반사경 거울도 있다...이곳 근처에는 함평 엘리체C.C가

있는데 골프에 미쳐있을 예전의 겨울에 2박3일간 라운딩하러 몇번

왔던 골프장인데 그 당시에는 함평다이너스티C.C였는데 지금은

골프장 이름이 바뀐 모양이다.

 

솔마재는 진례지역에 들어오기 위해 넘어야 하는 고개로 학교면 소재지 쪽에서

손님이 오면 이곳 고개까지 마중을 나와서 손님을 맞이했다 하여 손님을 맞이하는

손맞이재가 변해서 된 말이라고 하며, 주변으로 상여집이 많고 밤에 돼지고기를

가지고 고개를 넘으면 귀신이 나온다고 전해오는 무서운 곳이었다고도 하며 

과거에는 주막도 있었던 고개라고 한다

인증샷

택시가 도착하고 15분정도 걸려서 함평터미널에 도착한다

함평공영터미널(15:32)

함평터미널에 도착하여 버스표를 예매한 다음에

간단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은 다음에 베낭에 남은

간식으로 허기를 면한 다음에 20여분간 멍때리기를 한다

 

함평은 본래 백제의 다지현(多只縣)이었는데, 신라 경덕왕 때 다기현(多岐縣)으로

고쳐 무안군(務安郡)의 영현으로 삼았다가 고려 태조 23년(940년) 모평현(牟平縣)

으로 고쳤고, 현종 때 소속을 영광군(靈光郡)으로 바꾸었다... 1403년(태종 3) 함풍현

(咸豊縣)과 합치어 함평현(咸平縣)으로 하였고, 치소(治所)를 함풍현에 두었다.

 

모평의 지명유래는 ‘모(牟)’가 마을을 뜻하고 ‘평(平)’이 넓은 들을 나타내어

‘평야지역의 취락’이라는 뜻이 되는데, 영산강의 지류인 고막천(古幕川) 상류에

넓게 발달한 이 지역은 나주평야에 속한다...조선시대에는 나주와 영광을 연결하는

도로가 발달하였으며, 북쪽에는 무악산(毋岳山)이 있는데 지금의 대동면과 나산면

지역으로 추정된다.

함평발 → 광주행버스표

16시 05분 함평에서 광주로 가는 버스에 올라 잠깐이라도

잠을 청해보려 하는데 술이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남자 쉬키와 운전기사가 실랑이를 벌이는 통에 경찰이

출동하고 그 바람에 좀 늦게 광주로 향한다

광주 유스케어 터미널(16:32)

광주발 → 서울행버스표

서울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고 나니 25분정도 시간적 여유가있어서 분식집에서 간단하게 찐만두로 늦은 점심을 해결하고서울가는 버스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