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남정맥(洛南正脈)이 아니고 낙남정간(洛南正幹)이 맞다
- '1대간 2정간 12정맥'으로 해야 옳아
강 승 기
산경표(山經表)에 의하면 우리 나라 산줄기를 말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1대간(백두대간), 1정간(장백정간), 13정맥(낙남정맥 등)이라고 한다. 또한 백두대간이 끝나는 지리산에서부터 낙동강 하구를 향해 뻗어있는 산줄기의 명칭을 낙남정맥(洛南正脈)이라 믿고 있다. 이는 일제(日帝) 때인 1913년 조선광문회(朝鮮光文會)에서 고전(古典) 간행사업의 일환으로 간행한 산경표를 근거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광문회에서 간행한 산경표는 1980년 이우형씨에 의해 처음으로 고서점에서 발견되었다. 그 이후 이 산경표를 그대로 다시 인쇄한 산경표가 많이 보급된 바 있다. 그래서 오늘날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산경표는 조선광문회에서 고전(古典) 간행사업의 일환으로 간행했던 '1913년판 산경표'와 같다고 보면 정확하다.
그러나 조선광문회판 산경표를 살펴보면 정간(正幹)과 정맥(正脈)은 서로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구분이 되는지를 정의(定義)할 수가 없다. 산경표에 수록되어 있는 산줄기의 순서를 볼 때도 대간(大幹)과 정간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정맥이 수록되어 있다. 정맥도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백두대간에서 가지로 뻗어나간 순서대로 차례로 나오는데 왜 맨 마지막에 있어야 할 낙남정맥 하나 만이 순서를 무시하고 다른 정맥들보다 앞에 먼저 수록되어 있을까? 또 대관령(大關嶺)을 대관산(大關山), 태기산(泰岐山)을 태치산(泰峙山), 흑성산(黑城山)을 흑성치(黑城峙), 조계산(曹溪山)을 조계치(曹溪峙)라고 적고 있는 것 등은 오류가 아닐까 하는 궁금증이 생긴다.
필자는 이러한 궁금증을 풀어볼 요량으로 장서각(藏書閣)에 소장되어 있는 『여지편람(輿地便覽)』의 산경표와 규장각(奎章閣)에 소장되어 있는 『해동도리보(海東道里譜)』의 산경표 등 고전을 열람해 보았다. 또 조선광문회에서 고전 간행사업의 일환으로 간행한 산경표를 이와 대조, 확인한 바 있다. 그 결과 『여지편람』의 산경표와 『해동도리보』의 산경표는 일부 몇 군데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서로가 일치하고 있는데 반해 조선광문회판 산경표는 이들과 비교해 볼 때 오자, 탈자, 위치 잘못, 기타 등 물경 120여 군데에 달하는 오류가 있음을 발견했다.
이러한 오류는 필사본인 고전 산경표를 조선광문회에서 활자본으로 간행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산과 고개의 명칭에 오류가 있는 곳만도 60여 군데에 이르고 있다. (별표 참조)
산경표는 본래의 원전이 있고 이를 필사한 필사본이 고전으로 남아 있다. 이 고전을 활자본으로 찍어낸 것이 조선광문회판 산경표이고, 고전으로 현존하는 것이 『여지편람』과 『해동도리보』의 산경표다. 산경표의 원전이 발굴되지 않고 있는 현재의 상황으로는 조선광문회판 산경표는 오류가 너무 많아서 신뢰도에 문제가 있으므로 아예 논외로 한다. 따라서 필사본이지만 고전으로 현존하는 『여지편람』과 『해동도리보』의 산경표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여지편람』과 『해동도리보』의 산경표에서 가장 관심을 갖게 되는 부분은 낙남정맥이 맞느냐, 낙남정간이 맞느냐의 문제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은 이들 고전 산경표의 산경 16페이지 (山經十六) 뒷면과 산경 18페이지(山經十八) 앞면 등 두 군데다.
『여지편람』의 산경표 16페이지 뒷면에는 "白頭大幹止於智異自鷲嶺以下卽爲傍支故今作洛南正幹"(백두대간이 끝나는 지리산에서부터 시작되는 취령(鷲嶺)이하 산줄기는 예로부터 낙남정간이라고 한다) (별표참고). 또한 『여지편람』의 산경표 18페이지 앞면 맨 위 산줄기의 명칭을 기록하는 칸에도 '낙남정간'이라 적고 있다.(별표참고). 이와 같이 『여지편람』의 산경표에는 두 구네 모두 낙남정맥이 아니고 낙남정간이 맞는 것으로 확실하게 기록되어 있다.
『해동도리보』의 산경표도 16페이지 뒷면에는 『여지편람』의 산경표와 마찬가지로 "白頭大幹止於智異自鷲嶺以下卽爲傍支故今作洛南正幹"이라 적고 있다. 그러나 18페이지 앞면 맨 위 산줄기 명칭을 기록하는 칸에는 '낙남정맥'이라고 다르게 기록되어 있다(별표참고). 이와 같이 『해동도리보』의 산경표의 경우 16페이지 뒷면에는 낙남정간, 18페이지 앞면에는 낙남정맥이라고 서로 다르게 기록된 것은 필사 과정의 오류로 보인다. 따라서 『해동도리보』의 산경표 자체만으로 낙남정간이 맞는지 낙남정맥이 맞는지 판단하기는 다소 애매 모호하다.
『여지편람』산경표는 낙남정간, 『해동도리보』산경표는 두 군데 중 한 군데에 낙남정간이라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들 두 산경표에 수록된 산줄기의 순서상 대간과 정간을 먼저 적었고, 그 다음에 정맥이 나오며, 정맥도 북쪽에서부터 남쪽으로 내려오면서 백두대간에서 가지로 뻗어나간 순서대로 차례로 수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한반도 남쪽 끝에 있는 낙남정간이 만약 정맥이라면 맨 마지막에 나와야 하나 정맥이 아니고 정간이기 때문에 백두대간과 장백정간의 뒤를 이어서 수록되어 있다. 이는 격이 다른 정맥들보다 앞에 수록되어 있는 것이므로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낙남정맥이 아니고 낙남정간이 맞는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이상 필자의 주장에 더해 참고로 몇 년 전 서지학(書誌學)적으로 분석하여 "낙남정맥이 아니고 낙남정간이 옳다"는 견해를 밝힌 이우형씨와 박용수씨의 의견도 소개한다. 1996년 10월호 월간 『사람과 산』에 박용수씨가 기고한 글을 보면 박씨 역시 낙남정간이 옳다고 적고 있다. 그 이유로 산경표에 대간과 정간, 정맥이 서술된 순서와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음양오행설 및 풍수지리설과 관련한 수(數)의 개념을 들었다.
즉, 1은 사물 전체를 나타내는 동시에 모든 사물이 이곳에서부터 생긴다는 의미로, 2는 천지(天地)·남녀·상하·좌우·음양(陰陽) 등과 같이 둘이 짝하여 하나가 된다는 대립과 화합의 뜻으로, 12는 12지(支)와 한해 달수를 나타내는 전통적인 수(數)로서 여암 신경준은 동국문헌비고의 「여지고」에서 전국의 주요 강과 산을 12개씩 들고 있음을 예시했다.
이중환 『택리지』에서도 12개의 명산을 꼽고 있는 등 12라는 숫자는 옛날부터 우리 나라 국토를 설명하는 분류 체계와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이러한 수(數)의 개념으로 볼 때 '1대간 1정간 13정맥'의 체계보다는 '1대간 2정간 12정맥'의 체계가 더 합당하다는 근거를 바탕으로 하여 낙남정맥이 아니고 낙남정간이 옳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이기고문에서 이우형씨도 "낙남정간이 옳다"는 견해를 가졌음을 언급했다. 이우형씨는 장백정간과 백두대간, 그리고 낙남정간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전체 국토의 물줄기를 동류(東流)와 서류(西流)로 가른 맥(脈)이 아닌 간(幹)의 개념으로 보아 낙남정간이 옳다고 주장한 바 있다.
낙남정맥이 아니고 낙남정간이 맞는다고 결론을 내리게 되면 "정간은 백두대간의 남북 양쪽에서 이어지는 산줄기이고 정맥은 백두대간의 중간 부위에서 가지로 뻗어나간 산줄기"라고 정의할 수 있게 된다. 즉 현존하는 고전의 산경표를 근거로 하고, 위에 언급한 내용들을 종합해보면 '낙남정맥이 아니고 낙남정간이 맞는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 강승기(康昇基) : 산경표를 신봉하는 산악인으로서 1995. 1. 1 ~ 2001. 12. 27 사이에 백두대간, 낙남정간, 한북정맥, 낙동정맥, 한남금북정맥, 한남정맥, 금북정맥, 금남호남정맥, 금남정맥, 호남정맥 등 남한땅 대간과 정간, 정맥을 모두 종주했다. 백두대간 대장정을 마치고 『강승기의 종주기 백두대간』을 출간했다.
출전 : 월간『사람과 산』(200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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