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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역사속으로

연개소문, 독재자인가? 영웅인가?

by 범여(梵如) 2012. 3. 10.

 

연개소문, 독재자인가? 영웅인가?

 

 

 

 

당으로부터 고구려를 지켜낸 뛰어난 장수인가. 쿠데타로 권력을 잡고 고구려를 패망의 길로 이끈 주역인가.

 인물에 대한 평가는 시대에 따라 보는 시각에 따라 늘 달라져왔지만 연개소문은 서로 상반되는 두 가지의 평가를 받고 있다.

고구려의 입장에서 본다면 연개소문은 위태로운 시기에 나라를 구한 구국 영웅이었다. 그러나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그의 기록은 부정적이기만 하다.

 

 
 

1. 중국 경극 속의 연개소문

청대부터 전해 내려온 경극은 중국인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장군 연개소문은 경극에서 언제나 두렵고 아주 무술이 뛰어난 인물인 동시에 잔인하고 사납고 포악한 인물로 그려졌다. 이러한 경극은 연개소문을 역사적 지도자로 여기던 북한의 요청으로 금지되게 된다. 연개소문은 중국인이 가장 두려워하는 인물 중 한명이었다.


2. 연개소문 VS 당 태종

연개소문이 살던 640년 경 고구려와 대치하고 있던 중국의 나라는 당이었다. 이때 고구려의 권력자는 연개소문이었고 당나라의 국왕은 태종이었다. 중국역사상 가장 화려하고 강대했던 시기 중 하나가 당 태종 집권기다. 642년, 당에 굴복하지 않은 나라는 고구려 뿐이었다.


3. 연개소문에게 철저히 패배한 당태종

644년, 당태종은 드디어 고구려를 공격한다. 그러나 안시성 전투에서 철저히 패한 뒤 왕이 직접 길을 만들며 퇴각할 지경이 되었다. 심지어 당태종은 양만춘의 화살에 맞아 애꾸눈이 되고 4년 뒤 숨을 거두었으니 이때부터 당과 고구려는 숙적관계로 접어든다.


4. 대당 강경론자, 연개소문

삼국사기는 연개소문을 포악한 역모자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고구려의 입장에서 본다면 연개소문은 영류왕을 비롯한 신하들이 당나라에 대해서 저자세외교로 일관하는데 반대했던 강경론자였다. 영류왕은 유화책으로서 평화를 유지하고자 했지만 연개소문은 그것이 미봉책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


5. 연개소문은 만리장성을 넘었다?

연개소문은 당으로부터 방어만 한 것이 아니라 적극적 공세에 나서기도 했다. 신채호는 당태종과의 전쟁 때 연개소문이 북경까지 들어갔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했다. 북경의 한 교수는 최근 연개소문이 쉽게 북경을 넘나들었을 것이라는 단서를 찾아내기도 했다.


6. 연개소문의 최후, 그 이후

북경을 손쉽게 넘나들었던 연개소문은 당태종에 결정적인 타격을 입히고 신라 김춘추와의 연합도 거절했다. 따라서 그에 대한 당과 신라의 기록이 부정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 기록들을 김부식이 삼국사기에 그대로 인용했던 것이다. 당나라의 시각에서 쓰여진 이 왜곡된 기록이 아직까지 연개소문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가로막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