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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山經表

우리의 고지도

by 범여(梵如) 2012. 3. 13.

 

신증동국여지승람 팔도총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첫머리에 수록된 조선전도. 이 지도는 지리지에 수록된 부도로 판심(版心)에 '동람도(東覽圖"라고 쓰여 있어서 일명 <동람도>라고도 불린다. 현존하는 인쇄본 단독 지도로는 가장 오래된 것이다. 16세기로 추정된다. <팔도총도>는 동서가 남북의 길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어 한반도 전체가 남북으로 압축된 느낌을 주며, 특히 북부 지방의 왜곡이 심하다.  이것은 책 크기에 지도를 맞추어 그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진산(鎭山)과 주요 하천, 도명(道名), 주요 섬만 표시한 간략한 지도이며 바다에는 파도 무늬가 그려져 있다. 섬으로 울릉도와 우산도가 따로 표시되어 있으나 그 위치는 반대로 되어 있다. 이 지도는 조선 후기에 널리 보급되었던 지도책에서 대부분 만날 수 있다.

조선방역지도
조선 전기에 제작된 한국 전도(韓國全圖). 《동국지도》 계통의 지도이다. 제작자와 제작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지도 아래쪽의 좌목(座目)에 기록된 지도 제작 관계자들의 관직 성명과 지명 충주(忠州)가 유신(惟新)으로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제용감(濟用監)에서 1557년(명종 12) 또는 58년에 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회의 《팔도지도》보다 두만강과 북동부 지방을 많이 수정하였으며 만주(滿洲)와 쓰시마섬[對馬島(대마도)]을 한국의 영토로 표기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하다. 8도의 주현(州縣)과 수영·병영을 표시하였고, 기타 산계와 하계를 자세히 나타냈다. 한편 각 군현은 도별로 색을 구별하여 경기도는 주황색, 강원도는 담녹색, 전라도는 흰색으로 표시하였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유출되었던 것을 1930년대에 입수하였다. 국보 제248호. 국사편찬위원회 소장.

 
팔도총도

관서와 관북 지방이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있는 조선 전기의 우리 나라 전도의 윤곽을 갖는 지도이면 하계망이 상세하고 군현·병영·수영·관찰사영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있다. 지도의 제작연대는, 숙종 9년(1683)에 다시 府로 회복한 경상도의 순흥이 있으므로 1683년 이후이고 숙종 10년(1684)에 신설된 함경도의 무산이 없으므로 1684년 이전의 지도이다. 지명변천으로만 본다면 1683년작으로 추정된다. 이 지도는 세조 9년(1463)에 완성하여 조정에 바쳤다는 기록이 있는 정척과 심성지의 <동국지도>와 같은 형에 속하는 지도이며, 조선 후기에도 이 지도의 윤곽과 하계망은 계속 이용되었다고 사료된다. 또 이 지도의 특징은 현재의 만주 지방의 하계망은 부정확하나 흑룡강·송화강을 표시한 것과 제주도와 대마도를 동서로 나란히 그려 넣은 것이다. 대마도는 우리 나라의 영토는 아니지만 우리 나라와 문화적인 유대가 깊어 『신증동국여지승람』<동람도>의 <팔도총도>(도판 41)에도 제주도와 같은 위도에 그려져 있다.

해동팔도봉화산악지도
17세기. 채색사본. 이전의 어느 지도보다도 색감을 중시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것처럼 아름다운 지도이다. 많은 산봉우리에 봉화가 촛불처럼 그려져 있는데, 특히 압록강, 두만강의 국경 지대에 밀집되어 있다. 주현읍치(州縣邑治) ·도로, 산천과 대소 산맥 ·준령(峻嶺) ·성곽 ·역참(驛站) ·봉수대 등을 그려 넣어 봉수의 직간선(直間線)을 한 번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서해쪽의 네모 안에는 목멱산(木覓山:서울의 남산)을 중심으로 한 함경강원도래양주아차산봉수(咸鏡江原道來楊州峨嵯山烽燧) ·경상도래광주천림산봉수(慶尙道來廣州天臨山烽燧) ·평안도육로래모악동봉봉수(平安道陸路來母岳東峯烽燧) ·평안황해도수로래모악서봉봉수(平安黃海道水路來母岳西峯烽燧) ·충청전라도래양천개화산봉수(忠淸全羅道來陽川開花山烽燧) 등 5대 봉수로와 동서 및 남북의 길이, 서울에서 동서남북 주요지점까지의 거리 등이 표기되어 있다.

 

조선전도
이 지도는 1757년(영조 33)에 영조의 명으로 정상기의 <동국대전도>를 모사하여 홍문관과 비변사에 보관하도록 한 모사지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산과 강, 섬 등 자연 지명과 군현 이름, 창고, 진보(진보), 찰방, 산성 등 인문 지명 및 중국과 일본 등 모두 2,580여 개의 주기(주기)를 담고 있다. 산맥의 표현은 백두산을 기점으로 남쪽으로 뻗어내린 백두대간을 크게 강조하고, 여기서 뻗어나간 주요 산맥들을 강조함으로써 국토를 인체(人體)로 인식하는 전통적 지리관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병영, 수영, 읍성, 진보, 찰방, 봉수 등을 기호화하고, 산성, 고갯길, 관문 등을 그림으로 표현한 진일보한 방식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19세기 김정호에 의해 한 층 더 발전했다. 한편 지도에 육로, 해로, 고갯길을 나타내어 군사적, 경제적, 행정적 필요를 모두 수용했음을 보여준다.

 

동국대지도
18세기 후반에 제작된 지도다. 조선 후기 지도사에서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되는 정상기(鄭尙驥, 1678 ~ 1752)의 <동국지도>이다. 정상기가 제작한 <동국지도>는 대전도와 팔도분도가 있는데 현존하는 것은 대부분 팔도분도이고 대전도는 매우 드물다. 이 지도는 제척(梯尺)의 형태인 백리척을 사용하여 그린 대전도로서, 당시로서는 대축척지도인 약 1 : 42만 지도이다. 한반도 북부지방의 왜곡된 윤곽이 정상기의 지도에서 비로소 제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 지도는 대전도를 후대에 전사한 것으로 초기의 지도에 비해 정교함이 다소 떨어지지만 원형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아국총도
18세기 후반 정조대에 제작된 지도첩인 <여지도(輿地圖)>에 수록되어 있는 전국지도다. 전체적인 윤곽은 정상기의 <동국지도>를 따르고 있다. 이 지도는 무엇보다 화려한 색채가 돋보이는데, 산줄기를 녹색으로 하천을 청색, 그리고 팔도의 군현을 색채를 다르게 하여 구분하였다. 또한 해안의 섬들이 아주 자세하게 그려져 있는데, 이 시기 도서 지방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고 있던 사회적인 분위기가 반영되어 있다. 지금의 독도가 울릉도 동쪽 동해에 우산도(于山島)라는 명칭으로 표시되어 있고 대마도도 그려져 있다. 지도의 여백에는 국토의 좌향(坐向), 동서와 남북의 길이, 사방(四方)의 끝에서 서울까지의 거리, 그리고 각 도의 군현 수가 기재되어 있다.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팔도지도
18세기 말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선지도. 조선 후기 지도 발달에 큰 획을 그었던 정상기의 <동국지도>의 수정본 계열에 속하는 전조(全圖)이다. 각 도의 군현을 원으로 나타내고 바탕색을 구별함으로써 팔도의 경계를 구분하였다. 감영(監營), 병영(兵營), 수영(水營)은 사각형으로, 진보(鎭堡), 역(驛)은 작은 원으로 표시하였다. 우측 주기(註記:지리정보)에는 서울에서 각지에 이르는 거리를 수록하였다. 다른 전도와 달리 도로망을 그리지 않아 미완의 작품이라는 느낌을 준다. 그러나 18 ~ 19세기로 이어지는 조선전도의 발달과정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지도이다. 역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해좌전도
19세기 중반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표적인 목판본 조선전도. 지도의 윤곽과 내용은 정상기의 <동국지도>와 유사하며 산계(山系)와 수계(水系), 자세한 교통로 등이 동일한 수법으로 그려져 있다. 지동의 여백에는 백두산, 금강산, 설악산 등 10여 개의 명산의 위치와 산수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섬 정계비, 초량왜관(草梁倭館) 등에 대한 기록이 실려 있다. 그리고 고조선(古朝鮮), 한사군(漢四郡), 신라구주(新羅九州), 고려팔도(高麗八道)의 고을 수를 좌측상부의 여백에 기록하여 우리나라의 현재와 과거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한 지도로서, 목판 인쇄술에서도 뛰어난 솜씨를 보이고 있다.

 

대동여지도
1861년(철종 12) 김정호(金正浩)가 제작한 분첩절첩식(分帖折疊式)으로 된 한국지도. 축척은 약 1/16만. 남북 22층으로 되어 있고, 각층은 세로 30.2㎝, 가로 20.1㎝ 크기의 8폭으로 접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각 층을 책의 크기로 접은 판의 크기는 실제거리가 동서 80리, 남북 120리가 되도록 만든 것이다. 이 22층을 순서대로 접합하면 세로 7m, 가로 3m에 달하는 커다란 1장의 한국전도가 되도록 고안되어 있다. 지도 첫머리인 제1층에는 좌표와 지도표(地圖標), 지도유설(地圖類說), 서울의 도성도(都城圖), 경조오부도(京兆五部圖) 등이 실려 있다. 《대동여지도》의 특징은 첫째, 지도에 축척표시는 되어 있지 않으나, 좌표에 방안(方眼)을 그리고 <매방(每方)10리>라 표시하여 사실상 축척을 표시하고 있다. 둘째, 지형의 표시와 하천과 교통로 등이 자세하고 정밀하다. 셋째, 이전의 지도에서 즐겨 사용하던 설명식의 주기(註記)를 없애고 지도표를 제시하여 지도내용을 간단명료하게 도식화하여 기호식으로 표현하였다. 넷째, 지지적(地誌的) 내용의 기재가 생략되어 주기를 중시하던 지도의 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근대적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대동여지도》의 정확성을 현재의 지도와 비교하면, 서해안과 남해안의 해안선은 별 차이가 없으나 동북부지방의 압록강 상류지방과 동해안의 울진 부근이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지도 가운데 가장 정밀한 세밀도라고 할 수 있다. 목판본.

 

대동여지전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를 소축척으로 줄여 만든 약 92만분의 1의 우리나라 전도. 이 지도는 지도에 제작자와 제작 연대가 표기되지 않으나 지도의 내용과 표현 방식으로 보아 김정호의 제작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동여지도는 도면의 첫 머리에 표시된 축척 방안을 현대식 축척으로 환산하면 1:162,000이며 이를 기초로 거리, 방위, 면적을 측정 할 수 있다. 지표의 정보를 통일적인 기호 체계에 따라 표시하여 산악과 산맥은 소박한 회화식 기호를 사용하였으며, 산의 형태, 산정의 모양, 하천, 호수, 항만 등을 자세하게 표시하였다. 행정구역의 경계, 문화유적, 군사시설, 교통 등은 근대식 방법으로 도식화 하였으며 22개의 첩본으로 이루어져 휴대하기에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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