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2010년 2월 7일
시간, 거리: 10시간 45분(알바 3시간 포함), 24.5km
소재지: 강원도 태백시 백산동, 철암동 / 삼척시 도계읍, 가곡면 / 경북 봉화군 석포면
지난번 부산에 있는 초딩이 동창 딸래미 결혼식 참석땜에 2구간을 산행을 하지 못해 산악회를 따라가서
혼자서 역산행을 하려고 신청했는데 심마니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그쪽으로 버섯 산행을 하러 가려는데 같이 가자고 해서 산악회에 취소하고 친구와 약속을 했다
그런데 백두대간을 같이 했던 후배 산꾼 한명이 동행을 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새벽 2시에 개포동에서 출발 태백에 도착하니 새벽 5시 해장국집에서 식사에 커피까지 하고
석개재를 향해 출발하여 7시 15분에 산행을 시작했다. 심마니 친구는 묘봉으로 향하고 우린 면산으로
향했다. 해가 뜨기직전이라 그런지 석개재의 차가운 바람이 범여의 얼굴을 때린다. 너무나 차갑게...
후배 산꾼과 둘이서 하는 산행이다보니 여유롭다. 주위 풍경을 맘껏 즐기면서 말이다.
면산에 도착 목을 축이고 리번만 보고 갔다. 가면서 버섯도 따고 농담도 하면서 희희낙락....
아예 길이 없다. 리번만 간간이 보이고... 지난주 3구간에도 그랬듯이 으례 낙동정맥은 관리가 안되서
산행 코스가 그런가보다 하고 산에 도착한곳이 삼방산 거기서 허기 채우려고 도더츠에 커피에 디저트로
과일까지 먹고 지도를 보니 아차... 마루금을 벗어난 지점이 3km이상이나 벗어났다.
갑자기 맘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후배 산꾼의 눈치를 봤다. 포기하려는 기색이 보인다.
그건 안돼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베낭을 메고 뛰기 시작한다. 울트라 마라톤맨처럼 면산에 도착하니
1시간 소요. 가는 시간 절반만에 왔다. 구랄산으로 가는데 내림길이 심하다. 산꾼들이 젤 싫어하는
곳이다. 내리막이 심하면 그만큼 올라가는 곳이 많기에... 그런데다 음지에는 눈이 얼음으로 변해했다
토산령 지나 덕거리재까지 오니 너무 무리를 했는지 후배가 발에 쥐가 오는 모양이다.
베냥에서 아스피린 2알을 꺼내 먹였다. 그래도 젊음이 좋은지 내가 따라가기엔 힘이 부친다.
에공 10년만 젊었어도 ㅋㅋㅋ 백병산에 도착하니 저 건너 함백산쪽에서 서서히 어둠이 몰려온다.
아직 통리까지 5km나 남았는데 마음은 급한데 다리는 무거워지고 올음과 내림의 산행은 계속 이어지고
거기다가 키보다도 더 큰 산죽이 갈길 바쁜 산꾼에게 태클을 건다. 시간은 지체되고 천신만고 끝에
통리에 도착하니 긴장이 풀리는지 무릎의 통증은 더 심해지고 24.5km 11여 시간의 긴 여정은 끝나고..
낙동정맥 2구간 산행지도및 고도표
2월 7일 02: 00 서울 개포동 출발
05:00 태백 도착
06:30 식사겸 휴식후 출발
07:15 석개재 도착 산행 시작
09: 10 면산(1245,2m) 도착 4.2km
11: 15 삼방산 도착(3km 이상 알바)
12:30 다시 면산 도착(왕복 6,5km 알바) 6.5km
13:20 구랄산 도착 2.1km
13:50 토산령 도착 1.2km
15: 30 송전탑 안부
16:50 백병산(1259.3m) 도착 5.2km
17:10 고비딕재 도착
17:50 태현사 도착
18:10통리재 도착 4.4km
푸른 산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 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하고 산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산처럼 든든하게 지구를 디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일과이거니
신석정 시인의 들길에서
석개재(910m)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와 경북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 너뱅이 마을 잇는 고개로
910번 지방도가 지나가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오지(奧地)중의 오지이다.
봉화 방향 국도 위를 가로지르는 대형 아치에 송이 버섯 모양의 조형물 3개가
큼지막하게 설치되어 송이의 고장임을 알려준다.
석개(石開)는 마루금 오른쪽 봉화군 석포(면)의 옛 이름이다.
온통 암석과 계천(溪川)으로 형성된 까닭으로 석포(石浦), 석계(石溪)라 불리어지고
석개(石開)는 사방이 돌로 쌓인 명당이 있어 그 돌문이 열리면 1만 가구이상 살게
될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온다.
절개지로 돌출된 바위들이 석개라는 지명을 대변해 주고 있다.
면산 가는 길에서 일출을 맞이하고 (07: 30분경)
1009봉에서 아침 찬바람이 사정없이 얼굴을 내리친다
아직 강원도의 찬바람은 매섭기만 하고 자꾸만 범여는 옷깃을 다스리고...
면산 올라가는 산죽길에서
免山(綿山) 정상에 올라 서쪽 삼방산 산허리를 내려다보니
경상도 땅 石開(石浦)川이 겨울 아침 햇빛으로 아련하구나..
아, 이것이 고난의 길 시작에서 맛보는 작은 승리의 쾌감이런가..
독한 고집의 내 반항이 영혼들의 교감으로 자유의 길에 올라서는 계단임을 느끼기에..
(가곡 휴양림 계곡-멀리 동해 원덕,맹방)
석개재에서 심마니 친구와 작별하고 면산 오르면 고도를 높이는데
넘고 넘는 산죽길이 고도를 낮출 줄을 모르는데..사면 길 암봉에 객기로 올라,
가곡면 첩첩 산골을 조망하니 중봉산이 우뚝하고 저 넘어 덕풍 계곡을 가리는구나..
오늘날 우뚝한 지도자를 찾는 말 많은 세상 사람들아..네 스스로가 산이요 네 스스로가 물인것을..
무얼 그리 똑똑한 님을 찾아 헤메느뇨, 힘을 믿지 말고 백성들 모두의 衆知로 헤쳐 나아 갈 것을..
역사의 주인이 바로 우리들이 아니겠는가..
가곡 자연휴양림에서 이어지는 풍곡리는 맑고 수려한 계곡이 압권이다.
80년대까지 근 20년간 아연 광산 채굴로 번잡 하였으나 지금은 휴양림으로 개조하여
뭇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또한, 풍덕 계곡은. 모 방송국 에서 2009년 10월 가을에 1박 2일 프로 그램에 나와서도 잘 알려졌다.
면산에서 또는 석개재를 넘어 국도를 따라 삼척시 원덕으로내려가면 만나는 계곡이다
(오전골 안부,광평 화전터)
면산 내림길 넓고 편한 산죽길에서 긴 휴식과 함께 피로를 달래 줄 여유를 마신다
제 각각 한 보따리 씩의 의미를 짊어지고 먼 길 기분 좋게 달려온 동지들의 웃음 속에서
환한 德性을 느낀다..세속의 짧은 머리와 물욕의 싸움에서 벗어나, 발밑에 아려 오는
근육의 고통마저도 너털 웃음으로 씻어낼 줄 아는 그런 사람의 정을 느낀다..
이제 걸어 갈 이 높은 산 속 너뱅이골(넓은골,廣坪)에 깃든 화전의 아픔을 배낭에 담고
멀리 부산 앞 바다에서 떠나 보낼 수 있도록 쉼없이 발길을 이어가야 하리라..
(1060봉에서 바라 본 동활계곡 ,복두산-너머로 삼척 사금산 일명 태백산맥)
큰 산 된오름을 산죽길로 넘고 넘어 지나온 길과 흡사한 오늘을 걷는다..
아무도 모를 다가올 내일을 그리며 저 봉우리 끝에 서서 멀리 동해를 바라볼 뿐..
저 험한 산 깊은 골 이어 간 끝에 닿으면 내 젊음의 영혼이 스쳐 간 맹방 앞 바다를 만나겠지..
하필이면 북녘의 총든 밀입자들이 이 험한 산녘을 들이 닥친 탓에,
40년이(1968년 11월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 넘은 시기에 이 땅의 민초들이 얼마나 피흘리며 쓰러졌나
이 산이 거기이거늘 하염없이 미안하구나 나는 희희낙락 산에 오르니 말이다
면산 (免山:1245.2m)
강원도 태백시 동점동과 삼척시 가곡면 그리고 경북 봉화군 석포면에 걸쳐있는 산으로
삼척시 상사미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멀리 보인다고 해서 ‘먼산’이라고 하다가 이후에
變音이 되어 “면산(免山)”이라는 설이 있고 또다른 설은 옛날 난리때 이산으로 피신하여
화(禍)를 면(免)하였다고 해서 ‘면산’이라는 설도 있다
면산의 주봉인 이곳은 두리봉이며 산의 지세 두리뭉실하게 생겨서 붙혀진 지명이란다
가깝게 보이는 면산-삼방산 능선을 바라보며 쉽게 닿으리란 설렘으로
산죽길을 내려 밟아 보지만, 내림길이 깊어지고 山頂은 높아 지는구나..
무릇 어린 인간이 교육과 경험으로 자란다지만..어리석구나 보이는 것에 몰두하기는..
급한 오름을 오르고 또 오르고, 좁은 눈으로 바라보는 큰산을 넘고 넘어도 끝이 없고나..
왕복 6.5km를 알바하여 도착한 삼방산
범여의 오만함을 깨워준 산이여. 자연앞에 겸손해야 된다는걸 잊어버리고 지도도 보지 않은채
어느 산꾼이 잘못 붙여놓은 리번만 보고 이 곳까지 왔으니 아~~~ 이 미련한 衆生은 그 누가 구제하나
국립지리원 발행 2만5천분의 1,5만분의 1 지형도에 표기된 삼방산의 이름은 본래 면산(免山)이었다고 한다.
옛날 근동 사람들이 전쟁이 나면 이곳으로 숨어들어 화전을 일구며 난을 면(免)했다고 해서 1,175m,
삼방산을 면산이라 부르고, 지금의 면산을 두리봉 이라고 불렀다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의 면산 아래 계곡은 두리봉골이다.
하지만 일본인들이 이 땅을 경계 측량하면서 부터 낙동정맥상의 1245.2m 두리봉에 솜면(綿)자를
써서 면산(綿山)이라고 표기해 놓았다.
그 후 면산의 주봉은 삼방산이란 이름을 얻게 되었는데 수지골(수지니골),잼박골(저름박골),
원심이골(원샘이골)이 발원한 봉우리, 즉 3개의 골짜기가 합치는 곳이라고 하여 삼방산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이 산의 북쪽에 위치해 동서로 길게 뻗은 계곡을 방터골이라 하는데 이 골짜기 안에
웃방터골,아랫방터골과 같이 삼방이 다 있어 삼방산의 지명유래와도 무관하지 않다.(월간산 )
구랄산(堀謁山:1071.6)
강원도 삼척시 가곡면과 태백시 철암동 매상골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삼척시 가곡면 지(紙)에 의하면 구렁이가 알을 품는다는 구랄골 막장에 있는 산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또한,구랄산 중턱에 자리잡은 굴 안에 구렁이가 알을 품고 있어서
구랄산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구랄산(堀謁山,두리봉) 어느 계곡길에 산삼 절벽굴이 있어 심마니 휴식을 베풀었노..
어디라서 산중 계곡 물 길어와 정지이마(부뚜막)에 따뜻한 물 한 잔 데웠을꼬..
첩첩 산중 그 안골에서 칡뿌리 달게 씹으며 타는 목 마름 달래면 족한 것을..
숨찬 나그네의 시선으로 멀리서 깨끗하던 구랄산정 마루금도 다가서니 복잡하구나..
먼 나라 남의 나라 일은 잘도 알고, 천년 전 조상은 잘잘못이 보이더니,
오늘 내 땅 내 스스로는 왜 이리도 복잡하고 어려운가..여기 올라 선 나는 무엇이런가..
(덕거리봉 휴양림 삼거리)
오늘따라 등산화가 왜 이리 무거운지 구랄산에서 마신 술 기운으로 오르내리며 넘어서니
동활리 넘어가던 다래미(다람쥐) 눈물찌기미 맛보기엔 능선 길이 너무 편하구나
버들골 덕거리봉 삼거리 지나며 산죽길 이어지니 하얀 눈밭이 더욱 정겹구나..
찬 눈 속에 꿋꿋한 생명이여, 살아 있음을 느끼기에 착한 不忍之心으로 이 길을 간다..
善之善이라..生과 死가 네것 내것이 아니듯,不義도 義도 어린 백성의 몫은 아닐진대..
어찌 오늘 날 都市(세종시) 하나 만든다고 온 백성이 저리 改不改 소란스러운지 가관이로다.
여의도의 지체 높으신 나으리님들 님들은 과연 이 땅의 民草들은 안중에라도 두시는지...
토산령에서
兎山(卯山,東山) 큰 고개 넘어 풍곡골 넘나들던 버들골 호식총 호랑이는
올 한 해 庚寅에도 깨어날 줄을 모르는가..이 산 골골 약한 자에 남겨진 고난들을 거두어
죄 지은 자에게 어흥 큰소리로 꾸짖고 쏟아 부어 돌려 주어야지..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야지..
그리하여 억울하게 물려갔던 善한 백성이 다시 깨어나고, 이 땅의 주인 아닌 양반이 물려가고,
더더욱 주인 아닌 정치꾼은 죄다 물려가 험한 굴에 갇히는 노래를 들려주려무나..
귀족적인 종교의 이름으로 이 땅의 본디 영혼을 욕먹이는 성직자 승려들도 물어 가거라..
그들만의 천당 극락을 위해 그들이 만든 지옥에 있는 선한 백성의 불쌍한 영혼들을 다시 살려야지..
사방으로 산죽이 빼곡한 안부 토산령(兎山嶺:923m)에 도착한다.
손 바닥 만한 공터에 주먹만한 표지석이 웅크리고 앉아있다.
대부분의 산에는 표지석이 사람 키 만하게 크게 세워져 있는데, 이곳은 자그마한 돌로 된 표지석이
앙증맞은 모습이다.
통상, 령(嶺)이나 재, 치(峙)를 지칭하는 곳에는 표지석을 세우지 아니하고 표지판을 세운 곳이 많았음을
상기 할 때, 왜 이곳에 두었을까를 생각해 본다.
토(兎)는 토끼묘(卯)와 같은 뜻으로 12지(十二支)에서 동쪽을 의미한다.
이곳 토산령은 태백에서 동쪽 방향에 있는 재嶺이며 이곳에서 동북 방향으로는 토산(972m)이 있다.
어떤 지도에는 土山이라고 표기 되어 있으나 잘못 기재된 것이다. (태백문화원에서 발췌)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호식총이 있는 버들골을 경유하여 철암으로 내려서고
좌측으로 급격히 떨어지는 낭떠러지는 삼척군 풍곡리에 이르는 협곡이다..
태백에서 삼척으로 향하는 중요한 고개가 고비덕재, 토산령임을 감안하면
예전에는 이곳 토산령은
큰 길 이었지만 지금은 사람이 다니지 않는다고 한다.
호식총은 토산령에서 철암과 백산 중간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에 있다.
태백산을 중심으로 태백, 정선, 삼척, 영월, 동해, 봉화, 울진 등 7개 시·군의
산속 바위둔덕 등지에 현재까지 발견된 것만 해도 160여개의 호식총이라는 독특한
분묘가 산재해 있다.
사람이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면 창귀가 되어 호랑이의 종이 되는데,
창귀는 또 다른 사람을 유인하여 호랑이에게 잡아 먹히게 하고 나서야
호랑이의 종에서 벗어나게 되고 좋은 곳으로 갈 수 있다고 한다.
따라서 창귀를 꼼짝하지 못하게 하고 또 다른 호환을 예방하려는 주술적 토속 신앙에서
호식장이란 독특한 장례의식을 치루었다고 한다.
그래서, 누군가 호랑이에게 물려 가면 유구를 찾아
그 자리에서 화장을 하고 돌무덤을 쌓은 후 옹성 같은 시루를 덮어놓고,
창검과 같은 쇠꼬챙이를 꽂아두는 호식총이라는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여기서 화장은 사악함의 완전소멸을, 돌무덤은 신성한 지역임을,시루를 엎어 놓은 것은
창귀를 가두는 감옥을, 가락은 창귀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아무 소득도 없이 6.5km 이상을 알바를 하고 다시 면산에 도착하니 다리가 풀리기 시작한다
쓸데없이 힘다쓰고 구랄산 가는 내림길이 왜 이리도 힘이 드는지
내림길은 싫구나 또 다른 오름이 기다릴터 내 여린 발길이 고됨을 잘 알기에..
그냥 無心으로 걸어가라고..내 삶도 그처럼 무심으로 엮어 갈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살아 있음을 깨닫기에도 부족한 내 심장으로 어찌 그 살아가는 까닭마저 찾을거나..
生은 命이라고..내게 주어진 그 힘을 느끼고 싶어 걸어 온 길이건만..
이 산길을 걸어 어느 높은 한 봉우리에 올라서면 내 살아 있음을 느끼려나..
육백지맥(六百枝脈)이란?
낙동정맥 백병산(1259.36m) 남쪽 1.3km지점의 무명봉(1060m) (삼척시 도계읍과 가곡면 경계)에서
동북방향으로 분기하여 육백산((1243m)까지 좌우로 삼척 오십천과 가곡천(柯谷川) 지류를 가름하고,
육백산을 지나면서 부터는 삼척 오십천과 마읍천을 가름하며 핏대봉(879.4m), 삿갓봉(751.3m),
안항산((358.6m)을 거쳐 삼척항까지 이어지는 47.5km의 산줄기, 삼척 오십천 남쪽 울타리를
신상경표에서 육백지맥[六百枝脈]이라 칭한다.
동해로 난 길을 찾아 소금길 일구던 높은 산허리에 세월 잊은 산죽만 요란하구나..
육백산,안개산 넘어 삼척 앞바다로 향하는 육백지맥 영혼들을 이별하고,
길고 무성한 산죽밭을 헤매며 곰 울음 우는 늪목 동굴을 지나 산허리 돌아 올라서고,
한개고디 바라보는 송전탑 올라 가는 길에서 키 작은 묘목 소나무 바람막이 삼아 허기를 채운다..
東쪽 응봉산길(태백산맥)은 따스한 겨울햇살이 한가롭기만 한데... 범여의 다리는 천근만근 무거워만 지고
西쪽 연화산 너머 함백산 정수리는 벌써 환한 태양 빛 구름을 머리에 휘감았구나..
그래 그래 歷史와 삶이 죄다 그렇게 뒤바뀔 운명의 점철이려니와 무에 그리 애닯은고..
백병산은 0.36km우측, 정맥 능선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백병산은 원래 백산이라고 하였다.
갈수기때 하얀 암봉을 보여 주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좌측 계곡 아래 산촌 이름도 백산이고,우측 태백에도 백산이라는 지명을 따라 기차역이 있다.
백병산 삼거리에서
산불재고 (山不在高) 유선즉명(有仙則名)
산은 높이로 빛나는 것이 아니라 선인이 그곳에 있어 명산이라고 하였다.
왜 仙자를 山과 사람人을 합쳐서 만들었을까 ?
산에 머무는 사람, 산을 찾는 사람, 아니 산을 사랑하는 사람은 선인 일까 ?
사람이 산과같이 하나가 되었을 때 선인이 되어 가는 것일까…?
번잡한 도회를 떠나서 수삼일 머물고 싶은 곳이다.
백병산에 올라
백병산이 왜이리도 먼지 자꾸만 다리가 풀어진다. 저아래서 기다리는 심마니 친구넘은 어디냐고 전화질을 해대고
마음은 급한데 몸이 말이 듣지 않는걸... 갈길은 먼데 해는 저물고 이넘의 백병산은 마루금에서 360m나 떨어져 있다
그래도 갔다와야지 내 언제 낙동정맥 다시한번 더 종주한다는 보장도 없고 낮은 산 아래 안부는 높은 봉을 지나야 만나듯이,
이 땅에 더러운 것들을 치우려면 내 더러워지지 않을 손을 가져야 할 것이니, 비굴하지 않은 善으로 살아라..
고비딕재에서
서서히 어둠이 몰려오기 시작한다. 아직도 통리재까지 3,5km나 남았다 지금 시간이 17:20분
갈길은 먼데 해는 저물고....
24k.5m, 10t시간 45분의 긴 여정을 마치고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통리재에서(강원도 태백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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