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채와 사랑채
본체
본체 후면
전체전경과 후현무 주산
좌청룡방
좌청룡방
우백호방
우백호방
전면 안산 전경
안산 좌측 학의 형상
위는 경남 의령에 있는 독립운동가이신 백산 안희제선생의 생가입니다
보시는바와 같이 재물 터 답게 만석군 재물을 보유한 거부였던 선생은
전재산을 독립운동에 사용하고 오로지 나라를 되찾는데 일생을 헌신하신 위대한 분이십니다
청년시절엔 항일 비밀결사 대동청년단을 조직하여 열심히 활동하셨으며,
그 후 직접 북간도와 시베리아 등을 여행하시며 독립군들의 실정을 보시고
개탄하시다 이유석, 추한식 선생과 함께 독립군 자금을 보내주기 위해 부산에서 백산상회를 설립하십니다.
이 백산상회는 처음에는 소규모 회사였으나, 나중에는 그 규모가 커져서
부산에서 가장 큰 회사로 성장하여 백산무역주식회사로까지 발전하게 되지요.
그리고 이 백산상회의 사장은 경주 최고의 부호였으며 독립운동에 힘쓰셨던
경주최부자 12대 최준선생이셨습니다.
이 백산상회는 언제나 적자였다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회사가 부실해서가 아니라 독립운동 자금으로 엄청나게 많은 돈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죠.
늘 손해를 보면서도 진정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헌신하신 선생과
또 그런 선각자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것이겠지요..
참고로 독립운동사의 위대한 위인 백범 김구선생, 백야 김좌진, 백산 안희제선생을 삼백이라 하지요....
1993년 1월 8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93호로 지정되었다. 안채와 사랑채·부속사 등 2동으로 구성된
일반적인 농가주택이다.
안채는 정면 6칸 팔작지붕집으로 앞뒤 툇간이 발달하여 길어진 측면의 길이와 조화를 이룬다. 실내는 왼쪽에서부터 마루, 방, 대청 2칸, 방, 부엌의 순으로 배치되어 있다. 동향으로 있어 남측면이 남향으로 1칸 마루가 사랑의 역할을 한다. 평면도 전후 툇간이 발달하여 겹집 형식으로 발전하여 기능이 다양한 방이 필요하지만 별동(別棟)을 만들지 않고 한 건물 안에서 처리한 조선 후기 주택의 특징을 보인다.
사랑채는 안채 정면에 안채와 같이 동향으로 배치하여 대지가 좁지 않은데도 안채와 바짝 붙어 있다. 정면 4칸의 전후 툇간으로 구성된 3량 초가집으로 안채처럼 남측면에 마루를 두었다.
안희제는 의령군 부림면 입산리의 속칭 설뫼마을에서 태어나 독립운동에 헌신한 민족지도자이다. 민족교육과 민족언론 육성에도 선구적 역할을 하였고 만주를 무대로 독립운동을 하다 광복 2년 전에 일생을 마쳤다. 부림면에 선생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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