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일자: 2012. 09,29
☞ 산행날씨:아침에 비, 낮에 맑은 날씨, 약간추움
☞ 참석인원: 나홀로 산행
☞ 산행거리: 도상거리 16.8km+어프로치2.5km / G.P.S 21.2km / 8시간 40분소요
☞ 산행코스: 23번 종점-여행스케치-임도-첼봉-오두지맥 분기점-말머리 고개-441봉
485봉-수리봉 봉수대-521봉-기산리 갈림길-석현리 갈림길-헬기장-앵무봉
헬기장-도솔암 갈림길-임도-보광사-보광사 일주문-됫박고개
임도 삼거리-용미리 공원묘지-70번 송전탑-367봉-헬기레펠 훈련장-군부대 정문
헬기장-박달산 삼거리-달구니고개-168봉-채석장-예비군 훈련장-장지산(163봉)
용미리 마애석불입상(용암사)-양지동고개
☞ 소 재 지: 경기도 양주시 장흥읍, 백석읍 / 고양시 덕양구 / 파주시 광탄면
추석전이라 딱히 갈데도 없고하여 서울근교에 있는 오두지맥을 2번에 끊어서
마칠까하고 이른 새벽에 일어나 베낭을 챙긴 다음에 도둑고양이처럼 집을 나선다.
9월말이라 그런지 아침 공기는 상당히 차갑기만 하다.
강남구청역에서 지하철 7호선을 타고 도봉산역에서 내려 1호선을 갈아타고 의정부역에
내리니 꽤나 굵은 비가 내린다. 고향이 있어도 가지 못하는 실향민 아닌 실향민(?)의
마음을 무겁게만 만든다. 그래도 집을 나섰으니 산으로 가야겠지.
오두지맥(烏頭枝脈)이란
한북정맥이 백두대간의 추가령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내려오면서 한강과 임진강의
합류지점인 교하의 장명산에서 그 맥을 다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신산경표(저자 박성태)에는 한강봉에서 도봉산으로 내려가지 않고 말머리고개로 내려가
수리봉, 계명산(현 고령산), 박달산, 월롱산, 보현산으로 이어지면서 한강과 임진강의 경계를
이루는 파주의 오두산(통일전망대)에서 그 맥을 다하는 산줄기를 한북정맥이라 한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이 마루금으로 종주한 후 이 길이 새로운 한북정맥이라 하는데 아직까지
확실한 이름이 명명되어 있지 않아서 오두지맥(혹은 한강기맥)이라 부르기로 했다.
이름이 정해지면 그때 가서 고쳐 부르면 될 것이다.
그런곳이 비단 이곳 뿐이랴
금남정맥에서도 금만봉에서 대둔산, 계룡산을 거쳐서 부여 백마강의 구드레나루로
빠지는 것과 낙남정맥길에 용지봉에서 불모산을 통과하여 낙동강 하구언인 남해로
빠지지 않고 김해 신어산을 거쳐서 상동면 매리의 고암나루터로 빠지는 것도 있지 않은가?
그건 나중에 지리학자들이 수정할 일이고... 어쨌던 간에 정해진 오두지맥을 가보기로 한다.
오늘 산행구간의 지도
추석 전날이라 딱히 갈데도 없고하여 서울 근교에 있는 오두지맥 1구간을 나선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보온병에 따뜻한 물을 담고 라면 1개와 캔맥주 한캔 등
간단하게 베낭을 챙긴 후 집을 나서서 05시 50분에 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에서
도봉산역까지 간 다음에 1호선으로 갈아타고 의정부역에서 내린다.
의정부 역사에서 바라본 의정부 시내의 모습(06:45)
의정부역은 지난 7월에 수락지맥 구간을 타기위에 올 때에는 굉장히 지저분 하더니만
이번에 와보니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재벌기업의 백화점이 들어서 있고 역사도 깨끗하다.
시내 저 너머의 수락산에는 먹장구름이 잔뜩 끼어있고 이곳은 꽤나 굵은 비가 내리고 있다.
의정부 역사(驛舍)의 모습
장흥 유원지 가는 버스 정류소(07:10)
역사(驛舍) 맞은편에 있는 김밥천국에 들려 계란탕을 시켜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장흥 유원지 쪽으로 가는 23번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의정부 시내를 빠져나와 경민대학을 거치고 울대고개를 넘어서 장흥
면소재지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육군 3563부대 정문앞 종점에 도착한다.
의정부역 동부광장 버스 정류장
버스종점(07:40)
부대앞 버스종점에서 하차하여 15분간을 도로를 따라서 말머리재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다행히 비는 그치고 밝은 햇살이 나타난다. 좌측의 부대에서 장병들이 국민체조를
하는지 국민체조 음악이 흘러 나온다. 참으로 오랫만에 들어보는 소리이다.
제법 쌀쌀하게 불어대는 바람은 차갑기만 하다. 좀 두꺼운 자켓을 입고온 게 다행이다.
피카소라는 간판이 있는 건물을 지나니 고개위의 들머리가 보인다.
여행스케치(07:50)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의 고개에 있는 ‘여행스케치’라는 레스토랑은
오두지맥 산꾼들은 주요 포스트 지점이다.
말머리재로 향하는 고개에서 우측 여행 스케치라는 레스토랑 정문 계단으로
올라서 좌측으로 접어들면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여행스케치 계단을 타고 올라가다가...
정문으로 들어서기 직전에 좌측으로 접어들면 시그널이 보인다.
숲속으로 희미한 登路가 보이기 시작한다.
여행스케치에서 10분정도를 올라오니 돌로 만든 테이블이 있고
포장된 임도가 나타난다. 이 도로를 건너서 좌측 숲속으로 올라간다.
넓은 임도가 나타나고 상당히 급경사의 된비알을 만난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른다. 비가 온 뒤라서 그런지 길은 미끄럽다.
로프를 잡고 오르막을 올라간다. 뒤쪽을 바라보니 도봉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등로 주위에 있는 멋있는 소나무에는 이런 표지판들이 붙어있다.
첼봉(516m:08:20)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에 있는 봉우리로 한북정맥길에 있다.
정상에는 무인산불감시 카메라가 있고 헬기장이 있다.
이곳에 서면 서울의 진산인 북한산과 도봉산이 한 눈에 보인다.
2년전 한북 정맥길에 있었던 솟대모양의 나무조각은 보이질 않는다.
홍복마을에서 서쪽으로 바라보이는 제일 높은 봉우리이가 첼봉이다.
백석읍 기산리·장흥면 석현리,부곡리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제일 높은 봉우리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반면 옛 문헌에는 차일봉(遮日峯)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봉우리 모양이 차일을 친 것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첼봉에서 바라본 도봉산과 북한산의 모습
첼봉에서 좌측으로 한북정맥길을 타고 내려온다.
바람이 자꾸만 세진다. 등로에는 어제밤에 내린 비와 바람으로
인해서 밤이 꽤나 많이 떨어져 있다. 지난주에 밤에 골병이 들어서
쳐다도 보기 싫었는데 ... 인간이 왜이리 간사한고... 또 다시 밤을 줍는다.
잠깐 사이에 2되정도는 주운것 같다. 베낭에 넣고 다시 길을 간다.
오두지맥 가는 길에서 숲 사이로 바라본 첼봉의 모습
오두지맥 분기점(08:45)
한북정맥 한강봉과 첼봉 사이에 위치한 분기점에는 한강봉산사랑산악회에서
설치한 이정표(한북정맥/도봉지맥갈림길, E126º58'40", N37º45'86.4",
←한북정맥(한강봉) 0.8km/↓한북지맥(장군봉) 1.3km/→도봉지맥(첼봉) 0.9km)와
'한북정맥 원류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기존의 첼봉 방향
한북정맥길을 도봉지맥으로 분류를 해 놓았고, 오두지맥의 산줄기를 한북정맥으로 표시를 해 두었다.
참고로 안내문의 내용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조 여암 신경준 선생이 산경표가 우리나라의 산들을 대간과 정맥,
기맥,지맥으로 분류시켜 상세하게 정리한 게 山經表이다.
한수단강기하
한북정맥 마지막 오두산은 교하마을에서 서쪽으로 즉 바닷가로 7리(2.8km)인
곳에 한강물이 여울어지는 두 강(한강,임진강)과 합쳐지는 그 아래에 있다고
아주 구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북정맥:한강봉-꾀꼬리봉-장군봉-수리봉-고령산-앵무봉-됫박고개-박달산
미륵당-월롱산-기간봉-보현산-오두산
*도봉지맥: 한강봉-첼봉-울대고개-사패산-도봉산-오봉-소귀고개-상장봉-노고산
숫돌고개-국사봉-현달산-고봉산황룡산-장명산
분기점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오두지맥의 첫 발자국을 내딛는다.
늘상 지맥, 기맥길에서 자주 만나는 반가운 시그널들...
이곳도 밤나무에서 떨어진 밤들이 꽤나많다
이곳에서도 밤을 주어담고 조금을 더 내려가니 절개지가
나오고 우측으로 내려서니 밤머리 고개가 나타난다.
절개지 위에서 바라본 양주군 장흥면 석현리의 모습
말머리 고개(백석고개:09:10)
양주군 장흥면 석현리에서 백석읍 기산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이곳에서 말이 굴렀다 하여 말머리(馬頭) 고개라 붙여진 이름이다.
고개가 무척 험하여 지금도 차량들이 넘나드는 데 어려움을 겪을 정도이며,
그나마 최근에 도로가 확,포장되어 예전보다는 쉽게 넘을 수 있다.
해태.크라운 제과 연수원 정문으로 접어들어 마당안으로 들어선다.
연수원 마당에서 바라본 백석읍의 모습
백석(白石)이란 땅이름은 18세기 중반의 문헌인 여지도서(1757)에서 처음 등장한다.
18세기 후반의 문헌에서는 구체적인 마을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호구총수(1789)는 백석면이 일패리(一牌里)·이패리(二牌里)·삼패리(三牌里)·사패리(四牌里)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이어서 동국여도(1801∼1822), 청구도(1834),
양주목읍지(1842), 대동여지도(1861), 대동지지(1864). 양주목읍지(1871), 조선지리략(朝鮮地誌略, 1888),
양주군읍지(1899), 양주읍지(1899)에서도 백석이란땅이름이 확인된다.
백석은 양주동에서 서쪽에 있으며, 읍치로부터 초경이 10리, 종경이 40리 되는 거리에 있다고 하였다.
한편 정조실록 18년(1794) 1월 17일 조항에서는 양주읍치 뒤로 두 갈래의 길이 있는데,
북쪽에는 울대현(蔚垈峴)이 있고 서쪽에는 백석면이 있어 곧장 관서로 통하게 되어 있다고 하였다.
양주시 11개 읍면동 가운데 하나로 동쪽으로 양주동, 서쪽으로 파주시 광탄면, 남쪽으 로 장흥면,
북쪽으로 광적면과 접해 있다. 면적은 군내에서 장흥면 다음으로 크다.
백석읍은 남쪽의 앵무봉(鸚鵡峰, 621.8m)으로부터 시작하여 북쪽의 노아봉(老兒峰, 336m)에
이르기까지 한강봉(漢江峰,436m)과 은봉산(隱鳳山,379m) 등의 연봉을 이루어서 동서의 지형구분이 뚜렷해진다.
따라서 북쪽의 오산리(梧山里)에서부터 광적면 가납리와 광석리에 걸친 드넓은 분지가 발달되어 있고,
기타의 지역은 거의 산악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면소재지는 오산리에 있으며, 방성리(防城里),
홍죽리(弘竹里), 연곡리(蓮谷里), 기산리(基山里), 가업리(加業里), 복지리(福池里) 등 7개의 법정리와
26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면소재지인 오산리에는 면사무소를 비롯하여 경찰지서,
농협, 양주소방서,초, 중,고 학교 등이 있다. 최근 복지리와 가업리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인구가 급증하였으며, 그 결과 2001년 10월 1일 읍으로 승격되는 경사를 맞이하였다.
크라운 해태제과 연수원 마당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보면 이 건물은 주인을 자주 바뀌는 비운을 맞는것 같다.
이곳은 원래 송추유스호스텔이었다고 한다. 아직도 이 지역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그러다가 영업이 되질 않아서 강남청솔학원이라는 기숙학원이라고 바뀌었다가
지금은 제과업체인 크라운.해태제과의 연수원으로 바뀌어 있다.
마당에 접어들어서 잠겨있는 초록색 대문을 지나가야 하는데 오늘이
명절연휴라 그런지 철문은 굳게 닫혀있다. 그런다고 안가나...
대문옆 스텐 난간 데스리를 잡고 돌아서서 철대문을 통과한다.
철대문을 통과하니 포장도로가 나오고 좌측에 있는 돌로 쌓은 담장을 타고
숲속으로 올라선다. 숲으로 접어드니 군사시설인 교통호와 벙커들이 나타난다.
벌레 한마리가 명절쉬러 가나... 난 고향이 있어도 못가는 실향민(?)인데.
군사시설인 교통호의 모습
삼거리 능선 삼거리(09:20)
(←고령산 1.0km/송추유스호텔,기산리 0.4km↘)
이정표를 지나서 우측으로 등로를 이어간다.
441봉(09:30)
정상에는 삼각점(△문산 468 2007 재설)이 있고 국토정보지리원 안내문이 있다.
가야할 수리봉(기산보루성)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름길의 곳곳에 군용벙커들이 많이 보인다.
485m봉(09:40)
이정표 (→고령산 0.7km/크라운.해태 연수원,기산리 0.8km↓)가 나타나고
정상에는 평평한 안부가 있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급하게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막을 올라간다. 이곳에서 오늘 처음으로 사람 2명을 만난다.
차림새로 봐서 아마 도토리나 버섯을 채취하는 사람처럼 보인다.
오르막을 치고 오르니 돌담으로 쌓은 산성이 나타난다. 기산보루성이다.
수리봉(수(기산보루성:530m:09:55)
경기도 양주군 장흥면 석현리와 백석읍 기산리의 경계에 놓여있으며
수리봉은 수리처럼 생긴 봉우리라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말머리고개에서는 서쪽으로 위치해 있고, 앵무봉에서는 동쪽으로 위치해
있는 봉우리로서 오두지맥이 지나는 곳이다.
수리봉에는 기산보루성과 봉수대, 그리고 도봉산과 삼각산(북한산) 일대를 관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보루성이란 적의 공격이나 접근을 막기 위해 돌이나 흙으로 쌓은 진지를 말하는데, 기산보루성은
양주시에 분포된 28개 중에 하나라고한다. 성을 축조한 연대는 자세히 알 수 없고, 다만 이곳에서 출토된
약간의 토기 유물로 보아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역사학자들의추정만 있을 뿐이다.
이곳 보루성은 남쪽으로 높이 4m 북쪽으로 높이 1m 길이 4m 정도의 성벽이 남아있고. 활석을 이용해
자연경사를 유지 하면서 바른층쌓기로 축조됐음을 볼 수 있다. 성 내부의 북쪽 한 칸에 400 x 460 x 100Cm
정도의 구덩이가 있는데, 집수시설인지 군사시설인지 알 수없지만, 이 곳이 봉화를 피웠던 봉수대의 흔적이
아닌가 추정만 할 뿐이다. 이 성의 축조 시기를 삼국시대로 추정하고 있는데, 현재의형태로 보아서 조선시대에
개축한 모습을 띠고 있어 고려 및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계속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 용어해설 -
1)보루성:적의 공격이나 접근을 막기 위하여 돌이나 흙으로 쌓은 진지
2)봉수대:양주시에 현존하는 봉수대는 현재 남아 있지 않으나, 양주문화원에서 편찬한
<양주땅이름역사>에 나오는 봉수대는 여러 곳에서 확인된다. 백석 한강봉 봉화터,
백석 기산리 팔일봉 봉화터, 남면 신암리 백적산 봉화터, 장흥면 교현리 상장봉 봉수지,
유양동 대모산 봉수와 산북동 태매산 봉수, 산북면 큰황산 봉수, 덕정동의 봉우재산,
그리고 이곳 기산보루성 봉화터 등이 있다.
3)대모산성:양주시 백석읍 방성리와 유양동, 어둔동에 걸쳐 있는 산성으로 양주산성이라고도 한다.
(기산유원지 상가번영회 설치 안내문에서) -펌-
수리봉 정상에 있는 기산유원지 상가 번영회에서 설치한 기산보루성 안내판
기산보루성 정상에서 바라본 도봉산과 북한산의 모습
저 아래 송암 스페이스 센터가 보이는데 나무에 가려 사진이 영 엉망이다.
민간 최대 천문테마파크인 송암천문대가 그것이다. 한일철강 엄춘보 회장의 호를 따서
건립한 송암천문대는 9대의 망원경을 비롯해 120석 규모의 천체 투영실과 최첨단
시뮬레이션 그래픽을 통해 우주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 다양한 천문시설이 자랑거리다.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천문대 본관과 지상 2층 규모의 스페이스센터로 구성됐으며
관람객들을 실어 나르는 33인승 케이블카도 설치됐다. 천문대를 오가는 케이블카에서
내려다보는 북한산 백운대와 도봉산, 오봉산 등의 절경은 한 폭의 멋진 풍경화다.
100실 규모의 숙박시설도 갖추고 있어 하룻밤 머물면서 별자리를 관측하기에 제격이다고 한다.
양주군 백석읍쪽의 은봉산(隱鳳山:397.8m)의 모습
백석읍 가업리와 홍죽리 그리고 기산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은(銀)이 나는 산 혹은 부엉이가 숨어있던 산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이곳에서 은(銀)을 채굴했다고 하며, 지금도 은봉산 중턱에는
당시에 채굴했던 은굴이 있다고 한다. 은봉산은 19세기 중반의 문헌인 양주목읍지(1842)에서부터
확인되는데 한자로는 은봉산(隱鳳山)이라고 하였다. 양주목읍지(1871), 양주군읍지(1899),
양주읍지(1899)도 마찬가지이다. 땅이름 유래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얘기도 전해진다.
남씨 일가에서 장사를 치르는데, 지관이 말하기를 이곳을 파고 바위돌이 나오면 시신을
그 위에 올려놓고 묻으라고 하였다. 그러나 자손들은 시신을 돌 위에 올려놓고
묻을 수 없어 바위돌을 들어내었더니 마침 부엉이 3마리가 이곳에서 날아갔다고 한다.
그 후 우환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혹은 봉황이 숨었다가 날아갔다고 하여
은봉산이라고도 한다는 것이다. 정상 부근에 부엉이묘가 남아 있다.
그 옆으로 불곡산과 임꺽봉, 상투봉, 상봉도 살짝 보인다.
가야할 능선이 보이고 우측의 앵무봉과 좌측에 공군부대가 자리잡고 있는 고령산의 모습
기산보루성에 설치되어 있는 등산 안내도
수리봉 정상의 삼각점(△문산 467 1992 재설)
10여분을 기산보루성 정상에 머물면서 머물면서 주위의 멋진 仙景을
감상하고 좌측 능선으로 앵무봉을 향해서 오두지맥 능선을 이어간다.
군부대의 표시판이 보이기 시작하고 능선 안부를 편하게 간다.
산 아래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인해 상당히 추운 느낌이다.
고도편차가 거의 없는 편안한 능선을 계속 이어간다.
지맥길이 이렇게 편한가 싶을 정도로 길은 너무 잘되어 있다.
통상적으로 기맥,지맥길은 길은 없고 엄청 힘이드는 곳인데...
멋진 소나무들이 자주 보인다. 조경업자들이 보면 군침을 질질 흘릴만한...
521봉(10:15)
석현리갈림길이다. 이정표 (←앵무봉 2.0km/고령산 0.8km→/석현리 2.5km↙)가 나온다.
이곳에서 직진하여 계속해서 앵무봉쪽으로 걸어간다. 바람이 차갑기만 한다.
희한하게 생긴 소나무 ㅋㅋㅋ
기산리(基山里)갈림길(10:30)
이정표 (←앵무봉 1.3km/고령산 1.5km→/기산리 1.5km↗)가 나온다.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에 있는 리(里)로서 산지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며 기산저수지 가 위치해 있다.
자연마을로는 턱골, 주리골, 안고령, 석골 등이 있다. 턱골은 마을이 큰 산 밑에 턱이 진 형세로 되어
있어 붙은 이름이다. 주리골은 주씨와 이씨가 처음 정착하였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안고령은 고령산에 있는 12개의 계곡 가운데 가장 안쪽에 있는 골짜기에 마을이 형성되어 붙여진 이름이다.
석골은 옛날 석씨가 부락을 개척했다 하여 붙은 명칭이다.
기산리에 있는 저수지는 면적 14만 8760㎡, 저수량 878t, 몽리면적 203ha로, 장흥국민관광단지 인근에 있다.
높은 산에 둘러싸여 경치가 수려하며, 잉어가 잘 잡히는 낚시터로도 유명하다. 장흥면에서 백석읍· 광적면으로
이어지는 포장도로가 나 있어 수도권 드라이버 코스로도 알려져 있고, 저수지 아래 파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각종 향토음식점과 카페가 많아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조금을 더 가니 이정표(←수리봉 ↑돌고개 유원지 →앵무봉) 가 나타나고 앵무봉으로 향한다.
이정표를 지나니 진짜 멋진 천수천안 관음보살처럼 생긴
소나무를 통과하니 멋진 암릉구간이 나타난다.
산 위의 안부 능선은 초겨울 날씨를 연상케 할 만큼 쌀쌀하다.
그러나 산행하기는 더없이 좋은 날씨이다.
안부의 등로에 커다란 암릉이 지맥길을 막는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소리가 난다. 무의식중에 몸을 움추린다.
나홀로 산행을 즐기면서 생긴 버릇이다. 산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다.
소나무 전망대 (10:40)
이정표 (←고령산 1.7km/석현리 1.0km→)가 있고 굉장히 넓은 너럭바위 옆에
아주 멋지게 생긴 소나무가 있고 저 멀리 도봉산과 북한산 그리고 좌측으로는
지나온 첼봉이 보이고 발 아래는 장흥 유원지가 보이며 우측으로는 지맥길이면서도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어서 갈 수없어 우회해야 할 고령산이 한 눈에 보인다.
그야말로 일망무제인 곳이다. 아쉽다면 살짝 낀 雲霧로 인해 뚜렷히 볼 없다는 점이다.
오두지맥길이면서도 정상에 군부대가 점령한 바람에 갈 수 없는 계명산(고령산)의 모습
소나무 전망대에서 바라본 장흥 유원지
멋진 소나무가 있는 너럭바위 전망대에 오르니 조금전에 소리가 들렸던
사람들이 술판이 벌리고 있다. 이 분들은 이 아래마을의 사람들로 밤과 도토리
버섯을 채취하러 왔다고 하는데 버섯을 채취하는지 술을 먹는지 아침부터 술판이다.
내가 너럭바위 위로 올라서니 반갑게 인사를 한다... 인사성 한번 바르다.
나이는 나와 비슷하게 보인다. 그러면서 막걸리 한잔을 하라고 한다.
나도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막걸리 2잔에 삶은 계란을 하나 얻어 먹는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일어서려 하니까 그런 법이 어디 있느냐고 하면서
막걸리가 떨어졌다고 하면서 소주를 권한다. 다시 주저앉아 소주 2잔을 마시고
고맙다는 인사를 건내고 다시 길을 떠난다. 마침 배가 고팠는데 잘 먹고 간다.
아니~~~ 이런 횡재를?
조금전에 마신 술 때문인지 갑자기 배가 아파온다.
그래서 등로에 베낭을 벗어놓고 숲으로 들어가서 시원하게
버리고 일어서면서 바지를 올리는데 아니 이게 웬 횡재야?
능이버섯 2개가 방긋히 웃고 있는게 아닌가.
추석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조심스럽게 따서 베낭에 넣는다.
조금을 올라가니 공군 8976부대장의 지뢰를 조심하라는
부대장의 경고 안내판이 보이기 시작한다.
조금을 올라가니 헬기장 가기 직전에 좌측 등로 아래로 시그널이 보인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정상이 차단된 고령산(계명산) 옆구리로 해서
나아가 부대 포장도로를 따라 내려가서 됫박고개로 연결한다고 한다.
계명산 아래 헬기장(11:05)
계명산 아래 헬기장에 오르니 이정표와 함께 사격시 빨간 깃발을 올리는
국기봉이 있다. 원래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계명산(고령산)으로 등로를
이어가야 하나, 국가의 중요시설을 관리하는 공군부대가 자리를 잡고있어
부득히 앵무봉으로 우회하여 도솔암과 보광사를 거쳐서 됫박고개로 이어간다.
선답자들의 산행기를 따라서 나도 그 길을 이어가련다.
특히 名刹 보광사를 관람한다는 게 얼마나 큰 보너스가 아닌가.
그래도 궁금하여 좌측으로 향하는 계명산쪽으로 가보니 부대장의 경고판과 함께
원형 철조망이 처져있다. 다시 우측으로 돌아서 앵무봉으로 향한다.
헬기장에서 오르막을 치고 올라 앵무봉으로 올라선다.
벌써 산에는 가을을 준비한다. 가을꽃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앵무봉으로 올라서니 가장 먼저 이정표가 산꾼을 반겨준다.
앵무봉에서 바라본 고령산(高靈山:585m)의 모습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석현리와 백석읍 기산리, 파주시 광탄면, 고양시 벽제동에 걸쳐있는 산이다.
개명산은 원래 고령산(高嶺山 혹은 高靈山)이라 불렸고, 그 후 한때 계명산(鷄鳴山)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동여비고(1682)는 고령산을 일명 계명산(鷄鳴山)으로 부른다고 하였으며, 동국여도 (1801~1822)는
고령산의 한자를 ‘고령산(高靈山)’으로 적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고령산이란 이름은 15세기 중반의 문헌에서 처음 등장한다. 세종실록 30년(1448) 12월10일 조에는
삼군진사무소에서 고령산(高嶺山) 등을 강무장(講武場) 즉 왕의 수렵장소로 정할 것을 건의하는 기사가 보인다.
조선왕조실록에는 고령산 혹은 고령사와 관련하여 총 7건의 기사가 확인된다.
특히 영조∙정조대에는 왕의 행차기록이 있는데, 숙빈(叔嬪) 최씨의 묘소인 소년원(소령원)이 이곳에 있기 때문이다.
주변에는 장흥관광지, 돌고개유원지, 기산유원지, 일영유원지 등이 있으며, 장흥 조각 아카데미,
장흥 아트파크, 송암 스페이스센터, 장흥자생수목원 등과 온릉(사적 제210호) 및
권율장군묘(경기도기념물 제2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사각정자에 쉬던 산꾼이 찍어주는 바람에 인증샷을 남긴다.
앵무봉 정상에 있는 등산로 안내판
고령산 앵무봉(622m:11:15)
파주시광탄면기산리와 영장리, 장흥면석현리, 양주시 장흥계곡에 걸쳐있으며,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다.
감악산 남맥 끝머리 우뚝 서있는 이 산위에는 앵무새가 마주앉아 있는 모양을 한 앵무봉이 있으며
이 봉우리에 올라 사방의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본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높이가 별로 높지 않으나, 경기도 북서지역에서는 감악산(675m)과 더불어 가장 높은 산으로 꼽힌다.
북쪽으로 양주시가, 남쪽으로 북한산 백운대가, 동쪽으로 불국산, 사패산, 도봉산 등의 봉우리가 있다.
산 아래에 있는 보광사는 894년(진성여왕 8) 도선국사가 왕명으로 창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산기슭에는 도솔암이 있는데, 말 그대로 소나무로 둘러싸인 암자이다.
도솔암에서 조금 더 오르면 정상이다. 정상은 평탄한 공터이며, 북쪽으로 감악산이 보인다.
정상 남쪽의 봉우리는 군사지역으로 산행할 수 없다.
고령산은 1634년에 주조한 보광사 범종과 조선 후기에 편찬된 《양주목읍지》에 각각 고령산(高嶺山)과
고령산(高靈山)으로 기록되어 있어 높고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산정에서 북서편으로 능촌교를 지나면 영조대왕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묘소인 소령원(昭岺園)이 있다.
임진왜란 때 불탄것을 조선조 광해군 14년(1622년)에복구 했다.
봉우리 정상에는 사각정자와 이정표가 있고 산림욕장 안내판 아래에
누워있는 표지석이 있고 우측으로 조금을 더 내려가니 조금 낮은곳에
또 다른 표시석이 하나 서있고 그 옆에는 잘 관리된 헬기장이 있다.
이곳에서 셀카로 인증샷을 남기고...
헬기장에서 바라본 김포와 인천의 모습
앵무봉 정상을 두루 구경을 한 다음에 다시 사각정자 옆에 있는
데크목으로 설치되어 있는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조금을 내려가가니 이정표(←0.4km 정상 보광사 0.7km→)가 나타나고 넓은 평상이 있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가면 도솔암이 나오는데 등산로를 막아 놓았다.
다시 급경사로 내려가는데 길은 미끄럽다. 파주시에서 설치한 로프가 고맙기만 하다.
다정하게 붙어있는 참나무도 만나고...
조금을 더 내려가니 의자 4개가 있고 다시 급경사로 내려선다.
조금을 더 내려가니 脈 산꾼들에게 금기인 조그만 개울이 나온다.
하지만 이곳은 지맥길이 아닌 우회로이기에 그냥 조그만 개울을 건넌다.
도솔암으로 올라가는 길을 우회해서 내려오니 도솔암으로 이어지는 임도가 나온다.
도솔암으로 올라가는 임도의 모습
보광사로 내려가는 임도는 비포장도로로 길은 좋은 편이다.
입산통제 팻말이 나오고 우측으로는 산사태를 막기위한 사방댐이 설치되어 있다.
보광3교라는 조그만 다리를 건너서 보광사 경내로 접어든다.
경내에 들어서자 우측에 커다란 석불을 만난다.
보광사 석불전
1981년에 조성된 대불로서 호국대불(護國大佛)로도 불리는데
대웅보전에 모셔져 있는 보살의 복장(腹藏)에서 출현한 부처님
진신사리 11과 뿐만 아니라 5대주에서 가져온 각종 보석과 법화경,
아미타경 및 국태민안,남북통일 발원문 등이 함께 석불복장에 봉안되었다.
12.5m 가 되는 웅장한 규모가 보는 이를 압도할 뿐만 아니라
정교한 조각 솜씨가 돋보이는 석불이다.
영각전에서 바라본 보광사 경내
보광사 설법전
2년전인 2010년 10월 22일에 화재로 전소된 설법전이 깔끔하게 새로 지었다.
파주보광사숭정칠년명동종
보광사 법종각에 있는 높이 98.5㎝의 중형 범종이다. 둥근 형태의 머리 위에는
2마리의 용이 있어 종을 매다는 고리 역할을 하고, 어깨부위에는 꽃무늬로 장식하였다.
몸통은 띠를 둘러 구획을 나누었다.
위쪽에는 사각형의 4개와 유곽과 4구의 보살입상이 교대로 배치 되었다.
아래쪽에는 발톱이 5개인 용과 만든기시를 알려주는 글이 양각되어 있다.
종의 입구로부터 조금 위쪽에는 파도무늬와 용으로 된 문양을 두었다.
조선 인조 12년(1634) 설봉자(雪峯子)가 만들었다.
이 범종의 형태는 현등사 종이나 설봉자의 또 다른 작품인 고려사 종과 양식이 매우 흡사하다.
전체적으로 푸른 녹이 감돌며, 볼륨감과 안정감이 있는 조선 후기 범종이다
보광사 대웅보전
경기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 13번지 있는 사찰로서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인 봉선사의 말사로서 한강이북에
있는 6대 사찰로서 유서깊은 절이다
보광사는 천년고찰이며 孝 도량으로 유명하다.
신라 진성여왕 때 건립된 고찰이기도 하지만
조선 제19대 숙종의 후궁이었던 숙빈최씨의 아들인 영조의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애틋한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라 그런 모양이다.
신라 진성여왕 8년(894년)에 왕명으로 승려 도선이 건립한 후
고려 고종 2년(1215년) 승려 원진이 중창, 우왕 14년(1388년) 승려 무학이 삼창한 것이
임진왜란으로 모든 건물이 불탔고 광해군14년(1622년) 법당과 승당을 복원하였다.
그 후 현종 8년과 영조 16년에도 중수가 이루어 졌다.
철종 14년 쌍세전과 나한전이 건립되었고
고종 21년에 관음전과 별당이 고종 30년에 산신각을 지었다.
그 뒤 광무 5년(1901년)에도 중수가 있었고 6,25전쟁으로 일부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재건과 중창을 거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웅보전 목조석가여래좌상
대웅보전에 모셔진 다섯분의 부처님중 본존으로 높이 106cm, 어깨폭이68cm이다.
고려 1215년(고종 2년)원진국사(圓眞國師)가 중건할 당시 법민대사(法敏大師)가
목조불보살상(木造佛菩殺像) 5위를 봉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본존인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약사여래좌상과 아미타여래좌상으로 이루어진
삼세불과 그 옆 협시불로 자씨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입상으로 모셔져 있다.
대웅보전 외부 판벽화..
전각의 벽체는 흙이나 회를 바르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벽체는 모두 판자를 끼운 판벽이다.
판벽은 회벽에 비해 내구성이 떨어져
그곳에 그려진 벽화들의 수명이 오래가지 않는다.
그러나 이 판벽화는 짧은 내구성에도 불구하고
남측 면에 불교의 호법선신인 위태천을 그린 ‘위태천도’
사자를 타고 있는 문수동자의 모습을 묘사한 ‘기사문수동자도’,
‘금강역사도’
동측 면에 ‘용선인접도’
‘괴석도’
'대호도’
‘노송도'
‘연화화생도’
북측 면에 선재동자와 함께 그려진 ‘백의관음도’
6개의 상아를 가진 코끼리를 타고 있는 보현동자를 표현한 ‘기상동자도’ 등
모두 10점이 남아있다.
普光寺 大雄寶殿 마당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1740년경 중건된 대웅전은 높게 쌓은 석축기단위에
서향으로 앉은 다포계양식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처마의 모든 공포에는 목숨‘壽’와 복‘福’자가 새겨져있다.
대웅보전 편액은 목판에 양각(陽刻)으로 조각한 ' 甲子中秋 玉澗書’라는
관지가 있으며, 글자의 구조가 단정하고 필선이 자연스럽고 아름답다.
조선시대 21대 임금인 영조의 친필로 전해진다.
만세루와 마주하고 있는 대웅보전은 벽이 흙벽이 아닌 나무판벽으로 되어있고,
칸칸마다 그려져 있는 벽화가 이색적이다. 판백은 일반적인 회벽에 비해서
내구성이 떨어지는 편인데 오랜세월 풍화를 견디고도 아직까지 그 색채가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어 더욱 인상적으로 보인다.
대웅보전 뒤에서 바라본 보광사 경내
만세루(萬歲樓)
대웅보전과 마주보고 있는 만세루는 원래는 누각이었지만 특이한 구조를 하고 있다.
처음 건립된 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1740년(영조 16년) 무렵 보광사가 중건될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건물은 높직히 쌓은 축대위에 세워져 누마루 건물은 굵고
큰 기둥을 세우고 난간을 둘러 한때 좌선장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누마루 정면에는 만세루(萬歲樓) 라는 편액이 걸려있고 승방에도 “高靈山普光寺”라는
편액이 걸려있는데 이 글씨도 영조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목어(木漁)
만세루 툇마루에 걸려 있으며, 길이가 287cm, 두께가 68cm나 되는
용두어신형목어(龍頭魚身形 木魚)로 몸통은 물고기 모양이지만 눈썹과 둥근 눈,
툭 튀어나온 코, 여의주를 문 입, 그리고 머리에는 뿔까지 있어 영락없는 용의 형상이다.
만세루 툇마루에 걸린 목어는 오장육부, 그 속내를 온통 비워내고 부릎뜬 눈을 가진
용의 머리에 물고기 꼬리를 팔딱이며 인적없는 가람을 헤엄치고 다닌다.
속없는 나무 물고기의 유영은 너무도 가볍고 자유롭다.
이 목어는 조선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데 몸통은 물고기이지만
머리는 여의주를 문 용의 형상으로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되듯이
중생이 깨우쳐 부처가 되는것을 상징한다고 한다.
응진전(應眞殿)
대웅보전 좌측에 산신각과 나란히 있는 응진전은 대웅보전처럼 외벽이
나무로 되어있고 예전에는 나한전으로 불리웠지만 지금은 응진전으로 불리고 있다.
내부에는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과 16나한상이 있다.
산신각과 응진전이 대웅전 좌측에 나란히 있다.
원통전(圓通殿)
원통전은 예전에 쌍세전을 허물고 새로지은 건물이라고 하는데 내부에는
목조관음보살상을 모시고 좌우에 삼장탱화와 지장탱화가 봉안되어 있는데
이 중에서 지장탱은 보광사 불화중에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지장전(地藏殿)
내부에는 지장보살상을 비롯해서 무독귀왕, 도명존자,
그리고 시왕상등이 봉안되어 있다.
지장전 앞에있는 무영탑의 모습
영조의 생모인 숙빈최씨(동이)의 영정과 신위가 모셔진 어실각은
자물쇠가 잠겨 있어서 내부를 볼 수가 없었던 점이 아쉽기만 하다.
어실각 우측에 있는 영조대왕이 심었다는 300년이 넘는 수령을 가진
향나무가 어실각을 굳게 지키고 있다.
어실각(御室閣)
보광사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이 조선시대 21대 임금 영조이다.
몇년전에 모 TV에서 ‘동이’라는 드라마를 방영한 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나왔던 동이가 바로 영조대왕의 생모인 숙빈최씨이다.
영조는 1740년(영조 16)에 자신의 생모인 숙빈최씨의 묘인 “소령원”이
보광사와 가깝게 있어서 이 절을 숙빈최씨의 원찰로 삼았고 대웅보전
광응전을 중수하고 만세루를 건립하였으며 어실각을 세워
숙빈최씨의 영정과 신위를 모셨다고 한다.
고풍스러운 담쟁이 넝쿨을 지나서 오랫만에 제대로 사찰을 관람하고
다시 길을 나선다. 군부대 덕분에 우회로 내려와 멋진 명찰을 관람하였다.
사찰문을 빠져 나와 일주문을 향해서 내려간다.
보광사 경내를 두루 구경을 하고 사찰 도로를 따라서 내려오는데
음식점이 너무 많이 보여서 조금은 그렇다. 수행환경에 문제는 없을까?
마치 대학가 앞에 서점보다는 선술집이 많은 것처럼...
10여분을 도로를 걸어서 나오니 보광사 일주문이 나온다.
보광사 일주문(12:25)
일주문을 빠져 나오면서 사찰을 향해 저두삼배의 예를 갖추고 도로로 나온다
일주문을 빠져 나오니 경기도 고양시 백제동에서 파주시 광탄면으로
연결하는 315번 지방도로가 나온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다리를 건너서 도로를 타고 됫박고개로 향한다.
꼬불꼬불한 2차선 도로를 걸어 올라가는데 좁은 도로에 교통량이
많아서 조금은 위험하다. 거기다가 추석 전날에 라이더를 즐기기 위해
오토바이를 타고 꼬부랑한 고개길을 급하게 내려오는 무리들 땜에 상당히
위험하게 보인다. 도로 갓길을 바짝 붙어서 올라가는데 이게 왠 떡이야?
도로가의 풀숲에 떨어진 지가 꽤나 오래된 듯한 천원짜리 지폐 2장이 보인다.
오늘은 이상하게 수입이 짭잘하다. 내일 절에가서 부모님께 정성껏 제사를 올려야겠다.
됫박고개(12:40)
경기도 고양시 백제에 있는 용미리 공동묘지에서 파주시 광탄면을 넘어가는
315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로 보광사로 가는 길이다
조선조 영조대왕이 모친의 묘소가 있는 “소령원(昭寧園)”으로 왕림할 때
됫박고개가 너무 높아 힘들어서 ‘더 파서 낮추라’ 해서 ‘ 더 파기고개’라
했다가 나중에 ‘됫박’처럼 가파르다고 해서 ‘됫박고개’ 가 되었다고 한다
고개가 됫박처럼 가팔라서 됫박고개라고 불렀으며 의주로의 옛길인
혜음령과 더불어 예전에 한양에서 북으로 가려면 첫번째 마주치는
험한 고개였다고 한다. 이 고개 주위 전체가 용미리 공원묘지이다.
가파른 절개지로 올라서니 가지 못하는 오두지맥길의 군부대 도로가
보이고 우측으로는 백제동으로 넘어가는 고개가 시야에 들어온다.
지금 이곳은 공동묘지와 화장터, 추모관 등 망자들의 보금자리가
즐비한 곳이지만 예전에는 중국을 오가는 사신들이 한양을 가기전에
꼭 이곳에서 묵어야 했던 백제관이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등로로 올라서니 온 천지가 망자들의 보금자리인 묘소가 즐비하다.
이곳 등로 좌우의 전부가 서울시립공동묘지(용미리)이다.
묘지를 사이에 두고 빙빙 돌아서 지맥길을 이어간다.
저기 황토가 들어나 보이는 저곳을 포스트 삼아서 걸어간다.
좌측으로는 납골당이 잘 정리된 채 보이고 있다.
이곳에는 귀하다는 산부추가 꽤나 많이 보인다.
산부추를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백합과로 학명:allium thupergii G. Don이며 꽃말은 ‘신선’이다
여러해살이풀 산지나 들에서 키 30~60cm 자란다
잎은 뿌리에서 모여나고 길쭉하며 단면은 둔한 삼각형이다
꽃은 8~10월에 홍자색으로 피고 꽃줄기 끝에 많이 모여 달린다
열매는 삭과이다 비늘줄기와 어린 순을 식용으로 한다
부추의 일종이며 주로 산지 숲 속에서 잘 자라기 때문에
산부추 라고 부르는것 같다
효능" 비늘줄기를 강장.이뇨.구충.진통.진정.건의등의 약으로 쓴다
민간요법: 위를 보호하고 열을 없애주며 양기를 보하고
아울러 어혈을 없애고 담을 제거한다
묘지 사이를 술래잡기 하듯이 걸어간다.우측에 있는 임도로 가도 된다.
지나온 앵무봉(좌측)과 지맥길이면서도 가지 못하는 계명산의 모습
묘지를 벗어나니 좌측에 납골당을 보호하는 초록색 펜스가 처져있고
비포장 임도가 나오고 묘지터를 만들려는지 산을 마구 파헤치고 있다.
저 위에 보이는 70번 송전탑을 포스트로 해서 계속 올라간다.
공사 현장 사무실같은 컨테이너 박스가 있고 그 뒤로는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파헤처져 있는 산능선으로 올라선다.
옆으로 나있는 임도로 올라가는게 훨씬 현명할 것 같은 느낌이다.
지나온 고령산 앵무봉의 모습이 멋있게만 보인다.
보광사 아래에 있는 동네인 파주시 광탄면 영장리의 모습
이곳은 완전히 공장지대로 바뀌어 버린 느낌이다.
오늘 왜이러나
임도로 올라 가지 않고 묘지를 만들려고 파헤져 있는 등로로 올라서는데 바로
눈 앞에 번쩍 띄는게 있다. 이게 뭐야... 그렇게 귀하다는 노루궁뎅이 버섯이 보인다.
크도 너무 크다. 집에와서 체중계에 달아보니 무려 1.2kg이나 된다.
옆에 있는 딸래미가 스마트폰으로 검색하더니 400g에 199,000원이란다.
그럼 도대체 얼마나 말인가. 조심스럽게 따서 베낭에 넣는다.
아마 조상님들이 시골에 가지못한 보상을 해주시는가....ㅋㅋㅋ
산 능선을 올라서니 4륜차가 다닐정도인 넓은 비포장 임도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임도로 들어서서 임도를 따라서 계속 올라간다.
임도옆에는 고들배기가 노란꽃을 피우며 가을을 준비한다.
임도 삼거리(13:20)
등로 안부에 올라서서 편안하게 지맥길을 이어가는데 무슨 내용인지
알 수 없는 간판이 있는 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진다.
우측으로 접어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저 아래 시립공원묘지에서 포스트를 삼았던 NO 70 송전탑이 나온다.
편안한 안부 능선을 계속해서 걷는다.
꽤나큰 산초나무 한 그루가 있다. 잘 익은 산초가 많이 달려있다.
이곳에서 비닐봉지를 꺼내서 익은 산초를 골라 따다가 베낭에 넣는다.
367봉(13:40)
정상에는 헬기장이 있고 군사 시설물인듯한 바리게이트가 보인다.
이곳에서 12시 방향으로 직진하며 지맥길을 이어간다.
조금은 더 진행하니 등로 가운데 노란 시멘트 말뚝에 ‘육,훈’이란
글씨가 쓰인것이 나온다 이곳에서 길이 뚜렸한 곳으로 직진하면 무조건 알바한다.
이 말뚝 가기전 1m 전방 좌측으로 희미한 등로에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이고 이곳에서 내리막길로 향한다.
멋진 암릉이 나오고 휘어진 소나무가 나타난다.
멋진 나무 한그루가 나타나고 나무사이로 이상한 물체가 나타난다.
헬기레펠 훈련장(13:45)
헬기레펠 훈련장에 있는 3045부대장의 경고판을 보면서
급경사의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발끝이 아프다.
신발끈을 바짝 조이고 나니 조금은 나은 느낌이다.
우측으로는 군부대 교통호들이 보이고...
3015부대의 철조망을 끼고 계속 내려간다.
저 건너에 박달산을 포스트 삼아서 걸어간다.
철조망에 있는 경고판을 끼고 계속 내려간다.
부대 근방에는 방치된 전선(일명:삐삐선)이 많이 보인다.
부대로 통하는 도로로 내려선다.
3015부대 정문(13:55)
부대 정문 도로로 내려서서 좌측으로 100여m 정도를 내려가다가
다시 우측으로 올라선다. 조금 지나니 임도가 나타난다.
우측에 3015부대를 끼고 올라가는 임도가 나타난다.
지나온 367봉의 모습 - 헬기레펠 훈련장이 보인다.
임도로 올라서니 좌측에 운동장만큼이나 넓은 수류탄 투척 훈련장이 나온다.
임도에서 바라본 박달산(360m)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마장리, 신산리, 영장리에 걸쳐 있는 산으로
박달봉이라는 이름은 산에 박달나무가 많은 데서 유래되었고, 예전에는 독수리가 많아서
수리봉이라고 부르기도 했으며, 그 밖에 박달산.발산·당현봉이라고도 부른다.
개명산에서 남북으로 뻗은 능선상에 있고, 만장산(萬丈山)과 이웃하여 있다.
예로부터 파말마로 쓰이던 말을 사육하던 장소였다. 현재는 주능선 중간에 군부대 훈련장이 있으며,
2000년부터 2001년까지파주시 가 마장리에 4억 원을 들여 삼림욕장을 조성하였다.
산기슭에는 성종의 아들 완원군(完原君) 이수의 9대손인 이건섭(李建燮)이 산 아래 연못에
내려가 목욕하고 공부에 전념하였다는 마당바위가 있다.
주변엔 윤관장군묘(사적 제323호), 용미리석불입상, 파주삼릉 등
유적이 많아 역사기행을 겸한 가족산행에 적합한 산이다.
북쪽 기슭에는 산림욕장과 자연학습장이 조성되어 있으며, 승마나 온천욕을
즐길 수 있는 유일레저타운이 있다. 헬기장인 정상에 서면 동쪽으로 고령산 앵무봉을,
남쪽으론 도봉산과 북한산을, 그리고 북으론 멀리 감악산을 볼 수 있다.
부대 철조망을 따라 올라가니 조선시대 인조때 이조판서를 지낸 수원백씨
묘지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늦은 점심을 준비한다.
이조판서를 지낸 水原 白氏의 묘지와 묘비(14:05)
이곳에서 라면을 끓여 계란 하나를 넣어서 캔맥주 하나를 마시고
후식으로 사과하나에 따뜻한 커피 한잔을 마시고 다시 길을 나선다.
묘지 좌측 임도로 올라서니 뚜렸한 임도가 나타나고 곳곳에 군부대 표시가 나온다.
오늘 산행길에는 여인들에게 좋다는 잔대가 참으로 많이 보인다.
잔대의 성분과 작용을 보면...
잔대는 그 맛이 달고 평(平)하다.
주로 비경(脾經)과 폐경(肺經)에서 작용한다.
잔대는 성질이 차고 폐경에 주로 작용하므로 가래를 삭히고 갈증을 멈춘다.
잔대에는 여러 가지 기능을 지닌 다당 효소의 대사, 그리고 물과 전해질의 균형을
이루게 하여 인체의 내부 환경이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에 적극적인 작용을 하게 된다.
아연은 성장발육을 촉진하면서 성기능을 높이게 된다.
칼륨과 나트륨, 칼슘, 마그네슘 등의 전해질은 신경과 근육의 기능을 조절하고 효소의 대사,
그리고 물과 전해질의 균형을 이루게 하여 인체의 내부 환경이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에
적극적인 작용을 하게 된다. 뿌리에 있는 Saponin은 거담진해의 작용이 있다.
* 주로 태음인에게 맞는 보약이다.
박달산 삼거리(14:40)
박달산을 향해서 완만한 오름을 계속한다.
그러다가 삼거리가 나타난다. 직진을 하면 박달산 오름길이고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간다.
백두사랑 산악회 이 대장이 지나간 모양이다.
이 대장의 반가운 시그널이 보이기 시작한다.
내리막길을 내려오니 이런 경고판 서너개를 만난다.
여기서도 또다시 노루 궁뎅이 버섯을 만난다.
조심스럽게 따서 베낭에다 담고 편안한 안부 능선을 걷는다.
등로에서 삐라를 만난다. 북한에서 남한으로 보낸것이 아닌
남쪽에서 북쪽으로 보내는 삐라를...
등로 우측인 박달산 기슭에는 지도상에는 나타나지 않는 베스트밸리
골프장이 보이고 이곳에는 추석 연휴를 즐기는 골퍼들이 꽤나 보인다.
능선에 올라서서 잘 나있는 직진길을 버리고 급하게 우측으로 꺽어져
급한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내려가니 경주이공 묘지들이 나타나고
아래에 마을이 보인다.파주시 광탄면 분수3리이다.
편안한 임도를 타고 내려오니 밤나무들이 보이고 이곳에도 밤이
꽤나 떨어져 있다. 조금 주워서 베낭에 담는다.
임도를 내려오니 포장도로가 나오고 마을이다.
그런데 마을에는 주택보다는 공장지대이다.
이 도로를 따라서 계속 내려간다.
우측에 조광산업과 소를 키우는 사육장에는 소가 한마리도 없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꺽어져 도로로 향한다.
드디어 도로가 나타난다. 도로를 타고 좌측으로 걸어간다.
방금 내가 지나온 공장지대 도로의 모습
대우건철 공장 정문을 바라보면서 계속 걸어간다.
지나온 박달산의 모습과 그 기슭에 있는 베스트밸리 골프장의 모습
달구니 고개(鷄鳴峴:15:20)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와 용미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고개너머 좌측 마을이 달구니 마을이다.
닭이 알 품는 모습의 명당이 많아 닭이 울며 새벽이 오기 때문에
닭의 울음은 그 자체가 밝은 꿈이었다.
그래서 '달구재', '덜구니' 등의 마을 이름이 '닭의 울음'과는
관계 없음에도 한자로 옮겨잴 때는 '계명(鷄鳴)'이 되었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등에 있는 달구재나 달구니 등의 산이나 마을이 그런 예다.
여기서의 '달구'는 바로 '산(山)'을 나타내는 옛말 '닥', '닭'을 바탕으로 나온 이름으로 보인다.
달구니 고개에서 우측으로 올라서니 한신 콤푸레서 공장이 나온다.
한신 콤푸레서 공장 담벼락으로 들어서니 이동통신 중계탑이 나오고
중계탑 사이로 빠져 나가니 묘지들이 나오면서 갑자기 길이 없어진다.
여태껏 지나온 지맥길과는 확연히 다른 길이 나타나서 당황스럽다.
공장과 묘지사이에 갑자기 길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숲에는 마구 갖다버린 쓰레기들로 지저분하기 그지없다.
공장과 경계를 이루는 곳을 헤치고 나오니 전주이씨의 묘지가 나오고...
밤나무와 갈참나무 숲을 헤치고 나오니 경주 김공의 묘지가 나온다.
묘지에서 바라본 광탄면 용미리 달구니 마을의 모습
공장 담사이의 칡넝쿨을 헤치고 나가니...
반가운 선답자의 시그널이 지맥길임을 알려준다.
배추와 파, 고구마, 콩을 심어놓은 조그만 텃밭을 지나니 해평 윤씨 묘지가 나오고...
수원 백씨와 해평 윤씨의 합장묘를 지나니...
곽산군수를 지낸 수원백씨 영묘당이 있고 좌측으론 비석 4개가 서있다.
묘지 우측의 등로로 접어드니 본듯한 대장이 붙혀논 시그널이 반갑기만 하다.
계속해서 오름길에 묘지들이 나타나고 이곳에서 토마토 쥬스와 송편 3개로
허기를 달래고 5분간의 휴식을 취한후에 다시 길을 나선다.
묘지 위에서 바라본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의 모습
묘지를 지나 등로 안부에 올라서니 용도폐기된 군 시설물이 방치되어 있다.
168봉(15:40)
정상에는 국기봉과 아무런 내용이 없는 삼각점이 있고
이곳에서 우측으로 지맥길을 이어간다.
1~2분 정도를 지나니 엄청나게 큰 채석장이 나타난다.
내가 4년 가까이를 대간, 정맥, 기맥, 지맥을 하면서 본
채석장중에 규모가 가장 크다. 얼마 안있어 이곳 168봉도 없어질 듯 싶다.
채석장 위에서 바라본 박달산과 광탄면 분수리의 모습
절개지 옆의 숲에는 알 수 없는 붉은 페인트가 나무에 표시되어 있다.
이 나무를 따라서 조심스럽게 지맥길을 진행한다.
이곳에서도 또다시 노루궁뎅이 버섯을 전리품으로 챙기고...
채석장 절개지를 따라 아슬아슬하게 곡예를 하듯이 걸어간다.
쌓아둔 흙이 자꾸만 무너지는 바람에 애를 먹는다.
얼마나 파먹었는지 저 아래에 고여있는 물은 마치 호수처럼 보인다.
물 위에는 조그만 나룻배가 보인다. 산봉우리가 곧 없어지겠지.
마지막에는 산을 깍으면서 아무렇게나 버려진 아름드리 아카시아
나무가 넘어진 곳을 마치 허들경기 하듯이 넘어가는데 솟다리 범여의
가랭이가 다 찢어지는 느낌이다. 겨우 채석장을 벗어난다.
이곳부터는 군 시설물이 보이기 시작한다,
지나온 채석장의 모습
뚜렸한 등로를 따라서 편안한 안부를 걸어간다
소나무 사이에 설치한 군시설물을 지나니...
안부 능선이 나타나는데 이곳이 163봉이다.
163봉 삼각점(△ 서울 413 1990 재설)
지도상에는 163봉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곳은 엄연한 산 이름이
장지산(長芝山)이다. 이 아래에 있는 용암사의 연혁에 장지산으로
되어 있는데 왜 멀쩡한 이름을 두고 무명봉으로 기록한 지 이해가 안된다.
163봉을 내려서다가 Y자형의 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뚜렷한 우측 등로를 버리고 희미한 좌측길로 내려간다.
조금 내려가니 관리가 되지 않은 천주교인의 묘비가 우측에 있고...
조금을 내려가니 용미리 마애이불 철조망이 나타난다.
마애이불 안내판
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坡州 龍尾里 磨崖二佛立像:16:15)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산 8번지 용암사 옆에 우뚝 선 ‘파주용미리석불입상’.
보는 이들을 압도하는 석불은 형태가 특이하다. 거대한 자연석을 몸통으로 하고
그 위에 머리를 얹어 놓아 반은 자연적으로 반은 인공적으로 조성한 석불이다.
이러한 형태의 석불은 삿갓을 쓰고 있는 것으로 미래세계를 주관하는 미륵부처님으로 부른다.
마을 사람들은 이 석불입상은 ‘용미리 쌍미륵’이라 불렀으며 마을이름도 ‘미륵뎅이’라고 불린다.
이와같은 형태는 안동 제비원(연미사) 미륵불과 유사하다. 그 모습이 특이해 보물 제93호로
지정돼 있는 용미리 석불입상은 예로부터 아들을 낳지 못하는 사람들이 기도해서
득남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일설에 의하면 이 석불입상은 고구려시대에 천년암벽에 57척 2촌(18m)의 거대한 입상이
신령스런 힘에 의해 조각됐다고 하나 조각수법으로 볼때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른쪽의 불상向右像은 4각형의 갓을 쓰고 있고,
왼쪽의 불상(向左像)은 원통형의 관을 쓰고 있어 용미리 쌍미륵 석불이라고도 한다.
이처럼머리 위에 갓이나 천개(天蓋)를 쒸우는 것은 눈 또는비로부터
불상을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고려시대에 이르러 특히 유행하였다.
이 석불들은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한 까닭에
신체 비율이 맞지 않아 굉장히 거대한 느낌이 든다.
이런 점에서 불성(佛性)보다는 세속적인 특징이 잘 나타나는 지방화된 불상이다.
왼쪽의 둥근 갓을 쓴 원립불(圓笠佛)은
목이 원통형이고 두손은 가슴앞에서 연꽃을 쥐고 있다.
오른쪽의 4각형 갓을 쓴 방립불(方笠佛)은
합장한 손모양이 다를 뿐 신체조각은 왼쪽 불상과 같다.
지방민의 구전에 의하면,
둥근 갓의 불상은 남상(男像), 모난 갓의 불상은 여상(女像)이라 한다.
이 불상들은 고려시대의 조각으로 우수한 편은 아니지만,
고려 선종(宣宗)과 원신궁주(元信宮主)의 왕자인 한산후(漢山侯)의 탄생과 관계된 설화가 있다.
한편, 1995년에 발견된 명문으로 이 석불입상이 고려시대의 작품이 아니라
1465년(세조 11)에 세조와 정희왕후의 모습을 미륵불로 조각한 것이라는 설도 제기되었으나,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진 않았다.
한때 왼쪽 어깨 위쪽에 대통령 이승만이 세웠다는 동자상과 칠층석탑이 있었는데
1987년 철거하여 요사 뒤편으로 옮겼다가 지금은 삼성각 입구로 다시 옮겨져있다.
마애이불입상 안내판
불상의 앞면에 조선 초기 세조와 세조의 부인 정휘왕후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고 해서 조선시대의 작품이라는 설도 있는데 이런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불상양식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어 문화재청으로부터
보물 제93호로 지정되어 있다고 한다.
좌측의 불상은 두 손에 연꽃을 들고있고 우측의 불상은 두손으로 합장하는 형태이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의 조각은 섬세한 편이 아니지만 고려시대 불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불공을 드리기 위해서 찾고 있으며
전설로 인해서 득남과 무병을 비는불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불상에는 얼굴과 몸통에 매운 자국들이 많이 보이는데 이 자국들은
6.25 전쟁때에 총상으로 입은 총알자국을 매운 것이라고 한다.
쌍미륵불을 참배하고 용암사로 내려간다. 오늘 산행은 참으로 의미가 있다.
석불입상에 얽힌 전설을 적은 안내판
대웅전에는 어느 여인이 추석 전날에 간절한 기원을 담은 108배를 하고있다.
저 여인의 간절한 기원은 무엇일까?
용암사 대웅보전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장지산(長芝山)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절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창건 연대는 분명하지 않지만 용미리 석불입상(쌍석불)의 조성절의 창건에 얽힌
설화가 전하고 있어 석불이 만들어진 11세기(고려시대)를 창건 연대로 잡고 있다.
창건 이후 절의 옛 역사는 거의 전하지 않고 있다.
1936년에 파주군의 유지들이 절을 새로 지은 뒤
백정(白淨) 만월(滿月)과 승려 혜성(慧城)이 중창 불사를 시작하였고,
1978년 대웅전 불사에 착공하여 1979년 완성하였다.
이듬해에 대웅전 안에 지장탱화와 감로탱화를 조성하고,
요사채는 1982년 이후 꾸준히 증·개축하였으며,
1984년에 종각을 지어 범종을 봉안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미륵전·요사채·범종각이 있다.
용암사 대웅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협시불로 모시고 있다.
용암사 대웅보전 마당에 있는 석등
용암사 대웅보전 앞에는 좌.우로 석등이 2개가 서있다.
이 석등은 1971년 박 정희 대통령이 이 근처에 있는 1군단 부대사찰을
왔다가 들리어 세운 것이라고 하는데 석등에 새긴 글을 자세히 보니
“국태민안을 위하여 천일기도 광명등. 대통령 박정희”라고 써있다.
이 용암사는 전직 대통령인 박정희 대통령과 이 승만 대통령과 연관이
있는 모양이다. 칠층석탑과 동자석이 이 대통령과 연관이 있으니...
용암사 안내판
동자상과 칠층석탑
절에서 주지 스님을 만나 용암사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는다.
이 승만 대통령 모친이 이곳 쌍미륵 부처님께 간절히 기도를 하여
이 대통령을 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1954년에는 이 대통령이 용암사에 참배하여 남북통일과 후손잇기
기원기념으로 동자상과 7층 석탑을 세웠다고 하는데 원래는 이곳에
있은게 아니고 동자상은 좌측 미륵불상 어깨에 있었고 7층 석탑은
동자상 뒷편에 세우져 있었으나 4.19로 인하여 이 대통령이 하야하고
하와이로 망명한 후에 재야단체들이 문화재를 훼손한다는 비판이 심하여
철거하여 절 뒷간에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던 것을 현 주지 스님이 부임하여
이곳에 모셨다고 한다.
삼성각과 미륵전
하나의 건물에 두 전각이 들어서 있다.
이런 형태의 건물은 보기가 그리 쉽지가 않다.
내가 본 것은 몇년전에 부산 범어사에 가서 본 이런 형태의 전각밖에...
원래 이곳은 석불입상에 기도를 하기 위해서 지어진 전각인데
현재는 용도가 바뀌어서 미륵전과 삼성각으로 쓰이고 있다고 한다.
용암사 요사채와 종무소의 모습
사찰을 참배하고 나오는데 좌.우에 돌조각으로 만든 두꺼비와 거북이를 만난다.
마침 포행을 하고 사찰로 들어오시는 태공 주지 스님을 만난다.
인사를 하고 이 조각에 대한 유래를 여쭈니... 자세한 뜻은 없고 당신이 이 절에
주지로 부임한 지가 10년 조금 넘었는데 불사를 하면서 아무렇게나 굴러 다니고
있어서 이 곳에 갖다 놓았다고 한다.
사찰을 참배하고 절을 빠져 나오다가 포행하고 하시고 오시는
주지스님을 만난다. 다시 들어와서 동자상과 7층석탑을 비롯하여
여기저기 자세한 설명을 듣는다. 참으로 고맙고 유익한 공부를 하고 간다.
그러면서 고향이 어디냐고 묻는다. 경남 의령이라고 하니 깜짝 놀라시면서
의령 어디냐고 다시 되물어신다. 신반이라고 하니... 당신은 의령 지정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외가가 신반에서 한지 공장을 한 인천이씨라고 하니
대충 누군지 感이 온다. 시골이야 한 집 건너면 누가 누군지 다 아니까.
속가 성이 청주한씨로 해인사로 출가하였다고 한다.
이 절이 봉선사 말사이니 내가 아는 봉선사 문중스님들을 다 아신다.
그래서 그런지 더 친밀감이 간다. 나중에 놀러 오라고 한다.
용암사 버스 정류장이 있는 양지재(16:30)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과 고양시 백제동을 잇는 78번 국가 지방도가
지나는 곳으로 백제쪽으로는 용미리 공원묘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 길은 고양시 백제관에서 광탄방향으로 연결되는 길에 옛날 한양에서
의주로 가는 중요한 길이 였으며 먼 길을 가는 나그네들의 쉼터역할을
한 곳이라는데 지금은 해음령이라는 단어는 없어지고 양지재로 불리고 있다.
원래 오늘 산행은 오산리까지 계획을 잡았는데 보광사 경내 관람에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버섯과 밤을 줏는데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오늘은 용암사 아래 고개인 양지재에서 산행을 마감한다.
이곳에서 스틱을 접고 장비 정리를 하는데 서울역가는 버스가
도착하는 바람에 제대로 정리도 못하고 허겁지겁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조금후 용미리를 통과하는데 추석전날 성묘객으로 인해
차가 엄청나게 밀린다. 예정시간보다 40분이나 늦게 구파발역에
도착을 한다.
구파발역 입구 버스 정류장에 내리니 갑자기 방향 감각이 없다.
오랫만에 오기도 했지만 이곳에 은평 뉴타운이라는 미명아래
마구 개발되고 건물이 들어서서 구파발역 근처에는 상전벽해가
된 느낌이다. 10분 이상을 걸어서 구파발역에 도착한다.
구파발역(18:20)
구파역에 도착하여 지하철을 타고 한참을 졸고나니 내가 내릴
도곡역에 도착한다.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와서 샤워를 하고
시원한 맥주에다가 소주를 말아서 맥주1병+소주1병을 마시고
깊은 잠에 빠진다.
오늘 내가 수확한 노루궁뎅이 버섯 1.2kg과 자잘한 밤 2되 정도와 능이버섯 2개.
그리고 산초열매 약간... 이 정도면 괜찮은 수확 아닌감. ㅋㅋㅋ
'♣ 9기맥 자료및 산행후기 ♣ > 한북(오두)기맥(終)'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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