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파일에 연등을 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연등은 무엇을 상징할까?
서진(西晉) 법거(法炬)가 한역한 《아사세왕수결경》에 보면 아사세왕은 부처님을 청해서 공양하기를 마쳤고,
부처님께서는 기원정사(祇洹精舍)로 돌아오셨다.
왕은 기바(祇婆)와 의논하였다. “오늘 부처님을 청하여 공양을 끝마쳤으니 다시 마땅히 할 것이 없느냐?” 기바는 “오로지 등(燈)을 많이 다는 것뿐입니다.” 그리하여 왕은 곧 명령하여 백 곡(斛)의 삼기름[麻油膏]을 갖추어서는 궁문에서부터
기원정사에 이르기까지 등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그때 어떤 가난한 노모가 2전(錢)을 구걸해서 그것으로 기름 3홉을 사고 곧 부처님의 앞에 가서 불을 켜고
마음으로 서원하기를, “만약 내가 후세에 부처님처럼 도를 얻는다면 기름은 밤을 새워 타올라도 광명이 시들지 않을 것입니다”
라고 하고는 절하고 물러갔다.
이 노모는 전생에서 수기를 받았는데, 보시바라밀(布施波羅蜜)을 닦지 아니했으므로 지금 빈궁하여 재보(財寶)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30겁 후에는 공덕이 차서 부처님이 될 것이니, 이름은 수미등광(須彌燈光) 여래ㆍ지진(至眞)이며,
그 세계엔 해와 달이 없고 사람의 몸속에서 큰 광명을 발산하며, 집안에 있는 온갖 보배의 광명이 서로 비추어
마치 도리천과 같으리라.
왕이 이를 듣고 기바에게 물었다.
“내가 지은 공덕은 그렇게 높은데도 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를 주지 않으셨는데,
이 노모는 한 등을 켜고도 곧 이 수기를 받았으니 왜 그러한가?”
이에 기바가 대답하였다. “왕께서 지은 것은 크고 많기는 하였지마는 이 노모가 부처님께 마음을 쏟은 것만 못합니다.” 하여
지극한 정성을 다하여 다는 초파일 등 공양은 반드시 내세에 부처를 이룰 수 있다는 수기를 받는 거룩한 행위임을
이 경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또한 《현우경》 <빈녀난타품(貧女難品)>에 빈녀 난타는 “저는 지금 빈궁하여 이 작은 등불로 부처님께 공양합니다.
이 공덕으로써 저로 하여금 내생에 지혜의 광명을 얻어 일체 중생의 어두움을 없애게 하소서”하여 등(燈)은
중생에게 지혜광명을 주어 어두움을 없애주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불설일체여래안상삼매의궤경》에 보면 초파일에 등을 다는 의식을 알 수 있는데 그 의식은 “등을 달고 난 다음에는 등(燈)진언인 ‘옴 바아라 녜배 사바하’를 외우고 나서 ‘이 등공양은 소등(酥燈)이나 유등(油燈)으로서 그 광명이 어두움을 없앱니다.
제가 지금 지극한 마음으로 공양하오니 부처님께서는 받으시기 바랍니다.’ 아뢰면 그러면 모든 어리석음의 어두움을 없앨 수 있다“고 전하여 등이라는 광명이 어리석음의 어두움을 없앨 수 있기 때문에 등을 달아 중생의 어리석음을 여의고 하루 속히 불도에이르게 하고자 하는 염원을 담고 있다. 특히 등을 달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공양하오니 부처님께서는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고
등을 달 때 불자들이 소리 내어 아뢰어 여법한 의식을 진행하시길 바랍니다.
《일체여래진실섭대승현증삼매대교왕경》에는 “위대하도다. 나는 이 묘하고 광대한 등장엄을 공양하는 바이다. 속히 광명을 갖춤으로 말미암아 곧 저 모든 부처님을 볼 수 있다.”하여 등장엄을 공양하는 것은 일체여래를 볼 수 있기 때문임을 말하고 있다.
아울러 부처님께 꽃을 만들어 공양하는 것은 시공을 초월한 부처님과의 대화로 오직 지극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부처님을 뵈올 수 있고 또한 수기를 받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아사세왕수결경》에 「기바는 왕에게 아뢰길 “스스로 공덕에 나아가서 한마음으로 부처님께 바치십시오. 부처님께서는 왕의 지극한 정성을 비추시어 반드시 수기를 주실 것입니다.” 하였다. 왕은 “지극한 마음으로 손수 이 보배로 이루어진 꽃을 만들었으니 부처님께서 비록 열반하셨으나, 나는 반드시 기사굴산에 가져가서 그것을 부처님의 자리에 올림으로써 나의 뜻을 아뢰겠다.”
이에 기바가 말했다. “부처란 몸도 없고 또한 열반도 없습니다. 또한 늘 머무는 것도 아니어서 사라짐도 없고 있음도 없습니다. 오직 지극한 마음을 가진 자만이 부처님을 볼 수 있으니, 부처님께서 아무리 세간에 계시더라도 지극한 마음이 없는 이는 부처님을 보지 못합니다. 대왕의 지극한 정성이라면 비록 부처님께서 열반하셨지마는 반드시 부처님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왕은 곧 기사굴산에 이르렀다. 그는 부처님을 뵙고 슬프고 또한 기뻐서 눈물을 흘리면서 나아가 엎드려 절한 뒤 7보(寶)로 된 꽃을 갖고 나아가 부처님 위에 뿌렸다. 꽃은 바로 부처님 위에서 머문 채 보배 일산[寶蓋]으로 바뀌었다.
부처님께서는 곧 아사세왕에게 수기를 주셨다.
“8만 겁 뒤 겁의 이름이 희관(喜觀)일 때 왕께서는 부처가 되리니, 이름은 정기소부(淨其所部)여래요, 국토의 이름은 화왕(華王)이며, 그때 인민의 수명은 40소겁(小劫)이리라.”」 하였으니 오직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 전에 올리는 꽃은 비록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을 지라도 부처님을 볼 수 있고 수기를 받을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하듯 연등은 등 공양과 꽃 공양을 함께 나타낸 것으로 부처님께 지극한 마음으로 연등을 올려 부처님을 직접 뵙고 내세에 부처를 이룰 수 있는 수기를 받고자 하는 중생의 염원을 담고 있다.
인도에서부터 시작된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인 서기 372년으로 지금으로부터 약 1700 년 전의 일이다.
이처럼 불교는 아주 오랫동안 우리 민족과 더불어 이어져 왔기에 전통 문화 속에 녹아들어 하나의 세시 행사를 만들어냈다. 그것이 바로 ‘사월 초파일’이다.
사월초파일을 기념하기 위한 행사로 사월초파일을 기념하는 법회를 비롯하여 연등(燃燈) 관등(觀燈)놀이(제등행렬)·방생(放生)·물놀이·성불도놀이·탑돌이 등이 있다.
연등놀이는 석가 탄생을 축하하여 등공양(燈供養)을 하던 풍습에서 나온 것이다.
인도를 비롯하여 중국·한국·일본 등에서 널리 행하는 행사이다. 연등을 통해 지혜를 밝힌다는 상징성이 있다.
사월초파일 연등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고려 의종 때 백선연(白善淵)이 4월 8일에 점등했다는 것으로,
당시 초파일 연등을 1번 밝히면 3일 낮과 밤 동안 등을 켜놓고 미륵보살회를 행했다고 한다.
연등을 만들 때 그 모양은 수박·거북·항아리 모양 등으로 매우 다양했다.
이렇게 만든 등은 등대(燈臺)를 세워 걸어놓거나 연등을 실은 배를 강에 띄워놓았다.
관등놀이는 일반 사람들이 연등행사에 참여하는 것을 말한다. 이 놀이는 일제강점기에 금지되었다가 8·15해방 후 제등놀이로 부활되었다.
방생은 다른 이가 잡은 물고기·새·짐승 등의 산 것을 사서 산이나 못에 놓아 살려주는 일을 말하고, 물놀이는 아이들이 등대 밑에 자리를 깔고
느티떡과 소금에 볶은 콩을 먹으며 등대에다 물을 담아놓은
다음 바가지를 엎어놓고 이를 두드리며 노는 놀이를 말한다.
이렇듯 많은 놀이가 성행했음은 초파일 행사가
불교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민속놀이와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말해준다.
연등(燃燈)과 연등행사의 의미
연등(燃燈)이란 등불을 밝힌다는 뜻이다.
불교에서 등(燈)은 짙은 암흑과 같은 중생의 미혹과 무명(無明)을 걷어내고 밝히는 의미로 흔히 지혜에 비유되어 왔으며, 때문에 부처님 전에 등을 켜 올리는 등공양을 향공양과 함께 중요시하여 왔다.
연등행사에는 대부분 연꽃 모양의 등을 사용한다. 이는 지저분한 진흙의 못에서 자라지만
그 청결함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피어나는 연꽃의 모습이, 세속에서 중생과 더불어 살면서도 물들지 않고 오히려 주변을 아름답게 바꾸는 보살의 삶과 같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연등(蓮燈)은
불자(佛子)의 삶의 자세를 상징한다. 불교에서의 등(燈)의 위상은 흔히들 알고 있는 부처님께서
제자 아난에게 마지막으로 주신 가르침인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진리를 등불로 삼으라.’는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의 말씀을 통해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부처님께 올릴 등을 밝히면서 내 마음의 등도 함께 밝히며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하라’는
부처님의 말씀을 되새겨 보는 것과 더불어 내 몸을 태워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등불과 같이 사홍서원 중의 중생의 구제를 위해, 불도를 이루기 위해 나를 버리고 남을 위해 희생한다는 보살의 서원을 되새겨 보자.
연등행사의 유래와 변천
연등(燃燈)은 등불을 밝힌다는 말로
부처님께 공양하는 방법의 하나로 번뇌와 무지로 가득찬 어두운 세계(無明)를 밝게 비춰주는
부처님의 공덕을 칭송하고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고자 등(燈)에 불을 밝히는 것을 말한다.
연등행사의 유래는 초기경전에 부처님께 꽃을 뿌리고 향을 사르고 밤에는 등불로 공양을 올렸다는 내용이 보이는데, 그 중 <현우경>의 '빈녀 난타(貧者一燈)'의 이야기에서 부처님 당시 사밧띠(舍衛城)의 파세나디왕이 석달동안 부처님과 스님들에게 옷과 음식과 침구와 약을 공양하던 중 어느 날 밤에 수만 개의 등불을 켜 연등회(燃燈會)를 열었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현재의 "부처님 오신 날"(사월 초파일)에 연등하는 풍속의 유래는 고려시대 고종(高宗) 때 최충헌(崔忠獻)의 아들인 최이(崔怡)가 초파일이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신일이기에 기존에 행해지던 연등 행사의 날짜를 이 날로 변경했다는 <고려사>의 기록과 함께, 유만공의 <세시풍요>나 비슷한 시기에 나온 홍석모의<동국세시기> 등의 자료에 의하면 19세기 중엽까지만 해도 초파일이 절에서만 지켜지는 명절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 한반도에 불법이 전해진 이후에 기록상으로는 신라에서 '간등(看燈)'이란 이름으로
진흥왕(서기 551년)때에 전사한 장병을 위하여 외사(外寺)에서 7일 동안 설행(국가에서 행사를 주관하고, 국왕이 참여함)되었고 선덕여왕 때에는 황룡사에서 열렸다는 것 외에도 다수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 이래로 국가차원에서 연등행사를 열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불교전래 이전의 토착의례와의 융화과정을 거치면서 국가적인 종교놀이 문화로 발전하였다. '춘연등 동팔관(春燃燈 冬八關)' 이라하여 연등도감(燃燈都監)과 팔관보(八關寶)라는
행사 주관 기구를 두고 국가에서 직접 재원을 조달하고 주관하였다.
기록에 따르면 11월 15일에는 팔관회를, 2월 15일(후일 4월8일)에 풍년을 기원하면서 연등회를 개최하여 온 백성이 잔치를 베풀고 가무를 즐겼다고 하며 고려말기 공민왕 이후에는
많은 종류의 등을 만들어 각종 깃발로 장식한 등대(燈臺)에 등을 달아 온 누리가 연등일색으로 변한 저녁에 온 장안의 남녀노소가 함께 즐겼다고 한다.
억불과 배불로 불교가 핍박받던 조선시대에 이르러 관청중심의 행사는 중지되었으나
민간에서는 민속행사로 남아 세시풍속으로 전승되었다. 연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초파일에 연등 밝히기는 계속되어 왔다고 한다. 당시 야간에 통행금지가 있었으나 초파일 저녁만은
등석(燈夕)이라 하여 통금이 해제됐을 정도로 초파일 연등행사는 민간에 깊이 뿌리박혀
널리 유행되고 있었다.
고려시대부터 전해져 계속 행하던 풍습으로 초파일에 앞서 등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이 종이를 잘라
등간(燈竿)에 매달아 기를 만들어 들고 장안을 돌아다니며 쌀이나 돈을 구하여 등 만드는 비용으로 쓰는 호기(呼旗)놀이가 성행하였다. 초파일의 낮에는 절에 가서 공양을 올리고,
저녁에는 집집마다 세운 등대에 자녀수대로 등을 밝혔다. 거리 곳곳에도 형형색색의 등을 달았으며
밤에는 온장안의 남녀들이 등을 들고 나와 불꽃바다를 이루었고, 등으로 거대한 산과같이
장관을 이룬 것을 구경하는 관등(觀燈)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서울시내에 곳곳(광화문통 광장, 조선은행 앞 광장, 장충단 3곳. 후에 경성부,
탑골공원으로 바뀜)에 꽃으로 장식한 탄생불을 모시고 관불(灌佛)을 하였으며 저녁에는 공양올린 등에 불을 켜고, 또한 등을 들고 흰 코끼리를 앞세워 종로-을지로-광화문을 도는 제등행진을 하였다.
해방 후에는 조계사-종로4가-을지로-시청앞-안국동-조계사를 도는 제등행진을 하였으며 후에는
동국대-종로-조계사까지 제등행진을 하였다. 1975년부터는 초파일이 국가공휴일로 되었으며 1976년부터는 여의도광장-조계사에 이르는 제등행진을 하였다.
불기 2540(1996)년 부터 연등축제로 이름을 붙이고 동대문 운동장 - 조계사에 이르는 제등행진을 비롯하여 불교문화마당, 어울림마당(연등법회), 대동(회향)한마당 등 행사가 추가되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 등 모두가 어우러지는 종합 축제로 바뀌어 오늘에 이르렀다
등의 종류
‘부처님 오신 날’ 사용되는 등은 연꽃 모양의 연등을 비롯하여 수박, 마늘 등의 채과(菜果) 모양 등(燈)과 종, 북, 누각, 화분, 가마, 병, 항아리 등의 기물(器物) 모양의 등(燈), 용, 봉황, 학, 잉어, 거북, 자라 등의 동물(動物) 모양의 등(燈)이 있다. 이 외에도 칠성등, 오행등, 일월등 등의 천문(天文) 모양의 등(燈)과 수복등(壽福燈), 태평등, 만세등(萬歲燈), 남산등(南山燈) 등의 상징적 문자(文字) 의미의 등(燈) 등 다양하다.
이런 등들은 특별한 형식이 따로 없이 대나무 뼈대에 종이나 붉고 푸른 천를 바르고 채색 하여
용이나 봉황과 같은 형체를 만들고 속에 촛불을 켜게 한 것으로 열의 흐름을 이용해 부분적으로
움직이게 한 것도 있다. - 한국전통등연구회
♡불교명상음악 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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