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래장사상
여래장사상의 성립과 사상적 의의
[ 목 차 ]
< 서 론 >
< 본 론 >
I 여래장사상의 역사
II 여래장사상의 교리
III 승만경에 나타난 여래장사상
IV 여래장과 他사상과의 관련성
< 결 론 >-
참 고 문 헌 -
서론
대승불교의 사상은 중관사상과 유식학으로 대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불교계에서 유력했을 뿐만 아니라 이후의 불교 철학에서도
이 두 사상이 주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두 사상의 영향력을 가장 잘 담은
사상으로 여래장 사상을 들 수가 있는데, 극단적으로는 여래장은 중관학과
유식학의 당연한 귀결이라고 까지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래장이라는 것은 반야의 깨달음(空)에 대한 긍정적인 측면이며 알라야식 사상의
발전적 측면이라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소위 '비판불교'는
여래장의 이러한 전통적 측면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채 아트만론과 유사하다는 측면만
부각하여 '여래장은 불교가 아니다.'라고 까지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단정은 불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자신의 한계만을 드러낸 것에 지나지 않는다.
불교라는 것은 고정된 이론이 아니고, 중생들의 근기에 따라서 방편적으로 설해지는 것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설 방법이 바로 석존 당시부터 행해졌던 대기설법(對機說法)의 방편인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 의식을 바탕으로 본문에서는 여래장 사상의 내용과 의의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본론
I. 여래장 사상의 역사
1. 중기 대승경전
용수 이후에 연이어 많은 대승경전들이 작성되었다.
그 이후부터 밀교가 훙륭하는 6, 7세기 무렵까지 성립된 경전을 임시로 '중기 대승 경전'이라 부르기로 한다.
그 내용은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말하면 초기 경전이 종교문학적인 것에 비해 중기 경전은 교의적
요소가 많다는 점이 특색이다. 소승불교에서 그 교의는 아비달마(Abhidharma, 論)라 불리는 문헌으로 발표되고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아비달마라는 명칭은 사용하지 않지만 그것에 상당하는 '論( stra)이 4∼5세기 무렵부터 작성되었다.
대표적인 중기 경전은 논의 선구적 역할을 다해 논에 준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
교의 이론의 발전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 시대의 사상적 특징은 주체 문제가 중심이 되고 있다.
불교는 무아를 설해 주체를 부정하는 듯한 교의적 표현을 지녔지만 그것은 주체 문제를 소외시킨 것이
아니라, 도리어 깊은 성찰을 거듭한 결과였다. 대승불교운동의 전개는 인도 종교사에 있어서 힌두교
운동과 서로 통하는 관계에 있으며, 넓은 의미에서는 힌두교 운동의 일환이라고도 평가되고 있다.
두 종교는 세계관의 명확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종교 현상에 있어서 평행성이 인정된다. 따라서
이 시대에 대승불교도가 그 사상을 교의화하려고 할 때 많든 적든 바라문교(Brahmanism)의
자아 철학( tman-vidy )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물론 불교는 자아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주체는 마음(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 경우 주체 문제의 추구에 있어서 부처님의 구제를 중심으로
하는 입장과 보살의 주체적 실천을 중심으로 하는 입장이 각각 분명하게 나타나게 되고 이론화되었다.
전자에 있어서는 중생의 마음(衆生心)이 부처님의 구제에 대응하는 원리로 생각되어
여래장(如來藏, tath gata-garbha), 불성(佛性, buddha-dh tu) 등의 교의가 구성되고, 후자에 있어서는
알라야식( laya-vij na)·유식(vij apti-m tra) 등의 교의가 성립하였다. 그리고 각각에 있어서 관련 경전이
작성되고 있다. 여래장과 불성은 실질적으로 거의 같은 개념이지만 후자의 불성은 주로《涅槃經》에
설해지며, 이 경은 여래장 사상만이 아니라 여러 문제를 폭넓게 다루고 있다. 또한 여래장과 유식의
양 계통의 사상에 대한 전망을 가진《능가경(楞伽經)》도 작성되었다.
2. 여래장계 경전
여래장은 특징적인 사상임에도 그 사상의 성격상 전반적으로 그다지 조직된 교의를
형성하지 못한 경향이 있다. 따라서 제 경전은 꽤 자유로운 형식으로 여래장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여래장이라는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은 경우, 전혀 사용하지 않은 경우라도 그 기조가
여래장사상과 서로 통한다고 인정되는 경전도 있다. 여래장을 언급하고 있는 경전과 논을 들면 다음과 같다.
A. 여래장을 언급하는 경전
①《如來藏經》, 불타발타라역 1권, 불공역 1권, 티베트역
②《不增不減經》, 보리유지역 1권
③《앙굴마라경》, 구나발타라역 4권
④《大法鼓經》, 구나발타라역역 2권, 티베트역
⑤《승만경(勝 經)》
⑥《열반경(涅槃經)》
⑦《능가경(楞伽經)》
⑧《무상의경(無上依經)》, 진제역 2권
⑨《대승밀엄경(大乘密嚴經)》, 地波詞羅역 3권, 불공역 3권, 티베트역
B. 여래장을 논하는 논서
①《구경일승보성론(究竟一乘寶性論》
②《대승법계무차별론(大乘法界無差別論)》, 견해저, 제운반야역 1권
③《입대승론(入大乘論》, 견의저, 도태 등 번역
④《대승장엄경론(大乘莊嚴經論)》, 미륵의 논서
⑤《불성론(佛性論)》, 세친저, 진제역 4권
⑥《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마명저. 진제역 1권, 실차난타역 1권
여래장을 기술하고 있는 경전 중에서《열반경》·《능가경》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본래 조그마한 경전이 많다.
문학적으로 이들 경은 주제가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서로 독립된 것으로서 교의상 분명하게 관련이
있다고 인정되지 않은 것 같다. 또한 성립의 순서도 잘 알 수 없다. 그러나 공통된 문제의식은
인정되므로 논리적 연관을 더듬는 일은 어느 정도 가능할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여래장경》·
《여래장엄지혜광명입일체불경계경(如來莊嚴智慧光明入一切佛境界經)》·《부증불감경》·《승만경》
등이 중요하다. 또한《구경일승보성론(究竟一乘寶性論)》은 이의 대표적인 논서이다.
II 여래장 사상의 교리
1. 여래장의 의미
여래장의 원어는 Tath gata-garbha인데, tath gata는 여래, garbha는 태아·모태의 의미이다.
이 언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경은 가장 일찍 성립한 것으로 추정되는《여래장경》이다.
여기서는 여래장이 중생에 대한 설명어로서 사용되는데, 즉 '중생은 여래의 태아이다'라는
정도의 의미였던 것 같다. 그것이 추상화되어 교의적 개념이 되었지만 중생을 가리키는 것으로 바뀌지는 않았다.
즉 중생이 그 안에 여래가 될 태아를 품어 여래의 소질을 가지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일반적으로는 후자처럼 이해하는 사람이 많다. 여래장은 중생과 붓다의 동일성 사상 위에서 발달한
것이기 때문에 대승의 일원적 사상, 또는 성불 문제를 둘러싼 교의사상은 모두 이것에 관련되어 있다.
예컨대 깨닫지 못하고 미망과 깨달음이 둘이 아닌 것(迷悟不二)·보리(菩提, bodhi)·보리심(bodhi-citta)·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 prak ti-pari uddhi-citta) 등은 중생 마음의 본래 성품이 청정한 것이며 번뇌는
우발적인 것으로 청정한 마음을 더럽히는 것에 지나징 않는다(客塵煩惱)는 사상으로서, 원시경전
이래로 설해져 여래장 사상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처럼 여래장 사상의 성립요소가 되었던
사상은 꽤 다채롭지만, 가장 기초적인 사고방식을 제공한 것은 중생에 있어서 붓다의 변재성(遍在性)을
설한《화엄경》<여래출현품>의 사상이었을 것이다. 중생에 있어서 성불 가능성을 확인하고 구제의
보편성을 수립한 것이 이 사상의 목적이었으므로 그것은 당연히 고려될 수 있는 사실이다.
여래장을 논급한 논서나 경전이 일반적으로 아미타불 신앙과 관계가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일 것이다.
자성청정심·객진번뇌의 교리는 이미《아함경》에 나타나며, 부파불교의 논서를 매개로 하여
대승경전에서도《반야경》을 비롯하여 널리 설해지고 있다. 또한 여래장과 같은 계통의
'如來性(tath gata-dh tu, 如來界)' 사상은 이미《유마경》에도 나타나며, 지겸譯(222∼253년경)의
《유마힐경》을 비롯하여 나집역·현장역에도 보이는데, 거기서 여래성은 지저분한 진흙 속에서
피는 연꽃에 비유되어 "여래성은 바로 번뇌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설해지고 있다.
이 비유는 지참역(146-189)의《유일마니보경》에도 보이며, 거기서는 이 여래성이 번뇌 속에
있으되 더럽혀지지 않는 '보살법에 비유되어 있다. 이 보살법은 보살의 본성이란 뜻으로 불성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법화경》의 보살법 등과 같은 계통의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여래장 계통에서는 '일승(一乘, eka-y na)' 사상이 설해지는데, 이것은 '삼승(三乘)'의 중생에게도
성불의 性이 있음을 설한 사상이다. 이 일승사상은 여래장사상으로 귀착한다.
삼승의 사람이 모두 성불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실유불성론(實有佛性論)에 의거하지
않을 수 없으며, 이 실유불성설은 여래장 사상과 다른 것이 아니다.《법화경》이나《화엄경》의
일승사상도 이와 같은 사상의 흐름 속에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일승·보살법·여래성·자성청정심 등의
사상의 흐름을 생각할 때, 여래장사상은 유구하고도 풍부한 전사(前史)를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보성론》이 自說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하는 경전이 대단히 많다는 점도 알 수 있다.
2. 여래장 연기
여래장 사상은《보성론》에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좋겠지만, '여래장연기'의 사상은《대승기신론》에
이르러 성립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여래장과 無明이 일체화한 '아라야식'을 토대로 미혹의
인식계의 전개와 번뇌의 斷盡을 연기의 이론을 적용하여 開示한 것은《기신론》에 이르러서라고 볼 수 있다.
'여래장연기'라는 말은 법장의《대승기신론의기》에 처음으로 나타난다.《기신론》은 <인연분>·<입의분>·
<해석분>·<수행신심분>·<권수이익분>의 5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중심을 이루는 것은 <입의분>과
<해석분>이다. <입의분>에서는 대승을 '法과 義'로 나누어 설명한다. 법은 곧 '중생심'이다. 법이란
'眞의 존재'라는 의미인데, 대승이라는 법은 바로 중생의 마음이며, 우리 범부의 마음에 '大'와 '乘'의
힘이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대승은 대승의 가르침으로 생각되지만, 대승경전에서 설한 대승이나 일승의 의미는
《기신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범부의 마음에 갖춰진 자성청정심, 여래장을 말하는 것이다.
<해석분>에서는 <입의분>에서 설하는 一心·二門·三大를 해석하고 있는데, 이 부분이 전체의 7할을 차지한다.
즉《기신론》의 본문이다.《기신론》에서는 그 후에 '四信'과 '五行'을 설하는데, 이것은 <수행신심분>에서 설해진다.
심진여문(心眞如門)과 심생멸문(心生滅門)의 二門 중에 심생멸문에서 대승 즉 중생심을 밝힌다.
여래장연기는 여기서 설해지는 것이다. 심생멸문에서는 마음의 본성이 '여래장'으로 설해진다.
이것은 인간의 성불할 수 있는 본성을 말하는데, 특히 번뇌로 덮여 있을 때 여래장이라고 한다.
번뇌를 떠났을 때는 '법신'이라고 한다. 在纏位의 법신이 여래장이다.
범부에게 있어서는 여래장은 非顯在的이지만, 그래도 역시 실재한다고 믿는 것이다.
이처럼 여래장의 先在性을 인정하면서도 현실의 마음이 미혹에 빠져 있음을 설명하기 위해서
여래장연기가 설해진다. 미혹으로부터 깨달음에 도달하려면 마음의 연속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연속만으로는 미혹은 미혹 그대로이다. 하지만 미혹에는 미혹 자체를 부정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자기부정의 힘이 갖춰져 있다. 미혹에 빠져있는 범부가 미혹에서 벗어나려는 욕망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이 미혹과 깨달음의 관계를 연속과 단절이 뒤얽힌 것이라고는 설하지 않으며,
不常(연속의 부정)·不斷(단절의 부정)의 공의 입장에서 이해한다. 즉 현실을 '불상·부단'이라는
하나의 것으로 보며, 연속과 단절의 二元의 종합으로 보지 않는다. 이 불생불멸의 진여와 번뇌의
근원인 무명이 不一不로 화합해 있는 것을 아라야식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진망의 화합식이다.
《기신론》의 아리야식은 유식의 알라야식처럼 잠재심은 아니다.
《기신론》에는 잠재심과 표면심이라는 대응관계를 설명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종자와 현행의 관계는 설해지지 않는다. 이 아리야식에는 무명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아리야식에 필연적으로 인식계가 전개된다. 이 아리야식으로부터 인식계의 전과정을 '3세 6추
(三細 六序)'로 나타낸다. '3세란' 미세한 인식계로서, 이 마음의 활동은 의식으로써는 인식되지
않는 것으로 無明業相·能見相·境界相가 있으며, '6추'란 거친 마음의 활동으로서, 의식에 의해서
알 수 있는 자각적 활동으로 智相·相續相·執取相·計名字相·起業相·業繫苦相이다. '3세 6추'의
전개를 識의 관점에서 業識·轉識·現識·智識·相續識의 5식으로 나타내며, 마지막의 상속식을 意識이라고도 한다.
이상의 3세 6추·5의와 의식은 불각의 전개이기 때문에, 망념 세계의 문제이다.
이렇게 망념 세계의 전개를 밝힌 뒤에, 심성·자성청정심과 망념·무명의 상호관계를 밝힌 점이
유식과는 다른 여래장설의 특색이다. 이것이 '眞妄交徹'을 설하는《기신론》의 훈습론이다.
유식설의 훈습론은 표면심의 작용이 아뢰야식에 훈습하는 것을 설하지만, 진여가 아뢰야식과
서로 훈습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에 비해 여래장설에서는 진여가 심성·자성청정심·무념
등으로 불리며, 현상심과 같은 장면으로 생각되고 있다. 그 때문에 불가분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 바로《기신론》의 독특한 설인 진여와 무명의 상호영향, 즉 훈습이 설해지게 된다.
이것을 '染淨相資'라고 한다.
III 승만경의 여래장 사상
1. 승만경에 나타난 여래장 사상
《승만경》에서는 <如來眞實義功德章>·<十大受章>·<三大願章>·<攝受正法章>·<一乘章> 등에
보살의 수행이 설해져 있으며, 그 수행을 통하여 여래장·법신의 開顯을 밝히려 하고 있다.
그리고 다음의 <無邊聖諦章> 제6에서 <自性淸淨章> 제13까지는 여래장 자체에 대해 설해져 있다.
다음의 <眞子章> 제14에는 "여래장이 범부에게 갖춰지는 것은 알기도 어렵고 보기도 어렵기 때문에
단지 붓다의 말씀을 믿을 수 밖에 없으며, 붓다의 말씀을 믿는 자에게는 큰 이익이 있다."고 설해져 있다.
여기에 여래장이 '信의 종교'임이 드러나 있다.
그 뒤에 유통설로서의 <승만장>이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일체 중생에게는 여래장이 있으며, 중생이 아무리 윤회를 되풀이하고 번뇌에 오염되더라도
여래장은 오염되지 않고 소실되지는 않는다."는 것은《여래장경》의 설이다.《여래장경》은
"일체 중생의 탐·진·치 등 갖가지 번뇌 중에는 여래의 지혜·여래의 눈·여래의 몸이 있어서,
결가부좌하여 엄연부동하다"고 설하고, 이 여래장을 아홉 가지 비유로 밝히고 있다.
이 아홉 가지 비유는《불성론》이나《보성론》등으로 계승되었다.
또한《승만경》에 이르면, "여래장은 자성청정이면서도 번뇌에 오염되는데, 이 관계를 범부가
알기 어렵다"는 것이 강조된다. 여기서 여래장이 불타의 근거일 뿐만 아니라, 미혹·범부의
근거이기도 하다는 것이 설해지게 된다. 즉 "세존께서는 여래장이 있기 때문에 생사가 있다고 설하신다. …
[하지만] 여래장에는 생사가 없다. 여래장은 유위의 상을 떠나 있으며, 상주불변하다.
따라서 여래장은 依·持·建立이다."라고 설해진다. 즉 여래장이 染과 淨의 근거(依持)라고 설해지고 있다.
유식불교의 생사의 근거라는 것(즉 알라야식은 깨달음의 근거는 아니다.)은 이해하기 쉬우나, 염과 정,
무상과 상주라는 쌍방의 근거인 여래장을 이해하기란 쉽지가 않다.
이 여래장이 염정의 근거라는 것이 여래장연기의 원형이 되는 것이다.
《승만경》은 여래장의 자성청정·객진번뇌염의 사상과 더불어 여래장의 본성을 5臟으로 밝히고 있다.
5장이란 여래장·법계장·법신장·출세간상상장·자성청정장이다. 이 설은《불성론》이나《보성론》,
진제역《섭대승론석》등에 인용, 해설되어 있으며, 순차적으로 여래장의 自性·因·至得·眞實·秘密의
의미라고 풀이되어 있다. 또한《승만경》에 의하면, 여래장에는 공·불공의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한다.
여래장은 迷悟의 근거라는 점에서, 染에 사로잡히지 않는 '공'의 성질이 없으면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처와 동일한 무량무변의 공덕과 [그 본성이 변치 않는] '불공'의 성질이 없으면 안된다.
이것이 공여래장과 불공여래장의 의미이다. 공여래장은 번뇌가 궁극적으로는 허망임을 간파하는
'공의 지혜'에 기초하고 있다.
불공여래장이란 범부에게 있어서도 眞實佛法이 불공임을 말한다. 그러나 이 '불공'도 공의 지혜에
의거함으로써 비로소 가능하다고 본다. 이러한 상태에 있어서 여래장은 상주불변하는 不思議한
佛法이지만, 그것은 6식 및 心法智를 초월한 것이며, 6식으로써 여래장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범부에게도 여래장이 있기 때문에, 苦를 싫어하고 열반을 희구할 수가 있다.
이처럼 여래장은 6식을 초월하고 상주불변하며, 常樂我淨의 성질을 갖지만, '我'로 잘못 생각해서는 안된다.
"여래장은 我가 아니고, 衆生이 아니며, 命이 아니고, 人이 아니다"고 설하고 있다. 하지만 我와
여래장의 차이를 밝히기란 쉽지 않다. 때문에 대승의《열반경》에서는 "여래장이 곧 '我'이다."라고 설하고 있다.
여래장은 존재론적으로는 아트만과 구별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인식론적·실천적으로는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는 것이 불교의 공의 입장이다.
안이하게 여래장을 '有'로 상정한다면, 그것은 여래장을 잘못 주장하는 셈이 될 것이다.
여래장은 6식으로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6식 중에서 그 존재성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래서《승만경》에서는 空에 住하여 붓다의 말씀을 신봉하는 것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트만과 여래장의 차이는 아트만이 존재론적으로 설해지고 있는데 비해,
여래장은 실천적인 입장에서 주장되고 있다는 점이라 하겠다. 그러나 다음 시대에는
여래장과 我의 관계로부터 윤회의 주체로서의 알라야식과 여래장의 관계가 새로운 문제거리로 대두되게 되었다.
위의《여래장경》이나,《승만경》에서는 여래장과 알라야식의 결합은 생각되고 있지 않다.
또한 대승의《열반경》·《대법고경》·《앙굴라마경》·《부증불감경》등에도 여래장은 설해지고 있지만,
체계적이지 않으며, 여래장경전으로서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지 않다. 알라야식과
여래장의 융합을 설하고, 여래장 즉 알라야식의 사상을 전개한 것은《능가경》이며, 뒤에 나온《밀엄경》이 있다.
2. 승만경에 나타난 여래장 사상의 의의
《승만경》은 상주불변의 법신이 진리라고 생각한다. 세계의 존재는 시간의 규정 아래 있는 유위법과
시간을 초월한 무위법으로 나눌 수 있는데 진리는 무위법에서 나타나게 된다.
苦·集·滅·道의 사성제 중에서 고·집·도의 셋은 유위법이기 때문에 진실한 의미에서의 진리는 유위법을
떠난 상주의 멸제 뿐이다. 그것도 번뇌를 소멸한 것이 멸제는 아니다.
현상적인 소멸을 초월한 상주불멸의 법신이 멸제인 것이다. 생기와 상대되는 현상세계를
표현한 멸(滅, niroddha)의 의미가 부정을 매개로 그것과 차원을 달리하는 실재계(實在界)의
'소멸되지 않는 것(不滅=常住)'의 의미로 발전한다고 하는 사고법은 변증법적이라 하여도 좋을 것이다.
또한 종전의 불교에서는 현실세계를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부정(不淨)이라고 부정적으로
보는 것이 진리였고, 반대로 상·락·아·정(常·樂·我·淨)으로 보는 것은 미망으로 가르쳐 왔다.
《승만경》은 이같은 진리의 부정적 견해를 근거로 한 다음, 법신은 상·락·아·정의 4바라밀의 성질을 가진 것이라 한다. 이런 사고법도 변증법적인 것으로서 무아를 설한 불교가 '아(我)'를 인정하기에 이른 것은 그 의미 내용이
인도 정통철학의 자아(自我, tman)와 전혀 다른 것이라 말할 수 있으므로 불교사상에 있어서 특기해야
할 사항이라고 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법신이 번뇌에 싸여 있을 때 여래장이라 불리지만 여래장
자체는 본래적으로 깨끗한 마음인 자성청정심이고 다만 밖으로부터 번뇌로 더럽혀져 있는데 지나지 않은 것이다.
여래장은 일체법의 의지처가 되는 것이므로 유위의 제법도 무위의 제법도, 혹은 미혹해 있는
윤회도 깨달음인 해탈도 모두 여래장에 기반을 두고 성립한다. 그러므로 여래장의 기초적인
사상은《승만경》에 거의 다 망라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IV 여래장과 他사상과의 관련성
1. 여래장 사상과 불성론과의 관계
불성의 원어는 Buddha-dhatu로 추정되고 있다.
성(性)에 해당하는 dh tu는 보통 계(界)로 번역되어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지만
여기서는 근거·원리와 같은 의미이다. 결국 부처임의 근거가 불성인데, 이런 측면에서보면
여래장은 불성과 동의어라고 할 수 있으며, 다만 유위의 제법을 끊어 얻어진 해탈을 불성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무아(無我)는 아집을 끊은 것이지만 '아(我)'의 관념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여 '아(我)'를 불성이라 이름붙인다. 또 부처님은 중도에 의해 '我가 있는 것(有我)'과
'我가 없는 것(無我)'을 설하는데, 我란 여래장의 의미로서 이것을 가리켜 모든 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불성의 존재는 범부·성문·연각의 사려가 미치는 바가 아니고,
다만 부처님만이 안다. 그렇기 때문에 인도 정통철학이나 세간 사람들이 '我는 엄지 손가락
만한 크기'라든지, '我는 겨자씨 만한 크기'라고 하고 논의하고 있는 것과는 전연 의의를 달리한다.
그렇다면 왜 무아(無我)의 가르침을 설하는가. 그것은 이같은 외도 범부의 망상을 부정하기 위해
무아라하는 것이지 그것은 아가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상주불변하고 진실한 것이 我이므로
여래도 역시 我라고 부르는 것이다. 불성과 여래장은 동의어이지만, 하나의 경전에서 동시에
쓰이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 여래장과 유식론과의 관계
여래장은 실천적 입장에서 이해해야 하지만, 이것을 존재론적 입장에서 취급하게 되면,
여래장과 알라야식의 결합이 문제시된다. 유식설에 있어서는 알라야식은 '망식(妄識)'이다.
이에 비해 여래장의 입장에 설 경우에는 알라야식은 진여와 무명이 결합한 것으로서 '眞忘和合識'이
될 수 밖에 없다. 일반적으로 진망화합식으로서의 알라야식은 진제의 역어로 '아리야식(아려야식)'이라고
하며, 망식의 알라야식은 '아뢰야식(현장의 번역어)'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단순히 번역상의
차이로 원어는 laya-vij na이다. 유식설에서는 아뢰야식을 이숙식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전생의 업의
과보로서의 식이기 때문이다. 이 아뢰야식이 윤회의 주체이다. 윤회의 주체인 아뢰야식으로는 깨달음의
淨法을 발견할 수가 없다. 이에 비해 여래장의 사상은 번뇌로 오염된 마음의 밑바탕에 오염되지 않은
자성청정심을 요청하는 것이다. 이 청정한 것까지도 포함시켜 아리야식이라고 부르기 때문에
그것이 화합식이 되는 것이다. 이 妄과 眞, 染과 淨이라는, 본래 합일불가능한 것을 합일시키고,
아리야식의 전개를 설하는 것은《대승기신론》이다. 따라서 여래장연기설은《대승기신론》에서
완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3. 여래장과 중관론과의 관계
여래장 사상은 유식설 속에서 그 체계가 조직되었지만, 한편으로는 공사상(空思想)의 방편설이라 간주되기도 한다.
그래서 여래장사상인 독립된 학파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중관(中觀)을 잇는 하나의 독립된 제3의 학파라고
주장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 입장에 따르면 어래장사상은 대승의 궁극적인 진리인 空의 철학을 계승하면서도
공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사상체계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중관에 있어서도 공사상은 긍정과 부정의
두 측면을 모두 포괄하고 있었지만, 실제에 있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의 측면에서 이해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대해 여래장사상은 공사상이 지닌 無의 측면보다는 有의 측면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근본적인
개혁이었다고 이해된다.
결론
여래장은 현실적으로 번뇌에 쌓여 있는 중생도 그 본질에 있어서는 부처와 동질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교설이다.
이러한 점에서 여래장사상이 기본적으로 부처님의 자비의 측면을 계승하는 사상체계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런 여래장사상은 불교의 전통 가운데 보편적인 저류(低流)를 이루는 것으로서, 따라서 '여래장이 불교가
아니다.'라는 주장은 대기설법(對機說法)의 도리를 모르는 어리석은 주장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여래장 사상은 여래장이 중생심과 불성이 양립하고 있는 것이라서 쉽게 이해할 수 없다는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여래장 교설의 본래 의도는 이러한 난해성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을 설정해 놓고 그 신(信)의 측면을 강조한 불교의 종교적 부흥 운동이라는데 더 큰 의의가 있는 것이다.
- 참 고 문 헌 -1. 대승불교, 시즈타니 마사오, 스그루 신죠, 문을식譯, 도서출판 여래, 서울: 19952.
인도불교의 역사(下), 히라카와 아키라, 이호근譯, 민족사, 서울: 19943.
불교강좌편, 정승석, 대원정사, 서울: 19944.
初期 如來藏思想의 三寶觀 硏究, 朱敏晃, 東國大學校 大學院, 1986年度 碩士 學位 論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