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이해와 신행
제1 장 지혜와 자비의 부처님
1. 부처님 생애의 의미
불교를 처음으로 창시하신 분은 석가모니 부처님이시다.
그 분은 역사상 실제 인물로 우리 인간 세계에 오셨다.
그러므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에 대한 공부는 불교 교리의 시작이며 마음공부의 기준이라 할 수 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기에 관한 기록을 불타전(佛陀傳) 혹은 불전(佛傳)이라고 하는데, 크게 본생담과
비유담으로 나눌 수있다.
본생담은 자타카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에 관한 우화나 설화를 말한다.
그리고 비유담은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여러 부처님들과 보살들에 관한 이야기들을 말한다.
이러한 불타전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다루는 것이 룸비니 동산에서의 탄생, 붓다가야에서의
깨달음, 녹야원에서의 최초 설법 그리고 쿠시나가라에서의 열반이다.
우선 위에 열거한 부처님의 생애에 있어 네 가지 중요한 사건들이 갖는 의미를 간략히 살펴보자.
탄생과 관련해서 부처님은태어나자마자 일곱 발자국을 걸으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라 크게 외치셨다고 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당시 신 중심의 인간관과 세계관을 부정하고 인간의 존엄성과 자아 중심의 세계관이
불교의 핵심임을 선언하신 것이다.
또한 부처님 법은 다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다는 불법의 절대적 존엄성을 상징하고 있다.
나아가서 우리는 이 선언을 통해 이후 석가모니 부처님이 얻은 깨달음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다.
즉 그것은 진정한 자아 회복에 관한 것이다.
부처님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정진하다가 드디어 모든 번뇌가 완전히 사라지고 환희로 가득한 깨달음을 얻는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불교의 최종 목적지가 어디이고 어떻게 그 곳에 도달할 수 있는지를 상징하고 있다.
즉 우리가 부처님께 예불을 드리고 참선을 하고 그리고 불교 교리를 공부하는 이유는 곧 부처님과 같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부처님은 단식을 하고 숨을 쉬지 않는 등의 극단적 고행주의 수행도 하셨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통해서는 진정한 깨달음을 얻지 못함을 아셨다.
그리하여 지나친 고행과 쾌락을 피하며 적당한 음식을 드시고 보리수나무 아래서 선정에 드는
중도의 길을 통해 최고의 깨달음을 얻으셨다.
한편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후 녹야원에서 옛 수행 동료였던 다섯 수행자들에게 최초의 법문을 하신다
[初轉法輪]. 이것은 부처님이 당신의 깨달음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 말씀을 한다는 점에서
주의 깊게 음미해야 할 대목이다.
그 내용은사성제와 팔정도로 알려져 있다.
사성제란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로 부처님이 직접 당신의 깨달음을 중생들에게 가르친 최초의 법이다.
팔정도란 사성제를 통해 확실히 파악된 괴로움과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여덟 가지
바른 실천을 말한다. 또한 부처님의 설법을 들은 다섯 수행자들이 곧 부처님께 귀의하여 최초의
제자들이 된 것은 불교의 세 가지 보물인 삼보[佛, 法, 僧]가 성립하게 된 사건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부처님은 쿠시나가라에서 열반에 드는데 제자들에게 진리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할 것이며 당신에게 의지해서는 안되며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정진하라는 말씀을 남긴다.
이는 부처님을 따르는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가르쳐 주는 중요한 말씀이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생애를 통해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로서 지혜와 자비라는 커다란
두 개의 축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부처님은 한 인간으로서 동료 인간들에게 무한한 선의와 자비심을 갖고 있는 휴머니스트였다.
그것은 『증일아함경』 권 28에서다음과 같은 부처님의 인간선언으로 정리되어 있다.
인간으로 성장하였으며
인간으로서 붓다를 이루었다.
我身生于人間 長于人間 于人間得佛
신의 아들도 아니고, 스스로 신이라고 주장한 일도 없으며, 어떠한 신적(神的)인 권위나 강제된 교리도
설한 일이 없는 한 인간의 삶과 사상에서 불교와 같이 장대하고 깊이 있는 가르침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다. 한 인간으로서 부처님 개인의 삶에서 성취된 해탈의 가르침과
숭고한 인류애는 바로 불교의 변치 않는 척도를 나타내고 있다.
불교의 가르침에 귀의했던 모든 시대의 사람들은 불교의 사상과 실천을 통해서 한층 성숙한
안목으로 자신들의 인생을 바라보게 되었고, 수많은 구원과 신앙의 보살상을 완성해 냈다.
관세음보살도, 보현보살도, 지장보살도, 문수보살도, 대세지보살도, 인로왕보살도 모두 불교의
영원한 인간상을 전형적으로 보여준다.
2. 시방에 두루하신 부처님
불교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부처님이 몇 분이나 계시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른지 또는
부처님은 신인지 인간인지 등에 대해서 많은 혼란을 일으킨다.
여기서는 우리가 모시는 부처님은 어떠한 분인지 교리적 측면에서 이해해 보고 자 한다.
① 그와 같이 오신 분, 여래
석가모니는 인도의 석가 부족의 위대한 성자라는 의미로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하여 깨달음을 얻은 뒤의 호 칭이다.
그리고 부처님이란 깨달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인도 고대 언어인 산스크리트어 붓다(Buddha)에 대한 우리 말이다.
또한 석가모니불 혹은 석가모니 부처님이라는 말은 경전 등에 나오는 부처님에 대한 정식 호칭은 아니고
아미타 부처님과 같은 다른 부처님과 구별하기 위해 통상적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다시 말하면 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석가모니 부처님이 출현하시
기 이전에 이미 여섯 분의 부처님들이 계셨고 서방 정토 에는 아미타 부처님이 계시는 등 많은 부처님들이 계신다.
바른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여래(如來)라는 부처님의 호칭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래란 석가모니 부처님 당시 인도에서 사회적으로 위대한 사람들을 일컫는 고유 명사였지만 불교에서는 보다 깊은 뜻을 지니게 되었는데 이 말은 산스크리트어 ‘타타가타(Tatha-gata)’를 옮긴 말로 직역하면 ‘그와 같이 오는 것’, ‘있는
그대로 오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타타가타를 여거(如去)라고도 하는데 ‘그와 같이 가는 것’, ‘있는 그대로 가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있는 그대로 (tatha-)’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첫 번째는 부처님 혹은 부처님의 법은 시방(十方 : 동서남북, 동북, 동남, 서북, 서남, 상하)과
삼세(三世 : 과거, 현재, 미래)에 두루 걸쳐 항상 변함없이 있음을 말한다.
두 번째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생애는 출가하여 단지 6년의 수행 끝에 깨달음을 얻고
중생 제도를 하시다가 열반 에 든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석가모니 부처님은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로 우리 인간 세계에 오기 전 오랜 과거
생애동안 보살로서 꾸준히 수행하며 수많은 중생을 제도한 결과 마침내 현생에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부처님의 법은 시간과 공간에 구애되지 않고 항상 변함없이 중생 제도를 목적으로 다른 명칭과
다른 몸, 즉 석가모니 부처님을 비롯한 여러 부처님들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② 법신ㆍ보신ㆍ화신
석가모니 부처님의 열반에 관해 우리는 소박한 질문을 하나 할 수 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면 왜 죽음은 피할 수 없었던가.
우리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법(法)과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지 당신 에게 의지하지 말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당부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서 자기 자신에게 의지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모든 중생 하나 하나가 스스로 깨달음의
주체임을 말씀하셨다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법에 의지하라는 말씀 중의 법은 무엇을 의미하고 부처님과 법의 관계는 어떤지 많은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한편 경전에서는 부처님의 몸은 법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의 본래 모습은 법 그 자체인데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중생과 같은 몸을 빌려 중생의 세계에 오셨다는 것이다.
이것을 중생의 입장에서 해석한다면 우리 중생들은 본래 부처님의 법 그 자체를 볼 수도 들을 수도 없는
존재이므로 그 법을 쉽게 알아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중생과 같은 모습으로 형상화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부처님과 법의 관계를 불교 교리에서는 삼신설(三身說)로 설명하고 있다.
삼신이란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을 말한다.
첫 번째 법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법(法)이라는 말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필요하다.
불교에서의 법은 크게 세 가지 의미로 쓰인다.
우선 부처님의 가르침, 즉 불교 교리를 말한다.
두 번째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얻은 깨달음 을 일컫는 말로 모든 중생의 세계와 깨달음의 세계의 본질을 의미한다.
세 번째는 내가 눈으로 사물을 본다고 할 때 나라는 존재는 보는 주체가 되고, 보이는 사물은 대상 그리고 눈은
보는 수단이 되듯이 우리의 의식이 주체가 되어 어떤 것을 인식할 때 그 대상이 되는 것을 법이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린 시절의 어떤 추 억을 회상할 때 그 추억이란 우리 의식의 대상이라는 점에서 법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법신의 법이란 두 번째의 법을 의미한다.
이 법은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기 이전에도 그리고 열반에 든 이후에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변함없이 존재하는 진리 그 자체를 말한다.
따라서 법신이란 이와 같이 영원불변하고 유일한 법을 부처님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오분향 예불문’의 첫머리에 ‘계향, 정향, 혜향, 해탈향, 해탈지견향, 광명운대 주변법계’라고
나오는데, 계율을 지키고[戒],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定], 참된 지혜를 갖추고[慧], 깨달음을
얻어 속박에서 벗어나고[解脫], 그 깨달음으로 얻은 자유자재 함을 스스로 알고 있는 것[解脫知見],
이 다섯 가 지가 법신불이 갖추고 있는 덕목이라 한다. 대표적인 법신불로서는 비로자나불과
대일여래를 들 수 있다.
두 번째 보신은 응신(應身)이라 하는데, 보신의 보(報)나 응신의 응(應)은 모두 받는다는
뜻으로 깨달음을 얻은 뒤 그 깨달음을 위해 끊임없이 정진했던 과보를 즐긴다는 의미이다.
법신이 중생을 직접 제도하지 않는 것과는 달리 보 신은 법신과 같은 덕목들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중생의 간절한 서원에 따라 중생 앞에 나타나기도 하고 내생에 그 중 생을 제도하기도 하는 부처님이 보신불이다.
아미타부처님이나 악사여래부처님이 대표적인 보신불이다.
마지막으로 화신이란 보신과 같이 본래 법신의 부처님이지만 중생 제도를 위해 중생의 몸으로
바꾸어 직접 중생의 세계로 오신 부처님을 말한다. 따라서 보신불과는 달리 중생은 현생에서
언제나 부처님을 만날 수 있다. 석가모니부처님이 대표적인 화신불이다.
앞에서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고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 자재함에도 불구하고
왜 열반에 드셨을까 하는 소박한 의문을 가졌다. 그리고 법을 스승으로 삼고 당신을 스승으로
삼지 말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당부 말씀을 통해 그 의문을 해결하고자 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말씀하신 법이란 법신으로서의 부처님을, 그리고 당신은 화신의 부처님이었음을 알 수 있다.
③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여러 부처님들
우리는 여래라는 부처님의 호칭과 삼신설을 통해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도 여러 부처님이 계셨고
이후에도 계실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여기서는 삼세와 시방 세계에 걸쳐 어떤 부처님들이 계시는지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에 여섯 분의 부처님, 즉 비바시불, 시기불, 비사부불, 구류손불,
구나함모니불, 가섭불이 계셨다고 하는데 이 여섯 부처님에 석가모니불을 포함하여 과거칠불이라 부른다.
또한 석가모니불 다음에 미래에 오실 부처님으로 미륵불이 계신다.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이 인간 세계로 오시기 전에 도솔천에서 보살로 머물면서 정진했던 것처럼
지금 도솔천에서 미륵보살로 있으면서 부처님이 되기 위해 정진하고 있다고 한다.
한편 불교에서는 세계를 지금 우리가 우주를 생각하는 것과 비슷한 규모로 말하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태양계에 속하는 작은 별이고 태양계는 은하계에 속하고 우주 공간은
시방으로 무한대로 뻗어 나가며 수많은 별들이 존재한다. 이와 비슷하게 불교의 세계관은 수미산을
중심으로 시방으로 무수한 세계가 존재하는데 그 수를 헤아려 삼천대천세계라고 한다.
그리고 이 무수한 세계 각각에는 부처님이 반드시 한 분씩 계셔 각 세계의 중생들을 제도하고 계신다고 한다.
대표적인 예로 우리 인간들이 살고 있는 사바세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오셨고, 동방의
묘희(妙喜) 세계에는 아촉불이 계시고, 서방의 정토세계에는 아미타불이 계신다.
이와 같이 불교에는 수많은 부처님들 이 계시지만 그 본연의 모습은 오직 법신불로서 모두 동등하다.
3. 부처님의 덕성 - 십팔불공법
우리가 흔히 어떤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은 인자한 성품을 지녔다,
혹은 욕심이 많다 등으로 말한다...또 한 어떤 종교에서 그들의 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신은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또한 신은 완벽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성품에 대해서 어떻게 설명하고 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비록 부처님의 성품을 말로서 표현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지만, 불교는 우리들이
보다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도록 아주 명료하고 구체적으로 부처님의 덕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즉 부처님은 열 가지 지혜의 힘, 네 가지 확신, 세 가지 바른 마음자세, 그리고 중생을 어여삐
생각하고 구제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계신다.
이와 같은 부처님의 성품은 모두 합하면 열여덟 가지이고 오직 부처님만 가지고 계신다고 하여
십팔불공법(十八不共法)이라 한다.
① 십력
열 가지 지혜의 힘, 부처님께서는 열 가지 지혜의 힘을 가지고 계신데 이를 십력(十力)이라고 한다.
십력은 다음과 같다.
첫째, 도리와 도리가 아닌 것을 분명히 분별하시는 지혜의 힘이다(處非處智力).
둘째, 업과 그 과보를 분명히 아시는 지혜의 힘이다(業異熟智力).
셋째, 여러 가지 선정(禪定)에 통달하신 지혜의 힘이다(靜慮解脫等持至智力).
넷째, 각 중생은 깨달음에 대해 저마다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히 아시는 지혜의 힘이다(根上下智力).
다섯째, 각 중생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의욕이 저마다 다름을 분명히 아시는 지혜의 힘이다
(種種勝解智力).
여섯째, 각 중생의 성품을 분명히 아시는 지혜의 힘이다(種種界智力).
일곱째, 각 중생이 수행에 따라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의 단계를 분명히 아시는 지혜의 힘이다(遍聚行智力).
여덟째, 시작 없이 윤회한 각 중생의 전생(前生)에 일어난 모든 일들을 분명히 아시는 지혜의 힘이다(宿主隨念智力).
아홉째, 끝없이 윤회할 각 중생의 내생(來生)에 일어날 모든 일들을 분명히 아시는 지혜의 힘이다(死生智力).
열째, 중생들의 모든 번뇌가 다하면 깨달음을 얻을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시는 지혜의 힘이다(漏盡智力).
② 사무소외
네 가지 확신.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확신, 즉 두려움 없는 네 가지 마음을 가지고 계신데
이를 사무소외(四無所畏)라고 한다. 사무소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최고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분명히 말씀하시는 데 조금의 의심도 없는 확신이다(正等覺無畏).
둘째, 모든 번뇌가 다 소멸되었다고 분명히 말씀하시는 데 조금의 의심도 없는 확신이다(漏永盡無畏).
셋째, 모든 번뇌를 다 소멸시키는데 방해가 되는 그른 수행법을 분명히 말씀하시는데 조금의 주저도 없는 확신이다
(說障法無畏).
넷째, 모든 번뇌를 다 소멸시키는 바른 수행법을 분명히 말씀하시는 데 조금의 주저도 없는 확신이다(說出道無畏).
③ 삼념주
'세 가지 바른 마음 자세'란 중생이 부처님을 다음 세 가지 방법으로 생각해도 부처님의 마음은
흔들림 없이 항상 그 자리에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삼념주(三念住)라 하는데 다음과 같다.
첫째, 모든 중생이 부처님을 받들고 따르더라도 기쁜 마음에 흔들리지 않고 항상 바르게 알고 바르게 생각하신다
(初念處).
둘째, 모든 중생이 부처님을 믿지않고 비방하더라도 불안한 마음에 흔들리지 않고 항상 바르게 알고
바르게 생각하신다(第二念處).
셋째, 어떤 중생은 부처님을 받들고 따르지만 또 어떤 중생은 믿지 않고 비방하더라도 기쁜 마음과 불안한
마음에 흔들리지 않고 항상 바르게 알고 바르게 생각하신다(第三念處).
④ 대비(大悲)
중생을 어여삐 생각하고 구제하려는 마음, 우리가 부처님과 관세음보살을 부를 때
‘대자대비(大慈大悲)하신 부처님’, ‘대자대비하신 관세음보살님’이라고 한다.
대자대비의 대(大)는 크고 깊다는 뜻이고 자(慈)란 중생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베푸는 것이고
비(悲)란 중생의 괴로움을 불쌍히 여겨 구제하려는 것이다.
부처님은 열 가지 지혜의 힘, 네 가지 확신, 그리고 세 가지 바른 마음자 세로 중생에게
대자(大慈)를 베풀고 대비(大悲)로 고통과 번뇌의 세계에서 괴로워하는 중생들을 어여삐 생각하여 구제하고자 한다.
4. 부처님의 열기지 다른 이름, 여래십호
많은 불교 경전에서 부처님은 불(佛), 붓다 등 이외에도 다른 많은 이름으로 불려진다.
그 중 대표적인 호칭 열 가지를 여래십호(如來十號)라고 한다.
여기서는 부처님의 열 가지 다른 이름이 가지고 있는 의미를 음미함으로써 부처님이 어떤 분인가를
다른 각도에서 정리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앞에서 부처님에 대한 이해의 출발점으로 석가모니 부처님 생애의 의미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석가모니 부 처님과 다른 여러 부처님의 관계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로 여래(如來)라는
부처님의 호칭에 담겨있는 의미를 음미 했다...즉 앞에서 여래란 산스크리트어 타타가타를 번역한
말로 직역하면 ‘그와 같이 오는 것’, ‘있는 그대로 오는 사람’이라 하였다.
또한 이것은 시방삼세에 상주불변하는 부처님의 법이 중생 제도를 목적으로 다른 명칭과
다른 몸의 부처님들로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하였다.
흔히 우리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석가여래, 아미타 부처님을 아미타여래라고도 부른다.
그러므로 여래란 부처님이라는 호칭과 함께 가장 중요한 부처님의 이름인 것이다.
따라서 부처님의 열 가지 이름을 여래십호라 하는 것이다.
여래십호란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변지(正遍知), 명행족(明行足), 선서(善逝), 세간해(世間解),
무상사(無上士), 조어장부(調御丈夫), 천인사(天人師), 불세존(佛世尊)등 이상 열 가지를 말한다.
응공은 응수공양(應受供養)에서 온 말로 깨달음을 얻었기에 마땅히 공양을 받을 만한 분이라는 뜻이다.
또한 응공은 산스크리트어 아르하뜨(Arhat)를 번역한 말로 아라한(阿羅漢) 등의 말의 유래와 같다.
정변지란 산스크리트어의 삼먁삼보리(Samyaksambodhi)로 등정각자(等正覺者)와 같은 말로
우주 만물의 모든 이치를 완전하고 바르게 깨달은 분이라는 뜻이다.
명행족이란 깨달음의 지혜와 그 실천을 함께 갖추신 분,
선서는 고통스런 생사윤회의 강을 건너가신 분,
세간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완전하게 이해하신 분의 의미이다.
무상사는 산스크리트어로 아뇩다라(Anuttara)인데 그 어떤 것보다 위에 계시는 분,
조어장부는 대자대비의 마음으로 중생을 깨 달음으로 인도하는 분,
천인사는 하늘의 신과 중생의 스승을 의미한다.
불세존은 불과 세존이라는 두 가 지 명칭이 함께 쓰인 경우로 불은 깨달은 사람 그리고 세존은
중생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분이란 뜻으로 불세존은 말 그대로 부처님이라는 뜻이다.
한편 『반야심경』 중에는 ‘아뇩다라 삼먁삼보리’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곧 부처님의 다른 두 가지 이름,
즉 무상사와 정변지를 말하는 것으로 이 때는 부처님이 얻은 최상의 절대적인 깨달음을 의미한다.
또한 부처님을 ‘아뇩다라 삼먁삼보리 타타가타[無上正等覺如來]’ 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최상의
절대적인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이라는 뜻으로 부처님에 대한 최고의 존경을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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