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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禪詩 ·茶詩·漢詩

나를 위해 늦봄에 핀 꽃 / 천경대사

by 범여(梵如) 2014. 4. 8.

나를 위해 늦봄에 핀 꽃 / 천경대사

(天鏡) 默對靑山坐 [묵대청산좌]
山嫌白髮來 [산혐백발래]
巖前一朶花 [암전일타화]
慰我晩春開 [위아만춘개]

조용히 푸른 산 마주하고 앉으니
산은 백발이 왔다고 싫어하나
바위 앞 한 떨기 꽃은
나를 위로하려 늦봄에 피었구나

천경대사의 詩이다. ‘괴정에서 우연히 읊다(槐亭偶吟)’라 한 시이다.
늙은 괴목 앞에서 우연히 대하게 된 한 순간의 광경을 그저 버릇처럼
사진기를 들이대는 한 풍경화 촬영사처럼 다가가고 있다. 전편에서
아무 꾸밈이 없는 그저 소박함이 넘쳐난다.

시의 소재라야 나와 청산 그리고 꽃 뿐이다. 지나던 나그네가 정자에
올랐을 때의 한 순간으로 언제나 있을 수 있는 일상의 풍경들이다.
정자에 오르면 산을 마주하게 되는 것은 정자가 있는 위치의 일상적
속성이 그럴 수밖에 없다. 아니 정자의 속성이라기보다도 사람의
거처라는 것이 그럴 수밖에 없다.

앞을 바라보다 라는 말 자체가 산 아니면 물이다. 정자가 물가나 산 언덕에
세워지는 것이 정석이라 한다면 거기에 머무는 나그네의 시선은 아래로 보면
물이요 마주 보거나 위로 보면 산이다.

지금 이 시의 첫 구에서 조용히 청산을 보고 앉았다 함은 이러한 나그네의 일상성이다. 다만 조용히 앉았다 함이 의도적 묵상처럼 느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조용히라는
한 마디가 이 시의 꾸밈없는 소박함을 전제로 아주 중요한 한 자이다.

앉아 있으면 자연스럽게 마주하는 산이다. 그저 무심인데, 이 무심을 유심의
의도로 대해 주는 청산이다. 백발이 왔다 하여 싫어한다는 것이다. 유정의
나는 무심이 되어 있고, 무정의 산이 오히려 유심한 주체가 되었으니
이 또한 역설의 극치다. 이런 광경을 연민스럽게 여기는 한 떨기의 꽃이
나를 위로하고 나섰다. 이미 봄이 다 지나 모든 꽃이 사라지는 계절인데,
철 늦음을 잊고 피어 있는 것이다. 꽃으로서야 늦다 이르다는 생각없이
피어 있는 것이지만, 산에게 푸대접을 받은 나로서는 이 철 늦은 꽃이 어느
때보다 반가웠고 그 반가움으로 바로 지금 이 산의 푸대접에 대한 보상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저 피어 있음으로 해서 꽃일 수밖에 없는 저 무정물을
이제는 내가 나의 서글픔을 위로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유정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괴수나무 정자라 하였으니 여기의 꽃이 괴수나무꽃일 수도 있으며, 그렇다면
이 꽃은 늦봄보다는 초여름에 피는 것이 당연하니 그런 점에서 이 꽃 또한
일상의 개화이다.

이렇듯 일상의 평범함을 순간의 유의적 각별한 순간으로 형상화하는 것이
선사들의 평상심이 진리라는 깨우침의 자세요, 시인의 안목으로는 일상사
모든 것을 오히려 아름다움으로 환형시키는 예술적 솜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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