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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禪詩 ·茶詩·漢詩

머리돌려 멀리 하늘을 보다

by 범여(梵如) 2014. 2. 22.

머리돌려 멀리 하늘 보다 / 허정대사
一下牛城又一年 [일하우성우일년]
峨嵋物色夢依然 [아미물색몽의연]
遙知象外饒禪興 [요지상외요선흥]
肯念塵間重俗緣 [긍념진간중속연]
林月散明春葉露 [임월산명춘엽로]
寺鍾寒度慕山煙 [사종한도모산연]
關河搖落傷懷抱 [관하요락상회포]
矯首難堪望遠天 [교수난감망원천]

우성을 내려온지 또 한 해 아미산의 풍경은 꿈에만 아득 물상 밖의
참선의 흥 넉넉함 알면서도 티끌세상 무거운 세속인연 아쉬워하나
숲의 달 봄 잎의 이슬을 여기 저기 비추고 절 종은 싸늘히 저녁 연기
타고 오네 국경 저 멀리로 서글퍼하는 회포가 지니 머리 돌려 먼 하늘
바라보기 힘겨워 위 시는 허정대사의‘망향산(望香山)’이라 제한 시이다.

허정대사가 묘향산의 상운암에서 지은 시에서는 암자의 정경보다는
그 암자의 주인공 인품을 간접적으로 이해하게 하는 시였다.
이번의 시는 묘향산을 밖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초점을 맞추었다.
속세로 내려온 지 한 해가 넘은 스님으로서 고향과도 같은 산사를 그리워하는 시이다.

멀리서 그리는 심정, 멀리 알다(遙知)의 두 글자에서 그리워하는 거리를 짐작케 한다.
물상 밖의 풍족한 참선의 흥이다. 이러한 흥을 잊은 지가 한 해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세속의 무거운 인연에 이끌리는 속정이 일 수도 있다.
이런 염려가 더욱 산사를 그리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산사의 옛 풍경을 상상하는 것이다.
지금 묘향산에 어우러질 풍경, 봄이 되어 새싹으로 돋는 잎에 달빛이 어리고
이 잎들에 맺은 이슬은 구슬인 양 동글동글한데 거기에 이 달빛이 비춘다.
이것을 흩어지는 밝음(散明)이라 하였다. 여기저기서 반짝거리는 빛이다.
밤의 요정 같은 인상이 떠오른다. 저문 산의 아지랑이에 싸여 들려오는
종소리 싸늘히 건너오다(寒度) 하였다. 역시 멀리서 그리워하는 작자의 심경에
어울리는 표현이다. 그리움으로 차있는 회포 상하다는 표현을 빌릴 만큼 그리운
회포이다. 멀리 저 하늘 끝으로 달리는 회포이다.

그러기에 멀리 떨어지다로 표현하였다. 머리 돌려 하늘을 쳐다보기가 어렵다.
속인의 처지에서 보면 고향으로 와서 되례 고향을 그리고 있는 격이다.
그러나 스님으로서는 산사가 어디까지나 고향이다. 미련을 여의는 것이
역시 집착이 없는 수도의 방편일 것 같기도 하지만, 스님 이전의 자연인으로서도
어쩔 수 없이 그리는 것이 자신의 과거인 것이다. 견디기 어려움(難堪)으로
표현한 끝 구의 결론이 소탈한 스님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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