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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일반 계시판

법정 큰 스님의 열반을 추모하오며

by 범여(梵如) 2010. 3. 12.

            

   [법정스님 입적]

 

 

3~4년 전부터 폐암으로 투병해오시던 법정 스님이 11일 오후 2시 께 길상사에서 입적하셨습니다. 

법랍 55세. 세수 78세.

지난 해 연말에는 제주도에서 요양했으나 올들어 병세가 악화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해왔고,

입적 직전인 11일 낮에는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로 옮겼습니다. 


1932년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스님(속명 박재철)은 1955년 오대산을 향해 떠났다가

폭설에 길이 막히자 서울의 선학원에 와서 당대 선승인 효봉 스님을 만나 그 자리에서 탈속하셨습니다. 

 

 

스님은 1975년부터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을 짓고 홀로 살았으며 불일암 시절 초반인 1976년 4월
 대표적인 산문집 ‘무소유’를 출간하여 베스트셀러 되었습니다. 이후 스님은 무수한 산문집을 내었고,
그때마다 독서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스님은 1992년부터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 지내면서
 외부인과의 접촉을 잘하지 않았지만, 1996년 성북동의 요정 대원각을 기부받아 
1997년 길상사를 개원하였습니다.  법정스님은 몇년 전부터 자신의 건강상태를 의한 듯
 길상사 소식지에 실었던 수필들을 모아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를 출간하였습니다

 
 ▷

 

'무소유' '서있는 사람들' 등 베스트셀러 작가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한 선승으로 널리 알려진

전 서울 성북동 길상사 회주 법정() 스님(사진)이 11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2동 길상사에서 입적했다.

세수 78세, 법랍 55세.

스님은 1932년 전남 해남군에서 태어나 전남대 상대 3년을 수료한 뒤 24세 때인 1956년 경남 통영시 미래사에서

효봉() 스님을 만나 출가했다. 1959년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5대 총림의 하나인 전남 순천시 송광사 조계총림의 문을 연 구산 스님, 송광사 회주인 법흥 스님,

환속한 시인 고은 씨 등과 사형사제 간이다.

경남 합천 해인사, 경남 하동군 쌍계사, 송광사 등의 선원에서 수선안거()했다.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송광사 수련원장 등 종단 소임을 몇 차례 맞았을 뿐이며,

수행자로서 본분에 충실했다. 1994~2003년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 회주와 1996~2003년

서울 성북구 길상사 회주를 지냈다.

1976년 처음 나온 밀리언셀러 산문집 '무소유'를 비롯해 '서있는 사람들' '산에는 꽃이 피네' '버리고 떠나기'

 '물소리 바람소리' 등 30여 권의 책을 냈다.

                                 
탐욕의 시대… 청빈의 삶 실천한 '영혼의 스승'
 
강원도 산골서 혼자 살며 '영롱한 글'로 대중과 소통
"내 것이라고 남은 게 있으면 맑은 사회 구현에 써달라"
  • 11일 입적한 법정(法頂) 스님은 종교를 넘어 일반 국민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스타 스님이다. 오두막에서 자연을 지키며 청빈한 삶의 여유와 아름다움을 호소하는 글을 통해 영혼을 정화시킨 베스트셀러 작가였다. 하지만 그는 평생 불교의 가르침을 지키는 출가수행자로서의 본분을 잃지 않으며 ‘무소유’ 정신을 실천한 ‘영혼의 스승’으로 자리했다. 스님은 자신이 창건한 길상사의 회주를 한동안 맡아 대중 법문을 들려줬을 뿐 그 흔한 사찰 주지 한 번 지내지 않았다.
     
    ◇2008년 10월 법정 스님(가운데)이 설법을 위해 길상사 거처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삶과 죽음을 고뇌하며 진리의 길을 찾아나서다=
    1932년 10월8일 전남 해남에서 태어난 법정 스님은 한국전쟁을 경험하면서 삶과 죽음에 대해 고뇌한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55년 진리의 길을 찾아 나선 그는 마침내 입산 출가를 결심하고 오대산의 절을 향해 떠난다. 하지만 눈이 많이 내려 길이 막히자 서울로 올라와 안국동 선학원에서 당대의 선승 효봉 스님(1888∼1966, 1962년 조계종 통합종단이 출범한 후 초대 종정)을 만나 대화한 후 그 자리에서 삭발하고 출가했다.

    다음날 통영 미래사로 내려가 행자 생활을 하며 당시 환속하기 전의 고은 시인, 박완일 법사(전 조계종 전국신도회장) 등과 함께 공부했다. 법정 스님은 이듬해 사미계를 받은 후 지리산 쌍계사에서 정진했다. 28세 되던 1959년 3월 양산 통도사에서 자운 율사를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1960년 봄부터 이듬해 여름까지 통도사에서 운허 스님과 함께 ‘불교사전’을 편찬하고 1960년대 말 서울 봉은사 다래헌에서 운허 스님 등과 함께 동국역경원의 불교 경전 번역작업에 참여했다. 이 시절 함석헌, 장준하, 김동길 등과 함께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결성과 유신 철폐운동에 참여했던 법정 스님은 1975년 인혁당 사건으로 충격과 자책을 느낀 후 걸망을 짊어지며 본래의 수행승의 자리로 돌아간다.

    1975년 10월부터 송광사 뒷산 불일암 터에 토굴을 짓고 홀로 살기 시작했다. 이 무렵인 1976년 발간된 저서가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산문집 ‘무소유’였다. 그러나 끊임없이 불일암을 찾아드는 사람들의 등쌀에 불일암 생활 17년째 되던 1992년 다시 출가하는 마음으로 불일암을 떠나 아무도 거처를 모르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지금까지 혼자 지내왔다. 그곳은 화전민이 살다가 버리고 간,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오두막에서 전파한 진정한 부와 행복에 이르는 법=건강이 나빠진 법정 스님은 지난해 겨울 제주도에서 보냈다가 건강상태가 악화하면서 삼성서울병원에 입원했다. 하지만 입원 중에도 의식을 또렷하게 유지하면서 “강원도 오두막에 가고 싶다”고 거듭 말했다는 것이 주변의 전언이다.

    은둔자의 삶을 살며 홀로 땔감을 구하고 밭을 일구며 청빈을 실천했던 법정 스님은 주옥 같은 산문으로 맑은 정신을 풀어내며 대중에게 깊은 감동을 남겼다. 그는 2008년 마지막 산문집 ‘아름다운 마무리’에서 “내 삶을 이루는 소박한 행복 세 가지는 스승이자 벗인 책 몇 권, 나의 일손을 기다리는 채소밭, 그리고 오두막 옆 개울물 길어다 마시는 차 한 잔이다”라고 말한 스님은 “늘 모자랄까봐 미리 준비해 쌓아 두는 마음이 곧 결핍”이라고 일깨웠다.

    법정 스님은 평소에는 강원도 산골에서 지냈지만 대중과의 소통도 계속했다. 특히 법정 스님의 무소유 사상에 감동한, 시인 백석의 연인으로 유명했던 김영한 할머니(1999년 별세)로부터 고급요정이던 성북동의 대원각 터 7000여평을 시주받아 1997년 12월 길상사로 탈바꿈시켜 창건했다. 그리고 스님은 2003년까지 길상사의 회주로 주석하면서 1년에 여러 차례 정기 법문을 들려주며 시대의 잘못을 꾸짖고 고단한 대중들을 위로했다.

    ◆마지막 길까지 놓지 않은 ‘무소유’ 정신=스님의 이름과 동의어처럼 불리는 산문집 ‘무소유’에서 스님의 평생의 삶이 꽃을 피운다. ‘무소유’는 1976년 4월 출간된 후 지금까지 34년간 약 180쇄를 찍은 우리 시대의 대표적 베스트셀러다. 스님은 ‘무소유’에서 “우리는 필요에 따라 소유한다. 하지만 그 소유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을 갖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에 얽매이는 일, 그러므로 많이 가지면 그만큼 많이 얽매이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스님은 “무소유는 단순히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 것을 뜻한다”고 했다.

    산문집은 물론 수많은 법문집과 경전 번역서, 여행서 등을 저술한 법정 스님은 우리 출판계 역사에도 기록될 베스트셀러를 숱하게 남기며 탐욕의 시대, 우리에게 마음의 등불을 밝혔다. 또 부처의 가르침을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쉬운 말과 글로 옮겨 전할 방법을 고민했다. 그러면서도 스님은 “나는 가난한 탁발승이오. 내가 가진 거라고는 물레와 교도소에서 쓰던 밥그릇과 염소젖 한 깡통, 허름한 담요 여섯 장, 수건 그리고 대단치도 않은 평판, 이것뿐이오”라고 했던 마하트마 간디의 어록에서 크게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겸손해했다.

    스님의 마지막 가는 길은 생전과 다름없었다. 그는 번거롭고 부질없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수고만 끼치는 일체의 장례의식을 행하지 말고, 관과 수의를 따로 마련하지도 말며, 편리하고 이웃에 방해되지 않는 곳에서 지체없이 평소의 승복을 입은 상태로 다비해 달라. 사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며, 탑도 세우지 말라고 당부했다. 이 같은 스님의 유지에 따라 송광사는 일체의 장례의식을 거행하지 않으며 일체의 조화나 부의금도 접수하지 않기로 했다.

    스님은 또 입적하기 전날인 10일 밤에 “모든 분들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내가 금생에 저지른 허물은 생사를 넘어 참회할 것이다. 내 것이라고 하는 것이 남아 있다면 모두 맑고 향기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활동에 사용해 달라.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는 말을 남겼다.

    김은진 기자
    ■법정 스님 주요 연표
    1932년10월8일 전남 해남군 문내면 선두리 출생
    1954년 통영 미래사에서 효봉 선사를 은사로 입산출가
    1959년 3월15일 통도사 금강계단에서 자운율사를 계사로 비구계 수계
    1959년 4월15일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명봉화상을 강주로 대교과졸업
    1972년 첫 저서 ‘영혼의 모음’ 출간
    1976년 대표 저서인 ‘무소유’ 출간
    1984∼1987년 송광사 수련원 원장
    1992년 강원도 산골 오두막으로 거처를 옮기고 홀로 수행정진
    1993년10월10일 프랑스 최초의 한국 사찰인 파리 길상사 개원
    1994년 1월1일 ‘맑고 향기롭게 살아가기 운동’ 창립
    2003년12월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 회주에서 스스로 물러남
    2010년 3월11일 길상사에서 법랍 55세, 세수 78세로 입적
 

        

 

       

 법정스님의 좋은 글
 

 
나 자신의 인간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내가 얼마나 높은 사회적 지위나 명예 또는
얼마나 많은 재산을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나 자신의 영혼과 얼마나 일치되어 있는가이다.

- 홀로 사는 즐거움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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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순간의 있음이다
영원한 것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한때일 뿐, 그러나 그 한때를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삶은 놀라운 신비요,아름다움이다

- 버리고 떠나기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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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망은 단순하게 사는 일이다.
그리고 평범하게 사는 일이다.
느낌과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
그 누구도,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없기 때문에
나는 나 답게 살고 싶다

- 오두막 편지 에서 -

 

 

 

빈마음, 그것을 무심이라고 한다.
빈마음이 곧 우리들의 본 마음이다.
무엇인가 채워져 있으면 본 마음이 아니다.
텅 비우고 있어야 거기 울림이 있다.
울림이 있어야 삶이 신선하고 활기 있 는 것이다.

- 물소리 바람소리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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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본질적으로 홀로일 수밖에 없는 존재다.
홀로 사는 사람들은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려고 한다.
홀로 있다는 것은 물들지 않고 순진무구하고
자유롭고 전체적이고 부서지지 않음을 뜻한다.

- 홀로 사는 즐거움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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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에서 꽃이 피어난다는 것은
얼마나 놀라운 생명의 신비인가.
곱고 향기로운 우주가 문을 열고 있는 것이다.
잠잠하던 숲에서 새들이 맑은 목청으로 노래하는 것은
우리들 삶에 물기를 보태주는 가락이다.

- 산방한담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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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결코 많고 큰 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도 고마워하고
만족할 줄 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여백과 공간의 아름다움은 단순함과 간소함에 있다.

- 홀로 사는 즐거움 에서 -

 


가슴은 존재의 핵심이고 중심이다.
가슴 없이는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다.
생명의 신비인 사람도,다정한 눈빛도,
정겨운 음성도 가슴에서 싹이 튼다.
가슴은 이렇듯 생명의 중심이다.

- 오두막 편지에서-


나는 누구인가.스스로 물으라.

자신의 속얼굴이 드러나 보일 때까지

묻고 묻고 물어야 한다.

건성으로 묻지말고 목소리 속의 목소리로

귀 속의 귀에 대고 간절하게 물어야 한다.

해답은 그 물음 속에 있다.


- 산에는 꽃이 피네 에서 -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전 존재를 기울여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면
이 다음에는 더욱 많은 이웃들을 사랑할 수 있다.
다음 순간은 지금 이 순간에서 태어나기 때문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이지 시절이 달로 있는 것이 아니다.

- 봄 여름 가을 겨울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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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가 선택한 맑은 가난은 부보다 훨씬
값지고 고귀한 것이다.

- 산에는 꽃이피네 에서 -

  
 


버리고 비우는 일은 결코 소극적인 삶이 아니라
지혜로운 삶의 선택이다.
버리고 비우지 않고는 새것이 들어설 수 없다.
공간이나 여백은 그저 비어있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여백이 본질과 실상을 떠받쳐주고 있다.

- 버리고 떠나기 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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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로운 글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으로 행하신

법정 큰 스님의 열반을  추모하오며

살아계신 부처님의 행은 우리 가슴속에 영원 할 것입니다.

 

 큰 스님의 열반을 온 국민과 함께 애도합니다. 나무아미타불()()()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