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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범여(梵如)의 世上사는 이야기
♣ 佛 敎 ♣/염불과 의례

순치황제 출가시(順治皇帝 出家詩)

by 범여(梵如) 2014. 9. 5.

◈ 순치황제 출가시(順治皇帝 出家詩) ◈

 

 

        
        

天下叢林飯似山 천하총림반사산/ 곳곳이 총림(叢林)이요, 쌓인 것이 밥이어니
鉢盂到處任君餐 발우도처임군찬/ 대장부 어데 간들 밥 세그릇 걱정하랴 !
黃金白璧非爲貴 황금백벽비위귀/ 황금과 백옥만이 귀한 줄을 아지 마소.
惟有袈裟被最難 유유가사피최난/ 가사옷(僧服法衣) 얻어 입기 무엇보다 어려워라.

朕乃大地山河主 짐내대지산하주/ 이내몸 중원천하(中原天下) 임금 노릇 하건마는,
憂國憂民事轉煩 우국우민사전번/ 나라와 백성걱정 마음 더욱 시끄러워
百年三萬六千日 백년삼만육천일/ 인간의 백년살이 삼만 육천 날이란 것
不及僧家半日閒 불급승가반일한/ 풍진 떠난 명산대찰 한나절에 미칠 손가.

悔恨當初一念差 회한당초일념차/ 당초에 부질없는 한 순간의 잘못으로
黃袍換却紫袈裟 황포환각자가사/ 가사장삼 벗어 치고 곤룡포(袞龍袍)를 감게 됐네.     
我本西方一衲子 아본서방일납자/ 이 몸을 알고 보면 서천축(西天竺) 스님인데
緣何流落帝王家 연하류락제왕가/  무엇을 반연하여 제왕가(帝王家)에 떨어졌나 ?           

未生之前誰是我 미생지전수시아/ 이 몸이 나기 전에 그 무엇이 내 몸이며,
我生之後我是誰 아생지후아시수/ 세상에 태어난 뒤 내가 과연 뉘이런가
長大成人裳是我 장대성인재시아/ 자라나 사람노릇 잠깐동안 내라더니
合眼朦朧又是誰 합안몽룡우시수/ 눈 한번 감은 뒤에 내가 또한 뉘이런가

百年世事三更夢 백년세사삼경몽/ 백년의 세상일은 하룻밤의 꿈속이요
萬里江山一局碁 만리강산일국기/ 만리의 이 강산은 한판 노름 바둑이라
禹疏九州湯伐桀 우소구주탕벌걸/ 대우씨(大禹氏) 九州 긋고 탕임금은 걸(桀)을 치며
秦呑六國漢登基 진탄육국한등기/ 진시황 六국먹자 한태조(漢太祖)가 새터닦네.

兒孫自有兒孫福 아손자유아손복/ 자손들은 제 스스로 제 살 복을 타고났으니
不爲兒孫作馬牛 불위아손작마우/ 자손들을 위한다고 말 소노릇 그만하소
古來多少英雄漢 고래다소영웅한/ 수천년 역사 위에 많고 적은 영웅들아
南北東西臥土泥 남북동서와토니/ 푸른 산 저문 날에 한줌 흙이 되단 말가

來時歡喜去時悲 내시환희거시비/ 올적엔 기쁘다고 갈 적엔 슬프다고
空在人間走一回 공재인간주일회/ 속없이 인간에 와 한바퀴를 돌단 말가
不如不來亦不去 불여불래역불거/ 애당초 오잖으면 갈 길조차 없으리니
也無歡喜也無悲 야무환희야무비/ 기쁨이 없었는데 슬픔인들 있을 손가

每日淸閑自己知 매일청한자기지/ 나날이 한가로움 내 스스로 알 것이라
紅塵世界苦相離 흥진세계고상리/ 이 풍진 세상 속에 온갖 고통 여일세라
口中吃的淸和味 구중흘적청화미/ 입으로 맛들임은 시원한 선열미(禪悅味)요,
身上願被白衲衣 신상원피백납의/ 몸위에 입은 것은 누더기 한 벌 원이로다

四海五湖爲上客 사해오호위상객/ 오호(五湖)와 사해(四海)에서 자유로운 손님 되어
逍遙佛殿任君棲 소요불전임군서/ 부처님 도량 안에 마음대로 노닐세라.
莫道出家容易得 막도출가용이득/ 세속을 떠나는 일, 하기 쉽다 말을 마소
昔年累代重根基 석년루대중근기/ 숙세(宿世)에 쌓아놓은 선근(善根)없이 아니되네

十八年來不自由 십팔년래부자유/ 十八년 지내간 일, 자유라곤 없었노라.
山河大戰幾時休 산하대전기시휴/ 강산을 뺏으려고 몇 번이나 싸웠더냐
我今撤手歸山去 아금철수귀산거/ 내 이제 손을 떨고 산 속으로 돌아가니
那管千愁與萬愁 나관천수여만수/ 만가지 근심 걱정, 내 아랑곳할 것 없네.



* 순치제(順治帝, 숭덕(崇德) 3년 음력 1월 30일 (1638년 3월 15일) ~
순치(順治) 18년 음력 1월 7일(1661년 2월 5일)?)는
청나라의 제3대 황제(재위 1643년 ~ 1661년)이다.
휘는 복림(福臨), 묘호는 세조(世祖). 연호는 순치(順治), 법명은 행치(行痴)이다.
홍타이지의 9남으로 어머니는 그의 후궁이었던 효장문황후(孝莊文皇后)이다.
순치 황제는 중국 청나라 셋째 임금으로서 마치 한국의 세종 대왕같은
성군(聖君)이며 호가 순치입니다. 이 출가시는 예술적인 시작품이라기 보다는
철학적이고 심오한 불법(佛法)의 뜻이 들어 있기 때문에 옛부터 우리 불가
(佛家)에서도 많이 회자(膾炙)하고 있다.
순치황제는 청[淸]대의 성군으로 칭송받는 강희제[康熙帝]의 부황[父皇]으로서
세조[世祖]인데 수많은 정복전쟁으로 재위 기간[1643~1661]에
만주와 중원까지 통일한 영웅으로 알려져 있으며 재위 18년 되는 해
[24세 때]에 홀연히 세속을 등지고 산서성 오대산으로 출가하여
수행. 정진하다가 입적하였다는 설이 있습니다.

어느 절에 노스님 한분이 계셨다.
덕이 높고 수행이 깊은 노스님은 여간해 아프시지도 않고
대중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으며 살아 가셨다.
어느 날 짖궂은 손자 상좌들이
"노스님 언제 옷 벗으실 겁니까?"하고 여쭸다.
언제 돌아가실 것이냐 물은 것이다.
그 때 스님은 "뒷산 바위가 무너지는 때에 옷을 벗으마"하셨다. 

하루는 상좌에게 지필묵을 가져오라 하시고
사람 얼굴을 그린 후에 눈동자는 남겨두며 하시는 말씀이
"사십년 후에 이 그림을 걸개로 하여 중원 천하를 돌아다니며 '자기 영 찾으시오.'
하고 소리를 치고 다니면 내가 나타나 눈동자를 그려줄 것이라"고 하시고는
목욕재계하고 의복을 단정히 하고  좌탈 입망(앉아서 돌아가심)하시니
갑자기 뒷산 바위가 무너져 내렸다.  

사십년 후에 청나라에는 순치(順治) 황제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 마상에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수행하여
중원 천하를 통일하여 자금성에 앉아 있는데
성밖에서 문득 “자기 영(靈 ) 찾으시오.”하는 소리가 들렸다.
무엇에 이끌린 듯 소리 나는 곳을 보니
어느 스님이 걸개그림을 들고 있는데 눈이 없어
황제가 붓을 들어 눈동자를 그려주었다.

그 스님은  “사십년 만에 스승님을 뵙습니다.” 하면서
큰 절을 올리고 연유를 말하니 순치는 홀연히 자신의 전생을 깨달았다.
그 길로 곤룡포를 벗어 던지고 산으로 들어가 출가하며 시를 지으니
그것이 유명한 순치황제 출가시(順治皇帝出家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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