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
위에서『반야심경』은 일체 현상계에 나타나는 모든 존재를 모두 부정하고 있으며, 이어서 그 현상계를
조견(照見)했을 때 나타나는 진리인 사성제와 십이연기까지도 차례로 부정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부정의 논리를 통해서 공의 세계를 드러내는 이유는, 지혜,즉 반야바라밀을 체득하기 위함이며,
그 지혜에 의지해서 모든 보살은 일체의 고액에서 벗어나 열반의 깨달음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는 우리가 마지막까지 가지고 있던, 더 이상 부정해서는 안 될 것으로
여긴 ‘근본’에 대한 부분까지 모두를 부정하게 됩니다.
다시 말해,여기에서는 더 이상 부정해서는 안될 지혜, 즉, 반야바라밀과 그 지혜를 통해
얻어지는 깨달음, 열반까지 모두를 부정해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반야심경』이 부정의 논리를 통해 공의 세계를 드러내는 마지막 부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혜(慧)란 우리가 현상계의 조견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의 안목이며, 얻을 것[得]이란
그 바른 지혜에 의해서 얻게 되는 깨달음의 세계, 즉, 해탈이며, 열반입니다.
즉, 이와 같은 두 가지는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이며, 최후의 목표인데도 불구하고
이 모두를 부정해 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깨달음에 이르기 위해 지혜를 닦아 나가는 것입니다.
즉, 깨달음의 피안으로 가기 위해 고해[괴로움의 바다]를 건너는 배의 이름이 ‘지혜’인 것입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길이 지혜라고 하니, 모두가 이 지혜에 집착을 해 버립니다.
지혜를 증득하는 것에만 얽매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야심경에서는 이 지혜조차도 부정해 버립니다.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배이며,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지혜라고 했을 때 분명 지혜조차도
깨달음에 이르는 방편에 불과한 것입니다.
꿈을 꾸고 있다가 이것이 꿈인 것을 올바로 알아 [지혜] 꿈을 깼다고 했을 때, 꿈을
깨고 나면 꿈을 깨는 최상의 열쇠인 지혜마저도 없어지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인 것입니다.
이렇게 말을 하니 우리가 바라 볼 것은 오직 깨달음, 열반의 기쁨뿐이라고 생각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무득(無得)이라고 하여 반야심경에서는 궁극의 깨달음마저도 부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얻을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이렇게 깨달음에 이르는 지혜와 궁극의 깨달음까지도 모두 부정하고 있다는 것은 이 모두가
공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공(空) 사상은 현상계의 본질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이상세계 즉 해탈, 열반의 본질이기도 한 것입니다.
일체가 공이라면 그것으로 그만이지 그 속에 지혜는 있다던가 해탈은 있다라고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일체가 공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반야심경은 어느 것에도 집착하지 않을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심지어 지혜나 열반에도 집착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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